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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6 15:46:48 조회 : 114         
안양20210715A슥7장8절(죄의 생산)-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119.207.152.148)
안양20210715A슥7장8절(죄의 생산)-이 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스가랴7장8절에서 14절까지 제가 그냥 죽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내가 그들을 바람으로 불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에 흩었느니라 그 후에 이 땅이 황폐하여 오고 가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라고 여러분이 보셨지요.

방금 읽었던 이걸 세자로 줄이면 이겁니다. ‘죄 생산’입니다. 죄 생산.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솜씨가 있느냐 하면 죄가 없는 곳에 죄를 만들어내는 솜씨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어떤 식으로 살아가느냐 하면 죄도 죄 아니라고 우기는 그런 고집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시는 일과 인간의 하는 일이 어기작 난다 하지요. 서로 안 맞지요. 주님은 죄를 만들어 내려하고 인간은 죄 지으면서도 변명으로 일관하고 변명으로 늘어놓지요.

이렇게 죄를 생산하는 그 장소가 어디냐, 그 장소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 이스라엘을 바로 구심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구심점이 되는 거예요. 그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는 수배중인 범인을 찾기 위해서는 경찰이 애를 많이 씁니다. 범인이 있을 곳을 수색하고 탐색합니다. 그건 뭐냐 하면 그 범인이 있는 그곳이 이 수사진행에 초점이 되는 구심점이 되는 겁니다. 구심점. 범인 잡겠다고 온 나라를 다 뒤집지는 않고 범인이 어디로 빠졌는가, 만약에 양천구로 빠졌다면 양천구 거기만 수색할 때 그 양천구는 그 사건에 의해서 구심점이 돼요.

그럼 이스라엘이 구심점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이 보는 재생산의 구심점이 이스라엘이라는 뜻이거든요. 이 말은 뭐냐 이스라엘 외에 모든 나라, 세상의 모든 나라 또는 모든 민족은 뭘 모르느냐 하면 죄를 모릅니다. 죄를 안 짓는다는 말이 아니고요, 죄에 대해서 몰라요. 죄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요. 죄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초반부터 상당히 난해하더라도 여러분이 강의 한 두 번이 듣는 게 아니니까 잘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에게 뭐가 문제냐 하면 거울 앞에 서면 자기의 몸이 보입니까? 자기의 마음이 보입니까? 둘 중에 어느 거예요? 자기 몸이 보이지요. 간단히 말해서 몸은 기계입니다.

기계란 말은 뭐냐, 왜냐 하면 이게 분해가능해요. 모든 회사의 제품은 분해되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남자들이 군에 가서 총 받을 때 총의 특징은 이게 분해가 되어있습니다. 빨리 분해하고 빨리 조립하는 거. 그 기술을 빨리 익히도록 하지요. 그런데 군에서 받은 기술은 자기가 자발적이 아니고 강제로 했기 때문에 억지기 때문에 별로 기억 남는 게 없어요. 군에 장기 복무하지 않는 한 군에서 시키는 일을 모든 게 다 귀찮아요. 심지어 밥 먹으라고 해도 귀찮아요. 내가 알아서 먹을 거니까 밥 먹으라고 하는 소리 하지 마! 아침에 기상하는 것도 귀찮아. 내가 알아서 일어날 테니까. 시키면 다 귀찮아요. 알아서 하면 알아서 잘 할 건데 시키면 다 귀찮아요.

몸은 기계입니다. 분해가 가능해요. 요 분해하는 걸 가지고 뭐냐 하면 의학이에요. 의학. 의학은 인간을 분해하는 거예요. 철저하게 분해하는데 어디까지 분해하느냐 분자차원까지 분해해요. 분자. 분자, 원자까지 분해를 합니다. 그걸 분해해서 조립하지요. 어디서? 병원에서. 분해하고 조립하지요. 인간에게는 이가 사물입니다. 물체입니다. 물체니까. 짐승에게는 이빨이라고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라고 하거든요. 점잖게. 고상하게. 이가, 이빨이 사람입니까? 아닙니까? 이빨이. 제가 질문할 때 빨리 답변해야 돼요. 내가. 여러분들이 힘들지 않기 위해서.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없고 몸만 있을 뿐이에요. 몸이 나중에 세포내가 기능이 희박해지면 지하철 두 군데 더 막 지나가고 그렇지요. 지금 잘 못 들으시니까 누구 이야기인지 모르는..., 지하철 두 군데 막 지나가는 것은 이게 인간이 기능이 쇠해서 그래요. 기계가 낡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인간 사회에서 어떤 거짓말이 있느냐 하면 이게 인간이 기계거든요. 왜 기계라 했습니까? 분해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계에요. 그리고 뭐가 가능합니까? 조립이 가능해요. 분해, 조립이 가능하면 이건 무조건 기계입니다. 앞으로 인간의 보조 인체 만들어가지고 보조적인 것이 더 많이 삽입될 거예요. 앞으로는. 심지어 두뇌세포까지 보조물로 이게 채워질 수가 있습니다.

