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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7 06:46:39 조회 : 91         
광주강의20220225b 예레미야 33장 20절(약정파기)-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하림(IP:219.251.37.139)
광주강의20220225b 예레미야 33장 20절(약정파기)-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겠습니다. 작은 돌부리 이야기했고요. 개여울 이야기했고 사망의 길, 생명의 길 나누기 위해서 하나님의 증표가 필요했고 그 증표가 이 소자한테 한 것이 곧 나한테 한 것이라 했어요. 사람이 필요하다 이 말이죠.

그 개여울에 돌부리가 있어서 물이 갈라진다면 갈라진 길 중 사망의 길이 있고 그 길이 뭐냐. 바로 선악체계가 유지되는 거죠. 생명의 길은 여러분 아시다시피 선악체계가 부정되고 생명나무의 거저 주시는 것으로 되죠.

그래서 생명의 길은 새 언약이 되겠습니다, 새 언약. 예레미야 31장 31절, “내가 새 언약을 세우리라” 새 언약이라는 말은 아까 첫째 시간에 한 것처럼 이 안에 무엇이 포함되느냐 하면 ‘언약(약정) 파기’가 포함되죠.

그런데 아까 그 언약 파기부분을 보면서 약정 파기가 되면서 무엇까지 파기하느냐 하면 날, 밤과 낮이 교체되는 것도 파기되고 자연에 있는 모든 질서도 전부다 파기된다 했죠. 33장에 나오는 말씀. 그리고 다윗 언약도 전부다 파기되어버리고. 그렇게 될 때 반드시 성도는 이 사망의 길을 거쳐서 생명의 길로, 약정 파기를 거쳐서 생명의 길 속에 있음을 깨닫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로마서 6장에서 죄에 대해서 죽었다고 이야기할 때 ‘너 죄가 뭐냐?’ 하면 이 죄가 선악체계에서 나온 죄 같으면 아직 죄를 모르는 거예요. 하나님의 죽음 사건, 피 사건, 저는 그걸 어느 강의에서 ‘유혈사태’라 했는데 하나님을 죽게 한 그것이 바로 죄가 되는 거예요.

그 점을 이제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죽는 것이 죄가 된다는 것은 아까 제가 첫째 시간에 이야기한 것처럼 하나님이 스스로 돌판을 깨게 하시고 그다음 언약궤 상자 위에 피를 냈죠. 그래서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모세가 율법서를 언급하고 율법서에 뭐를 발라요? 율법서를 그냥 언급하면 안돼요. 그럼 인간이 그 율법서를 지키려하기 때문에 피를 발라버리고 이쪽에 양푼 반에 있는 피를 백성들에게 뿌린다 했죠, 주일 낮 설교에서. 그러면 그 백성들과 율법 사이에 연결고리는 뭐밖에 없다고 했습니까? 오직 피로만 연결되어 있어요. 피 외에는 다른 걸로 연결되지 않아요.

그 피는 흠 없는 희생물이 흘렸던 피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흠 없느냐? 한번 적어볼게요. ‘흠 없는 것은 이 땅에서 이 세상에서 죽음으로 끝나고’ 흠 없는 것이 죽음으로 끝난다는 말은 ‘흠 있는 것들은 이 흠 없는 것을 죽이는 것으로 자기의 본색을 다 드러내고.’

제가 두 번째 강의 좀 조심스럽습니다. 너무 어려운 게 준비되어 있어가지고. 하여튼 조심스럽지만 이것부터 이렇게 이해해주시기바랍니다. 그러면 어려운 것이지만 직접 들어가 봅시다. 예레미야 50장 4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그와 함께 유다 자손이 돌아오되 그들이 울며 그 길을 행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이렇게 되어 있죠. 5절에,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어버리지 아니할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자 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단 말이에요.

‘이거 뭐 어려울 게 있어요? 쉬운데.’ 하는데 이 점이 어려워요. 여기는 약속의 땅이고 다른 쪽은 바벨론 땅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땅에 포로 잡혀갔다가 다시 돌아와요, 예레미야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떠나면서 다시 돌아오는 거잖아요. 다시 돌아오는 것.

그러면 핫도그를 봅시다. 핫도그 안에 뭐가 들어있습니까? 소시지가 들어있죠. 소시지 없는 핫도그는 핫도그가 아닙니다. 핫도그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서 여기 주변에 관련되어 있는 모든 이방나라의 운명이 결정돼요.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든 이방나라. 그 이방나라들이 50장, 51장, 52장까지 아주 작살이 납니다, 거기는 바벨론이.

