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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7 23:37:06 조회 : 104         
강남-누가복음 21장 6절 (종말속의 메시아) 240213a-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115.23.177.240)
강남-누가복음 21장 6절 (종말속의 메시아) 240213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21장 5절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라고 되어있지요. 이스라엘이 모든 인간 역사를 대변해서 하나님과 접촉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번 생각해봅시다. 유일하게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민족이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안에다가 뭐를 심어놨는데 뭐를 심어놨느냐. 하나님이 친히 인간들을 만나겠다고 이건 하나님 쪽에서 제안한 거예요. 하나님 만남의 장소를 이스라엘 속에다가 심어놓은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은 성전입니다. 성전. 만남의 장소. 만남의 장소라고 마련해놨는데 실은 더 정확히 말해서 만남의 조건의 장소. 조건의 장소가 되는 겁니다.


인간은 같은 영역 속에 있기 때문에 만나고 싶으면 만날 수가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동일한 공간에 있다고 해서 만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공간에 접촉점에서 만나는 겁니다. 인간의 세계는 그냥 동그라미라고 보면 되요. 원주. 그냥 평평한 수평적인 여기 a라는 지점 b라는 지점. 거리가 멀지만 만나고 싶을 때는 만남이 가능해요.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그렇게 평범한 게 아니고 동그랗지만 뾰족하게 이렇게 튀어나왔어요. 밤톨처럼 뾰족한 이 지점. 이 지점이 바로 이스라엘 성전이 있는 공간, 성전이 있는 공간입니다. 만남의 장소. 만남의 조건의 장소에요. 있다고 만나는 게 아니고 조건이 충족될 때야 만날 수 있는 겁니다. 이거는(원) 수평적이라고 할 수 있고 이거는(밤 모양) 수직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인간들이 여기 위에 올라가야 하나님과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올라가야.


그런데 인간에게는 오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 수도 없고요 인간은 올라가는 게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은 평평하기 때문에 따로 올라가는 게 없어요. 산에 올라가봐야 내려와야 되고 엄홍길처럼 백날 올라가봐야 자기 가족 있는 집으로 내려와야 되잖아요. 올라가봤자 또 내려가고 올라가봤자 따지고 보면 평평한 곳에 약간 돌출된 부분이지 평평한 것이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성전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 성전은 만남의 조건의 장소이기 때문에 만남의 장소인데 조건이 하나 더 붙기 때문에 조건에 부합되지 않으면 주님의 만남의 장소에 들어설 수가 없습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궁금한 게 조건이 뭐냐. 여기는 율법을 수행하는 조건. 하나님 율법을 수행하는 조건이 충족되는 겁니다 이 성전에서. 만약에 율법 수행이 충족되지 않는 상태에서 만나겠다고 올라가다가는 조건에 의해서 차이게 되어있어요. 꺼져라. 율법도 안 지키면서 어디 건방지게 거룩한 하나님을 만날려고 하느냐.


그러면 율법을 지킨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은 두 가지로 되어있어요. 뭐냐 하면은 율법에서 십계명, 십계명은 지켜야한다. 그런데 십계명만 주신 게 아니고 십계명을 지키라가 어디에 포함이 되어있어요. 어디에 포함되었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제사법에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십계명이 안에 들어가요. 제사법 안에 장소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은 언약궤가 있고 언약궤안에 십계명 그 상자 안에 들어가요 이게. 상자 안에. 1m 15cm가로, 세로 57cm 높이 아카시아 금박 입힌 그 상자 안에 십계명이 들어가요. 들어갈 때 그 들어간 이 십계명이 어떤 십계명이냐 하면은 깨진 십계명이에요. 깨진 십계명. 십계명이 깨어져버렸어요. 아주 신비로워요. 지키라고 준 십계명이 인간이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깨진 겁니다. 계약이 깨진 거죠. 깨진 계약이 될 때 만남의 조건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깨어진 계약이. 계약이 깨어지면서 플러스 뭐가 붙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지정한 제물의 희생 피가 들어갑니다. ‘희생 피’. 그런데 이 희생 피는 희생물은 뭐냐? 조건이 있어요. 이게 뭐냐 하면은 흠 없는 조건이에요. 흠 없는 희생양이에요. 흠 없음과 깨어진 계약을 통해서 나타난 인간의 흠 있음과의 만남이 제사법이 되는 겁니다. 그 장소가 성전이에요. 성막, 지성소, 성전의 지성소 그게 만남의 조건입니다.