인간 자체가 기계기 때문에 사람이란 없는 거예요. 그럼 질문 하나 더 한다면, 인간의 몸이 기계거든요. 보이는 기계란 말이죠. 키가 얼마, 몸무게 얼마 나오잖아요. 기계는 측량, 사물은 측량이 가능해요. 규격 재잖아요. 몸무게 재고 할 때 여기서 정신은 어디 있습니까? 이게 질문이에요. 모든 기계인데 그럼 정신은 어디 있느냐, 정신은?

이 기계라 하는 것은 조립, 분해가 가능하잖아요. 그럼 이건 물질이 되는 겁니다. 물질은 뭐로 교환이 되느냐 하면 돈으로 가능해요. 돈으로. 임플란트 하시렵니까. 이거 돈이잖아요. 물질은 돈으로 가능해요. 나라는 기계는 돈만 있으면 이 기계가 움직여 나갈 수가 있습니다. 가동이 됩니다. 그럼 기능이 필요한 것은 뭐냐 하면 단백질, 탄수화물, 기름기라는 영양분 그리고 비타민 같은 물질로 해서 살수가 있습니다. 영양분을 공급하니까. 세포는 에너지를 원하니까. 에너지는 곡물에 들어있고 에너지가 몸속에 들어오면 소화됨으로 되거든요. 그게 인간이다 말이죠. 그게 사람이라는 기계입니다.

그런데 자살은 왜 합니까? 이게 이상하지요. 그래서 이 두뇌를 연구하는 사람은 생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그 인간세포 속에 자살인자가 있다는 거예요. 자살인자. 자살인자가 있어서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기 세포를 알아서 파괴하는 그 본능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파괴하는 거.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해도 인간은 기계잖아요. 기계가 무슨 본능이 있고 기계가 무슨 자살하는 의식이 있습니까. 이건 앞뒤가 맞지를 않는 이야기에요.

어떻게 이온농도가 높아지게 되면 자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할 때, 이온 농도를 왜 높이는데 물으면 답변이 없어요. 어디로 핑계를 대느냐 하면 날 때부터 DNA가 그렇다는 거예요. 그럼 DNA는 뭐야? 이렇게 물어야지. DNA가 누구십니까? 이렇게 물을 수는 없잖아요. 이 말은 DNA도 기계에요. 디보신리보핵산. 기계 이름을 지은 거예요. 인간은 파고들고, 파고들고, 쪼개고, 쪼개고, 백날 해봐야 인간 속에는 오직 기계밖에 없어요. 기계입니다.

기계가 태어나서 기계가 스스로 식물이 자라듯이 자라나고, 어떤 나이 서른쯤 되게 되면 두뇌세포도 정지되고 키도 정지돼 가지고 그 다음부터는 쭈그러들기 시작하지요. 내려앉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아시지만 20대에 피부를 생각해보잖아요. 생각해볼 때, 자기 피부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20대에요. 이 피부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런데 한 80되어보세요.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 피부에. 노화라는 이름의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 그래서 노화에 대해서 연구한다고요. 노화가 누구야? 나를 노하게 하는 노화는 뭐냐? 또 이거 연구한다고요. 백날 연구해봐야 인간은 기계입니다. 기계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서러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요.

집에 있는 기계가 컴퓨터가 고장 났다. 그러면 서러워할 사람은 컴퓨터 산 주인이 서러워해야 되지 컴퓨터가 혼자 자기 망가지면서 눈물 찔찔 흘리고, 눈물 찔찔 흘리거든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컴퓨터에서 눈물을 흘리면 대번 주인은 그 눈물을 수집해가지고 성분분석에 들어갈 겁니다. 왜, 컴퓨터는 기계기 때문에. 이건 눈물이라고 하지 않고, 어떤 액체가 나온다고 볼 거예요. 그러면 인간도 마찬가지에요. 인간도 눈물 흘리면 그 눈물 가지고 성분분석 들어가야 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눈물 흘리는 사람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잘 될 거예요.” 이리 이야기할까요? 아니면 “그 눈물샘이 파괴 되었으니까 약국에서 약 사라. 이렇게 이야기해야 될까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인간이 인간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설명하는 것은 인간은 기계다.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이건 뭐냐 정신이라는 것은 어디에 있느냐, 그래서 기계에 몰두하는 사람은 이렇게 해야 돼요. 자기의 논리에 일관성이 있으면 정신이라는 것은 없다, 이렇게 해야 돼요. 정신이라는 것은 그냥 단어는 있을 뿐인데 나중에 더 분석해보면 정신 그 자체가 인간에게는 없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돼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뭔가 잊어버리면 “나, 정신이 없어.” 이렇게 하거든요. 본인이 정신이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정신이 없다, 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점들이 왜 이렇게 인간은 기계가 되고, 정신은 인간에서 찾을 수가 없어요. 어떤 과학자나, 철학자는 정신을 찾아낸 사람은 없습니다. 정신을 찾아낸 사람은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해하시겠지요. 정신이 어디 있어야 하지요. 정신이 없잖아요. 정신이 어디에 팔려있습니까. 머리에 있다고요. 그거 단층촬영해보면 없는데요. 정신없어요. 두뇌세포를 엑스레이 촬영하게 되면 정신이 “아이구! 들켰구나!” 정신이 한 곳에 숨고 이럽니까? 날 찾지 마! 하고. 그러면 정신에게 기어이 찾아낼 거야. 정신아! 거기서 나와. 손들고. 이런 게 있습니까. 그냥 눕혀 놓고 자기공명에다 눕혀 놓고 쐬어보니까 정신은 없는 거예요. 세포들의 활동만 있을 뿐이지 정신은 없는 거예요.

