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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0 14:56:15 조회 : 85         
안양20191107a야5장19절(부정성)-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119.207.152.148)
안양20191107a야5장19절(부정성)-이 근호 목사

야고보서5장19절, 20절 제가 읽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아멘. 형제라 하는 것은 야고보서1장에서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여기서 1장에서 이스라엘을 열 두 지파라 했거든요. 항상 성경에서는 오늘날 일반 사람을 두고 이야기하는 거 아닙니다. 그 이야기부터 어렵지만 여러분들이 들어주셔야 됩니다. 이스라엘이 흩어진 열 두 지파. 흩어진 열 두 지파가 이스라엘이지요.

그럼 이스라엘은 어디서 생기느냐 하면 야고보서2장에 보면, 율법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생겨요. 율법. 율법이니까 (율)법에서 이스라엘 생기는 겁니다. 이 말은 법이 없으면 뭐도 없다? 이스라엘이 없는 거예요. 그 말은 뭐냐 하면 법을 구현하기 위해서 이 땅에 나타나야 될 나라, 민족, 그게 바로 이스라엘이에요.

이걸 가지고 오늘 본문 19절에서는 형제라고 이야기해요. 형제. 그러니까 오늘날 사람들 인식을 보면 굉장히 독단적입니다. 자기들끼리 밖에 모른다. 형제라 하니까 뭐 마피아 조직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 결속력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단순히 그들이 정신적으로 하나로 결속 되었다 하는 그것만이 이스라엘의 존재의 의미가 아니고, 이스라엘이 법에 의해서 구현되는 것이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이 법에 위반하는 위반의 지역은 뭐가 되느냐 하면, 이것은 법에 의해서 불 심판 또는 불바다 되는 거예요. 불 심판, 불바다.

자, 이걸 그림으로 그려보겠습니다. 여기에 툭 튀어나온 미국의 국립공원처럼 바위가 툭 튀어나왔는데, 평지인데 바위가 올라왔다고 봅시다. 그럼 뭐가 올라왔다고 보면 되느냐 율법 또는 법. 법의 지반이 올라왔다고 보는 거예요. 법의 지반. 그라운드가 올라온 거 봐요. 아까 다시 설명하면, 법이 있음으로서 뭐가 생긴다? 그걸 구현하는 구현체로서 이스라엘이 있다 했지요. 법이 없으면 뭐가 없다고 했습니까? 이스라엘이 없는 거예요. 법이 없으면.

그러면 법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없는 데서 돌출된 것. 어떤 큰 바위가 돌출됐다고 보시면 돼요. 그러니 이 법의 지반에 올라왔으면 여기서 비로소 어떤 나라가 세워지지요. 어떤 성, 어떤 나라가 세워진다면 이게 뭐다? 이게 바로 이스라엘이 되고 야고보서에서는 이걸 두 자로 뭐라고 했습니까? 이걸 형제라고 하는 거예요. 형제. 이걸 단순히 너희는 너희끼리 살고 우리는 우리끼리 산다가 아니라, 요게 법이기 때문에 법 밖에는 뭐가 있느냐 하면, 법의 위반이 되겠지요.

어떤 점에서 어려우냐 하면 이게 이스라엘이 등장하지 않으면, 율법이 오지 않으면, 그저 고만 고만한 인간들이 그냥 계곡마다 산마다 전부 다 사는 거예요. 4대 문명의 발상지는 다 뭐를 끼고 있습니까? 강을 끼고 있어요. 이집트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문명, 전부 다 강을 끼고 있다고요. 사실은 그 문명 이름 앞에 뭐가 붙었습니까? 나일 문명, 강 이름을 붙인다고요. 왜, 인체는 75%가 물로 되어있기 때문에 물 없이는 못 살거든요.

바다 있고 강 있고 수렵하다가 나중에 농협 혁명이라는, 후대 사람이 역사가들이 붙였지만. 농협 혁명에 의해서 생산물이 누적이 되면서 드디어 문자가 발견되고 문자 쓰는 쪽과 안 쓰는 쪽이 계급이 발생되고. 쓰는 쪽이 안 쓰는 쪽의 모든 생산물을 착취하면서, 국가의 여분의 에너지가 마련되면, 그 여분의 에너지는 이웃나라를 치는 그러한 저장 힘이 작용해서, 그래서 고대는 끊임없이 전투와 전쟁이 일어나서 영토싸움에 나섰다. 이게 바로 지금 이 세상에서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의 가장 기본 모토입니다.

착취 받는 자의 여분의 잉여물이 노동을 하지 않는 계급을 형성하고, 그 계급에서는 두뇌 문자와 두뇌를 다루고 종교를 다루는 그 계급이 계속해서 고착화, 계급의 고착화를 시키는 거예요. 계급의 고착화. 한쪽은 일하고 한쪽은 일을 하되 분업과 협업입니다. 이건 상식이니까 해봅니다. 분업만 해서는 안 되고, 협업. 분업과 협업 외에 여기에 문자 가진 자. 엘리트지요. 문자 가진 자가 개입해서 분업한 것을 협업하게 만들고 이것을 해가지고 계속해서 문명이 발달하거든요.

여기에 모자라는 노동자는 노예 또는 전쟁해서 끌어 모으고. 이것이 여러분들이 아는 사사기, 신명기, 민수기, 전부 다 심지어 창세기15장에 있는 소돔과 고모라 전쟁. 각 족속 여기서 비롯된 거예요. 전부 다. 그리고 창세기4장에 보면 가인의 후손들도 캐슬을 성을 지어서 하는 것도 전부 이런 거다 말이죠. 그걸 분석할 때는 반드시 경제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어떻게 경제적인 요소가 정치적인 요소로. 이걸 정신적 요소라 하지요. 경제적인 요소가 밥이나 먹던 인간들이 어떻게 제도와 조직과 국가를 형성하는가, 거기에 들어갈 때 어떤 단락, 어떤 절단, 어떤 구분, 어떤 분리가 생기느냐 이것은 뭐다? 이것은 법이다. 법. 법이에요.

