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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6 14:36:58 조회 : 120         
강남-누가복음 6장 49절 (무너짐) 210706a-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누가복음 6장 49절 (무너짐) 210706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6장 46절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그렇게 되어 있지요.


이 비슷한 이야기가 마태복음 7장에 보면 거기에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부딪치매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무너지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안 무너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이 한 가지만 생각하게 되면 이 말씀이 쉽게 풀려요. 뭘 하느냐 하면은 성도는 다시 태어납니다. 성도는 다시 태어난 자 맞지요? 여기서 이건 아니에요. ‘내가 다시 태어난다’ 이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냐 하면은 니고데모의 발상이고 니고데모의 한계입니다.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성도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요소에서 다시 태어나는 거에요. 내가 괜찮은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요소, 주님의 요소를 합류한 채 주님의 요건이 합류한 채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주님의 요소는 뭐냐? 이게 예수님의 말씀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써.


예수님의 말씀인데 이 말씀을 이렇게 늘여보겠어요. 최후의 말씀입니다. ‘최후의 말씀’. 말씀은 말씀인데 최후의 말씀이다. 왜 그러느냐 하면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그 다음에 끝났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모든 스케줄은 끝나버렸어요. 완성이 된 겁니다. 이 말은 끝났다는 말은 기쁜 말인데요. 더는 추가할게 없다. 더 보탤게 없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은 예수님이 오셔서 세상 끝났다고 선언을 해버리거든요. 세상이 끝났으니까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요소가 있느냐 없느냐로 모든 판정은 다 종료되어 버립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것은 주님 보시기에 “저리가. 나는 더 이상 너희들 바치는 것은 싫어” 그런 것은 다 인정하지 않고 다 내보내거든요. 그게 끝이에요. 인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끝났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예수님 오심으로 드디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아담의 후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정체가 그 한계가 이제 끝이 난 겁니다.


그럼 새로 시작한다는 말은 오신 예수님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인간들은 더 추가할게 없지요.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예수님의 요소를 가지고 다시 태어나니까 이게 뭐냐 하면은 천국의 백성으로 인정받는 겁니다. 인간성이 훌륭한 게 아니고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은 주님의 요소가 들어 있어요.


주님의 요소. 주님의 요소라고 하는 것은 마지막 최후에 말씀이 남긴 요소가 그냥 옛날 모세 언약 같으면 우리 코앞에 와서 stop이 되지만 새 언약은 우리의 몸이 있는데 이 죄 된 몸이 있는데 말씀이 여기서 stop이 되는 게 아니고 말씀이 이 안에 들어와 버려요. 이게 새 언약이에요. 못 들어오고 주춤하는 것은 옛 언약이고 확 이 안에 들어와 버리는 겁니다. 들어와 버리는 거에요.


이게 물론 제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이게 무슨 원리냐 하면은 함께하는 원리라고 합니다. 함께 원리 하나 예를 들게 되면 3나누기 6 + 3 = 3과1/2 돼요. 맞잖아요? 맞지요? 그런데 괄호를 해버리면. 3나누기 (6+3). 괄호부터 먼저 계산을 합니다. 이건 1/3이 되지요. 이 괄호 있잖아요. 괄호. 이걸 가지고 뭐냐 하면은 대신하심입니다. ‘대신’.


주께서 십자가로 홀로 십자가 안에다가 십자가를 확장시킵니다. 자신의 의로움에다가 자신의 말씀을 집어넣기 위해서 자신의 확장된 완성된 말씀 안에 이 말씀의 요소가 들어있는 사람은 말씀이 들어있다는 이유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함께’가 되는 거에요. 로마서 6장에서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세례, ‘세례’.


함께 하는 세례의 예가 뭐냐 하면은 바로 세례 요한이 했던 물세례에요. 물세례. 지금 물 뿌리지만 세례 요한 때 어떻게 했습니까? 세례요한이 요단강 물에 들어가고 들어와 들어와. 그 유명한 말 드루와. 너 거기 서 있지 말고 들어와. 어디? 세례 주는 이 당사자 나한테 들어와. 들어오라고. 이게 물세례에요. 내가 물 안에 있고 너는 물속에 내가 있는 내 안에 합류하라는 거에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요단강 세례 받을 때 하늘에서 열리면서 누가 오느냐 하면은 성령이 오셨잖아요. 그럼 예수님 계신 곳에 뭐가 있느냐 하면은 성령이 함께 있거든요. 들어와. 들어와. 예수님 있는 곳에 들어와. 아무도 갈 사람 없지요. 아직까지 성령이 오지 않았으니까. 성령이 왔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더 이상 예수님 하신 것 외에 더 이상 보탤 게 없다는 걸 아는 게 성령을 받은 사람이에요.