일단은 정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없어요. 그럼 정신이 없다면 정신에게 소속된 것도 없는 거예요. 여러 가지 소속된 것 없는 거예요. 소속된 거 한 번 해볼까요. 사랑 없습니다. 소망 없습니다. 믿음 없습니다. 더구나 뭐가 더 중요하냐 하면, 뭐가 없느냐 하면 자아라는 게 없습니다. 인간의 자아라는 게 없어요. 그냥 우연히 태어나서 우연히 살다가 그냥 우연히 죽는 겁니다. 결국 이 말은 인간은 자기의 근본과 근원에 대해서 기계로 보면 없어야 되는데 이 정신이 없다고 아무리 우겨도 정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 자아가 있잖아요. 그 자아는 정신에 속하거든요. 지금 제 논리가 얼마나 복잡한지 여러분 감 잡아야 돼요.

나는 기계라고 이야기하는 그 당사자 있잖아요. 그 당사자는 기계에 포함이 돼요? 안돼요? 포함이 안 되는 겁니다. 기계 바깥에서 내 몸은 기계라고 쳐다보고 있는 너는 누구냐? 에요. Who are you? 너는 누구냐? 너는 도대체 누구냐 이 말이에요. 너는. 사도행전8장17절에서 20절 보겠습니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그렇게 되어있어요.

여기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신기한 것에 대해서는 지가 못 참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베드로가 안수를 하니까 성령을 받잖아요. 지도 그 재주가 갖고 싶은 거예요. 갖고 싶은데 방법이 뭐냐 하면 돈을 주고 얻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20절 마지막에는 니가 돈과 함께 어떻게 된다? 망하게 된다고 되어있지요. 돈과 함께. 오늘 스가랴7장 14절을 보게 되면 “내가 그들을 바람으로 불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에 흩었느니라. 그 후에 이 땅이 황폐하여 오고 가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12절에 보면,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하나님께로부터 나와 가지고 그들이 망했다고 되어있어요. 오늘 스가랴에서는. 그렇죠. 방금 읽었던 사도행전8장에서는 돈으로 망한다, 이리 되어있지요.

여기서 베드로가 하는 단어가 하나있습니다. 뭐냐 하면 선물이라는 겁니다. 선물. 그러니까 인간이 되려면 뭐냐 하면 몸. 그러니까 기계입니다. 기계. 여러 가지의 원소, 지구를 구성하는 101가지 하지만, 100가지 잡고. 100가지의 원소들이 혼합되어있는 몸. 실제 기계에요. 기계에다가 뭐가 추가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선물이 추가되게 되면 여기서 뭐가 나온다? 비로소 인간이라는 게 나오는 거예요. 인간. 인간이 나오는 겁니다.

그렇다면 정신이라 하는 것은 결국 뭐다? 정신이라 하는 것은 선물이지요. 선물이라면 이건 출처가 정신하고, 몸하고 출처가 따로 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따로. 따로에요. 따로. 전에 말한 이분법 이야기하고 지금 다른 이야기하는 겁니다. 출처가 따로 있다하기 보다도 하나의 출처에서 두 개의 양상이 나왔다. 이게 더 정답이어야 하는 겁니다. 출처가 따로 되어버리면 자칫하면 이분법 되어가지고 이건 영원히 하나가 되지를 못해요. 하나가 되려면 정신을 주신 분이 뭐도 줬다? 몸도 줬다,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기계라고 했지만 육신, 육체, 고깃덩어리, 단백질덩어리, 이렇게 하는 게 좋지요.

문제는 이 기계로서는 그 출처를 찾아갈 수 없다는 거예요. 기계로서는. 그래서 주님께서는 기계에 대해서 문제 삼지 않습니다. 니가 팔이 부러졌던지, 허리가 아프던지 그런 거 문제 삼지 않아요. 키가 몇 센치냐, 인물이 왜 못 생겼느냐, 잘생겼느냐, 그런 거 문제 삼지 않아요.

