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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31 04:07:27 조회 : 96         
광주강의20240329a 요한복음 19장 33절(몸이 다르다)-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하림(IP:219.251.37.139)
광주강의20240329a 요한복음 19장 33절(몸이 다르다)-이 근호 목사


오늘은 p.44【무엇이 계시인가】비중 있는 주제죠. 전체를 포괄하기 때문에 담긴 내용의 무게감이 상당할 겁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 계시에 대해서 성경에서 요약하게 되면 간편해요. ‘계시는 예수님의 몸이다’ 간단하잖아요, 말씀이 육신이 되었으니까.

여기서 이제 확장해보는 거예요. ‘계시는 예수님의 몸이다’ 이 내용을 늘이면 ‘인간에게 찔리신 몸이다’ 이게 계시가 돼요. 인간에게 찔리신 몸이다. 그럼 인간에게 찔리지 않은 몸은 계시가 아니죠. 계시란 하나님의 뜻이거든요. 계시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만약 계시가 없다면 이 세상은 인간들의 의견과 인간들의 생각들을 종합해서 인간들이 인간세계를 꾸려나갈 거예요. 계시가 없으면. 그러니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드러나니까 비로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시가 개시된 거죠.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게 된 겁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계신다(존재하신다).’가 성립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몸이 등장했을 때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가 되는 게 아니고, 계시의 궁극적인 끝은 인간에게 찔리신 몸으로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의 뜻에 의하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포함되어야 돼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찔리신 몸이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장 7절에도 그런 말씀 나오죠.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렇게 되어 있죠.

예수님의 재림이 주는 취지가 뭐냐 하면, 예수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 분은 메시아냐 아니냐는 모든 논쟁 자체가 더 이상 성립 안 됩니다. 재림 때 모든 자가 그 분을 보기 때문에.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실 때 예수님이 계셨던 그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봤습니까, 안 봤습니까? 봤죠. 봤는데 그들이 내린 결론은 뭐냐? 예수님을 찌른 것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굳이 나서서 목숨 걸고 반대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뭐니 뭐니 해도 중요한 것은 이거에요. ‘찔리심’. 그것도 누구한테? 인간에게 찔렸다는 거예요. 인간에게 찔렸다. 에이, 죽어라 하고 찔러버렸다는 거예요. 그럼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인지 답 딱 나왔죠. ‘나는 여기 있다’로 규정하면 안 되고 ‘인간은 오신 하나님을 찌른 자’, 바로 이게 인간인 겁니다.

오신 예수님을 찔러버린 자들을 인간의 원형 또는 인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든 인간이든 다 같이 합쳐서 하나님의 계시에 통합이 되는 거예요.

오늘 p.44【무엇이 계시인가】지금 이 대목을 하고 있습니다. 자, 무엇이 계시인가? 이 점에 대해서 인간들은 정답 알기를 원하죠. “무엇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거기에 대한 답변을 하게 되면, 너. 네가 너를 아는 게 계시가 되는 거예요. 너 자신을 아는 것이.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궁금해 했던 것. 소크라테스는 결국 몰랐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궁극적으로 안 게 뭐냐 하면 인간은 소경이라는 것, 그거 하나 알았어요. 인간은 소경이다. 그러면 플라톤이 제자니까 “선생님, 인간은 왜 소경입니까?” 분명히 이렇게 물었을 거 아니에요. 인간은 왜 소경입니까. 소크라테스 답변은 “인간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보니 소경이다.” 이렇게 된 거예요.

아, 여기서 모순점이 등장해요. 인간은 내가 모든 것을 알 수가 없는 소경인데 아무리 소경이라도 생각해보면 내가 소경이라는 걸 안다는 점에서는 그것까지는 완전한 소경이 아니다,가 되어버려요. 완전한 소경이 아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 그게 철학의 기본이거든요. 사유하고 사유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보면 인간은 아, 아는 게 없다, 이런 거. 어떤 의미에서는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그게 전부가 되겠죠. 그런 점에서 유대인들이 그러한 이방인, 헬라인,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철학가보다 훨씬 위대하죠. 그들은 메시아를 죽였으니까요. 찔렀으니까.

