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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19:51:14 조회 : 84         
강남-요한복음 21장 24-25절(어리둥절)190917b-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요한복음 21장 24-25절(어리둥절)190917b-이근호 목사



요한복음 1장부터 21장까지 정리합니다. 왜 정리해야 되는가? 다 하는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 한 4년? 엄청나게 오래 걸려가지고. 2장하면 1장 잊어버리고 3장하면 1,2장 잊어버리고 21장하면 1장부터 20장 다 잊어버리고. 그렇게 해놓고 뭐더라? 요한복음 1장부터 뭐더라? 이렇게 되는 거에요.


요한복음은 죽어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미리 경험케하는 것이 요한복음입니다. 죽어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지옥 간 사람이 용서를 경험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죽었다고 경험하는게 아니라 죽어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살아 생전에 경험케 하는거에요. 요한복음이.


그게 복음이거든요. 복음은 죽으면 만난다는게 복음이 아니고 우리가 죽기 전에 미리 왔거든 미리. 이 요한복음도 복음이지만 우리 속에 들어온 것도 복음이거든요. 살아있는 우리 속에 지금 목 쉬고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 속에 요한복음이 통째로 들어와버리면 이거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내 믿음은 소용이 없어요.


내 믿음 말고 죽어서도 경험 못할 왜 지옥 갔는데 무슨 영생을 경험하겠어. 베드로가 어떻게 경험하겠어요 그 처소를. 베드로 목숨 바쳐도 안 받지요. 왜? 죽어도 경험 못하는게 처소에요. 처소를 성령이 와서 주잖아요. 처소가 있다고. 죽어서도 만나지 못할 그 처소, 그 모든 것을 미리 앞당겨서 제공하는 것이 요한복음이에요. 당겨서 제공하는 것이.


이걸 간단하게 이야기하게 되면 뭐냐 하면 미리 주와 함께에요. ‘미리 주와 함께’. 미리 주와 함께 미리. 미리 입니다. 죽어서 골라잡는게 아니고 미리 주께서 함께 하는 거에요. 방법은 아까 무슨 방법? 삭제. 뭐를 삭제한다. 주님의 가치 앞에 말씀의 가치 앞에 뭘 삭제한다? 나의 믿음 소망 다 없애버리는 겁니다.


이걸 하게 되면 죽어서도 경험한 것을 미리 경험케 한다 라고 할 때에 내 쪽에서 움직일까요? 아니 네 쪽에서 움직이지마. 주님 쪽에서 움직여요. 그게 말씀이 뭐가 되었어요? 육신이 된 겁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거에요. 너 힘들어?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렇게 되지요.


네가 힘든 세상에서 나도 힘들다. 네가 뭔가 환경에서 네가 당한다고? 그거 나도 같이 당했잖아. 왜 또 징징거려. 나도 당했어. 너만 알아? 나도 알아. 네가 어떻게 당했는지 나도 안다고. 요한복음 1장 읽어봅시다. 시간관계상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했잖아요.


자녀는 없는 거에요. 누군가 오지 않으면 자녀라는게 없어요. 아들 없어요. 누군가 오지 아니하면. 죽어서도 경험하지 않는 것이 미리 오지 아니하면 자녀가 없어요. 내가 나를 자녀 되게 하는게 아니고 나라는 자녀가 없어요. 그분이 와야 자녀가 생겨요. 그걸 나라고 우기지 마세요. 주님이 오실 때 그 파생상품으로 자녀가 생기는 겁니다.


사도는 없어요. 제자가 뭐된다? 사도되는 거에요. 목격자 사도라는 목격자. 목격자는 없는데 제자가 목격자 되는 거에요. 우리는 아들 아니에요. 믿음이 있어야 아들이지. 믿음도 없고 아들도 아닌데 주께서 아들 되게 하신거에요. 그러면 나라는 것은 삭제되는 거에요. 이해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기존에 있는 나를 주께서 아들 되게 하면서 기존의 아들 아닌 나를 삭제시킨다니까요 삭제.


삭제하는게 뭐냐 하면 너는 배신자야 나 피해서 도망갈 인간이야. 베드로 봤지? 그게 너의 모습이야. 그게 네 모습이다. 내 뜻대로 안된다고 삭제해버리는 것. 그 상처. 그만큼 우리가 고집이 세잖아요. 우리가 한 고집 하거든요. 없애버립니다.


요한복음 4장 봅시다. 1장부터 차례대로 하는게 아니고 그냥 건너뜁니다. 4장에 보면 16절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이렇게 하니까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이렇게 되어 있지요? 남편이 없지요?


남편이 없으면서 자, 남편이 없는 여자가 자기 입으로 남편이 없다고 했으니까 그러면 이 여자에게서 그 다음 나올 말을 누구한테 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대신해버리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라” 했지요. 이게 뭐냐 하면 횡이에요.


인간은 수평적으로 변심과 이동 밖에 할 줄 몰라요. 남편 하나 있었는데 둘 있었는데 지금 세번째. 수평적 이동. 그게 인간이 기껏하는 변심이에요. 팔자 고치기 이런거거든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걸 안다고 이야기한거에요. 안다. 누구보고? 사마리아 여인보고 안다고 했지요. 이 안다를 사마리아 여인 속에다가 이걸 박아넣어버려요. 이 안다를.


그전까지는 뭐냐? 이건 나만 알 걸 이렇게 하지요. 이건 나만 아는 비밀일걸. 아니야. 알아. 왜냐하면 알고 싶지도 않은 어떤 부끄러운 것 그것까지도 주께서 먼저 "5명이지?" "어?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했는데." 그걸 미리 그러니까 기초공사할 때 미리 철근을 박아 넣었잖아요.


