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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4 20:54:22 조회 : 161         
9강-데살로니가전서 2장 14-16절(그만하자)211024 - 이 근호 목사 이름 : 오용익(IP:125.136.180.11)
9강-데살로니가전서 2장 14-16절(그만하자)211024 - 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 14-16절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4-16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지난 시간에 말과 말씀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말이 만들어내는 그 나름대로의 뚜렷한 분명한 현실이 있는데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는 ‘너희 나라’ 나라라고 이야기해요. 14절 끝에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나라, 국가지요, 국가 “사람들에게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처음 전파했던 형제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유다나라에 있는 형제들은 유다나라한테 핍박을 받고, 여기 있는 헬라인들은 로마나라, 맨 같은 나라지만요, 그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니까, 그 로마 나라에게 핍박을 받는 거예요.

그러면 현재 이 세상에 인간의 언어, 말이 통하는 나라는, 다른 말로 하면 말씀의 세계에 속한 사람을 고난받게 하고 핍박하는 그 나라는 현재 몇 개국이냐? UN에 등록된 나라는 200개국이지만 등록되지 않은 나라까지 합해서 220개국, 월드컵 협회에 가입된 나라도 2백 열 몇 개의 나라가 돼요.

하지만 그 나라는 한 나라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나라는 국가의 경계가 의미가 없어요. 중국이고 대만이고 북한이고 남한이고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나라든지 간에 말씀에 속한 이 천국에 속한 새 나라에 속한 자를 핍박하는 그 기능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동일한 속성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나라에 사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에 의해서 제공된 나라에 사는데 이로 말미암아 말로 서로 통용되는 나라와 말로 통용되는 나라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하나님의 선별과 택함을 받은 자들이 따로 만든 나라, 그것은 말씀의 나라에요.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시고 지금도 예수님이 강렬하게 통치하는 나라, 그 나라가 천국이고 하나님의 나라, 말씀의 나라입니다.
이 말씀의 나라 입장에서 볼 때에 말씀의 나라는 위에 있거든요. 위에 있다고 하는 것은 빌립보서에 나오는 거예요. 너는 땅에 속하지 않고 너의 시민권은 위에 있다 하니까 시민권이 위쪽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위에 있어요. 땅에서는 죽었고 우리 생명은 위에 있는 거예요. 위에 있는 이 백성들이 이 지상에 살면서 고난을 받는데 어떤 고난을 받느냐? 유다 나라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받는 고난이나 이 헬라 나라, 그리스, 이방 나라에 있으면서 받는 고난이나 똑같은 고난으로 그렇게 간주가 됩니다.

그리고 유다 나라에 있는 이 백성들이 받는 고난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받는 고난과 동일한 고난을 이 땅에서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생각할 때 고난은 누가 고난을 주며 그 고난의 성격, 누가 고난을 주게 되며 고난을 받았을 때 어떤 고난을 받는가? 이것이 굉장히 궁금할 거예요. 제가 미리 결론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미리 이야기할 때는 이 내용이 어렵다는 뜻이거든요.

누가 고난을 주느냐 하면, 본인이 고난을 줘요, 본인이. 본인이 고난을 준다고요. 여기에 보면 15절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여기에 적이 나와요. 대적, 원수가 나온다고요. 누가 우리를 이렇게 대적하는 원수냐? 누구냐? 나예요.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에게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파키스탄이나 탈레반 거론하지 마세요. 북한 이야기하지 마세요. 본인이 본인에게 최후의 원수입니다.

이것 모르면 여전히 우리는 말의 세계에 속해요. 말씀에 속하지 않으면 이 내용을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말의 세계와 말씀의 세계의 차이점이 뭐냐? 말의 세계에는 없는데 말씀의 세계에만 있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생명나무입니다. 창세기 3장을 혹시 읽어보셨습니까 창세기 3장을 읽어본 사람 같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에요. 이것은 애들도 창세기 3장을 읽어보면 알 정도로 누구나 아는 이야기에요.

생명 나무가 있는 동네가 따로 있다는 것, 이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고 또 무엇을 알아야 되느냐 하면, 인간이 사는 이 동네, 이 대지, 펄벅의 <대지> 이 토지에는 생명 나무가, 생명이 없어요. 이것은 뭐 IQ 50만 되어도 아는 거예요. 뻔한 거예요. 생명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의 세계라는 것은 뭐냐? 이 말의 세계에 무엇이 없다는 것을 알리려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말씀입니다. 네가 그렇게 발발 떨고, 붙들고, 평생 네가 몰입하고, 매진하고, 목숨 바쳐서 여기에 버티고자, 버티고자, 했던 그 세계에 정작 네가 그토록 원하는 살아야 되겠다, 살아야 되겠다, 하는데 생명은 없어요. 정작 이 땅에는 생명이 없다 이 말이지요.

