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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4 14:52:33 조회 : 164         
안양20240215b창34장31절(진정한 보상)-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175.212.135.128)
안양20240215b창34장31절(진정한 보상)-이 근호 목사

세상에 일어나는 것은 다 하나님께 속했는데, 하나님께서 속했다는 것은 가장 최종적인 모습을 그리스도의 나라, 아들의 나라, 예수 안을 구성하기 위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야만 했다는 식으로 사태들을 유발한 겁니다. 요게 신약 이야기고.

구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신약에 예수님에게 주신 마지막 언약을 그들에게는 아브라함 언약, 이삭 언약, 야곱 언약식으로 서서히 툭! 툭! 던져놓는 거예요. 마치 공수부대가 적점에 갔을 때 툭! 툭! 이쪽 지점, 저쪽 지점에 공수 대원들을 침투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언약의 침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툭 떨어진 겁니다.

침투를 하게 되면 언약이 있는 곳에 그냥 언약이 들렁 이렇게 짐보따리처럼 봇짐처럼 있는 게 아니고 그 언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대적자, 사탄이 그동안 인간세계를 어떻게 구워삼켰는가를 그 실상이 다 언약이 터진 곳에 다 드러나도록 조치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창세기34장 이 이야기가 그냥 옛날이야기가 아니고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서 이 사건이 반복하고 되풀이 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했는데 왜 저한테 시련을 주십니까?” 이거와 똑같은 거예요. 이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대로 했는데 왜 저에게 시련을 주셨습니까? 정답은 니한테 시련가라고 그 뜻을 일으킨 거예요. 시련가라고. “왜 저한테 시련이 옵니까?” 그럼 하나님께서 “니 뭐야? 도대체. 니가 메시아야? 니가 하나님의 아들이야? 아~ 요거 많이 수상하다. 요거. 수상해. 니 대적자지? 니 악마의 앞잡이지? 그지?” 대박 들통이 나는 거예요.

열심히 교회 다니면서 구원받으려고 이렇게 살면 천국가지 않겠는가, 해서 했는데 막상 이건 천국가는 것이 아니고 갈수록 내가 하나님의 대적자라는 사실을 노골화시키는 그런 현상 속에 자기가 빠져있는 거예요. 현상 속에.

야곱은 열 두 아들이 대표에요. 열 두 아들이. 열 두 아들이 대표인데 열 두 아들 속성이 지금 미지에 있습니다. 어떤 속성을 갖고 있는가를 몰라요. 그런데 여기에 레아가 아들만 낳은 게 아니고 딸을 낳았어요. 딸. 이름이 디나. 딸을 낳았다고요. 딸이 나서서 아들없이 딸이 나서서 벌어진 일로 인하여 열 두 아들의 속성들이 그만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므온과 레위. 이 두 사람은 레아의 딸이니까 레아가 낳은 아들중에 두사람이에요. 다른 아들들도 동조를 했어요. 동조를 했는데 일찌감치 큰 나이가 많은 형님이니까 동조 안할 수밖에 없지요. 동조는 했지만, 주도한 것은 시므온과 레위가 주도했어요.

그렇다면 디나라는 이 소녀에게 일어난 이 사건 사태를 위하여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태어났다고 여겼던 이 열 두 아들의 속성이 낱낱이 언약에 의해서 고발당합니다. 이들이 뭘 사용했느냐 하면, 세겜의 추장이 디나를 보고 강간하고, 강간하고 난 뒤에 요구했어요. 너무 좋다고 한 게 아니고. 남성호르몬 발작을 해서 해놓고 끝나고 난 뒤에 너무 맘에 들어서 조건을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합니다. 내가 이 디나를 내 아내로 삼겠다면 여자 쪽 집안에서의 하는 조건을 우리가 아무소리 안하고 다 지키겠다. 이렇게 했어요. 백지수표를 던진 거죠.

그런데 디나와 같은 엄마를 가진 레위 아들들은 무엇을 하느냐 하면 이런 의식이 있어요. 이게 세겜이 이방민족이잖아요. 이방민족. 이방민족에 대해서 자기는 아브라함 종족. 야곱은 뭐냐 하면 아브라함 종족이잖아요. 아브라함 종족을 가졌던 우월감, 국수주의, 우리는 하나님과 유일하게 통하는 약속을 지닌 너희들 인간하고 다르다는 그런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자기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겼던 겁니다.

그래서 사돈 맺을 의사가 전혀 없는 거예요. 야곱은 뒤에 떨어져 나가요. 야곱은 왜 떨어져 나가느냐 하면, 그 주의에 대해서 하나님이 관여하기를 바랬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하겠다는 소극적 태도에요. 자기는 하나님의 소유였으니까 소극적 태도밖에 할 수 없어요.

