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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7 18:58:49 조회 : 39         
강남-누가복음 13장 16절 (피의 실제성) 221018b-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115.23.177.240)
강남-누가복음 13장 16절 (피의 실제성) 221018b-이근호 목사



자, 첫째 시간 일단 요약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인류가 마지막으로 만나야 될 그 증거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 그건 아담의 후손이 마지막으로 만나야 될 거에요. 적그리스도가 예수님 당시에는 하나에요.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면 이게 다수입니다. 확 퍼져있어요. 적그리스도가. 왜냐하면 성도가 다수이기 때문에. 성도가 만나야 될 실제성, 아까 적그리스도 실제성 했지요.


복음에 대해서 다른 복음, 다른 성령, 다른 예수를 전하는 자들을 성도는 실제적으로 목격함으로서 바로 예수님과 똑같은 상황에서 주의 일이 한결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감지되지요. 그럴 때 사도 요한의 편지 같은 것에 보게 되면 요한일서 1장부터 5장 끝까지 보면 처음부터 1장부터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피’가 나와요.


누구든지 죄 없다 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로 해가지고 오직 피로 말미암아, 5장에도 “피와 물과 성령으로서” 주님께서 적그리스도가 아닌 이유, 예수님만이 피 흘린 자 만이 성령 주시는 자만이 물 흘린 자만이 진짜 메시아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요. 그만큼 요한일서에 보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등장하니까, 적그리스도가 단수가 아니고 복수죠.


이 말은 뭐냐? 각 시대마다 적그리스도 나왔다는 것은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남아있는 시간을 전부 다 하나로 모아서 묶어버리면 그게 종말이에요. 지난해도 종말이고 올해도 종말이고 종말, 종말, 종말 계속 종말이에요. 종말이라는 말은 적그리스도가 이미 나타났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이미 나타났고 세상을 끝장낸 거에요. 끝장냈기 때문에 그 나머지는 뭐냐? 끝장의 메아리죠. 끝장장장장~~~.


끝장냈다는 그걸 가지고 ‘십자가의 단회성’이라고 해요. 십자가로 끝난 거에요. 십자가. 그 십자가의 안의 시간성이 뭐냐 하면은 3에서 1로 가거든요. 3은 예수님의 시간 안에서 3은 어떤 시간이냐 하면은 세상과 하늘나라는 단절되었음이 확정됐음. 끝났다. 끊어진 거에요. 왜? 아무도 이 세상에서 주님께로 갈 수 없기 때문에.


3일 동안 십자가에서 누가 죽었습니까? 예수님이 죽었잖아요. 사도행전 20장 28절에 의하면 누가 죽었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죽었어요. 왜냐하면 거기에 보면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라고 되어 있으니까 하나님의 피에요. 스스로 하나님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죽었으니까 인간 쪽에서 하나님이 죽었으니까 하나님이 있어요? 없어요? 하나님이 없는 거에요.


그럼 있는 하나님, 그 당시의 여호와든 신이든 알라든 신은 뭡니까? 전부 다 이건 우상이 되는 겁니다. 전체 신을 우상 만들기 위해서 진짜 하나님은 죽어버린 거에요. 인간들이 극단적으로 안 나가니까 하나님 쪽에서 극단적으로 나와버린 겁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이야기해요. “내가 죽었다니까. 내가 누구냐?” “신”. “신이 죽었어. 죽었는데 뭘 신을 믿어. 인간아. 신이 죽었는데. 신이 죽어 없는데 뭘 믿어.”


죽은 신을 믿습니다. 죽은 신을 믿을려면 주님과 함께 성령 받아서 부활이 되어야 하나님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요. 이게 뭐냐? 3에서 새로운 1, 완성된 1이 나오는 거에요. 금년만, 금년만 참으세요. 그 금년이 하루가 천년이고 천년이 하루에요. 금년이. 끝났는데 생겨난 새로운 금년. 부활의 세계죠. 3이라는 부정성. 맞죠? 부정성 맞지요? 3년 동안 봤는데 열매 없다. 3이라는 부정성 속에서 뭐가 나온다? 부정성 속에서 긍정이 나오지요. 부정의 토대가 없으면 긍정이 안 나오죠.


그런데 그 부정성은 미리 내다보는 부정성은 부정성이 아닙니다. 실눈 뜨고 보는 거에요. 실눈 뜨고 봐가지고 이런 건 안돼요. 하나님이 죽었다는 말은 부활의 영의 입장에서는 성령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죽었다는 뜻이에요. 왜? agent니까 대행자니까. 주님이 죽었다는 말은 우리가 이미 죽었다는 뜻이거든요. 우리가 죽은 자가 다시 살려고 꿈틀대고 욕망한다는 그 자체가 이거는 부정성이에요. 이거는 하나님께서 열매라고 인정을 안 해줍니다.


