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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3 10:42:23 조회 : 167         
강남-누가복음 6장 20절 (종말의 위엄) 210518a-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누가복음 6장 20절 (종말의 위엄) 210518a-이근호 목사


오늘은 누가복음 6장 20절부터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라고 되어 있지요. 여기 가난한 자가 있어요. 가난한 자가 있고 이건 사람이죠. 그런데 주님은 무엇과 연관시키느냐 하면은 하나님과 인간 세계에요.


나라는 일부러 작게 쓰겠습니다. 나라가 사람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제가 크게 쓴 거에요. 지금 글씨 쓰는데 신경을 많이 써요. 왜냐하면 우리 교회 어떤 분은 글자 안 보인다고 TV를 85인치를 사가지고 글자 볼려고 샀다는 내가 그 소리 듣고 글자를 차분하게 써야겠다 생각 들었어요.


가난한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거에요. 하나님 나라 이것은 사람의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의 나라가 아니죠. 그래서 여기는 사람이 들어올 수 없어요.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에 사람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슨 뜻이냐 하면은 가난한 자는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없어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데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가 하나님 나라가 너의 것임이요” 라고 이렇게 했단 말이죠. 들어갈 사람이 없는데 예수님은 있다고 얘기했잖아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은 예수님 자신에게 있어요. 예수님 자신이 제가 주일날 설교에 이야기했지요. 포지션은 그 인물과 동시에 등장한다고 했잖아요.


예수님 자신이 뭐냐 하면은 이것이 바로 종말입니다. 메시아는 세상 끝에 와요. 세상 끝날에 와요. 세상 끝날에. 세상 끝이 종말입니다. 그래서 종말을 이렇게 선으로 그으면 창세로부터 세상이 쭉 왔잖아요. 올 때 이게 있음, 있음, 있음, 있음, 있음으로 계속 이어져옵니다. 있음으로 계속 이어져와가지고 종말 되게 되면 이게 한꺼번에 있음이 뭘로 바뀌느냐 하면은 없음으로 바뀌어요. 한꺼번에 있음이 없음으로 바뀝니다.


보통 세상에서도 종말할 때 핵전쟁을 이야기할 때 근처에서 이 양재 이 동네에서 만약에 핵폭탄이 여기 한복판에 떨어졌다고 한다면 순간적으로 모든 것 다 날라가잖아요. 그러면 순간적으로 조금 전까지 있음은 뭐로 없어져요? 있음은 뭐가 된다? 없음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종말은.


저쪽에서 핵전쟁 쏘고 있는데 이 쪽에서 긴 칼 들고 덤벼라하면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말도 안돼지요. 사무라이가 긴 칼 들고 핵폭탄아 오라 하면 면상에 쏴버리면 칼도 다 녹아요. 무려 3000도가 넘는 온도로 쏘아대기 때문에 칼이 녹아버립니다. 없어요. 핵폭탄 핵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핵만 있어요. 잘 들으셔야 돼요. 첫 번째 나오는 어려운겁니다.


핵만 있고 거기에 핵이 떨어진 잔해만 있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종말입니다. 이 땅에는 예수님만 있고 다른 말로 해서 혹은 예수님의 말씀만 있고 또는 약속만 있고 다른 말로 하면 새 언약만 있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결론이 뭐냐? 가난한 사람은 없습니다. 가난하다라는 사람이라는 말씀은 있는데 정작 가난한 사람은 없어요.


왜냐하면 종말의 원칙은 모든 인간은 있음이 아니고 없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있음은 없어져야 한다는 그 원칙에 준해서 종말이 되게 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그 말씀밖에 없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머리 좋은 사람들은 생각하겠지요. 그럼 천국은 누가 가느냐? 예수님의 말씀이 새로운 가난한 자를 만들어내는 거죠. 이게 바로 하나님 언약의 원리입니다. 없는데 가난한 자를 만들어요.