그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바로 말씀에 속한 백성이고, 이 220개국 나라 합치면 하나의 나라지요, 그 나라에 그걸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그 비밀을 또 누설을 해버렸네. 그걸 이야기를 해버리니까 그들이 화를 안 낼 수가 없어요.
“그러면, 우리가 평생 80, 90, 백 세까지 사는데 그러면 우리가 인생 헛살았냐?” 그렇게 나와요. “그러면 아무짝도 소용없는 인생을 살았냐?” 이렇게 반격이 들어오지요. 그러면 말씀에 속한, 복음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유리하고 불리하고를 따질 것 없이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 그래! 헛산 거야. 생명도 없는데 그냥 헛산 거야.”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야기 하라고 말씀이 항상 우리에게 촉구하지요. 내부적으로 우리를 가지고 일하시는 겁니다.

없다는 것, 생명이 없다는 것, 이것은 모든 것을 상실한 것, 잃어버린 거예요. 반면에 생명이 있다는 것, 이것은 모든 것을 얻은 겁니다. 이 세상이요, 성실하고 겸손하고 인품이 출중하고,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자기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면서 항상 남을 배려하고 남부터 챙기고 함부로 말하지 아니하고 꾸준히 자기 일에 열심 내는 그런 오만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무지무지하게 겸손한데 굉장히 오만해요.

뭐냐 하면, 생명 나무 이야기 앞에 서게 되면 그 사람들은 오만의 극치를 떱니다. 오만의 극치를 보입니다. 나 이렇게 잘 살았는데 그러면 나 뭐가 되냐, 그 말이에요. 너는 죽 됐지 뭐. 너는 끝났지 뭐. 여기에 대해서 인간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의 세계에는 생명 나무가 없고, 말씀의 세계에만 생명 나무가 있고.

그래서 13절 끝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그다음 말이 놀라워요.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거예요. 역사하고 있다는 거예요. 네 마음은 네가 주장하지 못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이렇습니다. 생명 나무를 먹게 되면 생명 나무 과실을 이미 먹게 된 사람들은 이 땅에서 뭘 해도 이게 허물이 안 돼요. 왜냐하면 생명 나무를 먹은 사람은 주도권이 내 마음을 주관하는 자가 내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뭘 해도 허물이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말씀이 없는 사람, 생명 나무 과실을 따 먹지 못한 사람, 아무리 겸손하고 착실하고 착하고 의롭게 해도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허물이 되는 겁니다. 생명이 없는데 뭘 하나님께 갖다 바칠라고요? 나 이렇습니다. 내놓을 것이 없는데 뭘 자기 자랑하겠어요? 있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이 말씀의 세계가 결국 지금 말의 세계, 인간의 세계에 성령을 통해서 일찍 찾아온 것은 생명 나무를 따 먹게 된 사람과 어떻게 해도 생명 나무를 먹어서는 안 되는 사람과 구분시키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어요. 이게 전부 다 생명 나무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거기에 천국에만 생명 나무가 있어요. 그 외에는 생명 나무가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유대인 나오거든요.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그다음에 대적이라는 말이 나와요. 적이 나와요. 원수가 나온다고요. 물론 그들로 인하여 고난받는 이야기가 나오고요. 그러면 생명 나무 받은 자가 생명 나무 없는 세계에 살면서 거기서 무엇이 발생 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원수, 대적이 여기서 발생 됩니다. 그 대적이 발생 되면서 대적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 받은 자에게 고난으로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대적이라는 말은, 복음이 주어지게 되면 복음의 적이 필시 발생하게 되어 있어요.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복음의 적이라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핍박했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뭐가 되느냐? 철천지원수가 되는 거지요. 생명 나무를 몰랐는데 주님 앞에 복음의 적이 되고 하나님의 철천지원수가 되는 그 이유가 뭐냐? 그 이유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본인이 주관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마음이라는 것을 주관하지 못해요. 그러면 내 마음을 주관하지 못한다면, 생명 나무가 오게 되면 생명이 주관하게 되지만 생명이 오기 전까지는 그러면 누가 나의 마음을 주관했느냐?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15절에 “유대인은”이란 말이 나와요. 유대인은.

14절 다시 보게 되면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줬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의 말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그걸 주목하고 유념해야 된다는 거예요.

