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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0 23:56:38 조회 : 1517         
가락-요한복음 16장 9절(부재)180116b-이 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221.150.139.88)

가락-요한복음 16장 9절(부재)180116b-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까 첫 번째 광고할 때 우리 김중우 집사님 광고 빠트린게 있다 해가지고 모일때는 헌금시간 있다는 그거 또 광고하랍니다.


 


 


자, 요한복음 강의 계속 해보면 다른사람에게 성령이 오게되면 다른사람에게 뭐라고 표현하느냐 하면 나 없는 요랑 해라. 나 없는 요랑 해라. 이것도 경상도 투인데 지금 방언 이해됩니까? 내가 없다는 식으로 나를 좀 생각해 다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성령받은 모든 사도들은 예수님과 똑 닮았어요. 내가 있더라도 나 없다고 여겨라. 왜? 나는 부재의 자리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 부재의 자리가 바닥의 뭐로 움직이느냐. 성령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자, 성령은 다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아까 그 질문한 분도 계시니까 다시 설명해 드릴께요. 중요하기 때문에.


 


 


마태복음 12장에 말씀에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 세상이 전부 다 사람들의 세계예요. 사람들의 세계인데 아까 그 사람에 대해서 제가 언급했잖아요. 사람들은 겉으로 보게되면 인간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 교육 받았다. 부모것이 가득 차 있다 라고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 할수 있습니다.


 


 


심지어 프로이드라는 정신 분석학도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저는 그게 틀렸다는 거예요. 라캉이나 지젤이라는 학자도 그렇게 이야기 해서 인간은 외부에서 온 그것으로 만들어 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자의 흔적이다.


 


 


겉으로 보면 맞는데 인간 내부에 사단이 있다는 것을 자꾸 철학자들이나 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의도적이 아니죠. 완전히 몰라요. 그렇게 철학을 연구하고 발표하는 박사들 과학박사가 로켓트를 올리는 과학 박사가 자기가 사탄의 대리 자기안에 악마 있다는 것을 인정을 안해요.


 


 


무슨 악마가 있는데 로켓트를 화성까지 올리느냐 이렇게 되요. 악마니까 올리지. 선교사인데 선교사가 악마다. 선교사가 되든 뭐가 되든 다 악마가 있다니까요. 그러면 내안에 악마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체 뭐를 자꾸 긍정할려고 하느냐 하면은 나는 존재한다 나는 여기있다.


 


 


존재라는 말이 어려우면 그냥 나 있다. 내가 있으니까 어떤 행동을 했을때는 그 원인자로서 나를 거기다가 자꾸 붙이는 겁니다. 물을 마셨다 했잖아요. 물은 누가 마셨다? 내가 마셨다. 내가 마셨다가 이게 오류에요. 사실은.


 


 


주께서 목마르게 하셔가지고 물 마시는 대리역할을 했다 이래야 되는데 문장이 너무 길잖아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내가 마셨다. 내가 마셨다 하는 겁니다. 주체가 따로 있어요. 내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대상포진 내가 얻을려고 한겁니까? 내 뜻대로 원대로 안된다니까요.


 


 


그런데 인간은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여기있다는걸 해가지고 여기서 자율적인 자기만의 행동을 나타낼려고 하는거예요. 인간은. 이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나는 있다. 있는 사람은 뭐 할수 있다? 행동할수 있다 이런 자기 생각으로 뭘 보느냐 하면은 자기 앞에 있는 예수님을 바라봐요.


 


 


내가 나를 이렇게 있게 한 것처럼 예수님도 나처럼 같은 존재니까 자기가 열심히 해서 메시아 하나님 아들이든 뭐든 하겠지라고 한겁니다. 그래서 제가 베드로 이야기 했잖아요. 베드로 그 다음에 예수님, 그런데 예수님 자꾸 떠난다는 거예요. 떠난다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뭐냐 하면은 ‘주님 제가 붙들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자, 붙들다는 행동에 대해서 누구를 붙인다? 내가 알아서 정신바짝 차려서 붙들겠습니다 할때에 예수님이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에 예수님께서 뭘 집어넣겠습니까? 다 잊어 버렸네. 그렇죠! 사탄을 악마를 집어 넣은거예요. 악마를.