그러나 아들들은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만나서 씨름했던 체험이 없기 때문에 지식으로 언약을 수용해서 이 언약을 통해서 어떤 민족보다 뛰어난 민족이 되겠다는 야심가들로 꽉 뭉쳐져 있는 거예요. 그 야심에 대해서 누구 하나 토다는 사람 없었고, 그 나머지 아들들도 환영을 했어요. 환영을 한다는 말은 내심 이런 절호의 찬스를 이 참에 이건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살리려고 키우려고 하는 이 기회를 놓치수가 있으랴, 이런 야심들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피해 입은 디나도 여기에 개입을 못해요. 디나, 디나의 아버지 야곱도 개입을 못하고, 레아의 자식들이 설쳐가지고 이 세겜 모든 청년들에게 다같이 할례를 행하도록 요청했어요. 적당한 적절한 구실이 있지요. 우리는 할례라는 언약으로 하나님과 맺은 약속이 있는 민족이라서 내 딸을 데려가는 대신 당신들도 우리가 믿는 종교, 여호와 믿는 종교로 하나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라고 하는 겁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딸을 시집보내면서 상견례하면서 저쪽 딸의 시아버지, 시어머니될 사람에게 내 아버지가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고 보세요. “우리 딸을 데려가는 건 좋은데 제사드리기만 해봐라. 그 다음부터는 파혼이다.” 라고 했을 때 이게 무슨 뜻일까요? 시집이라는 게 뭐예요? 내 사람에서 저쪽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러나 그런 조건을 달았다는 말은 뭡니까? 내 딸을 하나님 믿지 않는 너희에게 앞으로 영원토록 빼앗길 생각은 전혀 없다는 거죠. 영원토록. 자식이 어떤 자식인데.

딸이 아버지가 지정하지 않는 다른 남자와 나이 서른이 넘은 딸이 다른 남자하고 사귀니까 아버지가 딸에 대해서 스토커가 되어가지고 딸가는 곳에 다 따라다니면서 “나는 니 시집 못 보낸다. 시집 못 보낸다.” 뽀식이 있잖아요. 뽀식이. 내가 니 키울 때 얼마나 힘들고 너가 귀한 존재인데 너를 왜 시집 보내. 이런 식으로요. 오죽 답답했으면 그 남자친구가 트로트 노래 경연대회까지 나와서 그 이야기를 했겠어요. 여자친구 아버지가 뽀식이인데. 얼마나 지독하게 그것도 어린애도 아니고 나이 서른인데 반대하더라. 그 남자는 온 국민에게 청혼한 거예요. 대국민에게 호소를 한 겁니다. TV조선 트로트 경연대회에 나와가지고. 엉엉 울면서.

이 지금 야곱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것을 얼마나 들었겠어요.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우리는 택한 백성이다. 우리는 택한 백성이다. 이것에 대해서 넘치는 우열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자긍심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건 그치고, 속은 뭐냐, 속은 이 세겜 땅에, 제가 세겜 땅에 가봤어요. 세겜 땅이 그리심산과 에발산 가운데 세겜 땅이에요. 지금은 팔레스타인이 살고 있는 가자지역 말고 서안지역이라고 지금 팔레스타인 나라가 둘로 쪼개졌거든요. 지금 하마스가 있는 가자지역. 이것은 이스라엘의 우호적인 사람들의 팔레스타인 따로 장벽으로 완전히 포로수용소처럼 장벽으로 둘러싸여서 따로 살아요.

거기서 물도 많이 나오고, 농사도 잘되고, 목축도 하고 싶고, 이건 이스라엘이 탐내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야곱의 아들들이 나이가 이미 많잖아요. 우리가 정착할 곳을 이 참에 내 여동생이 강간당한 그것을 빌미로 해서 차지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 땅을. 정착을 해야 되니까. 지금 나그네 생활은, 떠돌이 생활은 지긋지긋해요. 정착을 해야 되니까. 그리고 이 땅은 하나님께서 하란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을 왔으니까 하나님의 백을 믿고 이 땅은 “내 땅이야. 우리가 차지해야 마땅해.” 라는 그런 자부심도 있었겠지요.

자기 여동생 디나 강간사건 이건 디나 여동생 생각은 아무것도 안하고요. 그 오빠들의 자신의 야망을 이루는 수단으로서 이 참에 잘됐다는 식으로 하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돌칼로 할례를 행했어요. 남성들이 할례를 다했을 때에 제일 고통스러워서 꼼짝도 못할 때에 삼상34장26~29절,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왜 이렇게 하지요?