아담의 요소가 각 사람마다 다 있는데요. 그게 뭐냐 하면은 바로 이겁니다. 나이. 우리가 오늘 성경 보면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인간에게 나이가 있다는 것. 이것은 아담의 요소가 있다는 거에요. 나이가 있다는 말은 곧 죽는다는 뜻이에요. 연세가 있다는 말은 어차피 곧 돌아가신다. 죽음이 있다는 뜻입니다. 나이가 있다는 것.


그러면 영생한 사람의 특징은 뭐냐? “내 나이가 어때서”. 이게 영생이거든요. 나이를 묻지 마세요. 그래서 어떤 분이 아주 고민 가운데 물었어요. 목사님 목사님 설교는 어른들한테는 잘 이해되는데 어린아이들한테도 목사님 설교를 어떻게 이해시킵니까 라고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해요. 애기 있는 엄마들은. 그럴 때 모든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그들에게는 죽음이 무서워요. 죽음이 무섭습니다. 죽음이 무서운데 그 죽음에 직면했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점이에요.


따라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이야기만 하시면 돼요. 나이가 3살이든 4살이든. 어린아이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없어지는 것. 엄마가 없어지는 것을 죽음으로 느낍니다. 엄마가 장에 간다든지 엄마가 다른 방에 간다든지. 엄마가 화장실에 가면 애가 울기 시작해요. 왜 우는지 뭔가 괄호 있잖아요. 괄호. 함께. 6+3 이것부터 계산해야 돼요. 함께 있는 자가 없을 때. 함께 있으면 어린아이는 생명을 느끼고 함께 없으면 홀로 있으면 죽음을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아담의 그러한 본성과 그리고 예수님한테도 네가 나 믿어라가 아니라가 믿는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너 내 지식을 알아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너 홀로 혼자 두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8장 끝에 나와 있잖아요. “세상 끝날까지 혼자 두지 않겠다”


너에게 일어나는 일은 괄호를 생각해보면 자꾸 인간들은 내가 3이라면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 내가 잘해서 복 받은 일, 자꾸 3만 생각하는데 일어나는 모든 일은 주님에 의해서 주님의 요소를 확인하라고 일어난 일로 생각 못하느냐 이걸 우리에게 되묻지요.


주님, 함께 계신 분 때문에 그 분을 겨냥해서 일어난 일인데 우리는 오해하기를 나 겨냥해서 일어난 일로 하는 거에요. 그래서 오늘의 보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고 말지요? 그리고 같은 뜻으로 바위 위에 지은 집은 또는 여기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안 무너지지요? 그러면 무너진다. 그 다음에 안 무너진다 이것을 우리보고 이야기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이 무너진다 안 무너진다를 몽땅 다 예수님 본인이 가져가요. 오늘 강의 끝났습니다.


내 말 듣지 않으면 무너진다의 그 무너짐을 예수님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요. 그러면 예수님은 말씀하고 “내 말 들었지? 나 간다” 하고 구름타고 올라갔습니까? 아니지요? 말씀 던져 놓고 그 다음에 곧장 어디로 가십니까? 죽으러 가시잖아요. 무너지러 간다고요. ‘무너짐’. 죄도 없으면서 죄 있는 육신을 갖고 있는 인간은 이 꼴나고 이 짝 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십자가로 가잖아요.


무너진다 안 무너진다. 안 무너짐은 부활이죠? 부활 십자가잖아요. 저주 받았으니까. 이 저주를 예수님한테 이걸 가져가는 거에요. 그럼 예수님한테 가져가면 모든 인간은 안 무너짐에 해당되는 인간은 아무도 없어요. 왜냐 하면은 안 무너질려면 무너짐을 예수님이 가져갔기 때문에 안 무너짐은 무너진다 그 이후에 나타날 때 안 무너짐이에요.


무너진다를 극복한 힘에 의해서 안 무너지는 거에요. 안 무너지는 것은 말씀 완성했기 때문에 다 이루었기 때문에 안 무너지는 것이고 무너지는 것은 오늘 본문에 보면 말씀 안 지켰기 때문에 무너지는 거에요. 그러면 주님께서 부활해서 안 무너졌잖아요. 결국 안 무너졌잖아요. 주님 혼자만 즐기기 위해서 안 무너졌습니까? 주님 자신만이 구원받기 위해서 안 무너졌습니까?


여기 괄호 있잖아요 괄호. 우리가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예수님의 요소로서 다시 태어나는 거에요. 예수님의 요소로서. 그럼 결국 이 말은 뭐냐? 마지막 때에 오심으로 끝났다는 말은 지금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게 매일같이 무너지고 있는 중입니다. 이게 기쁜 소식이에요. 나이 드셨으니까 서서히 무너지고 있어요. 지금. 저도 마찬가지고. 70을 바라보는 나도 무너지고 있고. 제일 연세가 작으신 분도. 모든 건 무너지는 거에요.


