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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4 15:20:28 조회 : 154         
슬기로운 지옥생활 이름 : 송민선(IP:119.206.92.141)
산책을 하다가 두 종류의 개 주인을 보았다. 두 주인의 공통점은 개 줄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한 주인은 개가 가다가 멈추면 멈추고 수풀 속을 탐색하면 기다려준다. 그래서 개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할 짓을 다 한다. 개가 주인인지 사람이 주인인지 잠시 혼동된다. 다른 한 주인은 자신의 목적인 빠르게 걷기에 충실하며 멈추지 않고 걷는다. 개도 덩달아 빠르게 걷는다. 아니 달려가는지 끌려가는지 분간이 안 된다.

개가 잠시 줄이 늘어진 짧은 틈을 이용해 수풀을 탐색하려고 시도하다가 줄이 팽팽해지며 몸을 조이는 힘에 이끌려 다시 질질 끌려간다. 주인은 개를 돌아보지 않고 그저 쉬지 않고 열심히 걷고 있기에 주변의 누가 봐도 왜 개를 데리고 나왔는지 의아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내가 개라면 난 첫 번째 개가 되고 싶었다. 이렇게 잠시의 상상으로도 내 안에 이미 자리 잡은 개념, 지식, 경험이 만들어낸 기억이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가치 있는 쪽으로 리스트의 최하단에 자살이라는 항목까지 두고,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멈춘 적이 없음이 드러나고, 내 안에는 사도가 말하는 저주받을 다른 복음 말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선택하고 싶은 내 자율성을 감출 수 없게 된다.

스스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지식이 있는 한, 그런 지식은 없다고 우기기엔 타고난 선악 본능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갇혀있기에, 지평적 인간은 다른 복음만 들을 수 있고 다른 복음만 전할 수밖에 없다면 어찌할까.

사도바울이 다른 복음은 없다는 말씀을 전하며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을 할 때, 자기 자신도 심지어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며 이미 자신을 저주받을 자의 범주 안에 넣은 채로, 그렇게 전하게 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했다. 이미 저주가 확정된 지상에서 있음이 없는 것을 전하면 여전히 없음이고 이미 지상에는 없음이 없음을 전하면 그제야 말씀만 있음이 된다.

어떤 말씀이든 그것이 복음이라 명명할지라도 그것을 흘려보내는 자가 죽은 운반체임을 망각하고 살아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모든 말씀이 다른 복음이 되고 심판 속에서 빛으로 밝혀주실 때 비로소 내가 저주의 바닥에 있음을 실감하고 쓰레기임을 자각하는 중에 몸을 통과해 나오는 말씀만이 복음이 된다. 내가 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결코 주장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세상이 인간보다 먼저 있었기에 자연보다 앞서지 못하는 인간은 진리의 출처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진리를 추구하고 진실을 파헤치려 해도 도리어 속임수에 더욱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는 늪지대같은 곳에 혼돈을 품으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 땅에 흩뿌려진 아담의 흙먼지들에게 언약이라는 율법이라는 말 자체가 인식 불가인 이유는 인간은 지면에 부착되어 땅의 의미를 내 의미로 흡수해서 생존에 몰두하며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우글거리는 욕구들이기 때문이다. 이 욕망의 힘이 응집된 최정점인 국가권력에 주의 몸이 찢기실 때 그 안에 내포된 혼돈이 터지고서야 언약과 땅이 만나는 접점이 생기고 다 같이 흙이었는데 땅에서 기이한 분리현상이 일어난다.

아무 문제 없이 세상은 잘 돌아가고 예수님의 죽음은 마땅하다고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여기는 자들과 주님의 혼돈에 접속되어 내가 마귀의 의미를 대신 추구해 주는 아바타로 사탄이 예수님께 저지른 참혹한 행동을 나도 똑같이 하게 되는 저주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되는 자들로 갈린다.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좋았을 이유를 유감없이 뿜어내며 망할 길로 걸어가야 하는 운명에 내 선택은 여지가 없었음을 알아가며, 내가 있어야 하나님이 있고 내가 있기에 하나님을 믿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육신은 모두 심판 아래 있음을 가르치시려고 하나님이 특별히 이 세상에서 땅이 없는 나라가 잠시 있음의 나라가 되게 하시어 이방 나라를 심판하시는 용도로 사용하셨듯이 이 세상에 없는 성도를 출현시키시어 사람도 아닌 육들이 소유욕을 발동해서 내 것이 아닌 것을 반드시 내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이유를 증거 하게 하시고 내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누구까지 죽일 수 있는지를 알게 하시며 인간들을 향한 심판의 증거가 되게 하신다.

율법이 저주스러운 것이 아니라 율법은 스스로 선하나 율법 앞에 드러나는 자아를 통해 죄인 중에 괴수인 나라는 괴물의 모습을 입으로 토해내게 만드신다. 나는 왜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믿고 싶어 하는지, 아니 믿을 수밖에 없는지, 왜 나는 나만 믿을 수밖에 없는지, 철저히 존재가치를 살리도록 허락하시고, 결국에 주인도 아닌 것이 주인 행세하는 내 이름표 뜯어내시면서 그 밑에서 드러나는 율법의 모판 위에서 나로 말미암아 상처 입고 만신창이 되신 주의 이름을 들어 올리신다. 인간은 결코 알아볼 수 없는 유일한 인격체로서 처참히 십자가에 피 흘리시는 예수님을.

