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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3 21:47:20 조회 : 192         
강남-누가복음 6장 9절 (시작점) 210420a-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누가복음 6장 9절 (시작점) 210420a-이근호 목사



오늘은 누가복음 6장 6절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이렇게 되어있지요.


안식일 날 안식일을 두고 예수님과 바리새인이 대결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을 뭐로 보느냐 하면은 인간으로 보지요. ‘인간’. 예수님을 바리새인은 뭐로 보느냐 하면은 역시 인간으로 보는 겁니다. 그럴 때 인간에게는 자기 인간의 본인의 의견이 있고 예수님에게도 예수님의 의견이 있다라고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생각을 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의견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6장 5절에 보면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이렇게 되어있지요. 그러니까 이거는 안식일이니까 율법입니다. 율법이 인격화된 거에요.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니까 움직이는 인물화된 율법, 이것은 바리새인들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거에요.


법이 있으면 내가 그걸 지키는 대상이 되겠지요. 법은. 우리나라 헌법은 국민들이 지키면 되잖아요. 판사가 그 헌법에 준해서 재판하는거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 김헌법이라는 사람이 등장했다. 김헌법. 법 자체가 그 사람의 인물화 되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지킬 필요가 없어요. 본인이 법이거든요. 본인이 살아있는 법, 움직이는 법이 된단 말이죠.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당신의 의견은 어떤가 이렇게 딱 지켜봤다 했잖아요. 오늘 아까 읽었던 본문에 안식일에 우리는 이렇게 지키는데 예수라는 그 인간은 어떻게 지키는가 봤잖아요. 결국은 율법이 인격화 되고 안식일이 인격화 되게 되면 뭐가 없느냐 하면은 인간에게는 안식일이 없는 거에요.


인간은 관심 갖지 말아야 될 것에 관심을 가진 게 바리새인들의 이게 잘못된 거에요. 인간이 왜 법에 관심이 있지요? 누구 좋으라고? 뭐 때문에? 뭐 때문에 관심 있지요? 대구도 마찬가지고 서울도 마찬가지고 지금은 계도기간이지만 큰 도로에서는 시속 50, 그리고 작은 도로에서는 시속 30 한다. 그걸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법이라고 하지요. 법. 그 법을 준 것은 지켜라. 시속 100으로 하지 말고 70 하지 말고 큰 길에 시속 50km 한 거죠.


그러면 인간들은 인간들 자신을 위해서 법을 만들잖아요. 법이 있지요. 법을 지키게 되면 누가 그 의인이 되고 잘난 사람이 되느냐 하면은 법 지키는 사람이 되겠지요. 법 지키는 사람, 법 위반하는 사람. 그래서 인간들은 자기가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뭐를 자꾸 요청하느냐 하면은 자꾸 법을 요청하는 거에요. 법을. 법을 요청해가지고 나 괜찮은 사람이고 법대로 살았기 때문에 나는 너한테 지적받을 대상이 아니라고 스스로 자기를 옳다고 하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그 따르는 제자들의 운명은 이들 바리새인 운명과 달라요. 한번 적어 볼게요. 중요한 것은 빨간 것으로 적습니다. 성도란 자기설득을 반대하는 자에요. 성도란 ‘자기설득을 반대하는 자’. 이것은 하나의 광기입니다. 이것은 자기설득이니까 달리 이야기해서 성도란 자기증명을 초과하는 존재에요. ‘자기증명을 초과하는 존재’.


하나님께서 법을 주신 것은 너는 법 같은 것 신경 쓰지 말라고 법을 준거에요. 법은 예수님이 알아서 할 거니까 너는 안식일이 언제고 뭐 십일조가 먼저고 그런 것은 네가 신경 뚝!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말란 말이죠. 신경 쓰지 마세요.


아버지 어머니가 사업한다고 둘이 골머리 앉아가지고 원가 계산을 어떻게 하고 이렇게 할 때 세 살 네 살 먹은 애가 잠 안자고 10시 넘어서 엄마 아빠 회의하는데 옆에 와가지고 엄마 김치 국산 빼고 중국산 수입해가지고 그렇게 합시다 한다면 그 부모가 그 아이한테 뭐라고 하겠습니까? 너 저리 가 잠이나 자 끼어들지 말고. 여기 네가 낄 자리가 아닌데 왜 껴.