십계명부터해서 여러 가지 율법이 있지 않습니까. 율법을 주님께서는 위로부터 내려보냅니다. 내려보내서 이 이스라엘 전체를 모든 구석구석 생활하는데 있어서의 계명들을 쫙 줍니다. 오징어 먹지 말고 돼지고기 먹지 말고 전부 다 그거거든요. 염소새끼를 염소의 젖으로 삶지 말라 이런 것도 포함되겠지요. 그런 계명들이 쭉 이렇게 내려와요. 내려와서 한번 훑고 지나가게 되면 여기서 발생되는 게 뭐냐 하면은 ‘우리는 죄인입니다’가 돼요.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온전할 수 없습니다. 죄인이 되는 거예요. 율법의 촉수가 쫙 퍼지지요. 퍼져서 전체를 뭐로 만드느냐 하면은 계약이 깨어진 ‘흠 있음’으로 전환시켜요. 흠 있음으로 전환시키고 그래서 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백성들이 뭘 쳐다보게 되는데 만남의 조건 장소에서 활동하는 자들을 쳐다보게 되어있어요. 활동이 두 종류가 있지요. 여기 백성들은 자기의 생계와 생존을 위한 활동, 이들이 백성들이 하지만 특수한 지파, 레위지파의 특수한 활동은 생존에서 활동하면서 유발되는 죄를 씻는 활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 씻는 활동. 그러면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되는 거죠. 임금이 필요 없어요. 임금이 필요 없고 임금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임금이고 그 임금이신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만남의 장소에 위치하는 지파, 레위지파. 그 기능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본격적으로 핵심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제사장들이 활동하고 그 장소는 만남의 장소, 성전이 되는 겁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되시겠죠.


이스라엘이 이런 식으로 거룩한 제사장 나라고 출애굽기 19장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거룩한 제사장 나라라고 해놓고 또 하나 또 추가한 게 뭐냐 하면은 ‘언약의 나라’. 계약에 의해서 움직이는 나라. 언약의 나라입니다. 언약의 나라. 계약에 의해서 움직이는 나라. 이 계약은 누가 계약했을까요? 우리는 계약의 수여자, 일방적인 수여자이지 우리가 계약 작성자가 아닙니다. 이런 식의 구조는 인간의 머리에서 아이디어에서 짜낼 수 없는 거예요. 제사장 나라, 계약의 나라. 그 계약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천국이 만들어집니다. 천국이. 천국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과 경쟁하느냐 하면은 인간이 생각하는 미래의 자기 좋은 영광 얻는 나라가 인간 쪽에서 만들어낸 거고 진짜 실제로 천국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계약에 의해서 만들어진 천국이고. 천국이 이 세상에 두 종류가 발생되어버렸어요. 내가 호강하는 나라냐? 아니면 계약이 계약대로 이루어지는 나라냐. 그러면 진짜 천국에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은 내가 천국에 가고 싶다는 것은 계약 내용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돼요 계약 내용에. ‘나는 죽어서 천국가고 싶어요’라는 그 계약 내용은 없어요. 진짜 천국의 계약 내용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계약대로 되게 되면 그게 천국이라는 겁니다. 그 천국을 받아들이면 내가 소원하는 천국은 내가 일찌감치 접어야 됩니다. 포기가 돼야 돼요.


