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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7 13:08:13 조회 : 80         
안양20210916A슥8장2절(덮는 사랑)-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119.207.152.148)
안양20210916A슥8장2절(덮는 사랑)-이 근호 목사

오늘은 스가랴8장하겠습니다. 스가랴8장 전체 다를 할 예정입니다. 스가랴8장1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해놓고 2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여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이렇게 되어있지요. 2절.

여러분이 보시기에 상당히 어렵지요. 시온을 위하여 질투한다는 이 말 자체가 일반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이게 매치가 안 되는 말이잖아요. 시온을 위하여, 시온을 지킨다든지 시온을 보호한다든지 이건 이해가 되는데, 여기 시온 있는데 시온과 무슨 단어가 여기에 연결이 됩니까. 매치가 되고 있어요? 여기는. 질투 한다 되어있어요. 질투한다.

그러면 여기 하나님의 눈이잖아요. 시선. 눈. 시선이라면 하나님의 시선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뭘 지켜보느냐, 시온을 보시는 거예요. 시온을 보시고 시온을 이렇게 시온성이 이렇게 되어있다면, 요 안에 뭘로 채운다는 말입니까. 주님의 질투하심으로 채우겠다 그런 뜻이에요. 하나님의 시온성이 있는데 그 시온성은 뭐로 채운다? 하나님의 질투하심으로 채운다. 이리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시온이라는 말, 성경에서 많이 나오는 말은 뭐냐 하면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 제가 예루살렘에 가봤습니다. 가봤는데 둘로 구분되어야 돼요. 맨 같은 조그만 같은 동네에요. 같은 동네지만, 둘이 해봐야 1키로 약간 더 넘는 거 같은데, 약간 북쪽에 있는 것이 성전이고요, 남쪽에 있는 것이 시온이고 그래요. 그런데 같이 붙어서 예루살렘이라고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자,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사수하신다. 예루살렘을 사수하신다.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이다. 예루살렘을 사수해야 될 이유가 뭐냐, 갈라디아서 4장 26절에 보면, 예루살렘이라고 해놓고 뒤에 보면 □다. 라고 되어있어요. 예루살렘은 무엇이다. 예루살렘은 우리의 어머니다. 예루살렘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되어있어요.

어머니의 하는 일은 뭐냐 하면 자녀 생산입니다. 자녀 생산. 그렇다면 어머니 없이는 자식이 안 태어난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어머니답게 되려면 어머니가 자식 낳는 기능을 한다, 안한다? 자식을 낳지 않는 어머니는 없잖아요. 어머니라고 하는 것은 내가 인정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은 이 예루살렘이라는 어머니를 경과해서 출생된 자에게만 해당된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제 천국가시면 어머니가 누구냐? 라고 이야기하면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예루살렘입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돼요. 예루살렘이 낳은 자식이 누구다? 접니다. 라고 되어있는 거예요. 갈라디아서4장에서 여기서 어머니를 둘로 봅니다. 첫 번째는 어머니1로 할게요. 두 번째는 어머니2로 할게요. 어머니1, 어머니2로 할게요. 갈라디아서4장26절은 어머니2로 봅시다.

제가 묻는 것은 이거에요. 예루살렘이 어머니라면 그러면 어머니1은 뭐냐 하는 거예요. 갈라디아서4장에 보면 나와 있어요. 어머니1과 어머니2로 나누어지는데 어머니1과 어머니2가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인간은 어머니1에서 나온 사람은 안 받는다는 겁니다. 자식을 낳기는 낳았는데 이 어머니1에서 낳은 자식은 일체 나는 천국에서는 받아주지 않겠다, 라는 것이 어머니1이 있는 취지입니다.

어머니1은 아니고 어머니2라는 거예요. 그럼 어머니1은 뭐냐, 이게 바로 육신의 어머니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갈라디아서4장이야기이니까요. 이건 생소한 거 아닌데. 아브라함에게 제가 갈라디아서4장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아내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둘이 있었어요. 아내1, 아내2. 아내1이 하갈이고 아내2가 사라에요. 요 식대로 한다면.

하갈이 한 일은 뭐냐 하면 바로 자식을 낳았어요. 자식을 낳았다. 그런데 사라가 하는 일은 뭐냐 하면 자식을 낳았다? 못 낳았다? 자식을 못 낳았어요. 잉태치 못한 자라 되어있어요. 성경에서. 잉태치 못한 자만이 어디 간다? 천국 간다. 같은 말로 이 세상에서 잉태된 자는 단 하 사람도 천국에 넣어주지 않겠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태어나서 교회 다녀서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 못 가지요. 왜? 육에서 나서 육으로 가면서 교회 다녔으니까. 아무 소용없지요.