법은 인격화 될 때 완성되는 거에요. 네가 법을 지키는 사람은 법에 관심 둘 필요 없어요. 법을 지킬려는 사람은 애초부터 법은 그 사람과 괴리되라고 단절되라고 주신 법이에요. 아까운 성경공부 시간에 동영상 길게는 안할게요. 짧게만 할게요. 2분 되는데 한번 들어보시고 여러분들이 더 듣고 싶은 표정을 지으시면 더 틀겠습니다.


(동영상: 하나님 새해에도 날마나 큐티할래요. 말씀이신 예수님과 매일매일 함께 하고 싶어요.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큐티하게 해주심도 기도하게 해주심도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사모님도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시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목사님 사모님 아프시지 않으시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우리 교회가 정말 이미 공산주의 나라로 됐는데 하나님이 되지 않도록 역사해주시옵소서. 막아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나라 우리 교회가 정말 위험 가운데 있는데 하나님이 그 중에서도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그만할게요. 아까운 성경시간에 나중에 트럼프 이야기까지 나와요. 트럼프. 트럼프가 위험에 처해있다고 나오는데 지금 한국이 공산주의가 됐는데. 지금 애가 몇 살 됐겠어요? 한 5살쯤 됐는데 지금 교회 목사님 기도한 걸 그대로 흉내내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이 동영상을 보고 이름 지었어요. 기도 영재. 기도 영재급이에요. 이 아이가. 지금 시간 아까워서 다 안틀었거든요.


지금 이 어린애가 하는 것이 어린 아이기 때문에 참 그 내용도 모르고 철딱서니 없다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뭐에요? 안식일을 지키니 안 지키니. 너나 잘하세요. 너나. 왜 법에 대해서 관심을 합니까? 왜 법에 관심을 두더냐 이 말이죠. 그것은 뭐를 예측하느냐 하면은 법을 지켰던 안식일을 지킨 ‘나’가 하나님이 원하는 인간이라고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알고 있는 겁니다.


법을 지킨, 십일조나 안식을 법을 지킨 그 모습이 그 인격이 하나님이 법을 줄 때부터 원했던 그러한 인물상을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하고 그들은 법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거에요. 아까 어린 아이 기도한 것 봤지요? 한국이 공산중의 사회가 되가지고 지켜주시옵소서!!! 이렇게 하잖아요. 결국은 이건 뭐냐 하면은 오늘 강의 가운데 첫 번째 진짜 중요한 게 등장하는 시점이 되었어요.


이게 뭐냐 하면은 시작점을 모르고 있는 거에요. 시작점을 모르고 그냥 경과 또는 과정에 인간이 뛰어드는 겁니다. 시작점, 율법이 어디로부터 시작되고 어디로 마감되는지 전혀 몰라요. 시작점을 놓치고 있으면서 끝점을 가겠다는 거에요. 율법의 완성된 끝점을 한번 가겠다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줄타기 할 때 줄을 쳐다보는 것하고 줄 위에 처음부터 starting point부터 끝까지 줄을 타는 것하고 그것을 관람하는 것하고 다르겠지요. 나도 줄을 한번 타봤으면 좋겠다고 기대하고 이렇게 하면 아마 나는 줄 타는 사람 될 거라고 예측하고. 이 예측이라는 것이 이게 얼마나 악마적이에요. 예측한다는 것.


인생이 어떤 사람이 여러분보고 참 요새 사는 게 힘들다 고민거리가 있다라고 이야기하시거든요. 딴소리 다 듣지 말고요 하나만 해석하면 돼요. 너 지금 예측하고 있다. 예측한다는 것은 시작점을 본인의 기대를 starting point로 잡는 거에요. 본인이. 나 지금 이런데 너무 이렇게 내가 뭘 하게 되면 안식일을 지키면 어떤 내가 기대하는 그 예측, 율법의 예측은 딱 두 가지 거든요. 하나는 축복 계열로 빠지느냐 저주 계열로 빠지느냐. 딱 율법은 두 가지잖아요.


그 저주 받은 상태와 복 받는 상태를 인간은 미리 예측하는 거에요. 왜 예측하느냐? 예측해서 자기 행위를 조절할라고 하는 겁니다. 조정하는 것. 조절하는 것. 내가 지금 나쁜 짓하면 나중에 저주 받기 때문에 저주 안 받을려면 적당히 너무 악하지 말고 착한 일도 섞어 넣어가며 해야겠다라고 미리 예측을 생각하면서 지금 자기 행동 조절에 들어가는 거에요.


