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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0 12:53:35 조회 : 6059         
유원상 선생님을 찾아서 이름 : 이근호(IP:220.64.214.75)

오늘은(2007년 1월 19일) 유원상 선생님을 뵙기로 한 날이다.


왜 만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꼭 받아내어야 할 것을 그동안 보관하고 계신 분이라는 느낌이 들기에 마음 먹고 먼 길에 나섰다.


겨울 하늘도 맛있게 익었다. 고속도로도 깨끗했다.


최종훈 집사님과 강구만 집사님도 유원상 선생님에 드릴 선물을 준비하고서 동행해 주셨다.



가는 길에 논산에 계신 오재석 장로님 내외분에게도 들렸다. 여정의 목적을 말씀드리니 환하게 격려해주신다.


나즈마한 부여 시내를 조용하게 통과하고, 붉은 백제 들녘을 1 시간 여 지나니 현대 신도시 보령시 안으로 잠겨들었다. 다시 대천 해수욕장으로 10분쯤 가다보니 한적한 들판이 시작되는 턱에 유선생님 댁이 있었다.



낡은 지붕으로 인해 심하게 짓눌려버린 주택은 주위에 깔린 훤한 들녘의 눈높이 정도로 낮았다. 하지만 더 낮은 키를 가진 늙은 할머니께서는 어린아이 같은 걸음으로 일행을 반겨주셨다. 할머니의 웃음은, 방금 목욕하다 나온 아이의 웃음, 그 자체였다.



하루 종일 우리를 기다리신 것 같았다. 서로 아는 사이처럼 아무 말이 필요 없이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늙은 신앙인이 줄 수 있는 생애 마지막 인심 속으로 우리의 시간도 빨려들어 갔다.



존재는 호흡을 멈추고,


보이지 않는 주님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유 선생님이나 우리들이나 일상의 이야기로 방해되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내 소개를 하고서 유 선생님의 신앙 이력을 듣고 싶다고 했다. “저는 [예수 사회]를 통해서 전부터 유 선생님의 글을 대했던 사람입니다. 글에 힘이 실려 있고, 사명감이 실려 있고, 자신의 전부가 실려 있음을 보고서, 유선생님께서 어떤 신앙으로 살아오셨기에 이런 힘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



88세의 노쇠한 유 선생님께서는 멀리서 온 손님을 최대한 배려해 주실 양으로 배에 힘을 모으셨다. “이 자리에서 나 보고 과거 이야기를 다 하라는 거군요. 나는 정식 학교라고는 일제시대 때, 초등학교 밖에 안 나왔습니다. 나는 10남매의 장남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1등 했어도 가정 형편상 진학을 할 수가 없는 처지였지요. 하지만 일본 선생님께서 내 재능이 아까웠든지 나를 서울에 있는 조선총독부 외사부 사환으로 취직을 시켜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나는 철저히 일본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일본 사람에게도 지지 않는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 사람에게도 지지 않는 일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합당한 생의 목적이요 이유였습니다. 조선총독부에서 모든 일에 뛰어나게 인정을 받은 나는 역시 일본 관리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만주에 있는 ‘재외 만주 이민국’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곳의 일은 민주국에 있는 이민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가 이미 청년 때였습니다.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도 최고의 일본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사는 것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사무실에 드러나는 사람 가운데 어떤 기업체에 근무하는 여자 타이피스트가 있었는데 내가 평소에 마음에 새겨 두었다가 당당하게 한국인으로 그 일본여인에게 장문의 편지를 꼼꼼하게 써서 공개적으로 청혼 제안을 했지요. 그랬더니만 주변 일본인들이 대단히 당황하더라구요. 왜 그런지 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누가 이야기는 하는데 그 일본여인은 이미 남편이 있는 여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당시 화제가 된 일이 있었지요. 그 정도로 그 때 나는 철저하게 일본인이 되는데 거칠 것이 없었어요”



이 청혼 이야기를 삽입 하시고서는 유선생님께서 스스로 괜히 한 것이 아니가 하여 서둘러 봉합에 나서는 식으로 이야기를 흐름을 이어나가셨다.



“내가 이런 식으로 살다보니 당연히 일본인들의 신(神)을 나의 신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왕이면 그 어떤 일본인보다 더욱 일본 신에 충성하는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일본사람들도 평생 가보지 못한 일본신의 총 본산인 본토 신사까지 직접 방문해서 제대로 일본 신을 섬기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이 일을 준비하는 가운데서 하루는 특별 방송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날이 1945년 8월 15일이었지. 일본이 항복했다는 거야. 일본인들은 낙담을 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나의 장래 문제보다 더 쇼크가 되었던 것은, 일본 신이 결코 절대 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야.