이 사람들이 대항하게 되면 위쪽에서 법대로 하라. 이러지요. 법대로 하라. 그러면 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치를 하면 된다, 안 된다? 하면 안 되지요. 노동자들은 정치를 하면 안돼요. 어설퍼서 안 된다니까요. 노동자의 정치가 뭐냐 하면, 노동자의 정치가 이 세상에 성취된 적이 없습니다. 스탈린이 그렇고 북한이 그렇고, 중국이 그렇고. 아무리 노동자들 위한다지만 노동자를 위한다는 빌미 하에 실권은 다른데서 다 권력을 가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문자가 권력이 되는 겁니다. 문자=권력. 이걸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 아주 간단한 공식으로 한 게 아는 것이 힘이다.

그러니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죄라고 이야기하는데요. 복잡하게 이야기할 거 없어요. 결론부터 이야기할게요. 죄는 무엇인가, 죄는 사람 의지하는 거예요. 이게 죄에요. 사람의지 하는 것. 아내가 남편 의지하는 거 죄고, 남편이 아내 의지하는 거 죄고, 자식이 부모 의지 하는 게 죄고, 부모가 자식 의지하는 거 죄고. 하여튼 사람을 의지하는 게 죄가 되는 겁니다. 이건 생뚱 맞는 이야기에요.

왜냐하면 모든 것이 협업이니까. 분업은 자기의 소질대로, 자기의 재미있는 대로, 자기의 취향대로, 선택과목, 자기의 전문 직업. 전문화된 직업을 플러스 된 거예요. 협업. 협업이 되어야 되거든요. 그래야 에너지가 배가 되니까. 에너지가 축적이 되니까.

여기에 분업한 것을 모으는 작업에 문자가진 소위 지식계층이지요. 지식계층이 여기에 정치를 하는 거예요. 경제+정치. 이게 바로 이데올로기, 이게 바로 국가이념이 되는 겁니다. 국가의 이념, 한 가족의 이념, 우리 집안의 이념, 교회의 이념, 전부 다 이런 내막이에요.

그래서 이걸 저는 뭐로 보느냐 하면, 이걸 ‘평범함’ 또는 ‘일상의 무료함’ 이렇게 돼요. 평범. 평범하고 일상인데 그 안에 뭐가 있다? 협업이 되어있다. 그럼 이건 뭐냐,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뭐가 된다? 죄다.

그러면 죄를 안 지으려고 하면 안 되고, 이게 우리의 일상이 죄라면, 차이남. 도대체 이렇게 사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 과연 있더란 말인가, 라고 묻게 되지요. 그게 바로 인간의 법 말고, 인간의 법은 에너지를 규합하기 위해서 필요한 문자적인 문자적, 정신적인 개입이라면 이 법은 숨어있는 하늘나라의 그 프로그램, 하나님의 계획을 지상에 시내산에서 준 게 모세로부터 준 게 법이거든요.

이 법에 입각해서 그 법이 실제로 역사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면 이 율법과 이 세상 사이에서 도드라지게 돌출되는 거죠. 돌출되게 되면 이스라엘이 법대로 하게 되면 이게 뭐냐, 죄가 아닌 거예요. 죄가 아니라면 죄란 뭐냐, 죄란 이스라엘처럼 되지 않는 게 죄인데,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여기에 어린양의 희생을 하는 겁니다. 어린양의 희생을 요걸 뭐라고 하느냐 ‘주의 이름의 자리’ 또는 ‘주의 이름의 임재 공간’ 이게 성막이죠. 성막.

아까 차에서 언급했는데 동탄에 가면 성막을 그대로 실측으로 해서 그대로 있어요. 제가 이스라엘 가서 계획도 없었는데 차를 길을 잃어가지고 가봤는데 성막 있는 곳에 와가지고 그 동영상을 다 찍고 하필 그 해설할 시간도 안됐는데 일부러 해설자를 불러가지고 돈까지 줘가면서 딱 우리 세 사람을 위해서 40분 동안 해설했고, 중간에 배터리 다 떨어가지고 잠간 쉬고 갑시다. 해가지고 배터리 교체해가지고 마저 다 해가지고 우리교회에 보면 성막 설명 다해놨어요. 성경 볼 것도 없이 그거 보면 히브리서 다 나와요. 히브리서의 성막이야기.

그 안의 특징이 뭐냐 하면,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오늘 강의 핵심입니다. 의지할 사람이 없어요. 제사장 의지하면 안 됩니다. 안돼요. 제사장도 뭔가 유령한테 홀린 거 같아. 없는데, 있는 사람보다 더 심각하게 존재성을 느끼면서 그 법대로 시키는 대로 벌벌 떨면서 그것도 금방울, 은방울 달면서 방울이 딸랑딸랑, 방울이 멈추면 죽은 거거든요. 벌벌 떨면서 그걸 하더란 말이죠.

저 어릴 때도 우리 집안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아이고~ 웃기지요. 그 집에 어른해가지고 평소에는 술 먹고 옛날에는 술 많이 먹었거든요. 술 먹고 진짜 해악질 다하다가 꼭 제삿날만 되면 그날 동네 목욕탕에 가서 목욕하고 또 두루마리를 입어요. 어제 어른이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아는데 불구하고 그 날 만큼은 일반 탈일반이 되어가지고 제사장이 되는 거예요.