그리고 그 앞에 49장에 보면 엘람,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의 유목민족이고 게달과 하솔, 지금의 시리아 쪽이고요. 49장에 나오는 암몬은 여러분들 아시죠, 지금의 요르단입니다. 모압도 요르단. 다메섹, 지금의 시리아. 이런 주변 국가들... 47장에 보면 블레셋도 나오고 해요. 모압, 애굽, 이집트 이런 나라들, 주변에 걸쳐있는 이 모든 나라들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바벨론에 포로 잡혀서 처참하게 망가지고 다시 돌아오면서 주변에 걸쳐있는 나라들의 운명이 결정되고 영향이 다 있는 겁니다. 운명이 결정되고 영향이 다 있는 거예요.

만약에 삼손 힘이 세다. 그래서 삼손을 붙들기 위해 한 장정 100명이 삼손을 꽉 붙들었다면 이것은 삼손은 이렇게 작은데 주변에 덕지덕지 양념들이 붙은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그런데 삼손이 으랏차차- 하고 이렇게 팔을 쭉 펴면 그들이 다 나가떨어지죠. 꼭 이런 형국이에요.

그러니 이 세상에 중심이 있다. 핵심이 있다는 거예요. 핫도그에 소시지가 핵인 것처럼. 핵심이 있고 그 핵심이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이 옛 언약에서 어떻게 옛 언약의 약정이 파기되고 새 언약이 이루어지는가, 그 경로가 인류사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요. 주변에 있는 모든 이방민족들은 거기에 따라서 전부다 작살나고 다 날라가고 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아까 첫째 시간에 했던 물음을 다시 한번 적어볼게요. 1번-주여,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시옵소서, 이러한 관심사와 2번-내가 세상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이 첫째 질문, 주여 내게 필요한 것을 주옵소서, 2번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됩니까? 지금 관심사가 1번은 안쪽으로 응축이 되죠. 오므려들죠. 내 인생에 하나님은 어떤 도움을 주실 겁니까? 오그라드는 반면에 2번은 세상을 향하여 바깥을 향하여 나가죠.

첫 번째가 약정이 파기되기 전에 이스라엘이 하는 모습이라면 나중에 새 언약에 속한 이스라엘은 세상을 설명하는 핵심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 새 언약 속의 이스라엘을 뭐라고 합니까? 에베소서 1장에서. 새 언약, 예수님의 피죠, 새 언약의 이스라엘을 에베소서에서 두 자로 뭐라 하죠? 이걸 가지고 에베소서에서는 ‘교회’라고 하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도가 되겠죠.

이걸 달리 한번 표현할게요, 지금 이 이야기를. 자꾸 이렇게 대조적으로 문장을 쓰는 이유는 대조적인 것을 통해야 이해가 되기 때문에 그래요. 어떤 사람이 만약에 암에 걸렸다. 췌장암에 걸렸는데 췌장암 4기. 췌장암 4기가 살 확률은 0.8%. 길어봐야 6개월 산다. 친구 세 명이 있는데 한 친구가 췌장암 4기라 곧 죽게 되어가지고 그 친구는 암 치료 안 받는다 하고 다른 친구는 너 그러지 말고 0.8%라도 남아 있으니까 치료 받으라는 거예요. 서른 아홉 살 먹은 친구 세 명이 같이 그런 이야기해요. <서른, 아홉>이라는 드라마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췌장암 걸려서 6개월 남았거든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6개월 뒤에 죽는다, 이게 아까 1번 차원이에요. 그런데 첫째 시간에 여러분 아시다시피 이미 성도는 죽었잖아요. 죽었죠. 이미 죽었고 주께서 계속 살려주잖아요.

그러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6개월 뒤에 나는 죽는다’가 아니라 ‘죽는 날 앞에 6개월 남았다’. 억지 아닙니다. 왜 6개월이나 남아있어, 오늘 지금 안 죽이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상하네. 왜 6개월이나 남았지? 1번은 아휴, 6개월 뒤면 나 정말 죽는구나,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이미 본인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 안 해요.

아까 로마서 6장 2절에 보면 우리가 죽는 이유는 우리가 모르는 죄 때문에 죽어요. 산 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이유는 모세가 돌판을, 십계명을 안 가져왔으면 그게 우상숭배가 안 되는 거예요, 그게.

