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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2 09:27:46 조회 : 116         
전신갑주 이름 : 송민선(IP:14.55.184.154)
물 위를 걷는 베드로의 사건은 물속에 잠긴 지옥 세상에서 주님만 바라보매 물 위를 걷는 자신이 신기한 것이 아니라 주님 계심에 예수님만 보이고 예수님만이 전부인 순간을 잠시 경험한 사건이다. 요나가 물속에 던져졌을 때 여태껏 지옥 속에 있었음을 여실히 느끼는 순간이었고 그 지옥 속을 인식할 때 십자가에 삼켜진 죽음이 축복임을 알았다.

중학교 때쯤인가 교회 수련회를 갔을 때이다. 자유시간에 남자아이들이 짓궂은 장난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물속에 빠뜨리며 놀고 있었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 유치함에 속하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놀이가 다 끝난듯해서 숙소로 돌아가려고 그쪽을 지나가는데 숨어있던 아이들이 나를 물속에 빠뜨렸다. 물이 깊지 않았는데 일어나려고 하면 자꾸 위에서 눌러서 물속 경험을 제대로 했다. 물속에서 나온 순간 외친 말이 너무 생생하다. “다 죽여버릴 거야” 그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다 들었다. 개그와 다큐도 구분 못 하냐는 분위기가 나를 짓눌렀다.

이 세상에 있으면서 느껴야 하는 건 인간들이 수상한 물속에 잠겨있다는 것이다. 물속에 있으면 잠시도 숨 쉴 수 없는 답답함과 몸부림치는 고통을 느끼는 것이 마땅한데 사는 것이 편하다면 숨을 안 쉬고 있거나 물고기거나 둘 중 하나일까. 그런데 이 답답함이 감지되는 것이 원래부터가 아니라 어떤 개기의 시점에서 전환되었을 때이다. 그 과정은 누군가 자신을 물에서 꺼내주고 있는데 물속에 처박는 손길로 느끼며 그 손에 임자를 죽이고 싶은 살기로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왜? 똥인지 된장인지, 은인인지 살인강도인지, 생명인지 죽음인지, 예수님인지 악마인지 구별 못 하는 영적으로 무지한 자이기 때문이다.

허상에서 실상의 세계로 옮겨지면 현실은 혈과 육의 세계가 아닌 영의 세계뿐이고 우리의 하루하루의 일과는 가상이고 모든 것을 여전히 하고 있으나 무의미가 된다. 그리고 영의 세계에서는 주님께 대항하는 악의 힘이 자기의 몸 안에서부터 모든 주변에까지 가득 차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걸어 다니고 있는 것 같은데 숨 쉬고 있는 것 같은데 물속이고 저주속이다. 갈라짐이 있기 전에는 모든 삶이 살아있는 삶이고 고생스러운 인생은 있을지 몰라도 세상을 가득 채운 욕망의 물 때문에 고통스러울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자기가 살아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물이 코로 입으로 들어가는 고통과 답답이 밀려오는 이 이상 징후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징후를 무시하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충만한 자신감으로 삶을 컨트롤 하려 할 때 드디어 전신갑주의 위력을 경험한다. 전신갑주가 우리를 캡술처럼 포근하고 안전하게 감싸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도 그런 오해가 없다. 오히려 자신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꽁꽁 묶어버리는 느낌, 안에 들어 있는 무언가를 짜내려고 옥죄는 느낌으로 내부를 공격받는다. 압력이 계속되면 쏙 튀어나오는 것이 알사탕 같은 자존심이다. 악마가 인간을 손에 쥐고 주무를 수 있는 원동력인 자존감. ‘그래도 너라면 할 수 있어. 힘내는 거야’

잠시 하나님이 심히 보기에 좋으셨던 에덴동산을 음미하며 어릴적 가졌던 의문을 다시 들춰본다. 악마는 어떻게 거기 들어왔지? 왜 하나님은 온전히 에덴동산의 평화를 지켜주시지 않고 악마가 들어오게 하셨지? 이미 충분히 들어서 이제는 아무도 이런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었고 도리어 선악과를 통해 악마의 실체를 드러낼 실마리가, 앞으로 벌어질 희생 사건의 씨앗이 인간 내부에 자리 잡게 하셨고,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언제든 그 자리에 진짜 임자가 나타나면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알사탕 같은 요소가 장착되게 허락하셨다. 내가 독사의 새끼고 절대자 하나님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이 욕망의 근원이 어디서 오는 지 점점 더 명확해지도록 만들어주는 능력이 전신갑주이다.