강간하면 그것만 다루면 되는데 갑자기 재산까지 다 빼앗습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택한 민족이 받은 이 언약에 언약이라는 이 취지만 달랑받고 그 취지를 달성하는 그 모든 달성하는 수단은 자신들의 야망을 끄집어내서 이 취지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연계시켰던 거예요.

자,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 아버지의 태도는 언약을 제대로 아는 아버지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언약을 아는. 그러니까 너희들이 언약이라는 것을 듣기는 들었지만 언약달성 방법이 완전히 비언약적이에요. 세상사람과 동일한 사고방식에서 언약을 실현시키려고 시도한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교회를 한 번 보세요. 꼭 디나의 오빠들의 하는 행세를 그대로 해요. 성경에 나와 있다. 뭘 하면 복주고 뭘 하면 천국 간다. 하니까 그 다음에 그걸 얻어내는 방식은 뭡니까? 자신이 갖고 있던 나중에 보험들 때, 천국 가는 보험처럼 내가 천국 가겠다는 탐욕과 욕심과 천국도 가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 믿고 잘 먹고 잘살고 내 가정만 잘되고. 불신자 가족보다 더 출세하고 더 성공하고. 이런 노림수가 없겠느냐 이 말이지요. 교회 다니면서.

교회 새벽에 나가서 기도하잖아요. 새벽기도가 왜 그리 길어요. 시간 한 번 재보세요. 그 기도내용을 녹음해서 들어보세요. 어떤 내용이 있는지. 내용은 이거에요. 하나님이 내편 들어서, 내편이 되어주셔서 내가 갖고 있는 소원을 하나님께서 들어달라는 그것을 간절하다보니까 시간이 그만큼 기도시간이 질질 길어진 겁니다.

그러면 그 소원이 뭔데. 자기 소원이 뭡니까? 아까 제가 이야기 했듯이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고,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할 때 구할 때 길게 반복해서 구하는 거예요. 찾을 때 반복해서 찾고, 문을 두드릴 때 똑! 똑! 이게 아니고 발로 차는 거예요. 열릴 때까지. 간절함. 간절함으로 하다보니까 기도가 길어지는 거예요.

문제는 간절하냐, 간절하지 않느냐, 문제가 아니고 도대체 뭘 달라고 하느냐, 뭘 달라고 그렇게 반복해서 기도하느냐, 마태복음6장에 보면, 이방인의 기도가 뭐냐 하면 자기한테 필요한 것을 반복해서 구한다는 것이 이방인의 특징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에요. 내가 원하는 것을 반복하는 이유가 일반적인 사람과 사람이 상대할 때 떼를 쓰잖아요. 반복해서. 하나님도 마찬가지에요. 떼를 쓰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입을 벌려라. 채우리라. 하니까 아예 아가리를 지가 막..., 아가리를 아구처럼 벌리고 입 작은 사람은 안 돼. 입 큰 사람은 유리해요.

하나님의 언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언약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내부적인 속성이 노출되는 사건을 언약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가요. 아버지가 여기서 뭘 해야 됩니까? 자, 여러분에게 퀴즈 낼게요. 아버지가 강간한 세겜의 추장을 나무라겠어요? 아니면 자기 아들들을 나무라겠어요? 답변해 보세요. 어느 쪽을 나무라겠습니까?

30절 봅시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되어있지요. 거기에 대해서 아들들이 고분고분 인정했습니까? 아니면 어떤 정의감을 나타냈습니까? 정의감을 나타냈지요.

31절,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하고 끝났어요. 없어요. 지금 아들들이 그 세겜의 추장이 디나를 창녀같이 대우했습니까? 무슨 창녀하고 혼인을 해요. 지가 다윗도 아닌 게. 책임지겠다는데 그게 어떻게 창녀같이 대우하는 거예요. 책임지겠다잖아요. 내 아내로 삼겠다는 겁니다. 이 아들들이 그렇게 해놓고 자기는 잘했다고 하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속성을 가진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야곱언약을 줬다는 거예요. 야곱 언약을. 지금 그들은 야곱 아버지 입장에서 정착에 뭐한 거냐, 실패한 거예요. 실패했다. 정착에 실패했다는 겁니다. 실패하고 그 책임을 야곱은 자기 내부로 돌렸어요. 자기 아들들, 자기 적에게 돌린 게 아닙니다. “디나를 강간한 저 세겜의 추장이 나쁘지.” 이렇게 되어버리면 그건 아버지가 아들들하고 생각이 똑같이 돼요. 이미 아버지 야곱과 아들 생각이 지금 대비되어있다. 같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야곱의 생각은 뭐냐, 야곱의 생각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형 에서하고 헤어지면서 약속의 땅, 아비 아브라함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했어요. 막벨라 굴도 마찬가지고, 헤브론 땅에 막벨라 굴이 있어요. 그 굴에 이삭, 리브가, 아브라함, 사라, 나중에 요셉까지 다 묻혀요. 세겜도 같은 동네라 보면 돼요. 그 근처니까.