뭐 교회를 다니든 무슨 말씀을 듣던 변화가 일어나야 돼요. 어떤 변화? 내가 우리 어머니로부터 자식이 되었지만 이 육의 자식은 하나님께서 안 받아준다는 것을 아는 변화. 이걸 알게 된 변화. 아! 내가 평생을 교회 다녀도 하나님께서는, 교회에서는 받아주는데, 하나님께서는 안 받아주는구나! 를 이게 하나님의 원칙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 변화.

그 안 받아준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사람이 죽게 되면 평생 살아온 것이 죽는 순간 다 날아가 버려요. 뭐했니? 아무것도 안했어요. 그저 죽는 일만 했어요. 죽는 순간에 죽는 그것을 골인, 골인지점으로 해서 달려왔을 뿐이에요. 내가 평생 한 그 모든 것이 나의 죽음을 멈출 수 있는 능력은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공부 잘해서 서울 법대 가서 사법 검사해서 변호사해서 국회의원 되었다. 그 중에서 자기의 죽음을 돌이킬 수 있는 그런 기능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서울법대, 국회의원, 변호사, 어떤 것도 자기 인생을 헛된 인생이 아니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자랑하는 것은 어떤 걸 자랑하게 되는가 하면 자기가 이 땅에서 뭘 해도 내가 죽게 된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에요. 이건 놀라운 변화입니다. 내가 살아서 이 정도 했다. 라는 것은 이건 육에 해당되는 사람이에요. 살아오면서 신학교 가서 목사해서 개척교회10군데하고 세계 선교하라고 내가 선교헌금도 많이 모아가지고 25개국에 선교헌금 보내고. 이런 것은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에요.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에요.

변화된 사람은 ‘내가 죽어 마땅함을 이제 알았네.’이게 변화된 사람이에요. 이게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안 사람입니다. 인생에 어떤 획기적인 업적도 수많은 사람에게 봉사하고 나로 인하여 많은 유익을 끼친다 할지라도 그것이 나의 죽음을 취소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나의 죽음을, 그 다음에 용어 하나를 쓰겠습니다. 이 용어 여러분들이 다 아실 거예요. 부스터.

부스터 알지요. 백신 3번 맞는 것. 부스터 무슨 뜻이에요? 가속하는 거죠. 가속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나의 죽음을 가속하는 힘을 더 보태는 그런 일들뿐이었다는 것을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서 그걸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이건 뭐 성경에 전도서에 나오는 이야기니까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런 류의 이야기잖아요. 그런 변화에요.

육에서 태어났지만 육에서 태어난 자기 나라는 인간, 엄마 없이 태어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어머니1에서 태어난 나는 하나님께서 이걸 폐기처분하라고 어머니에게 태어났다는 것을 이게 하나님의 뜻인 것을 왜 이제야 알았느냐고 아주 기뻐하는 사람. 그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지요.

“니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구나!” “니가 어머니2를 아는구나!” 아브라함의 아내2를 아는 사람이에요. 그게. 아브라함의 아내2를. 그래서 갈라디아서4장에서는 아내1, 2를 하지 않고 아내1을 가지고 하갈을 가지고 언약1이라고 합니다. 언약1, 2를 합해서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것은 곧 두 언약이니 언약이 2개다 말이지요. 이게 두 언약인 거예요. 여러분들은 왜 언약이 두 개인지를 아시겠지요. 왜 그걸 구약 때 이야기하지를 않고 신약 때 이야기하시는지를 아시겠습니까? 구약 이스라엘은 멸망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요.

니느웨만 멸망하는 게 아니고 이스라엘도 멸망해야 돼요. 육에서 난 것은 다 멸망하는 거예요. 심지어 하나님마저 이 땅에 왔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마저 망합니다. 저주받습니다. 멸망합니다. 하나님이 멸망한다는 조건을 세워놓고 하나님이 세운 조건하에 자기도 거기다가 들어가 버려요. 주님도 멸망해요. 주님도 죽어요. 죽고 난 뒤에 틈이 세 시간이었습니까? 3분이었습니까? 몇일이었어요? 틈이. 죽고 난 뒤에. 3일 만에 살아나셨지요. 3일 틈이지요.