박아 넣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앞으로 새남편에게 잘할께요 라는 말이 필요치 않은 거에요. 왜냐하면 새로운 6번째 남편한테 잘할게요 이건 필요 없어요. 그 남편하고는 안 헤어지고 잘 살게요 라는 것은 기껏 횡에서 횡으로 변심하는 것밖에 안되니까. 그러한 변심들은 더 이상 나한테는 의미 없는 거에요.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이 의미 없는 거에요. 우리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으로 경험할 수 없는 철근이 안에 박혀버린 거에요. 이게 요한복음 4장입니다. 네가 예상치도 못하고 경험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을 그것도 그냥 아니고 미리 천국생활은 미리 해야 돼요. 미리 박아버린 거에요.


그럼 내 인생은 뭐냐 하면 내가 경험하지도 않는 일들이 일어나는거에요. 경험하지 않는 일이. 그러면 그 철심이 있어 버리면 그러면 이 사마리아 여자가 나는 남편 6번째다 그걸 자랑하겠습니까 아니면 나는 메시아 만났다를 자랑하겠어요? 어느 쪽입니까? 그게 오늘 요한복음 21장 본문 아닙니까. 예수를 증거한다.


오늘 본문하고 딱 맞잖아요. 마지막과 처음이 딱 맞아 떨어지잖아요. 삭제시키는 거에요. 남자가 5이든 6이든 12도 관계 없어요. 12은 좀 심했나. 관계 없어요. 그냥 삭제시키고 박힌 철근이 뭐였는가? 죽어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미리 경험케 하는 것. 철근이 들어온다는 것. 철근 들어온다. 결과물이죠.


살고 싶다가 아니라 살고 싶다는 내 요청은 완전히 묵살되고 그냥 사는 거에요. 주께서 철근 심지를 심은 심지 채로 그냥 사는 거라니까요. 만약에 우리가 살고 싶다고 한다면 불안감이 생기죠. 정신병이죠.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서 온갖 착한 짓은 다 할 거에요. 변명도 다 할 것이고. 여러분 그 불안감을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감당 못합니다.


여러분 얼굴 어두워져요. 제가 그런 설교 했지요. 어두운 얼굴 가지고 교회 올 권한 없다고요. 지난 수요일에 했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교회 올 권리가 없어요 우리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교회에 올 그러한 권한이 없어요. 뭐 수심 인삼 잡수셨어요? 수심 있게. 참 우리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우리는 슬퍼할 권한이 없다니까요. 뭐 잘났다고 슬퍼해요.


류현진이 공을 못 던져서.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래. 그걸 왜 슬퍼합니까? 독도 심어 놨어요? 마음 속에? 주님이 미리 심어놨는데 그걸로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그걸 자랑해야지 왜 5번째 남자가 괴롭혀요. 왜 그걸로 슬퍼하느냐 말이죠. 남자 5명 없지. 그런 경험 안 해봤구나.


자, 요한복음 2장 봅시다. 요한복음 2장에 결혼식. 연회장입니다. 연회장에 물 6동이를 해라 이 말이죠. 물을 아궁이 있는데 제가 또 가봤다는 이야기 굳이 해야 됩니까? 사진찍었다는 이야기를 우리 교회에 올렸다는 이야기를 굳이 해야 됩니까? 6동이를 했어요. 누가 봐도 이건 뭐냐? 물이에요. 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어머니가 요청한게 뭐냐 하면 물이 아니에요. 포도주죠. 그렇죠? 간단히 이야기해요. 자, 포도주를 누가 원했다? 마리아가 원했지요. 마리아가 원했지요? 그러면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서 포도주 언급한 마리아는 제거되겠어요? 제거 안 되겠어요? 아까 원칙에 의하면 삭제 대상이죠? 이거 명분 이거 없어져야 돼요.


마리아가 왜 포도주를 원합니까? 손님은 밀려오지요. 주최측에서 포도주 없다하면 얼마나 삐지겠습니까? 이거 잔치도 아닌게 포도주 떨어지고 이게 뭐야 이렇게 되겠지요. 그럼 명분이 뭡니까? 명분은 나의 정신병을 가리기 위한 상상이에요. 야 이집에 다른건 몰라도 포도주 하나는 맛있다라는 것을 누가 기대합니까? 내가 기대를 해요.


왜? 그래야 내가 가치가 높아지니까. 아까 했지요. 나의 가치는 무엇을 가린다? 말씀의 가치를 가리죠. 그러면 반대로 주님의 말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누굴 제거합니까? 너는 이것밖에 안돼. 제거해야 되겠지요? 예수님 뭐라고 섭섭한 이야기를 해요? 섭섭한 이야기해보세요. 무슨 섭섭한 이야기했습니까?


여자여 당신의 요구조건과 나와 무슨 상관있습니까? 애가 수학 문제 못 푸는 거하고 집에 부도난 것하고 무슨 관계있어요? 내 잘못한 것하고 주님의 십자가하고 무슨 관계있습니까? 관계없어요. 내 명분 때문에 죽으신 거에요. 내 명분.


교묘하게 나의 헛점을 가리는 내 의 때문에 돌아가신 거에요. 내 의 반대말이 죄잖아요. 내 죄 때문에 돌아가신게 아니고 내 의 때문에 돌아가신 거에요. 그 의를 죄라고 하는거에요.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 믿는 것 때문에 돌아가신 거에요. 안 믿어서 돌아가신게 아니고. 우리는 안중근이거든. 자기 잘난 체 한다고.