자, 다시 스가랴7장에 들어와서 7장에 보게 되면 12절,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이렇게 되어있지요. 하나님께서 출처를 드러내면서 무엇과 함께 동반하느냐 하면 율법을 동반시켜서 너의 출처는 여기서부터 나왔다고 우리의 자리를 알려주는 겁니다. 너는 여기서 나왔다는 거예요. 여기서 나왔다.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이거 다 아는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세상 모든 민족이 다 아는 이야기고요. 이스라엘이 구심점이라 했지요. 아까 이스라엘을.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특별히 율법을 주는 거예요.

이스라엘에게만 율법을 줘가지고 인간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거예요? 율법에서 나오게 하는 거예요. 율법에서. 율법에서 뭐가 나오느냐, 인간이라는 게 나온 겁니다. 인간이라는 몸이라는 육체라는 기계도 나오고 정신이라는 자아도 나오고 이게 어디서 나왔다? 율법에서 나온 거예요. 율법에서. 어제 수요설교 한 거 잠깐 해보겠습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난 뒤에 아담의 범죄이후에 아담에게 결여가 있다. 결여. 쉬운 말로 하면 모자람이 있다. 아담에게 구멍이 하나 뚫렸다. 텅텅 비어있는 구멍이 생겨버렸다. 이런 뜻이에요.

거기에 아담 곁에 모자람이 있는데 여기에 뭐가 들어오느냐 하면 율법이 들어와 버렸어요. 율법. 율법이라 해도 되고, 언약이라 해도 되고, 말씀이라 해도, 계시라 해도, 예언이라 해도 다 같은 말이에요. 또 하나님의 약속이라 해도 괜찮아요. 율법이 아담 속에 들어와 버렸어요.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아담이 아담과 그 후손이 내내 죽어야 될 이유가 발생이 되는 겁니다. 율법에 위반됐으니까 율법의 뜻을 충족시키지 못하니까 죽어 합당하다는 이유가 성립되는 거예요. 그러면 아담은 그때부터는 아담 본인의 스케줄, 본인의 계획, 본인의 목적, 이것은 전부 다 애초부터 하나님께서 허용한 적이 없습니다. 주도권은 아담 옆에 율법이 쥐고 있기 때문에 율법의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다시 할게요. 율법 안에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 인간다운 인간이 율법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그 인간다운 인간이 율법 안에 율법이 완성될 때 인간과 율법에 위반했을 때 인간과의 차이점을 이 아담과 후손들, 인간들은 피조물들은 그걸 보여줘야 되는 거예요. 그게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난 이유입니다. 보여주는 거예요. 지금 제가 여러분과 같이 스가랴7장을 보면서 이스라엘보고 하나님이 분노를 쏟아내고 책망하는 대목이 나오지요. 그리고 그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민족을 이스라엘 자체를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들이 원치 않는 나라로 전부 다 바람으로 불어서 가루로 훅 불어 흩어버린 거예요. 흩어버린 거예요.

전쟁 통이나 또는 사업하다가 부도가 나고 빚쟁이가 올 때는 어쩔 수없이 온 식구가 한 4식구 같으면 5식구 같으면 전부 다 어떻게 돼요. 다 흩어져야 되겠지요. 왜, 빚이 많아서 한데 모아서 살 수 있는 형편이 못되고 빚쟁이들 찾아와가지고 애들은 공부도 제대로 못시키고 이 시기 놓치면 공부도 못하니까 니는 이모 집에 가라. 니는 고모 집에 가라. 하고 전부다 보내버리지요. 큰 집에 양자가 돼라. 다 보내버리잖아요. 우리 둘은 갈라서자. 둘이 같이 붙어있으면 빚쟁이 찾아와서 안 되겠다. 우리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갈라서자. 둘이 갈라서고. 그럼 어떻게 됩니까. 가정이 구성이 안 되지요. 뿔뿔이 흩어졌지요. 뭐가 날아갔어요. 구심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은 뭐냐, 일단 흩어놓고 하나님이 구심점을 따로 만들어놓고, 흩어놓고 구심점 만들고, 그 다음에 구심점으로 한데 모으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원래 구심점이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유일한 구심점이에요. 율법이 주어졌으니까. 구심점인데 구심점을 흩으신다. 뭐로? 율법으로 흩으셔요. 율법으로. 율법의 내용이 9절에 나오지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이게 율법의 내용이란 말이죠. 율법의 내용을 해놓고 이걸 흩어버려요. 흩어지고 난 뒤에 그 다음에 구심점이 없잖아요.

그리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누굴 보내느냐, 성령을 보내셔가지고 다시 이스라엘을 규합하는 거예요. 모으시는 거예요. 흩어지고 다시 모아질 때 이스라엘. 흩어진 이스라엘은 이건 구원의 대상이 아닙니다. 흩어짐의 대상이고. 흩어짐을 경험한 체험한 그 이스라엘만이 어디냐, 이게 바로 천국에 백성들이에요. 천국 가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이 깨어졌다가 다시 모아지는 거.