유대인들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기다가 일부러 박아 넣은 거예요. 유대인들이라는 게.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톡톡히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유대인들을 만드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느냐? 그 구원하는 표준이 뭐냐? 누가 구원받고 어떤 기준이 표준이냐, 하는 것 그걸 알리기 위해서 구약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구원이 안 되는 방식으로 구원의 표준을 세우시는 그 작업에 동원된 자들이 유대인들이고 유대민족이에요. 이스라엘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아주 촘촘하고 빈틈이 없어요. 빈틈이 없다고요. 이스라엘 사람이 왜 있지? 왜 있기는?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가장 원형적인 사람으로서 내세움으로써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이 안 되는 원형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들고 유대인들을 세운 거예요.

그걸 피해가 버리면, 그걸 무시해 버리면, 구약을 무시하고 성경 무시해 버리면 우리는 내가 정말 성령 받았는지, 생명 나무 열매를 먹은 사람인지 분간이 안 된다는 말이지요. 뭔가 원형이라는 것은요, 우리는 몰라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형을 만들어 놓고 사진을 찍어버린다고! 사진을 찍어놔야 그 사진에 찍힌 원형과 그 후가 얼마나 비틀어졌는지를 틀어졌는지를, 무엇에 오류가 있는지를 알 수가 있거든요.

앰프가 잘 될 때 사진을 찍어놔야 그다음에 누가 앰프를 만졌는지 범인을 색출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 사진이 뭐냐 하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으로 사진을 찍은 거예요. 율법이 원하는 제대로 된 인간 사진은 누구냐 하면, 율법 입장에서, 구약 입장에서 장차 오시는 메시아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다 이루신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되지요. 왜 이스라엘은, 왜 유대인들은 율법을 그렇게 받아놓고도 율법을 못 지켰는가? 도대체 원인이 뭐냐? 이걸 아셔야 되지요. 그 원인이 뭐냐 하면, 아까 말씀드렸습니다만, 인간의 마음은 본인이 주관할 수가 없습니다. 주장할 수가 없어요.

그게 로마서 10장에 보면 나옵니다. 유대인에 대해서 로마서 10장에 나오는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2절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자 하나님께 열심은 있습니다. 열심이 있어요. 어느 정도 열심 있느냐 하면요, 우리 이방인 같으면 상상이 안 돼요.

목숨 바쳐서까지 율법을 지키려 했어요. 목숨 걸고. 우리는 설렁설렁 농담인지 장난인지, 교회 오는 게 오락인지 친목인지 4H 클럽인지 알 수가 없지만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아요. 목숨 걸고 율법을 지킨 사람들이에요. “열심이 있으나”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신학교 간 신학생 치고 어슬렁어슬렁 간 신학생은 별로 없어요. 나름대로 내가 목숨 바쳐서 아골골짝이라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20년째 우리가 안 부르는 찬송가에 나오는 가사거든요.

우리 교회는 제가 안 부르고 싶어요. 위선 덩어리를 부를 수가 없어요. 복음 들고 아골골짝 가오리다, 하는 그 찬송가처럼 처음 신학교 들어갈 때, 총신은 나중이고 대구신학교 갈 때부터, 지방신학교 들어갈 때부터 ‘오직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리라. 주님, 이 모습 사진 찍어놓으세요.’ 해서 주께서 사진 다 찍어 놨어요.

‘나는 이 마음 변하면 개다. 나를 개라고 해도 괜찮아. 이 마음 평생 나는 변치 않으리라.’ 금식하면서 대구 가까운 주암산 기도원에 올라가서 소나무 뽑는다고 있는 소나무 다 뽑히고 바위를 치면서 밤새도록 “주여, 이 마음 가지고 대한민국을 복음으로, 이 복음으로 내가 구원하리라.” 갑자기 내가 흥분하네요. “목숨 걸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신학교 간 그 당사자 학생만 그런 게 아니에요. 그 부모들도 그렇게 한 거예요. ‘내가 아들이 없어서 그렇지 딸이었으면 이름을 한나라 지었다.’ 왜? 아들 사무엘을 바친 엄마잖아요. 엄마가 더 나대. 엄마가 더 나대서 “하나님, 저 아들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크게 쓰신 주기철 목사같이 크게 쓰시고 한경직 목사같이 크게 쓰소서” 그런 식으로. 하여튼 큰 교회는 탐내면서, “크게 쓰시는 주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 시작을 그렇게 해요. 사실은 수능점수가 안 되거든요. 수능이 안 되니 갈 데 없으니까 신학교에 원서 들이미는 겁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것 보면 피식 웃습니다. 그것도 오기고 그것도 결심이냐? 우리는 민족 전체가 하나님의 율법에 메시아 오심에 목숨 걸었던 민족입니다. 그게 뭐냐?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그 간단한 문장이에요. 심지어 거기에 누가 있느냐 하면, 사도바울이, 사도 되기 전의 사울도 여기에 해당 됩니다.