그러면 항상 시작점이 어떻게 됩니까? 시작점은 본인이에요. 본인이고 그 주어진 결과도 율법이라는 것을 터치하고 율법을 접촉해서 그 얻어낸 모든 성과는 누가 가져간다? 몽땅? 율법 지킨 내가 가져가는 거에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자기가 율법 지켜서 안식일 지켜서 복을 얻어냈다면 그 혜택은 누구 덕분입니까? start도 자기죠. 자기 예측도 자기가 했지요. 그럼 모든 혜택자,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모든 혜택자는 누가 됩니까? 본인이죠.


그렇다면 성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은 혜택준 자에게 고마워하고 혜택준 자만을 자랑하고 그 분에의 증인이 되는 것. 이게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에요. 성경을 통해서. 주님이 주신 혜택을 생각하게 되면 내 자랑으로 돌아설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주님이 주신 혜택을 생각하게 되면 내 자랑할 게 없지요.


그럼 모든 영광은 누가 받아야 합당합니까? 주님이 받아야 합당하지요. 이게 성경적인데 이게 어려운 겁니까? 이게 굉장히 어려운 논리에요? 성경 어려운 논리가 아니지요? 누구한테만 어렵지 않느냐 하면은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한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겁니다. 혜택주신 분에게 고맙다고 그 분의 이름을 영광 돌리며 내 자랑하지 않고 그 분만 자랑하는 것. 참 쉬워요. 정말 쉬워요.


교회 목회하는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여러분들은 하루하루 주님의 도움 받고 삽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도와주는 분은 주님이 여러분을 도와줍니다. 구원받는 것부터 해서 하루 일과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한테 감사하지 말고 우리가 감사할 분은 따로 있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 인생을 살면서 해야 될 할 일이 내게 있다는 것,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인생을 편하고 기쁘게 만듭니까.


그렇게 설교하게 되면 사람들은 성령 받은 사람들은 기분 좋아할 거에요. 아 정말 그냥 나는 지금껏 나 잘 되기만 예측하면서 살아왔는데 이 예측한다는 것이 결국 나 과시할려고 하는 짓거리에 불과하구나라고 생각할 거에요. 보통 조그마한 개척 교회에서는 다들 감사하고 있어요. 그러나 역사가 오래된, 역사 나옵니다. 역사가 오늘 강의와 관련되어 있어요.


역사가 오래된 교회, 아주 색깔도 이렇게 좀 낡은 것 같으면서 고딕체 벽돌 건물 있잖아요. 옛날 30,40년 전에 부흥회해서 지은 교회들 보세요. 딱 태가 나지요. 태가 난다고요. 가끔 담쟁이 막 올라가 있고. 거기 가보면 냄새 자체가 오래된 냄새나는 그 교회. 거기에 누가 있겠어요? 거기에는 2대째 3대째 누가 있겠습니까? 장로아들의 장로하고 또 장로하는 그 장로들이 있겠지요. 목사님이 와서 그런 이야기하게 되면 거기에 처음 신자들은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겠지요.


그런데 그 장로들은 뭐냐 하면은 이것 생각해요. 목사님이 그렇게 설교해가지고 이 교회는 누가 키울 건데? 이 소는 누가 키울 거야? 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해서 어느 세월에 이 예배당 언제 숫자 다 채울 건데 라고 이야기하겠지요. 역사와 전통 오래된 터줏대감 같은 장로들은. 교회 부흥 왜 신경 씁니까? 그런 식으로 설교하고 그런 식으로 기도하니까 아까 어린 아이 봤지요. 주시옵소서 하는 것 봤지요?


제가 시간 아까워서 못 들려주는데 그게 감사하는 모습입니까? 떼를 쓰는 모습이에요? 이게 감사하는 모습입니까? 편한 모습이에요? 주~~~시옵소서가 이게 편한 모습이에요? 이게? 그냥 주신 혜택에 대해서 저 같은 것 딱 신경 안 써도 돼요. 나 같은 건 신경 딱히 안 쓰셔도 된다는 그런 편안함이에요? 안 그러면 이건 딱 뜯어내고자 하는 강렬함이에요? 어느 쪽입니까? 어린 아이 기도가. 우리나라 공산주의 되면 되는 거지 할 수 없지 뭐. 어쩌라고.