그래서 이 종말 때 내가 여기 있는데 핵폭탄 날라와버리면 그 방사능 폭풍 앞에서 나는 어떻게 됩니까? 없어지지요. 없어지는 거에요. 없어지고 내가 있던 자리에 핵폭탄의 뭐가 있습니까? 여기 핵방사능만 있겠지요. 이것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겁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누가 산다? 종말의 메시아가 내 안에 들어와서 사는 거에요. 종말에는 메시아만 있어요. 다른 사람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 말 듣고 천당갈려고 있는 재산 다 팔고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있는 재산 다 팔고 가난한 사람 돼서 천국갈려고 시도한 사람 있었습니다. 성이 톨씨에요. 톨스토이. 그런데 워낙 재산이 많아서 가난한 사람 줬는데 지금 톨스토이의 기념관에 가면 땅이 수십만개. 워낙 귀족이라서. 줘도 줘도 아직 남아있는 게 그 정도에요. 대부호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약시대를 종말로 보는 거에요. 종말로. 그러면 여기에 이방민족 있고 필리핀 레바논 다른 이방민족 있지 않느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없으면 다른 나라는 애초부터 없는 나라로 취급합니다. 죽은 나라로 취급하는 거죠. 왜 그러느냐면 하나님은 자기가 만든 이스라엘 통해서 자기를 계시하기 때문에. 나타내거든요. 언약 없던 나라가 언약에 의해 생겨났으면 그 언약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기 담깁니다.


그러면 언약의 나라 안에서 말씀은 어떻게 자기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가.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마저도 말씀을 갖고 있던 이스라엘마저도 말씀의 능력을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이스라엘도 인간이니까 감당할 수 없어서 그들은 바로 하나님에 의해서 세계 최초로 멸망하는 나라가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 멸망했다는 것은 다른 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멸망되는 거에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아담의 후손치고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이스라엘 통해서 증명하는 거에요.


이스라엘 마지막에 보게 되면 이스라엘 마지막에 나라 망했잖아요. 망했는데 거기 선지자들 있지요. 다니엘과 세 친구. 말라기. 이런 사람들. 스가랴, 미가. 다 망하고 난 뒤거든요. 그런 분이 생각하는 이스라엘은 어떤 이스라엘이냐 하면은 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니고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들에 의해서 새로 생긴 나라에요. 한번 적어볼까요?


이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남자는 모르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아들의 스펙트럼, 아들의 확장이 아들의 나라가 돼요. 아들의 확장이 아들의 나라. 아들의 나라를 가지고 무슨 나라라고 하느냐. 여기에 나오죠. 아들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합니다. 골로새서 15절에.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겼다.


그러면 아들의 나라말고 이 세상 모든 나라는 무슨 나라가 되느냐 하면은 흑암의 나라가 돼요. 흑암의 나라. 흑암의 나라가 돼요. 흑암의 권세에 있던 너희들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된 겁니다. 어떤 나라에 살다가 그 나라가 도저히 맘에 안 맞아서 다른 나라 가는걸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 세상에서는 이걸 가지고 망명이라고 하지요.


‘망명’. 이 망명에는 뭐가 필요하느냐 하면은 브로커가 필요해요. 망명 브로커. 망명 받는 나라는 심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거기 정보국도 끼어들고 외교부도 끼어드는데 망명했다는 이 뉘앙스를 보세요. 망명이라는 것은 기존 나라에서 못 살겠다. 나 저 나라에 가고 싶다 해서 망명하잖아요. 구약에서는 구원을 망명으로 이해해야 될 대목들이 나옵니다.


그 대목이 뭐냐 하면은 그 대목에 망명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은 바로 직업부터 나와요. 기생. 뒤에 이름나옵니다. 기생 라합. 기생 라합한테 우리가 다음과 같은 질문이 성립됩니다. 당신은 무슨 연유로 조국을 배신하십니까 라는 질문이 성립이 돼요. 당신의 조국이다 이 말이죠. 당신은 무엇 때문에 조국을 배신합니까?


왜 적군의 스파이를 왜 숨겨줘서 그로 인하여 당신의 조국이 왜 망해버렸습니까. 왜 망하는데 일조했습니까. 기여했습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습니까? 거기에 대한 누가 혹시 저 대신 답변해보세요. 기생 라합 대신. 여기서 기생 라합은 뭐라고 답변하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세 자로 이야기하겠습니다.


기생 라합의 입장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으니까. 먹구름이에요. 먹구름. 먹구름의 위엄을 아십니까? 소풍갔는데 저기서부터 먹구름 와보세요. 애들 도시락 챙겨가지고 빨리 차에 옮겨 타고 빨리 그 자리를 피해야죠. 안 그러면 흠뻑 다 젖잖아요. 먹구름의 위엄. 위력. 한국이니까 먹구름 정도지 미국 같으면 허리케인. 집이고 뭐고 다 날라갑니다. 그 종말이죠 종말.