이 본문 말씀을 듣고 이 본문 말씀을 이미 성령 받은 사람 같으면 아 주께서 이 무너지는 절차를 겪어야 안 무너짐이 비로소 나에게 실효성이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이 말씀도 무너지는 말씀도 복음에 해당된다는 사실. 기쁜 소식이에요. 여러분들이 무너진다고 하니까 굉장히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여러분뿐만 아니고 모든 인간이.


저 초등학교 다닐 때 어른 세계에서 궁금한 점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뭐가 신기했느냐 하면은 그 학교 마치고 난 뒤에 학생들 다 가고 난 뒤에 밤 되잖아요. 밤 되면 그 복도에 학생들 하나도 없어요. 그러면 뭐냐 하면은 복도에 누가 사느냐 하면은 귀신들이 나타내요. 여고괴담. 괴담들이 나타납니다. 그걸 전제로 했을 때에 제가 굉장히 존경스러웠던 것은 학교 소사입니다. 소사 할아버지.


도대체 우리는 다 무서워서 밤중에 옛날 학교 밤중에 걷기 힘들어요. 왜냐하면 나무로 지었기 때문에 걸어가면 저그적 저그적 온 천지에 전부 다 삐걱거리는 소리 때문에 삐걱거리죠. 유리창은 KCC로 안 해가지고 창문 흔들리는 소리 나지요. 그런데 그 소사 할아버지는 새벽 3시고 2시건 간에 용감해요. 갈 때. 왜 소사 할아버지는 귀신을 안 무서워하는가에요.


정답을 알아요? 어릴 때는 굉장히 궁금했던 거에요. 어린애들은 다 무서워하는데 소사 할아버지는 소사가 무슨 뜻인지 알아요? 계약직 직원입니다. 허드렛 일하는 직원. 그 소사 할아버지는 무섭지 않은 이유가 본인이 귀신이기 때문에 그래요. 본인이 살만큼 살았어 이제는. 다 인생 다 겪었어요. 무서워 할 나이가 아닙니다.


그 소사 할아버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귀신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고 뭘 무서워하느냐? 돈, 돈을 무서워하지요. 이거 짤리면 우리 손자 용돈 없다. 연금도 변변치 않은데 이거 없으면 우리 아내한테 잔소리 들으니까 안 된다. 버텨야 된다. 그러니까 인생 살게 되면 삐걱거리는 그런 소리가 여고괴담이 무서운 게 아니고 통장에 돈 없는 게 무서워요. 그것보다 더 무서운 귀신 없습니다.


그 정도로 인간이 갖고 있는 요소는, 인간 요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요소가 아니고 바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요소로서 가득 차 있어요. 이런 요소가 있으면서 오늘 본문 말씀 “주여 주여 하지 마라 내 말대로 행하라” 이렇게 하니까 인간들은 여기서 이제 뭘 하느냐 하면은 억지로 말씀을 지키는 거에요. 왜냐? 안 무너질려고 내가.


다시 무너지는 나를 양 어깨에 메고 말씀을 지켜가지고 으쌰으쌰 해서 주저앉은 나를 들어볼려고 이렇게 하는데 인간이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안 무너지는 게 아니고 그냥 보수공사에요. 땜질. 고친데 또 고치고. 고쳐놨는데 무너지고. 무너진데 또 고치고. 이거 하나 해결하면 또 생기고 이거 땜질하면 이거 또 생기고 이래놓고 성화했다고. 인간은 무너져야 돼요.


왜냐 하면은 아담의 그 원초적 흔적이 범죄해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말씀에 위반될 수밖에 없는 그 인간의 요소가 인간의 육신에 그대로 박혀버립니다. 제가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성경에서 이야기한 대표적인 게 뭐냐 하면은 이거에요. 아담의 요소가 인간 속에 박혀서 인간으로 하여금 안 무너질래야 안 무너질 수 없게 만드는 아담의 흔적들이 이미 태어나서 박혀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예가 뭐냐? 성경에서 말하는 해산의 고통.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사람이 애 낳는 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언젠가 수요 설교 때 그런 이야기했지요. 하늘에 불덩어리 있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욥기에 나오거든요. 욥기에. 하나님이 욥에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욥아 하늘에 별 떠있는 거 신기하다고 생각해 본적 없냐? 인간은 자기 부축해서 무너진 자기를 일으킬려고 거기에만 신경 썼을 뿐이지 하늘에 불덩이 있는 거 하늘에 불이 왜 있어요? 하늘에 불 왜 있습니까?


제가 누구한테 물었는데 시원한 답변을 못 들었어요. 하늘에 불이 왜 있습니까? 굳이. 하늘에 불덩어리 태양이죠. 별이잖아요. 태양이 왜 하늘에 떠 있는 이유에 대해서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유 몰라요. 욥도 몰랐습니다. 욥이 언제 하늘에 별이 떠있고 달이 떠있는 이유를 알았느냐 하면은 본인이 무너질 때에요. 본인이 무너질 때.