야곱은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면, 내가 우리가 정착하게 되면 이 정착은 무슨 정착이냐 하면, 언약의 정착으로 보는 거예요. 언약의 정착. 언약의 정착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일은 누가 합니까? 우리를 정착케 한 언약이 이 땅을 무슨 땅으로 바꾼다? 약속의 땅으로 바꾼다는 생각이 있어요. 야곱은. 그 생각이 결국은 그 생각대로 됐고요. 야곱의 후손 430년후에 결국 이 땅, 약속의 땅으로 차지했잖아요. 갔다가 430년 후에 다 차지해요.

그러나 야곱은 아직까지 430년 그걸 모르기 때문에 뭐냐 하면, 자기가 언약이기 때문에 언약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정착과 함께 내게 준 언약이 자동적으로 쏟아낼 수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펼쳐지는 그러한 소극적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아들들은 뭐냐 하면 같은 생각인데 뭐냐, 상당히 호전적이고 적극적이고, 자율적이에요.

누이동생이 강간을 당함을 계기로 해서 “이 참에 정당한 피해자니까 정당하신 하나님이 우리 편이니까 이 피해를 준 것에 대해서 복수가 정당합니다. 그냥 이 참에 밀어붙입시다. 그들이 몸이 아파서 꼼짝 못할 때 이 찬스에서 그걸 우리 땅으로 만듭시다.” 라고 한 거예요.

야곱은 실패하고 어디로 가느냐, 35절에 벧엘로 올라간다 했거든요. 올라간다는 것은 수직적인 의미가 아니고 반대로 더 내려가는 더 남쪽으로 내려가요. 벧엘로. 사실은 땅이 좁아서 남쪽이라고 할 것도 없고 세겜 근처 조금 더 내려오면 벧엘이에요.

저 벧엘에 가봤어요. 벧엘도 그 동네에 가 있어요. 여러분도 나중에 하마스 전쟁 끝나면 여행사 좀 헐게 되면 한 번 가보면 좋겠어요. 중요한 성경적 지리가고 특히 예루살렘에 가서 제가 느낀 것은 예수님이 실제 인물이라는 사실이 그냥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하나의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고 실제로 태어났고 실제로 죽었고, 실제로 부활하고 실제로 승천하셨다. 따라서 내 인생은 이미 주님이 철수해서 빼앗아 갔다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지요. 예루살렘에 가서 그걸 흠뻑 젖어 들었어요. 내 인생을 내가 관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그 가벼움을 느꼈어요. 여러분도 한 번 느껴봤으면 좋겠다 하는 저의 희망사항입니다.

35장에 벧엘로 올라가거든요. 거기서 단을 쌓습니다. 자, 이제부터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이겁니다. 언약을 통해서 이방인에 대한 정복, 이건 창세기22장에 나와요. 이삭보고 니 대적의 문을 연다고 했거든요. 리브가가 시집갈 때 오빠가 누이동생한테 덕담하는 게 뭐냐 하면, 덕담이 아니고 계시에요. 사실은 덕담인데 계시에요. 니가 성문의 문을 열 자손을 낳을 것이다. 했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결혼한다는 그저 일상적인 인간에게 나올 수 있는 일인데 자꾸 그걸 언약이 자꾸 이용해요. 언약이. 하늘의 언약이.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대를 이어서 계속 개입하면서 니 인생 언약을 드러내는 인생이 되게 하겠다고 계속 사태를 일으키는 거예요. 여러분의 인생하고 똑같아요. 지금. 지금 웃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성령을 받은 성도가 되고 난 뒤에 일어난 사건은 내가 이리이리해서 성공한다는 사건, 구원받는 사건이 아니고 잠재되어있는 언약이 나라는 인생, 나라는 몸을 통해서 계속 발현되고 있는 현상들을 감지하게 만들어요. 그걸 간파하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참 그걸 보고 우리는 범사에 모든 일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인생은 조져놨는데도 불구하고 언약은 조져 난 인생을 통해서 계속 곰탕처럼 우려먹듯이 계속 새롭게 새롭게 나타나는 거예요.

뻔히 아는 성경구절, 뻔히 아는 내용이라도 내일 사태 터지면 그 알았던 성경 내용이 새롭게, 새롭게, 아주 찌릿찌릿할 정도로 다가오는 겁니다. 잃어버렸다가 찾는 거 이런 거요. 아주 찌릿찌릿하지요. 뻔히 그 구절 다 알지만 새삼스럽지요. 비 오는데 우산 들고 막 찾고.

