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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5 22:49:25 조회 : 172         
강남-누가복음 6장 13절 (제자선택) 210504a-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누가복음 6장 13절 (제자선택) 210504a-이근호 목사



오늘은 누가복음 6장 12절 하겠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아멘.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 이 땅에 태어난 걸로 보고요. 요한복음에서는 하늘에 오신 분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밖에 없는 곳에 요한복음에 의하면 말씀이 응애응애 말씀이 육신이 된 거죠. 말씀이 육신이 되어 태어난 거에요. 이 땅에. 이 땅에서 하늘의 요소가 여기에 담기는 겁니다.


그러면 요한복음에 의하면 또 다른데도 마찬가지지만 늘 요한복음은 아예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만나는 입장에서 봤기 때문에 그냥 그분은 하늘에서 오신 분입니다라고 이야기하고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는 여러분 보기에는 사람으로 보이죠. 사실은 그분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이 임해서 다른 분과 차이납니다. 다릅니다라고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금 누가복음 하고 있으니까 땅의 요소에 하늘의 요소가 들어왔으니까 이것은 숫자로 치게 되면 이거는 뭐가 되느냐 하면은 제로가 돼요. 0이 됩니다. ‘0’. 없는 존재가 돼요. 땅에서는 없는 존재가 됩니다. 땅에서는 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땅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 다음에 이 단어에 주목하세요.


‘식별’. 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식별할 때에 식별할 수 있는 어떤 내용은 0이 돼요. 제로가 됩니다. 못 알아본다 이 말입니다. 예수님을 전혀 못 알아봐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하늘의 요소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땅의 사람들로 못 알아보게 하는 인간의 식별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식으로 일하신다 이렇게 보시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0이다 이 말이죠. 예수님은 0인데 0에서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삼아버리죠. 12제자를 삼아버리면 여기서는 0에서는 12이 될 수가 없고 여기서 0이 12이 될려면 1이 되야 돼요. 0에서 1로 등장하면서 12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12제자하고 예수님 1, 0 이 모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없어요. 12제자라는 것은 없습니다.


12제자가 12사도라는 것은 많은 제자가 있지만 그 중에 택해서 12명 뽑았는데 12라는 12사도는 12제자에게 12사도는 없어요. 그래서 결국 그들이 예수님을 배반하고 가버립니다. 왜냐하면은 예수님은 0이기 때문에. 직위는 있지만 이 직위는 1에서 나온 직위이기 때문에 인간의 12명의 존재에서는 이 직위 또는 사도라는 이 직책,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것은 끊어져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그래서 12제자는 제자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제자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가 뭔지를 모르는거에요. 예수님도 물론 모르고요. 그러니까 배반했지요. 예수님의 12제자, 이 취지에서 이렇게 되는 겁니다. “가라, 그리고 망해라.” 이게 12제자 뽑은 이유입니다. 이 12제자가 망하는 그 안에 뭐가 재현되느냐 하면은 12지파의 이스라엘이 왜 망해야 되는 민족인 것을 12제자를 표준 모델로 해서 재현시킵니다. 그걸 그대로 드러내게 되어있어요. 망해야 되는 이유를. 이스라엘이 망해야 되는 이유를 그렇게 만듭니다.


12제자라는 것은 예수님에게 나왔기 때문에 다시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존재에서는 12로 다가설 수 있는 어떤 방법이나 어떤 길은 없습니다. 그리고 12가 제자가 될려면 어디를 경유해야 하느냐 하면은 12는 뭐냐 하면은 1+1+1+1+1+ 이렇게 쭉쭉해서 12거든요. 1을 12개해서. 다 해볼까요? 1+1+1+1+1+1+1+1+1+1+1+1. 12을 해야 인간세계에서는 이게 12가 되는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의 12사도는 뭐냐 하면은 이렇게 1이 12개 모이면 안돼요. 12개가 뭐로 가야 되느냐 하면은 1이 되고 난 뒤에 그 다음에 12가 돼야 되는 겁니다. 문제는 12이 1이 될 수가 없어요.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12제자가 어떻게 마음을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없어요. 인간은 각자 따로 놀거든요.