해가지고 “에끼! 가! 여자는 가!” 여자는 이제 벌쭉하니. 음식은 여자가 다하고. 문만 열어놓고 벌쭉하니 서있다고요. 아들만 오라해가지고 제사장 옷은 입고 온 무게는 다 잡아요. 하여튼. 그러니까 마치 as if. 마치 ~ 있는 것처럼. 마치 뭐가 있는 것처럼 거기서 온 회개의 마음을 담아서 그저 자식들 잘되게 해주시고 집안 잘되게 해주시고 화목케 해주옵소서. 해놓고 지방 써가지고. 지방하니까 전라도 일기 예보하는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고 조상의 신분을 써가지고 떡하니 붙여놓고 “절해라. 어이, 절해라.” 하는 거예요.

평소에는 그 부모님이 아무 지목도 없다가 평소에는 자식이라면 “니도 계획이라는 게 다 있구나!” 하면서 백성 노릇하다가 그날만 되면 어른 노릇 다해요. 가오하지요. 가오(폼). 있는 폼 다 끌어 모아서 무게 팍 주고요. 낮에 목욕 갔다 왔으니까 인물 훤하게 해가지고. 여자들은 타이밍에 맞춰서 치워라 할 때 빨리 치우고, 또 음복해가지고 니도 한 잔 먹어라 해가지고. 참, 교회 다니는 사람이 제사할 때 과연 그 음복을 먹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하는 이것이 과연 논쟁거리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왜 신앙이 어려우냐 하면요, 이 세상은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익숙해졌어요. 이게 몸에 베어버렸어요. 그런데 법대로 한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중간에 텅텅 비어있다는 거예요. 비어있으니까 둘 중에 하나에요. 실제로 성령을 받았는지, 아니면 흉내, 그러니까 지가 스스로 종교성을 일부러 상상력을 동원해서 주님이 없는데 있다고 자기가 억지로 꾸며서 주여! 라고 이렇게 혼자서 연기를 피우는지. 그런 것은 나중에 오늘 강의 보면 다 들통 납니다. 오늘 강의는 이거 들통 내는 거예요. 이런 헛짓하는 것과 진실로 동행하는 자의 그 차이성을 이야기할 거예요.

티벳 성녀들이 여러분이 티벳 성녀들이 기도하는 거 봤지요. 그냥 기도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다 기록해놓고 한 바퀴 훌터 가요. 손에 쥐고 돌리는 것도 있고. 하여튼 간편하게 아이디어 해가지고 있어요. 또 이렇게 히말리아 산 높은 산마다 티벳 불교가 빨래 널어놓은 것처럼 꽂아놓고 오색으로 하지요. 저 쓰레기 좀 다 치워라 이리 해야. 그런데 그게 뭐냐 하면 우리의 염원을 담아서 말씀에 티벳 경전을 담아서 온 우주에 퍼져라는 뜻이에요. 바람 잘 부니까. 우리가 늘 기도 못하니까 우리 대신 마음을 담아서 펄럭이면서 온 천지에 자비가 넘쳐라, 이 말이지요.

자비가 넘쳐서 중국한테 그렇게 무려 100년 이상 중국이 당나라부터 티벳이 핍박을 받았는데 그 핍박 받은 거 그 이야기 들으면요, 슬퍼도 너무 슬퍼요. 이 바보같이 계속 빌고 있고. 저쪽에는 탱크 쳐들어오고 있고. 그럼 방법은 뭐냐, 나치가 히틀러가 쓴 방법이 뭐냐, 유대인으로 하여금 유대인을 처벌하게 하는 겁니다. 나치의 고위 간부가 그 유대인 순사까지 단 한명이 독일 사람도 구경 못했다는 말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유대인한테 특정 사람에게 출세하고 너만은 지켜주겠다고 거짓말해가지고 자기 민족으로 하여금 자기 민족을 관리하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해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거예요. 수용소는 독일군이 있지만, 가는 도중에는 전부 다 자기들끼리 잘 아니까, 게토라 하지요. 유대인은 따로 고립된 수용지를 게토라고 합니다. 게토레이 말고. 똑같은 방법을 모든 사람이 다 사용하는 거예요. 왜냐 하면 권력 앞에 법은 종교란 아무 허약하기 짝이 없거든요. 그러니 가짜로 이렇게 한 것은 전부 다 허약하기 짝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고정된 이스라엘로 만들지 않고 이걸 변신을 시킵니다. 흔들어버리지요. 역사에서 움직여버립니다. 움직여버리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다시 한 번 이야기합니다. 법이 없으면 이스라엘 없습니다. 그럼 이스라엘이 있다는 말은 법을 간수한다는 조건하에 그런 요건을 갖출 때 이스라엘 되는 거예요. 율법의 요건을 갖출 때.

보통 민족은 뭐냐 하면 내 몸둥아리 있으면 그게 민족이에요. 단군의 자손 혈통이면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법이 없으면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백날해도 그건 소용없는 거예요. 몸이 우선이 아니고 법이 우선이다. 법이 우선인 것은 법의 우선은 어제 수요일에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것이 주로부터 와서 주로 말미암아 주께 돌아가는 이것을 율법 또는 언약 안에 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계시는 장막에는 아무리 두 눈으로 봐도 결코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구심체가 이스라엘을 이동시킵니다. 이동시킬 때, 여기서 이제 무지 무지 어려운 이야기 나와요. 우리가 보통 이동시킨다 하면 그 지리상의 이동을 말하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지리적 그러니까 공간적이지요. 공간적 이동 + 시간적 이동. 이게 어려워요. 이게 굉장히 어려워요. 시간이 기존에 민족들이 인간들이 알고 있는 그 시간을 적용시키지 않습니다.