종말하면 늘 생각나는 게 있어요. MBC드라마 아들과 딸에 나오는 제일 막내 종말이. 종말이. 그 먹구름이 몰려오는데 어느 바보가 그걸 보고. 허리케인이 조국이고 뭐고 여리고 성 다 몰살될 판에 종말이 오는데 먹구름이 오는데 조국이고 뭐고 망명이 급하죠. 망명하는데 브로커가 누구였습니까? 정탐꾼. 정탐꾼 숨겨줬잖아요. 정탐꾼을. 이 브로커 역할을 지금 누가해야 되느냐? 여러분이 해야 돼요. 여러분이. 브로커 역할해야 돼요. 브로커 역할.


지금 왜 우리가 오늘 본문 누가복음 6장 20절합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할 때 왜 사람들은 이 말을 못 알아듣느냐 하면은 가난한 자 존재가 있음, 존재가 있잖아요. 가난한 자가 있고 가난해? 이리와 이리와 천국 보내줄게. 지금 그렇게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줄 알고 있는 거에요.


가난한 자는 없어요 이 땅에. 가난한 자는 없다고요. 가난한 자는 누가 만드느냐? 주님이 가난하다고 규정할 때만 가난한 거에요. 제가 한번 적어볼게요. 가난한 자는 없습니다. 가난한 자는 없어요. 그 다음에 21절에 “주린 자”. 주린 자는 역시 없어요. 그 다음에 “우는 자”. 우는 자 없습니다.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는 없습니다. 없는데 뭐가 있느냐 하면은 하나님 나라에 갈 사람은 있어요.


배불러야 하는 자는 있습니다. 웃어야 될 자는 있습니다. 그래서 종말에 웃어야 될 자, 배불러야 될 자, 이런 자는 종말에 없던 자가 예수님에 의해서 이런 자가 새로 생겨나야 돼요. 그러면 이런 하나님 나라가 생겨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이 웃어야 될 자를 이 세상에서는 우는 자로 만들어 버리죠. 그리고 배불러야 할 자를 주린 자로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갈 사람을 가난한 자로 만들어버려요.


그렇다면 이 웃어야 할 자가 생긴다면 이쪽이 원인이 되가지고 우는 자가 결과적으로 생겨나는 거에요. 운다고 해서 웃는게 아니에요. 운다고 해서 가는 게 아니고 웃어야 될 자가 이 땅에서는 우는 겁니다. 왜? 이 땅에서는 예수님께서 그 다음에 22절, 예수님께서 어떤 호칭을 쓰느냐 하면은 여기에 사람의 아들로 오는 시기가 있었어요. 사람의 아들. 사람의 아들을 두자로 뭐지요? “인자”지요.


사람의 아들로 왔을 때는 이 우는 자와 주린 자와 가난한 자는 예수님이 느꼈던 체험과 공통체험을 해줘야 그 사람이야 말로 예수님의 나라에 합세될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이 되는 겁니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은 뭐냐 하면은 이렇게 보면 돼요. 고난 받는 예수님을 가지고 예수님을 사람의 아들로 이야기합니다. ‘고난 받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고난 받지 말아야 될 영광을 받아야 될 분이 이 땅에 와서는 뭐냐? 고난 받는 주님이 되시기 때문에 그것을 이 땅에서 예수님의 호칭이 뭐냐? 인자라고 하는 겁니다. ‘인자’. 사람의 아들로 하는 거에요. 이 호칭은 다니엘에서 나왔고. 다니엘이 고생한 것. 에스겔이 고생한 것에서 나온 거에요.


제가 지금 처음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처음부터 항상 시작하는 전제가 뭐였습니까? 없다는 거에요. 종말이기 때문에 종말은 해충제처럼 모든 걸 다 없애버려요. 없애버리고 그 현장에 말씀만 남겨요. 하나님의 약속만 남기는 겁니다. 누구든지 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정녕 저주를 받으리라. 이 약속대로 살아서 살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에요. 싹쓸이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이 작업, 없는 자를 있게 하는 이 작업은 제가 아까 이야기했지요. 이사야 7장에 처녀가 잉태하여. 다시 한번 볼게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아들에 확장되어서 아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 그게 바로 아들의 나라에 들어갈 백성들이에요. 백성. 백성들이죠. 전에 설교시간에 그런 예를 들은 기억이 나는데요. 미국에 보면 크리스마스 선물할 때 백화점 선물할 때 입구는 좁은데 출구는 넓어가지고 선물이 쏟아지는 그런 삽화를 본 적이 있어요.