그 오래된 장로들은 본인을 설득하고 싶은 거에요. 본인이. 이 설득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하루하루 살면서 내가 나를 증명하고 싶은 거에요. 아까 뭐라고 그랬습니까? 자기 증명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 초과하는 것. 자기 증명을 뛰어 넘어야 돼요. 자기 증명? 그딴 거 왜 필요한데? 내 증명을 왜 필요해? 이렇게 되야 되잖아요. 이렇게.


내가 고마워할 자에게 고마워하면서 남은 인생 보내면 되잖아요. 편하게. 교인 수 몇 명이에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헌금 얼마 나옵니까? 신경 쓰지 말고. 내 인생 자랑질할려고 이 땅에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고맙습니다. 아이고 아무것도 아닌데 이런 혜택까지 주니 영생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이렇게 살면 안 되겠어요?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이게?


왜 자기 증명할려고 해요. 자기 증명. 나 이렇게 괜찮은 존재라고 왜 그걸 왜 증명해야 됩니까? 그게 한 두 사람이 아니에요. 그게 바리새인 집단이에요. 우리는 안식일을 이렇게 지켰다. 지켰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율법 지킨 사람으로서 우리는 의인이 될 거라고 나는 증명하고 싶어. 뭘로? 안식일을 우리가 계속 이 수준을 유지하면서 지켜나가기 때문에 우리 유대 민족은 하나님께서 언젠가 약속하신 메시야를 보내실 거야. 왜? 워낙 착하니까. 워낙 의로운 민족이니까.


오늘 예수님께 신랄하고 예수님께 고소하려는 이 바리새인 이 집단이나 역사가 꽤나 오래 됐다는 그 한국교회 교인들의 모습이나 별반 다를 점이 없지요. 그러니까 성경 말씀이라는 것은요. 성경 말씀은 이렇게 원어 끄집어내고 해석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이 성경 말씀대로 지금 우리 한국사회 전 세계 지구의 모든 것이 성경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 갈등과 그 대립이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전체가 대립이에요. 갈등입니다. 투쟁이고 싸움 전쟁터에요. 워낙 여러분들이 성품이 온화해가지고 싸우기 싫어해서 기껏 싸워봐야 주차문제 때문에. 주차문제 빼놓고 별로 싸울 거 없지요. 주님께서 하시는 내가 다 이루었기 때문에 네가 네 안에서 너와 너 자신의 갈등을 일으킬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거에요. 예수님 내가 다 이루었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여러분 아시겠지요? 아시면 끝. 아시면 틀린 겁니다.


제가 한번 써볼게요. 이게 무슨 말인지 한번 보세요. 기도는 양이 있고 질이 있다. 기도의 양은 바깥(외곽)에 있고 기도의 질은 내부에 타인에게 있다. 이게 무슨 말이게요? 이 아이 동영상 한 번 더 틀고 싶지만 참습니다. 봤으니까. 아까 아이가 기도 빡시게 했지요? 주여!! 믿씁니다!! 아이가 기도 2분 45초 했어요. 동영상 다 안 틀었지만. 한 30초만 틀었지만. 2분 45초라고요. 우리 교회 남자 집사님 기도보다 더 길어요.


바깥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간절하게 보이고 얼마나 길게 하고 오래하고 그것도 힘주어 기도하는지를 바깥에서 다 보이지요? 그게 바로 허례의식 양입니다. 양. 분량, 양이다 이 말이죠. 그러면 이렇게 생각하면 그러면 질적으로 충실한 기도는 내 기도 내부에서 이루어지면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하겠지요. 내부는 남이에요. 남이 들어와 있어요. 주님이 들어가 있어요. 주님이.


결국 이 말은 뭐냐 하면은 인간의 기도라고 하는 것은 항상 예수님 말씀처럼 바깥쪽에 얼마나 고상하고 거룩하고 기도다운 기도를 하고 있는지를 외향적으로 외부적으로 보이는 식으로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기도뿐만 아니고 모든 율법, 안식일을 지키는 것 모든 말씀 지키는 것이 행위는 항상 바깥에서 나갈 때는 그것은 질로 간주되는 게 아니고 양으로 간주되는 거에요.