그 애들 문방구에 팔랑개비 쥐고 있으면 이게 안 움직여요. 그런데 애가 막 뛰잖아요. 뛰면 뛴다는 그 이유 때문에 공기의 순환이 발생해서 팔랑개비가 마구 돌지요. 이스라엘은 가만히 있으면 이스라엘이 아니에요. 율법은 그 목적을 향하여 나가야 됩니다. 그 목적은 여러분이 아십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룬 거예요. 십자가를 새 언약이라 하고 율법을 옛 언약이라 하거든요. 옛 언약은 가만히 있는 법이 없고 반드시 그 목적을 향하여 달려가게 되어있어요. 새 언약으로.

달려가니까 팔랑개비가 달려가니까 뭐가 바뀌느냐 하면 공간의 개념과 시간의 개념이 기존에 인간들이 갖고 있던 시공간 개념과 차별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분인데, 보이지 않는 분이 이스라엘을 이동시켜요. 여러분이 잘 아시지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 이게 말이 돼요? 구름기둥, 불기둥을 인간이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공장에서 안 만들어냈어요.

그런데 그냥 떴어요. 그냥 떴기에, 보통 이 세상은 내가 만들어야 그것을 믿음의 대상이 됩니다. 내가 만든 거. 내가 애를 낳아야 내 자식이에요. 그냥 아무 애나 데려와 가지고 니 자식이라 하면, 이건 <태양의 계절>이라든지 <수상한 장모>드라마처럼 출생의 비밀이 얼켜 가지고 복잡해요.

그때는 마지막에는 머리카락 잡아당겨가지고 머리카락 취해가지고 DNA조사해봐야 그 때 DNA보고 옳다. 내 자식이야! 이제 복수할 거야. 이리 시작되거든요. 하여튼 아침 드라마 끝에 보면 꼭 DNA등장하고 그 다음에 복수하고 복수 뒤끝은 감옥소가는 게 아니고 정신병 되는 거죠. 시청자 다 정신병자 만들어 놓고.

보이지 않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여금 새로운 공간이동 하는데 이스라엘 자체가 법이 있기에 이스라엘 있습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이 논리를 잘 보세요. 법이 있기에 이스라엘이 있다면 법이 있는 겁니까? 이스라엘이 있는 겁니까? 법이 있음에 이스라엘 있음이 종속되지요. 그럼 이스라엘은 지워버려도 되는 거예요.

법은 자기 고유의 목적을 향하여 그냥 질주하는 거예요. 분노의 질주, 그냥 질주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누구냐 하면, 애굽에 살던 사람이에요. 못 따라가요.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속도가 너무 빨라가지고. 천천히 좀 갑시다. 천천히 갈 수가 없어요. 속도가 빨라서 못 가는 것이 아니고, 이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굽에 살던 사람이기 때문에 뭘 의지하느냐 하면 사람을 의지해요.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옆에 다른 주변사람한테 모든 정신세계가 수입이 돼요. 뭐로 수입되는가, 문자로. 문자 이야기했지요. 기존에 교육 받은 것이 나한테 계속 삽입이 된다니까요. 그래서 저거는 할 수 있는 거. 이거는 못하는 거. 늘 주저하게 되고 갈등을 유발하게 되어있습니다. 늘 갈등을 유발하게 되어있어요. 모험? 그건 모험할 겁나서 못하지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백성을 어디로 인도했느냐, 홍해로 인도했지요. 애굽에서 배운 그들의 학문에 의하면 바다는 빠져죽게 되어있어요. 이건 오징어나 고래나 살지. 인간은 살면 안 되는 거예요. 길이 없는 곳이에요. 아~~ 이게 인제 가짜신앙과 진짜신앙이 티가 다 나버리는 거예요.

왜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티벳 불교 선교처럼, 이거 둘둘 도는 말씀 종이를 한 번 돌때마다 하여튼 얼마나 쉬워요. 한 번 할 때마다 만약에 3년을 산다면 3천 동방사기처럼 이거 계속 가가지고 정성만 들이면 되잖아요. 정성만. 옛날 우리나라 토속신앙처럼. 새벽기도 40일. 딱 고정되어 있잖아요. 십일조, 십분의 일 드림. 얼마나 쉽습니까. 간편하고. 안되니까 믿어야지. 이건 너무 어려운 이야기에요. 우리의 몸에 있는 반 율법적인, 비 율법적인 아니 율법에 대항하는 악마의 속성은 보통은 잠잠해요. 잠잠한데.

이 하나님의 법이 들어오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킵니다. “50년 다녀줬잖아요. 됐잖아요. 그만하면 복 줘야지. 50년 정도 교회 다녔으면 저로 갤러리있는 아파트 하나 주셔야지. 주여! 이게 뭡니까? 지하. 아직도 물새는 비오면 걱정되는 지하 단칸방 이게 뭐예요? 어쩌란 말입니까?” 이런 식으로.

인간의 본색을 드러내는 거예요. 이 법이 오게 되면 이 법은 주변에 이방나라를 홍해처럼 버팁니다. 여러분, 요단강 갈 때에 그 중심이 뭐냐 하면 제사장이죠. 제사장이 중심이 아닙니다. 제사장 중심에 뭔가 있었어요. 언약궤입니다. 언약궤. 돌판이 들어있는 하나님의 법이 이동하는 대로 가야 요단강이든 홍해든 다 열린다고 심지어 여리고성 돌때도 앞에 군대 있고 뒤에 군대 있되 중간에는 뭐냐, 군대 해봐야 나무로 만든 무기에요. 앞에 군대 있되 그 중심에는 뭐냐 하면 제사장이 나팔 불고 언약궤 짊어지고 가는 거예요.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저쪽에서는 분업과 협업으로 강력한 무기가 발달되었습니다. 전쟁은 해 본 나라가 잘해요. 전쟁을 못하는 사람은 잡아먹히기 쉬워요. 농민들 쟁기 들고 해봐야 농민혁명 백날 해봐야 일본의 자동 소총 앞에 다 무너졌습니다. 그게 전봉준이가 하는 그 무지함이 그래요. 전봉준의 무지함이. 우리가 일본을 미워하는 걸 이해가 되는데 객관적으로 따져보세요. 한국하고 일본하고 전쟁한 거예요. 19세기말. 1800년 말에. 고종 황제 때. 전쟁해서 진 거예요. 저서 일본이 모든 걸 가져간 거예요. 그럼 누구 탓해야 돼요? 탓을 왜 일본 탓을 하지요? 니 좀 잘하지 왜. 선진문명해가지고 전쟁 만들지. 이제 와서 왜 그래요. 이제 와서.