이방인과 이방인정복의 약속은 너희 언약 민족이 할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레위 아들들은 이걸 오해했다 했지요. 오해할 뿐만 아니라 아들들에서는 대책이 없어요. 이게 아니라면 우리가 정복하는 게 아니라면 뭐? 어떻게? 뭐? 어떻게 정복 하는데? 그 아들들.

야곱도 물론 구체적으로 몰랐어요. 나중에 알아보니까 언약이 왔다는 것은 본인들이 이방인이다, 라는 뜻이에요. 놀랍지 않습니까. 언약을 안다는 언약을 받은 자신들이 언약 앞에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러면 누가 누구를 정복할 자격도 권한도 없어요.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 편이다. 얼추 맞는 말 같아요. 그런데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일어난 터지는 사태를 보니까 소위 언약을 알고 복음을 안다는 우리가 어찌 그리 이방적인지. 사탄의 자식, 악마의 자식으로 그야말로 나서서 악마노릇하면서 자신의 야심만을 드러내는데 기도와 헌금과 전도와 봉사와 이런 것들을 총동원하고 있더라 말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뭐가 필요합니까. 이방인이 하나님의 약속의 사람이 되려면 여기에 뭐가 필요하냐 하면 희생타, 희생물이 필요한 거예요. 희생타, 희생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필요하겠지요. 그걸 야곱에서는 누구였느냐 하면 디나에요. 디나가 강간당한 거예요. 오빠들이 그걸 이용했지만. 디나의 강간당한 그 아픔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다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여기에 대신할 자가 등장합니다. 그게 누구냐 하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 디나입장에서 내가 강간당한 입장에서 내가 강간당한 데서 오는 모욕감과 명예 그것이 보상 받기를 원하고, 다시 원상회복되기를 원하지요. 오늘 강의 제일 중요한 부분에 돌입했습니다. 내가 세상이라는 지옥에서 당했던 치욕과 그 재정적인 부분, 경제적인 면, 주변에서 째려보는 그 모욕감.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이 보상해주기를 원하지요. 우리의 마음은 그래요. 이런 마음이 없는 사람이 없어요. 없는데.

정작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뭐냐 하면 천국이에요. 천국.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변화산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과 플러스 엘리야 플러스 모세가 영광스러운 해같이 빛나는 분을 만났을 때 이들은 평소에 자기가 고생한 걸 보상해달라는 거예요? 아니면 저한테 이런 사정은 예수님이 안 들어 줘도 돼요.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끝내는 거예요. “보상이 아니고 뭐 이런 데가 다 있어?” 그걸로 끝나는 겁니다. 감격이에요. 감격!

“하나님,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하나님 가만히 있을 겁니까?” 소곤소곤하면서 새벽기도 하면서, 막 새벽기도하지요. 그럼 목사가 와가지고 “혹시 포도주 먹었어요?” 그러면 “아닙니다. 사실은 포도주 먹은 걸로 보입니까?” 하나님 원하는 데로 하겠습니다. 마치 시나리오에 있는 사무엘상에 나오는 그걸 반복을 하게 되면 뭐 은혜라도 주는 것처럼 아들이라도 낳게 해주는 것처럼 그렇게 해가지고 은연중에 그런 본능들이 있어요. 본심이 있다고.

“나는 기도가 너무 열심히 되가지고 나 또 한나의 기도인줄 알았습니다.” “예, 저 한나의 기도하고 있어요.” “주께서 응답하실 거예요.” “믿씁니다. 믿씁니다.” 이래가지고. “빨리 가셔야 난로 끄고 가는데.” ‘아, 참 목사 믿음 없다. 나를 천대하는구나! 주여, 저 원수를 복수하소서.’ 궁시렁 거리면서 교회 문 열고 나가잖아요. 개척교회 하면 중요한 것은 기도 오래하는 게 아니고 에너지 문제에요. 경유 값이 막 올라가요.

디나 입장에서 자기의 명예가 여자로서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디나에게 준 것은 뭐냐, 요셉이 준 게 있어요. 그것은 우리 온 가족이 누가 나쁘고 누가 좋다가 아니라 모두가 요셉을 버렸다는 사실이에요. 인간이 욕심을 내고 탐을 내는 것은 자기를 자꾸 피해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내가 이 땅에서 얼마나 직사게 했는데 하나님이 눈을 만드신 하나님이, 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다 듣고 알고 계실 거야. 내가 하나님 만나면 따질 거야. 정말. 어떻게 이렇게 고생을 시켜. 나는 물론 하나님 믿어. 믿씁니다. 그러나 따질 건 따져야지요.

