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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7 06:52:34 조회 : 103         
341강-YouTube강의(빛과 어두움 로마서 13:12)20210216-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하림(IP:124.254.211.180)
341강-YouTube강의(빛과 어두움 로마서 13:12)20210216-이 근호 목사


제341강, 제목은 ‘빛과 어두움’. 성경에서 빛과 어두움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개인적으로 빛이라 어두움이라 이야기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 그것이 전제되어야 됩니다. 일괄적이에요.

다섯 사람이 형광등 켜고 있는데 다섯 사람이 전부다 얼굴이 볼그스름하고 다 이쁘다 이 말이죠. 그런데 갑자기 정전되었어요. 그러면 그 이쁜 사람 어디로 갔습니까? 안 보이죠? 왜냐하면 일괄적으로 정전되었으니까. 일방적으로 어두움이니까. 그러면 정전되고 난 뒤에 어떤 사람이 저 안에 어두운 사람 다섯 명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지, 얼굴 통통한 사람 누구 있고 이렇게 이야기 안하죠.

이렇게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두움이라고 일괄적으로 하는 것은 구약 때부터 줄곧 이어주신 하나님의 언약에 입각한 언약 완성상태가 나타날 때 도출되는 결과는 두 가지밖에 없어요. 빛이냐 어두움이냐. 구약 때부터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그렇게 평가가 돼요. 언약 평가는 개성을 찾아주는 게 아니고 이 세상에 대해서 일괄적으로 이 세상이 어둡다는 것을 고발하는 식입니다.

그 언약 가운데 첫 번째 언약이 노아 언약인데 창세기 8장에 나오죠. 창세기 8장에서 노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는데 8장 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특정 인간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죠? 모든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그러니까 어릴 때는 성선설, 다 착한 마음을 가졌는데 그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독한 환경 또는 독한 마음씨 때문에 어떤 사람은 선하고 어떤 사람은 악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언약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해요.

왜냐하면 선악을 아는 지식 자체가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그래요. 저주의 효력. 선악을 알면 그 현장이 필히 죽음의 현장이 돼요. 죽음이 나온다고요. 죽음이 나올 때는 이유가 있어야 되겠죠. 악하기 때문에 죽음이 나오죠.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기 위해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악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이야기하시는 이유가, 그래서 내가 인간사는 세상에 물로 확 부어버렸다. 노아가 있던 땅에도 홍수가 왔겠어요, 안 왔겠어요? 역시 왔죠. 노아는 식겁하고 방주에 들어가 피했을 뿐이지, 노아가 가꾼 그 텃밭, 노아가 가축했던 닭, 소 키우던 곳에도 사정없이 여지없이 봐주는 것 없이 그냥 홍수물이 들이닥쳤습니다. 노아가 방주 안탔으면 큰일날 뻔 했죠.

왜냐하면 노아도 악하기 때문에. 노아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에요. 안 악한 사람이 아니고 악한데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그 은혜의 은혜다움을 도드라지게 그것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노아를 하나님이 들어 하나의 재료로 이용하신 거예요.

방주 없어도 노아는 버틸 수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방주 없어도 노아는 하나님께서 손 못 댈 정도로 의로와. 이런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노아가 의롭다는 것은 은혜 안에서, 언약 안에서 의로운 거예요.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희생제물의 효과가 노아의 천성과 본성을, 악함을 극복했기 때문에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것을 제물의 혜택, 은혜라 하는 거예요. 은혜는 그냥 봐주기가 아니고 어떤 것을 근거해서 봐주죠. 희생 제물에 근거해서. 그러면 목사가 되어서 교인들에게 무엇만 전하면 되겠어요? 그 희생의 은혜, 혜택. 여러분들은 개성적으로 뭘 해도 그것은 악합니다. 언약을 증거할 수밖에 없어요.

이처럼 구약에서 언약이 주어진 현장도 일괄적으로 악하다 어두움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 주어진 언약이 완성이 되게 되면 더는 다른 언약은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할 때 예수님께서는 언약을 세울 때에 더 추가적으로 그 다음 언약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고 요한복음 6장에서 하셨고 마태복음 마지막 만찬에서는 “이 떡을 먹어라 그리고 이 잔을 마시라 너희를 위해서 흘리는 내 피니라 살이니라” 했거든요.