열매는 100% 주님이 거저 건져주심이에요. 그것을 갈라디아서 5장에서는 그걸 무슨 열매라고 하느냐 하면은 그걸 가지고 성령의 열매라고 하는 거에요. ‘성령의 열매’. 성령의 열매 설명하면서 성령의 열매 어떻게 나오는가? 갈라디아서 5장에 이렇게 해요. 네 육신과 영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한번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자, 이제 질문합니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았지요? 분명히. 그러면 우리가 살아나는 겁니까? 십자가라는 사건이 살아나는 겁니까? 어느 쪽입니까? 십자가라는 사건이 살아나지요. 제가 이렇게 말해도 참 이걸 이해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십자가 믿는 내가 살아났다 이렇게 우긴다고요.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은 네가 주도권이 없고 십자가에 주도권이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 살아나면 주도권 살아나고 우리는 뭡니까? 종이 되야지요. 종.


종이 뭐냐? 누가복음 17장 10절에 보니까 이렇게 되어있어요.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종이 영광을 받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종은 주인이 아니잖아요. 종을 지난 설교 때 집사라고 했어요. 집사는 본인 이름이 없어요. 누구 누구의 집사.


좀 잘 사는 집에 보면 집사들 있잖아요. 김 집사 있잖아요. 메이드 뭐 영어로 하지만. 집사 있잖아요. 집사는 그 집, 자기 집 아니에요. 스케줄 자기가 짜는 거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면 내 인생 스케줄 내가 짜는 거 아니에요. 우리의 목표와 목적을 십자가 목적과 목표가 완전히 다 덮어버렸어요.


월남전 밀림을 완전 폭탄 하나가 전부 다 잿더미 만들듯이 주님의 복음의 목적이 우리의 사소한 목적과 목표를 다 전부 다 없애버렸어요. 우리의 목적과 목표 없애버린다고요. 우리의 목적과 목표가 사라지면 뭐가 사라져요? 고민과 걱정과 염려와 안절부절, 의기소침, 우울증. 만사형통이에요. 우황청심원인가.


십자가 살아있음이 십자가 살아있다는 것은 나 살아있음을 대신하자는 거에요. 어떤 드라마 이런 드라마가 있을 수 있어요. 아가씨가 친구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는데 편의점에 물건 갖다주는 택배 기사가 술 먹고 행패를 부리면서 편의점을 쑥대밭 만들고 엉망으로 했다. 그런데 이 아가씨가 아저씨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러시면 나중에 고발당합니다 하니까 남자가 고발해! 고발해! 이랬단 말이죠. 착한 순한 아가씨. 그러고 난 뒤에 몇 일 뒤에 택배기사가 사법당국에 고발당해서 걸렸어요.


왜냐하면 그 아가씨가 판사인데 잠시 아르바이트한 거에요. 친구 집에 아르바이트했어요. 제대로 걸린 거에요. 그런 드라마 제가 한번 지어내봤습니다. 그 비슷한 드라마가 있긴 있는 거 같아요. 아까 실제성이라는 것, 적그리스도의 실제성이라는 것 그거는 실제로 어떤 영화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 오면서 자기 집이라고 치고 애들 있고 자기 아내 있는데 자기는 쫒겨다니는 입장에서 현상범 입장에서 오랜만에 자기 집에 몰래 가가지고 내가 다녀갔다는 표시를 뭘로 했느냐? 식당에 있는 소금 그것만 딱 들고 간 거에요.


딱 들고 가니까 엄마는 몰랐지요. 엄마는 모르고 어? 소금이 어디 갔지? 이렇게 하니까 아이가 하는 말이 ET가 다녀갔어. ET가. 자기 아빠인데. 애가 말을 안 한 거에요. 아빠가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 소금만 부재하지요. 소금만 없지요. 이 세상에서 동대문 시장이나 남대문시장 다른 거 다 팔아요. 안 파는 것이 있어요. 뭘 안 팝니까? 십자가를 안 팝니다. 십자가 피를 안 팔지요. 그것만 부재하지요.


왜? 그건 영적인 분이 다녀가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모든 걸 이야기해요. 그러나 하나를 이야기 안 해요. 뭐냐 하면은 십자가 피가 이 교회 전체를 대행한다는 이야기를 안 하지요. 우리 예배, 선교, 헌금, 교회건축 이 모든 행사, 바자회 이 모든 것을 뭐로 바꿔야 한다? 십자가 피로 다 이루었다로 바꾼다는 이야기를 교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야기 안하지요.