그렇게 다 파헤쳐 놓으시고 휘저어 놓으시고 너덜너덜 해져버린 더러운 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주님으로 덮어주심의 능력이 또한 전신갑주이다. 아픈데 고맙다는 말을 하도록 하신다. 자신의 실체를 보게 하셨고 주님도 그 실체를 보셨는데 왜 버리지 않는지 오히려 마음이 찔리고 아프게 하시고, 주님의 몸으로 피로 대신하신 것을 함께 알게 하시고, 이제 죽은 자의 몸에 흐르는 희생의 피가 공급하는 생명으로 살게 하시고, 그 피의 주인이 철저히 사용하신다고 하시매 감사 외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도록 하신다.

이렇게 진리도, 의도,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도, 믿음도, 그 어느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없는 자가 일방적으로 전신갑주를 덮어씌움을 당한 채, 이제 어찌 살아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더욱더 알 수 없는 남은 삶을 허락하시고 우왕좌왕의 연속인듯한데 그 사건의 마지막이 감사가 나오도록 해주시면서 주체되시는 주님이 이루신 심히 보기 좋은 결과물이 되게 하신다.

주님의 승리만 있는 주님의 때로 시간은 이미 종결되었으니 악마의 유혹으로 우리 안의 알사탕이 건들어질 때마다 내가 어떻게 헛짓거리하며 주님을 욕되게 하는지 똑똑히 보이시며 마음껏 물속에서 유영하게 하신다. 스스로 숨을 쉴 필요 없음을 알면 그것이 자유일 것이고 가상에 속아서 숨을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답답하고 곤란함은 자업자득이다. 그러나 주님에게서 다른 곳으로 마음을 돌려 자기 자존감 챙기고 단속하고 있음을 깨닫는 또 다른 감사할 사건의 반복임을 알게 하시고 전신갑주의 능력 안에 여전히 있게 하신다면 그것으로 은혜가 족하고 넘치지 않을까.

나라는 가상존재는 무능자라는 죽은 시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글을 보기만 하면 3분에 성경책 한 권을 다 읽어버리는 눈,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손, 자동차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발, 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는 귀, 불렀다 하면 천상의 목소리가 나오는 목구멍, 이런 멀티적인 기능이 있는 몸을 상상하고 바란다. 이렇게 더덕더덕 강함의 요소를 끌어모아 응집시킨 모습을 말씀은 흉측한 악마의 모습으로 표현한다. 이걸 알았다 해서 그런 것들에서 마음을 돌리기에는 힘의 요소는 여전히 보암직도 먹음직도 한 유혹거리이다.

악마는 세상을 이런 최첨단의 힘의 요건들로 채워 가고있고 인간의 행복과 자신의 몸에 더욱 집중하고 배를 섬길 수 있는 유혹거리로 주변을 포위시킨다. 이런 현상을 세상 신의 농락의 극치라고 말한다면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똑같이 바라고 누리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미친말을 진리로 인식하는 전신갑주의 능력에 갇힌 한통속과 미친 헛소리로 넘기는 세상 권세에 갇힌 한통속이 대척관계를 유지하며 주 밖에세력이 어디를 향해 계속된 공격성을 띠는지를 분별하게 하시는 자리를 성도라는 기능을 통해 만드셨다가 무능자로 사라지게 하시는 현상 속에 주님의 유능하심만 증거되고 있음을 날이 갈수록 더 깊이 볼 수 있게 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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