예수님은 하나인데 거기에서 많은 자식들이 형제들이 여기서 줄줄이 쏟아지는 겁니다. 그게 히브리서 2장에 있어요. 맏이는 하나인데 형제들이 많이 나오는 것처럼 새로 시작하는 거에요. 새로. 새로 시작한다는 말은 애초부터 있었다? 없었다? 없었는데 예수님만 이 땅에 출몰하신 거에요. 메시아가 출몰하심으로 말미암아 없던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이 되어질 사람들이 등장하는 겁니다. 이게 종말에나 일어날 현상이에요. 일단 종말은 전부 다 없어요. 없다 이 말이죠.


그러면 이 종말의 획기적이고 전면적인 없음에 대해서 악마는 뭐라고 대처하느냐 하면은 여기 보세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지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거에요. 아들이 있다 할 때 어떤 아들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그 뒤에 나오는 필연적인 것은 뭡니까? 거기에 잉태할 자질과 능력을 가진 어미가 있는 것은 필연이다.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아들이 있다는 말은 그 아들을 잉태할 자질, 능력이 있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 이게 필연적이다 이 말이죠. 그러면 여자가 아기를 낳을려면 동침한 남자가 있다는 것도 필연적이죠. 그 필연적인 것을 주께서 없애버리는 겁니다. 이거는 말씀이 아니다 이 말이죠. 더 알기 쉽게 말씀드려서 악마는 인간이 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거에요. 악마는.


그런데 이 악마를 주님께서 뭐로 바꾸느냐 하면은 종말의 심판을 하는 겁니다. 뭘 심판하느냐 하면은 바로 이것을 심판하는 거에요. 인간은 악마와 들러붙어가지고 인간이 가능한 것만 가능하다고 여기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거든요. 이걸 제거해버리는 거에요. 이걸. 제거하는 방법이 뭐냐 하면은 처녀가 아기를 낳아버려요.


남자도 없이 처녀가 아기를 낳아버리는 거에요. 처녀가 아기를 낳는 것과 같은 뜻이 뭐냐 하면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과 같은 거에요. 성령이 뭘 지워버리느냐? 육을 지워버리는 거에요. 누가 요한복음 1장 한번 읽어보세요. 1장 13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뭔가 붙어 있는 말이 있지요. ~~는 아니고죠. ~~는 아니고의 ~~에 뭐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자질과 능력은 그런 식으로서는 하늘나라 들어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에요.


그런 사람 하나님이 넣어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킨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의인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못 들어간다고 섭섭해하지 마세요. 시험도 못 치는 게 어디 합격을 바랍니까. 시험도 못 치는 게. 실력도 안 되는데 뭐 어떻게 들어가요. 못 들어가죠.


자, 천국을 예를 들어서 국수집이라고 합시다. 국수집. 쉬운 예로 국수집이라고 합시다. 여기에 있는데 국수집이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고등학교 나왔는데 고생고생 하다가 누구 어떤 식당에서 허드렛일 하다가 국수집 차렸다. 거기에 대해서 사람들은 별로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 그렇게 되겠지요.


그런데 국수집을 차렸는데 사장님이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하면은 서울대학 나왔어요. 그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것도 서울 법대 나왔어. 요새 서울 법대 국수 만드는 것 가르쳐줍니까? 아니죠. 좀 아깝다. 인재 아깝다 그렇게 되겠지요. 수능 399점이 아깝다 그렇게 되겠지요.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바로 악마는 능력에 어울리는 대우를 받아야 된다는 것. 이게 악마의 세계의 특징입니다.


지금부터 악마의 세계의 특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악마의 세계가. 여러분들이 조금 힘들고 지루하더라도 여러분들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악마의 세계 흘러가는 방법은 이 두 자로 결정납니다. ‘비례’. 악마의 세계는 비례에요. 방금 국수집 얘기했지요. 고등학교 나왔느냐 서울대 나왔느냐 둘 다 있음이에요. 있지만 있음을 그냥 가만 놔두지를 않아요. 서울대학 나와서 하느냐. 제가 들은 소식은 치과대학 나와서 김밥 장사. 뭐 가능성 있습니까? 김밥도 솜씨가 있어야지. 어떤 남자분인데. 그것도 서울대 치대 나와서.