이걸 간단하게 말해서 나를 위한 나라는 천국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나라가 천국입니다. 따라서 천국 갈 사람은 삶 속에서 더는 나를 위해서 살지 않는 조건이 바로 천국의 조건인 것을 흔쾌히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요. 매사가 나를 위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일들을 일으켜주심을 일으켜주심을 감사합니다. 내 뜻을 이루지 않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내 뜻을. 그래서 우리 성도가 해야 될 기도는 똑같은 기도를 그냥 되풀이한다고 보면 돼요. 마지막 우리가 할 기도는 주기도문밖에 없어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 나라와 아버지가 되는 아들에게만 그 나라가 오게 되어있습니다. 두 개의 나라가 있다고 했지요. 인간 나라하고 천국 나라. 그러면 종말은 뭐냐? 종말은 천국의 구성요소와 백성들의 숫자가 다 차면 이 세상은 더 이상 뽑아낼 것을 뽑아냈기 때문에 이 세상이 필요치 않잖아요. 그게 바로 이스라엘에게 알려준 주님의 종말인 거예요. 종말. 쓸데없어서 제거하는 거예요. 건질 거 건졌으니까 이제는 찌꺼기는 지옥으로 쓰레기통에다가 보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종말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죠. 마땅한 거고. 종말을 기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어요? 평소에 자기를 위한 세계는 마땅히 진작에 이게 없어져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한테는 마지막이라 하면 아 숨 쉬는 끝 다 됐구나. 아 지긋지긋하게 긴 시간 이제는 드디어 끝을 보는구나! 너무 가볍게 종말을 맞이하는 거예요. 가볍게.


아까 여러분들 21장 5절부터 38절까지 읽어보라고 했지요. 읽어보니까 뭐 더 가벼워졌어요? 너무 가벼워서 성경 보면 막 뽀뽀하고 싶고 그래요? 주님 이 말씀 안 줬으면 내가 무거운 짐이 있는데 드디어 내가 기거하고 살아온 이 동네하고 내가 헤어질 순간이 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남양주에 살던 어디에 살든 뷰 좋은데 살던 간에 나하고 그게 무슨 상관있는데 그게. 이제는 제대로 빠이빠이할 때가 이제는 오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성경에서는 이제 종을 편하게 놓아주시는구나. 종을 편안히 놓아주시는구나. 평소에 그렇게 되려면 나를 위해 사는 그 지긋지긋함 더는 나를 위해 살고 싶어도 소용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데 주께서 나를 위해 사는 이 무거운 짐을 주께서 덜게 하시는. 그만 네 인생에서 네가 이제 손 떼도 괜찮다. 내가 알아서 해결해줄게 그 순간이 바로 종말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이제 우리가 여러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는데요 “그럼 종말에 누가 들어갑니까?” 라는 그 질문도 여러 가지 질문 중 하나입니다. 종말은 언제가 종말인데요? 2025년도인가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은 거예요. 종말에 들어갈 사람들, 종말이 언제냐 하는 그 점을 설명할 때 적절한 예가 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은 중화요리집에서 나오는 코스요리를 보면 돼요. 코스 요리의 특징이 있어요. 음식 한번 나올 때마다 접시를 비웁니다. 그러니까 접시에 음식 조그맣게 나오잖아요. 접시 나올 때 마다 접시 이름이 종말1, 종말2, 종말3 이렇게 보면 돼요. 접시를 보내놓고 이걸 비우는 겁니다. 2024년도에 종말 간 사람은 작년에 갈 사람은 작년에 접시를 줘가지고 자기 것을 비우고 그리고 2024년도에 구원받을 사람은 새로운 또 다른 코스요리를 준비해가지고 코스를 딱 준비해요. 탕수육 조금. 팔보채 약간. 이렇게 해줘가지고 이거 후딱 비우면 접시 나갈 때 따라 나가면 돼요. 접시 나갈 때. 접시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니까. 주께서 그때그때마다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을 그때그때마다 계속해서 모집하는 겁니다.