아까 요한계시록 1장 7절에 의하면 주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 재림의 취지라 하는 것은, 전에 말씀이 육신이 되었던 마리아 몸에서 태어난 그 당사자하고 재림하는 당사자가 똑같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게 재림의 취지거든요. 똑같다.

그때의 예수님이나 재림하는 예수님이 똑같다면 그럼 예수님 몸에 일어났던 변화 있잖아요, 찔림을 받는 이 변화를 통해서 자기 자신이 누가 진정한 나인가를 아는 것은 누구 몫이에요? 인간들이 알아야 되겠죠. ‘인간들은 자기를 창조한 하나님에 대해서 찔러 죽인 장본인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 점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계시다(존재한다)’가 된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가 돼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찔렀으니까. 나는 존재하고 예수 당신은 존재하지 마! 하고 찔렀으니까. 이 존재싸움에서, 우리는 있어야 마땅하고 너는 죽어야 마땅하다는 인간나라의 존재싸움에서 예수님은 없어져야 될 대상이 되니까 존재는 누구만 있어야 된다고 고집합니까? 인간만 존재해야 된다는 걸 고집한 거죠.

그런데 그 예수님이 재림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존재할 가치가 없이 됐죠. 인간은 존재할 가치도 없는 게 인간들이 메시아에 대해서 그렇게 비난하고 찔렀다면, 그래서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가 존재하느냐? 여기 누가 존재하느냐 하면 악마가 존재하죠. ‘악마가 존재한다.’ 그럼 인간은 한시적인 임시적 존재죠. 안개 같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거고 영원히 남아있는 것은 악마가 존재하는 겁니다.

그러면 여자의 후손의 적은 인간이 아니고 누가 적이죠? 뱀의 후손이 적이 되는 거예요. 인간세계에서는, 예수님은 인간 손에 죽었으니까 예수님은 없어졌다. 그리고 악마는 원래부터 눈에 안 보이니까 없다. 인간세계에서는 맨날 뭐만 있어요? 같은 인간들만 있겠죠.

배후에 악마가 인간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죽이라고 했기 때문에 여기서 ‘계시란 무엇인가’ 이것은 ‘반대되는 계시는 무엇인가’하고 같이 겸해서 설명되어야 돼요. 계시에 반대되는 것. 계시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몸’이라 했죠. 그럼 이 계시에 반대되는 건 뭐겠습니까? ‘인간의 몸’이 되겠죠. 인간의 몸.

고린도후서 5장 15절에도 나왔지만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성도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을 위해 살게 하려 함이라”고 되어 있죠. 그러면 인간이 내세우는 계시는 뭐냐? 누구를 위하여? 자기 몸을 위해서. 자기 몸을 위해서 사는 것. 하나님의 계시에 반대되고 대적이 되는 그것을 인간들은 날마다 뿜어내죠. 생각이라든지 아까 소크라테스도 그렇고 이 모든 것은 계시 곧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것을 꾸역꾸역 계속 토하고 있고 제시하고 나타내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하나의 예를 들 테니까 여러분 답변해보세요. ‘토끼가 깡충깡충 뛰고 있다’ 이걸 토끼가 이야기합니까, 아니면 누가 이야기합니까? 토끼를 지켜본 인간이 이렇게 이야기하죠. 토끼는 본인이 깡충깡충 뛴다고 이야기 안하죠.

인간에게 있어서 계시라 하는 자체가 ‘계시가 무엇입니까? 계시를 따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합니다.’ 이것은 누가 지어낸 거예요? 계시에 반대되는 인간의 몸이 자기 몸을 사수하기 위해서 지켜내기 위해서 계속 영원토록 존재하기 위해서 인간은 질문을 던지고 궁금해 했던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신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진리하고는 상관없는 게 아니고 상관있어요, 있는데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게 신학이라는 겁니다. 신학 또는 성경공부도 해당되죠.