그러면 흩어졌을 때는 율법으로 흩어졌잖아요. 그러면 다시 모으려면 율법을 다 지켜야 모을 수가 있다는 조건이 여기에 성립이 되겠지요. 그런데 흩어질 때 이미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이 흩어졌는데 아니 무슨 수로 다시 율법을 지켜가지고 뭐 개과천선합니까? 다시 해도 소용없어요. 다시 율법을 행해서 할 수가 있습니까? 할 수가 없어요.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냥 아담이 아니고 결여된 아담이기 때문에. 율법이 없으면 충족되지 않는 빈껍데기 아담이기 때문에 이게 부실한 아담, 아담도 아닌 아담, 가짜 아담, 엉터리 아담, 망가져버린 아담, 그 아담이 다시 율법을 지킬 능력은 없어요.

여러분, 시계가 고장 났을 때 소금물에 담그면 어떻게 됩니까? 고장 난 시계 소금물에 담그면, 소금물에 담겨있는 고장 난 시계지 갑자기 시계가 다시 가는 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계는 기계잖아요. 인간도 기계잖아요. 기계지요. 기계기 때문에 인간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자아가 망가졌어요. 그러면 자아는 빼고 몸은 멀쩡한데 그 멀쩡한 몸으로 다시 건전한 자아를 회복할 능력은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약속에 의하면 천국백성은 있어야 하겠고 인간들은 그 율법을 다시 지킬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하느냐 하면 성령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인간들을 자기 백성들을 십자가로 모읍니다. 끌어당깁니다. 십자가로 끌어당깁니다.

자, 오늘 강의하면서 나왔던 첫 번째 중요한 결론, 또는 명제 공식하나 생겼습니다. 우리는 이 공식을 확고히 하여야 돼요. ‘성령은 자기 사람을 십자가로 끌어당긴다.’ 끌어 모은다. 또는 끌어당긴다. 성령께서는 자기 사람을 십자가로, 주님의 사람을 십자가로 끌어당긴다. 이게 성령의 객관적인 일이고 스케줄이고 일이에요. 성령이 무엇이냐 할 때는 십자가로 눈앞에 보이게 하는 게 성령의 일입니다. 그 외에는 성령의 일이 아닙니다.

자, 아까 봤던 사도행전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사도행전8장17절에서20절에서 지금 베드로가 안수하니까 성령의 안수를 받았지요. 그렇지요. 받았는데 마술사 시몬이 그게 멋있어 보이니까 뭐를 준다고 제공했어요. 돈을 제공하지요. 돈을 제공해서 뭘 얻겠다? 성령 받는 그런 희한한 비법을 이렇게 하게 했다 말이죠. 하게 하니까 이것은 성령이 하는 일하고는 다르지요. 십자가는 자기 부인이잖아요. 자기부인. 자기부정이잖아요. 자기부정이지요. 또는 자아부정. 자아는 어디에 속했다? 정신에 속하지요. 자기 정신은 망가졌다고 인정하는 것이 성령께서 십자가로 인도하는 현상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면 이 시몬은 성령이 하는 일, 권역, 범위, 그 바깥에 있지요. 그걸 가지고 사도행전8장에서는 망했다고 하는 거예요. 망했다. 망했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망했다. 자, 이걸 오늘날 21세기 현실에 적용시켜 봅시다.

여러분들이 요즘 내가 비가 많이 오고해서 아침에 산책하게 되면 그 길가에 뭐가 자꾸 거추장스러우냐 하면 거미줄이 있어요. 자, 거미줄이 있다는 말은 그 근처에 거미가 있다는 말이에요? 없다는 말이에요? 거미줄이 있다는 말은 이건 머리 나빠도 알 수 있어요. 거미줄이 있다는 말은 거미가 거기에 있다는 거예요. 안 보이지만. 거미가 거기에 있어요. 그러면 인간이 자아, 자기 생각, 자아를 생각하는 그것에는 뭐가 있다는 말입니까? 거미줄이 있는 곳에 거미 있다면 인간들이 자아를 생각하는 그 인간들 속에는 뭐가 있다는 말이지요. 지옥이 있다는 거예요. 거미줄이 있는데 거미 없다하는 이것은 진짜 나쁜 사람이에요. 터무니없는 말도 안 되는 인간이지요.

그러나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우선시하는 그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뭐가 있어요? 망한 영역이 있어야 하겠지요. 최종적으로 망한 영역이 바로 지옥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옥 속에 살고 있어요. 지옥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지를 마세요. 자기 부정이 안 되고 자기 부인이 안 되는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게 바로 거미줄들이에요. 거미줄들. 그게 뭐 스파이더맨인줄 알아요. 아니에요. 그냥 거미줄 속에 있는 지옥에서 쫙쫙 뽑아낸 그 거미줄은 뭐가 안 되느냐 하면, 자기 부인이 안 됩니다.