다시 말해서 ‘나’라는 존재는 처음 하나님의 스케줄, 프로젝트, 계획과 이게 죽이 안 맞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저 달과 별은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겁니다. 내가 저 별과 달과 같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달과 별을 해석했고 과학적으로 따졌던 거에요. 따질 주제도 못되면서. 따질 쨉도 못되면서. 달이 어떠니 별이 어떠니 로켓트는 어떠니 이렇게 따지는 거에요.


딱 여기서 보면 나중에 하나님이 욥에게 찾아오는데요. 오늘날 성도에게는 성령이 우리에게 찾아오잖아요. 성령이 오고 난 뒤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방법이 뭐냐? 성령이 오고 난 뒤에 말씀을 지키는 방법은 제가 한 아이디어를 내볼 테니까 여러분 한번 지켜보세요.


구름이 있습니다. 구름이 이렇게 있는데 구름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비가 오죠. 구름에서 비가 내려온다 이 말이죠. 그러면 제 아이디어에 의하면 여러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안 맞는 방법은 우산 그런 거 쓰지 마시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비를 안 맞는 방법은 뭡니까? 안 맞는 방법은 비가 떨어지기 전에 빨리 여기서 빨리 빠져나오면 되지요?


비가 떨어질 때 떨어지는 속도를, 속도가 뭐냐 하면은 이걸 가지고 중력 가속도라고 합니다. 9.8m/s². 1초에 1초되면 9.8m 내려오고 2초되면 19.6m 내려와요. 물방울 하나가. 이거 떨어지기 전에 빨리 싹 지나가면 되지요. 신약에 와서 성도가 말씀 지키는 방법은 저주스러운 이 세계에서 이것을 내가 멀쩡하게 서서 수직으로 서서 지킬 생각하지 말고 엎드려서 지나가면 되는 거에요. 엎드려서 지나가면 돼요. 이게.


지나가게 되면 여기서 함께 괄호라고 했으니까 함께 있는 주님이 위에서 오는 저주를 전부 다 커버해주시는 겁니다. 어째서 그렇느냐 하면은 이미 예수님께서 이미 한차례 다녀가셨잖아요. 다녀가셔가지고 어떤 비결을 배우셨느냐 하면은 죄 많은 세상에서 죄 짓지 않는 방법을 비결을 주님이 알고 있어요.


주님이 알고 있으니까 아까 괄호, 수학에서 괄호라고 하는 것은 뭐부터 먼저 푼다고요? 3나누기 (6+3) 이면 괄호 안부터 먼저하고 답이 1/3 나온다고 했지요. 이 괄호 주님과 함께 계실 때에 주님께서 이미 오셔가지고 죄 된 경험을 다 경험하시고 가실 때에 자기 백성과 함께 이 저주 받은 것을 다녀가게 하신 거에요. 다시 묶어서 가게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함이 없다는 거에요.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함이 없는 거에요. 이 저주가 도달하지 않는 겁니다. 모든 말씀의 저주가 도달하지 않아요. 그 이유가 갈 때 멀쩡하게 서서 가지 말고 기어가라고 했지요. 이 말이 뭐냐 하면은 이건 경상도 말인데 혹시 여러분들이 경상도 사람은 알아들을 지 모르겠지만 서울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들어요.


“수구리”. 수구리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경상도 안 살았어요? 수구리. 고개 숙여. 이미 무너진 채로 살아라. 무너진 채로. 안 무너질려고 자기를 부축하지 말고. 일곱번 넘어지면 여덟 번째 일어나야지 그러지 말고 여덟 번 일어서도 또 넘어져요. 아예 납작 엎드려서 살아가는 거에요. 범사에 감사하는 겁니다. 범사에. 모든 일에 감사하는 거에요. 작은 일에도. 그 작은 일 하나도 나를 위해 준 게 아니고 예수님의 요소와 관련 돼서 함께 해서 주신 거에요.


그러면 수구리가 되게 되면 농구나 축구할 때 이걸 자세를 낮춘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세를 낮춘다. 농구할 때 서장훈한테 물어보세요. 자세를 낮춰서 하는 거에요. 자세를 낮추면 뭐가 보이느냐 하면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그 광경이 보입니다. 매트릭스 영화의 장면이 뭐냐 하면은 숫자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겁니다. 우르르 내려와요 전부 다. 숫자가. 마구 내려오죠.


여러분들이 007 영화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007 영화에 보게 되면 한바탕 007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멋있게 나오고 난 뒤에 음악이 나오면서 눈꺼풀이 어떻게 돼요? 눈꺼풀이? 007이 권총을 쏘게 되면 보고 있는 보고 있는 시선이 통에 맞은 모양이라. 그래서 핏물을 머금고 눈이 내려가면서 007 숫자가 딱 뜨면서 그 다음부터는 음악 나오고 이런 장면 나오잖아요. 눈꺼풀이 내려앉는 거에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내려앉고 있어요.