주께서 “이리 와! 죽어! 인간아. 니가 나를 상대로 따질 걸 따져야지.” 나는 너의 죄를 잡아내는 거예요. 죄를 잡아내기 위해서 언약을 준 겁니다. 사람들은 언약을 소지하는 그걸로 대단한 존재로 지금 착각을 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고 죄를 준 것은 남을 손가락질을 하라는 말이 아니고 진짜 언약 앞에서 언약에 의해서 자기의 마음이 후벼지고 진짜 연자맷돌 매달아가지고 태평양에 빠뜨려봐야 아~ 정신차리지.

바로 내가 지옥 같은 물속에 빠져서 연자맷돌 해가지고 못 빠져 나오는 끼륵끼륵해가지고 숨도 못 쉬고 죽어 마땅한 죄인을 깨닫는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이 땅에 없습니다. 왜? 성경 말씀이 죄인 중에 괴수다. 또는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그 말씀이 전에는 내 바깥에 있던 말씀이 이제는 그 말씀의 효과가 우리 안까지 들어왔어요. 앞에 진통제 열, 백개씩 있으면 뭐합니까. 이걸 먹어야 내 안에 진통 효과가 확~~ 퍼지지요. 이가탄. 이가탄 선전 보면 갑자기 얼굴 표정들이 좋아요. 밝아요. 이가탄. 글자도 외우기 쉬워요. 이가탄.

지금 사람들이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거예요. 사실은 말씀을 지키는 게 아니고 나를 지키려는 그 음흉한 심보를 몰래 감춘 채 하나님께 도움받기를 원하는 겁니다. 참 지지리궁상 나같은 지저분한 인생이 또 있을까. 하고 스스로 자기의 연민, 자기의 위로하면서. 그런데 그러한 사고방식이 일어난 사태는 야곱의 언약을 홀로 이루기 위해서 야곱의 언약을 홀로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을 줍니다.

디나 사건을 통해서 오빠들의 심보가 들어났고, 그리고 디나의 강간사건의 한 사건에서 다른 형이나 아버지나 누구나 그건 원상회복이 안 되는 사건이에요. 이미 당해버린 사건이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가뭄 들어도 우리는 택한 민족이다. 택한 민족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자부심하나 가지고 결속력을 갖는 겁니다.

이건 신천지부터 해가지고 모든 인간의 특징이 안에 결속력을 다지고 다지고 또 다지고 하는 거예요. 다지기 위해서 뭐합니까. 외부의 요구할 수 있는 적을 자꾸 만들어내야 돼요. 세상교회 썩었다. 썩었다. 썩었다. 이단이다. 자꾸 말함으로서 우리끼리. 십자가마을 우리끼리. 우리끼리 무슨 대단한 존재인줄 알고 결속을 다져서. 다지는 방법이 있는데 그게 바로 야곱에게 언약이 제일 싫어하는 거죠. 그 속에 언약 중심에 의해서 추방되고, 추방된 게 아니고 사실은 죽임을 당했어요. 죽임을 당한 자가 같은 형제 가운데 요셉으로 나타나게 합니다.

자, 그러면 그들은 더 이상 언약에 가뭄이 오는 약속의 땅에, 아직 약속의 땅이 아니에요. 그냥 살기 좋은 땅에서 어디로 갑니까? 이미 요셉이 총무 대신이 된 애굽 땅 친히 부동산을 애굽나라 이름으로 공적으로 보장한 멋진 땅에 살 때에 거기에 누가 끼는가, 창세기46장 15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난 자손들이라 그 딸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삼십삼 명이며” 거기에 대표자 이름이 누가 나옵니까. 디나가 나와요. 이게 두 번째 나오고 끝났어요. 안 나옵니다.

여자가 몸을 더럽히면 우리 가문에 수치다. 이리 되어야 될 텐데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 수치 중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작동하는 겁니다. 어떤 피를 안 보면 지 잘난줄 알고 있어요. 잘났기 때문에 문제가 더 안에서 내부적으로 크게 곪아버려요. 부끄럽지 않은 인생 그게 바로 하나님의 언약에 대적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어떤 인간도 희생자 될 자격이 없어요. 하나님의 특별한 복음이 아니면 희생자 자체도 안돼요.

언약이 꽂아지면 요셉은 실컷 고생하고 그리고 놀라운 것은 요셉을 죽음의 사지에 몰아넣은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엄마, 형들은 디니부터 식구들은 그냥 공걸로 요셉 혼자 이루었던 모든 혜택을 뻔뻔스럽게 다 누립니다. 몇 년 동안? 430년 동안 대를 이어서 잘 먹고 잘 살았더라.