이것은 나로 하여금 신을 포기하게 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신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더욱 부축하게 한 것입니다. 더 확실한, 더 분명한 신을 새로 찾을 필요가 생기게 했던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 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신을 찾으러 간 겁니다. 거기에도 열심히 교회에서 충성 봉사했더니만 교회 안에서도 성실한 교우로서 인정받았습니다.



그 당시 일본군 주둔의 만주국의 수도는 심경, 지금의 장춘인데 거기에 한국인 교회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정권은 무너지고 여기저기서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공산당이 들어오게 되면 교인들은 목숨 부지하기 힘든 입장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형편이었는데, 마치 같은 교회에 누가 있었는가 하면, 대구에 이름 날리는 유명한 목사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그 당시 대구 삼덕 교회에 시무하시는 유명한 목사를 알아요? ”



이야기는 듣는데 집중해 있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옆에 계신 최종훈 집사님께서 유 선생님의 마음을 흡족케 해드리는 답변을 내놓으셨다. “홍대위 목사잖아요”



유 선생님은 벌써 흥이 나 있었다. “그렇지요. 홍대위 목사지요. 그 사람이 일제 시대 때 자기 아들을 빼돌리기 위해 만주 장춘으로 보내었는데 이제 해방되고 난 뒤 다시 자기 아들을 대구로 빼돌릴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미국 선교 단체를 동원시켜 대구에서 뭘 보내었는고하니 비행기를 보낸 겁니다. ‘기독교호’라는 이름을 써 붙이고 말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자기 아들만 쏙 빼내가겠어요. 따라서 계획을 이렇게 짠 겁니다. 총 3차에 걸쳐 철수작전을 펼치는데 일단 그 교회 목사들과 장로들과 중직들을 1차로 29명을 빼내어서 어디까지 일단 실어놓는가 하면, 봉천까지 데려다 놓는 겁니다. 봉천이란 지금의 심안입니다. 그 다음의 다시 2차로 장춘에 와서 다시 29명을 실어다가 심안에 데려다 놓는데, 두 번째 비행기에 탈 사람은 교인들 중에서 비행기 삯을 낼 만한 재력가들이고 다시 3차에 데려올 사람은, 홍대위 목사 아들을 포함해서 다른 일반 재력가들 29명을 싣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나로서는 돈도 없는 형편에 1차, 2차, 3차 어디에도 낄 수가 없는 겁니다. 그 때 1차 명단에 속한 장로님을 내가 무척 따랐고 좋아했는데 이상스럽게 기분에 이번 헤어지면 영영 그 분과 이별할 것 같아서. 비행장까지 떠나는 트럭 타는데 나와서 아내와 함께 사정 사정을 했습니다. 그 때 나는 전(前)아내와 이미 혼인 했었습니다.



그런데 일 처리하시는 교회 분이 단호하게 안 된다고 거부했어요. 하지만 나는, 비행기는 안 탈테니 제발 저 장로님과 비행장까지 만이라도 배웅하는 시간만큼은 허락해 달라고 사정했어요. 그래서 그 트럭에 타게 되었습니다. 일단 트럭에 타고 인원을 세어보는데, 1, 2, 3 … 하고 여러 번 세어 봐도 31명이 되어야 숫자가 계속 29명이 되어 있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차에 탈 사람 중에서 두 사람이 돈 받을게 있다고 해서 1차에 출발하지 못하고 포기했던 겁니다. 그래서 일단 29명 정원이 다 채워져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그 때 비행기 주변에 총 소리가 들기고 폭탄이 떨어지니 ‘기독교호’ 비행사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서 말하기를, 이렇게 위험한 곳에 더 이상 올 수 없어 이번 1차 철수만으로 끝이다 고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비행기는 그만 이룩하고 만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유선생님은 감격하고 계셨다. 왜냐하면 비행기가 자기를 살린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께서 기독교 신을 증거하라고 자신을 1차만 뜰 수 밖에 없는 그 비행기로 실어 날렸다는 점을 지금도 한결 같이 확신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벌써 죽을 인생을 아직까지 이어오신 것은 결코 유 선생님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기독교의 신의 의지로 수행되어야 될 일이었다.



신이 없는 곳, 신을 믿을 수 없는 곳, 기독교 신을 인정하지 않는 죽음의 땅에서 자신이 기적적으로 벗어났다는 것은 이제부터 더 이상 자신의 개인적 뜻을 살리기 위해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덤으로 이어진 목숨을 온전히 ‘기독교 신’의 뜻을 전하는데 쏟아 부어라는 의미로 유 선생님은 이해하셨다.