이게 뭐냐 하면은 신구약입니다. 가정도 내려앉고 사회도 내려앉고 국가도 내려앉고 주변의 모든 것도 내려앉아요. 국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네 짐승이 차례차례로 다 무너집니다. 다니엘 2장에 나오는 금 신상에 결국은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에 얻어 맞아가지고 신상이 자세가 흐트러져가지고 진흙과 철로 되어있던 마지막 그 발 놓는 지점이 태산에 맞아서 와장창 무너지면서 거기에 뭐가 생기느냐 하면은 때렸던 돌멩이가 태산을 이루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어있지요.


그 하나님 나라가 될려면 필히 뭐가 되야 돼요? 모든 것은 매트릭스 영화에 나오는 첫 장면처럼 숫자들이 전부 다 위에서 아래로 주루룩 다 떨어져야 됩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거에요. 지극히. 이스라엘도 무너지고요 구약에. 가정도 무너지고요 교회도 무너집니다. 특히 엘리사 엘리야 같은 경우에 엘리사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자체가 무너질 때 곱게 안 무너집니다.


아랍 나라가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포위했을 때 먹을게 없어가지고 “오늘은 네 아기 내놔라. 내일은 내 아기 잡자.” 그래서 약속대로 아줌마가 자기 아들 잡아먹었는데 그 다음날 되니까 약속대로 안하고 자기 아들 안 내놓겠다는 거에요. 그게 소송 내용이 되가지고 임금님한테 호소를 합니다. 애 안 내놓는데 강제로 애 좀 뺏어가지고 우리 양식되게 해달라고 고소, 소송을 걸고 있습니다. 비참하지요. 처참하지요.


그런데 그것이 아까 소사 이야기했듯이 이게 귀신 다 되면 그것조차도 그걸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귀신 되어버리면. 이 세상에 다 무너지니까 무너지는 게 당연하고 마땅하니까. 그리고 무너진다는 그 이유가 나이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요소로써 매일 나이를 먹으니까 당연히 무너지는 거죠.


특히 신약성경에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무너지는 것을 뭐로서 무너지느냐 하면은 여기서부터 성경이 어렵게 되기 시작하는데 장막집이 무너진다는 겁니다. 사람이 집을 건축하는 이유가 안 무너질려고 건축하잖아요. 안 무너질려고. 자, 여러분들이 머리 좋으니까 제가 문장을 연결해볼께요. 집. 안 무너질려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집을 짓습니다.


그런데 안 무너진다는 것은 그 안에 자아를 고이 지켜낼려고 하기 때문이죠. 집이 문제가 아니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내가 안 다치게 할려고 집을 짓습니다. 그런데 장막집이 무너져버리면 자아도 같이 무너지지요. 그런데 성경에서 고린도후서 5장에서 장막집을 우리의 뭘로 보느냐? 우리의 육신으로 봐요. 이 말은 무너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거에요. 무너지는 것이.


그러니까 무너지는 것을 통해서 뭘 보느냐 하면은 안 무너지는 집. 안 무너지는 집 있는데 지금부터 좀 어렵습니다. 안 무너지는 집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걸 성전이라고 하는 거에요. ‘성전’. 안 무너지는 집. 그러니까 히브리서 11장에서 안 무너지는 집을 뭐냐 하면은 하늘에 있는 본향이라고 해요. ‘본향’.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지만 영원한 집이 있는데 그것은 안 무너지는 집이라는 거에요.


그러면 뭐가 어려우냐? 이 땅에 와서 안 무너지는 성전은 이 땅에서 성전은 누구냐 하면은 성전은 구약에서 보면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성전이라고 해요. 집 지어놨다고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이 아니고 주의 이름이 떠나지 않을 경우 성전입니다. 그러면 주의 이름이 집으로 돼있는 것은 구약이에요. 솔로몬까지. 솔로몬, 스가랴까지.


그런데 집이 벽돌이 아니고 이것이 인격 인물로 바뀌어요. 그걸 가지고 베드로전서 2장에서 뭘로 됐느냐 하면은 예수님을 가지고 건축자들의 버려진 돌이고 예수님이 에베소서 2장에서는 버려진 돌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무너지는 세상에서 필요 없다고 그냥 쓰레기에 갖다버린 돌이 유일하게 안 무너지는 집이에요 그게.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됩니다. 내 몸이 귀합니까? 주의 몸이 귀합니까 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묻는 거 같아요. 무너질 네 집이 귀하냐? 안 무너질 주님의 몸이 중하냐 우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들이대시는 거에요 그냥. 성경을 통해서.