비례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있음 대 있음의 비례에요. 이것은 비례라는 것은 이게 무슨 세계냐 하면은 이게 악마의 세계에요. 지금까지 강의한 걸로 하면 이게 뭐냐 하면은 멸망당해야 될 세계. 멸망당해야 될 세계.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종말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갖고 있던 자질과 솜씨가 전혀 발휘될 필요가 없는 그런 사건이 종말 사건이에요. 뭐 믿음이 있네 없네 그런 거 다 치우고.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질과 능력, 쌓아놓은 그런 재주가 아무 짝도 소용없게 된 것. 그러한 사건이 종말입니다. 그냥 예수만 믿어. 이걸로 끝나는 거에요. 그냥 예수님이 심판주로 오신 것을 믿어. 이게 종말이거든요. 주께서 양쪽에 핵폭탄 들고 온 것은 믿어. 그 앞에서 칼 들고 설치지 말고. 덤벼라! 이런 객기부리지 말고.


악마의 세계는 이야기하면 여러분 쉽게 이해되는 것이 우리가 평소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적절하게 합당하게 내 능력껏 살면 된다. 이게 비례인데. 비례에서 두 종류가 있어요. 정지된 상태의 비례와 그 다음에 운동 또는 다른 말로 변화. 변화 상태의 비례. 정지된 상태의 비례 이것을 하는 겁니다.


아까 국수집을 예를 들면 국수집에 어떤 사람이 주인인데 두 국수집이 있는데. 국수집A .국수집B가 있는데 한사람은 고등학교 나오고 한사람은 서울대학 나왔더라. 할 때 지금은 정지된 거죠. 그런데 나중에 역시 서울대는 달라. 국수집을 너무 개발 잘해가지고 체인점이 200개야. 그런데 고등학교 나온 집은 망했어. 이럴 때 우리는 납득을 해요 그걸. 역시 서울대는 국수집을 해도 진짜 똑똑하게 하는구나. 납득이 된다고요. 정지된 것.


제가 왜 이 말씀을 하느냐 하면은 여기 한번 보세요. 오늘 본문. 가난한 자는 어디 간다? 가난한 자는 하늘나라가 누구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할 때 사람들은 그 다음부터 하늘나라를 목적으로 하기 위해서 하늘나라 내가 여기 있음이 되기 위해서 지금 뭐가 있다고 합니까? 내가 어디 있음에 도전하느냐 하면 가난한 자만 될 수 있다면 주님은 같은 입으로 두 말 안하니까 가난한 자 하늘나라 간다 하니까 가난하게 되면 천당 갈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 것처럼 느껴지는 거에요.


그러면 여기에서 이게 비례죠 비례. 이게 비례에요. 가난한 자가 하늘나라 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지금 자기의 능력과 가난한 자 능력 사이에 뭘 한다? 비교를 해서 비례를 하는 거에요. 비례를 하게 되면 여기 인간의 마음 속에 뭐를 그리느냐 하면은 그래프를 그려요. 그래프를. 그래프를 한번 그려보겠습니다.


이런 그래프를 그린다면 이 그래프는 곡선으로 이렇게 되어 있지요. 곡선으로. 이런 그래프도 있고 또 다른 그래프는 뭐냐? 직선으로 된 그래프도 있을 거에요. 그런데 인생사라고 하는 것은 직선으로 동일한 변화률로 이렇게 가지 않아요. 기분 좋을 때 나 가난하게 될 내가 왜 이 짓하냐 의심해가지고 에이 일단 돈 벌고 보자 하다가 아니야 그럼 천국을 놓치잖아 역시 또 가난한 자로 가야 돼. 해가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단 말이죠.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 변화에다가 뭘 주느냐 하면은 플러스알파를 주고 싶은 거에요. 가면 갈수록 점점 더 하나님이 요구하는 가난한 사람 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겁니다. 모든 노력을. 왜? 어디 갈려요? 천국 갈려고. 이게 무슨 나라? 이 비례 나라가 무슨 나라? 악마의 나라. 그리고 천국은 처녀가 잉태한 거에요. 아예 불가능이에요.


주님은 악마가 가능한 것을 전부 다 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버려요. 인간이 하지 못하는 것을. 그 인간이 하지 못하는 것에 뭐도 포함되어 있어야 됩니까? 가난한 자 되기도 이것은 인간이 못하는 가난한 자가 되는 거에요. 인간이 할 수가 없는 것. 인간이 할 수 없는데 어떻게 가난한 자 될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22절에 나오지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한다” 했잖아요. 주님께서 이야기한 이 가난한 자는 최초의 가난한 자가 누구냐 하면은 사람이 아니에요. 제자들이 아닙니다. 예수님 본인, 인자 자체가 이 땅에 고난 받는 인자 자체가 최초의 가난한 자에요. 그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보고 이야기한 거에요.