왜? 적그리스도니까. 교회도 적그리스도다 우회적으로 이야기하기 싫어요. 이제 그런 것도 짜증나. 그냥 적그리스도에요. 그냥 적그리스도에요. 그 교회는 목표가 있어요. 그 목표가 뭐냐? 교회 부흥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주님의 목표 앞에 모조리 전부 다 싹쓸이 재가 돼야 마땅해요 그거는. 구원 참 쉬워요. 십자가 피만 믿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의 어느 한 순간 이 십자가 피를 방해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아침에 눈 떠서 하루 일과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십자가 다 이루었다만 방해하는 걸로 꽉 차 있습니다.


왜? 사탄에 매여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다른 건 다 허락해줄게. 그러나 이것은 안돼. 적그리스도가 이건 안 된다 하는 것이 뭐냐? 다 이루었다는 그건 안 된다는 거에요. 그 인류의 마지막 이러한 부정성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를 곳곳에서 출몰하는 적그리스도를 우리는 늘 매일같이 우리는 만나고 있습니다. 길거리 전도하는 사람도 보고 하지요.


자, 그렇다면 이제 남아있는 게 뭐냐 하면은 아까 언급했지만 끝까지 가보자. 끝까지 가보자. 끝에 뭐가 있는지. 오늘 본문 16절 보겠습니다.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그 다음에 무슨 딸입니까? 아브라함의 딸이죠. “아브라함의 딸”. 사탄, 아브라함, 안식일 이 세 단어의 연결이 누구로부터 완성이 되느냐 하면은 바로 중보자로 오신 예수님 대행자로부터 완성이 돼요. 사탄의 정체를 실제적으로 보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 말고 누구에게만?


택한 백성, 아브라함의 딸에게만 어떤 취지로? 우리 아버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흡족해 하시고 만족해하는 그 날, 무슨 날? “안식일 날의 완성을 내가 실제로 내가 보여줄게” 하면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날 말고 안식일 날 18년간 귀신들린 딸을 귀신, 악마를 나가게 해줬습니다. 11절에 보면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이렇게 시작하지요.


그러니까 이 자체가 18년 동안 귀신들린 이 아주머니가 그냥 본인이 낫게 해달라고 했습니까 아니면 일방적으로 했던 겁니까? 예를 들어서 제가 모션으로 보여준다면 꼬부라졌어요. 보니까 예수님이 계십니다. 병 잘 고치고 귀신 쫓아내기로 소문난 분이 있어가지고 여자 분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이렇게 서가지고 “제가 보시다시피 18년 동안 꼬부라져서 귀신들려서 이렇게 못 일어납니다 고쳐주세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는데 “전에는 이렇게 이렇게 했는데 지금은 제가 이렇게 있습니다.” 이게 됩니까? 안됩니까? 안되지요. 전에는 이렇게 잘됐는데 요즘에 이렇게 됩니다.


이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요. 정신병 걸렸다고 군대에 빠질려고 군에 진단서 가져온 사람이 있는데 “글씨 써봐라.” “저는 글씨도 못 씁니다.” “이 글 내용이 뭐야?” “글 내용도 모릅니다.”“얘는 진짜 안 되겠다. 정신 나갔구나 합격!” 하니까 와!!! 이렇게 하고 있다니까. 우리의 본심에 나는 죄인입니다.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어디서 들은 풍월은 있어가지고 백날 해도 이만큼은 남아있는 게 긍정성이 있어요.


작으나마 딸딸 긁는다고 긁었는데 그대로 긍정성이 있어요. “이것까지는 내가 죄인인 것은 인정해주는데 이것보다 더 죄인이라고 하게 되면 저는 못 참습니다. 왜 죄인입니까” 라고 하는 그 마지노선이 있어요. 마지노선. 더 이상 밀고 들어오지 말라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내가 알아서 회개하고 반성하고 손들고 다 할 테니까 더 이상 진짜 내 인생 정말 끝납니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뭡니까? 아브라함 따라 우리 끝까지 가자. 끝까지 가자.


그러니까 사탄으로 하여금 귀신으로 하여금 이 여자에게 들어온 것은 그 여자한테는 이게 뭐냐 하면은 행운이죠. 행운치고는 꼴사납다만은. 행운인 거에요. 이걸 제가 전에 뭐라고 표현했느냐 하면은 자크를 끝까지 내려서 괴도에서 이탈시키자 하는 이런 예를 여러 번 들었어요. 자크를 내릴 때 끝까지 내려버려요. 끝까지 더 내려버려. 그러면 자크는 터지고 밖으로 나오지요. 그때부터 새로 시작하세요.


그러면 내가 의도한 나의 구원, 나의 천당 가는 계획, 자기 구원받는 계획 자체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겠지요. 그게 뭐냐? 끝까지 가는 거에요. 끝까지. 끝까지 가서 궤도이탈 해버리는 거에요. 궤도이탈. 롤러코스터 타는데 너무 타서 궤도이탈해서 튀어나왔어요. 그럴 때 뭡니까? “악!!!” 하겠지요. 그때까지 가자 이 말입니다. 왜 그때까지 가야하느냐? 그때까지 갈 때 나의 어떤 것도 악마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그게 나였음을 발견하는 거에요.