그 이유가 어디 있느냐 하면은 내가 행할 수 있도록 율법을 지키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행할 수 있도록. 표정들이 좀 이상하네. 무슨 소리야 하는 표정인데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은 법이라는 것을 지키게 되게 되면 법이 살아나는 게 아니고 그걸 지킨 사람의 행함이 드러난단 말이죠. 바깥으로. 우와 저걸 지켰어? 저걸 준수했단 말인가? 안식일에 가게 문을 닫고 교회 나왔단 말인가? 이게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이게.


그렇다면 아까 강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뭐를 요청한다? 법을 요청하지요. 모든 인간은. 자식이 자기 방에 들어가서 공부를 한다. 공부를 할 때 엄마가 문을 확 열었어요. 야 너 뭐하고 있었어? 또 게임했지? 하면 아이가 아니야 공부했어. 공부했다는 거에요. 공부했다는 거에요.


자, 게임하는 것은 나쁜 짓이 되고 공부하는 것은 좋은 짓이 되지요. 그러면 나쁜 일 좋은 일 다 잘라내 보세요. 뭐가 남아요? 이게 남아요. 나는 뭔가를 행할 수 있는 존재, 이게 남아요. 나는 뭔가를 행할 수 있는 존재. 더 어렵게 이야기해서 인간은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존재. 인간은 뭐라도 행할 수 있는 존재. 의미 있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을 본인이 증명하는 식으로 계속 행함, 행함, 행동, 행동에 나서게 되는 그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게 인간이에요.


안식일 율법 주니까 좋다고 지키는 거에요. 좋다고. 그런데 밑에 봅시다. 기도를 할 때에 질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이게 중요한데요. 내부에 안에서 내가 성령으로 기도합니다. 아까 주여 믿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합니다. 이게 성령으로 기도하는 겁니까? 아니지요. 바깥의 뭐냐 하면은 타인이 들어와버려요. 타인이 들어와버리면 진짜 제대로 된 질적인 기도를 할 수 있는 분은 타인이 들어온 순간 나는 아니다가 되는 거에요. 나는 바깥에 나타나는 허풍선이 되버려요. ‘허풍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려요. 이게 로마서 8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기도의 질적인 기도는 누가 한다? 성령이 하는 거에요. 성령이 어디 안에까지 들어와? 성도 안까지 들어와서 성령이 기도하는 거에요. 이게 질적인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는 바깥으로 빠지잖아요. 바깥으로 빠지겠지요. 우리는 외향적으로 우리의 기도했다를 기억하니까요.


항상 인간은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거에요. 그런데 성도란 뭡니까? 성도는 자기증명을 초과하지요. 자기증명을 초과한다는 말은 나는 이렇다가 성도한테는 이거는 치워버리는 거에요. 네가 어떻다가 아니라 네 안에 계시는 분 이야기해보란 말이죠. 네 안에 너의 타인으로 계신 분이 어떤 타인으로 있느냐를 지금 하나님께서는 요청하는 거에요.


그러면 아까 제가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내 안에 계신 분은 나한테 혜택을 주신 분이에요.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그러니 성도는 자기 행함을 자랑할 수가 없지요. 자기 행함을 자랑할 수 없는 거에요. 자, 중요한 것 다시 이야기합니다. 인간들아 네가 왜 건방스럽게 법에 관심을 왜 갖느냐 하는 거에요. 법에 대해서.


법에 관심 안 가질려고 해도 관심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평소에 내 잘남을 내가 타인에게 알리고 싶고 증명하고 싶고 내부적으로 나는 내가 잘났다는 것을 내가 설득하고 싶은 거에요. 그런데 성도는 뭐라고 했습니까? 성도란 자기설득을 어떻게 한다고요? 자기설득을 반대하는 거에요. 반대. 희한한 인간이에요. 진짜 이상한 인간이에요. 자기설득을 반대하는 거에요.


나는 이렇게 해서 나는 신자 맞다라는 그 설득을 내가 혐오하는 겁니다. “미친 인간아 이상한 소리하지 마라.” 안 그러면 “마귀야 너 가만히 있어.” “너는 이래서 성도 맞잖아.” “가만 있어. 가만 있으라니까. 언제 그렇다 하더냐.”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법에 관심을 두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가 법에 시작점이 우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시작점을 놓쳐버리면 전부 다 이게 엉터리가 됩니다. 시작점을 놓쳐버리면.