그러면 여기서 더 어려운 게 뭐냐 하면은 그러면 주님이 성전이라면 그러면 성전은 어디 있느냐? 성전은 이 땅에 주님으로 다 이루었잖아요. 성전은 땅에서 만들어져서 하늘로 올라가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 다녔으면 적어도 주기도문 정도는 외우지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땅에서 이루어지지요.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야기하기를 땅에서 일어난 일도 모르면서 어디서 자꾸 하늘만 살피고 있느냐. 하늘에서 뭐 상상력을 동원해 동원하지 마 상상하지 마 땅에서 벌어졌어. 땅에서 일이 벌여졌다고. 땅에서. 땅에서 이미 인간들이 주님을 버렸잖아요.


예수님을 이 땅의 사람들이 유대사회가 예수님을 버리고 헬라인 된 빌라도도 예수님을 버리고 그래서 헬라인이나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버렸는데 그렇게 버린 이유가 문명을 유지하고자 한 거에요. 문명. 세계 4대 문명이라고 하잖아요. 좀 더 공부한 사람은 25대 문명이에요. 25대 문명. 유명하지 않은 것까지 다 합쳐서.


고고학자들이 밥 먹고 살려고 국경 없는 의사회처럼 온 나라를 파헤쳐요. 왜? 뭐 나오면 연수비 그 다음부터 계속 나오니까요. 하는 일이 중국이고 이란이고 공산주의고 필요 없어요. 아프리카도 다 파헤쳐버려요. 문명이 계속 나와요. 문명이. 끝없이. 나오는 문명보다 안 망한 문명이 없어요. 그 파헤쳐가지고 뭘 연구하느냐 하면은 처음의 국가는 어떻게 발생했는가 그걸 연구하는 겁니다. 처음의 국가는 어떻게 발생했는가?


과연 처음부터 계급이 있었는가? 처음부터 지도자층이 있었는가? 그걸 조사하는 겁니다. 처음부터 부계사회였는가? 모계사회였는가? 평등사회였는가? 그걸 계속 조사하는 거에요. 신화부터해서 고고학적 발굴해가지고 빙하시대 이후에 문명은 어떻게 나갔느냐. 인디언들은 어떻게 건너갔느냐? 그때 아직까지 땅이 붙어있어 가지고 건너기 좋았다. 뉴질랜드는 어떻게 갈 수 있는냐? 배 타고 가지, 헤엄쳐서 갈까요?


그런 것들을 계속해서 모으는 이유가 어떻게 하면 우리 현재에 있는 문명을 유지 보존할 수 있는 어떤 대책이 나오지 않겠느냐. 이러다가는 다 죽는다. 이러다가 다 죽는다. 온난화 때문에 다 죽는다. 탄소증가 해가지고 탄소 온도가 2도만 올라가도 빙하 녹아가지고 도쿄부터 해가지고 상하이 다 물에 잠긴다고 난리인데 원래 다 이미 무너졌습니다. 지금 무너지고 있어요. 무너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 아까 주님과 함께 간다 했잖아요. 주님과 함께. 여러분 유치원 애들 운동회할 때 한번 보세요. 어떤 프로그램이냐 하면은 7살 아래 엄마 손 잡고 달리기하는 거 보세요. 아무리 모진 엄마라고 할지라도 애 넘어지는데 애 두고 자기 혼자 달리는 엄마는 없습니다. 정 바쁘면 애 안고 달리지요. 공책 두 권 탈려고. 요새는 더 주겠지만 공책 두 권 탈려고 달립니다. 함께 가요.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저주의 빗방울 떨어지는데 주님께서는 그 비법을 알아요. 빗방울 요래 요래 빗겨가는 건 아니고요. 그냥 그걸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질주하는 겁니다. 뭐를 보면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염없이 세웠다 하면 무너지고 세웠다 하면 무너지고. 이번 대통령은 잘할까? 하면 또 실망이고. 국회의원 뽑았다 하면 마찬가지고 모든 것은 그냥 생리 자체가 무너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하고 느끼게 하는 거에요. 모든 게.


그런데 그 가운데서 무너지지 않는 것, 그것은 바로 땅에서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왜? 주기도문에 보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이 땅에서도 그냥 이루어지기 때문에. 땅에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올라갑니다. 땅에서 일어난 일을. 그 예수님이 바로 성전이고 예수님의 성전이 하늘로 올라가게 되면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 되는 겁니다. 그게 경로거든요. 땅에서 하늘로.


경로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 경로를 우리가 그 경로를 따라갈려면 주님이 찾아왔던 들어왔던 이 세상이 주님이 경험한 만큼이나 무너짐을 우리도 같이 성도이기 때문에 괄호이기 때문에 괄호. 주님이 당했던 무너짐을 우리도 같이 공유해야 돼요. 이 땅에서. 지금 자아의 무너짐은 지금 제가 이야기 안 하고 있어요.