결국 홍대위 목사 아들을 건지라고 보낸 비행기가 홍대위 목사 아들은 실어내지를 못하고 ‘기독교 신’의 아들인 유원상 선생님을 실어 옮기라고 하나님이 보낸 ‘기독교호’ 선교 비행기가 되고 말았다. 심안에 도착한 선생님은 거기서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거기서 황해를 건너는 배에 몸을 싣고 해방된 남한 땅에 밟을 수가 있었다.



“내 마음은 오로지 ‘기독교 신’을 증거하는데 있었지요. 용문산 나운몽 장로를 알게 되어 그 쪽 계통이 학교에서 서무과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마침 내 양녀를 대전에 있던 호수돈 여학교에 보내었어요 그 호수돈 여학교가 감리교 계통이거든. 평소에 ‘기독교 신’을 전파하는데 그저 얻은 내 생명을 거기에 던지기로 이미 작정한 이상 어서 신학교에서 정식으로 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기를 마음 먹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나간 감리교 목사님께서 용문산 기도원 신학교에 가지 말고 대전에 있는 감리교 신학교에 가라는 겁니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밖에 안 나왔다고 하니까, 그런 분들을 위해 ‘별과’ 코스가 있어 그것만 이수하면 목사가 될 수 있다고 해서 그래서 감리교 신학교를 다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신학교 도서관에 내촌감삼(우찌무라간조) 책이 있었던 겁니다. 그 책을 읽는 순간, 일제시대 때 만주에 있던 그 시절부터 찾고자 했던 참된 신, 제대로 된 신을 거기서 발견한 것입니다. 내촌감삼의 책을 대하고부터 더 이상 다른 신학을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신학교 내에서는 ‘유원상이 미쳤다’는 소문이 돌게 된 것입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이 내촌감삼이 소개하는 그 신의 뿌리를 캐내기 위해 모든 시간을 바쳤습니다.



그러다가 6.25 사변이 터지고, 신학교가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별과가 개설되지 못한 겁니다. 할 수 없이 누구의 소개로 나는 전도사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 전도사 4년을 보내면 그 때부터 목사가 될 수 있는 자격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서는 ‘나는 두 번 다시 제도 교회에 몸 담지 않는다. 제도 교회에 있으면서 교회를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아니다’라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 목사 자격 심사는 일단 날에, 주위에 나를 배려해 준 많은 목사님들이 나를 목사로 합격시켜 줄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그 날 아침에, 나는 하나님이 나를 짓눌러서 방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박차고 일어나서 심사 장소에 가기만 하면 나는 목사가 되고, 목사가 되면 형식적인 교회에 평생 몸 바쳐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께서 나를 그런 목사 되기를 허락하지를 않으신 겁니다. 나를 자리에서 못 일어나게 하시는 겁니다. 아무리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주위에서는 안타까워하지만 목사하고는 영영 이별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리어 기뻤습니다. 본격적으로 ‘엽서 전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내 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께서 전도하신다면 그것이 바로 전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엽사를 사서 일일이 성경 말씀을 적어서 온 사방에다 자비로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중에 독립 학교인 풀무 학교(농사 기술 양성 학교) 서무과장 일을 보면서, 성경을 가르쳐 달라해서 성경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있던 풀무 학교와 자매 결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한국인 대표로 내가 나가게 되어서 내심 과연 일본까지 진리를 전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그 때 박정희 시절 때, 일반인이 일본과 교류하는 것이 극도로 억제했던 때입니다.



비자를 허락되지 않는 거예요. 정보부에 아는 사람이 있어 비자 발급을 압력을 넣었더니 나는 사상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국회의원 두 사람을 보증으로 세워라는 겁니다. 마침 때 만주에서 알던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거기서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되어 그 때부터 정기적으로 일본에서는 하나님의 도를 엽서로서 혹은 강연으로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통해서 저는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으로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외형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신(內神)에서 결정되는 겁니다. 내 안에 신이 있을 때는 누가 뭐래도 교회인 것입니다. 만약 내 안에 교회가 확정되었다면 구태여 외형 형식 교회를 찾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



유 선생님은 잠시 자기 이야기를 접고 본격적으로 멀리서 온 손님들에게 자신이 해야 될 주님의 일을 하시려고 했다.



“이 목사님, 무지개를 아십지요. 무지개는 오직 하나의 빛에서 나오지만 그 색깔을 일곱 가지로 나누어지지요.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일을 하실 때는, 다양하게 일 하십니다. 저처럼 엽서를 등사해야 나누어지는 문서 선교도 있을 수 있고, 또한 목사님처럼 일하실 수도 있습니다.”