어떤 경우라도 악마가 주는 주눅, 악마가 주는 희망과 포부, 비전 이것이 항상 내 자리에 항상 이게 친근감을 가지고 내 안에 포개지듯이 늘 차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겁니다. 내 힘으로 뭘 열매를 드리고 이거는 안 되는 겁니다. 끝까지 가는 방법이 있어요. 뭐냐? 성경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오늘은 여호수아를 가지고 설명해보겠습니다. 여호수아 23장, 실제적 이스라엘 역사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제일 좋아요. 개인적인 것인 개인적인 특수성 때문에 개인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에.


여호수아 23장 13절에서 16절. 여호수아 23장 16절 제일 끝에 네 자 나오는데 뭡니까? “망하리라” 망하리라 되어있지요. 앞에 두 자 첨부하면 뭡니까? “속히 망하리라” 이게 끝까지 가는 거에요. 13절 끝에 “이 아름다운 땅에서” 그 다음에 뭡니까? “멸절하리라” 16절에 보면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


지금 뭐를 주님께서 뭐를 철거 안한 거에요? “속히 망하리라 멸절하리라” 15절 끝에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되어있거든요. 이 “멸절하리라 망하리라” 요건을 여호수아에게 그걸 뺐습니까 그냥 두었습니까? 그냥 두었지요. 그거 왜 그냥 둡니까? 그게 율법이기 때문에. 율법을 준 것은 율법이 있어줘야 이게 끝가지 가요. 율법이 있어줘야 끝까지 간다고요.


오늘날 성도는 율법이 끝까지 갑니까? 십자가가 끝까지 갑니까? 십자가 끝까지 가니까 네가 어떤 죄를 지어도 망하는지 안 망하는지 한번 보자. 결국은 “네가 오늘밤에 낙원에 있으리라” 이게 십자가의 실제성이에요. 십자가의 실제성. 십자가 피의 실제성. 피의 효과가 실제적으로 있다는 거에요.


그걸 어떻게 아는가? 우리 주변에 놀랍게도 이 사실을 어떤 짓을 해도 “네가 오늘밤에 낙원에 있으리라” 이 말은 안 믿는 적그리스도에 속한 그 모든 것들을 매일같이 우리는 수십 명씩 수백 명씩 만나고 있으니까요. 매일같이. 열심히 하자 노력하자 성과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부추기고 나에게 희망과 격려를 주고 그렇게 하는 거에요.


자, 그러면 여호수아 이렇게 망할 거 같으면 이 땅에 왜 했는가? 여호수아의 전쟁의 의미가 기생 라합을 통해서 대표적으로 나타나있습니다. 그 여호수아 전쟁에서 제일 먼저 정복한 성이 여리고성이거든요. 여리고성에서 기생 라합이 행한 태도 한번 보세요. 기생 라합은 자신과 자기 가족과 그리고 모든 민족이 이미 죽은 목숨인 것을 인정했습니다. 스스로 자기가 뭔가 노력해서 팔자 고칠 일은 없다는 일을 발견한 겁니다.


지금 쳐들어오는 이스라엘, 여호와 앞장세워서 쳐들어오는 그 이스라엘 앞에서는 우리는 이미 죽은 목숨인 것을 미리 일찍 그걸 인정해버렸어요. 그럴 때 구원은 전적으로 어디서 오는 겁니까? 죽은 내가 어떤 조치를 못하지요. 여기서 명사가 아니고 사물이 아니고 동사 이어지는 겁니다. 누군가 우연히 어떤 분이 정탐꾼 두 명이 우연히 자기 집에 왔지요. 2명이 우연히 왔지요. 우연히.


그러니까 십자가를 알게 된 것이 교회 와서 십자가를 배워서 알게 된 것이 아니고 우연히. 그냥 우연히 온 거에요. 우연히. 우연히 아니고 내가 성경공부해서 알았는데요 하면 주님께서 성령께서 이게 우연히 온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성경공부해서 알았던 십자가가 무용지물로 만드는 사태를 계속 일으켜버려요. “십자가 안다고? 꼬라지하고는. 잘났다 그게 십자가 아는 거야?” 계속 십자가 아는 것을 무용지물 만드는 사태로 계속 만들어버려요.


십자가 알아서 뭐 고민과 걱정 없다. 무슨 없기는 뭐가 없어. 더 큰 게 날라오는데. 공부해도 십자가 소용없구나 밤잠 못자고 주여 어찌하오리까. 이거는 쌩 떼 써가지고 공부해서 얻은 십자가지 우연히 찾아온 십자가 아니거든요. 우연한 십자가는 그냥 공중에 두 팔 벌리고 그냥 날라버린 거에요. 내 인생 끝났다.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끝나버린 거에요.