이제 정리가 됐죠. 계시는 이 땅에 나타날 때 그냥 예수님 몸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반대되는 계시와 부딪치고 충돌하면서 계시가 성공을 해요. 계시가 어떻게 성공하는지를 이제부터 보겠습니다. 계시가 무슨 수로 이렇게 성공하는지.

요한복음 19장을 잠시 한번 봅시다. 요한복음 19장 32절에 보면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이렇게 되어 있죠. 십자가 달릴 때 그 현장에 세 사람 있었습니다. 세 사람이 있는데 두 사람은 뭘 꺾었습니까? 다리를 꺾었어요. 두 사람은 다리를 꺾었습니다. 꺾는 이유는 이 사람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를 최종 확인하기 위해서 다리를 꺾어버려요.

그런데 이상하게 순서가 두 사람부터 먼저 꺾었어요. 그리고 꺾어야 될 대상으로 예수님이 세 번째 들어갔어요. 두 강도는 다리가 꺾였는데 세 번째 예수님의 다리는 꺾으려 하다가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았어요.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다리 꺾는 로마 병사들 입장에서 그들은 세 명의 사형수를 죽이는 데에 성공했습니까, 실패했습니까? 그들은 세 명이 죽었다고 보고할 때 “한 명 살았습니다.” 이러지는 못하잖아요. 세 명 다 죽이는 데 성공했죠.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것은 예수님을 실패자로 만들기 위한 거예요. 자기들의 판정과 판단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생각과 자기 생각이 반대가 될 때에는 자기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실패자로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인간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게 뭐냐 하면 자기가 죽는 거예요. 죽는 걸 가장 부끄러워해요. 나 죽는다~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에요. 그저 악착같이 살아야 되거든요. 그게 육인데 육은 이렇게 보면 돼요. 육이라는 것은 그냥 쉽게 인생의 바닥이라 보면 돼요. 그러니까 성경을 해석하든 뭐를 하든 항상 바닥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제가 어릴 때 국민학교 때부터 주위에 노인네들이 그렇게 많았어요. 노인네들이 많아서 그들을 관찰 안할 수가 없었어요. 그들이 말하는 거 생각하는 거 쭉 들으면서 무엇이 궁금했느냐 하면 어른들은 하루 스케줄을 어떻게 보내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돈을 버는지가 궁금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거예요. 하루를.

그런데 제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들이 돈 버는 건 잘 모르겠고 다만 그들의 시간이 남아돈다는 것은 제가 계속 느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내가 만난 어른들, 40대, 50대, 60대 그 어른들, 30대도 어른들이죠, 특징이 지금 보니까 하층민들이었습니다.

별 직업도 없고 시간은 남아돌아서 옷차림새부터 해서 시간을 어떻게 때울까 애쓰는 거. 들어보면 전부 다 쓸데없는 자기 과거이야기하고 쓰잘떼기 없는 소리들을 해요. 그래서 어릴 때는 ‘아, 어른 되면 저렇게 들어도 아무 소용없는 저걸로 소일하는구나.’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서민층, 하층민들 말고 좀 산다는 사람들은 시간이 바쁘다는 사실을 이제 어른이 되고 보니까 알게 된 거예요.

아, 내가 만난 사람들은 중간치도 못되는 사람들이었구나. 중간치도 못되는 사람들이고 정말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바쁜 사람들이구나. 그런데 그 사람들, 지금의 하층민들, 서민들의 이야기를 쭉 제가 많이 들었잖아요. 지금도 가다가 그런 사람들 보면 옛 생각이 막 일어나는 거예요. 옷 허름하게 해서 담배 피우고, 옷 매무새가 정돈되지 않은 거 보니까 옛날 내가 만났던 그 어른들하고 똑같은 모습인 거예요.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육을 그냥 바닥 채 다 보여주는 거예요. 육을 바닥 채 보여주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정리를 하죠. ‘사는 게 성공이다.’ 그들이 잡담하면서 하루 온종일 이야기하는 주제가 뭐냐? 살아남는 게 성공이다. 살아남는 게 성공이라는 겁니다. 죽으려 하니까 무섭고 또 살라고 생각하니까 불안 불안하고.