이런 나를 하늘나라에서 알아주기를 바라잖아요. 이게 명분이잖아요. 나라 잘되면 나 잘된다. 주님한테 잘 보이면 나 구원되겠지. 이게 바로 죄에요. 이거는 내가 믿는 결과물이 내 결과물이 돼요. 이건 나 증인되는 것이지 요한복음 마지막에 주님 증거되는 거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누가 참되요? 예수 믿게 되면 내가 참돼. 이건 미친 짓이에요. 이거는.


예수 믿는게 아니고 예수님을 욕보이는 거죠. 내가 인생 살면서 헛점을 내 믿음으로 치료하겠다는거에요. 내가 나를 치료하겠다는거에요. 쥐어박고 싶어. 지옥에나 가거라. 왜 우리 치료가 안되느냐 하면 경험한 것 가지고 나를 치료하기 때문에.


미처 살아있을 때 경험한 그것 가지고 나를 치료하려고 하기 때문에. 내 기억가지고 나를 회복시키려고 만회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한테 서운한 이야기 들어야 됩니다. 여자여 그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포도주 없습니다. 주님이 안 들어줍니다. 이런 포도주 없어요. 끝났어요 이제.


그러면 마리아의 포도주가 의미하는 것은 뭐냐 하면 너는 포도주를 달라고 하지만 기껏 뭐 밖에 안된다? 이거는 물 밖에 안된다. 물밖에 안돼요. 인간이 기껏 요청해봐야 이거는 물 밖에 안돼요. 그러면 물에서 포도주 될 가능성은 없지요. 주님도 그런거 안 들어주고.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했고 물에서 포도주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믿음은 믿음 없음에서 믿음 있는 경우는 없어요. 없어요. 그럼 있는 것은 누구밖에 없습니까? 예? 누구밖에 없어요? 오직 있는 것은 예수님밖에 없지요. 예수님에게서 뭐가 나옵니까? 포도주가 나오는 거에요. 신자는 예수님만 보여야 돼요. 왜? 나는 삭제당했으니까.


주님 때문에 내가 이렇게 존재하는 거에요. 없어도 되는데 오늘도 없어도 되는데 주님 때문에 오늘 이런 일이 생긴 거에요. 주님 때문에. 이거 정말 미친 거 아니에요? 이런 신앙은 정말 이거는 성령 아니면 모릅니다. 이 이야기 몰라요. 뭐 30년 믿었습니다 50년 교회 다녔습니다 그 소리하지 마세요. 그건 소용없어요. 주님 때문에 있는 거에요. 주님 때문에 있어요.


그러면 나를 있다고 해야 됩니까 있음을 주님한테 붙여야 돼요? 주님 계심에 나는 없는데 주님 계심의 증인으로서만 있는 거에요. 왜? 나는 인간일 뿐이니까. 나는 없는 존재니까. 없는 존재인데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 사명을 위해서 나는 없는 존재가 주님 입장에서 볼 때 있는 존재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게 바로 제자가 아니라 사도에요. 사도는 지난 시간에 했듯이 베드로가 네가 원치 않는 죽음을 죽게 될 것이다. 네 죽음을 통해서 나 있음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이게 사도의 가는 운명입니다. 내 상처가 있더라도 주님 상처가 덧입어 버리면 이제는 내 상처가 아니고 누구의 상처냐. 주님의 상처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운반체. 아 십자가 때문에 존재하고 십자가 때문에 나는 이미 천국 생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주님만 계시는 거에요. 그게 주님 나라니까.


우리는 그분의 이미지로서 찬양하지요. 원래 천사한테는 존재라는 말을 하면 안돼요. 천사한테는 뭐냐 기묘자라고 해요 기묘자. 분명히 있는데 없고 없는데 있고. 만지면 없는 것. 참 희한하죠. 요한복음 20장에도 나오지요. 예수님 보고 만지려고 하니까 만지지 말라고 하지요. 있다는 자는 만질 수 없고 없다는 자만 만질 수 있는 것. 그겁니다. 녹취하면 희한하겠다. 목사님이 날리는데 쭉쭉쭉 수제비 날리듯이 모르겠어요 하여튼 저는 이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포도주는 마리아가 요청해서 나온게 아니고 예수님의 자기 증거하기 위해서 나온거에요. 그래서 뭐냐 하면 이걸 가지고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이걸 표적이라고 하는 겁니다. 표적은 나중에 해답이 나오는걸 표적이라고 해요. 남들 보기에는 기적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들어간 내용은 주께서 나중에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 할 때 그것과 연계하면 비로소 의미가 나타나는 그것, 그게 바로 표적이거든요.


그런데 한국교회가 기적을 원해요. 기적은 마귀가 줘요. 왜? 그래야 내가 혜택 입으니까. 하나님한테 챙길거 챙겼으니까. 그런데 표적은 뭐냐? 표적은 삭제거든요. 너는 너 때문에 사는게 아니라 나 때문에 있다는걸 보여줄 때 아 내가 여기 있음에 내가 오늘 사는 하루에 내탓하면 돼요? 안돼요? 왜 자기 탓합니까? 자기 탓하면 안되지요.


지난주 이발하니까 여러 군데서 이발이 뭐 잘못됐다 이게 왜 내 탓입니까? 내가 깎았습니까? 우리는 하루 살면서 하루 어떤 일과도 자책하지 마세요. 그거는 시건방진 거에요. 그 미친 거에요. 왜 발걸음을 왜 자기가 지탄합니까. 어디 뭐 주님이 내 솜씨 받아요? 안 받아요.