그러면 안식일을 왜 줬는가? 제가 호박을 하나 그려볼게요. 호박. 호박이 있단 말이죠. 호박을 자르지 않고 호박죽을 끓이고 싶다 할 때는 어떻게 하느냐 여기 못으로 하든지 뭘로 하든지 여기 구멍을 딱 내야 돼요. 구멍을 딱 내는 거에요. 구멍을 내고 강력한 흡입력 가진 가스 빨대 꽂아가지고 속을 뽑아내야겠지요. 옛날 이집트 미이라 할 때에 코로 모든 두뇌 세포를 전부 다 뽑아낸다고 하거든요. 뽑아내지요.


그러면 이 호박은 뭐가 되느냐 하면은 호박은 매개체가 되는 거에요. 매개체. 율법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다룹니다. 예수님께서 구멍을 뚫고 들어와버려요. 그럼 뭐가 되느냐 하면은 스며든다에요. 그리고 구멍 뚫고 예수님 빠져나가고 난 뒤에 자기 백성을 빼내어버리면 이건 뭐가 되느냐 빠져나옴이 되지요. ‘빠져나옴’. 그러면 호박은 껍데기만 남지요. 이게 율법이에요. 이게 율법.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죠. 구멍을 뚫고 들어온 거에요. 예수님만 율법을 다룰 수 있으니까. 율법의 완성으로서의 옷을 입고 들어온 거에요. 들어와가지고 여기서 자기 백성을 죄 있는 백성을 의롭다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가지고 여기 구멍을 통해서 자기도 빠져나오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서 이 안에서 자기 백성을 뽑아내는 거에요. 그게 어디 있느냐 하면은 여기 있어요.


그게 누가복음 6장 6절에 보면 안식일에 오른손 마른 사람 있었지요. 그럼 호박 안에 들었지요. 그다음에 10절에 보면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그리하매” 저가 어떻게 되었어요? 멀쩡하게 되었잖아요. 뽑아낸 거에요. 타인에 의해서 우리는 누구 입장이냐 하면은 손 마른 자의 입장, 환자 입장이 되자 이 말이죠.


지금 병자의 입장에서는 병이 낫느냐 안 낫느냐가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바리새인 입장은 어떻게 됩니까? 안식일 지키냐 안 지키느냐가 중요하겠지요. 주님 보시기에 둘 다 문제가 있어요. 왜냐 하면은 안식일에 신경을 쓰지 말아야 될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의 주인도 아니면서 자기들이 안식일을 지킨다는 엉뚱한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리고 환자는 관심사가 뭐냐 하면은 내 몸이 건강하냐 계속 아프냐 지금 관심사가 거기에 있지요. 둘 다 거기에 있다고요. 그러니까 아픈 사람은 평소에 뭘 예측하겠습니까? 내 몸이 낫기를 예측하고 바리새인들은 뭘 예측하느냐 하면은 내가 안식일을 지켜서 하나님 보시기에 날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참 의롭다고 할 그걸 예측하는 거에요. 둘 다. 백날 예측하면 뭐합니까? 호박 안에 들어있는데.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호박 안에 있는 사람을 어느 쪽에? 율법의 완성, 안식일의 완성 쪽으로 뽑아내어버리는 거에요. 그럼 이 사람은 혜택을 입었지요? 누구의 혜택을 입었습니까? 주님의 혜택을 입었지요. 주님의 혜택을 입은 이 사람한테 더 이상 내 몸이 건강하냐 안 건강하냐 이것은 문제 거리가 안 되는 거에요.


그리고 이미 그 병 나은 사람에게 안식일을 바리새인들이 본인에게 요구하는 것. 야 어이 병자야 너 안식일 지켰어? 안 지켰어? 를 거기에 대해서 물을 때 추궁할 때 그 병이 나은 사람한테는 그 안식을 신경 씁니까? 신경 안 씁니까?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니까요. 이 유사한 이야기가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여러분 잘 아시는 요한복음 5장 베데스다 못가에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제가 이야기 안 해도 다 아실 거에요. 38년 된 병자.