생각해보세요. 3초도 아니에요. 3분도 아니에요. 3일동안 죽었어요. 인간 같으면 어떻겠습니까? 제자들 어떻겠습니까. 모든 것은 게임오버, 끝났어요. 어떤 인간도 죽은지 3분되어서 부실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완전한 단절입니다. 완전한 단절이에요. 손 쓸 수가 없어요. 주님께서 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이를 완전 단절을 줬습니까? 인간의 모든 종교가 아무짝도 소용없는 거예요. 내가 교회 와서 한 것도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성경공부, 기도, 찬송 뭐 어떤 것도 죽은 나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은 안 됩니다.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하는 것은 전부 다 목사가 구라치는 겁니다. 목사가 거짓말하는 거예요. 없어요. 오는 사람들 위로한답시고, 아까 누가 이야기했는데 삥땅 뜯는 거예요. 삥땅 뜯는 거예요. 위로해주고 돈 받아 챙기는 겁니다. 아주 노골적인 보이스 피싱도 그런 보이스피싱도 없어요. 사기꾼이지요.

여러분, 예수님을 요한복음10장에서 예수님을 뭐라고 합니까? 목자라고 하지요. 요한복음10장에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기존 목자를 목자로 인정하지 않는 목자에요. 인간이 세운 모든 목자를 목자로 간주하지 않는 목자입니다. 인간에 있어서는 목자 더하기 하나, 목자 하나 더 숟가락 하나 얹는 그런 목자가 아니고 기존에 모든 목자는 목자가 아니다. 왜? 능력이 없으니까. 무슨 능력? 3일의 틈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까.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종교적으로 발달했습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거예요. 기도도 해봤다가 금식도 해봤다가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6장에서 그 예수님께서 기도와 금식과 할 때 무슨 지적을 해요? 바리새인의 기도와 금식과 또 한 가지 더 있지요. 자선행위, 구제. 구제하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아, 세상에 여러분 교회 가서 목사가 기도를 공격하는 목사 봤습니까? 여러분, 못 봤지요. 교인들이 “아이고, 우리들은 목사님처럼 성경 몰라요. 저는 신학대학도 안 나오고 우리는 그런 말씀 잘 몰라요.” 그렇게 하면 목사가 뭐라고 합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기도나 하세요. 기도는 못 배워도 할 수 있잖아요. 간절한 마음으로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하시면 응답하십니다.”그리 이야기하잖아요. 그게 바리새인들이 했던 그게 삥땅 뜯는 방법이에요. 그게. 그게 사기라니까요. 그게.

그저 인간에게 자기에게 어떤 긍정성을 주려고 지 하는 행동에 보람을 주려고 그 짓을 해 온 거예요. 그 짓을. 아무것도 몰라도 내가 간절히 기도해서 내 아 새벽기도 해서 내 아 대학 둘 다 보냈다고. 보내면 뭐합니까? 죽는데. 보내면 뭐해요? 죽잖아요. 목적이 뭡니까? 대학가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요. 인생은. 인간에게는 목적이 없어요. 목적 뒤에 목적 있고, 목적 뒤에 목적 있어요. 산 넘고 산이에요. 그저 장가만 가면. 장가가면? 아파트만 있으면. 아파트 있으면? 딱 아들만 낳으면. 아들 낳았으면? 뭐 어쩌라고? 그래 결국 죽잖아요. 죽는 게 목적이네. 그럼 잘 죽으라고 기도했어요. 왜 목적을 중간에 끊습니까? 갈 때는 끝까지 가야지. 목적을. 왜 비겁하게. 왜 비겁하게 중간에 목적을 왜 끊어요. 도중에 삥땅하는 인간이 그렇게 많은 거예요. 빵땅 하는 인간이. 돈 좀 내면 복 받을 줄 알고. 아이구야~ 참.

제가 이런 이야기를 기존 목사한테 하면 목사가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그래도 계속 속아 넘어가는 사람 있다. 이렇게 하거든요. 속는 사람 계속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장사가 되는 거예요. 교회 업소가 되는 거예요.

지금 무슨 이야기했느냐 하면 갈라디아서4장 26절 이야기를 설명해 드린 겁니다. 예루살렘이 어머니에요. 그런데 그 예루살렘이 갈라디아서4장26절에 보면 위치가 어디입니까? 땅에 있습니까? 하늘에 있습니까?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지요. 위에 있는.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그 다음에 뭡니까? 어머니라. 어머니가 하는 기능이 뭐라고 했습니까? 자식을 생산하는 것. 그러면 아브라함에 있어서의 사라의 기능과 신약에 오면 예루살렘의 기능과 시간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보면 되겠지요.