1장에서는 누가 왔다는 것. 누가 오심으로 아들 됐다는데 그 아들은 내가 아니고 아들되게 난 있고 내가 나 되고 싶은 것은 삭제당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예수 믿어도 죽어요. 그 점에 대해서 요한복음 3장 봅시다. 3장 30절 제가 읽어볼테니까 맞는가 보세요. 그는 흥해야 되고 제가 읽어볼테니까 맞는가 보세요. 그는 흥해야 되고 나도 같이 흥해야 되고 맞아요 틀려요? 아니죠.


그는 흥해야 되고 나는 뭐해야 되고? 쇠하여야 되고. 그게 뭐냐 하면 앞에 카드가 없어져야 뒤에 카드가 나오니까. 이걸 가지고 선지자. 이게 선지자에요. 선지자의 그 모든 행동은 뒤에 오시는 분이에요.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고 오시는 분이에요. 세례 요한은 오시는 분이고 지금 우리는 성령이니까 함께 계시는 분이고, 같은 말이에요. 함께 계시는 분이고 세례 요한은 뒤에 오시는 분.


그런데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섰다 하니까 이걸 누가 논리가 맞습니까?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서 있다. 나보다 뒤에 태어난 분이 나보다 앞서서 계신 분이라고 말을 하는 거에요. 뭐 시합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선문선답이죠. 내 뒤에 계시는 분이에요. 다시 말해서 너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한다. 그게 세례 요한도 경험했고.


요한복음 3장 27절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맹탕이다. 우리는 원래 맹탕이에요. 맹탕이 부끄러우니까 상상하는거에요. 예수 믿고 천당간다고. 그거 맹탕이에요. 그거는 무엇이 없어요? 무엇이 누락됐어요? 내가 죽어야 된다는게 누락되어 있지요. “나는 마땅히 지옥가야 돼”가 누락되어 있잖아요.


그거는 복음이 아닙니다. 그거는 예수 믿는 자기 자신을 증인이기 때문에 요한복음과 다른 노선이에요. 지옥 갈 노선이에요. 천국 갈 노선이 아니에요. 제가 또 이렇게 강의하고 녹취하고 다 올려놓으면 결국 또 나오는 질문이 목사님 그럼 우리는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내가 공사장 인부도 아니고 내가 철심을 내가 철심이 있어야 박지. 없는데. 성령 주시는 분이 박지 내가 박습니까? 나는 그냥 증인인데. 그럼 나는 못한다 밖에 할 수 없지요. 못하면 당신은 왜 하느냐. 나는 죽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못한다 하면서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저는. 언제 죽을지 몰라요. 그래서 죽잖아 그래. 쓸모없다고 죽자나. 뭐 할 말 있어? 없어.


내가 못하니까 죽잖아요 그래. 나는 죽어도 주님은 살아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은퇴해야지요. 은퇴하는데 좀 오래 걸리지만 매일같이 은퇴해야지요. 사라지는게 죽는게 은퇴 아닙니까. 재밌잖아요. 베드로보고 하나님이 네가 죽음을 통해서 어떠한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겁니다. 은퇴해라 이 말이죠.


베드로 하는 말이 "쟤는요?" "쟤도 은퇴해 왜 그래. 사도 요한도 은퇴한다고. 너나 생각해 저기 생각하지 말고." 삭제입니다. 없애버립니다. 심지어 철심이 꼽혔습니다. 갑자기 제목을 철심으로 바꾸고 싶다 갑자기. 자, 요한복음 다 못하겠네. 다음시간으로 미뤄야지 억지로 하려고 하면 무리다. 다 못하면 남겨둡시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게 아니기 때문에.


요한복음 2장 봅시다. 이 성전을 내가 사흘 동안 일으킨다 이렇게 되어 있지요? 여기서 성전이 누구냐 하면은 성전이 46년 동안 짓고 있는 성전 있잖아요. 이 성전과 예수님 성전 있지요. 46년 성전은요 차곡차곡 있기 때문에 있음, 있음, 있음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성전은 예수님 있음, 있음이 아니고 중간의 뭔가 결정적인 현상이 일어나요. 예수님이 죽었다가 있음에서 뭐가 됩니까? 없음이 되야 돼요.


없음이 되면 어떤 인간도 이 성전을 믿고 따라올 사람 다 여기서 다 되돌아가게 되어있어요. 있어야 믿지 없는데요. 없고 홀로 사흘 만에 있음이 되어버렸어요. 그럼 성전은 내가 찾아가고 다가갈 수 있는 성전이 아니고 이 있음이 없음을 가지고 있음이 없음이란 것을 앞장세워서 우리 있다고 찾는 46년 성전을 완전히 삭제하고 부정하게 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살아계신 성전입니다.


아이고 복잡해라. 제가 지금 복잡하려고 일부러 하는게 아니고 이 말이 맞아요. 복잡하고 자시고 할 거 없이 이게 맞아요. 정확한 거에요 정확한 거. 십자가 죽으시고 부활 이것만이 정확한거에요. 없음이 게재되는게 정확한거에요. 이렇게 하면 복 받습니다 위로하는게 정확한게 아니고 당신은 위로 받을 자격이 없다는게 정확한거에요. 위로 받을 자격도 없고 교회 나와봐야 소용없습니다. 지옥갑니다 라는 것이 정확한거에요.


3장 봅시다. 3장. 정리하자고 하다가 몇 년 가겠다. 여기에 3장 4절에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참 요한복음은 한결같아요. 삭제 당할 것을 사람의 입으로 예수님 앞에서 자기가 알아서 삭제당할 내용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도록 유도하지요.