아버지 야곱이 죽고 난 뒤에 그 형들이 걱정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걱정 많이 했어요. 그래서 형들이 요셉을 찾아옵니다. “니 이제 복수하려고 하지? 아버지로 참아 못했지만 너, 내 복수할거지?” 쉽게 말해서 “선왕을 누가 죽였어?” 이런 거. 사극에 나오는 거. “니가 아버지를 독살하고 거기에 꽃잎에 물에 해가지고 마셔가지고 죽게 만들고, 세자를 제치고 없이하고 니가 왕이 돼?” 서열을 무시하고 이런 거.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 바로 인간은 마음속에 모든 아담의 흙으로 난 아담 속에 악마의 지배를 받는 인간 속에 이게 다 들어있는 거예요. 이게 언약이 아니면 파악이 되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요셉이 하는 말이 “제가 했습니까? 제가 한 게 아니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약속이 우리를 이용한 겁니다. 나는 희생자의 역할, 당신들은 죄는 죄대로 지어놓고 덕 보는 역할, 둘이 합치면 온전한 언약” 합쳐야 돼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해 놓고 천국은 지가 가고. 희생은 예수님이 했는데 예수님 홀로 남겨놓고 저희끼리 잘났다고 설치는 거. 그런 제자들. 그런 제자들이 천국을 간다? 아! 천국은 인간이 예상도 상상도 못한 하나님만의 특별한 장소입니다. 무슨 장소냐, 천국은 언약의 장소지요. 천국은 언약의 장소에요.

이 언약 자리에 그 천국 그동안 누가 가렸습니까? 나라는 존재가 가렸던 것을 언약이 가린 나를 제거해버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제거해 버리고, 제거하는 방법으로 동원됐던 언약이 나의 주인공으로서 천국이룹니다. 이게 바로 언약 안. in. 언약 안. 예수님 안이라는 개념이 된 거예요. 이게 바로 교회라고 하는 겁니다. 교회.

자, 22페이지 위에서 2번째 줄에, 【창세기12장1절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또 창세기2장 4절에서 보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니 결국 창조의 하나님이시다. 창조의 하나님이 제사장 나라 하나를 이 지상에 추입하고자 하셨는데 그 위력이 ‘광야 교회’로 나타난 것이다.】 그 밑에 【제사장이란 레위기에 보면 ‘죄 씻음’ 의식에 종사하는 직책을 가르킨다.】 우리에게 제사장이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주님 보기에 내가 의는 없고 오로지 죄만 가득합니다.” 라는 고백이에요. 이걸 감사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고백하는 거예요. 주님 앞에. 그래서 이스라엘은 인간이 지은 죄는 몽땅 다 끄집어냅니다.

그럼 이스라엘이 남보다 더 흉악한 민족이냐, 흉악한 민족이 아니라 죄를 죄답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주신 쪽 쪽 그것을 내가 나를 구원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 죄가 가장 최고의 죄에요. 율법주니까 율법 지켜서 구원받겠다. 말씀 주니까 말씀 지켜서 구원받겠다. 복음 주니까 복음 지켜서 내가 구원받겠다. 이게 악 중에 제일 큰 악이에요. 우리는 죄인역할 못 지켰다. 못 지켰다. 하는 역할을 해야 돼요. 그래야 값없이 값없이가 계속 살아있는데 우리는 값없이를 내 소유로 만들어놓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거예요. 이 시대를 무대로 생각해서 내가 주인공으로 하는 거예요.

시도 때도 없이 하는 말이 뭐냐 하면 “저, 어떻게 하면 돼요?” 맨날 어떻게 하면 돼요. 그냥 죄지으면 되는데. “저, 어떻게 살면 되는데요?” 맨날 이런 식이에요. “어떻게 하면 완벽할 수 있습니까?” 이런 거요.

22페이지 밑에서 5번째,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손수 동원하시거나 또는 그 피조물의 형태로 자신을 표현하시는 방편이 되시니, 이는 보이지 않고 영원하신 분이 시간적이고 제한적이며 유한한 것에 갇혀 있는 모습으로 자기를 낮추시고 이렇게 오신 거예요. 이 오심의 절정이 바로 예수님이시고, 더욱 더 절정이 예수님이 자진해서 십자가에서 죄인의 모습으로 죽으신 것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었다. 모든 인간 중에 의인은 없고 나처럼 저주받아 마땅함을 알리기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겁니다.

“너희들이 십자가를 알아?” 너희들이 게 맛을 알아? 하는 것처럼 우리가 십자가를 아십니까? 다 모르기 때문에 주께서 아직도 우리를 살려주시는 겁니다. 살아가면서 점점 더 십자가가 뭔가를 알아야 돼요. 왜 우리는 십자가에서 죄인일 수밖에 없는가, 그렇게 시도하는 죄를 뭐라고 하느냐, 성경에서는 뭐냐 하면 살고자 하는 죄에요. 살고자 하는 죄.