그래서 아버지와 내가 너희들과 함께 언약을 세우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언약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계속해서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되느냐면 예수님의 희생의 살과 피가 계속 살아있는 그 영역 안에서만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이 유지되겠죠.

그게 뭐냐 하면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빛이에요. 요한복음에도 나오지만 에베소서에도 나옵니다. 에베소서 5장 8절,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되어 있죠. 그냥 우리가 착해서 빛이라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영역을 제시하죠. 어디 안에서 빛이라고 했습니까? 주 안에서 빛이라 했죠. 주 안에서 빛이라. 그러면 빛이 빛 될 수밖에 없는 어떤 요소가 우리 안에 내장되어 있죠. 내장되어 있는 겁니다.

밤에 정전되거나 불 꺼도 불그스름하게 빛을 비추는 물질을 형광물질이라 하잖아요, 형광물질. 성도가 형광물질이라고 되어 있어요, 성경에 보면. 로마서 13장 12절에 보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밤이 깊다는 거예요. 과학적으로는 밤낮 바뀌는데 성경은 그런 식으로 보는 게 아니고 언약적으로 봤을 때 이 세상은 밤이 계속 깊어지는 거예요, 밤이 갈수록.

문명론에서나 과학론에서는 갈수록 인간 지능이 똑똑해지고 발전한다고 하잖아요. 진화한다고 하죠. 과학적으로 진화하지만 윤리 도덕적으로도 진화되어서 인간이 더욱더 성숙해졌다고 주장하거든요. 그러나 성경은 반대로 갈수록 더 밤이 깊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밤이 더 깊으면 깊을수록 형광물질이 더욱더 빛을 발하게 되죠. 아주 독특하게. 윤기가 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편지에서 누누이 편지받는 그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환란이 주어진 것에 대해서 슬퍼하지 말고 도리어 기뻐하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그 형광물질이 빛의 자녀가 값을 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어떤 공장이 있는데 직원이 세 명 있어요. 공장장, 사장님하고 직원이 세 명 있으니까 직원 셋 다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러나 어느 날 사장님 하는 말이 “내가 먼 타국에 갔다 올게.” 빠져버려요. 빠지고 자금을 세 사람에게 줍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돈을 각 직원에게 지급해서 나 없을 때 네가 한번 돈을 굴려보라고 주죠. 흔히 말해서 그것을 ‘달란트의 비유’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분류를 할 때 누가 빛에 해당되는지 누가 어두움에 있는지 주님이 살아있다 할 때는 주님한테 잘해주려고 서로서로 주님 앞에 아부하는 식으로 “주님 믿습니다” 한단 말이죠.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어요. 내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습니다. 할 때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주의 일 열심히 하는 줄 알았죠.

그러나 예수님께서 눈에 안 보이는 식으로 타국에 갔을 때 보이지 않는 주님이지만 전에 함께 있을 때와 동일하게 일한 사람, 그 사람은 자기를 쳐다보는 게 아니고 빛 되신 주님의 빛만 사모하는 사람이에요. 자기를 사모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지 자랑하려는 사람이 아니에요.

요령부리는 사람이 아니고 내가 발광체가 된 것은 주님 때문에 빛의 자녀가 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이 증거 되기 위해서 이 세상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어두운 짓밖에 할 수 없는 것. 그것도 주의 조치이니까 세상이 어둡다고 너무 탓하지 마시고 빛의 자녀로서 살면 되죠.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로마서 13장 12절에 그렇게 나와 있잖아요. 그러니까 세상은 네 갈 길로 가라.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빛만 증거하겠다. 이렇게 살면 되지 세상에 대해서 너무 비난하거나 섭섭해하거나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첨부파일 : 341강-YouTube강의(빛과 어두움 로마서 13장 12절)20210216-이 근호 목사.hwp (32.0K), Dow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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