이 38년 된 병자의 관심사가 뭐냐 하면은 자꾸 자기를 예측하는 거에요. 이 물이 흔들릴 때 제일 선착순 1번으로 뛰어들면 더 이상 이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가 더 이상 병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걸 자꾸 예측하는 거에요. 관심사가 누구한테 있습니까? 자기한테 있지요. 자기가 왜 병을 나을려고 합니까? 나는 병든 것이 나한테 적합지 않고 멀쩡한 모습이 나한테 적합하다고 자기 증명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베데스다가 자비의 연못이거든요. 자비의 못이거든요. 호수거든요. 신의 자비를 자기에게 기대를 하는 거에요. 예측하는 거에요. 자기는 움직이지를 못하니까 어떻게 나를 처음에 가가지고 낫게 해달라고 요청했지요. 그동안 38년 된 병자가 왜 1번 타자, 첫째로 못 들어갔는지 알아요? 이거는 제가 지어낸 거니까 그냥 농담으로 아세요. 그게 뭐냐 하면은 39년 된 병자가 있기 때문에. 그냥 개그입니다.


어쨌든 간에 이 사람은 첫 번째로 못 들어갔어요. 그래서 여기서 38년 동안 있는 거에요. 그냥. 원래 회사나 공무원해서 승진해야 되는데 뒤에 온 사람이 앞에 승진해 보세요. 검사들 대부분 뭐 합니까? 사표 딱 던지지요. 변호사하면 되니까 사표 내지요. 기분 나쁘다 이거지요.


그런데 나중에 그 사람에게 관심사는 뭐냐 하면은 이거에요. 내가 병 나을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뭐냐? 저 호수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호수에는 법이 있어요. 그게 무슨 법이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만 먼저 들어간 자만 천사의 혜택을 입고 병이 낫고 그 외에는 없는 거에요. 천사가 그 사람에게 혜택주고 천사는 이제 더 나눠줄 그게 없어요.


마치 산불 났을 때 헬리콥터 날아와 가지고 물 찔끔 버리는 게 아니고 한꺼번에 확 버리고 가자 할 때 여기!! 물 다 쏟아서 없어 하는 것처럼 천사가 와서 자비의 혜택을 한꺼번에 다 주고 가버리는 거에요. 그러니까 병든 자가 몸이 아픈 것도 병들었지만 어떤 규칙이라든지 원칙을 계속해서 놓지를 못하는 거에요.


왜냐 하면은 원칙과 규칙은 인간에게 무엇과 결부되어 있는가? 자꾸 오늘 중요한 것 많이 합니다. 이 법이라는 것, 규칙이라는 것, 원칙은 무엇과 결부되어 있느냐 하면은 인간이 행할 수 있다, 인간의 행함과 결부되어 있어요. 인간의 행함과. 인간이 행하지 못할 것을 주님이 주실 리는 없다는 거에요. 인간이 행하지 못할 것을.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는 것은 행할 수 있기 때문에 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나는 어떤 법이 와도 행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율법으로 자기를 증명하고 율법으로 자기 이런 능력 있음을 설득하려는 그 법 안에 갇혀 있는 거에요. 그 법 안에. 법은 바깥에서 오지만 이미 그 내부에 법적인 그 시스템이 체제가 이미 거기에 들어있었던 겁니다. 그 체제가 뭐냐 하면은 내가 내가 얼마나 얼마나 훌륭한지를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 것을 나를 증명해줄 어떤 법이 있는 거에요.


그 체제 누가 만들었겠어요? 독자적으로 독보적으로 특이하게 다른 피조물과 달리 나는 독자적으로 살 권한이 있다는 그 맘은 누구 맘이에요? 마귀의 마음이죠. 마귀가 왜 마귀입니까? 천사면서도 마귀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가 뭡니까? 독자적인 것 때문에 그래요.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고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독자적, 어떤 것을 해도 의미가 자기가 start고 자기가 마감이 되는 거에요. 자기가 시작이고 곧 끝이 되는 거에요.


그런데 성도는 제가 말하는 것은 인간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성도는, 인간은 어떻습니까? 마귀와 똑같이 내가 중요하고 마지막도 내가 중요하다가 인간이잖아요. 그러면 성도는 혜택을 입었잖아요. 그럼 시작도 주님이고 끝도 주님이고. 나는 호박이고. 주께서 주님이 혜택을 줬다는 것을 증명할려면 내가 있어야 되겠네. 혜택을 입은 자가 있어야 되지요.