자기 보고 가난한 자라고 이야기한 거에요. 자기 보고 주린 자라고 이야기하고 자기 보고 가난한 자라고 이야기하고 자기 보고 이 땅에 우는 자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습니다. 독일에 가면 이런 속담이 있어요. 독일에. 오리가 꽥꽥 운다고 오리처럼 울고 뒤뚱뒤뚱 오리처럼 걸으면 그게 오리냐? 그런 속담이 있습니다. 오리처럼 울고 오리처럼 걸으면 그게 오리냐? 라는 속담이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은 예수님처럼 가난하게 살고 예수님처럼 남을 돕고 바르고 착하게 살면 그게 신자냐? 같은 말이에요. 정답은 오리알을 낳아줘야 해요. 잉태치 못함. 오리알을 낳아줘야 오리에요. 겉모습 폼낸다고 신자 아닙니다. 지금부터 제가 너무 어려워서 주저하는데 어려워도 여러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한번 하겠습니다. 자, 어떻게 변화에 알파를 주느냐. 이 세상 사람들이. 비례에 의해서 된다고 했지요.


비례에서 수직으로 될 때 최소 수평 변화와 최소, 작은 수직 변화율을 해가지고 비례를 끄집어내요. 갈수록 점점 더 내가 하나님이 원하는 착한 사람 될 수 있다는 그런 성화론 있잖아요. 이런 식으로 한다고요.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렇게 보면 돼요.



이게 뭐냐 하면은 x 나왔으니까 2차 방정식이 되죠. 올라갈 때 이 a지점에서 b지점 내려갈 때 이 지점에서 h 라면 하나가 더 들어간 거에요. h만큼 더 들어가면 들어간 변화들이 있을 거에요. 그걸 h로 나누어 버리면 여기에 얼마나 변화되고 더 나아졌는가를 알 수가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2차방정식에 있어서의 그 변화율이라고 하는 것은 이게 무한대로 줄어버리면, 이 변화율을, 곡선을 뭐로 표현할 수 있느냐 곡선을 직선으로 변화가 되는 거에요. 수학에서. 미분이라는 겁니다. 제가 설명을 드릴게요.


인간의 마음은 아무리 세상을 인생을 살아도 인간의 마음은 이걸 뭐로 정리하느냐 하면은 지금보다 어제보다 지금의 내가 나은 존재고 내일 되면 지금보다 더 낫게 됐다는 이렇게 발전하는 일차 직선적 사고방식을 인간은 악마로부터 물려받은 거에요.


종말이 아닙니다. 갈수록 꼴아박는 게 아니고 갈수록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이게 성화론에요. ‘성화론’. 수학에서 미분으로 나오잖아요. 이게 도함수라고. 기울기 나오거든요. 변화율. 이게 비례에요. 어제 존재했잖아요. 어제 내가 있음과 내일 있음 사이를 비례하는 거에요. 그런데 제가 종말에는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종말에는 그 먹구름의 위엄 때문에 모든 있는 것은 모조리 다 날라가버리고 그 현장에 뭐만 남는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의 예언과 예수님의 말씀만 남는 거에요.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오직 말씀만, 말씀대로 못 지킴에 대한 대가. 죽어 마땅함만 남는 거에요. 그냥 잿더미된 것들만 남아있어요. 잿더미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이 최초의 말씀 완성자가 되셔가지고 없는데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그 원칙에 준해서 없는데서 자신이 최초의 가난한 자, 최초의 주린 자, 최초의 우는 자가 되가지고 자기의 그 말씀대로 그대로 적용시켜버립니다.


그러면 아까 제가 한 공식. 천국에서 웃는 자는 인자의 나라 인자가 다녀가신 이 세상에서는 무슨 자라고 했습니까? 우는 자. 천국에서 배부른 자는 이 땅에서 무슨 자? 주린 자. 천국에서 하늘나라 가는 자는 이 땅에서 어떤 자? 가난한 자. 가난한 것은 바로 하늘나라에서 최초의 인물인 예수님을 두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예수님을 두고.


여기에 무슨 1차 방정식, 2차 방적식이 뭐가 필요합니까. 필요 없는 거죠. 이것을 예수님은 이 방식을 수학적으로 하면 이걸 절대값이라고 합니다. 절대값. 절대값은 미분계수가 성립되지 않는다. 끊어져있다 이 말이에요. 끊어져있다.


y=┃x┃ 여기서 한없이 올라가도 한없이 내려가도 연결이 안돼요. 끊어져 있어요. 이게 달리 이야기하게 되면 이렇습니다. 제가 그린 그래프인데요.