유도한 방법은 뭐냐 하면 주님이 말을 툭 던져요.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늘나라 못 간다. 툭 던져버려요. 그러면 그때 그 말 듣고 인간이 숨겨놓은 인간의 아이디어가 막 나오는 거에요. 아이디어가. 그 아이디어는 인간이 기껏 인간일 수밖에 없는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으로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주면서 아이디어 나옵니다.


엄마 뱃속에 들어갔다 다시 태어납니까? 라고 이야기하죠. 그럼 그 방법은 오늘날 와서는 가능하지요. 뭐냐 하면 DNA가 DNA + 단백질이 있으면 다시 태어날 수가 있어요. 냉동인간.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런데 주께서 DNA를 어떻게 알았는지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육에서 난 것은 뭐가 되요? 100번 태어나도 소용없다. 냉동 백날해도 냉동식품밖에 안돼요.


아무것도 안돼요. DNA가 육이거든요. 그러면 육이 아닌건 뭐냐? 없어요. 없는데서 태어나야 돼요. 없는데서. 성령 자체가 없는거에요. 왜? 바람 자체가 없는거니까. 붙잡을 수 없는거니까. 없는데서 태어나야 돼요. 그래서 아까 그랬잖아요. 믿음은 없는거라고요. 없는데 생겼어요.


진짜 미친 것도 아니고. 없는데서 생겼다니까요. 그러면 상대방이 뭐라고 하는줄 아세요? 믿음 없는 사람이. 너는 생겼는데 나는 왜 안 생기냐 이렇게 따져요. 너는 생겼는데 나는 왜 안 생겼느냐. 그러면 우리는 나도 안 생길 줄 알았지. 나도 안 생길 줄 알았는데 생겼어.


둘 다 시집가가지고 한 5년 됐는데 둘 다 애기 못 낳는 거에요. 어느날 만났는데 카페에서 만났는데 친구가 나 애 생겼다. 상대방이 기분 나빠요. 너는 생겼는데 나는 왜 안 생기냐. 몰라. 모르지요. 왜냐하면 인간은 따라잡을 수 있고 흉내내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사고방식이 너 거듭나면 나도 거듭난다고 하는거에요.


니고데모는 순간적으로 예수님을 같은 종족 인간으로 보는 거에요. 주님을 하늘로 봤다면 나도 뭐든지 따라잡을테니까. 안돼. 나는 있지만 너는 있어도 없는 존재가 돼. 자리에 없는 존재 되게 하셔서 있게 하시는 거에요. 나 따라와라. 왜냐하면 예수님이 없다가 있었잖아요. 그 코스 그대로 가야 돼요.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미리 경험하는 거에요. 미리 있는데 미리 있는게 이게 주께서 없는 존재로 간주해가지고 개무시해버리는 거에요. 그러면서 나타나는 거에요. 있는데 내 몸이 아니고 누구 몸이다? 주의 몸. 이거 더러운데? 아까 구멍을 상처를 구멍을 더 뚫어버리죠. 걸레 밖에 안되는 나를 주께서는 거기에다가 속을 꽉꽉 채워가지고 주님의 십자가에 모든 의로움을 채워놔서 주의 의로움으로 구원받게 한다니까요.


그러면 혹시 우리 안에는 없지만 혹시 여기 안 믿는 사람 있으면 목사님 백날 해봐야 나는 안 믿어집니다. 안 믿어집니다 이러거든요. 그 이야기를 굳이 나한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나는 당신은 믿어진다 안 믿어진다가 당신이 당신 뜻을 증거하기 때문에.


나는 지금 주의 증인을 찾지 내 기분 어떻고 내 마음 어떻습니다 굳이 내가 듣고싶지 않습니다. 어어어어어~~나 안 들을래. 당신이 어떻다 나는 이러합니다 듣기 싫어요. 성령은 주님만 증거하기 때문에. 여기 기록된게 전부다 예수님 증거하는데 반드시 인간의 한계를 동반시켜서 내놓는 증거들이에요.


그 다음에 뭘 보느냐 하면은 3장 20절 봅시다. 할 수 없다. 이거 최종 정리하는데 몇 주 갑시다. 내가 그냥 하려고 하니까 내가 답답한게 있는데.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뭡니까? 행위가 뭐로 드러난다? 드러날까 함이요.


빛의 반대말이 뭐냐 하면 행위가 되죠. 행위는 뭐를 구축하느냐. 내가 행했다. 나는 내 행함의 결과물이다를 이걸 고집하는 거에요. 고집하는 거에요. 빛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빛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은 나는 나로서 만족하니까 굳이 빛으로 갈 이유가 없다는 거에요. 그럼 이걸 오늘 본문과 하면 이건 누구의 증인입니까? 나의 증인이죠. 나의 증인은 나는 이렇게 잘 행하고 있습니다가 이게 바로 어둠이죠.

그런데 여기에 보면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했죠. 빛으로 왜 옵니까? 내가 원천이 아니고 나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결과물 고무줄 탁 놓으면 어디로 옵니까? 고무줄 쥔 손으로 황급히 되돌아오지요. 우리는 되돌아갈 자리가 있어요. 왜? 나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결과물을 자랑하면 그건 주님의 증인이 아니니까 주께서 하셨습니다 하고 후딱 주님 쪽으로 오는 거에요. 빛으로 오는 거에요. 그래서 성도는 예수로 인하여 기뻐하고 예수로 인하여 자랑하는 겁니다. 어떤 경우라도.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나님 앞에 행한 것은 예수님 밖에 없으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잖아요 라고 하는거죠.


