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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8 09:02:26 조회 : 99         
298강-YouTube강의(웃음과 비웃음)20191217-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하림(IP:124.254.210.16)
298강-YouTube강의(웃음과 비웃음)20191217-이 근호 목사


제298강, 제목은 ‘웃음과 비웃음’. 혼자 웃는 것도 웃음이고 그런데 본인은 웃지 않는데 남들이 웃을 때 그걸 비웃음이라 하죠. 혼자 히죽히죽 웃을 때는 누구도 그걸 탓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갔다든지 어떤 심각한 일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모임에 가서 혼자 집에 있을 때처럼 히죽 웃는다면 주위 사람들이 “너 나 비웃어?” 이렇게 되죠.

비웃음은 어떤 때 생기느냐 하면, 타인이 있을 때 남에게 둘러싸일 때 비웃음이 발생되는 겁니다. 혼자 기분 좋아서 웃는 것을 누가 뭐래요. 그런데 혼자 기분 좋아서 웃더라도 남들과 함께 있을 때 혼자 기분 좋아서 웃어버리면 남들이 뭐라고 하느냐면 너 왜 비웃느냐고 그렇게 상당히 이질적으로 나오겠죠.

그래서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고 중립상태. 그 다음에 웃는 것을 +로 보잖아요. 웃으면 +, 울면 -. 혼자 있을 때는 0과 +와 -, 혼자 있을 때 웃는 경우와 우는 경우, 그렇게 구분 되겠죠. 그런데 이게 남들하고 같이 있을 때는 내가 혼자 웃어도 비웃음 되고 울면 또 주책맞다고 뭐라 하고. 같이 있을 때는 중립이 성립이 안되죠. 그 쪽 분위기 맞춰야 되니까.

웃음이라 할 때 남들은 웃지 않는데 혼자 웃을 때는 여기 뭐가 있느냐 하면 ‘본인만이 알고 있는 특이성이 발생되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본인만 알고 있는 것을 자기는 알게 되었을 때 크게 웃는다든지 크게 기분 좋게 되겠죠. 그렇게 될 경우에는 남들 웃는데 같이 웃지 않고 혼자 웃는다는 것은 특별하게 하나님의 간섭 하에 있다고 볼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인간은 그저 분위기 맞춰가며 살아가는 게 인간인데 남들은 웃을 일도 아니고 남들은 울 일도 아닌데 본인이 어떤 걸 보고 웃고 어떤 걸 보고 운다면 이것은 남들을 다루는 방법 말고 특별히 하나님께서 콕 집어서 자기 자신을 그런 식으로 다룰 수가 있습니다.

보통 울고 웃을 때는 남 눈치보고 울고 웃거든요. 그런데 하나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모든 인간을 각자 구별해서 만들어놨어요. 남들 웃는다고 따라 웃을 필요 없고 남들 운다고 해서 따라 우는 게 아닌 거죠.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활동하기 전에 광야에 가십니다.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 갔듯이 예수님도 똑같은 절차를 밟을 때, 또는 세례요한이 광야에 갔을 때 그 때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은 단 한명도 없죠. 왜? 하나님께서 특별히 다루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광야에 갔을 때 함께 같이 참여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 광야에서 낙타털옷 입고 고생했죠.

그래서 진정한 인간됨이라 하는 것은 남들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거예요. 남들 눈치 볼 필요 없다. 남들의 분위기에 너무 휘둘리다 보면 오히려 속으로 물을 수가 있어요. “여러분, 내가 지금 웃어야 됩니까, 울어야 됩니까?”를 하나님하고 의논하는 게 아니고, 뭐 하나님하고 의논할 필요는 없지만, 다른 사람하고 같이 맞춰서 웃고 울려고 한다 이 말이죠.

왜 그렇게 살아야 되죠? 그것은 자칫하면 뭐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관리한다는 그 의식이 없으니까 ‘어떻게 살면 되지’하는 정답이 없으니까, 정답을 하나님께 받은 적도 없고 그러니까 남들하고 비슷하게만 살아가게 되면 ‘나보고 욕은 안하겠지’라고 그냥 묻혀 들어가는 식으로. 어쩌면 인생이라 하는 게 평생에 묻히면서 살기를 원하고 있지 않은지. 못 묻혀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지. 우리가 너무나 소모적이고 세속적이라는 것을 생각해봐야 됩니다.