그럼 독수리 날개가 밑에 딱 받쳐주지요. 십자가라는 독수리 날개가 딱 받쳐가지고 이제부터는 너의 모든 목적은 없고 내 목적 너는 종으로 가야된다. 종의 특징은 뭐냐? 어떤 일을 해도 우리는 마땅히 할 뿐입니다. 이거해서 얼마 줍니까 그런 거 따지지 마. 마땅히 할 뿐이에요. 마땅히. 왜? 내 일이 아니니까. 내가 원해서 종 된 게 아니고 주님이 원해서 종 되었기 때문에 주님이 알아서 이끄실 거에요.


여러분 잘 아시는 시편 23편 3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여기 보세요. 주인공이 누굽니까? 주도권이 누구한테 있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지요. 목자가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이유가 뭡니까? 내 이름을 위해서가 아니라 ‘목자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어떤 길로? ‘의의 길로’.


그러니까 목자가 빠지면 우리는 어떤 길로 못 간다? 의의 길 그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몰랐고 지금 내가 의의 길인지 알 수도 없어요. 목자가 와서 4절에 보면 “사망의 음침한 길로” 다니게 함으로서 비로소 내가 믿는 십자가가 아니라 주께서 우연히 찾아온 십자가가 나를 건지는 거에요. 그래야 공로가 100% 주님 공로만 돌려지는 거에요.


여리고 성에서 기생 라합이 죽은 자라고 했을 때 죽은 자라고 간주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정탐꾼이 와서 살려줬잖아요. 그럼 그 전쟁의 초점은 그거에요. 뭐냐? 모든 이스라엘아 똑바로 봐라.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이 이방 여인을 통해서 내가 보여주마. 심판 가운데 심판하시는 심판 행위죠. “찍어버리라”는 뭡니까? 심판이죠. 심판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에요.


누가? 기생 라합이. 어떤 모습으로. 내가 심판 받아 마땅한 모습으로 뛰어드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그 기생 라합의 사고방식을 유지해줘야 돼요. 여호수아 그 집단을 심판 사건 속에 이스라엘을 데리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는 모든 전쟁은 무슨 전쟁 되겠어요? 이방민족을 심판하는 전쟁. 전쟁을 하는 거에요.


여호수아 21장 44절 지금 끝까지 가자 그 대목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음이니라” 45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그러니까 말씀대로 되어지는 거에요. 말씀대로. 말씀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되는 거에요. 하나님의 목적은 첫째 시간에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이 중보자 보내서 하나님이 원하는 열매를 중보자 손에서 가지고 오는 것, 만들어 오는 것. 그게 하나님의 말씀의 일관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사람 빠지고 중보자 보내셔서 중보자로 하여금 안식하도록 영원히 안식하도록 흡족한 열매를 그 아들을 통해서 끄집어내는데 그 와중에서 데리고 오는 자는 부정성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주님이 구원한 자가 100% 부정해야 돼요. 죄인 중에 괴수가 되어야 됩니다. 스스로 노력한 게 섞여버리면 이것은 ‘다 이루었다’에 그건 훼방하는 거에요. 그게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거에요.


여호수아를 좀 더 보겠습니다. 그 다음에 여호수아 5장 3절이요. 시간 좀 가더라도 이스라엘 심판 전쟁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봐야 됩니다. 5장 3절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요단강 건너가고 난 뒤에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부싯돌로 칼을 만드는 거에요. 칼을 만들어서 그 칼을 어디에 사용합니까? 이스라엘 자손에게 할례를 행하는 거에요.


자, 이 뜻은 뭐냐 하면은 적들에게는 뭐가 없다? 이스라엘과 싸우는 적들에게는 할례가 없고 하나님 편에 속한 자는 뭐가 있다? 할례가 있는 거에요. 할례라는 뜻은 끊어버리는 겁니다. 뭐를 끊어버리느냐? 자기 육신을 끊어버리는 거에요. 이게 마음의 할례도 되고 육신의 할례도 되는데 할례라는 것은 우리 자신을 우리 스스로가 이왕 죽은 자로 만들어버리는 거에요.


명사, 형용사, 동사. 명사 이 사물 자체가 thing이라는 사물 자체가 죽은 사물이에요. 죽은 자를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동사가 되셔가지고 어떻게 죽은 자를 가지고 소위 살았다는 자에게 승리하는지를 너희들이 똑똑히 나와 함께 해서 목격하라 그리고 그 증인이 되어라. 왜? 나의 종이니까. 그들은 나의 종이 되어야 하니까. 주인이 하는 걸 보고 종은 이렇게 했습니다를 증거하기만 하면 되거든요.