여러분 손가락은 분명 10개입니다만은 사실은 손가락은 10개지만 손은 하나에요. 손가락 10개가 참 손은 두 개구나. 손가락이 10개 될려면 몸이 하나여야 비로소 손가락 10개라는 것이 의미가 돼요. 그냥 손가락 따로 놀면 안 된다 이 말이죠. 12제자 될려면 반드시 1을 경유하고 12가 돼야 되지 1없는 12는 따로 놀아요. 전부 다. 따로 논다고요.


그러면 이 12 숫자를 선택한 인간의 숫자 그 12명을 선택한 12명의 운명은 어디에 종속되느냐 하면은 거기에 누가복음 6장 16절에 보면 마지막에 나옵니다. “예수를 파는 자 될”, 뭡니까? 가룟 유다죠. 한번 적어 볼게요. 적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판 자. 예수님을 판자가 가룟 유다죠. 가룟 유다. 가룟 유다입니다.


그러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게 된 동기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제가 그냥 답변할게요. 여러분에게 묻는 건 의미 없어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판 자가 가룟 유다라면 예수님을 팔 수 밖에 없게끔 가룟 유다에게 주어진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은 여기에 13절에 나오죠. 이게 바로 선택입니다.


그런데 선택을 누가 했습니까? 주님이 가룟 유다를 선택해서 가룟 유다로 누굴 팔게 했습니까? 가룟 유다를 선택한 그 분을 팔아버리도록 다시 말해서 0. 다시 이 땅에 없는 존재가 되도록 가룟 유다를 선택한 거에요. 제자의 할 일은 이겁니다. 네가 정말 제자가 될려면 없음을 경유를 해야 돼요. 없음을.


잘 안하는 짓이지만 한번 해볼까요? 우리 성도나 제자나 마찬가지니까 Listen & Repeat 저를 따라해 보세요. 거의 안 하는 거니까 여러분들은 몇년만에 한번 하는 거니까 용납해주시기 바랍니다. 따라해보세요. “가라.” “가라.” “그리고 망해라.” “망해라.” 이게 성도의 부여된 사명입니다. 너 존재 자체는 절대로 제자가 될 수 없어요. 사도가 되면 안 됩니다. 사도가 될 수 없어요.


선택은 어디서 뽑았느냐 하면은 선택이 먼저 있었고 선택이 땅에 있는 12명을 택해버린 거에요. 왜? 왜 택했느냐? 예수님을 하늘의 오신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분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그들을 선택한 겁니다. 이 역할이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가 예수님한테 해야 될 역할을 12제자가 그걸 뽑아내서 해야 돼요. 결국 가룟 유다와 그 당시의 유대 지도자와 결탁이 되죠. 연결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프레임을 넓혀봅시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뭐냐? 취지는 이겁니다. 종말 때 피할 곳이 이 지상에서는 전혀 없다에요. 종말 때 피할 곳이 이 세상에 전혀 없어요. 12제자를 뽑은 이유는 이 세상에 어디에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만한 곳은 전혀 없습니다. 원래 이것은 구약 이스라엘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복을 받은 민족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조차도 하나님의 심판 속에다가 그걸 흡수해버렸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는 끝부분에 가면 심판이 누구부터 먼저 하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집부터 심판이 쭉 이어지게 종말이 주어지는 겁니다. 여러분한테 물어볼게요. 여러분 지금 종말 된다면 어디로 피할 겁니까? 여러분 지금 하늘에서 유황불 떨어진다면 어디로 피할 겁니까? 땅에 피하지 마세요. 땅은 지진이 일어나니까 안 되고 바다는 파도가 심해서 안 되고 산 위도 안 되고. 시골 농사짓는 한적한 시골 거기도 유황불 떨어진다면 가봤자 양식도 없고 디저트 사과 귤 같은 것도 없고 피할 데가 어디 있습니까? 피할 곳이 없지요.