그다음에 요한복음 4장하니까 그냥 넘어갑시다. 요한복음 4장 넘어가면 5장 나오겠지요. 자, 5장에서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은 5장 9절 보겠습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되어 있지요. 38년된 병자 이야기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아 이거는 아까 동영상 강의에서 했는데 움직이고 있어요. 움직인다.


움직일 때 못 움직이는 사람이 움직였어요. 못 움직이는 사람이 움직입니다. 그러면 제가 아까 했지요. 죽어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미리 경험한다고 했지요. 이 사람은 못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몇 년입니까? 38년 동안 못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38년 동안 경험하지 못했는데 움직였다 이 말이죠. 그러면 여기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 있잖아요.


바리새인들이 쭉 보면서 뭘 보느냐 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우리가 남을 대할 때 예수님 빼고. 당신이 어떤 행동을 했기에 움직입니까 라고 이야기하겠지요. 예수님 빼고. 그럼 바리새인들이 볼 때 뭘 보느냐 하면은 율법의 차원에서 보겠지요. 그러면 바리새인들의 율법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증거입니다. 내가 이만큼 의롭다를 증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법들을 다 동원시킨거에요. 내가 의롭다는 것을.


내가 의로울 필요가 없어요. 내가 내 믿음이 필요가 없어요. 너 믿음 없지? 하면 “네” 하면 되요. 당신 예수 믿나? “아니요” 하면 된다고요. 왜 굳이 그 사람한테 내 믿음 있다 없다 내 증거를 할 필요가 없잖습니까. 지금껏 여러분 그렇게 살았으면 이제부터 고치시기 바랍니다. 누가 믿음 있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이야기하세요. 그것도 웃으면서. 기분 좋은 듯이. 아 나 기분 너무 좋아 믿음 없어. 나 믿음 없는데 이렇게 살아. 네 믿음이 그 꼬라지냐. 믿음 있으면 자꾸 써먹으려고 해요 문제가.


표적인데 주님의 표적을 내 기적으로 바꾸려고 하는거에요. 티낼라고. 나는 이런 이런 거 받았다. 기적 받았다. 자꾸 표적인데 표적이 아니고 표적을 기적으로 바꿔가지고 자기 자랑 하려고 하는 거에요. 내가 예수한테 부탁했더니 예수님이 내 아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꿨다. 맨날 지 자랑하면 안되겠지요. 그렇죠? 뭐 빠진거에요?


“여자여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를 완전히 빼고 왜곡된 편집을 한거에요. 마리아가 그럴 리 없지만. 물이 포도주 된 것은 너는 인간도 아니다 그런 뜻이거든요. 바리새인은 율법을 합니다. 그러면 움직일 때에 이 38년 병자가 움직일까요? 1번 38년 병자가 움직인다. 2번 예수님이 움직인다. 몇 번입니까? 2번이죠. 병자가 움직이는건 이건 예수님 증인하는거 아니에요.


38년 병자는 자기도 생전에도 이런 경험 못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자기도 어리둥절해요. 오늘 제목 진짜 어리둥절해요. 제목을 바꿔야 되겠다 정말. 이게 확 오네. 주님 저를 왜 천국 보냅니까 어리둥절한 거에요. 믿음도 없는데 가고 있거든요. 주님께서 38년 병자를 이용한겁니다. 네 믿음 좋은게 아니고 배후에 예수님께서 38년 병자를 조작해가지고 누구를 겨냥하느냐?


이 율법주의자, 안식일날 들고 가면 안된다는 이들과 예수님의 율법관의 차이점을 드러내기 위해서 애매하게 중간에 욕 얻어먹는 경계선상의 경계선의 존재를 38년 병자를 한거에요. 그게 우리 처지하고 똑같은거에요. 우리는 중간에 끼인 존재가 되가지고 괜히 욕 얻어먹어. 믿음 없는데 천당간대. 이게 정확하게 맞는건데 남들은 믿음 없다고 지옥간대.


아까 그랬죠.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믿음을 갖는다고. 믿음이 있기 때문에 믿음이 들어갈 틈이 없다니까요. 믿음이 있으니까. 그들은 믿음이 어리둥절하지 않아요. 용 써서 얻은거에요. 랄라랄라 기도원 가서 삼천배해서 얻은거라고. 용 써서 한게 어리둥절한게 아니라니까요. 자유가 없어요.


그 다음 기적을 유지하려면 또 빡씨게 또 자기절제, 자기 조심 또 해야 돼요. 함부로 죄 지으면 안되고 행동 조심 이래야 또 복 준대. 그거 안하면 저주 온대. 애가 아프던지 집안 불나든지. 얼마 전 우리교회 불났거든요. 불날 뻔. 밑에 어떤 사람이 담배 펴가지고. 소방차 10대 왔다는데 나는 뭐 교회 없었으니까 몰랐지요. 모르면 되지.. 그런데 다 끄고 갔답니다.


믿음으로 불 끄게 하옵소서 안했는데 알아서 그냥 살아요 우리 교회도. 진짜 불날 수 있어요. 불나면 불나는거지. 살지 뭐. 뭐 어떻게 할건데. 뭘 대비해요? 착함으로 대비할까요? 어디 마귀같은 그런. 착함으로 대비할까요? 그래서 대비하면 누구 증거입니까? 착함으로 대비했다는 누구 증거 돼요? 내 증거 되잖아요.


내 상처를 내 식으로 내 경험한 것으로 메꾸려고 하지 마세요. 그게 바로 요한복음 5장입니다. 뭐냐 하면 주님은 해놓고 너는 빠져라. 너는 빠져라 내가 직접 어둠과 상대하겠다. 자, 그러면 어두움은 분명히 그냥 어두움은 있어요. 어두움은 있는데 어두움의 특징은 뭐냐?