그 다음에 여호수아 6장 23절 유명한 여리고 성인데, “정탐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의 부모와 그의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의 친족도 다 이끌어내어 그들을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 두고 무리가”, 그 다음에 보세요. 나머지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하나 보세요. “그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라고 되어있지요.


이게 뭐에요? 이게 심판이에요. 곳간에 있다는 것은 심판했다는 증거품들이죠. 그러면 기생 라합과 그 가족은 뭐가 되느냐? 전리품이 되겠지요. 그 전리품이 되어야 구원받아요. 그러니까 이스라엘도 전쟁하면서 뭐가 되느냐? 본인들이 전쟁한 당사자가 아니라 본인들이 전리품이라는 사실을 그 전쟁을 통해서 그걸 체험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는 못하는데 주께서 해내신다. 주께서 하는 지금 전쟁을 뭡니까? 하나님의 원수라고 했지요. 그게 신약성경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신약 성경에 역사의 마지막이 되면 뭐라고 나옵니까? 하나님의 적이 아니고 뭐라고 나옵니까? 적그리스도. 왜? 그리스도가 이미 나타났기 때문에.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보았거늘”. 아버지의 일은 예수님 안에 다 들어있어요. 예수님이 하는 일이 아버지 일이에요. 아무도 못 알아봤어요. 아무도 못 알아들었어요.


유대인? 자기 아버지는 악마인데. “너희 아비는 악마다. 너는 악마의 자식들이야.” “왜?” “나를 안 믿으니까.” 주님의 뜻은 아주 간단해요. “나를 알아?” “몰라요.” “악마구나.” 이겁니다. 그럼 “주님을 압니다.” “알아? 진짜 알아?” “예 압니다.” 그럼 나 떠날게 알아서 해라. 떠나니까 뭡니까? 전부 다 배신자, 도망치기 바빴지요. 그게 아는 거에요? 모르죠.


그러니까 성령의 열매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육신과 정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려서 십자가 자체가 우리를 대신해서 동사로 움직일 때 그때 등장하는 믿음이 뭐냐? 바로 ‘주님은 그리스도십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사울은 십자가 안에 숨어들어갔어요. 좀 비겁하지만.


냉동고 있잖아요. 냉동고. 얼음 어는 냉동고. 만화같은 거 보면 냉동고 있는데 실수 해가지고 문을 닫으면 한 두시간 뒤에 문을 열어 보니까 사람이 있는데 이 사각형 안에 얼굴 하얗게 되고 얼음덩어리 돼서 나오는 거 있지요. 이 정도 되면 사람 죽지만 만화이기 때문에 걸어나오는 거에요. “김 대리 네가 왜 거기 들어갔지?” “과장님이 문 닫았잖아요.” 와보니까 김 대리가 얼음 되어있단 말이죠.


이 사각형이 뭐냐? 십자가고 이 안에 들어있는 게 바로 성도가 되는 거에요. 성도. 이게 바로 갈라디아서 6장에서 말하는 ‘내가 십자가 안에서 나는 이미 죽었다’고 되어있어요. 나는 죽고 세상은 내게 대해서 이미 죽은 자고 서로가 서로를 죽은 자로 마주 보는 거에요. 뭐를 중간에 두고? 십자가를 두고. 이게 성경에 다 있는 이야기에요.


골로새서 3장에 보면 뭡니까? 우리는 나는 이 땅에서 이미 죽었고 우리의 생명은 어디에 있다? 하늘에 보관되어 있다는 거에요. 하늘에 보관되어 있다. 그걸 지난 낮설교에서는 뭐냐 하면은 사람이 우르르 몰려간다고 해서 천국 가는 게 아니고 자리가 있어야 된다고 했지요. 처소가 없으면요 수천명 수만명 와도 십사만사천 와도 안돼요. 자리가 없어요. 자리 없다는 말은 애초부터 천국에는 인간을 위한 자리는 없어요. 노인을 위한 나라도 없을 뿐더러 인간을 위한 자리는 없어요.


자리가 없다는 사실에 우리가 실제성을 그걸 느껴야 돼요. 그리고 그걸 느낀 사람만이 자리가 마련됐음을 아는 자만이 나를 위한 자리는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돼요. 이 땅 천국에는. 주님의 종의 자리고 주님과 함께 있는 형제의 자리지 주님의 신부의 자리지 내가 원했던 내가 이 땅에서 상상하고 생각했던 그 자리는 없어요. 나를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개는 훌륭하다는 그 프로가 있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프로그램이 개 나오는. 그 개는 훌륭하다 그 프로에 보면은 개가 있는데 두 종류의 개가 있어요. 하나는 명랑한 개가 있고 하나는 우울증 걸린 개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 그 프로를 보고 나한테 얘기해줬는데 그 개도 나처럼 우울증 걸렸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우리를 개로 한번 봅시다. 개로 본다면 명랑한 개 있고요 같은 개인데 이상하게 명랑해. 같이 죽어가면서도 되게 명랑해요.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지금 늙어가고 있으면서도 되게 명랑해요.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되게 명랑해요. 그런데 멀쩡하게 돌아다니면서 굉장히 우울해요. 이유가 뭐냐? 자기 목적과 기대와 희망이 그대로 있으니까 우울한 거에요. 안되면 어떻게 되느냐 말이죠. 자기 소원 안 이루어지면 나는 무슨 재미로 더 사냔 말이죠. 나는 그럼 어떻게 살라고.