인간은 뭣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요. 아는 게 뭐가 있어요? 그냥 바둑만 두지. 아무것도 몰라요. 바둑 두고 돈 땄다, 이것뿐이에요. 아무것도 몰라요. 모르는 인간끼리 서로 얼굴 맞대고 만나서 뭐 연세 많은데 심심하니 같이 있을까요? 둘 다 몰라. 어디로 흘러가는지 몰라요. 그래, 내 나이 한 20년 남은 것 같은데... 20년 남은 게 아니고 언제 죽을지 몰라요.

어제는 어제부로 끝나야 되는데 오늘도 왜 살아있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어제부로 끝나도 괜찮은데...... 그 이유는 죄를 더 알기 위해서 더 살게 하시는 거예요, 죄를 더 알기 위해서. 사람이 죄를 더 알아야 내가 끄집어내는 말보다 나를 죄인 되게 하신 주님의 말이 흘러나오니까 하나님의 말이 흘러나오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1번, 2번 다른 문장 또 대겠습니다. 아까는 1번이 틀렸고 2번이 맞죠? 이번엔 약간 어렵게 하겠어요. 1번은 맞고 2번은 틀리게...... 맞는 이야기부터 하겠어요. 1번-주님은 성도보고 이야기합니다. 너 제발 좀 죽어라. 이유가 뭐냐? 나만 살게. 주님이 현재 살아계시잖아요. 주님이 좀 살게 너는 너를 좀 죽여줘. 2번-인간은, 좀 살려주면 안 됩니까? 이렇게 돼요. Please~ 제발 나를 좀 살려주면 안 되겠습니까?

대구강의에서 했죠. 인간이 아무리 신앙생활 하고 교회 50년, 60년 다녀도 인간 마음속에 늘 자리잡고 있는 것은 바로 이거라고요. 좀 삽시다, 좀! 하나님 잘 믿었잖아요. 복음 알아줬잖아요. 좀 살려주시면 안 됩니까? 그만큼 하나님 앞에 다 갖다 바치고 충성하고 성경공부고 뭐고 다 참석하고 했는데... 그 뒤에 나오는 게, 저를 좀 살려주세요. 나를 나답게, 내가 나한테 실망스럽지 않게... 아, 나 요새 좀 잘 나가지? 좀 이렇게 내가 봐도 사는 것처럼 사는 그러한 보람을 주시면서 살려주면 안 됩니까? 이런 식이에요.

바로 1번과 2번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거예요. 전쟁이 일어나야 거기서 의미가 구축이 되는 겁니다.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예레미야 35장 17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나의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그다음에 무슨 단어죠?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재앙을 내리죠. 이 말은 옛날에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올 때 재앙을 받은 쪽이 이스라엘이었어요, 애굽이었어요? 애굽이 받았죠.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나올 때 재앙은 애굽에 떨어졌습니다. 애굽 나라 있고 홍해 건너 광야이고 광야 지나 약속의 땅으로 감에 있어서 재앙은 애굽에 떨어졌어요, 재앙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붙잡고 있다고 애굽에 재앙이 떨어졌거든요.

그런데 예레미야 35장 17절에서 이제는 이스라엘이 다시 노예 생활, 이방나라한테 포로 잡혀 가면서... 그럼 애굽으로 왜 안 갔느냐? 애굽은 그 당시에 갈그미스 전쟁에서 바벨론에 패배해서 바벨론이 애굽까지 점령했어요. 그러니까 애굽 전체가 바벨론 나라에요, 그 당시에는. 포로 잡혀가면서 어디에 재앙이 떨어집니까? 예레미야 35장 17절에. 이스라엘에 재앙이 떨어지죠. 그럼 이스라엘이 옛날의 애굽 나라와 같은 입장에 놓여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제 답변해보세요. 애굽 나라에서 누가 힘들었고 누가 괴로웠습니까? 남자 아기는 다 죽여 버려라. 그 처벌대상이 누구였죠? 히브리인들이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언약을 받은 그 히브리인들이 언약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바로 왕한테 설움 받고 학대를 받았잖아요. 그렇죠?

그렇다면 이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가면서 이스라엘에게 재앙이 떨어졌다는 말은 이 안에 누가 품어져있다는 말입니까? 누가 품어져있어요? 바로 진짜 새로운 언약에 준해서 살아야 될 백성이, 진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로 인하여 애굽 나라한테 학대받듯이 학대 받고 있었던 겁니다.

학대하는 그쪽은 아까 봤듯이 하나님의 회의에 참석도 안한 거짓 선지자들이 그런 짓한 거예요, 거짓 선지자들이. 그들이 말하기를 재앙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는 수요일에 예레미야를 쭉 보면서 설교한 부분에 보면 나옵니다.