일본 맥주 안 마신다 하니까 술은 안 좋으니까 마실 필요 없고. 전쟁에 진 거예요. 전쟁에. 전쟁에 진 거예요. 똑바로 봐요. 우리 편, 니 편하고 전쟁에 진 거예요. 이긴 자는 전쟁의 모든 걸 가져가게 되어있어요. 그게 이 세상 사회에요. 기독교 기도해도 소용없어요. 이 세상이 그래요. 구조가 그래요. 여리고성 앞에 있을 때에 이스라엘이 내민 것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우리 가운데 우리는 없다, 에요. 법이 앞장 서야 되지, 우리 없는 거예요.

왜냐, 법에 누가 있다? 하나님의 자리니까. 이름의 자리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이름의 차이점은?” 누가 묻거든, “하나님은 계획하시는 분, 이름은 그 계획을 전쟁이라는 방식으로 실행하시는 분.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만군, 군대를 지휘하는 만군의 여호와. 이 지상에서는 전쟁하는 사령관의 모습이 하나님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창세전에 계획을 하신, 입안을 하신,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하나님이다.” 이 땅에는 전쟁이 멈출 수가 없어요.

‘마하나임’이라는 여러분,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창세기32장2절. 야곱이 얍복강 만나기 전에 천사를 먼저 만났고, 천사가 말하기를 “너한테 준 모든 법, 약속, 언약은 니가 이루는 게 아니야.” 야곱은 없어요. 니 등짝에 숨어있는 이스라엘. 아직까지는 야곱이 자기 등짝에 이스라엘이 있다는 것을 몰랐지요. 그냥 야곱인 줄 알았지요. 그 이스라엘을 향하여, 목표로 향하여 천사가 하나님의 일방적인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는 겁니다. 그래서 얍복강에 천사가 나타난 거예요.

성경에 우리가 믿을 건 없습니다. 성경에 아무것도 믿지 마세요. 다만 믿으려면 이걸 믿으세요. ‘없는 내가 왜 있지?’ 이걸 믿으세요. ‘내가 없어도 되는데 내가 여기 왜 앉아있지?’ 이걸 믿으라고요. 이걸 오늘 강의에 제목의 후보감인데, 뭐냐 하면 ‘바닥을 쳐라.’ 어떤 바닥? 광야의 원칙. 인간을 의지하는 게 죄거든요. 그러면 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뭐냐 하면, 이건 불가능한 거예요. 왜? 우리 속성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이기 때문에.

강남강의에서 그런 거 했잖아요. 그것만이 내 세상. 전인권이 불렀던. 눈에 보이는 게 전부에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경은 말합니다. “니 안 되지?” “안됩니다. 나는 내 보이는 게 전부입니다.” 죄가 어떻게 의가 되는가, 결과 욕심 내지 말고, 믿고 나는 의인됐다. 결과 욕심 내지 말고.

그 과정이 도대체 무슨 과정이기에 이 닭다리에 무슨 짓을 했기에 맛이 나는가, 치킨 선전처럼. 도대체 나에게 주께서 무슨 짓을 하셨기에 죄인이어야 할 자가 요한일서5장에 보면 뭘 해도 죄 없다 하시니 도대체 저한테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그럼 주님 뭐라고 하느냐 하면, “니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오히려 되 물어요.

그래서 성경은 뭐냐 하면, 도대체 하나님은 무슨 짓을 하느냐가 주제가 되고 그 주제를 알려면 반드시 거기에 짝이 있어야 돼요. 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하며 살아가느냐, 그걸 단짝을 이루어서 주고받으면서 설명이 되어야 돼요. 그거 단짝 하라고 이스라엘 한 겁니다. 이스라엘 못 따라갑니다. 속도가 빨라서가 아니라 계속 출구 없는 곳으로 가기 때문에 미쳐버리는 거예요.

광야의 특징은 마실 물이 없고 양식이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광야라는 의미가 처음에는 물이 없고 양식이 없다가, 됐다가 이게 새로운 주님의 시공간을 첨가된 시공간으로서 강제로 이끌게 되면 뭐냐 하면 인간의 내부로 돌아와요.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사랑한 적 없다. 하나님의 율법은 사랑하라 했는데 우리는 사랑한 적 없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한 적 없다. 누구든지 나 건드리면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나는 반발한다 하는 반발의 세력이 괴물이 우리 안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노출시키는 방향으로 광야를 계속 끌고 갑니다.

일부러 강력한 키가 큰 강한 무기를 가진 자로 하여금 목표인 약속의 땅에 지키게 함으로서 버티게 함으로서 포도가 생산되는 것은 좋았는데 거기에 지키는 토착민들이 세도 너무 세더라.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 열 번이나 해요. 애굽으로 돌아가자.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다수결이에요. 10대 2에요. 이건 게임이 안돼요. 10대 2정도 되면요, 지금 있는 택지 개발 못합니다. 75% 이상 찬성이 되어버리면 끝나요. 도장 다 찍어서 나가야 돼요. 현행법에. 지가 살고 있으면 혼자 장사 낼 수는 없어요. 장사 딴 데 해야 돼요. 보상금 얼마 되지 않고 나가야 돼요. 75% 찬성했기 때문에. 여러분, 80% 찬성했습니다. 못 갑니다. 할 수 없이 갈렙과 여호수아도 못 들어갔지요. 모세도 못 들어갔어요.