그러면 ‘살아남는 게 성공이다’ 앞에 뭘 하나 붙여야 돼요. ‘잘 살아남는 게 성공이다.’ 그럼 잘 못사는 지금은 실패가 되겠죠. 이 실패를 한번 분석해보면 실패 안에 ‘이렇게 살다 나 죽는다.’가 포함되어 있어요. 아, 인간은 죽는 것이 제일 실패고 그 실패를 인간은 부끄러워하는구나. 그걸 자랑스러워하지 못하고 굉장히 부끄럽게 여기는구나. 그걸 무서워한다는 사실이 지금 와서 이렇게 정리가 되죠.

그럼 ‘잘 살아남는 게 성공이다’ 이것이 인간의 몸에서 나온 계시가 되겠죠. 인간의 몸에서 나온 계시가 되는 거예요. 인간이 예수님을 왜 죽였습니까? 실패하기 싫어서 죽이는 거예요.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자기가 기대하고 있는 자기 몸에서 뿜어 나오는 그 계시의 내용과 맞질 않아요.

요한복음은 조금 이따 보고 누가복음 14장 봅시다. 누가복음 14장 26절,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런 말을 누가 했어요? 예수님이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죽어 마땅하죠.

우리가 시작을 바닥부터 해야 돼요. 육으로부터 해야 돼요. 육은 뭐라고요? 살아남는 거죠. 어쨌거나 이러거나 저러거나 지저분하거나 말거나 어쨌든 살아남아 있다면 여태껏 나는 나름 성공한 것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싶은 거예요. 인간의 머릿속에는 살아남는 것뿐이에요, 그냥. 그게 전부라니까요. 그게 내 몸의 계시에요. 이 몸은 다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몸은 죽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왜 죽으면 안 되는데? 그건 묻지 말라는 거예요.

그리고 27절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십자가라 하는 것은 그 당시에 죄수들을 매다는 형틀이었어요.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죄수로 간주하고 죄인으로 간주하고 ‘나는 이미 죽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러고 난 뒤에 나를 따라오라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예수님이 하니까 예수님께서 맞아죽은 거예요.

그리고 33절에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 어르신들 공원에서 놀고 있고 나도 꼬마니까 무슨 이야기하나 듣고 있는데 그 어른 가운데 어느 어른도 나한테 ‘자기 모든 소유를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면 영생을 얻는다.’ 그런 이야기한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어쨌든 간에 사기를 치든지 뭘 하든지 뭐 비트코인을 하든지 주식을 하든지 하나 쥐고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뿐이었어요. 야 참, 어른들 살려고 애를 쓰는구나. 어른들이라 하는 것은 결국 계속 살려고 살려고 애쓰는 그게 어른 일이구나. 그때 꼬마인 나는 그냥 집안에서 먹고 살게 해줬기 때문에 거기에 끼었죠. 만약에 내가 어른 되면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그 외에는 다른 일이 없는 거예요. 그게 어른이 되는 길이고 어른이 보여주는 자기 몸의 계시가 되는 거예요. 다른 계시는 없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27절에 “죽어라”, 33절에는 “모든 소유를 버리라” 이렇게 해놓고 중간에 무슨 이야기가 들어가느냐 하면 28절,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이런 이야기해요.

그다음 31절,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지금 이런 이야기했다고요. “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찌니라” 그런 이야기가 들어가잖아요.

그러니까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이 앞에 27절 “모든 걸 버리라”, 33절에 “모든 소유를 버리라” 해놓고 그 중간에 들어가는 두 개의 이야기, ‘망대 세울 때 망대 준공비용 미리 계산하고, 전쟁할 때 군사력 먼저 측정해서 알아서 긴다.’ 그 이야기를 여기 집어넣을 때 이게 어울립니까? 이게 어울려요? 예를 들어도 어울릴 예가 여기 들어갔느냐 이 말입니다.