옛날에 이현세 만화 같은 거 있잖아요. 언덕이 있는데 언덕에 마을 집이 있는데 여기 산에 뉘엿뉘엿 그것도 그냥 지는 게 아니고 뉘엿뉘엿 해가 지면서 노을이 있잖아요. 나 어떻게 살지?! 오늘밤 어떻게 지내나. 보니까 돈 1200원 있는데. 또 어디 공원 벤치에 누워 자나 라는 신세 한탄 있잖아요. 이게 만약 25살이라고 봅시다.


이 25살이 여기 고층 45층 아파트에 살면서 그것도 제일 로얄석에 살면서 뉘엿뉘엿 지는 북한산입니까? 아니면 인왕산 곁에 해질 때 지금 100평짜리 아파트 잘 살아요. 살면서 다음에 결제는 어떻게 하지? 이러고 있다니까. 이 25세가 56세라도 달라진 거 하나도 없어요. 내일 어떻게 견디지 하고 있다고요. 우리 애가 전교 2등 하는데 1등은 언제하지 이러고 있다고 지금. 고민이야 이러고 있다고 고민이야. 또 어느 수학 선생을 붙여야 되나. 고민하고 있다 이 말이죠.


26살 먹은 이 청년이 집 없다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집 있고 차 두 대 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고생 여전해요. 왜 그렇습니까? 자기의 목적과 목표를 깔아뭉개버릴 완전히 세상 끝까지 가서 끝장 끝장을 봤던 그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 메시아의 에이전트를 모르기 때문에 이건 백날 자기 딴에 출세했다 해도 소용없는 짓입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묶던지 안 지게 하던지 그런 조치를 해야 되겠지요.


자, 여호수아 계속 봅시다. 여호수아 4장에 보면 돌멩이 하나씩 들고 나오는 게 있어요. 4장에 보면 21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8절에 보면 같은 이야기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의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에서” 돌 몇 개를 취합니까? 12개인데요 한 대표가 와서 하나씩 들고 하는 거에요.


자, 이게 주님의 언약을 앞장세워서 벌리는 그 심판에 한 지파도 예외 없이 모조리 다 심판 전쟁에 참전하는 병기가 되고 용사가 되는 거에요. 돌로서 돌 들고. 돌 하나에 지파 하나에요. 돌을 모으는데 돌이 12이죠. 다 모으니까 탑이 두 개입니까? 세 개입니까? 달랑 하나밖에 없지요. 이것은 뭐냐 하면은 12는 12 각자에 속한 1은 이거는 1이 아니에요. 이거는 무의미한 겁니다. 11이 없는 나만의 1은 이거는 소용없어요. 12을 다 채워야 하나가 돼요. 12를 다 채워야.


그래서 여호수아에 보면 아간 있잖아요. 이건 대구강의에서 했는데 아간이 반칙하니까 누가 죽입니까? 12지파가 다 달려들어서 그 하나를 죽이죠. 그러면 뭐가 회복돼요? 하나가 날라가 버리고 어떻게 돼요? 12가 하나가 온전히 되었지요.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은 이 질문을 하고 싶은 거에요 여러분들에게.


우리 자신의 존재에서 어떤 것을 미흡함으로 느낍니까? 이걸 평소에 살아가면서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자신에게 어떤 것을 아직 모자란다 부족하다 미흡하다고 느낍니까? 우리 자신에게. 우리가 누구의 종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우리 자신의 존재에서 어떤 미흡함을 느낀다는 자체가 종한테는 이거 주인 들었으면 화 낼 일이에요. 반칙이에요. 어떤 미흡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실제 일상생활에서 보면 우리는 단 한 시간도 미흡함을 안 느낄 때가 없지요. 버스가 빨리 와야 될 텐데. 오자마자 가는 게 어딨어. 그건 반칙이지.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좀 기다리면 되는데 성질 급해가지고. 여러분 잘 알지요. 성질 급한 사람 누군지. 맨날 엎어지고 자빠지고 정강이 다 까지고.