그런데 코스요리에서 마지막이 뭐냐 하면은 짬뽕 드실래요? 짜장면 드실래요? 이거 마지막이에요 이게. 이제 접시 안 와요. 그 다음부터는 계산하고 빨리 나가라는 거예요. 마지막은 짬뽕 드실래요? 짜장면 드실래요? 그게 마지막이죠. 그런데 미리 접시를 먹은 사람은 짬뽕 짜장면 그것까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자기는 뭐 빈 접시 먹었으니까 이미 합격했으니까 남이 합격되고 안 되고 그런 걱정을 왜 자기가 해요. 2078년도에 누가 구원받을까? 그걸 네가 왜 걱정해. 2078년 올지 안 올지 너는 네 할 일 하세요. 2078년도에 2096년도에 누가 구원받을까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 나라와 그 때는 네가 신경 쓰지 말라는 거예요. 그건 천사도 몰라. 그건 아버지가 알아서 하실 거야. 이게 바로 현장성이라고 해요. ‘현장성’. 지금 하나님의 현장이 나한테는 마지막 내민 코스요리 접시에요. 우리 자신을 나를 위한 나를 그 접시라는 하나님의 계약서에다가 하나님의 계약에다가 죄인의 모습으로 그 죄 사해주는 그 희생의 피에 합류하면 되는 겁니다. 넘기면 돼요. 그때그때 넘기면 되는 겁니다. 현장성이 중요한 거예요. 남의 인생까지 걱정하고 이럴 필요 없어요. 아버지 치매 걸렸는데요. 아버지가 문제지 내 문제 아니지. 그 현장성, 그 시점에 주께서 주신 이 모든 조건은 종말의 조건이에요. 어떻게 아버지 나으셔서 행복하게 산다 그건 종말 아니잖아요. 그건 내 혈통과 내 자존심, 내 자부심을 위해서 세상을 사는 거지 나를 위한 그것은 안돼요. 그건 게워내야 돼요. 토해내야 돼요. 일종의 코스요리로 보시면 되는 겁니다.


내일 주님 온다고 할지라도 그건 내일까지 살아봐야 되는 문제고 중요한 것은 오늘 주께서 내민 계약서가 뭐냐 이것만 생각하면 돼요. 그 계약서의 마지막, 다른 말로 하면 마지막 계약서. 마지막 계약서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몸에서 나온 피죠. 피와 살입니다. 그러면 성전이 있잖아요. 성전, 산, 시내산, 이스라엘 공간 이런 것은 뭡니까? 앞에 있던 코스이기 때문에 이건 다 무효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21장 5절에 어떤 사람이 성전을 보고 할 때 예수님께서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진다. 이게 다 무너진다는 거예요. 이 말을 어떻게 해야 돼요? 그 당시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은 아이고 아까워라 이러잖아요. 아까워 할 문제가 아니고 고마워해야 될 문제지요. 아! 건물이 있었고 건물에서 양 잡고 소 잡는 것은 이게 옛날 방식은 이제는 그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마지막 방식이에요. 마지막이에요. 이 성전 했던 것은 마지막이단 말이죠. 그 중국 무용단이나 북한 무용단이나 쇼하는데 마술 비슷한 쇼가 있어요. 뭐냐 하면은 1초 만에 옷 갈아입는 쇼. 옷 바꿔 입는 거 있죠?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은 진짜 저 무용수가 제일 마지막 입는 색깔이 무슨 색깔이냐? 마지막. 마지막 계약은 예수님의 십자가거든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마지막이기 때문에 이것을 아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식으로 예배하거나 제사하는 것은 이게 다 무슨 식이 됩니까? 이게 예수님이 이미 완료가 된 이상은 이 계약은 벌써 옛날 계약. 없어질 계약이라는 사실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무너지는 징조가 보일 때에 굉장히 기뻐하고 감사하죠.


옛날 계약의 특징이 뭐냐 하면은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것. 성전 있지요. 성전 짓는 것 돌 쌓으면 되겠지요. 성전 제사할 때 양 들고 오고 염소 들고 오고 인간이 할 수 있지요. 양 들고 염소 들고 할려면 여기 제사장들 월급 줘야 하잖아요. 월급 주면 그들이 뭐합니까? 헌금하겠지요. 헌금 인간이 할 수 있잖아요. 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예요. 선교, 전도 다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거예요.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것은 더는 이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단독으로 했기 때문에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가짜입니다. 찬양한다라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가짜가 돼요. 찬양한다는 것, 헌금한다는 것, 전도한다는 것, 봉사하는 것 모조리 다 가짜입니다. 그거는 옛날 계약이에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계약에서 우리 앞에서는 마지막 계약을 흔쾌히 기뻐하는 자의 자세는 뭐냐? 나는 못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못합니다. 이 자세로서 마지막 계약 앞에서 서면 되죠. “나는 못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 뭐라고 하겠어요? “사람은 할 수 없지.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내가 했다.” 이렇게 함으로서 계약의 작성부터 해서 싸인 완성은 인간이 아니라 주님 홀로 하셨다는 것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러면 그 앞에서 자연적으로 우리는 뭐냐? 내가 못하잖아요. 안 했잖아요. 이건 뭘 뜻하느냐? 애초부터 나는 나에게 종말이었다. 애초부터 나는 종말이었다. 내가 나에게 전혀 소용없는 존재였다. 그걸 아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내가 나에게 아무짝도 소용없는 인간이었다.