그래서 이 12제자는 구약의 예언서 말씀대로 피할 곳이 이 땅에는 어느 곳에도 없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12을 택한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이 애초부터 이스라엘에게 부탁했던 이스라엘의 이스라엘다운 국가, 하나님이 택한 민족, 그 외에는 처음부터 지금 마지막까지 어디에도 달리 피할 곳을 주신 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거에요. 그럼 이스라엘 망했으니까 결론은 뭡니까?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는 거죠.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하나님의 유일한 민족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에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현재 망하잖아요. 이스라엘 망했으면 결국은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할 수 있는 어떤 민족이나 지역이나 공간이나 영역, 영토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지요. 아무데도 없어요. 그걸 분명히 하는 겁니다. 있었지요. 그게 뭐냐? 이스라엘이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심판하실 때 종말에 마지막에 있을 그 이스라엘은 사람이 유지하고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이스라엘은 이제는 안 되고 친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들어 내는 거기에서만 이 마지막 때에 피할 곳이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12을 택한 거에요. 그런데 그 12 택한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땅에서 나왔잖아요. 땅에서 나왔으니까 제로, 0의 영역을 거쳐야 온전한 피신처가 되지요.


12을 택했다고 하는 것은 뭘 경험을 해야 되느냐 하면은 왜 전에 있던 이스라엘은 왜 하나님의 종말에서 유일한 택한 민족이 될 수 없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12제자를 통해서 다시 한번 훑고 지나가는 거에요. 종합 정리하고 지나가는 거에요. 종합 정리하고. 아니나 다를까 12제자 다 뿔뿔이 헤어지죠. 12제자가 왜 그렇게 하나로 단결하지 못하고 다 헤어졌습니까? 이게 바로 이게 안 되서 그래요. 공동기억이 아니라서 그래요. ‘공동기억’. 동일한 기억이 되지 않아서 그래요.


나중에 주님께서 12제자에게 뭐를 주느냐 하면은 사도행전 1장 8절에 나오는 귀한 말씀. 이미 가룟 유다는 물 건너 가버리고 11제자에게 주신 귀한 말씀 나오지요. 기다려라. 내가 줄게. 주는 걸 뭘 주느냐 하면은 공동기억을 줘요. ‘공동기억’. 이 공동기억을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의 이 땅에서의 삶의 체험이죠. 삶의 체험. 삶의 체험 알지요? 그 프로그램? 고생해가지고 봉투 받아가지고 어려운 사람한테 기부하는 KBS에서 했던 거 있어요.


주님의 이 땅에서의 삶의 체험, 그 삶의 체험. 누구 체험? 주님의 기억이잖아요. 주님의 기억을 성령을 통해서 공동체험해버리는 겁니다. 11제자에게. 그러면 거기서 이 제자들은 비로소 무엇이 가능하느냐 하면은 세상 보는 식별이 가능해요. 식별이. 어떻게 가능하느냐 하면은 대칭적으로. 대칭성 등장했어요. 드디어 땅과 하늘, 하늘과 땅이라는 대칭구조로써 시간도 종말과 종말 이전을 바라보는 대칭구조, 뭐든지 대칭구조로 위 아래. 위 아래.


위, 아래 그리고 처음과 끝. 모든 것이 대칭구조로 보는 그 안목과 관점은 제자들의 안목 관점이 더 이상 아니에요. 과거의 그들이 가졌던 사적인 자기 가정에서의 어떤 기억이 아니고 이제는 주님이 주신 기억이라서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이나 모두다 공동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게 성령의 체험이에요. 주님이 이 땅에서 당했던 모든 수모와 그 의미들 그 모멸감, 그게 바로 공동기억이에요. 공동기억 또는 공통기억. 동일한 기억입니다.


그러면 제자들 있다면 물어보면 “당신의 스승 예수님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우리와 같이 선택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 질문. “당신은 그 때 뭐했습니까?” “도망쳤습니다.” “베드로 당신은 뭐했습니까?” “배신 때렸습니다.” 그게 바로 땅의 요소에요. 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참된 민족과 백성이 될 수 없었던 가를.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사람을 조사해가지고 거기서 몇 명 12명을 뽑아서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 뽑아서 주님과 함께 같이 동행할 때 그들은 각자의 기억 때문에 공동기억 말고 각자의 기억 때문에 주님에 대해서 엄청나게 곡해하고 오해하는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에는 제자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팔아먹고 예수님을 배신하고 다 뿔뿔이 헤어질 정도로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리 함께 체험을 해도 그게 예수님의 체험이 다가올 수 없다면 그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했던 그 마음가짐은 뭐냐? 또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 그것은 여러분 잘 알다시피 이게 바로 제자들과의 반대되는 생각들이 뭐냐 하면은 바로 이게 어린아이에요. 어린아이. 네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는 겁니다.