자, 시편 2편 4절에 보면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께서 기름부은 자를 땅에 탁 두시고 그 기름부은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때. 그 기름부은 자, 메시아죠, 하나님의 아들 또는 성도라 할 수 있는데. 성도도 기름부은 자 맞아요, 왜냐하면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받은 적 있을 때에 니가 그렇게 닮고 싶었던 그 세상이 얼마나 너한테 비웃음을 주는지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합니다.

혼자 집에서 성경공부 한다든지 성경을 볼 때는 혼자니까 주변의 시선이 없으니까 내가 지금 은혜 받았는지 지금 내가 성도인지, 그건 얼마든지 자기의 감정을 조작해낼 수가 있어요. 또 혼자서 기도하고 하다보면 은혜 막 되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진짜 은혜냐 은혜 아니냐 하는 것은 혼자 독방에서 기도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고 사람 있는 곳에, 교회나 사람 있는 곳에 툭 던져지듯이 우리가 한번 나가보자 이 말이죠. 직장에 나가듯이. 나가보게 되면 진짜 은혜 받은 사람은 시편 2편 4절의 말씀처럼 세상은 내가 하는 일에 비웃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한번 발견하는 계기로 삼으면 돼요.

왜냐하면 성경말씀대로 세상은 되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있는 사람은 어떻다? 주변에서 비웃게 된다는 원리. 그 원리잖아요, 시편2편 4절이.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남들한테 비웃음당할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가슴 졸이면서 살았습니까? 그리고 남들이 비웃게 되면 ‘내가 뭐 잘못한 일 있나? 내가 해서는 안될 짓을 했나?’

십자가마을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에요, 여러 사람들의 모임이니까. ‘내가 복음도 아닌데 복음이라고 우기지 않았나?’ 복음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꼭 남들 눈치 봐야 돼요? 그럴 필요 없잖아요. 복음 아닌데 복음이라 해가지고 남한테 내가 상처주면 어떻게 하냐는, 그런 쓸데없는 걱정.

그러니까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시키는 것 같으면요, 남들의 호응이 그다지 필요치 않아요. 주께서 시키는 것 같으면 본인만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데 주님이 시키는 일이 아니고 내가 뭔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조작을 하다보니까 뭔가 내가 제대로 했다, 안했다 그 결과를 타인의 반응을 통해서 점검하려는 그런 시도를 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맨날 하루하루 살면서 맨날 고개 돌리면서 눈치 보기에 바빠요, 눈치 보기에. “여보 내가 지금 잘했어?”, “목사님, 저 믿는 것 맞아요?”, “지금 제가 제대로 인생 천국가고 있는 것 맞습니까?” 맨날 묻기에 바빠. 만약에 그런 사람에게 “당신 지금 지옥가고 있습니다”그러면 엉엉 울고 또 난리. 그런 일 없었지만 예를 들면. 진짜 “당신은 지옥갑니다” 말하고 싶어요. 일부러 골탕 먹이게.

자꾸 주변에 맞추려고 그렇게 할 필요 없다 이 말이죠.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주님은 단독이었고 세례요한도 단독이었잖아요. 뭐 그렇다고 외롭다고 자꾸 짜증낼 필요 없고요. 그렇다고 ‘서글픈 내 인생, 남들이 호응하지도 않는 인생 왜 사냐’ 이렇게 자책할 필요도 없고.

주께서 주시는 그 기쁨과 웃음은 그 누구에게도 빼앗겨서도 안되고 빼앗길 필요도 없고요. 그리고 그들의 반응과 혼탁하게 섞일 생각하지 마세요. 니가 비웃든지 니가 왜 웃냐고 놀리든지 관계없이 나와 주님과의 관계에서 감사하고 기쁘고 하면 그냥 감사의 기쁨, 즐거움의 노래, 그리고 고마움의 마음. 그걸로 밀어붙여야죠.
 첨부파일 : 298강-YouTube강의(웃음과 비웃음)20191217-이 근호 목사.hwp (31.0K), Dow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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