그것 아셨으니까 그렇다면 또 묻겠습니다. 이스라엘을 포로 잡아갈 때 재앙이 이스라엘에 떨어졌죠. 자, 그다음에 바벨론에서 다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올 때 재앙은 어디 떨어지겠습니까? 바벨론이죠. 그게 바로 예레미야 34장입니다. 34장 21-22절 보겠습니다. “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을 그 원수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 성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취하여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 성읍들로 황무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그리고 바벨론에 대한 처벌은 예레미야 50장, 51장 보게 되면 바벨론이 아주 처참하게 망가집니다. 그중에서 예레미야 51장 7-8절 보겠어요.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하는 금잔이라” 비틀거리게 만든다.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바벨론이 졸지에 넘어져 파멸되니 이로 인하여 울라 그 창상을 인하여 유향을 구하라 혹 나으리로다” 이렇게 해서 바벨론은 낫지 아니해요. 9절에 보면 바벨론은 다시 낫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을 치료하려 하여도 낫지 아니한즉 버리고 각기 고토로 돌아가자 그 화가 하늘에 미쳤고 궁창에 달하였음이로다”)

그 기간에 대해 예레미야 25장 12절에 보게 되면 이건 중요한 거거든요. 누가 한번 읽어볼까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참 신기하죠.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리라”

이 칠십년이 무슨 기간이냐 하면 바벨론 나라가 망하는 기간이에요. 망하는 기간인데 여러분들이 딱 생각할 때 칠십년이 무슨 기간이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갔다가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그 기간이 칠십년이죠. 동일하게 칠십년이라고요. 한쪽은 칠십년 만에 돌아오고 한쪽은 이스라엘 건드렸다고 바벨론이 칠십년 후에 바사 나라, 페르시아 나라에 망합니다. 그 칠십년이 뭐냐 하면 BC 609-539년. BC609년에 시작했던 바벨론이 BC539년에 망해요. 딱 칠십년 만에 망해버려요. 이때 바사 나라, 현재 페르시아 나라에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쳐부숴서 그 나라를 아예 없애버립니다. 없어져요.

그러니까 아까 제 말은 뭐냐 하면 이방 나라의 운명이 어디에 종속되어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이스라엘의 경로와 관련되어 있어요. 이것은 신약 시대에 인류사, 신약 시대 모든 이방나라, 현재 나라의 운명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일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떠나가시는 그 코스에 맞춰서 그 리듬에 맞춰서 그들의 운명은 끝장나는 거예요.

그리고 아까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오늘날 이 세상은 주께서 이 소자한테 한 것이 곧 나한테 한 것이다. 주님께서 성령의 덩어리, 성령의 두루마리로 쌌던 성도를 이 땅에 보냄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운명이 그 성도에 대한 태도에 따라서 결정 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그런 게 있어요. 선지자한테 한 것은 선지자의 상을 받고.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41절,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그다음 한번 보세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그다음 42절,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이 말씀 들으니까 어떤 생각합니까? 우리는 직접 예수님이 부활한 것을 눈으로 보고 믿고 싶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믿고 싶어요. 꿈에 막 하나님 나타나가지고 ‘나 여기 있다다다다다~’ 바이브레이션 막 넣어가지고 이러면 ‘하나님, 내가 기다리겠어요.’ 이러겠는데 그게 아니고 이 소자, 제자, 의인, 선지자 그게 너희들이 천국 가는 여행사라는 거예요. 여행사 직원이라는 겁니다.

본점은 보이지 않고 각 대리점만 있는 거예요, 휴대폰 대리점만. 휴대폰 사는데 삼성 전자회사까지 찾아갈 필요 없어요. 지역에 있는 대리점 있잖아요, 대리점. 그런데 대리점 자체가 뭐 대리점, 예수장로회 교회 이런 게 아니고 그 대리점 안에 주님이 들어있거든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하신 사건을 성령을 통해서 주게 되면 그 성령이 움직임에 따라서 각 하나님의 성도는 같이 움직이죠.