어린아이 이야기가 어느 대목에서 나오느냐 하면은 제자들이 뭘 주장하느냐 하면은 자기들의 식별력을 과시할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알고 주님과 함께 있음으로서 하늘나라가 온다는 그러한 정도는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는 반대로 이야기하지요. 차라리 몰라야 되는데. 네가 알면 안 되는데. 이것은 틀린 것이고 옳은 것이라고 이렇게 그걸 분별하면 안돼. 식별하면 안돼. 그 자체가 그게 내 뜻이 아니라고 주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시지요.


자, 그렇다면 이제 12제자가 주님의 지시에 따라서 파견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12제자가 하는 그 모든 활동에서 나타나는 현상들, 그 현상들 여러분들 짐작할거에요. 생각이나 몸은 전부 땅에 속하면서 그들은 예수님과 하나님, 메시아와 함께 있다는 그 자부심이 있겠지요. 그렇잖아요. 본인조차도 예수님을 모르면서 이제는 예수님이 나를 택했다는 그 선택했다는 그 의미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인정해줬다는 의미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겁니다.


망하라고 택했는데 망해야 될 이유를 찾겠다고 너희들을 택했는데 우리는 남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라고 오해한 거에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은 이겁니다. 오늘 강의 첫째시간의 핵심은 이거에요. 뭐냐 하면은 승부욕입니다. ‘승부욕’. 제자들이 귀신이 쫓아내고 자기 능력 아닙니다. 주님의 능력입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복음을 전파할 때 그들은 어떤 승리감에 도취되는 겁니다. 승리감에. 승부욕이죠.


이런 승부욕이 뭐를 가로막느냐 하면은 가장 고귀한 것, 가장 고귀한 것을 훼방질하고 있어요. 가리고 있단 말이죠. 가장 자신의 승부욕에 정신이 팔려가지고 남한테 지기 싫은 이김에서 오는 쾌감에 거기에 도취되어가지고 가장 소중한 것이 뭔지를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습니다. 참 승부욕이란 이것이 모든 땅에 있는 인간의 그 심보와 심리를 해결하는 열쇠에요.


제자들이 그걸 보여줬으니까 우리는 저쪽을 이겼고 그건 예선전이고 결승전은 뭐냐? 우리끼리 누가 돋보이느냐? 우리끼리. 일단은 우리는 저쪽보다는 낫고 우리들 끼리에서는 누가 제일 높으냐 이렇게 되는 거에요. 승부욕. 인간의 모든 심보는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 이거 들어있습니다. 이걸 분해하게 되면 지고는 못 산다. 개뿔도 돈도 없으면서도 개뿔도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개뿔도 없으면서 딱 하나 근성은 뭐냐? 근성 하나는 나는 지고는 못 산다 이거에요.


제가 여기에다가 동물에 비유해서 별명을 하나 지어드리겠습니다. 살쾡이. 살쾡이. 만약에 어떤 교복 입은 학생이 한 12명 간다하면 살쾡이 12마리에요. 그것도 새끼 살쾡이 12마리. 나중에 어른 되면 어른 살쾡이. 여자는 어미 살쾡이 남자는 아빠 살쾡이. 엄마 까투리가 아니에요. 엄마 살쾡이에요. 엄마 살쾡이. 살쾡이의 특징은 안에 뭘 갖고 있느냐? 발톱을 갖고 있어요. 발톱을.