우리가 어떤 점에서 자꾸 미흡함을 느낄 때 그 한 사건 미흡함을 느끼는 사건을 놓치지 마시라 이 말입니다. 주께서는 그게 우리가 유한이거든요. 유한. 우리로 하여금 계속 유한케 하게 하시는 것이 우리 안에 무한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주님이 십자가만을 드러내는 방법은 우리로 하여금 내 자체적으로 내가 욕심을 부리던 탐심을 내던 어떤 미흡함을 자꾸만 느끼는 거에요. 매일같이. 순간적으로. 복음 듣고 돌아서도 미흡함 느끼고.


그런데 12는 13을 원하지 않습니다. 14를 원하지 않아요. 12 자체가 이미 하나가 되어있으니까 하나라는 것은 더 이상 보탤 필요가 없는 거에요. 그러면 이스라엘이 이 12를 언제 경험하느냐? 전쟁할 때 경험하는 거에요. 전쟁할 때 어떤 전쟁? 심판 전쟁이죠. 그럼 어떻게 하느냐? 그게 바로 여호수아에서는 신명기에도 나오지만 전멸.


이거 하고 마치겠습니다. 상대를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 이 사람들을 전멸시켜야 됩니다. 저쪽을 전멸시킨다 이 말은 저쪽 가운데서 나의 미흡함을 보충 받을 것이 일체 들어있지 않다는 심판적 안목이에요. 주님의 입장에서 주님의 기준에서 십자가 없다고 처단한 것, 내가 그 사람한테 아 저건 아깝다. 십자가만 몰랐다 뿐이지 인품 하나는 끝내준다. 저 사람은 정말. 우리 신랑 십자가는 몰라도 나한테 잘해주는 거는 이건 뭐 공주보다 잘해준다 이런 거 있잖아요.


우리 아내 살림 잘하고 밥 잘하고 요리 잘하고 싹싹하고 성격 좋고 건강하고 특히 돈 잘 벌어 오는데 단지 뭘 모르느냐. 십자가 하나 모른다. 그거 하나마저 채웠으면 나한테 얼마나 내가 행복하겠느냐. 바로 이 전쟁. 내가 나에게 하는 전쟁. 내가 나를 상대로 벌리는 이 십자가 전쟁. 주께서 이걸 바로 우리를 유한한, 우리를 육신으로 아직까지 이 세상에 남겨진 이유입니다. 계속 우리가 유한해야 돼요.


그래야 무한한 것은 내가 아니고 온전한 내가 아니라 뭐만 온전합니까? 나를 끝까지 구원해 주신 오늘밤 내가 낙원에 있게 해주신 그 피의 실제성을 우리가 느끼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매일 우리의 일상은 뭐냐? 적그리스도가 통치하고 있으니까 매일 우리의 삶은 적그리스도 요소를 우리가 찾아보는 그런 재미? 나에게서 끄집어낼 수 있는 적그리스도적인 그거 캐치하는 찾아내는 즐거움. 이게 성도의 즐거움이고 이게 범사에 감사지요.


그럼 여러분이 26살 먹은 막 촌에서 올라온 청년이다 칩시다. 그리고 해가 지는 언덕 위에 나는 1200원 밖에 없는데 나는 오늘도 어디서 잠을 자지. 이 더러운 인생 나는 어떻게 살지? 하면서 씨익 웃는 거에요. 주여 오늘밤에 데려가셔도 저는 감사하겠습니다. 그 청년이 나이가 26이라면 지금 26살이 세월이 바뀌어도 일상이니까 일상이 매일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니까 이게 46이 50, 60이 되고 66, 76이 되도 매일 그 인간이 그 모습 그대로에요.


그러니까 조금도 스스로 완벽하거나 완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대구강의 마지막에 묻는 거잖아요. 온전해질렵니까? 아니면 감사할렵니까? 딱 둘 중에. 온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제 말이 아니고 고린도후서 12장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네가 부족할 때 온전하여짐이라 네가 안에 사탄의 가시가 있을 때 낫게 하지 말라. 됐다 네 은혜 네게 족하다. 네가 부족할 때 온전하여 짐이라. 은혜가 온전해진다.’


그게 바로 우리의 육신 가지고 아직도 우리가 버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늘 부족하고 늘 성경에 나오는 적그리스도 모습이 내 모습이고 그런데 그것을 그렇게 깨닫는 것은 이미 거기서 벗어났기 때문에 성경적 안목으로 말씀이 끝난 안목으로 나를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에 주께서 주의 종으로 제대로 주의 증인하라고 이런 육신을 이런 적그리스도 같은 이 육신을 그대로 주께서 66, 76, 86 계속 끌고 가고 있는 주의 선하신 뜻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되어짐을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사건적으로 깨닫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연히라도 모든 것이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이 기쁨과 환희와 즐거움으로 다가설 수 있는 그런 주님의 사건으로 이어지는 저희들 남은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강남-누가복음 13장 16절 (피의 실제성) 221018b-이근호 목사.hwp (161.0K), Dow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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