있는데 그냥 있지 않고 예수님의 미리 오심, 메시아의 마지막 때 오시는게 아니고 미리 오심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양상으로 어두움이 나타납니다. 낯선 어리둥절한 체험을 미리 받았는데 남들은 교회 50년 다녀야 얻을 수 있다고 할 때 그게 바로 어두움이에요. 바리새인들이. 목사 섬겨야 되고 뭔가 십일조해야 복 받는다고. 십일조 안해서 저주 많이 받았다고 그런 식으로 해서 인간의 행함을 증거하는 것.


인간의 행함을 증거하는 그것이 어두움이에요. 그게 바로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거에요. 예수님은 나한테 그런걸 요구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요구한거에요. 그게 있어야 명분이 있기 때문에. 뭔가 덜 허전해. 이 불안감이 해소되는 것 같고. 믿고 뭔가 기적이 있어놔야 내가 믿는가보다 하고 약간 안심이 되는 것.


전도할 때 먹혀가지고 예수 믿을께 울면 아 역시 나는 성령과 함께 있는구나 하는 거에요. 그런 것들이 십자가가 빠져버린 모든 고백입니다. 십자가 빠진. 요한복음 5장 있는데 그다음에 5장 39절 유명한 말씀이죠.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누구를 증거하는 것이라?


너희가 아니고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너희가 아니요 하는 것 보니까 너희에게서 예수께 오는 방법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습니다. 없습니다. 내가 성경 상고해보니까 예수님 나오더라. 이런건 없어요. 우리가 시작한 일은 절대 예수님 안 나옵니다. 예수라는 명분이 나오겠지요. 예수는 안 나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증인은 우리가 예수를 버렸다라는 내용을 같이 포함해줘야 예수의 증인됩니다. 나는 주의 일에 협조했다 이렇게 나오면 증인될 수 없습니다. 6장 봅시다. 6장 어딜 보느냐 하면 6장 48절에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그 다음에 먹었어도 그 다음에 뭡니까? 죽었지요. 먹었어도 죽었지요.


만나가 땅에서 농사지은 겁니까? 하늘에서 온 겁니까? 하늘에서 왔지요. 그럼 하나님이 주신거지요. 하나님이 주신건데 살았다? 죽었다? 죽었다 이 말은 죽으라고 먹인거에요. 죽으라고. 인간의 본디 애초부터 죽어야할 존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하늘에서 만나 주신 거에요.


만나가 뭐냐 하면 그거에요. 제초제에요. 제초제. 죽으라고 독약 죽으라고 주는 거에요 만나가. 그럼 무엇과 극한 대조를 이룬다? 너희는 만나 먹어도 죽었잖아요. 그러면 그 이야기를 왜 합니까? 그렇게 이야기한 사람이 내가 생명의 떡이라면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면 안돼요. 나는 생명의 떡이다 앞에 뭐가 있어야 되요? 만나를 대조시켜야 돼요.


만나를 누가 먹어요? 만나를 그들이 먹지요. 만나 먹어서 죽었는데 내가 나를 먹는 자는 뭐가 됩니까? 안 죽는다가 돼요. 안 죽는다가 되지요. 왜냐 하면 죽음을 이기기 때문에. 이미 죽은 만나 오고 주님의 십자가 더해 버리면 만나는 죽으라고 준거죠? 그러면 이미 죽은 자이죠? 죽은 자이기 때문에 내가 살려내는 거에요. 안 죽으면 못 살려내요.


참 어렵다. 내가 안 죽은 자라면 살려낼 수가 없어요. 퍼득퍼득한 놈은 망치로 머리를 완전히 힘을 쫙 빼야 돼요. 그래야 온전히 주님만 자랑하죠. 이래도 안 죽어. 상처. 더 상처 받아. 내꺼 나는 엉망진창이야. 엉망진창되는게 주의 뜻이야. 내세울게 없게 만들어요. 51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무슨 떡이니? 살아있는 떡. 내가 바로 먹어도 사는, 먹는 자는 영생하는 떡이 돼요. 내가 떡이다.


그 떡을 사람이 뺏어먹을 수 없고 딸이 아버지 떡을 뺏어먹을 수 없고 아버지가 쪼개준다고 영생 얻는 것도 아니고 이거는 인간 쪽에서 그 떡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만나 같으면 주워 먹으면 되지요. 이게 인간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이 살지를 못하는 거에요. 내 쪽에서 행함을 시도를 하기 때문에 영생을 못 얻는 거에요. 어리둥절 해야 돼요.


이 떡이 옴으로써 더 이상 나는 내 행함으로 영생얻는게 아님을 아는 자는 이미 성령 받은 사람이고 이미 구원받은 생명의 떡이 작용하는 주님의 증인으로써의 기능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 하루하루가 내 안에 주님이 살아계시는 겁니다. 내 행함 때문에 얼굴 찡그리며 그렇게 살지 마세요.


그 다음에 6장에 65절에 보면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되어있지요. 언젠가 이 강의할 때 했는데 누구든지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아니하시면, 아버지께서 내게 오게 하지 않으면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할 때에 올 수 없다 뺴놓고 나머지 다 지우세요.


그럼 남는게 뭡니까? 올 수 없다지요. 그걸 주목 해야 돼요. 올 수 없는 거에요. 예수님을 얼굴 더듬고 같이 사진 찍고 예수님 껴안고 있고 그래도 예수 몰라요. 올 수 없어요. 여러분 남편하고 아내하고 한 몸입니까? 처음 신혼 때는 한 몸인거 같지요? 살아보니 뭡니까? 아 딴 몸이구나 이렇게 되지요.