성령이고, 예수고 간에 돈 주고 사려해요. 돈 주고 사려한다고요. 원빈 있잖아요. 얼마면 돼? 사랑! 얼마면 돼? 얼마면 사랑 내가 차지할 수 있겠어? 그러다가 낙엽 던지면서 가라! 가라! 가란 말이야! 갑자기 딴 마음이 되어가지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자기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사랑한다 해놓고 강제로 겁탈해놓고는 얼마나 전에 있는 연애보다 더 심하게 미워해요. 가라! 가라! 가라는 말이야! 바로 이 작용이 니는 다쳐도 나는 다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니 몸에 있는 니 정신은 다치든 말든 나는 상관없고, 내 기계에 몸에 붙어있는 내 육신에 붙어있는 이 자아는 다치기 싫다는 겁니다. 상처받기 싫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자아는 도대체 처음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는 이 자아가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담 보시기에 보기 심히 좋았다 했으니까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지요. 그 없는 마음이 오늘 스가랴7장10절에 나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이리 되어있어요. 그 다음에 9절에 보면, 너희가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처음 만들었던 그 신체, 아담의 신체에 붙어있던 선물로서의 그 정신이 그 자아에요.

율법은 내가 만든 내 자아 어디 갔느냐를 찾고 있습니다. 그것과 동일한 자아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너희들을 망하게 하겠다는 그 뜻을 시범조로 샘플로 보여주는 민족이 있었으니 그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민족이에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은 바로 일을 이렇게 하시는구나! 흩어놓고 흩어질 때도 율법에 준해서 흩어놓아 버리고 그것도 분노하신다니까. 오늘 본문에 분노 나오지요. 등을 돌려 듣기 싫어함으로 내가 분노하여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 나왔다. 12절에 되어 있잖아요. 분노하시고 그 다음에 율법에 적용시키면 인내와 긍휼이에요. 불쌍히 여긴다. 불쌍히 여김으로서 다시 거두어주시는 그 둘 다, 분노하는 마음과 거두어주시는 두 마음이 다 어디서 나온다? 율법의 완성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율법의 완성에서.

율법에 비해서 하자가 없어야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있는 천국백성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율법에 의하면 생기지 말아야 될 것이 생겼어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자아라는 겁니다. 자기. 셀프. 나. 쉽게 말해서 나가 생긴 겁니다. 자, 강의 처음부터 다시 하겠습니다.

거울을 보면 육체가 있지요. 거울을 보면 어떤 육체가 이렇게 서 있잖아요. 있을 때, 이 거울 속에서 뭐가 없느냐 하면 거울 속에 비친 나가 없어요. 자기가 없습니다. 자기는 어디 있느냐 그 거울의 모습을 보면서 그게 나라고 하는 여기 있지요. 거울이라 하는 것은 똑같이 비춰주는 거예요. 그렇지요. 거울 속에 있는 것이 어디서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잖아요.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치니까 무엇이 없습니까? 여기 자아라는 게 없는데 나는 거울 속에 맞은편에 있는 실제 하는 나는 이 몸을 가지고 그건 남의 몸이 아니고 뭐다? 나의 몸이다. 나라는 것을 이걸 집어넣어서 해석을 해버리는 겁니다. 거울 속에 있는 몸을.

하도 이것이 무의식중에 늘 그리 살기 때문에 제가 따지는 내가 나쁜 사람처럼 느껴져요. 목사님! 그걸 굳이 따지십니까? 그 몸이 그럼 남의 몸이겠어요. 내 몸이지. 이렇게 할 거예요.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자아가 자기 몸을 해석을 해왔기 때문에 자아가 있는 이상 어떤 식이라도 인간은 어떤 식이라도 자아를 스스로 갉아먹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 거예요. 이게 반칙이다 이 말이죠. 이게 잘못된 생각이에요.

다시 말해서 처음에 강의했습니다. 인간은 죄를 압니까? 모릅니까? 죄를 모르는 거예요. 그저 변명만 늘어놓는 거예요. 변명만. 사회가 나빠서 그렇고, 사회가 안 알아줘서 그렇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그걸 어떻게 구박하면 안 되잖아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도 한다고 했습니다. 계속, 계속 움츠러들고 숨어가면서 비겁하게 도망치면서 내내 뒤돌아보면서 내뱉는 게 뭐냐 하면 “제발 나만은 안 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뭐? 돈? 돈 줄게. 집? 니 집해. 애 다 니가 키워. 하지만 나의 결정만은 건드리지 마라.” 그걸 만약에 내가 건드리게 되면 니는 나한테 모욕감을 줬어. 모욕감이지요. 목욕 값이 아니고. 칠천원하는 목욕 값이 아니고. 모욕감을 줬어.