아브라함 이야기는 구약이야기고 하늘의 예루살렘은 신약의 이야기니까 이것이 결국은 시간이라는 것은 사다리 역할하고 있는 겁니다. 이어져가는 거예요. 그러면 하늘에 있다는 말은 쉽게 말해서 이런 겁니다. 니가 땅에 있는 어머니한테 니가 육신으로 생일축하합니다~ 하고 태어났냐? 네,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그 육을 죽어야 될 분에게 맡기면 죽어야 될 분이 그걸 내 죽을 육을 가져가게 되면 그것이 예루살렘을 통해서 이게 뭐로 전환되느냐 하면 예루살렘에서 그 육을 죽여 놓고 육에서 영으로 다시 살리는 기능이 어디서 일어난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제가 로마서5장 이야기했잖아요. 아담의 계통에서 뭐가 왕 노릇한다고 했습니까? 죄가 왕 노릇하지요. 왕이라는 것은 권세가 너무 세 가지고 어떤 인간도 그 권세에서 못 빠져나온다는 의미에서 왕이에요. 왕이라 하는 것은 왕의 손아귀에서 못 빠져나가는 거예요. 죄 안 짓고 싶어도 죄짓게 되어있는 게 죄가 왕이기 때문에 그래요. 문재인이 왕이 아니고. 북한의 김정은이가 왕이 아니라 죄가 왕이에요.

캐나다에 이민가도 죄가 왕이에요. 아프가니스탄 가도 죄가 왕이에요. 괜히 세상 정치 핑계대지 마세요. 죄가 왕입니다. 이미 우리한테 왕이 있어요. 왕이 있으니까 주님께서 그 자기 백성 만드는데 있어서는 그 육을 육으로 그냥 쓰레기를 그냥 받아줍니다. 그냥 이 땅에 받아줘요. 받아주려면 아브라함에게 아내가 누가 있느냐 하면 하갈이 있었지요. 그 다음에 사라가 있었지요.

자, 하갈은 자식을 놓을 수 있습니다. 하갈은 잉태합니다. 그러면 사라는 잉태됩니까? 잉태되지 않습니까? 자식이 없지요. 그러면 자식이 있는데서 하나님께서는 자식이 없는 데로 요걸 바꿉니다. 이게 하갈은 갈라디아서4장23절에 보면 육이라 되어있거든요. 육. 사라를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사라계통을 가지고 성령이라 해요. 성령. 육체로 난 자식과 성령으로 난 자식과 그 때에 육체로 난 자식이 성령을 따라 난 자식을 4장 29절에 나와요. 한 번 읽어볼까요.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인간이 두 종류가 있지요. 하나는 육체를 따라 난 자식과 그 다음에 성령으로 따라 난 자식. 30절,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이렇게 되어있지요.

사도바울의 편지가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함축되어있어요. 내용이. 요걸 쉽게 말씀드리면 하갈이 있음에서 아브라함의 아내가 하갈 있음을 있음 자체를 육을 자체를 쫓아내버려요. 그 다음에 뭘 붙드느냐 없는 쪽을 아브라함이 아내로 잡아야 돼요. 자식이 없다가 자식이 있다, 로 되려면 어디서 개입하느냐 하면 하늘에서 개입해야 돼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게 뭐냐 하면 약속이라는 게 옵니다. 약속이 있음을 채우게 되면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져요. 여기 자식이 생겨요. 희한하지요. 자식이 생긴다고요.

이삭이라는 자식은 죽은 아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삭을 부활로 이야기하고 이삭은 자식이 없는 엄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삭은 없음에서 있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반드시 어디를 가야 된다? 없음에서 다른 말로 합시다. 없음은 다른 말로 하면 죽음. 죽음에서 뭐로 있다? 없음에서 있음. 죽음에서 부활되게 하는 거예요.

따라서 이 없음과 죽음을 요런 장치, 설비, 설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요 기능을 하기 위해서 없음과 죽음 이 기능을 하기 위해서 요걸 이 땅에서 만들어버린 거예요. 요게 십자가입니다. 만들어버리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없음은 뭐가 반대되고 있음이 되고, 죽음은 뭐가 되고, 부활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요렇게 만들 때 주님 안에서 요렇게 만들 때 주변의 환경은 뭐냐 하면 뭐가 왕 노릇한다 합니까? 죄가 왕 노릇하는 거예요. 죄가 지배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일부러 자기 아들을 떨어뜨려요. 떨어뜨린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추락. 다른 말로 하면 몰락. 또 성경에서는 빌립보서2장에서는 이걸 가지고 하강. 더 쉽게 풀이하면 낮아지심에. 또는 자기를 비우사. 이런 용어를 쓰는 거예요.

하나님이 스스로 자기를 떨어뜨린 거예요. 인간은 올라간다고 환장하는데 주님은 떨어지려고 애쓰고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어느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어느 하나님을. 너희는 예수의 마음을 보라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너는 이 마음을 품으라. 그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우사 죄의 종이 되셔서 어디까지 복종했다? 십자가의 죽기 까지 복종하셨으니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주가 되게 하사 모든 이름으로 그 무릎을 꿇고 그 분을 찬양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빌립보서2장5절에서11절까지 내용입니다.