그럼 이것은 요한복음 12장 25절에 보면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고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보면 자기를 부인하는 거예요. 마태복음 16장 23절에 보면 그동안 나는 사탄과 단짝이었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네가 사람 일을 하는구나. 사탄아 물러가라. 예수님이 베드로 보고 사탄아 물러가라 했어요. 그동안 우리는 마귀와 단짝이었던 거예요. 마귀와 단짝인 것을 욕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제는 속이 다 시원하다 이렇게 느껴져야 돼요. 그동안 단짝이었는데 주님이 개입해서 이제는 네가 내 안에 들어있었어? 발견하는 거예요. 눈이 열려가지고. 네가 내 안에 들어있었단 말이지? 그래서 네가 나보고 헌금해라 전도해라 예배드려라 찬양해라 선교해라 계속 부모한테 효도해라 나라에 충성하고 계속 네가 나한테 선한 일을 해야 한다고 네가 계속 시켜왔던 게 너였어?!! 오늘 제목을 ‘너였어?’ 할까. 너는 너를 포기하면 안돼. 너는 너를 지키는 자야. 네가 너를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도 너를 도와줄 사람 없어 라는 말이 다 악마가 내 속에서 나한테 그런 식으로 나를 아주 도와주는 식으로 나한테 그렇게 한 거예요. 다시 말해서 우리는 악마가 우리 편에 서있는 것처럼 이렇게 말해요. 절대로 너는 종말의 희생자가 되면 안 된다는 식으로. 다른 사람은 종말에 가도 너만큼은 구원돼야 된다고 마귀가 우리한테 그렇게 속여온 거예요. 종말이 되니까 이러한 본색이 드러난 겁니다. 그동안 나는 나를 지키는 계획만 세웠다는 것.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어도 사실은 하나님, 예수를 믿은 게 아니고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결사적인 몸부림으로 교회를 다니고 성경공부를 한 거예요.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래서 주님의 종말은 바로 그걸 공격하는 거예요. 25절에 어떤 사람이 성전을 가리켜 할 때 미석은 아름다운 돌이에요. 아름다운 돌이 뭐냐 하면은 이게 아름다운 물건이고 귀한 마물이에요. 그만큼 인간이 마지막으로 잃어버리기 싫은 것,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마지막 지키고 싶은 것 그 지키고 싶은 것을 주님의 마지막 계약이 그걸 공격하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마지막 지키고 싶은 게 뭘까요? 뭘까요? 우리 자신에게 마지막 지키고 싶은 게 뭘까요? 우리가 이렇게 있다면 여기서 복음이고 말씀이고 외치잖아요. 하면 우리는 마중 나와서 믿습니다 지키겠습니다 하잖아요. 그런데 복음 말씀이 그냥 마중 나온 걸로 머물지 않고 깊숙이 들어와요. 깊숙이 들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내빼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이 자아가 도망가요. 어어~~여기까지만 합시다. 그럼 더 밀고 들어와요. 그러면 우리 속에서 뭐냐? 어떤 비명 같은 것이 들려요. 안돼~~~~!!안돼 가 나와요. 이것만큼은 손대시면 안 되십니다. 그럼 나 죽어요 정말 내가 살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만큼은 어떻게 좀 지켜달라는 거예요. 엘리사 엘리야 보면은 사렙다 과부 엘리야, 수넴 여인 엘리사. 엘리사 엘리야가 공격한 게 있어요. 뭐냐 하면은 도움 받는 쪽이 자기가 평소에 지켜왔던 것이 폭로당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아들이 있는 그 사람은 아들이 죽고 아들이 없던 자에게는 일부러 아들을 주고 준 아들 죽여버리고. 그러니까 그 도움 받았던 그 사람들이 엘리사 멱살을 붙잡고 달려들지요. 누가 도와달라했어요?! 왜 멀쩡한 내 아들 왜 죽입니까?! 내 아들 왜 죽입니까. 여기서 우리가 끝까지 지키고 싶다는 것이 있다는 것이 드디어 들통납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혈육. 나의 자식입니다. 나는 죽어도 내 DNA가 남아있는 것은 내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자식이 아무리 말썽쟁이 자식이 아무리 투자해서 다 날렸다 하더라도 끝까지 내 자식 귀하고 지켜주는 것은 어미. 어매~~~하는 노래 있잖아요. 어머니가 네 잘못 하나도 없다 다 이 어미 잘못이다. 교도소 면회가가지고 다 내 잘못이다. 너 먹고 싶은 거 뭐 있어? 추운데 내복 넣어줄까? 구치소에 가 가지고 다 내 잘못이다 네 잘못 아니다. 엄마가 책임지고 너 지켜줄게. 걱정하지 마라. 인간이 마지막 지키고 싶은 것은 자기 혈육입니다. 나는 죽어도 자식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게 하는 것은 자식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에게 그 자식을 바치라고 하죠. 정말 잔인한 하나님이에요. 좐인한. 잔인 아니고 좐인한. 아주 잔인해요. 그것보다 더 잔인한 것이 하갈이 자기 자식 이스마엘을 지키는 거예요. 자기가 하는 것은 괜찮아요 그런데 어린 이스마엘이 쫓겨나가지고 물 없을 때 간절히 기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해요. 하나님 내 자식 물 없는데 먹을 것 달라고. 모정의 세월. 우정의 무대에요. 여기 어머니가 와계신데 자기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와보라고 하면 우르르르 나오지요. 우정의 무대. 하갈이 이스마엘에게 퍼붓는 마지막 애정. 하갈, 이스마엘 하나님께서 복 내렸어요? 안 그러면 저주했어요? 천국 갔습니까? 지옥 갔습니까? 지옥이죠. 지옥 간 사람은 어떤 경우도 자기 혈육을 포기를 못합니다. 엄마의 사랑으로 지켜줘요.