곡선이 와서 내려가지요? 전과 후가 다 같이 존재하잖아요. 종말이라는 건 이게 없어요. 이건 없는 거에요. 방정식이 성립이 안 되는 거에요. 있음의 세계에서 악마의 세계에서 통하는 이 수학적 방적식이 주의 말씀에는 이게 해당이 안 되는 겁니다. 종말 이전과 종말 이후에서 이 전에 있는 인간은 없어요.


그런데 종말 이후에 있는 인간은 앞에 있어요. 앞에 있다고요. 종말 이후에 있는 인간은 있어요. 그것도 잠깐 있지요. 잠깐. 이분이 누구십니까? 최초의 이분이. 예수님이죠. 십자가 이후 부활시켰죠. 부활세계에 계신 분이 이 땅에서 죽고 부활했잖아요. 최초로. 그러니까 예수님을 보고 뭐냐 하면은 첫 번째 부활. 첫 번째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이 쪽에 자기 백성이 예수님이 가야 생겨나는 거에요. 이게.


그러니까 곡선 넘어가는 것을 변곡점이라고 하는데 변곡점 이후에 뭐가 또 있는게 아니고 성경에서는 변곡점 이후에 인간은 없어요. 없다고요. 없어요. 백날 더 가난, 나는 더 낮아져야해, 더 겸손해야 해. 더 죄인되야 해. 백날 노력해도 이런 노력은 다 무용지물, 다 없어요.


뭘 시도해도 주께서는 안 받습니다. 뭘 시도해도. 어떤 시도를 해도 율법의 의를 할 만한 예수님처럼 다 지킬 위인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예수 믿는 자기 자신을 믿는 그런 꼼수가 주님 앞에 통할 수 있습니까?


다시 합니다. 악마의 세계의 모든 법칙은 뭐라고요? 비례. 있음과 있음 사이를 비교하는 거에요. 비례. 비교. 모든 판단 다 어디서 나옵니까? 모든 판단, 비교 다 어디서 나와요? 있음과 있음. 나는 너보다 낫다. 이게 무슨 뜻이냐? 둘 다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없는 분이 오신 거에요. 처녀가 잉태한 거에요.


없었던 분이 왔기 때문에 인간의 있음과 있음 사이에는 나의 가능성이 쎄냐 너의 가능성이 쎄냐 나는 고등학교 나왔다. 나는 서울대 나왔다. 누가 잘 되나 국수집 해서 한번 보자. 둘 다 있음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어느 대학 나왔습니까? 예수님의 본래 고향이 어디입니까? 이 땅에 있어요? 없어요? 예수님은 하늘에서 왔단 말이죠. 하늘에서.


하늘에서 오는데 언제 오셨습니까? 종말 이전에 왔습니까? 이후에 왔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종말이기 때문에 종말 때 왔지요. 그러면 앞에서 존재한다는 사람은 아무도 존재할 수가 없지요. 제자들이 주님 저 주님 때문에 살았습니다. 주님 제자입니다 라고 자꾸 있는 척 하는데 기어이 십자가라는 변곡점을 통해서 그 제자들로 하여금 없는 자로 다 만들었잖아요.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없어요. 목자 앞에 양들이 없어요. 양 만들기는 목자 없이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성령을 주셔가지고. 없는 양을 성령을 받은 자만 양이 될 때, 그 때 받은 양들이 역시 나를 찾아와야 돼 이런 식이 아니지요. 왜 제가 양입니까?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 이야기하고 첫째시간 마치겠습니다.


자, 없는 가난한 자를 어떻게 만드는가. 이거는 약간의 우스갯소리지만 그 비율이 100:1입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 웃으세요.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누가복음 15장. 양이 한 마리 있는데 어떤 양이냐 하면은 99마리 양은 그대로 있지요.


이 양에는 무슨 요소가 없느냐 하면은 잃어버림이 없어요. 잃음이라는 요소는 양이 잃어버렸다는 게 아니라 그 양 안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을 잃어버린 아버지에 의해서 잃어버린 그 정보가 들어있는 양이 잃어버린 양이에요.