이건 인간의 육이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니에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공부, 헌금, 전도, 이걸로 대체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주께서 홀로 다 하셨어요. 주께서 홀로. 홀로 다하셨습니다. 주께서 홀로 다하셔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약속의 자녀가 되게 되면 성령 안에서 약속의 자녀가 되게 되면 우리가 먹고 마시고 아침에 운동하고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함이 아니고 누구를 위함이다? 주님을 위한 일이 자동으로 그렇게 되게 되어있고 그게 하나님의 의가 되게 되도록 그렇게 자동이체가 되게 되어있어요.

나한테 일을 시킨 것이 이체가 되면 내 통장에다가 이체가 되면 저쪽 주님 통장에 주님의 일이 되어버려요. 애초부터 주님의 통장에서 돈이 나한테 와서 나에게 빠져나가 주님의 통장으로 환원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로마서11장33절에 보면 모든 것이 주로부터 와서 그 다음에 주로 말미암아 어디로 돌아갑니까? 주께로 돌아간다.

지금 성경공부하고 있는데 밖에서 딩동~ 택배 왔습니다. 집사님이 택배를 받았어요. 택배를 받고 난 뒤에 딩동~ 이집 것은 아니네요. 줘놓고 도로 가져가 버리지요. 줘놓고 도로 가져가버리는 거예요.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주님께서 회수해 나가는 방식으로 우리가 구원되는 겁니다. 택배 받은 걸로 구원해 주세요. 이건 말이 안돼요. 내 것이라는 것이 구원 받는 가운데서 내 것은 다 떨어져 나가야 돼요. 다 떨어져나가야 돼요. 로켓이 올라갈 때 옆에 걸치는 것은 마지막 궤도에 올라갈 때는 캡슐로 올라가고 나머지는 다 떨어지잖아요. 오직 그리스도 주신 것만 생생히 살아서 끝까지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고 볼펜 제일 끝 지점 끝처럼 올라가고 나머지는 다 떨어져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뭐냐 하면 주께서 오시면서 만든 게 뭐냐 하면 이게 하나님께 유일하게 기도가 응답되는 장소를 만들었어요. 그걸 가지고 뭐냐, 기도하는 집. 기도하는 집을 두 자로 줄이면 이게 바로 성전입니다. 지상에 응답이 가능한 곳을 만들어놓아요. 기도하는 집. 성전이거든요. 성전 만들고 이 성전이 예수님이 승천하면서 이 성전에 이곳에 있지 않고 떠나야 그래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 되는 겁니다. 예루살렘은 무엇이 있는 곳입니까? 성전이 있는 곳이에요.

따라서 스가랴 전체내용은 뭐를 지어라? 성전을 지어라가 주제가 됩니다. 성전을 지어라. 어느 곳에?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어라. 성전이 없는 예루살렘은 니가 많이 힘들어했잖아.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이 다윗 때 예루살렘을 정복했잖아요. 그런데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무엇이 날아가서 멸망하느냐 하면 나라가 없다고 멸망이 아니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연결 접촉지점 예루살렘 성전이 떠나버리면 그 예루살렘은 게임 끝나요. 그건 이방나라입니다. 없어요. 왜? 접촉점이 없어요.

접촉점이 없으면 이건 예루살렘 아닙니다. 성전 아닙니다. 성전 없으면 예루살렘 아니에요. 그냥 황무지에요. 그래서 스가랴 지금 하고 있잖아요. 스가랴 할 때 지금 제가 계속해서 처음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예루살렘이 뭐냐 이야기했어요. 예루살렘이 뭐냐 할 때 갈라디아서4장 이야기했지요.

자, 복습합시다. 예루살렘은 뭐라고요? 어머니. 옛날에 우정의무대라는 게 MBC에서 했거든요. 우정의 무대 군인들 끝에 나와 가지고 무슨 이야기했습니까? 어머니! 하잖아요. 우정의 무대. 뽀빠이 이상용 사회 보는 거 있잖아요. 어머니! 부르지요. 여러분도 한 번 불러보지요. 어머니! 어머니! 라고. 우리의 어머니라고. 우리의 어머니가 하늘에 있는 거예요.