이걸 보게 되면 부모가 엄마가 자식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비계약적이고 하나님의 뜻에 대드는 하나의 요건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것. 자식은 부모 사랑 안 해요. 인간 세상의 특징은 내리 사랑이죠. 올림 사랑이 없어요. 아무리 부모가 자식한테 잘해줘도 자식은 엄마의 사랑을 이해 못합니다. 그래서 엄마들이 자식 보고 하는 말이 너도 장가가서 시집가서 애 낳아보면 내 마음을 알거다. 그래도 몰라요. 그래도 모릅니다. 인간은 출발점이 자기 존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자기 존재 이전에는 어떻게 알 수가 없어요.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거예요. 이게 하갈과 이스마엘이 보여준 겁니다. 어줍잖게 부모 사랑, 형제 사랑으로서 천국에 들어갈 생각하지 마라 이 말이죠. 오히려 그것이 장애가 되고 방해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부모 사랑하지 말고 자식 사랑하지 말라는 뜻입니까? 그게 아니고 인간은 못해낸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약은 애초부터 천국은 네가 협조해서 될 나라가 아니고 협조 안 해도 되고 협조할래도 할 수가 없는 나라가 천국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뭐냐? 내가 열심을 냈던 나의 세계가 허물어지는 그것을 네가 반겨야 된다는 겁니다. 그걸 기뻐해야 된다는 거예요. 율법에서 종말이라는 것은 종말이 아예 내재되어 있는데 종말은 바로 안식일을 종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안식일을. 일하지마 일하지마 이거에요. 하지 마. 너희들이 일해서 천국 만드는 거 아니니까 너희들이 끼어들지마. 일하지마. 그래서 안식일을 인간이 지켜서 안식일 되는 게 아니에요. 성전의 일이 완료가 되면 이게 영원한 안식이 되는 겁니다. 성전, 공간 문제거든요. 안식일은 날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성전의 일이 마감이 되면 그날이 영원한 안식이 되는 겁니다. 공간과 시간을 하나님을 위한 공간 하나님을 위한 시간을 이렇게 같이 연결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 이 만남의 장소 성전이 상당히 중요하고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핵심신학이 뭐냐? 딱 두 가지에요. 하나 더 하면 세 가지 되지만 성전의 성전 중심, 안식일 중심, 세 번째 추가하려면 할례. 할례를 행하는 것. 이 세 가지로서 유대교가 성사됩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교는 우리들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전의 제사고 우리들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안식일 중요시 여기고 그 다음에 할례를 행하는 것. 이것만 있으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유대민족을 마지막 때 살린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 아까 우리가 공부한 것처럼 예수님 홀로 다 했잖아요. 이제 공격이 남아 있잖아요. 뭘 공격하겠습니까? 이방민족에서는 자식이 중요하지만 유대민족에게는 자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세 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성전 공격하고 주님께서는 안식일 공격하고 주님께서는 할례를 공격하는 겁니다. 네가 몸의 할례 한다고 거룩한 게 아니라 마음의 할례 해야 돼. 안식일, 안식일은 너희가 노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와서 일하는 날이 안식일이야.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야. 성전, 너희 건물지은 게 성전이 아니고 내가 죽었다가 부활한 내가 성전이야. 그렇게 이야기되어버립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미 성전이고 안식일이고 예수님의 십자가 세례를 할례의 완성으로 보거든요. 고린도전서 2장 11절에서 16절까지. 이미 완성이 되니까 더 이상 이런 것들이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것들이 하나도 소용이 없게 되었어요. 소용이 없게 되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필요가 없어요. 홀가분한 거예요.