아까 그랬잖아요. 성도가 암에 걸려도 6개월밖에 못 산다는 말을 성도는 뭐로 바꿉니까? ‘너무 지루하지 않습니까? 일찍 죽이지 뭐하려고 6개월이나 살아있습니까?’ ‘아직 네가 네 죄를 모르는구나.’ 이렇게 해서 6개월 동안 있는데... 죄를 끝까지 다 알아야 되니까. 나는 나밖에 모른다는 그 죄 있잖아요. 어떤 질문을 해도 내 중심으로 하는 그 죄. 그걸 혹독하게 다 경험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성도 안에 두 가지 지역이 있어요. 여기는 약속의 땅, 다른 한쪽은 바벨론이 있어서 성도 안에 주님께서 성령께서 예레미야의 말씀을 약속의 땅에서부터 바벨론으로 옮기고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고 또 옮기고 돌아오고 이걸 매일같이 매일 살아있는 삶을 통해서 아침마다 저녁마다 늘 반복시키는 겁니다. 반복하게 되면 성도는 잘했나 못했나가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볼까요? 사망의 길이 있고 생명의 길이 있는데 성도에게 사망의 길은 선악체계라 했죠, 선악과를 따먹었으니까. 생명의 길은 거저 사하여 주시고 더 놀라운 사실은 죄를 기억치 않는다. 이 기억치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요.

‘내가 주님을 배신했습니다.’ ‘언제 했는데?’ ‘하나님, 치매 걸렸어요?’ ‘치매보다 더 한 거 걸렸다. 나는 치매보다 더하지.’ 왜 치매보다 더 하게 기억치 않느냐 하면 ‘대신’의 작업, 업무, 업적, 성과를 드러내기 위해서 기억을 못하는 거예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 거예요. 대신했음만 드러내요. 네 죄에 대해서 내가 대신 가져갔다는 것만 기억하기 위해서 네 죄에 대해서 다그치지를 않아요.

너 왜 그렇게 했어? 왜 그렇게 했냔 말이야? 멱살을 쥐고 흔들면서 막 가슴 치고요. 이 자식아, 왜 그런 짓 했어? 내가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더냐. 그런 짓 하지 말라고...내 이럴 줄 알았어, 이렇게 하잖아요. 드라마에 보면 그런 거 많이 나옵니다. 아들은 키가 커서 1m85cm이고 엄마는 쪼만해서 나이가 칠십이 다 되가지고 1m60cm도 안 되는데 자식이 구치소 가 있으니까 엄마가 면회 가서 가슴팍 치면서... 엄마만 가슴팍 치지, 아들은 덩치 커가지고 끄떡도 없는데... 네가 왜 그랬어? 이러는 것처럼.

그런 것은 어느 쪽입니까? 그런 것은 생명 쪽이 아니고 어느 쪽이에요? 선악체계는요, 자신의 지은 죄를 자기가 잊질 못해요. 선악체계에서 자기의 죄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잊지 않음이 선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이스라엘 국가의 모토 같은 거예요. 나치를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이것은 선악체계입니다. 선악체계에요. 생명체계는 기억치 아니해요. 대신 가져갔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성도 안에서 약속의 땅과 바벨론을 오가는 것을 반복하면서 나의 착함과 의로움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죄 지었는데 용서받았어, 이게 아니라 언약과 언약의 이동이에요. 옛날의 계약, 약정은 파기되었다. 이것은 우리보고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그냥 일방적으로 파기시킨 거예요.

옛날 약정인 율법은 우리 안에 안 들어왔습니다. 우리 바깥에서 우리를 지적질 했죠. 똑바로 해. 못하면 너 저주받아.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재앙이 떨어졌잖아요, 옛날 언약대로. 그리고 난 뒤에 다시 돌아올 때는 옛날 언약 말고 아예 새 언약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거예요, 우리 안에.

자, 안에 어떻게 들어오는가? 이제부터 그걸 설명해야 되겠죠. 안에 ‘그냥 들어옵니다.’ ‘들어왔죠? 땡큐.’ 뭐 이래가지고 끝날 문제가 아니고요. 갈라디아서 6장 8절 한번 봅시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여러분들이 성령의 두루마리처럼 성령으로 뒤엉켜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선악체제, ‘나는 이제 말씀대로 바르게 살아서 주께 영광을 돌려야지.’ 이런 선악체계로 완전 중무장되어있는 사람인지를 이 6장 8절만 봐도 대번 티가 나게 되어있어요.

성령으로 두루마리 된 사람은 6장 8절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면 새롭게 구성된 약정, 새 언약을 생각해요. 새 언약을 생각한다면 이 6장 8절의 말씀은 누가 하는 거예요? 이 6장 8절의 말씀이 우리 밖에 있습니까, 우리 안에 들어왔습니까? 이미 성령이 지은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왔죠. 우리 안에 들어올 때 들어온 이유가 뭐냐 하면 이미 우리는 죽은 자가 되는 거예요. 죽은 자. 선악체계를 아는 그것이 바로 죄가 되며 그것은 죽어 마땅함이 되는 거예요.