유 선생님은, 자기처럼 엽서나 문서 선교만이 하나님의 전도 방식이 아니라는 점을 일부로 겸손하게 제시하므로서 저와 저의 일행을 낙담하지 않으려고 배려하셨다.



“하지만, 이 목사님 이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가 가진 색깔만이 최고라는 것을 자랑 하지 말고 오직 하나의 빛에서만 나온 색깔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내촌감삼의 책에 보면 유일하게 등장하는 한국 사람이 한 사람 나옵니다. 김교신이 아닙니다. 소창제라는 분입니다.



이 분을 내촌감삼께서 무척 칭찬했지요. 그런데 그 분이 감리교 감독이 되고 난 뒤에 천주교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무엇이 염려되었는고 하니, 평생 살아도 천국 갈 만큼 착한 일 한 적도 없고, 평생 살아도 지옥 갈 만큼 나쁜 짓 한 적도 없으니 과연 내가 천국 갈지 지옥 갈지 종잡을 수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연옥이 있는 천주교를 뒤늦게 선택해서 개종하므로서 새로 자기 인생을 싸잡아 보겠다고 나선 겁니다.



바로 그는 자기 자신을 본 겁니다. 누가 자신을 이렇게 살게 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되겠느냐만 본 것입니다. 남의 무지개만 색깔만 본 겁니다. 빛을 보지 못한 거지요. 나도 70세까지 엽서 전도하면서 열심히 주의 일을 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거룩하게 보았고, 제도 교회에 속하지 아니하면서 주의 일 한다는 자부심도 가졌고, 남이 하기 힘든 전도를 특별히 하나님의 배려와 괸리 하에 움직인다는 것도 대단한 자랑거리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의 일에 어느 새 수십 년 하다보니 ‘나’, 바로 ‘나’가 그 주의 일 속에 끼어있었던 겁니다. 주의 일하면서 ‘내 자랑’이 거기에 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70세 될 때에 나는 바로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처음 알았습니다.



나는 스스로 엽서 전도 중지했습니다. 폐간을 단행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목사님, 병든 자라야 의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예수님이 의사로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 내촌감삼 선생님은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을 고칠 명약이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약을 먹어서 우리 병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 삽니다. 이 말은, 우리가 약으로 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스스로 약이 되셔서 자신의 살과 피를 뜯어 먹히는 식으로 자기 백성을 먹일 때만 우리가 고침을 받습니다.



내가 80세가 넘어 내 건장만 믿고 자전거를 과도하게 타다가 심장에 무리가 가서 아무 것도 못할 때, 마침 우연히 동네 문방구가 가니 복사기가 신기하게 문서를 복사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 때부터 나는 ‘아, 내가 힘들게 등사할 필요 없이 문방구에서 복사만 맡기만 엽서 전도도 가능하구나’해서 그 때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다시 엽서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자랑해야 합니다. 자신을 자랑하면 안됩니다.”



옆에 꿇어 앉아 계신 할머니 사모님께서 시종 방글방글 웃고 계셨다. 커피 잔의 커피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방 밖으로 나오니 마당에는 비닐 조각들이 찢겨 날려가고 있었고 노을 빛이 그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형식 있는 작별 절차가 싫어서 휑한 마당 한복판에 서서 한 마디 건네 보았다. “선생님에게는 현재 자녀가 없습니까?”



“양녀딸이 하나 있는데 캐나다에 가 있어요”



챙겨할 분을 던져버리고 황급히 뒤돌아서 버린 기분을 지울 길이 없었다. 천국까지 이어질 길을 채우고 채워도 못다 채울 이야기가 서로에게 전가한 채, 285km의 길을 되돌아 왔다.


 성재필(IP:58.♡.168.15) 07-01-20 13:57 
한평생을 신을 찾아 헤메는 인생도 자신의 구원을 장담하지 못하고 그 어느누구에게도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달하지 못하며 그저 자신의 몸이나 십자가 지신 주님께 질질 끌려서 천국 길에 있는 것이 인생의 행복일 것 같다는 ...
 신직수(IP:220.♡.9.66) 07-01-20 18:57 
피의 능력의 적용은 바람같이 우리가 알 수 없는 시간대에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판단할 수 없고 더더욱 자기 주? 를 판단한다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액션이라는 것도 확인합니다. 한 인간을 지옥보내고 천국보내고 만드시는 것이 주님의 능력이시니 인간들은 알던지 모르던지... 오직 주님의 그리스도이심만 증거되어지면 된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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