인간이 자신이 해내는 것을 인간이 믿습니다. 인간이 믿거든요. 인간이 자신이 해내는 것을 믿어요 인간은. 그런데 종말이 되게 되면 주님이 다 했기 때문에 뭐부터 공격하느냐? 인간이 해 낼 수 있다는 것을 공격할 때 그 때 공격당함을 기뻐하는 사람이 바로 천국에 들어갈 사람입니다. 내 힘으로 못 버리는 것을 주께서 무의미하게 만들어 주시는 그러한 일이 내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주님의 그 능력이 이제는 내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내 안에 들어와서 내 안에 담긴 귀한 것들을 전부 다 없애버린다는 거예요. 이방인들은 자기 자식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그러면 유대인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은 자기 구원입니다. 자기 구원. 이 자기 구원을 주께서는 공격합니다. 나는 구원 받아야지를 공격해요. 나는 구원 받아야지를. 그러면 자기 구원을 주님이 공격한다고 가르치는 교파가 이 세상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없어요. 뭐 대표적인 교단 보세요. 워치만 니의 지방교회, 신천지, 여호와 증인 전부 다 공통점이 뭡니까? 마지막에 그들이 주장하는 성경구절 막 대고 해도 마지막에 이야기하고 싶은 건 뭡니까? 이렇게 이렇게 하시면 당신은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하는 거예요. 침례교도 마찬가지고 기존의 장로교도 마찬가지고 천주교도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으로 생긴 모든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고 거부당하는 식으로 이 세상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구원받지 않으면 자기가 그동안 했던 모든 신앙생활이 허사로 끝나는 것을 겁을 내요. 그래서 종말이라는 말을 싫어해요. 왜냐 하면은 자기가 자기를 지키는 모든 계획이 무산되기 때문에 그게 싫은 겁니다. 자기가 지키고 싶은 게 있기 때문에 종말을 싫어하는 거예요. 그럼 종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가 좋아하느냐? 누가 종말을 좋아하느냐 하면은 세리와 창기. 그리고 덧붙인다면 강도. 에이 이왕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 이미 망가진 것 같이 망해버리자. 여기 성경에 또 나오잖아요 문둥병자, 소경, 절룩발이, 가난한 자, 이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은 자력으로 일어설 희망이 없어요, 이들의 특징이. 자력으로 일어설 수 있는 어떤 희망의 여지가 전혀 없어요 이들의 특징은. 그럼 세리, 창기 이들은 뭐냐? 왜 이들에게 주님께서 복음을 주시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주느냐. 이게 하나의 마지막 때의 징후, 징조 증상으로 사용하시는 거예요. 증상으로 이들을. 사람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예수님 보고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붙여줬어요. 아니 노는 것도 좀 수준 있게 놀아야지 전부 다 지지리 궁상들하고 놀고 너희 선생은 원래 그래? 이러거든요. 왜 인간의 값어치를 높이는 향상시키는 노력을 하든지 도를 닦든지 해야지 어떻게 망가진 사람하고 해서 이들에게 얻을 게 뭐가 있다고 이들하고 노느냐 하는데 얻을 게 없어서 놀아요. 주께서 찾아온 이유가 나한테 더는 얻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오지요. 마음 놓고. 볼 게 없고 건져갈 게 없기 때문에.