그래서 누가복음이 어떻고 신학이 어떻다 논쟁하다가 결국 나오는 것은 발톱과 발톱만 나와요. 얼굴 확 긁어버려요. 발톱밖에 없어요. 졌다 싶으면 뒤에서 발톱가지고 악담으로 약간의 복수를 하는 그 센스는 놓치지 않지요. 그래서 저는 모든 인간에는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발톱. 공격성 발톱. 그 대표자가 가룟 유다겠지요. 결국 발톱을 가지고 뭘 했나? 식별을 한 거에요. 세상을 식별을 한 거에요. 살쾡이로서 승부욕을 가지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12제자를 통해서 어떻게 이 사람들을 교육시키느냐 하면은 나의 잘남, 나의 역사로 데려올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요. 주님께서 12제자들 데리고 다니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리는 그러한 계기와 그런 사건들만 유발시키면서 데리고 다녔습니다. 괜찮은 나, 상당히 바르게 했다는 것으로 다시 수집할 재료가 전혀 없게 만들어요. 그 재료가 없게 만들어요. 나를 괜찮은 나로 조립할 그런 벽돌이 하나도 없게 만들어요. 그냥 남하고 싸운다고 깨진 발톱만 살아오면서 남겼을 뿐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은 바로 제자들로 하여금 어디로 인도하느냐. 오늘 제목을 이걸 할까 생각이 드는데 강의하다가 제목 이야기해서 죄송합니다만은 이게 뭐냐 하면은 탈선입니다. ‘탈선’. 12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탈선하게 하는 겁니다. 탈선이라는 말은 나쁜 의미로 생각하지 마세요. 선이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선이 하나 더 생겨가지고. 어?! 광주로 간다고 갔는데 부산으로 가버리네. 대전에서 뭔가 선을 바꿔치기 했어요.


선이 하나밖에 없다. 유대사회에서 선이 이대로 가게 되면 천국 간다고 생각했는데 아! 그런 율법 지키면 간다고 했는데 율법 외의 또 다른 선이 철로가 가설됐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내가 예상했던 예측했던 선. 그 선은 멸망으로 가는 선이고 그 내가 예상하고 예측한 내가 어릴 때 있던 나의 기억으로 계속 지속시키고 밀어부칠 수 있는 선은 멸망으로 갈 수밖에 예수님을 팔아먹는 예수님을 배신 때리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기 급급한 그 공통점만 깔려 있는 선. 그게 뭐 호남선인지 경부선인지 관계없습니다만은 그 선 1호선인지 2호선인지 관계없이 그 선만 인간에게는 허락이 되었어요. 다른 선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선 말고 탈선이 나쁜 의미가 아니지요? 이 선 말고 다른 선, 다른 선으로 갈려면 점선으로 하게 되면 이게 뭐냐? 반드시 이게 하나님의 선택의 유효성입니다. ‘유효성’. 물론 가룟 유다가 있지만 나머지 11명은 요한복음 13장에서인가 보면 13장 1절에 내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조건이 있습니다.


탈선해라. 기존의 네가 알던 너의 지속성, 네가 식별했던 그 세계. 나는 이 세상에서 남한테 지지 않아야 될 존재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착각이 바로 잘못이라는 것을 알리는 그게 보이는 다른 선으로 갈아 태우는 그 동력이 하나님의 선택에 있습니다. 그래서 정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 왜 선택했느냐? 땅의 인간을 하늘의 인간으로 바꿀려면 하나님의 선택이 먼저 와야 되고 그 선택에 의해서 가라, 그리고 망해버려라.


이 땅의 어떤 장소도 어떤 자리도 인간의 생각도 심판을 견딜만한 장소를 이 땅에 아예 없다. “주여 심판을 면할 수 있고 하나님이 구원받은 장소는 어디입니까?” 바로 주님으로부터 0으로부터 해서 1이 되고 1되시는 분이 선택했으니까. 예수님이 선택했잖아요. 그러면 1이 생겨버리면 자동적으로 뭐가 생깁니까? 12가지가 한꺼번에 다 같이 생기지요. 바로 그 장소가 유일하게 심판을 이기는 장소가 돼요. 심판을 이기는 장소.


“주여 어디로 피합니까?” 하면 “바로 네가 있는 곳이 바로 네가 피할 길이야.” “하늘나라 어디 있느냐?” “너희 안에 있느니라.”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유일한 피난처에요. 도피처에요. 그래서 제자들로 하여금 망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까 살쾡이라는 말 했는데 제자들을 뭘로 보느냐 하면은 이렇게 보면 쉬워요. 시한폭탄으로 삼고 시한폭탄에 뭐가 있느냐 하면은 도화선이 나와 있지요. 도화선. 여기 도화선에다가 중국산 라이터 탁 불을 여기다 불을 탁! 합니다. 그럼 여기서 배경음악이 이제 OST가 나와야 돼요. Mission Impossible.