누가복음10장에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강도만난 사람 나오지요. 강도 만난 사람 첫 번째 제사장, 두 번째 레위인, 그냥 지나가잖아요. 그럼 왜 그냥 지나갔을까요? 내가 저 죽어가는 자와 상관할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나의 방향은 나를 살리는 방향으로 살지. 내가 죽고자 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은 내가 하는 방향과 반대 방향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세 번째 온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나는 순간 자기 일이 날아가 버렸어요. 자기 사는 일이 날아가 버리고 생각이 뭐냐, 그 강도 만난 사람의 피해자의 마음과 일치가 되고 말았어요. 강도 만난 사람과 자기와 같은 사람이 되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없지요. 그 이야기는 누구 이야기냐, 예수님이 자기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모든 비유도 그렇지만.

그래서 모든 사람이 제자들까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왜? 그들은 뭐 좋은 게 있으면 나를 살고자 하는데, 주님께서는 어떤 일도 어디서 죽으며, 어디서 내가 희생당하면 되느냐 그쪽으로 가신 거예요. 뒤늦게 성령이 왔으니까 제자들은 내가 뭘 해도 바로 주님과 비교해볼 때 죄인인 것을 감사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이유가 살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걸 할 수 있는 거예요. 내 잘나고자, 내가 멋있고자, 내가 위대하고자 하는 그것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그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겁니다.

22페이지에 여호화 하나님이 손수 낮아져서 그들의 백성과 행동을 같이하고 계시는 모습니다. 죄인이 아니면서도 죄인의 몸을 입고 오신 거죠. 23페이지에 교회란 구성원들의 구원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에 유일하게 참 하나님을 계시할 수 있는 공동체가 교회이다. 교회는 예수 안이에요. 공간이에요. 그 공간인데 보이지 않는 공간을 보이는 사람이 미천한 인간들이 죄인들의 만남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예수 안을 소개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마을 사람이나 같이 복음을 아는 사람이 나눌 때는 항상 대화 요이땅! 대화 시작할 때는 누가 더 죄인인가를 나발 부는 시간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왜 망가져야 마땅함을 그걸 드러내면 돼요. “니가 어찌 그럴 수 있는냐?” 성질 낼 게 아니고, 오늘도 니한테 망가지기 위해서 나 너와 만난다. 뭐 이런 거.

물론 다 그렇게는 할 수 없지만, 함께 계신 성령께서 나중에 헤어질쯤 되게 되면 전부 다 꽁! 꽁! 해가지고 꿀밤 하나씩 선물로 군밤을 선물로 다 받으면서 헤어지게 되어있어요. 오늘도 쓸데없는 일했다. 그런 얘기 안 해도 되는데. 또 내 잘난체 하지 않았는가, 나 잘난 거 없습니다. 하는 그 자체가 잘난체 한 거였어. 가만히 보니까. 이런 거.

그래서 다른 민족보다 특수성인데 어떤 특수성이냐, 무수히 많은 매를 맞는 특수성. 하나님한테. 맞을 때마다 하나님과 접촉돼 있는 감격을 누려야 돼요. 야곱처럼. 얍복강에서처럼. 먼저 맞는 거예요. 그래서 야곱이 이스라엘된 겁니다.

그러나 그 많은 매도 그것은 선택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확정해주는 것이고, 자기 위치를 새삼 확인해 볼 수 있다. 끝으로 밑에 하고 마치겠습니다. 그 뒤의 안식일은 너무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에 다음시간에 하겠습니다.

그러면 광야교회는 자기가 지닌 사명을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통해서 성숙하는가, 그것은 내부적으로는 예배기능, 예배기능이라 하는 것은 제사기능. 외부적으로서는 뭡니까? 전쟁이지요. 전쟁. 전쟁인데 이 붙여준 전쟁. 아무리 붙여준 전쟁이라도 막상 전쟁 통해서 개코도 아무것도 없는데 무수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적들 앞에서 이스라엘은 그 전쟁할 때마다 이미 자기가 죽은 존재여야만 내가 하나님의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돼요.

내가 살아있으면 하나님의 무기가 효력이 떨어지니까, 야~~ 이런 식으로 죽어 마땅함을 알 때 가장 최고의 연마된, 단련된, 무기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만 기쁘면 되지, 굳이 내까지 기뻐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희를 흙으로 만드시고 그런 인간에게 특별한 하나님의 언약을 주시고,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천국에 들어가는 이 백성이 되게 하는 이 과정 속에서 우리의 죄가 죄다 까발려지고 나타나주게 하신 이게 복인 것을 이제는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안양20240215b창34장31절(진정한 보상)-이 근호 목사.hwp (64.0K), Dow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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