주님의 무너짐은 어떻게 무너지느냐 하면은 예수님께서 일부러 시비걸어서 얻어맞는 게 아니고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에 말씀 관계입니다. 그 말씀이 오늘 누가복음 6장 46절에서 49절까지 나와 있잖아요. 여러 가지 나와 있지만 오늘 이 부분하기 때문에 앞에도 많이 있습니다. 형제의 눈의 티를 보고 그런 것도 다 포함돼요. 그 말씀에 의해서 말씀을 가지고 이 땅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죄의 세계에 왔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이 세상은 뭐냐 하면은 자신의 운명을 고수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퇴출시켰잖아요. 문명은 여기서 알아야 돼요. 왜 인간은 이 문명을 유지할려고 합니까? 왜 자기 가정을 지키려고 하고 자기 교회를 지키려고 하고 왜 국가를 지키려고 그렇게 합니까? 그 안에 누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 안에 신이 있어요. 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인간이 믿는 하나님은 나를 안 무너트리는 그런 하나님을 인간은 믿고 있었어요. 섬기고 있습니다. 나를 안 무너뜨리는 하나님. 그게 하나님 그게 신이에요. 자기 자신이 했던 모든 성과와 모든 지혜와 총 결집되어 있는 것이 이게 모여 모여서 그게 뭐가 되느냐 하면은 인간의 문명을 이루는 겁니다. 문명하니까 좀 딱딱하니까 다른 말로 옮길께요. 두 가지로 할께요. 문명의 요소는 이겁니다. ‘연대감과 유대감’. 연대감과 유대감이에요.


유대감은 약간 정서적인 면이 강하지요. 유대. 연대감은 뭐냐 하면은 상당히 실용적이에요. 당신하고 나하고 같이 동업하면 얼마나 이익을 얻을 것이다. 연대감. 특히 전쟁을 벌리면 이 연대감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이것은 상식에 속하니까 알아두시면 됩니다. 대구강의에서 언급을 했는데 최초의 돈이 나오는 것이 언제냐 하면은 구석기에서 신석기 중간에 돈이 나오는데 어떻게 나오느냐? 물물교환으로 나옵니다.


물물교환의 특징은 사물, 물체, 상품 그것에 균등을 맞추기 위해서 인간의 가치를 잠시 보류하는 거에요. 예를 들었습니다만은 안동의 쌀하고 태백의 고등어하고 할 때 아이고 아저씨 인물 잘 생겼다 고등어 한 마리 더 줄게 이런 거 없어요. 그 쌀의 양과 고등어의 양을 수치로 계량적으로 교환이 가능한 숫자로 조절하지요.


얼마나 인간성이 좋으냐 인물이 좋으냐 키가 크냐 그런 요소는 다 빠지는 거에요. 상당히 객관적이죠. 객관적. 분명히 세 마리 준다고 했는데 두 마리 주면 물물교환 성사 안 되지요. 교역이 성사 안돼요. 교역이. 교역을 위해서 숫자가 동원되는 겁니다. 숫자 다루는 관리자 공무원이 등장하는 거에요. 저쪽의 법과 이 쪽의 법을 맞춰야 교역이 되니까요.


우리 법에는 고등어 세 마리다. 우리 법은 네 마리다 이런 거 안되거든요. 협상과 타협을 해서 교역을 해야지. 그 교역의 물물교환이 뭘로 바뀌느냐 하면은 너무 귀찮으니까 이 물물교환 수단을 바꾸자 그래서 나온 것이 뭐냐 하면은 바로 돈이에요. 돈. ‘돈’. 여러분 돈과 화폐가 약간 틀립니다. 여기까지 여러분들이 알 필요가 없고요. 돈은 교환하는 수단을 돈이라고 하고 화폐는 장래의 신용을 위해서 미리 많이 찍어 놓는 것이 화폐고. 그거나 그거나 똑같지만 뭐.


지금은 돈 앞에서 돈 있는 인간끼리 연대감과 유대감이 돼요. 유대감, 연대감이라고 하는 것은 돈의 양 가지고 측정이 된다고요. 양 가지고. 이것은 야고보서 1장에 보면 야고보서 당시에도 마찬가지에요. 가난한 자가 오니까 나 몰라라. 부자가 오니까 아이고 앞자리에 앉으세요. 그렇게 교회에서 모신다고 하잖아요. 교회가 그걸 알기 때문에 부자들 일부러 뒷자리에 모시지요. 말씀 지킨다고. 안 무너질려고. 그거나 그거나 똑같지요. 뒷자리 가면 겸손해집니까? 겸손한 그게 교만인데요.


누가복음 9장 62절에 보면 이런 말씀 있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 돌아보는 자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 이게 제가 아까 달리라고 할 때 방향성을 두고 한 말이에요. 방향성. 5년을 살고 10년을 살고 50년을 살면 50년 살기 전에 몰랐던 새로운 무너질 거리를 50년 때 만나게 됩니다. 이게 인생이에요. 52년째 살아가면 52년째, 52년 안 살았으면 이것도 아! 무너지네 몰랐다. 하는 것을 52년째 만납니다.