두레박처럼, 엘리베이터처럼 내려갔다가 올라가신 겁니다. 자기 백성 회수해 가는 거예요. 다윗 때 만든 예루살렘에 다윗이 예루살렘 만들면서 하나님께 성전 지어드리겠다고 약속할 때에 하나님께서 지금 짓지 말라. 아직 전쟁 안 끝났다. 전쟁 다 끝난 뒤에 해라. 해서 전쟁 끝날 때 왕이 누구냐 하면 솔로몬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역대상에 보면 성전을 솔로몬이 지은 걸로 안하고 솔로몬 본인이 누가 지은 걸로 하느냐 하면 죽은 아버지 다윗이 지은 걸로 봐요. 성전을.

우리는 누구나 솔로몬이 성전 지었다고 보잖아요. 그러나 실제로 성경에 보면 설계도부터 재료까지 누가 만든 거예요? 다윗이 한 거예요. 다윗이 레시피를 준 거예요. 성전의 레시피. 성전 요리할 때 요렇게 요리하면 된다고 레시피인데. 레시피 내용이 뭐냐, 레시피 내용이 바로 시편51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와 번제를 원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상한심령이라. 상한 심령. 성전이 성전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효과로 그들로 하여금 상한 심령이 되게 하시는 겁니다.

요나2장에 보면 요나가 물에 빠져 죽을 때 하나님께서 고래 보내가지고 큰 고기 보내가지고 요나를 삼켰잖아요. 그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가 했던 기도의 내용이 뭡니까? 어느 쪽을 향하여 기도했습니까? 성전을 향하여. 저는 아직도 신기한 게 그 컴컴한 물고기 뱃속에서 동서남북을 어떻게 구별했는가. 나침판 발명한 것도 아니고. 아주 신기해요. 그러니까 말로는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오니, 방향이 안정해도 괜찮아요. 거꾸로 해도 괜찮아요. 말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오니. 이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한 것이 성전을 살리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부수적으로 보조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자, 이 정도로 하나님께서 집착하고 성전에서 강조한다면 오늘 본문처럼 8장2절처럼 질투 할 만하지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그 다음에 뭡니까? 크게 뭐한다 했습니까?) 크게 질투한다. 크게 질투하지요. 지킬 것은 오직 성전뿐이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성전 위주로 예루살렘 위주로 시온 위주로 이렇게 나가는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는 관심이 없어요. 성전 짓는 걸 태만히 하고. 그래서 뭐하느냐 하면 질투하는 자가 질투에다가 뭘 더 보태느냐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한다. 크게 화를 내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화를 낼 때, 그 사랑하는 사람이 화를 낸다는 것은 그 사랑하는 사람의 주된 관심사가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아들집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랜만에 놀러왔다 칩시다. 손자가 있는 거예요. 손자 보고 “아이고, 우리 손자 공부도 잘하고 선행상도 받고 그렇게 착하다면서.” 그러면 딸이 있다가 “할아버지한테 고맙다 해야지.” “할아버지 고마워요.” “니가 그렇게 공부 잘하니까 할머니가 용돈 줄게.” 할머니가 용돈 주면 딸이 있다가 “빨리 할머니한테 고맙다 해야지.” “고마워요.”

“니가 그렇게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착하다면서 엄마 말도 잘 듣고.” 그 소리 듣고도 손자가 별로 좋아하는 기색이 없어요. 왜냐, 워낙 많이 들으니까 식상해서. 그런데 할아버지가 선천적으로 개를 싫어해요. 그런데 개가 오니까 “개를 왜 여기서 키우노. 저리 가!” 하고 개를 잡아가지고 툭 던지니까, 손자가 와~ 하고 질투하면서 분노하는 거예요.

자, 질투하고 분노한다는 말은 정작 본인이 관심 있고 중요시 여기는 것은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질투와 분노가 없으면 분노하는 질투가 없으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관심사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요? 몰라요? 우리가 알지를 못하지요. 하나님의 관심사는요,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관심사는 뭐냐, 성의를 다 표하는데 관심을 둬요. 하나님이시여, 신이시여, 제가 이렇게 교회를 다니면서 성의를 표했습니다. 여기에 관심을 두고 있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는 거예요. 인간은 자기가 잉태할 수 있는 것을 자꾸 자랑질하려고 해요. 내가 이 정도할 수 있는데. 기도할 수 있는데. 헌금할 수 있는데. 선교할 수 있는데. 예배참석 할 수 있는데. 자꾸 할 수 있는 걸 강조해요. 내가 잉태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그래서 남한테 칭찬받으려고 애를 쓰잖아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정작 그런 거 가지고 하나님은 좋아하시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건드리지 말아야 될 것을 건드린 것은 뭐냐 하면 바로 나도 할 수 있습니다, 가 이게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는 거예요. 왜냐하면 누가 다 했기 때문에? 예수님 홀로 다 했어요. 구원에 관한 것은 예수님 홀로 다했지 우리가 한 게 없어요. 우리가 한 게 없는데 우리는 우리의 한 것 가지고 복 내놓으라는 거예요. 완전히. 이건 조폭처럼.