예수님만이 없는 하나님으로 있으시고 그분이 구심점임을 드러내는 피조물의 역할은 죽은 인간이 죽을 짓 하다가 죽는, 누구 말대로 막살면 되는, 말이 쉽지 매우 어려운 역할이다. 주님의 멍에는 쉽고 주님의 짐은 가볍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건만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면서까지 순순히 가면 되는 죽는 방향이 아니라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역행하며 힘을 쏟고 싶은 고집이 멈추지 않고 계속 나온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지옥의 규칙이 강렬히 작동하는 곳일수록 내가 주님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뜯어내시는 주님이 스스로 주를 증명하는 과정만 돋보이고 이것을 위해 기억이 만드는 역사라는 허상을 허락하시며 멈춤 안에서 진행이 이루어지게 하고 마감을 나타내려고 마감 안 된 것이 있게 하신다.

나만의 세상을 구축하기 위한 소유 기전이 작동하기 전에 나의 권역 안에 존재하는 개념으로 상대에게 의미를 부여해서 나의 나다움에 일치할 때 낚시질을 시작한다. 그리고 상대가 낚였다면 그는 필히 죽이 잘 맞는 나처럼이 성립된다. 이렇게 나처럼으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더할 수 없는 평화로움과 기쁨을 느끼며 세상이 주는 평강으로 나는 잠시 신이 된다.

주님이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쓰신다고 할 때 베드로가 자신이 어부라고 착각했다면 반드시 베드로처럼이라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낚시질을 했을 것이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주님은 택한 자들을 주님 낚시질의 미끼로 쓰시며 미끼와 짝짜꿍이 잘 맞는 똑같은 것들이 가득 찬 바다속에 던져넣으신다. 나는 주의 일을 하고 있고, 성도이고, 상급이 크고를 생각하는 자체가 오류인 것은 주님의 낚싯줄에 달려 미끼가 된 물고기나 세상 물고기나 아무 차이 없이 서로 잡아먹으려고 아귀다툼을 하다가 주님이 들어 올린 낚싯줄에 그대로 딸려온다. 너나 나나 죄를 이기지 못하고 둘 다 난리 발광한 똑같은 죄 덩어리인데 주님의 언약적 의미가 내재 된 특이한 선택은 한 쪽 고기는 이쪽에 다른 쪽 고기는 저쪽에 분류하신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주의 이름으로 새겨진 이름들이 주에게서 나와서 주에게로 돌아갈 때 위에서 아래로 태어나 잠시 있음의 역할로 흐르다가 다시 돌아갈 유일한 길은 예수님이 살과 피로 열어주신 십자가 문을 통과해서만 갈 수 있고 십자가 안에 있음만이 없음이 될 수 있다. 이 없음에서 내 기억을 박탈당하고 새롭게 태어난 새사람이 나온다.

주의 일을 하기 때문에 새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없는 데서 있게 되었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기적이 살아서 오늘이라는 하루가 내의지로 내 뜻으로 시작된 것이 아님을 확고히 하시려고 어제까지의 행사가 더럽고 추잡한 것임을 비추는 십자가를 경유 해서 모든 것이 죄로 처리되게 하시고, 그 죽어 마땅함만이 살아서 어제까지의 기억을 소실시키고 오늘의 주의 행사가 부지중에 표현되는 몸짓이 새사람의 역할이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죄인이야?’라는 물음에 ‘착하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야. 죄와 벌의 문제도 아니고. 그냥 있고 없고의 차이뿐이지’라고 대답하며 답한 자는 혼돈으로 들어가고 묻는 자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아무 문제 없는 세상으로 들어간다.

언약이 상관있는지 없는지, 피의 효과가 안에 있는지 없는지, 망함의 요소를 담은 나의 이름뿐인지 내 이름이 주의 이름에 포개졌는지, 그리고 정말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시급한지, 이 혼돈 속에서 무지와 무능으로 자신을 규정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놓지 못한다. 강제적 덮침이 아니고서야 기분따라 살고, 보는 것대로 판단하는 자에게 보여도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날로 선명해진다.

다 같은 흙인데 불의한 청지기와 구원받은 강도가 주님을 향한 불의함의 끝판에서 말도 안 되는 구조조정으로 용서의 나라로 들어가듯이 성도는 이미 값을 치른 지옥체험 자유 이용권으로 지옥 생활 실컷 하며 홀로 있는 곤고함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고마움 사이를 오가게 된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서 주님이 율법을 들이대시며 만드시는 차이를 통해 기어 나오는 자아의 역겨움과 예수님의 대신 덮어주시는 사랑 사이에서 나를 상실하는 중에 내 생각을 멈추고 주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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