부산 강의할 때 그런 예를 들었잖아요. 남편이 질질질 울면서 남자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품고 있다가 이야기한다고 내가 너를 가정을 위해서 헌신하고 내가 상처 나면서 고생하면서 다 줬다. 그러니까 너도 내 말 들어줘야지 내가 가족으로서 너 이렇게 먹여살렸잖아.


이렇게 자기 공로를 하고 아내한테 당부를 할 때 아내 쪽에서 준비된 멘트는 뭐라 했던가요? 혹시 부산 강의 들어본 적 있습니까? 경상도 말로 일부러 부산에서 하니까 경상도 말 썼어요. 표준말 안하고. 나는 표준말도 경상도 말이지만. 뭐라 했냐 하면 유명한 멘트인데 "내가 니끼가?!" 그 한방에 남자는 그로기 상태가 돼요.


남자는 내가 여자한테 잘 해주면 여자가 내 심정을 알고 내꺼 될 거라는 착각 곱하기 착각, 플러스 착각. 남자는 이상하게 이걸 이 착각에서 못 헤어나와요. 때로는 명품 가방 들고 어때? 옷 하나 사입을까 이래가지고 이 말하면 여자가 남자한테 뭐 푹 빠져보이는 것처럼 하지요. 푹 빠져보이는 것처럼 하는 거에요.


또 나올게 있을 거니까. 죽은 송장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소원이나 들어주자. 이런 식으로 해주는거죠. 손해날 거 없으니까. 인간은 누구의 것이다? 아니다? 아닙니다. 심지어 자식 마저도. 자식은 더하고요. 아빠한테 빼먹을 것만 생각하고요. 아빠 좋아? 엄마 좋아? 아 요즘 나한테 이런거 묻는 사람이 있어요. 손녀가 좋아요 손주가 좋아요? 미치겠다. 아 참 답변 곤란하게. 당했어 당했어 난 당했어.


올 수 없습니다. 교회 예배당에 아무리 봉사해도 갈 수 없어요. 이 원칙 분명히 하는 겁니다. 그럼 올 수 없는데 구원받은 사람은 뭐냐? 올 수 없는 예수님께서 떡 속에 이미 그 사람을 만들어 논거에요. 만들어놓고 그 앞에 삭제한거죠.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 놓고. 없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올 수 없는데 아버지가 보낸 자 있잖아요. 6장 몇 절이냐 하면 요한복음 6장 39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아버지의 뜻이 뭐냐 하면 그 다음에 뭐가 돼요? 내게 주신이죠? 내게 주신 자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알까요? 그 명단을 인간이 갖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만 갖고 있어요?


예수님이 갖고 있지요. 명단 가진 분이 일방적으로 찾아가는 거에요. 성령을 통해서. 구원해달라고 손들고 너라고 해주지 않아요. 그냥 기다려. 줄께. 갈께. 인간은 그냥 안 기다립니다. 인간은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에요. 자기가 믿음을 만들어내요. 멋있는 믿음을 성경대로 믿음을. 이건 어리둥절한게 아니죠. 자기가 공들여 만든거에요.


그런데 그 공들여 만든 것을 누구나 다 그런데, 누구나 그래요. 그러나 막상 성령 오게 되면 갑자기 공들인 믿음이 이게 거짓인게 탄로가 나면서 그동안 내가 무척이나 헛수고 참 많이도 했다. 내가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나를 힘들게 했다. 저는 마지막 오늘 할 말이 이거밖에 없네요. 내가 얼마나 나한테 못된 짓을 많이 했는지.


진짜 주님이 나를 쳐죽이기 전에 내가 나를 쳐죽이고 싶어. 뭘 하나 했다고 복 받을 것이다. 뭘 나쁜짓 했다고 저주받을 것이다. 왜 그리 호들갑을. 주님 팔짱 끼고 멍하니 쳐다보고 자기가 자기 기분에 취해가지고 마귀에 농락당하면서.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요. 언제까지 자기 기분에. 자기 정당함. 자기 증인되면서. 성경은 주님 증거하라고 하는데.


마지막 하나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7장에 보면 7장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은 여기에 7장 48절요.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그 다음에 49절 봅시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그 다음에 뭡니까?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뭐다? 저주를 받은 자로다. 저주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저주 받았어요? 안 받았어요? 저주 받았지요. 예수님은 저주 받았어요. 그러면 우리는 저주 안 받을거다 하면 안되겠지요? 우리는 태어남 자체가 저주에요. 죄 지은 사람이 저주 받아야지 뭐 받아요? 멀쩡하지도 않는 인간이 멀쩡한 행세하면 안 되잖아요. 저주하면 저주 받아야지요. 우리는 다른 선택사항이 없어요.


살면서 고생이다. 그걸 아는게 다행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고생인걸 아는 것 자체가 다행이에요. 마치 고생 안해야 되는 것처럼 여기지 아니하고 사는 것 자체가 고생이에요. 사는 것 자체가. 고생이라고 알면 모든 게 감사, 감사지요. 고마움, 고마움 밖에 없어요. 저주 받아야 되는데 이게 왠 은혜인지 왠 사랑인지. 자기 증거 하겠습니까? 다 누구 덕분입니다? 다 주님의 덕분이고 주님의 결과물입니다 이렇게 하겠지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언제까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 모르지만 90이 되도 80이 되도 또 살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마음인 것을 주께서 너무 잘 아시니 감사합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진심으로 주님 덕분에 살고 있음으로 고백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강남-요한복음 21장 24-25절(어리둥절)190917b-이근호 목사.hwp (175.5K), Dow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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