그럼 6장 8절이 들어오면 “영생을 거두리라”에 우리가 참여하게 되는 거예요. 영생을 거두는 것은 우리 일입니까, 주의 일입니까, 성령 받은 사람한테는? 이게 주의 일이 되죠. 쉽게 말해서 남의 일에 우리가 끼어든 게 돼요. 성령 거두는 일에. 그래서 어떤 것도 성령과 무관한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성령 받은 사람들은 다 아는 거예요, 성령 받은 사람은.

차 타고 시속 80으로 가야될 길을 100으로 부아앙~ 가고 있는데 저기서 경찰이 와서 ‘잠시 멈추세요. 속도위반 했습니다. 운전면허증 봅시다.’ 이거 무슨 일이에요? 성령의 일이에요. 부아앙~도 성령의 일이었고. 안 보이거든. 경찰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해서 부아앙~ 하는데 뒤에서 삐용삐용해서 스톱해서 8만원 딱. 이거 누구 일입니까? 성령의 일이죠. 이게 성령의 일이에요.

주께서 배치를 했으니까. 성령께서 ‘경찰관 너 오늘 여기 서. 250m 지점에 서 있어. 성도가 운전하면서 부아앙~하고 좋다고 올 거야. 잡아.’ 모든 것이...... 왜 그래야 됩니까? 그것 때문에 너 살아있는 거야. 어제부로 죽어야 되는데 네가 안 죽고 오늘 산 이유가 오늘 속도위반해서 걸리게 되어있어서 그런 거야. 전부다 배치가 되어있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성령의 일은 뒤돌아보면서 알 수 있어요. 소급해서 이해하는 거예요. 소급해서.

그런데 선악체제에 있는 사람은 이 말씀을 보고 뭐라고 합니까?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하는 순간 성령 받지 않은 사람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신부될까? 수도원, 기도원에 가서 기도할까? 이제는 필리핀 선교를 위해서 일할까? 교회에 충성 봉사할까?

이 사람은 뭘 구분합니까? 육의 일과 성령의 일을 자기가 임의로 구분하죠. 자기가 임의로 구분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첫째 시간, 둘째 시간에 공부한 것은 뭐냐. 구분을 누가 할 수 있어요? 이게 육인지 성령인지 구분을 어떻게 하느냐? 새로운 계약이냐, 아니면 옛날 계약이냐에 따라서 구분하는 거예요.

새 계약은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왔다니까요. 들어와서 나쁜 의미는 아니지만 우리 안에 호작질을 해버려요. 우리의 원대로 우리 뜻대로 안 되게 만들어요, 뭐든지. 그럼 ‘내가 뜻대로 안 하는 것도 성령의 일입니까?’ 하지 마세요. 우리는 성령의 일인 것을 지나고 난 뒤에 돌아보면서 알 수 있어요. 일이 지나고 난 뒤에 돌아보면서.

죄에 대해서 죽은 자라 하는 것은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고 돌아보면서 죄 아닌 것이 없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식으로 죄에 대해서 죽은 자라고 되어 있어요. 이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화평교회 제일 마지막 글에 나와 있어요. 화평교회 안 지워야 되는 이유를 아시겠죠? 오늘 화평교회 한번 찾아보세요. 마지막 글이에요. 마지막 글에 로마서 6장 언급하면서 되어있습니다. 오용익 목사님 글이에요.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은 미리 앞에서 아는 것이 아니고 소급해서 안다니까요. 그게 뭐냐? 세 자로 ‘막 산다’가 되는 거예요, 막 산다. 막 살고 있다, 가 아니고 막 살아온 게 돼요. 모든 게 막 살아온 거예요.

진도 나가봅시다. 히브리서 한번 봅시다. 어떻게 말씀이 우리 안까지 들어올 수 있나 그 이야기했죠. 히브리서 10장 한번 봅시다. 이것은 여러 번 들어서 아시는 분이 많을 거예요. 히브리서 10장 펴놓으시고요. 이 설명을 다시 들어보세요. 여기 애굽이 있고 다른 편에 바벨론이 있는데 그 사이에 있는 약속의 땅 이스라엘은 핫도그의 소시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졌습니다. 그 당시에 언약으로 율법이 주어졌죠. 율법은 저주와 복, 이렇게 두 개가 있어요. 율법대로 못 지키면 저주, 지키면 복을 받는 거예요.

결국은 이 이스라엘이 애초부터 율법대로 지킬 수 없는 자라는 것을 들통내잖아요, 율법이. 로마서 7장처럼 율법을 주신 것은 죄를 더욱더 죄 되게 하고 저주 아래 있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지시에 의해서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이스라엘이 저주받아서 바벨론 갔죠.