도화선에 불이 붙는 거에요. 이걸 가지고 경상도 말로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걸 경상도 말입니다. 움짐당한다는 말이 있어요. 이게 뭐냐 하면은 꼬리가 급하다 이런 뜻이에요. 원숭이 꼬리에 불 붙었어. 움짐당한다는 말이 있거든요. 여러분 이런 방언 처음 들어보지요? 움짐당한다. 급해. 제자들 입장에서는 결국 이 말을 해야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확 가슴에 와닿을 겁니다.


제자들은 주님에게 농락당한 거에요. 그냥 제 인생 살도록 하지 않고 선택해놓고 뒤에 꼬리에다가 도화선 설치해놓고 라이터 불로 찰칵찰칵 송중기, 빈센조. 빈센조라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은 모나리자 팔아먹었던 사람이에요. 이건 딴 이야기고요. 뒤에 라이터 불로 해버리면 이거는 제자들은 운명은 뭐냐 하면은 타들어가는 촛불이에요. 촛불.


그냥 내 인생 살고 싶어. 나 돌아갈래. 박하사탕 마지막 장면에서 나 돌아갈래, 나 돌아버릴래랑 같은 말이지만 나 돌아갈래. 왜 선택했습니까 주님. 나 잔뜩 기대했지. 주님과 함께 있으면 바다도 가르시고 바닷물도 잠잠케 하시는 분이 우리와 있으니까 우리는 항상 승부욕에서 남한테 안 졌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귀신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에요. 기분 째졌죠 그 때. 막 자랑질하고 주님이여 귀신이 떨어집니다. 주님이 “귀신이 떨어지는 거 좋아하지 말고 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좋아하라.”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요. 신났지요.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 돌아가시고 그들은 다 수배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배 대상이에요. 정권 바뀌니까. 정권 바뀌니까 전부 다 잡아갈 대상입니다. 죄 해가지고 다 끄집어낼 사람이에요. 참 권력이 있을 때 예수님이 있을 때 참 신났고 좋았지요. 그런데 권력 말기 현상이 일어나는 거에요. 레임덕 현상이 일어난 거에요 이제. 진짜 대장은 쑥 빠져버리고 나머지 잔챙이 같은 자기들만 남아가지고 맥도 못치고 위에서 추궁이 들어오는 거에요.


심지어 청소년 아가씨가 이야기하는 거에요. 아저씨 전에 예수님과 함께 있었잖아! 하니까 이건 뭐 대법원 판사가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동네 아가씨가 이야기해도 벌벌벌 떨면서 나 저 분 모른다. 주님이 쓰윽 돌아봐도 나 저 분 모른다. 난 저 사람 저주한다. 그 때 타이밍 맞춰서 궤종시계 울리듯이 닭이 세 번 꼬끼오 한 번 더해라 꼬끼오.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세 번 배신해버렸어요. 닭의 목을 비틀던지 해야지. 거기서 닭이 왜 튀어나와. 닭은 예상치 못했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것이 주님께서 의도해서 짜 맞춘 거에요. 그걸 쉽게 말해서 그게 무슨 상태라고요? 그게 뭐라고요? 주님한테 농락당한 거에요. 지금 여러분들 저와 여러분들 주님한테 농락당한 거에요. 농락당한 거. 나 돌아갈래 해도 못 돌아가요. 나 지옥갈래 해도 갈수가 없어요. 농락당한 거에요. 농락당한 거. 살다가 살다가~~~~망해버려요. 아무도 안 알아주고. 그래도 세상을 살면 이건 있잖아요. 승리하는 승부욕은 있잖아요. 이것마저 우리는 발톱 다 빼버렸는데. 우리 주특기 발톱 다 빼버렸어. 발톱이 있어야지 뭐. 저쪽은 발톱으로 한다는데 우리는 할라고 보니 발톱이 다 빠져버렸네. 없어. 살 수가 없어요.


이런 현상은 이 땅에 종말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 있는 지역은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거에요. 그것을 12제자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확실하게 각인시킵니다. 예수님 공격했고 12제자 공격하고 그렇다면 그 자리는 뭐냐? 성령 안이에요. 성령을 받아야 돼요. 성령을 받게 되게 되면 비로소 12숫자가 드디어 다시 죽은데서 다시 12숫자가 살아납니다.