새벽기도 40일 연속했으니까 응답해 달라는 거예요. 계속해서. 우리의 관심사는요, 내가 고생해서, 수고해서, 희생해서, 내가 평생을 욕보면서 얻어낸 업적과 결과물이에요. ‘하나님 내 딸 건드리기만 해봐라.’ 이리 나온다고요. 그 딸이 뭔데? 내 딸 얼마나 애지중지하고 귀하게 보고 차라리 내 목숨을 바치지 딸의 목숨 건드리지 말라 하는 정도로 그 정도로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게 딸이고 자식이고 아들 아닙니까. 딸이고 아들이다 말이죠.

교회 가서 기도해도 딸, 아들을 위해서. 뭘 해도 이것 잘하면 딸, 아들 복 받겠지. 으이구~ 우리 딸, 아들은 게을러서 기도 안하는데 내라도 엄마가 자식 대신 기도해가지고 주님이 내 자식한테는 화가 안 미치도록 내가 나서서 희생해야지. 이게 부모 된 도리지 뭐. 이게 부모 된 도리야. 이런 마음으로 효심이 가득해야 됩니까.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거예요? 이런 마음으로 교회 다니고 충성 다하는 거예요. 부모가 행동 잘못해가지고 그 화가 자식에게 저주로 임할까 싶어서. 참 그걸 보니 완전히 무당인지 교회인지 분간이 안 돼요.

하여튼 교회 행동 하나, 하나가 미신에서 안 벗어나요. 미신에서. 교회에 꽃꽂이를 해놓으면 남들이 꽃꽂이 할 때는 말썽꾸러기 꼬맹이가 꽃 하나 빼가도 내가 한 것도 아닌데 하다가 꽃꽂이 봉사하는 순서가 내가 되어서 해 놓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예배시간에 눈 벌겋게 해가지고 꽃꽂이 구도가 잘되었는지 못되었는지 개구쟁이가 와가지고 꽃을 뽑는지 그것만 신경 쓰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피아노 하나 기증해 보세요. 저기 저 음이 이탈했는데 저거 나중에 한 번 조율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목사 설교도 안 들어요. 그것만 생각해요. 인간은 자기 한 것을 습관적으로 한 것을 기억하는 거예요. 기억하고 그 기억한 것이 자기 영광이에요. 이게 육이에요. 주님 기도는 생각 안하고 지 기도 열심히 한 것만 생각해요.

그래서 이스라엘을 분노함으로 이스라엘을 어떻게 했다? 이스라엘을 달랑해서 이스라엘을 나가! 그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을 약속의 땅에서 추방시켜 버렸어요. 내 성전을 이렇게 더럽게 꾸미다니. 성전도 주께서 화가 나가지고 하나님이 자기 성전을 불태워버렸어요. 바벨론을 통해서 불태워버렸어요. 심판의 불길이 화염이 하나님의 성전을 불태워버렸습니다.

그걸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이구! 저 성전. 하나님의 성전. 저걸 지켜야 되는데.” 그것 때문에 걱정이 되었어요.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놔두세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그만큼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은 만큼 성전을 생각하지 않은 증거로 불태웠으니까 마땅하고 성전 없으니까 이제는 이스라엘은 삑! 끝났습니다.

다시 이스라엘을 할 때 이스라엘이 나올 때는 애굽에서 출애굽했잖아요. 다시 이방나라로 다시 노예로 만들어버려요. 노예로 만듭니다. 그럼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3절에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이 말은 뭐냐 하면 두 번째 출애굽이에요. 두 번째 출애굽. 첫 번째 출애굽에서 왔던 것은 다 추방되고 육이니까 다 추방돼버리고 다시 애굽으로 해서 하나님의 성산에 내 백성이 그득하게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성산에는 4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가 많으므로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세대별로 둘을 떼어놓는 거예요. 소년. 소녀, 이게 유년기죠. 유년기.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사람. 10년에서 20년 된 사람. 그러면 노인네는 60년이상 70, 80, 90까지지요. 처음과 끝을 생동감 있게 있다는 말은 가운데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말입니다.

사무엘하 마지막 대목에서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3가지 징벌을 줬지요. 사무엘하24장 13절, 하나는 뭐냐 하면 7년 동안 기근, 그 다음에 석달동안 전쟁 상태에 있고, 3일 동안 전염병 퍼지지요. 자, 전염이 퍼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여기에 유년기와 노년기가 완전히 작살납니다. 그럴 때 다윗은 인구조사를 했던 그 다윗 본인이 제사장이 돼요. 이 말은 죄인이 뭐된다? 죄를 알고 제사장으로 투입되는 겁니다.