이상하죠. ‘망대 부숴버리자!’ 뭐 이런 게 들어가야 되잖아요. 전쟁했다 하면 먼저 아예 항복하고 들어가잖아요. 계산 안하잖아요. 이게 뭐냐 하면 이 말이에요. 인간들이 하도 성공에 환장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실패하러 오신 거예요. 실패하러 오셨어요.

그리고 인간의 성공욕구에 뭐가 있느냐 하면 ‘죽고 난 뒤에 천국이 있다’도 인간의 성공욕구를 위한 하나의 concept(개념)으로 들어가 있어요. 이 땅에서 실패하기 싫잖아요. 죽어서도 실패하기 싫은 거예요. 성공하고 싶은 거예요. 성공하기 위해서 인간은 뭐하냐? 맨날 측정하고 미리 계산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인간은 살기 위해서 예상한다. 기대한다.’ 인간이 예상하고 기대한다는 것은 그 밑바닥에 뭐가 있느냐? ‘나의 존재는 필히 살아남는 데에 성공해야 한다.’ 이 의욕, 이 욕구가 밑에 깔려있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라 한 거죠. 자기를 부인하라.

다시 말해서 너는 애초부터 이런 생각을 갖는다는 자체가 이게 바로 천국에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의 계시 입장에서는 벌써 실패한 거예요. 내가 잘 될 거라 기대하는 그 자체가 그게 실패작이에요. 인간은 자기가 실패작인 것을 모르고 이 정도로 나가면 자기가 얼추 성공, 성공, 성공, 계속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망대를 세우나 인간이 전쟁을 하나 인간이 생각하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 자체가 실패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이 실패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것에 그들이 실패하는 것에 주님 자기 몸을 맡겨버려요. 인간이 제일 싫어하고 제일 부끄러워하고 제일 거부하는 것, 자기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 상황에 예수님은 뛰어들어요.

빌립보서 2장 9절에 보면 죽기까지 복종했다는 거예요.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했다. 너희들 중에 따라오려면 따라와 보란 말이죠. 너희들이 제일 거부하고 싫어하는 쪽으로 주께서 뛰어가면서 “따라올래? 따라올 거야? 너희들이 다 거부하는 곳으로 내가 일부러 가는데 누구든지 살고자 하는 자는 따라 와!”

이 말은 뭐냐? “과연 따라올 수 있어?” 이런 뜻이에요. 왜? 따라갈 사람이 있어요, 없어요? 없죠. 없으니까 실패자인 거예요. 인간은 실패자인 거예요. 주님 가신 길에 끝까지 못 따라가니까 실패자가 되는 거예요.

인간들은 그걸 모르고 자기 나름대로의 몸의 계시가 있으니까 자기 몸이 살아있는 게 성공해서 살아남는 게 계시니까 인간들은 두 강도와 예수님에게 실패의 경우를 맛보게 해준다고 그 세 사람을 사형시켰습니다. 사형은 시켰는데, 그들은 사형시키는 데는 성공했는데, 그들이 실패한 게 있어요. 뼈를 꺾질 못했어요. 뼈를 꺾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양보해서 모든 걸 실패하더라도 천국과 지옥을 연결하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천국과 연결되는 유일한 창구는 인간의 어떤 노력에도 주님께서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게 뼈가 꺾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뼈가 꺾이지 않은 것하고 예수님이 유일하게 성공한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요한복음 19장 봅시다. 요한복음 19장 36절에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제자들이나 누구든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로마 군병이 하는 행동에 대해서 아주 정상적인 행정 처리로 본 거예요. 죽었으니까 굳이 뼈를 꺾을 필요가 없다고 본 겁니다. 그런데 죽었다고 생각하고 뼈를 안 꺾은 것에 누가 개입하느냐?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계시가 거기에 개입한 거예요. 너희들이 아무리 메시아의 흔적을 지우고자 하더라도 그 메시아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실패로 몰고 갈 능력은 너희에겐 없다는 거예요.