다른 민족은 이해가 안 되지요. ‘도대체 하나님이 뭔데 거기에 목숨을 바쳐? 하나님 이용할 생각해야지 하나님께 자기의 목숨을 바친다니.’ 그들은 주장합니다. ‘목숨을 바치지 아니하면 생명도 없다.’ 그게 그들의 모토에요. 표어입니다. 유대인들 교육법, 유대인들 경제관, 이렇게 하는데 그들의 정신사고에는 그런 것들이 깔려있어요. 열심은 있어요.

하지만 사도바울 본인이 유대인이라 너무 잘 알지요.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이미 자기 자신이 뭔가 자기 마음에 밑에서부터 좍 받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율법은 네가 의롭지 아니하면 하나님 낙원에 있는, 천국에 있는 생명 나무를 못 따먹으니까 네가 어쨌든 저쨌든간에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의는 네가 챙겨야 된다.’ 이게 그들의 합심했던 마음이었습니다. 자기 의예요, 자기의.

그러니까 남이 일하고 자기가 공짜로 얻는 이것은 상상도 못 해요. 염치없는 짓입니다. 착해도 내가 착하고, 봉사하고 섬겨도 내가 섬기고, 헌금해도 내가 헌금하고, 예배 참석도 내가 하지 남이 하고 덤으로 내가 의롭게 되는 이것은 있을 수가 없지요.

‘아이고, 사람이 양심이 있지 어떻게 인간이 그런 염치 없는 짓을 해요. 그것은 말도 안 돼요. 하나님이 그런 일을 벌일 일이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다시 보면 로마서 10장 3, 4절에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율법은 사진기입니다. 다 찍어 놨어요. 찰칵, 찰칵, 찰칵, 다 찍었습니다. 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까~지. 자, 끝났지? 모세율법에 의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가 따로 있다는데 이것은 뭐냐? 믿음의 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6절에 인간의 마음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이미 자기 의로 무장케 하는 배후세력이 있었던 거예요.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내가 거저 의롭게 되고 거저 생명 나무를 따 먹는 것이 아니고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라, 하는 거예요. 네 목숨 바쳐서 네 의만 챙기면 손해 보는 장사 아니다. 이것이 악마가 실시한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복음은 뭐냐? 복음은 율법으로 의를 얻겠다는 것과는 정반대 구원의 방식이에요. 설교 다시 하겠습니다. 자, 다시 합니다. 왜 구약 이스라엘 나라가 있고 왜 거기에 율법을 줬느냐? 구원의 기준이 뭐냐? 표준을 세우기 위해서 구원이 안 되는 시범케이스로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우리 곁에 주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유대인을 모른 체 하지 말고 유대인을 반드시 거치세요. 유대인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반드시 그걸 아셔야 돼요. 유대인이 노력하는 것의 그 마음과 우리 마음이, 우리의 아담에서 받은 마음이 동일한 마음이에요. 내가 나한테 성실해서 내가 얻을 것을 얻겠다, 이 마음이라고요.

이 마음인데 그 마음이 뭐냐? 복음의 적,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유대인들의 합치된 의견, 여론, 그것은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거예요. 예수를 믿든 하나님을 믿든 내가 결정하겠다는 거예요. 교회에서 그런 이야기 하거든요.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으니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목숨을 주님께 바쳐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사실은 주님께 바치라는 말이 아니지요. 교회에 갖다 바치라는 말이지요.

주님께 바쳐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할 때 그 말이 어디서 잘못이냐 하면요, 그게 성경 말씀 그대로 외워도 그게 잘못이 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 내가 주를 위를 목숨 바치겠다는 그 명령을 주님이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나한테 명령을 내린다는 사실을 그들이 모르고 있어요.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트릭이 심한지 트릭, 위장이 심한지를 본인이 지금 모르고 있는 거예요.

잠시 쉬었다 갑시다. 일단 우리 마음부터 제대로 알아야 돼요. 우리 마음을! ‘주님께 충성해야지’ 누가 누구한테 지시 내리는 거예요? 내가 나한테 지시 내리는 겁니다. 그래야 내가 나한테 의미 있고 값어치 있기 때문에 그래요. 유대인이 주님의 적이다, 원수다. 아이고, 그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라 하지요. 그러면 나는 안 나빠요? 유대인들을 거쳐 와야 되는데요? 유대인의 그 같은 마음을 못 벗어나는데요?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러면 내 마음을 누가 장악하냐? 거기에 대해서 요한계시록 12장이 잘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7절부터 죽 나오는데요. 너무 길기 때문에 다 읽지는 않고 함축해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악마한테는요 생명 나무가 없어요. 생명이 없어요. 꼭 없는 게 있는 척하거든요.