그러면 율법은 그 자체로서 완성을 향하여 진척을 보이는 거예요. 완성을 향하여. 율법대로 해서 벌 받았으니까. 저주 받았으니까. 비록 이스라엘은 저주 받았지만 ‘율법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가 증명되었죠. 그 율법이 바벨론으로 갔다가 약속의 땅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거예요. 율법이 바벨론으로 가게 되면 바벨론 쪽이 재앙을 받아요. 바벨론 쪽이 재앙을 받는다고요. 그리고 다시 돌아오죠. 70년 만에 다시 돌아온다 했죠.

히브리서 10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얘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그들과 함께 하셔서 가고 옴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저주를 받았죠.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받을 재앙을 대신 다 받은 것으로 여겨요. 모든 재앙을 다 받은 걸로 여깁니다. 그렇다면 옛 언약에서 새 언약, 파기된 약정에서 새로운 약정으로 가면서 여기서 무엇이 형성되어야 하느냐 하면 죄에 대한 처벌이 다 완료된 바탕 위에 새 언약이 세워진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 수가 있죠,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재앙을 받아서 바벨론에 갔잖아요. 그러면 약속의 땅의 입장에서 여기 약속의 백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이 무대는 비어있어요, 지금. 주인공이고 조연이고 텅텅 비어있어요. 빈 무대입니다. 이걸 가지고 70년 동안 약속의 땅이 안식한다고 해요. 쉰다. 나가라, 나가라. 다 나가. 다 나가. 꼴 보기 싫어. 다 나가. 무대장치는 그대로 있는데 여기를 채울 인간들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들이 70년 만에 다시 돌아오잖아요. 다시 돌아올 때 전에 나갔던 이유가 뭐냐. 율법대로 못 지켜서 나갔잖아요. 그럼 다시 돌아왔다면 율법대로 지킬 수 있는 민족이 들어와야 이 무대장치의 취지가 살아난다 이 말이죠, 무대장치가. 하나님은 언약 중심이니까 언약에 합당한...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거룩이고 이 나왔던 인간은 거룩하지 못하고. 이 나왔던 인간은 죄 지어서 나갔으니까 그다음에 올 때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죄가 없는 인간으로 되돌아와야 되거든요. 그러면 여기에 들어올 때 새 언약, 새로운 언약이 있는데 새 언약은 죄를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죄를 다시는 기억치 아니하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은 ‘애초부터 처음부터 그럼 기억치 아니해야지. 왜 나갈 때는 기억해놓고 돌아올 때는 기억치 아니하냐?’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보게 되면 율법대로 반드시 재앙을 받아야 돼요. 처벌을 받아야 돼요. 그 처벌에 대해 돌아오는 새 언약 안에 네 모든 처벌은 다 받았다는 내용이 함유된 채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야 비로소 그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복을 받는 복된 백성이 되는 겁니다.

돌아올 때 약정이 깨어졌기 때문에 백성이 없으므로 모두 죽은 자가 돼요, 약속의 땅이 다 비어있기 때문에. 따라서 다시 이 무대를 채우려면 죽은 자는 못 들어와요. 죽은 자는 계약이 끝났잖아요. 그러면 새 언약의 주인공으로서 이 빈 무대를 채워야 될 분이 있어야 된다 이 말이죠.

아까 처음에 봤던 예레미야 봅시다. 예레미야 31장 22절, “패역한 딸아” 여성이죠, 남성이 아니고.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그러면 남자가 창조되었습니까, 여자가 창조되었습니까? 아니면 남자, 여자 다 창조되는 거예요? 어느 쪽입니까? 남자, 여자 다 창조되어야죠. 배우 새로 뽑는 거예요, 이 무대 배우를 새로 뽑는 거죠. 이 세상의 모든 배우들은 여자가 아니고 남자에요. 남자에 속한다고요. 여자라 하는 것은 남자 없이 등장한 여자에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거라 이 말이죠. 여자의 자손이에요.

이제 히브리서 봅시다. 그 정도 하시고 히브리서 10장에서 17절부터 먼저 보겠습니다.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치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기억하지 않는다고 되어있죠. 자, 그렇게 하려면 히브리서 10장 5-7절에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했죠.