그래서 가난한 자라고 하는 것은 그 가난한 자가 가난하다는 뜻이 아니고 그 안에 가난한 예수님이 부활 이후에 얼마나 하늘나라의 주인공 되었는가 그 과정과 절차 경로를 담고 있는 자가 가난한 자에요. 그 경로를 담고 있는 자가. 내 안에 주님은 가난하게 오셔서 이렇게 영광스럽게 되었다는 그 경로를 품고 있는 자가. 그걸 품고 있는 자가 가난한 자에요. 그걸 품고 있는 자가 주린 자고 그걸 품고 있는 자가 우는 자에요.


이 비슷한 이야기가 마태복음 5장에 나오지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의 위로를 받을 것이다” 이게 전부 다 누구 이야기냐 하면은 예수님의 심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에요. 유일하게 율법을 지키신 분이 율법 못 지키는 세상에 와서 설움 받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누가복음 6장에 나오지요. 6장 22절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뭐가 있다? “복이 있다”. 복이 있을려면 항상 우리 안에 어떤 요소가 있어야 되느냐 하면은 “인자로 인하여”가 담겨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 이미 복을 받아요.


왜냐하면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 세상이 예수님이 들어있는 그 사람을 동일하게 미워하고 욕하기 때문입니다. 욕 들을만한 짓을 한 게 아니고 나쁜 짓을 한 게 아니고요. 그냥. 세상이 세상답기 위해서 악마가 악마답기 위해서 욕을 하는 거에요. 왜 우리는 다 가능성, 가능성, 가능성인데 왜 너는 뭐 때문에 불가능성, 불가능성, 불가능성 주장하느냐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교회에서.


이렇게 기도해서 복 받았고 이렇게 헌금해서 복 받았다고 전도해서 하늘나라 확장되었다고 이렇게 목회 성공했다고 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끄집어냈는데 한 달란트 두 달란트 이야기하면서. 너는 왜 불가능만 이야기하느냐 말이죠.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소이다. 나는 무익한 종일뿐입니다. 왜 그렇게 기어들어가는 소리만 짜고 우는 소리만 하고.


우리 집은 가난하도소이다. 땅이 25만평인데 그거 안 팔려서 애를 먹고 우리 집에 경비원이 7명인데 7명 요새 월급을 못줘가지고 월급을 300만원 주다가 200만원으로 줄였습니다. 이 정도로 가난합니다. 우리 집에 에스컬레이터 3대 있는데 고장나가지고 못 고칩니다. 이런 식으로 짜는 소리, 우는 소리를 하는 거에요. 이런 식으로.


차를 바꿨는데 벤츠가 맘에 안 든다 해가지고 딴 걸로 바꿨는데 기름값이 더 들어가지고 지금 내가 짜증나 죽겠다. 이 정도로 가난한 거에요. 항상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의 점철, 불가능이 연속되어 있어요. 불가능이. 어느 한구석도 가능한 게 없어요. 굳이 예수님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주께서 그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자, 악마의 나라에서 비례라고 했지요. 그 비례를 아까 그래프로 했는데 이번에는 면적으로 하겠습니다.
면적이 있을 때 이 한 면을 L이라고 하고, 정사각형이라고 합시다. 이 면적은 L² 이 면적이 돼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인간의 욕망이 이걸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조금씩 키워요. 이 키우는 것을 면적의 도함수라고 합니다. 미분이 여기서 나와요. 어떻게 하느냐? 면적을 이렇게 해가지고 이걸 이렇게 키웁니다. 이 변이 L이라면 세세한, 작은 면적을 늘렸으니까 델타L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쪽도 늘여야겠죠, 여기도 늘리면 이 늘어난 것은 뭐냐 하면은 면적을 D라고 하면 늘어난 걸 h라 하면 D+h-D하면 h가 나오겠죠. 요걸 구하는 거에요. 요거는 델타L 곱하기 L, 이게 두 개니까 앞에 두 개 집어넣으면, 이것도 하나 남네, 이거.. 델타L²


이것을 최소화시킬 때 그 변화는 뭐냐? 이 늘어난 만큼 2L로 나온다, 이런 법칙이 있는데,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하루 일과 아침에 눈만 뜨면 델타L 이걸 생각합니다. 하루 눈만 뜨면.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 이게 사는 보람이에요. 이게 세상 사는 사람 보람입니다. 그럼 이런 보람 안 살고 다른 세상 보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 있습니까? 그건 10분 후에.


10분 쉬고 합시다.
 첨부파일 : 강남-누가복음 6장 20절 (종말의 위엄) 210518a-이근호 목사.hwp (189.0K), Dow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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