결국은 뭐냐 하면 환경 탓하다가 손가락을, 너 자신을 봐라. 배 째고 니 창자 있는 곳에 뭐가 있는지를 니가 끄집어내는 해충이 어떤 괴물이 내 안에 자리 잡고 나를 조정해 왔다는 그 사실. 하나님의 법이라면 죽어라고 싫어하는, 진짜로 하나님이라면 이용가치는 있지만, 근원적으로 하나님 싫어하는 그런 요소가 우리에게 있다는 거예요. 그걸 크게 쓰겠습니다. 바라기는 이 말이 은혜 받았으면 좋겠어요.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인간은 절대로 하나 된 적이 없어요. 뭘 믿어요. 사랑을 믿어요. 내가 준 사랑을 믿지요. 내가 준 사랑을. 그걸 내리 사랑하지 않습니까. 자식 사랑을. 부부야 갈라서면 그만이지만, 제일 힘든 것이 내 몸에서 낳은 자식은 마지막 나의 발목이에요. 발목이 잡힘이거든요.

이건 없는 데서 내 몸둥이에서 생긴 거기 때문에 내 팽겨 치고 도망치는 것은 고유정이나 할 짓이지, 다른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독해가지고는 못한다고요. 그걸.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보고 자식을 바치라 했잖아요. 우이 그걸 끊어요. 인간은 못 끊어요. 아니 남이야 헤어지면 그만이지요. 처음부터 바이 바이인데 뭐.

어떤 사람은 하데요. 왜 이혼하느냐 하니까, 이혼하면 외롭지 않겠느냐, 하니까 이혼해서 외로움보다 같이 있는 외로움이 더 컸어요.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에요. 그게. 여러분이 다 수준이 있으니까 어렵게 가겠습니다.

좀 어렵더라도 참으시기 바랍니다. 동질성 속에 타자의 요소를 개입해서 새 창조를 성사시키는 것, 이게 주의 뜻인데. 여기 동질성은 나지요. 나의 확장 맞지요. 나의 타자가 여기서 이질성이지요. 이걸 부정성, 이질성. 또는 대립성. 이미 나는 나로 나의 적합한 것만 일단 내 허락 맞고 다 들어왔어요. 강아지든 고양이든 집이든 식구든 산다는 것은 같이 산다는 것은 얼추 정치적 협상이 내가 용인되는 범위 내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물론 남남이지만, 서로 양보할 거 양보하고, 협상할 거 협상하고 그리 된 거예요.

무릇 자식은 어쩔 수 없지만, 자식은 지밖에 모르니까. 부모 계속 이용하니까요. 나중에 크면 지 잘났다고, 사춘기 되면 사춘기는 초등학교2학년부터 사춘기니까. 뻣나가게 될 거예요. 어쨌든 간에 같이 산다는 것은 현재의 기분 상, 현재의 기분으로서는 용인이 되기 때문에 같이 사는 거예요. 살겠다는 것은 내 구역에 니가 너무 심하게 발을 들여놓지 않는 조건하에 같이 어울릴 수가 있는 거예요. 이게 동질성입니다.

동질성이라 하는 것은 안에 내 것으로 꽉 차있는 거예요. 이것이 나만의 시공간입니다. 나의 추억이고, 나의 기억이고, 나의 과거고, 이것이 내 것으로 꽉 차있어요. 꽉 찬 만두 있잖아요. 꽉 찬 만두. 내 것으로 꽉 차있는데 약간은 떼어줄 용의가 되어있어요. 남편하고 또는 자식 같으면 양보는 된다고요. 양보는 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니도 니가 벌어서 니 아르바이트해서 벌어라, 하겠지요. 요 정도. 이렇게 한다 말이지요. 여러 가지 교육적으로 하는 것은 핑계고요. 인간의 모든 말은 다 핑계고, 실제로는 뭐냐 하면 내 것으로 꽉 차고 싶은데 내가 현실이 허락을 안 하니까 봐주는 식으로 한다 말이에요.

이 안에는 나의 권력, 나의 장, 필드에요. 나의 힘의 장입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왔는가, 바깥에서 온 거예요. 바깥에서. 바깥에서 들어왔을 때 이걸 뭐라 하느냐, ‘주름 잡힘’이라 해요. 용어들이 다 어렵지요. 용어가 어렵지만 참 적절해요. 주름 잡히는 거예요. 주름 잡혔다가 반가운 사람 오면 주름이 확 펴지고요. 얼굴이 가장 밝아지고. 만약에 빚쟁이들이 오면 갑자기 주름이 오므라져요. 딱딱해져요. 이 정도로 내가 용납해줄게. 허락해줄게. 여기까지는 안 돼. 나중에 돌멩이가 되거든요.

그런데 주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이 동질성과 전혀 안 맞는 이질성으로 쳐들어와요. 뭘 들고 왔느냐하면 시. 공간을 가지고. 이게 광야의 원칙이거든요. 시. 공간, 낯선 공간 내가 이 동질성을 유지하려면 여기 생존에 필요한 힘들이 있어야 되고, 지혜가 있어야 되고, 경험들이 있는데. 광야는 그런 것들이 말짱 소용없어요. 아무짝도 소용없어요.