니가 아무리 옳고 나는 나쁘다 할지라도 너는 나를 치욕을 느낄 수 있는 권한은 내가 용납하지 않는다. 그럼 상대방이 “왜 그런데? 잘못해놓고 아까 반성했잖아. 반성해놓고 뭐 또 딴 소리하느냐. 왜 그런데?” “몰라. 나도 몰라. 알 수가 없어.” 평생 내가 누군지를 모르면서 평생에 모르면서 그걸 지키는 오직 그 집념, 그 집착하나로 평생을 시간을 다 허비하고 온 겁니다. 그거 왜 지켜야 됩니까? 물으면 “모르겠어요. 그냥. 제발 나를 갉아먹지 말라”는 거예요. 나를 좀 갉아먹지 말라는 거예요.

누가 욕해도 나는 나에게 너무나 귀한 존재라는 겁니다. 나는 나에게. 꼭 범죄자의 엄마 같아. 세상이 다 너를 내 자식을 욕해도 나는 너를 지켜주마. 그걸 가지고 세자로 공범자라 해요. 공범자. 제가 최근에 그런 강의했잖아요. 자식이 음주했는데 옆에 앉은 80넘은 할머니가 경찰이 오니까 80넘은 할머니가 벌벌 떨면서 “내가 운전했어요. 술 먹고.” 경찰이 그걸 믿겠습니까. 운전 면허증 보여주세요. 운전면허증 집에 놔두고 왔어요. 왜 그렇게 변명합니까? 자식은 자기 밖에 있는 게 아니고 자식은 영원히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자식이 곧 나기 때문에 그래요. 자식을 지키는 게 아니고 그 노모가 자기 자신을 자기가 지키는 방법입니다. 왜? 나의 것이니까.

나는 구체화시키면 나의 것으로 돼요. 나의 것. 소유. 이 소유를 뭐로 전환시키느냐 하면 돈으로 소유함을 지켜요. 돈으로. 아까 나왔지요. 사도행전8장17절, 20절, 그 성령 받는데 공짜가 아니지요. 돈 주겠다 이 말이거든요. 이건 뭐냐 하면 나의 것으로 성령을 사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성령이 하시는 일은 나의 것을 없애는 것. 나의 것을 부정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십자가라 하는 것이 바로 나를 못 박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6장에서 24절에 그런 말씀이 있지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빈손으로 오지 말고, 뭘 하나 끌고 오라고 했어요. 뭡니까? 자기 십자가를 끌고 오너라. 자기 십자가. 십자가와 함께 동반해서 오라, 이 말이지요.

이거 가방 있지요. 제가 올 때 빈손으로 들어오던가요. 가방을 메고 오던가요. 이걸 가방이라고 하지 말고 십자가라고 하고. 나의 십자가. 남을 못 박는 십자가가 아니고 이걸 십자가를 소유한 가진 나를 이 자아를 반복해서 못 박을 수 있는 그런 기구와 장치를 가지고 니가 오라 말이지요. 나를 따라 오너라 이 말이지요. 왜냐하면 예수님도 바로 그러한 장치, 제도, 그러한 조건을 갖추시면서 이 땅을 빠져나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십자가 없는 사람은 못 빠져나온다.

그렇다면 율법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율법의 완성이 뭐다? 십자가에요. 긍휼이 여기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 아니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 아니에요. 올바르게 재판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이 아닙니다. 여기 나오지요. 마음을 금강석같이 하지 않는 게 율법의 완성이 아니고 어떤 인간도 율법을 지킬 능력은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율법에다가 맡겨야 되는 거예요. 율법이 나를 죽이도록 나를 맡겨야 되는 거예요. 율법은 나를 공격하는 것이 율법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면 율법 앞에서 율법에 의해서 정죄 받도록 맡겨줘야 돼요.

이 일을 바로 흩어진 자를 자기 백성을 끌어 모으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다시 할게요. 성령께서는 무슨 일을 한다? 우리에게 십자가로 끌고 가신다. 왜냐하면 새로운 백성의 시작점이 바로 십자가고, 시작점이. 그리고 세상에서 볼 때에 성도의 마지막 모습도 십자가를 뒤로 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가방을 제가 멨다고 칠 때 제 뒷모습은 뭐만 보이겠습니까? 가방이 오죽 큽니까. 가방만 보이겠지요. 십자가만 남기고 떠나간 사람. 십자가만 남기고 떠나간 사람. 십자가 할 때, 그동안 내가 했던 잘난 거, 멋있는 거, 노력한 거, 그거 다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프로 나오지만, 거기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이게 나옵니다. 터키 음식 골목에 가면 먹는 거 있지요. 케밥. 개밥이 아니고 케밥. 이렇게 둥그렇게 되어있고 여기 고기를 걸어놓고 여기에 넓적한 빵에다가 손님이 오게 되면 즉석에서 고기를 잘라내고 채소 엎어가지고 터키식 샌드위치라 할까요. 이렇게 만들어서 주잖아요. 저는 그걸 보면서 거기에 안 가 봐도 딱 압니다. 저 맛 되게 이상하다는 거. 저런 양고기.