그러니까 악마가 인간의 마음을 다룰 때 악마는 알아요. 본인에게 생명 나무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에게 영향력을 계속해서 행사하는 거예요. 생명 나무가 있고 없고, 그것을 생각 못 하게 만들고 잘하면 영생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악마가 부추기는 겁니다. 그래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요.

그게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바로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 나옵니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 악마가 어디 앞에 있느냐? 하나님 앞에 있어요. 하나님의 내력에 대해서 빠삭하게 압니다. 악마는 알고 우리는 모르고 있어요. 악마는 알아요. 하나님 바로 앞에서 고개 쳐들고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악마기 때문에.

그 악마가 뭐냐? 밤낮 참소하는 거예요. 고자질하는 겁니다. ‘얼레리 꼴레리,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내가 안다’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참소하는 거예요. 어떻게요? 무한으로, 쉬지도 않고. 계속 참소해요. 고자질하는 거예요. 악마의 이 고자질이 양심이 되어서 내가 나를 하루도 쉬지 않고 고자질 하고 있는 거예요.

‘너는 너한테 성실했느냐? 너는 네가 하는 일에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 네가 남한테 욕먹을 짓 했어, 안 했어? 네가 남한테 피해 입혔어, 안 입혔어? 네가 남을 함부로 대했어, 안 대했어?’ 계속해서 무한으로, 무한으로 참소합니다. 게다가 악마는 율법까지 동원해서 참소합니다. 교회 와도 소용없어요. 교회는 성경 이야기하잖아요. 성경 이야기 가지고도 참소해요.

‘네가 십자가 믿어? 네가 복음을 알아?’ 이것도 악마가 나한테 참소하는 겁니다. 악마가 성경 도사거든요. 신학박사거든요. 참소를 할 때 거기에 대해서 생명 나무를 따먹은 자는 어떻게 되느냐? 11절에 나옵니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여기 피라는 말이 나옵니다. 피!

여러분들이 220개국 이 나라들이 모여있는 이 지구의 현실, 이 현실에서 어떤 단어들이 우리 마음을 혹하게 하고 우리 마음에 찰싹 달라붙는가? 이런 거지요. 소득증대, 이윤확보, 수입창출, 고객확보, 사업번창, 승진, 기업확장, 원만한 가족, 시험합격, 취업, 건강유지, 품질개선, 기술증진, 원가절감, 불량 줄이기, 능력 극대화, 소비증진.

제가 옛날에 잠시 공장 다닐 때 아침에 출근하면 현장에 있는 직원들 모아놓고 하는 게 뭐냐 하면,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라는 거예요. 내밀면서 안전제일! 안전제일! 안전제일! 지금도 하고 있어요. “안전제일! 소득증진! 원가절감! 회사가 살아야 내가 산다.” 그걸 현장감독이 와서 계속 하는 거예요.

회사가 살아야 내가 산다. 여기에 피 이야기 어디 나옵니까? 안 나오지요. 피 이야기 안 나오지요. 닭 키워서 소득이 얼마나 증대하는가. 우리 옆집 할아버지는 닭 키워요. 소득 증대한다고. 쫙쫙 달라붙어요. 소득증대, 고객확보, 쫙쫙 달라붙지요. 그런데 피라는 것이 쫙쫙 달라붙습니까?

내가 내 마음으로 내가 시작하고 내가 결심한 교회 다니기, 하나님 믿기. 그것은 결국은 무너집니다. 안됩니다. 되지를 않아요. 소용없습니다.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거예요. 악마는 알아요. 생명나무는 인간이 행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 다 이루었다는 사실을 악마는 알아요. 악마가 알지만 안 믿잖아요. 소득증대, 수입창출이 쫙쫙 달라붙으니까, 그 마음이 악마의 마음이니까.

복음의 원수가 누구냐? 본인이 바로 복음의 원수에요, 본인이. 본인이 복음의 원수라니까요. 악마의 마음이라니까요, 이게. 그만합시다, 정말 위선, 위선 신앙, 우리 그만하자. 이거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로이킴이 부른 노래에 있어요. <우리 그만하자> 가사가 이래요.

우리 이제 그만하자
아프지 말라는 말도 잘 자라는 말도
우리 이제 그만하자
사랑한다는 말도 똑바로 못하면서

고린도전서 16장에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한다. 사도바울은 심각합니다. 인간을 알아요. 사도바울이 인간을 압니다. 왜? 자기가 유대인을 거쳐 왔잖아요. 유대인이 왜 실패했는지를 알아요. 내 마음이 아무리 결심해도 주께서 완전히 그걸 개 무시한다는 것, 그걸 압니다. 과거에 신앙생활 5십 년 하고, 그런 것을 다 알아요. 주께서 하는 말은 뭐냐? 그만하자, 에요. 고마해라, 고마!