나의 나됨을 뽐낼 수 있는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안 되어있는 거예요.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오늘 용어 막 터진다.) 균등성이에요. 균등성. 어떤 사람도 잘날 수가 없어요. 사막에서는. 해병대 출신이고 관계없어요. 해병대고 방위 출신이고 관계없어요. 전부 다 똑같아요. 상황이 그렇게 몰아가요. 전쟁 상태가, 하나님이 벌인 전쟁 상태에 가게 되면 자기 솜씨 발휘가 잠시 그걸 주춤하고, 접고, 우리 대장이 어떻게 골리앗을 물리치는가, 그런 영웅 나타나기만 고대하게 되어있어요.

그 순간, 이쪽의 소년 다윗 빼놓고 전부 다 균등해요. 모두 다 쪼다에요. 쪼다. 입이 있어도 한 말도 못해요. 그리고 난 뒤에 다윗이 이기고 난 뒤에는 공로 세운 것에 대해서 내가 더 지분이 많다고 행세한다고 하지요. 서로 뜯어먹기 하는 거예요. 무조건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힘을 합치다가 정권 잡고 난 뒤에는 “저 에너지 공사 사장은 왜 니 계열사는 왜 사장시켰느냐?” 이리 또 싸우는 거예요. 공기업의 누굴 이렇게 낙하 인사한 거 가지고 또 싸우고 미래당, 한나라당 다 삐져가지고 당 다 깨지는 거예요.

그러나 할 때는 일단 힘을 합치고요. 길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누가 옆에서 차가 와서 갑자기 삑! 하면 아이구, 미안합니다. 하면 우이! 당신이 어떻게 이 사람한테 이렇게 차로 위협을 하느냐. 갑자기 적이 됐다가 그 순간만큼은 한패가 되고 사태가 끝나고 난 뒤에 또 싸우지요.

여행가게 되면 여행가고 관광할 때는 한 패고 호텔에 오면 또 싸우고. 돈 너무 많이 썼니, 뭐 썼니, 그 코스 가자했는데 왜 안 갔느냐, 너무 피곤해서 어떻게 하다가 또 하게 되면 또 지켜줘야 되고. 왜 혼자 놔두냐 또 싸우고. 또 혼자 놔두지 않고 챙겨야 하고. 챙기려하니까 니가 알아서 온나. 니 이 동네 말도 모르는데 영어도 못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또 싸우고 하지요.

동질성 속에 이질성이 들어오는 거. 이게 죄에서 뭐로 변한다? 의가 되는 거예요. 믿는다 하는 것은 이걸 믿는 게 아니고 그 과정을 믿는 거예요. 주께서 저한테 무슨 짓을 하셨습니까? 그게 믿는 믿음이지, 나 의인이다. 이거 믿음 아니에요. 아~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신다. 그건 이스라엘이나 한 짓이지 망했던 이스라엘이나 한 고백이에요. 이스라엘은 챙기는 것만 챙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자아가 동질성이니까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 것은 사전에 예전에 다 내쫓았거든요. 그러려면 나가 살아라! 다 큰 게 나이 40 넘어가지고 장가도 안가고 나가서 따로 살아! 옥탑 방에 살던 내쫓았잖아요. 무조건 이건 내 마음에 맞는 것들만 오고 그 가장자리 빈자리에는 뭐가 채우느냐 하면 강아지가 채우는 거예요. 외롭다고 강아지. 강아지는 애는 안 먹이잖아요. 사료만 주면 끽소리 안하잖아요. 아~ 다 귀찮다. 다 큰 것들이 왔다, 갔다, 다 귀찮다. 화장실 청소도 해야 되고. 빨리 니 아가씨 만나 결혼해 버리고. 이거는 나만의 공간.

그런데 여기에 허락도 없이 주님이 쳐들어와버린 거예요. 뭘 문제 삼느냐, 니 그동안 평소에 니가 지금까지 살던 생존했다고 여겼던 너에 대한 생활 스타일, 방식, 이것이 기존에 인간에서 나온 시. 공간이에요. 시. 공간.

자, 인간의 시. 공간 설명 필요하겠지요. 인간의 시. 공간 해석은 기본이 나는 가치 있게, 폼 나게, 존재해야 된다. 존속해야 된다. 죽어서도 존속해야 된다. 죽어서도 그냥 죽는 게 아니고 폼 나게 영원히 살아야 된다. 이게 인간의 시. 공간 해석의 기반이에요. 이것으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게 되면, 우리는 뭐냐 바닥을 쳐야 돼요. 바닥을 친다. (광야=황야하다) 가 아니라 (광야=광야에서는 너는 살 수 없다.) 살 수 없는 이유가 비록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광야에서 비로소 너의 진면목, 우리는 그동안 먹고 마시는 게 이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발상을 주님의 시. 공간으로 발상해버리면, 나는 당연히 먹을 게 있어야 되고, 입을 게 있어야 되고, 나는 숨 쉬어야 되는 것은, 이건 당연한 나의 권리라고 여겼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욕망이고, 욕심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겁니다.

그렇게 내가 숨 쉬어야 될 어떤 권한 그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그런 근거가 없어요. 지금 우기고 있는 거예요. 그런 권리도 없으면서 우기고 있는 거예요. 이건 말도 안 되는 거거든요. 바닥을 친다 하는 것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자. 과연 내가 살 가치가 있는가, 부터 새로 생각해 보자.

누가복음16장에 보면 불의한 청지기 나오지요. 불의하거든요. 불의한 청지기가 천국을 갑니다. 희한한 이야기에요. 그런데 불의한 청지기가 특징이 뭐냐 하면, 그 회사의 착실한 직원이 아니고 농땡이 부리는 직원이거든요. 농땡이 부리는 것이 우리의 본성에 부합된다는 거예요. 이게 나라는 거예요. 농땡이 부리고 자기만 챙기고, 자기 동일성만 챙기고, 이 바닥을 그냥 엑스레이 앞에 노출하듯이 그냥 노출시켜버리라 말이죠.