여러분들 이 대목에서 최민정이라는 사람이 이번에 메달 땄죠. 그러면 우리가 스케이트 그만큼 잘 탑니까? 못 타죠. 지금 이 히브리서 10장을 보면서 첫째 시간부터 내가 그런 오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데도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뭐냐 하면 나는 스케이트를 못 타는데 최민정이라는 그 젊은 여자는 잘 타니까 나는 응원해주고 박수 쳐주고 해서 최민정이 메달 따면 최민정이랑 우리는 한 패니까 한 나라니까 우리의 메달로 쳐주면 좋겠다. 우리는 구경만 하겠다.

그렇게 생각해보세요. 히브리서 10장 보면 내가 너희들에게 번제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했죠. 그럼 우리는 갑자기 최민정을 리그에 보내고 우리는 어디로 빠집니까? 관중석에 올라가죠. 그런 일은 없다 이 말입니다. ‘나는 못하니까 나는 율법을 못 지키는 죄인이니까 예수님이든 누가 최민정 같이 스케이트 잘 타는 사람이 와서 금메달 따면 좋겠다. 다섯 명 막 추월하고 중국 추월해서 중국은 다 엎어져버리고 그 메달 같이 받은 걸로 쳐주면 좋겠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히브리서 10장 5절, 6절, 7절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오직 한 사람이 그 계약을 지키는 거예요. 그러면 다른 사람은 관중석에서 최민정, 최민정! 요새 같으면 예수님! 예수님! 이런 사람보고, 너 내려와. 너 내려와. 너는 중국 선수해!

우리로 하여금 최민정의 원수가 되게 하는 거예요, 로마서 5장에 의해서. 우리가 원수 되게 하는 거예요. 원수 돼서 최민정이 스케이트 탈 때 우리는 스케이트 타면서 최민정 다리 걸리게 하는 그 역할을 해야 되는 거예요. 천하 죄인 중의 괴수죠. 우리가 그런 입장에 있습니다. 우리는 관중석에서 박수만 쳐주면 되는 게 아니에요, 지금!

왜냐하면 그 제물 있잖아요. 번제와 속죄제할 때 제물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고 제물을 죽이는 자도 있어야 되거든요. 제물이 제물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죄, 일상이 죄가 되는 우리가 죄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보시고 11절 보면 이해돼요.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인간으로 죄 없애는 것은 끝났습니다. 못합니다. 없애지 못하지만 16절부터 보면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그러니까 우리는 졸지에 뭐가 됩니까? 예수님을 미워하는 자로 살해한 자로 우리는 이미 죄인으로서 있죠. 이 죄인의 자리에 주께서 나 때문에 죽은, 죄인 때문에 죽은 이 피를 우리 안에 집어넣는 거예요.

그러면 18절에 “이것을 사하였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왜? 이미 종결, 완료가 되었어요. 모든 죄 문제에 대해서 죄 사함에 대해서는 더 이상 보탤 일이 없어요.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떤 의례나 의식이나 남아있지를 않아요.

그래서 22절 봅시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리스도 안에서 피 뿌림을 받은 자에게는 그 피가 우리를 주 앞으로 깨끗하게 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여기서 이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이 빈 무대 있죠. 갔죠? 돌아온 사람 몇 명?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그렇다면 이 70년은 예수님 죽으심부터 마지막 재림 때까지 모든 기간이 70년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에서 이 70년을 뭐로 바꿉니까? 70이레로 바꾸죠. 거기에 대한 내용이 바로 지금 우리가 하는 이 책 내용이에요.

70년이 70이레로 바뀌는 거예요. 70년x7 할 때 이 7은 인간에게 없는 시간이에요. 주님의 완료가 70년을 완료시켰는데 그게 70이레에요. 그 70이레의 마감은 예수님의 십자가 오심. 예수님 안에 시간이에요, 예수님 안의 시간. 그래서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는데 이 70이레 동안에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너, 너, 너, 너 이리와. 뽑아서 선택해가지고 예수 안 성령 안으로 성령이 찾아오시고 예수 안으로 십자가 안으로 집어넣어버려요. 이것이 바로 말씀이 스스로 말씀되게 하는, 이 무대를 채우는, 하나님 백성을 채우고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완성된 새로운 언약이 들어있도록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갈라디아서 6장 8절, 그런 의미에서 다시 읽고 마치겠습니다. 다 같이 읽어보고 마치겠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자기의 육체가 있으면 안돼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영생은 이렇게 거두어지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육신은 이미 죽은 육신인 것을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거둘 게 없음을 또한 감사합니다. 거둔다면 오직 생명만 거두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광주강의20220225b 예레미야33장 20절(약정파기)-이 근호 목사.hwp (80.0K), Dow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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