“너 왜 사느냐?” “살려고 삽니다.” “이미 살았는데 왜 사느냐, 인간아. 너 왜 살아?” “살려고요.” “이미 죽었는데 왜 살아?” 태어난 것도 주의 뜻이지요. 죽는 것도 주의 뜻이지요. 그 중간에 끼인 것도 누구 뜻입니까? 주의 뜻이잖아요. 그러니까 성도는 이렇습니다. 성도가 뭐가 성도냐? 진짜 생명 나무 받은 성도가 어떤 모습이냐? 나랑 나와 무슨 상관있느냐, 이 질문을 할 줄 알아야 돼요.

여기 있는 내가 나와 아무 상관 없는 거예요. 상관없는 것을 마귀가 부추겨서 상관있다고 자꾸 내가 나를 참소케 만드는 겁니다. 악마는 내가 누구냐는 이야기하지 않고 내가 무엇이 되리오, 그것만 생각하게 만들고 있어요. 제가 잊을 수 없는 노래 중 하나가 수십 년 전, 진짜 수십 년 전 외롭게 있으면 부른 노래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라는 노래, 아주 정말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존재의 의미, 짜장면 배달하면서 애인은 사귀어놨지, 짜장면 배달하는 자기 신세는 처량하기 짝이 없지. “조금만 기다려줘 네게 달려갈 테니까” 거기에 나오는 나레이션 “너의 곁엔 항상 내가 있을 테니까 우리의 미래를 위해 슬퍼도 조금만 참아줘.”

특히 2절 가사에, 집에 들어오면 쓰리잡 포잡 한다고 이 김 종환씨가 완전히 뻗어버려요. 가수 되기 전에 인기도 없으니까 돈 번다고 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쓰러져 잠들기 바빠요. 잠들지만 마지막 오른손인지 왼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손에 당신의 사진 붙들고 자는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줘~” 존재의 의미가 뭐냐? 네가 있음에 그게 내 존재의 의미에요.

지금도 그 노래 부르면서 노래방에서 훌쩍거리는 남자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달려갈 테니~”. 그때는요, 진짜 우리 그만하자. 주님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는 말을 기분 나쁘게 하게 되면 이것은 마귀에 속한 사람이고 주님, 나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싱글벙글 웃고 있으면 이건 성령 받은 사람이에요.

‘아, 다 되었구나. 이거 일은 끝났잖아. 나만 몰랐네, 이 끝난 것을. 아, 빙신, 바보 병신도 아니고 도대체 내가 인생 왜 살았어? 바보 아냐?’ 이 인간이 생명도 얻지도 못하는 것을 남 눈총 본다고. 남이 이렇게 하니까 이렇게 하고 저렇게 가면 저리 가고. 남 칭찬받으려고, 남에게 사람 대우받으려고 그 마귀 짓, 헛짓을 한 거예요. 나를 버리게 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생명 나무 받은 사람이에요.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2장을 다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여러분 마귀의 전략을 알아야 돼요. 마귀의 전략은 뭐냐 하면, 아담을 꽉 잡았잖아요. 잡았는데 악마는 자기 한계는 인간에게 안 들키고 인간은 악마를 전지전능한 자로 보는 거예요.

그리고 악마는 인간보고 ‘네가 전지전능해. 네가 신이야.’ 그렇게 자꾸 세뇌를 시켜요. ‘네가 신이야. 너의 미래는 너 하기 나름이야. 네가 바르게 살면 복을 받고 죽어서 천당하고, 네가 나쁘면 나중에 죽어서 지옥가는 거야.’ 이걸 악마가 이야기한다고요. 선악체제에 의해서 계속 이야기해온 거예요. ‘예수 믿는 것도 착한 일이니까 너 천당갈 거야.’ 이런 식으로 가르쳐 온 거예요.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쳐 온 거예요, 교회에서!

왜 그렇게 가르치느냐? 그것은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옵니다. 예수님의 그 피의 효과, 피의 효과에 대해서 악마가 자기 한계성이 피 앞까지뿐이고 그다음에는 자기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안 들키기 위해서, 자기 한계가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 피 빼놓고 나머지는 전부 다 가르치는 거예요. 심지어 피도 가르치지요. 피도 가르치지만 피를 믿고 안 믿고는 너한테 달렸다,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피를 믿는 것도, 아까도 제가 말씀 드렸지만, 이것은 성령이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되기 위해서 예수의 피를 받아들이라고 내가 나한테 명령하는 겁니다. 거기에 성령께서 대처하는 방법은 뭐냐? 끊임없이 나를 의심하는 거예요. 끊임없이 나를 의심하는 겁니다. 끊임없이 나를 믿지 않는 거예요.