아니 왜 그래야 됩니까? 그래야 너를 안 믿지. 너의 사랑과 너의 혜택, 남에게 용서한 거, 그런 거 안 믿는 거예요. 우리의 용서를 믿으면 안 되지요. 우리의 용서도 다 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짓이니까. 우리는 믿을 게 없어요. 하나님께서 법에 의해서 내쳐야 될 것을 쓰레기를 우리는 내 거 만들려고 쫙 펴놓고 그걸로 나라는 당구공을 만든 거예요. 볼링공을 만든 거예요. 전부 다 쓰레기인데.

치매도 이런 치매 없습니다. 동네 쓰레기 스치로폼 다 갖다 놔요. 비닐부터 해가지고. 온 집안이 전부 다 9층에서 치워주지 않으면 1톤 트럭와도 안 치우면 안 될 정도로 꽉 차있어요. 그 안에서 자기는 포근함을 느끼는 겁니다. 그 치매 할머니는 그냥 동물성 이러니까 그 주변에 있는 스치로폼은 쓰레기 보면서 뭘 느끼겠어요? 저거 다 내가 노력해서 내 소득으로 본 거예요. 돈은 못 벌고 치매 걸리니까, 취직이 안 되니까 일을 해야 되잖아요. 일은 뭐예요? 내 노력의 결과물을 내 곁에 두는 게 일하는 거 아닙니까. 심지어 그림 이것도. 이거 누가 줬다 하니까 내가 말합니다. 이중섭이 그린 작품이죠.

여러분들이 시집오고 난 뒤에는 결혼해서 일을 안 해도 이사하려하면 짐이 한 짐 돼요. 뭐 이것도 안 버렸어. 진즉에 버려야 될 옛날 옷, 유행가 지난 옷. 그런 것도 막상 버리려 하면 아까워서 그냥 놔둬라 하다 보니까 쌓이고. 결국은 우리는 치매되기 전에 사이비 치매환자로서 살아가는 겁니다.

어떤 여자가 20대에 남자 한 일곱 명 사귀었다. 보통 여덟 번째 할 때는 잊어야 되는데 절대로 안 잊습니다. 내가 그 일곱 명 사귄다고 신경 쓴 게 기억이 나가지고 이런 것들이 뭐냐 하면, 여덟 번 째 남자 만날 때는 적어도 일곱 명 만난 기억해가지고 그것도 자랑이 돼가지고. 이것도 동질성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의 법은 너무나 이질적이에요. 다시 말해서 나를 구성하기 위해서 주신 게 아닙니다. 나를 파괴하려고 주신 거예요. 니 없던 시절로 돌려보내는 겁니다. 너 없어!

다시 이야기합니다. 법이 있어야 뭐가 있다? 이스라엘 있지요. 이스라엘이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특징이 아니고 그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법이 있음이란 요건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이 생겼다, 라는 그러한 원칙을 계속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강요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살던 사람이 되어놓으니까 아담의 후손이 되니까 이게 그들은 건성, 건성 따라 온 거예요. 그냥. 아주 신이 났어.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 하니까 낙원, 천당 가는 줄 알고 따라왔지요. 오늘날 우리하고 똑같아요. 예수 믿고 천당 간다 하니까 건성, 건성 따라가면 되는 줄 알았지요. 뭔가 교체해야 된다는 생각을 못한 거예요.

내 위주가 아니라는 것을, 내 구원이라는 게 애초부터 성립이 안 된다는 것을 몰랐던 거예요. 주님의 주님 구원이고, 하나님의 언약의 언약 구원이에요. 내 구원 없어요. 죄가 의된다 하니까 사도바울의 복음 듣고 나 예수 믿고 의인 될래 하는데 결과를 쥘 수 있는 나를 없애버립니다. 내 손으로 결과를 쥐는 게 믿음이 아니에요.

오히려 과정 속에서 휘말려 들어가야지요. 그럼 어떻게 휘말려 들어가는가, drill a hole 구멍을 뚫는다. 또는 보일드, 끓는, 아예 끓게 한다. 달달 끓게 한다. 구멍을 뚫는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없는 죄를 우리 안에 심어버립니다. 이게 율법의 기능이에요. 자, 야고보서 봅시다. 야고보서2장10절.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이게 그동안 우리가 살아왔을 때는 하나를 건지면 고 하나에 실린 개별적인 의미만 오는 것이지, 손대지 않은 것까지 영향을 줬다는 생각을 못하거든요. 하나를 어기면.

예를 들어서 내가 뷔페에 가서 초밥을 먹는데 옆에 있는 잡채가 울고불고 그런 적 없지요. 그런 거 없다 말이죠. 그런데 율법은 그게 아니고 율법이 온전하다는 조건하에 인간을 만들기 때문에 하나를 어기게 되면 어떤 원칙이냐, 율법이 법이 법대로 되는 법의 자존심을 니가 건드렸다고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법을 감히 니가 하나 요만큼을 건드림으로 말미암아 니는 나를 건드린 게 돼요. 예수님은 예수님의 행적가운데 반대되는 의미가 있어요. 옷감만 만졌는데 그 사람은 예수님의 모든 걸 다 만진바가 돼요. 또 베드로에게 발만 씻겼는데 온 몸이 씻긴 거예요. 이게 바로 이걸 정리한 것이 바로 로마서5장에 한 아담이 범죄 함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고, 한 예수님이 한 의가 우리에게 의가 되었다.

도대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기에? 평소에 우리가 나를 간수하는 방법과 왜 그리 다른가, 10분 후에 하겠습니다.

 첨부파일 : 안양20191107a야5장19절(부정성)-이 근호 목사.hwp (80.0K), Dow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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