이들이 마지막이 마지막다운 존재. 이들은 마지막에 마지막다운 존재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갈 때까지 다 가본 자들이에요. 특히 여기 간음한 자까지 포함해서. 마지막 때까지 다 건 거에요. 부자 앞에 있던 거지 나사로. 그리고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세리. 엎드려서 나는 죄인이라서 내가 내세울 어떤 의도 없나이다. 그냥 엎드려. 감히 하늘을 볼 자격도 하나님을 말할 자격도 없습니다. 내가 주님의 이름을 부를 자격도 안 됩니다. 주님의 이름 아껴 불러야죠. 아껴 부르죠. 함부로 부르는 게 아니고. 유일하게 나를 제대로 아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내가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폭로시키는 분이 우리 주님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육신의 부모들은 자꾸 격려하려고 하고 친한 친구들은 자꾸 위로하려고 하는데 위로 격려가 없어요. 그거는 내 존재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죄인은 죄인다워야 되지요. 아까 제가 출애굽 할 때 뭐했습니까? 율법으로서 쭉 훑어가지고 뭐를 끄집어낸다? 죄를 끄집어내고 어디와 합류한다? 성전 가운에 있는 피 흘림, 제물의 피 흘림에 거기에 합류시키는 거죠. 그게 제사장 나라에요. 이스라엘 출애굽이 제사장 나라에요. 세리와 창기 이런 경우는 뭐냐? 도무지 버틸 게 남아있지 않는 존재. 도무지 버틸 게 남아있지 않아요. 배 12척이 남아있을 게 아닙니까. 배 12척도 홀라당 다 날라가버렸어요. 배 12척 있으면 노량대전에서 한바탕 붙을만한데 배 12척도 다 침몰되고 없어요. 뭐 개코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내놓을 게.


어떤 개척 교회하는 목사의 고백인데요. 이런 고백을 했어요. 개척 교회하는데 교인들 왔는데 점심을 같이 하면서 교제를 나누고 싶은데 제목이 국수는 누가 삶을 거냐? 하는 거예요. 소는 누가 키울 거냐와 같은 취지거든요. 국수는 누가 삶을 거냐? 그걸 놓고 개척교회가 회의를 했답니다. 회의를 했는데 회의한 내용이 참 어처구니없어요. 국수를 삶아서 같이 먹으면서 친교하자 라고 하는데 목사가 반대하고 나선 거예요. 왜냐 하면은 국수를 하면 일회용 용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환경오염이 된다는 거예요. 아 정말 아직도 의로운 게 있어요. 될 수 있는 대로 지구 환경을 지키자. 일회용 용기를 사용하려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국수 삶는 것 그만두자. 지금 나 혼자 웃는 거 아니지? 이게 보통 웃을 일이 아니에요 지금. 어떤 행동과 말을 하면서 아직도 자기가 의로운 쪽에 있다는 여운을 계속 그것을 여운을 남기고 그것을 포기를 못하고 있어요. 성도는 항상 행동이나 말을 통해서 마지막이 섞이는 답변을 내놔야 해요. 마지막이 섞이는. 내가 주께 내놓을 것은 nothing,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행동 말 안 해도 태도를 통해서도 그걸 내놔야 돼요. 그걸 내놓을 수밖에 없어요. 내가 자랑할 것은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계약은 이미 주께서 다 이루셨다는 거예요.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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