전에는 내가 있고 12제자가 되었지만 예수님 돌아가시고는 12라는 그 숫자, 그 숫자에 주님이 택했다는 주님의 택함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12제자가 그 취지를 위해서 12제자가 거기에 제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순절날 성령 오고 난 뒤에 오순절날 성령 오기 전에 제일 먼저 한 일이 뭡니까? 바로 11을 뭘로 채웁니까? 12로 채우는 거에요. 12을. 12을 채웠을 때 뭐가 옵니까? 오순절날 성령이 옵니다. 성령이. 12을 채웠을 때.


지금부터 어렵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요한계시록에 일곱 교회는 주님의 오른손으로 쥐고 있기 때문에 일곱 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곱 교회는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순회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일곱 교회가 다 망해버립니다.


터키에 있는 일곱 교회가 다 망한 이유가 식별, 땅에서 식별되는 교회가 식별되는 그 사람들이 알아보는 모든 교회, 모든 제자도 이것은 바로 12제자들이 갔던 그 체험에 공동체험에 합류되지 못한 사람들은 오해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요. 일부러.


심판이 있는 사람이 본인이 알아서 식별해가지고 심판 장소를 찾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일체 허용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은 하나님의 선택이 가미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이 먼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건 실패로 볼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들이 안 봐도 아는 구절이 있어요. 뭐냐 하면은 여러분 실력 되면 마태복음 28장, 제일 마지막 대목.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했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그 앞에 19절에 뭐냐 하면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그 다음에 뭘 삼으라 했습니까?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이것은 예수님이 자기 제자에게 성령 주는 그 코스 있잖아요. 그 작업을 주님께서 하늘에 계셔서 그걸 반복시키겠다는 겁니다. 오직 심판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것은 이 성령 받은 그들 속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속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 받은 자는 심판이 필요 없다는 말은 그냥 알기 쉽게 뭐냐? 그냥 없다 에요. 없어요. 없으니까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하시고 그냥 망하세요. 땅!땅!땅! 오늘 강의 결론이에요. 망해야 대칭이 돼요.


제가 주일 낮에 유명한 노래 가사를 하나 언급한 게 있어요. 높은음자리가 불렀던 노래 있어요. “나 하나의 모습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보지요.” 그게 쪽 나와가지고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하잖아요. 높은음자리 그 사람은 결국은 남자로 태어나가지고 바다에 누워가지고 외로운 물새 되는 게 희망사항이에요.


그게 한계인데 이 제자들은 뭐냐 하면은 주의 제자로 태어나 그 다음에 이 땅에 누워 저 심판을 바라보지요. 그 선택했다는 그 사명이 고귀합니다. 내 존재보다 더 고귀합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제자들은 그걸 반대로 했어요.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가룟 유다도 마찬가지고. 선택했던 사명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중요하다.


내가 내 사명을 관리하고 이긴다 했지만 주님은 주님의 선택이 나를 이깁니다. 주님의 사명이 나를 이겨요. 빼도 박도 못해요. 나 돌아갈래 해도 못 돌아가요. 그 외에 천국 갈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가 드디어 지금까지 서론이고요. 지금까지 서론이고 이 제자들이 본격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되는가. 그걸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18절에 보면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받은지라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함이러라” 나와 있지요. 대칭구조인데 대칭입니다. 확실한 대칭이에요. 대칭이라는 것은 쉽게 거울. 서로 마주보고 있다. 마주보고 있는 거에요. 대칭입니다.


대칭인데 뭐냐 하면은 예수님은 실제 또는 리얼리티, 현실 그 자체가 되고 이쪽은 대칭구조이니까 여기는 뭐가 되느냐 하면은 세상은 그 자체가 모든 것이 뭐냐 하면은 환상, 망상, 헛것, 허무 이렇게 되겠지요. 그러면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이 세상을 뭐로 만드는 겁니까? 환상이며 망상이며 헛것이며 헛되다. 헛된 것으로 많은 일을 누가 하신다? 예수님이 하시는 겁니다. 중간에 누구를 통해서? 12제자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 간단하지요. 오늘날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우리에게 하는 일도 뭐냐 하면은 환상이니까 환상=헛것. 환상이라는 말은 헛되다에요. 헛되다. 무의미하다. 의미 없다. 무의미하잖아요. 그래서 성도가 성도의 삶이 예수님께서 함께 있음으로 말미암아 성도의 인생, 자기 역사, 자기 삶, 자기 인생이 뭐가 되느냐 하면은 무의미하게 되고 헛되게 되도록 주께서 그렇게 인도하시는 거에요.