“뼈가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할 때 이 성경말씀이 어디 나오느냐 하면 출애굽기 12장 46절, 민수기 9장 12절에 나옵니다. 그중에서 민수기 9장 12절 봅시다.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야, 이거 제물 먹는데 뼈를 꺾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중요한 핵심요소로서 제물을 먹으라는 말은 예수님의 몸을 하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이미 규정했다는 뜻이거든요. 유월절 어린 양으로.

그런데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아까도 잠시 이야기했습니다만, 애굽 사람들이 사는 게 바닥이에요. 육이니까. 자기 가진 것 가지고 살고 자기 노력한 걸로 사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다른 인간이 이상타 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죽으면 수치스러우니까. 살아남아야 자랑거리가 되니까. 이게 인간의 육이고 인간의 바닥이죠. 그래서 성경은 항상 바닥부터 출발해야 돼요. 바닥부터 출발해줘야 얼마나 우리하고 성경이 무관한 존재인가를 알게 돼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소유물이 있을 게 아닙니까. 애굽에서 오랫동안, 430년 동안 4대에 걸쳐 있었으니까요. 그 소유물을 지금 유월절 앞두고 그들이 전부 매매관계를 통해 다 청산했어요.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고 다 청산해버렸다 이 말이죠. 부동산 같은 거 7천만 원 주고 팔고 다 했다 이 말이죠.

애굽 사람들과의 이웃관계를 다 청산하고 그들은 애굽에서 이제 나왔죠. 나왔을 때 그들이 갖고 있는 소유물 가지고 삽니까, 아니면 어린 양의 피 때문에 사는 겁니까, 그때부터? 어린 양의 피 때문에 살죠. 그게 특이성이죠. 애굽 사람은 전혀 상상도 못하는 특이성이란 말이죠.

그러면 그들이 가진 재산은 어디에 집중해야 되느냐 하면 어린 양의 피, 제사를 매일같이 반복하는 데에 소모되는, 소비되는 그러한 물품으로써 투입이 돼요. 제사도구 만들기, 제사장 복장 만들기. 그러니까 어린 양의 죽음에 종속된 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뭐냐 하면 ‘내 재산으로 인하여 내가 산다.’가 성립돼요, 안돼요? 안되죠. 안되면 나는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 몸 위주의 계시에서 단절됐고 끊어졌고 절단됐고, ‘어린 양의 계시,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나는 산다.’라는 특이한 새로운 종족이 등장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이스라엘이에요.

토끼가 깡충깡충 뛴다. 그것은 토끼가 이야기한 적 없었습니다. 그것은 토끼를 보고 있는 인간이 그렇게 깡충깡충 뛴다고 표현했죠.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을 부여받게 됩니다. 율법을 부여받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율법을 해석해야 돼요, 율법이 이스라엘 사람을 해석해야 됩니까? 율법이 이스라엘 사람을 해석해야 되죠.

그때부터 이스라엘 사람들, 애굽에 살던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인지 당최 납득 안 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요. 여러 가지 대표적인 게 있는데 그중에 한 두 가지만 이야기하면 출애굽기 32장에서 모세가 돌판 받아 왔잖아요. 돌판을 받아왔고 그 돌판을 하나님께서 지키라 했으면 돌판을 계속 가지고 백성들에게 ‘주님의 뜻은 이거다. 지킬래, 안 지킬래?’말하고 ‘지킬래.’ 그럼 될 터인데 모세가 돌판을 왜 깹니까? 계약서를 왜 깨버려요? 안 돼. 안 돼. 너희들은 안 돼! 되든 안 되든 일단 지켜보기는 하고 깨야지. 그때 깨더라도 안 늦었잖아요.