그동안 인간은 죄도 모르면서 제사장에 형식적인 습관처럼 제사를 드리는 거예요. 제대로 죄를 알고 제대로 하나님의 관심사를 알고 그 관심사와 결여가 있는 이 세상의 죄. 성전의 가치를 모르는 인간들의 죄. 그걸 충분히 아는 자만이 영원한 제사장이 되어야 돼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다윗은 그것을 미리 하나의 기호로서 보여준 거예요. 다윗은. 다윗은 기호로서 그냥 보여준 거예요. 장차 오실 메시아는 이렇다고.

오늘 본문에 나온 이 예루살렘의 거리의 풍경도 진짜 하늘나라에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역사상에 역사적으로 하나의 기호처럼 영화를 보여주는 거예요. 하나의 사례를 보여준 거예요. 어디에 비유해서? 옛날에 땅의 풍경. 땅에 인간들이 사는 마을 풍경을 그걸 모티브로 해가지고 그걸 하나의 인형극으로 생각해서 고 인형에 맞춤으로서 마지막 때 인형은 옛날처럼 그렇게 허전하지 않고 활기찬 거리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구약 자체는 모형이니까. 설계사무소 모형 있지요. 설계사가 모형보고 들어가 살라고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요. 설계사무소에 아파트 있다고 나 오늘부터 여기서 나 살림 살래. 이런 사람 없잖아요. 어디까지나 모형하고 실제하고 구분되잖아요. 구약은 전부 다 히브리서에 보면 모형이에요. 장차 천국의 내용물은 이렇게 활기차다고 보여주는 겁니다.

자, 이들이 이렇게 활기찬 바탕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성전을 향하는 그 질투심으로 분노했다는 그 작업을 밑에 깔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활기찬 예루살렘을 회복시키는 거예요. 잘되게 하는 거예요.

자, 그렇다면 요 이야기하고 첫 째 시간 마치겠습니다. 그렇다면 질투를 분해해 봅시다. 질투를 분해해보게 되면 질투 안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사랑이 들어있고, 하나는 저주가 들어있습니다. 요 질투 안에는. 질투라는 것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사, 궁극적인 관심사 안에는 사랑으로도 표현되고, 반대로 저주도 포함되지요.

질투하심으로 사랑의 나라는 무슨 나라입니까? 천국. 저주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지옥. 천국은 왜 생기고, 지옥은 왜 생깁니까? 하나님의 자기의 성전을 사랑하는 지독한 질투심에서 이렇게 천국과 지옥이 생기는 겁니다. 모든 것이 질투와 사랑이죠.

그래서 안 믿는 사람한테는 하나님의 성전을 모독했다고 질투심으로 저주해버리고 진노하고, 하나님의 천국 백성에게는 니가 내 사랑을 아는구나! 해서 그들은 천국가고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첫 째 시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뭡니까? 하나님의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최종 궁극적인 관심사는 어디일까요?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이고, 시온이고, 그것이 바로 성전이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기 때문에. 요한복음2장에서. 46년간 그거 성전 아니야. 내가 성전이야.

자, 성전은 어떤 갭을 걷게 된다?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해야 돼요. 없는 데서 있게 하고 죽은 데서 살아나는 효력, 능력이 있을 그 장소만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들어온 사람은 성전 안에 들어온 사람은 주님의 사랑 안에 들어온 거예요. 그 사랑의 혜택은 바로 2절에 성산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활기차지요. 생명으로 활기차지요.

그 다음에 8장 6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 많은 백성들이 그 다음에 눈에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눈에는 뭐하려니와? 기이하다 했지요. 기이하다. 기이하다는 게 뭡니까? 인간의 머리의 예상 밖이다. 이 말이지요. 신기하다 이 말이지요. 우째 이런 일이? 깜놀. 깜짝 놀랐다. 우째 이런 일이. 인간의 머리에서 안 나오는 일을 주께서 하신 거예요.

인간이 얼추 흉내도 못 내요. 너무 귀해서. 오히려 구원 받은 우리가 놀랄 지경이에요. 어떻게 아무것도 안하고 구원 받다니?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라는 말만 하란 말이죠. 주께서 원하는 것은. 거기에 생동감 있게 천국에서 활기차게 사는 사람이여, 그것은 수시로 쉬지 않고 우째 내가 천국에 다 오다니? 요 이야기만 계속해서 하시라 그 말입니다. 하실 수 있습니까. 일단은 10분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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