그런데 이게 무겁습니까? 아니면 이게 쉽습니까? 목사님.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이게 가볍습니까? 무겁습니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이게 굉장히 가벼워요. 이처럼 가벼운 게 없습니다. 내가 주위 사람에게 칭찬받았다. 그거 받아봤자 뭐 다 헛것인데 뭐. 이게 얼마나 쉽습니까? 얼마나 쉬워요. 오늘 보너스 탔다. 보너스 타도 그게 아무 일도 아니고 좋다고 소고기 사 먹겠지. 그게 뭔데.


자식이 박사 학위를 땄다. 그게 뭐 잠시 기분 좋을 뿐이지. 남편이 나를 두고 도망갔다. 가봤자 도망가봐야 지옥이지 뭐. 아무것도 아니지 뭐. 우리 아들이 반장됐다. 반장을 되든 회장을 되든 그게 뭔데. 우리 전에 코로나 전에 참석하셨던 오 목사님을 만났어요. 만났는데 아주 기쁜 얼굴로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어요.


뭐냐 하면은 6개월 전에 병원에서 우리나라에서 일체 못 고치는 암에 걸렸답니다. 그래서 6개월만 살고 당신 죽는다고 했는데 오늘이 6개월째래요. 더 이상 고칠 건 없고. 마지막 떠나는 길에 목사님 얼굴 보고 간다고 오늘 만나자고 해서. 제대 축하드립니다. 일단은 축하의 말씀 드렸고 사모님이 얼굴 너무 좋아. 남편 보낸다고. 이게 제대잖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이게 성령 받은 사람한테 얼마나 쉽습니까? 이 헛되고 헛된 망상 자체에서 왜 이게 기분 좋고 아까 다시 물어볼까요? 이게 가볍습니까? 무겁습니까? 가볍지요. 왜 가벼우냐 하면은 뭐가 안 끼워서 가볍느냐 하면은 이게 없어서 가벼워요. 이게. 이게. 승부욕이 없어서 발톱이 빠져서 가벼워요. 발톱 있으면 발톱 이거 남한테 쏘아대기 위해서 그걸로 시누이 하고 싸운다고 발톱 깎고. 시어머니하고 싸운다고 이거 얼마나 사춘기 애하고 싸운다고 발톱하고 있고. 환상이 되면 승부 없는 거에요.


그런데 제자들이 할 일은 뭐냐 하면은 제자들은 성령 받고 난 뒤에 회고적으로 알아요. 회고적으로. 뒤에 와서 아는데 그 전까지는 악착같이 예수님 빽 믿고 그냥 전진! 전진! 전진하는 거야! 계속해서 승부 걸고 전진하고 너희 두고 봐. 우리 선생님이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렇지요?! 복수할 거죠? 저놈들 다 죽일 거죠? 착각도 세상에 그런 착각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 우리 편 맞지요? 주와 함께 있으면 내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믿습니다. 이러고 있고.


그러니까 나중에 결정적으로 주님이 죽는다고 하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수제자 베드로가 하는 말이 내가 눈 뜨고 있는 한 그런 일은 없습니다 할 정도로 절대로 제가 있는 한 제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제가 보디가드 해드리겠습니다. 왠 다이아. 내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보고 뭐라고 한줄 알아요? “사탄아 물러가라” 결국은 사탄아 물러가라 하니까 발톱은 뭐였습니까? 발톱은 악마의 발톱이었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마는 인간 편이었습니다. 기죽지 말고 이기는 것으로 삶의 보람으로 삼고 남한테 곧 죽어도 지지는 말아라. 이걸 계속해서 얼마나 우리 자신을 설득해 왔어요. 그동안. 철저하게 진짜 악마가 우리를 농락했는데 제자들은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자기를 농락한줄 알아요. 그 과정 속에서 제자들이 무수한 그들의 더러운 본성을 승부욕을 예수님이 하는 일과 맞지 않는 상태에서 전혀 맞지 않는 상태에서 같이 다니는 그러한 체험의 시간을 가져야 했었습니다.


우리는 10분 쉬는 체험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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