그 성경적 근거가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나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아, 참, 이 말씀 중요한데요. 이런 말씀이에요. 우리는 평생을 두고 내가 나를 시험하는 기간이 뭐냐? 나의 일평생이었어요. 일평생 동안 인간들은 자기를 시험합니다. 뭘 시험하느냐? 내가 사는데 효과가 있고 효력이 있는 것은 뭐냐? 하나님이냐 아니면 나의 성실함이냐, 그걸 시험해 봐요.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의 원수기 때문에, 이미 출생 자체가 원수기 때문에 원수 티를 팍팍 내는 거예요. 나는 나의 의가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 가보는 거예요. 왜? 테스트하기 위해서. 교회 가서 하나님 믿으면 내 소원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테스트해보는 거예요.

그냥 교회 오는 것이 아니라 새벽 기도 나오고, 목사가 시키는 대로 철야 기도해 보고, 진짜 성경 쓰기 해보고, ‘십일조 해봐라. 창고에 넘치도록 채울 것이다.’ 그것도 말씀대로 되는지 다 해보는 거예요. 여러분 다 해봤어요. 평생 동안 그걸 해보는 거예요.

내린 결론은 뭐냐? 효과 없다, 에요. 하나님하고 연관해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본인이 확정해야 됩니다. 아, 나 이 이야기할 때는 너무 기뻐서 미치겠어요. 교회 다니고 하는 이 모든 것이 내 구원에 아무 도움이 안 되고 효과 없다는 것을 확정해야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은 하나님이든 누구든, 내 인생을 이따위로 만든 게 하나님이든 인간이든 누구든지 내가 용서하지 않기 때문에.

그게 바로 악마의 심성입니다. 악마의 심성은 복수의 화신입니다. 이 복수의 화신은 고칠 수가 없어요. 고칠 수가 없는 질환, 병이에요. 타고난 거예요. 내력이에요 아담의 내력, 복수의 화신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에게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 교회 가서 헌금하고 십일조 할 테니까 우리 좋은 사이 됩시다, 라고 내 쪽에서 먼저 넌지시 제스쳐를 취해봐요.

복 주느냐 안 주느냐. 안주거든요. 그러면 내 인생 또 조져놨잖아요. 교회 와서 또 조져놨다고요. 본인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이게 마귀에 속한 인간입니다. 문제가 본인한테 있는데 하나님한테 있다는 거예요. 본인에게 왜 문제가 있느냐 하면, 인간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만들지 않으면 누구라도 나는 용서하지 않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요. 꼭 북한 같아. 그냥 쏴버려요. 어딜 건드려. 나 자체가 종교니까. 내가 나의 종교잖아요.

이 말씀을 해야 돼요.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죄인부터 출발한다는 거예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10절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내가 하나님 앞에 내가 옳지 않다는 것, 내가 옳다는 위주, 나 위주라 하는 것을 철저하게 의심했을 그 때에, 내가 나를 안 믿을 그 때에 비로소 생명 나무가 얼마나 값없이 주신 것인지를 그제야 확인하는 것, 그게 바로 피의 효과에요, 피의 효과! 내가 피를 믿는 게 피의 효과가 아니고, 내가 예수 믿는다고 피 믿겠다고 결심하는 게 피의 효과가 아니라, 주께서 우리를 시험해 온 거예요. 평생토록 우리는 나름대로 내 인생을 걸고 주님이 날 도와주는가, 시험해 왔고요.

자식을 신학교에 바친다고요? 바쳐봐야 돌아오는 공물 없습니다. 그 어미가 엉망인데 자식도 신학교 가도 엉망이지요. 주께서 “그만하자!” 합니다. “그만하자. 너도 힘들잖아. 네가 신자 인척하는 게 힘들지? 눈에 다 보이는데? 그만하자.” “하나님, 사랑합니다.” “아이고, 됐다. 아이고, 나 안 들었다. 안 들었다. 그 위선적인 말 안 들었다.”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것은 네가 좀 의심하라는 거예요. 매일같이. 교인은 신앙인들이 모이는게 아니고요. 복수의 화신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우리가 이 땅에서, 세상에 대해서 실망해야 됩니다. 실망해야 되는 그걸 반겨야 돼요. 감사합니다. 또 내가 의도했던 목적과 내 인생의 목표가 무너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목표, 기대, 소망 가진 자가 나잖아요. 그러면 그걸 주께서 안되게 할 때는 나를 의심해야지요. 하나님, 예수님, 삼위일체, 백날 해도 나는 나만 믿는 신자 아닙니까? 내가 나한테 우상이었고 나는 나의 유일한 하나밖에 없는 충실한 신자잖아요. 딸랑딸랑, 내가 내 종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수십 번 이야기했어요. 교회 와서 봉사한다고 설쳐댈 때 나 안 믿는다고요.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고요. 그걸 저만 압니까? 여기 다 알아요. 고참들 다 알아요. ‘저거 6개월 갈지 싶다.’ 딱 맞췄네. 그건 어찌 그리 잘 맞는지. 봉사 딱 6개월 갑니다. 딱딱 맞아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요, 알아요. 성령 받은 고참들은 알아요. 내가 나를 믿을 인간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뭐 예수 믿는다고 하니까 속으로 막 웃는 거예요. 제발 불의한 청지기가 되세요. 불의한 청지기. 안 나오던 아멘이 여기서 나오네요. 제발 불의한 청지기, 탕자, 오직, ONLY, 나밖에 모르는 것, 나밖에 모르는 인간, 그러면서도 내 인생 이렇게 되었는데 주님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는 그걸 감사히 받아들이는 사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 내게로 오라. 내가 다 해결했다.” 아, 베드로가 그 말을 들었겠어요, 안 들었겠어요? 들었지요. 들었는데 누가복음 22장 31절에 베드로가 모르는 사실을 예수님이 알려주십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여기 시몬아, 시몬아, 되어 있지요. 여기에 괄호치고 여러분의 이름을 집어넣을 줄 알아야 됩니다.