혹시 십자가마을이나 우리교회 혹시 이스라엘 이렇게 몇 년 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스라엘 가려고 하거든요. 이스라엘 갈 때 거기 가가지고 예루살렘 보고 그런 것도 좋지만, 제일 먼저 해야 될 것이 뭐냐 하면 한국에서 먹던 음식을 들고 가는 것이 그게 기본입니다. 배고프면 아무것도 헛것이 보이지 아무것도 안 보여요. 한국에서 먹던 음식을 가지고 가야 돼요. 이 귀한 시간에 이스라엘 갈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후딱 이야기한다면 한국에서 먹던 던킨 도너츠 같은 거 괜찮아요. 그리고 컵라면은 기본이고 단팥빵 이런 거요. 그 나라에는 없어요. 단팥빵 이런 거. 한국 입맛에 맞는 거. 그리고 전투식량이라든지 요새 마트에 가면 무슨 밥맛 나요. 그거 소비용이기 때문에 처음에 무겁지만 나중에 다 먹고 없거든요. 그거 다 들고 가야 돼요. 괜히 안 들고 가가지고 남의 것 탐내지 말고. 진짜 못 먹습니다.

케밥의 특징은 잘라내는 거예요. 갉아내는 거예요.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꾸 살려고 하지 마! 이 아담아. 니는 이미 문제 있어. 내 율법 한 번 쏘아 봐. 이 중에 율법 하나 지켰다고. 그럼 옆에 거는 왜 안 지키는데. 온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어. 케밥 고기 잘라내듯이 우리의 자아를 훼손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 성경 말씀이 있는 거예요. 전체가 율법이에요. 이 전체가. 사도바울의 명령, 지시 다 율법이에요. 그런데 자아도 만만치 않거든요. 버틴다고요. 뭘로 버티느냐 하면 율법을 지켰잖아요. 말씀을 믿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꾸 자기 의를 아주 저돌적으로 지켜요. 저돌적으로.

죽기 살기로 그 자기의의 쪼가리. 그 쪼가리 하나는 계속 건지려고 아주 사투를 벌립니다. 이 성경 말씀을. 아~ 고집도 대단한 고집이지요. 쉽게 말해서 자아라는 구심점. 이거 포기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어디를 공격하느냐 하면 이 자아를 공격해요. 자아를 공격해버리면 이 자아에 율법의 완성 다시 말해서 십자가가 여기에 와버리지요. 그러면 자아에서는 자아는 그냥 자아가 아니에요. 여기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자기 의를 토대로 해서 자아가 성립이 됩니다. 자기 의.

나 살만 해! 나 이만큼 노력했어! 라고 변명과 핑계로 일관된 의로움. 쉽게 할까요. “나는 결국에는 옳다.” 이런 좋은 소리는 좀 적어놓으세요. 나는 결국에는 옳다. 누가 뭐래도 그래도 나는 옳다. 이걸 철저히 가져가는 거예요. 철두철미하게 가져가요. 나는 어떤 경우라도 옳다. 묻지도 따질 필요도 없다. 나는 옳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니가 옳은 거 같으면 내가 대신 죽을 리가 있겠느냐, 니 대신 내가 죽었다는 말은 내가 옳다. 이것이 바로 니가 몰랐던 뭐가 되느냐, 죄였다는 거예요.

인간은 죄를 모르지요. 성령이 오고 십자가가 와야 죄를 알아요. 그렇지 않으면 죄를 몰라요. 그래서 제가 제일 처음에 칠판에다가 뭘 썼습니까? 하나님의 솜씨가 뭐라고 했습니까? 죄를 생산하는 것. 죄를 생산할 때에 나는 옳지 않다, 를 기쁨으로 이야기하세요. 아~ 내가 옳지 않구나! 기쁨으로 이야기해야 되지, 씩씩 거리면서 하면 또 자아한테 미련이 있어서 그래요.

내가 옳지 않구나! 내가 밥 먹고 사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구나! 내가 이가 멀쩡하고 다리가 멀쩡한 게 이게 당연한 게 아니구나! 모든지 나한테는 옳지 않은 나에게는 모든 것들이 그냥 선물이구나! 그냥 공짜로 주신거구나! 그게 긍휼이구나! 이게 바로 오늘 스가랴7장9절 아닙니까. 그게 인애, 사랑이고 그 다음에 긍휼. 인애와 사랑. 이게 바로 그 사랑을 지금까지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훼방질했습니까.

이 자아라는 이상한 죄가 죄악 된 정신이 주님이 주신 선물과 은혜를 다 훼손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천국백성이라 하는 것은 내가 옳다가 아니라 주님이 옳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못난이. 나는 못난이. 이렇게 같이 동반해서 천국 가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안양20210715A슥7장8절(죄의 생산)-이 근호 목사.hwp (80.0K), Dow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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