예를 들어 이 책이 저의 유언이라 합시다. 제가 재벌이에요. 여러분들은 재벌 2세, 3세들입니다. 그런데 죽으면서 “손자들하고 아들들하고 며느리들 다 오라해. 이제부터 유언을 내가 낭독하겠다.” 그러면 자식들이 ‘아휴, 이 순간이 너무 그리웠었어. 이 순간만을 기다렸어.’ 기다리고 있는데 “에이, 꼴 보기 싫어!”하면서 유언장 찢어버리는 거예요. 유언장 찢어버리면 물려받을 상속분 하나도 없어요. 이걸 찢는 겁니다.

그럴 때 그 자식들이나 며느리나 손자들을 보면, 황당하죠. 회사를 위해서 충성하면 뭐 준다, 이러면 알아서 우리가 예, 예 하고 잘 지낼 건데 아예 유언장을 찢어버리는 거예요. 여러분 성경들 다 백독씩 했죠? 성경 보면서 뭐 이상하지 않던가요? 왜 미리 깹니까, 미리. 성질머리도…. 그걸 왜 미리 깨요, 그래.

그것은 모세가 벌써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하면 산 밑에 사람이 아니고 40일 동안 위쪽의 사람이 되어가지고 지금 하나님 편을 든 거예요. 그런데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자기 외에는 자기 편이 없어요. 자기는 무조건 자기 편이에요. 자기 편에게 유리하도록 이게 하나님의 계시가 되든 율법이 되든 딱 보고 내게 유리한 쪽으로 지킬 만하면 지키겠다는 그런 마음자세가 깔려있었습니다.

그게 아까 말한 육적인 바닥이에요. 육의 바닥이에요. 그런데 그 육의 바닥에 대해서 모세의 대처는, 언약 벌써 깨졌어. 언약 깨진 거예요. 자, 언약이 깨어지고 난 뒤에 두 번째입니다. 첫째는 도저히 납득 안 되는 것이 돌판을 먼저 깼다는 거죠. 깨진 돌판, 그다음에 이야기한 것이 뭐냐? 바로 생명책 이야기에요. 생명책 이야기.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32장 32절,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이름을 지워버리게 해달라.

모세가 40일 동안 그냥 시간 허비한 게 아니에요. 뭘 보고 왔어요. 보고 온 게 뭐냐? ‘하나님의 계시는 저장기능을 갖고 있다.’ 뭘 저장하느냐 하면 백성들의 이름을 저장하는 기능을 갖고 있어요. 인간의 이름을. 하나님의 계시가 USB에요. 이름을 저장해요.

이름을 저장한다는 말은 저장당한 이름은 결코 대표이름이 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면 저장을 해주는 이름, 저장을 하게 하는 그분의 이름 안에 소복이 들어있는 거예요. 명태가 알을 품듯이 하나의 알알이 메주처럼 포도송이처럼 한 송이에 다 모아져있는 거예요. 한 송이처럼 다 모아져있어요.

그럼 그렇게 모아져있을 때, 지금 애굽에서는 내가 중요하잖아요. 나를 위한 하나님이고 나를 위한 메시아, 그때는 메시아가 아직 없었으니까 하나님, 나를 위한 언약이어야 한다 하잖아요. 애굽에서는 그렇게 했는데 출애굽해서는 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를 품어주는 그 보자기가 더 중요한 거예요. 보자기 안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은 가차 없이 발로 차낼 정도로 보자기가 중요해요.

왜냐하면 그건 내 이름은 무관한 게 아니고 그 보자기를 싸는 주의 이름이 내 이름보다 선행해서 중요하기 때문에, 주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그 안에 주의 이름과 무관한 것은 가차 없이 내쫓아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출애굽기 32장 32절에 모세가 저를 봐서라도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했다 이 말이죠. 저를 봐서라도 용서해 달라. 모세가 그런 이야기하는 것은 모세가 40일 동안 시내산 위에서 본 게 있어요. 주님의 책에 저장되는 이름의 특징은 뭐냐? 주의 이름으로 죄 사함 받은 것을 유지할 수 있는, 그걸 모독하지 않는 자들만 그 안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본인이 알게 된 거예요. 그걸 본인이 알았으니까 봤으니까 그걸 그대로 시내산 밑에 있는 백성에게 시내산 위에서 알게 된 것을 적용시켜요.