이게 살면서 뭐 아까 제가 이야기한 소득증대, 이자, 펀드 올라간다, 순 그런 이야기만 쫙쫙 달라붙는데요. 아파트값 올라갔다, 땅값 올라서 기분 좋겠습니다, 애가 합격해서 기분 좋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만 쫙쫙 달라붙는데, 우리는, 나는 세상만 관계했고 세상은 나에게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고 끼리끼리 했는데 예수는 베드로보고 “시몬아” “예” “악마가 너를 노린다.”

악마가 너를 노린다. 악마하고 우리하고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베드로가 그걸 감안하지 않고 살아온 거예요. 그래서 나온 이야기가 뭐냐? 제가 주님을 따라가는데 제 목숨 바치고 옥에도 가도 죽는데도 가겠습니다, 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 “그만하자. 네가 악마의 쫄다구가 된 사실, 그걸 거치지 않고 너는 나와 상관있다고 생각하느냐? 악마를 거쳐서 나에게 오는 거야.”

네가 이기지 못한 것, 네가 해내지 못한 것, 이미 피의 효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너는 너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는 것, 그것도 감사함으로 한 번도 의심하지 못한, 의심해 본 적이 없는 나를 성령께서 찾아오니까 ‘나 아니구나. 나는 이대로 살다 가는구나.’ 인생이라 하는 것은 죽음에서 잠시 외출했다가 잠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안개라고 이야기하는구나.’

비로소 세상을 이기는 겁니다. 사람이 힘들게 살려고 한다면요,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원리에 의해서 이게 힘들어져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가속도가 빛의 속도에 다가가면 갈수록 그 에너지는 극대화된다. 왜? 중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내가 나를 살리려고 하면 할수록 나의 가치와 무게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요. 무겁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 무거운 것 어떻게 하느냐? 주님께서 현장에다 주께서 자신의 피 흘린 그 피의 효과를 테스트하는 현장으로 우리를 여기다 집어넣은 거예요. 컴퓨터 칩 판에 주님은 칩을 꼽겠다는데 칩 판이 뭐라 하면 안 돼요. 꽂으세요, 하는 거예요. 주의 피의 효과를 꽂고 생명 나무를 꽂겠다는데 그냥 반기면 되는 거예요.

의사가 진료할 때 어떤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남들 보기에 이게 예배당이지만 의사가 와서 “독감 주사 맞겠습니다” 하면 그 다음부터는 진료소가 되어서 “집사님, 나가세요” 하면 쫓겨나야 하는 겁니다. 그게 주께서 칩을 꽂아주겠다는데, 자기 피를 꽂아주겠다는데 우리는 아니 됩니다, 됩니다, 할 것 없이 그냥 ‘그 일은 저랑 상관없지요’ 하고 그냥 받으세요.

세상일은요, 내가 꾸며 나가는 게 아닙니다. 끝으로 드릴 말씀은 이겁니다. 주님에게는 다 계획이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참 헛수고, 헛수고, 백날 해도 헛수고. 그런데 이 헛수고가 헛수고인 것을 아는 이 마음이 주님의 마음인 것을 이제는 저희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만하라, 는 이 말씀이 복음이 되고, 주님과 상관없다는 이 말씀이 기쁨이 되고, 세상에 이러한 행복, 이러한 복이 생명 나무 안에 들어 있던 복이 쏟아졌음을 저희들은 인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9강-데살로니가전서 2장 14-16절(그만하자)211024 - 이 근호 목사.hwp (95.5K), Dow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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