그래서 요한복음 5장에서 베데스다 이 못가에 있는 병자의 소원은 병 낫는 것이었지만 주님은 그 사람을 뭘로 이용했습니까?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으로서 전환시켜놨어요. 이게 지금도 한결같은 주님의 성령이 오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너의 예측 그거 접어라. 네가 예측한데로 네가 되는 게 아니다. 네가 예측할 권한도 없고 예측할 그러한 입장도 되지 않는다 이 말이죠. 예측을 해도 예수님 내가 하지 네가 하는 게 아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만은 아까 제가 질적인 기도 안에 우리 안에 누가 들어있다고 했습니까? 나 아닌 타인이 들어오는 거에요. 바로 이 베데스다 못가에 예수님의 자기 인생이 결합된 겁니다.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또는 안식일을 이뤘다고. 안식이란 율법의 인격화. 예수님의 인격화에요. 베데스다 못가라 하는 것이 움직일 때, 여기 동할 때라고 되어있거든요. 5장에 보면 움직일 때 천사가 와서 먼저 한사람에게 혜택을 줬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 자신이 물결로 된 베데스다 못이 아니라 움직이는 베데스다 못, 베데스다 인격체 된 인물이죠. 그것도 첫 번째만 하는 것이 아니고 늘 우리에게 혜택을 주는 거에요. 안식일과 베데스다 못가의 결합은 안식일 + 베데스다는 = 예수님. 요한복음에서 그렇게 설명하고 있지요. 오늘 누가복음이니까 누가복음에서는 뭐냐 하면은 바로 손 마른사람 + 안식일 = 예수님이 되겠지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9절에 나와 있지요. 안식일을 예수님이라고 그 안식일 자리에다가 예수님을 넣어보세요. 예수님은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이 둘 다를 하시는 기준이 되시는 겁니다. 그래서 움직이는 예수님은 움직이는 안식일이니까.


안식일이 세상을 뚫고 들어와서 예수님이 스며들어와서 여기 있는 병자를 바깥의 안식일의 혜택,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켰다는 혜택, 의롭다는 혜택을 손 마른 사람을 낫게 함으로서 보여줬듯이 이것이 뭐가 되느냐 하면은 이것이 예수님의 인생의 경로가 되겠지요. 경로. 스며들어와서 뽑아내시는 것. 자기 사람 데리고 나가시는 것. 혜택이 무슨 혜택? 그게 바로 혜택 아닙니까. 그게 혜택이거든요.


그래서 성도라고 하는 것은 누가 찾아와서 혜택 줬고 그 분이 나의 손을 잡고 “나가자 이곳에서.” “어디로 말입니까?” 저주가 없는, 생명이니까. 안식일은 생명을 멸하는 것. 이거 한번 보세요.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이렇게 했지요. 아까 후딱 이야기했잖아요. 예수님은 생명을 멸할 권한도 있고 생명을 주실 권한도 있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여기서 뭘 뽑아내야 되느냐 하면은 율법을 지키고 율법에 그냥 머물러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은 멸망의 대상이다 이렇게 보면 돼요. 그것도 앞에다가 멸망의 대상이니까 여기에 부사 하나 붙입시다. ‘참혹한’. 참혹한 멸망의 대상. 참혹한. 주님이 찾아오시지 않은 사람은 참혹한 멸망의 대상이에요.


왜 참혹한 심판을 받아야 되느냐 하면은 본인을 지금도 햇빛과 공기 혜택을 주고 있는 분에게 합당한 감사와 영광을 못 돌리니까 그것은 참혹한 혜택을 입어놓고도 입을 싹 닦았으니까 그건 참혹한 징벌 받아 마땅하지요. 그렇잖아요. 그렇지요? 그렇지요? 고개 끄덕였잖아요. 그렇죠?


그렇다면 자식을 동정하지 마세요. 자식을 동정하는 것은 나를 동정하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 동정하지 마세요. 혜택 주신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에요. 이 땅에 생명 주시러 오신 분을 죽인 사람들이에요. 왜 쓸데없이 인간미에 도취되어 가지고 뭐 동정하고 왜 그래요? 아까 기도 한번 쉬는 시간에 한번 들어볼까요? 뭐라고 기도하는지.


자, 이제 여러분들은 실력이 있기 때문에 아! 10분 쉬어야 되겠습니다. 10분 쉬겠습니다.
 첨부파일 : 강남-누가복음 6장 9절 (시작점) 210420a-이근호 목사.hwp (157.0K), Dow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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