그래서 뒤돌아볼 게 없어야 돼요. 계속 앞에 가면 앞에 그러니까 세상이 예수님을 싫어했잖아요. 예수님이 싫어하는 것, 예수님을 필요 없다고 하는 요소들이 자꾸 인생을 살면 살수록 괄호니까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자기 체험을 우리 체험으로 그걸 반복시키는 식으로 성도를 쟁기를 잡고 앞으로 앞으로 달리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오늘 동영상 강의 할 때 그런 이야기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구원받는다고 구원의 길로 갔는데 막상 나서보니까 망하는 길이였어요. 왜? 대책이 없으니까. 아무 대책이 없어요. 앞에는 바다 있고 뒤에는 따라오고. 아무 대책이 없게 하는 거에요.


이거는 뭐냐 하면은 바로 이 세상 무너지는 것이 아담의 체제거든요.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그 하나님을 이 인간 문명은 그걸 믿고 인간 문명 안 무너지게 하는 그 요소 가운데서 소위 성도라는 자도 여기 포함되어 있는 거에요. 여기 성도에게만 특별 과외로 그 자아가, 가슴이 덜컹거리는 그 무너짐을 매일같이 52년, 53년 계속해서 겪게 하는 거에요. 계속해서. 무너지는 즐거움이 있게 만들어요. 무너지는 즐거움이 있게 만듭니다. ‘무너지는 즐거움’.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 그러니까 우리가 무너졌다 안 무너졌다를 어떻게 아느냐 하면은 우리 주변에서 우리 주님께서 괄호에 같이 있으니까 네가 한번 봐라 이 말이죠. 말씀을 복음을 지키다가 복음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을 봐라 이 말이죠. 그 사람이 부도 안 나도 그 사람이 공부를 잘해도 상관없이 이제 주님 필요 없어. 난 주님 없어도 살아. 그게 바로 무너짐이라는 것을 이미 성도로 하여금 그걸 체험케 하는 거에요.


예수님이 필요 없는 것. 예수님이라는 성전이 필요 없는 식으로 세상적으로 나가는 그런 무너진 사례들을 네가 나이 들면서 네가 하나 하나 네가 체험하라 이 말입니다. 돈 있으면 됐지. 꼭 교회 다녀야 돼? 라고 생각하는 것. 내가 이 만큼 존경받으면 됐지 뭐 꼭 주님 계속 의지해야 돼?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에요.


그 무너짐의 요소가 아담의 요소고 아담이 왜 이렇게 세상적으로 범죄하고 난 뒤에 왜 세상적으로 나가게 됐느냐 하면은 전에는 뭐가 탐이 나느냐 하면은 선악과가 탐이 났었어요. 처음에. 여러분 알려줄게요. 선악과만 탐이 났는데 그 다음 아담이 범죄하고 난 뒤에는 선악과 따먹은 내가 탐이 난 거에요. 선악 지식을 아는 내가 탐이 난 거에요. 내가 나한테 홀린 겁니다. 그 때부터.


그래서 항상 메이크업해요. 인간은 패션부터 해서 메이크업해가지고 자기 자신이 홀릴 만한 객관화 대상자로 만드는데 치중을 하는 겁니다. 따라서 거기에 뭐가 붙느냐? 신이 붙어요. 하나님이여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금식하고 기도하옵나이다. 이게 바로 교회잖아요. 이게 교회 아닙니까?


그런데 숨길 수 없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해산의 고통. 아까 하늘의 해 이야기하다 이제 돌아왔다. 자, 하늘의 해가 왜 떴는지 모르지요?? 그런데 여자가 아이를 낳는 이유를 알아요? 그거는 생물학자도 몰라요. 과학은요 어떻게 해서 어떻게 이런 과정은 이야기하지만 근원적인 의미와 이유를 과학자는 모릅니다.


왜 남자가 낳아야지 왜 여자가 낳는지 답변해봐라. 몰라.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것까지 모르지요. 아기 낳는데 왜 아파? 안 아파도 되는데 왜 아파? 모르지요. 다만 되어진 결과를 가지고 해석한다고 급급하지 모르는 거에요. 여자가 해산의 고통이 있는 이유는 궁금해요? 500원 안 받겠습니다.


이유는 존재 자체가 이미 무너져버린 존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원래 그 인간이 아니다. 원래. 하나님 원한 그 인간이 아니에요. 무너진 증거를 갖기 위해서 한 것이고 남자가 이마에 땀을 흘려서 일을 해서 가정을 먹여 살려야 될 그것은 이미 무너져야 될 대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음 시간 무너지기 위해서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강남-누가복음 6장 49절 (무너짐) 210706a-이근호 목사.hwp (169.5K), Dow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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