계시가 뭐라 했습니까?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예언에 의하면 몸의 뼈가 하나도 잃어버려지지 않는다. 몸의 뼈가. 몸의 뼈 자체로 하나도 안 잃어버려진 거예요. 반대로 강도 둘은 뭡니까? 강도 둘은 그 뼈가 꺾였어요. 메시아가 아니니까요. 보자기가 아니니까. 생명책의 주인의 이름이 아니니까요.

이게 예수님의 단독성이에요. 단독성 또는 유일성. 차이성. 다른 여타의 인간 몸과 다른 특별한 몸으로서의 예수님인데 그 몸에는 하나님의 언약적 예언의 말씀, 성경 말씀을 이루는 그 성취와 관련되는 몸이 되는 거예요. 관련되는 몸인데 그 내용 중에 이런 게 들어있는 거예요. 뼈를 꺾지 마라 하는 거예요.

아까 뭐라 했어요? 뼈를 꺾지 말아야 되는 이유가 유월절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럼 유월절 양은 왜 뼈를 꺾지 않아야 되죠? 유월절 양이면 양고기만 먹지, 치킨 살 때 뼈는 버리지 그것까지 챙깁니까? 왜 유월절 양이라는 이유 때문에 뼈가 꺾이지 않아야 되는가,에요.

뼈는 어디에 속합니까?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죠. 그래서 그 몸은 온전히 보호되었다. 보호. 보존된 거예요. 예수님 몸이 보존된 거예요. 보존된 것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그다음에, 여러분 아는 거니까 물어보겠습니다. 강도는 창으로 찔렀어요, 안 찔렀어요? 강도 둘은 창으로 안 찔렀죠. 안 찔렀으니까 강도 둘한테는 물과 피가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나올 필요도 없어요. 뭐 오줌이나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예수님은 몸은 그대로인데 물과 피가 거기서 나왔다는 거예요.

물과 피는 몸이 온전한 데서 나오는 그 피고 그 물이에요.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한테 영생이 없다는 것은, 유월절에 어린 양의 피를 발랐거든요. 피를 바를 때 문설주에 피 바르고 어린 양의 고기는 히브리인들이 먹었잖아요. 그런데 뼈는 어떻게 했죠? 뼈는 꺾지 않았죠. 잃어버리지 않았어요.

구약의 출애굽 때 상황을 그대로 주님께서는… 구약 자체가 비유니까, 모형이니까. 신약이라는 실체에서 저 멀리 뻗어져 나온 거예요. 연결된 채 쭉쭉 뻗어져 나온 거예요. 여러분, 주식투자에 보면 이런 용어 있어요. ‘채찍의 손잡이’라는 용어가 나와요. 채찍의 손잡이란, 채찍질할 때 잡는 부위가 손잡이잖아요.

이게 단타 투기, 단타 투자에요. 삼성해놓고 좀 올랐나? 아이고, 내려간다. 그럼 팔아야지. 이런 거. 이게 채찍의 손잡이지만 채찍의 특징이 뭐냐? 손잡이에서 일어난 변화가 긴 채찍의 저쪽 끝으로 휘어져 가면서 몇 달, 몇 년 후에는 손잡이에서 일어났던 변화의 영향력이 끝까지 휙휙 채찍 끝까지 가는 게 있어요. 끝까지 길게 이어져가는 거예요.

예수님에게 출애굽 때 일어났던 그것은 일종의 손잡이 같은 역할인데, 휙휙 바람소리 나면서 휘어진 채찍의 끝은 어디서 완성되는가? 십자가에서 완성이 되는 거예요. 유월절 양은 일반적인 인간의 죽음과 같지 않아야 된다는 거예요. 절대로 같지 않아야 돼요. 몸이라고 다 같은 몸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이 예수님의 몸입니다.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광주강의20240329a 요한복음19장 33절(몸이 다르다)-이 근호 목사.hwp (66.0K), Dow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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