 


 


너는 지금 모든 행동을 니가 한다 하니까 그 사고방식이 이미 악마로부터 전달받은 아담이 전달받은 악마의 사고 방식이니까 내 행동은 나 하기 나름이다라는 사고방식을 니가 지니게 되었다. 그 행동으로 나와 하나가 될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 가는 곳에 갈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라고 예수님이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들을 이 제자들을 어떻게 천국 보낼건데? 문제는 이 문제예요. 어떻게 천국보낼거냐 이 문제 아닙니까? 방금 이런쪽으로 이해한다면 자기가 예수 믿습니다 손 붙들어도 안되요. 이게. 안된다고요. 붙들면 떨치고 가버리는데.


 


 


심지어 부활하신 예수님 오셨을 때 제자들이 만질려고 하니까 예수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Don't touch! 건드리지마! 만지지 마!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갈때가 안되었다. 만지지 마!’ 경계죠 경계. 경계 또는 경계선. 예수님은 예수님이 부활 자체가 하나의 경계선이 된겁니다.


 


 


무엇의 경계선?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의 경계선인데 유일한 경계선이기 때문에 제자들도 이 경계선 넘어서서 만질수 없습니다. 열왕기하 이번에 열왕기하 했는데 이 대목은 제가 시간관계상 자세한건 다 못해요. 하지만 이건 빼논건데 열왕기하 3장 15절을 누가 한번 읽어 보세요.


 


 


열왕기하 3장 15절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자, 이 대목에서요. 모압전쟁인데 엘리사한테 부탁을 했지요. 이스라엘 왕이.


 


 


부탁을 해가지고 ‘아이고 모압이 쳐들어왔는데 어떻게 좀 안되겠습니까?’ 할 때 그 엘리사 하는 말이 거문고 타는 사람 또는 하프 거문고 옛날 악기 기타랑 비슷하니까 가지고 오너라 했습니다. 거문고를 타니까 그 다음에 뭡니까? 엘리사가 감동 되었어요.


 


 


거문고 왜 타야되죠? 그냥 감동받으면 안됩니까? 이 비슷한 이야기가 사울이 악신들렸을때에 다윗이 하프 뭐 거문고 하프 띠리리링~치니까 악마가 나가버렸어요. 악한 귀신이 사울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게 뭐지요? 기타들고 칠까요? 띠리리링~~하니까 악마가 띠리리링하고 가버렸어요.


 


 


기껏 악마가 악마의 적은 예수님이십니까? 아니면 노랫소리에서 나오는 그 에너지가 음에너지가 소리 에너지가 악마를 이깁니까? 그렇지 않잖아요. 보통 그 정신과 우울증 걸린 사람에게 뭐 치료법으로 무슨 뉴에이지 음악같은 것이 막 흘러 들어오죠.


 


 


여러분 잠 안올 때 베타파 틀면 잠 잘와요. 베타파 중에서 뭐냐? 빗소리. 츄륵츄륵츄륵. 빗소리 한방울 두방울 하다가 3초도 안되서 뻗어 버려요. 추척추척추척. 자연에 가까운 소리가 잠들게 한다 뭐 그런 효과 있는데 그럼 악마도 악마 쫓아내는 그런 음파 음역대가 있는가요? 파장 음역대가 있는가요?


 


 


육과 영 사이를 지금 구분하면서 눈에 보이는 실체로서 이 거문고가 등장한거예요. 또는 다윗의 하프, 기타도 등장하고. 그렇다면 여기 엘리사가 거문고를 친다는 말은 엘리사가 갖고 있던 이 예언에 대해서 너희 이 기존에 있는 기존의 왕들 또는 나라들이 그걸 자기들을 지탱하는 힘으로 사용할것이 아니고 막는겁니다.


 


 


왜 사용해서는 안되느냐. 이게 모압이 쳐들어왔다는 말은 모압 쫓아내면 잘된다가 아니라 모압이 하나님의 사자예요. 모압이 기존의 북이스라엘을 징계하고, 경고하고, 책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모압을 동원시킨겁니다.


 


 


따라서 나라가 승리했다고 해서 엘리사 덕분에 승리했다고 해서 지금 잘났다고 우리가 괜찮았다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이다 이말이죠. 육은 어디까지나 육에 불과하고 육의 영역과 영의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서 엘리사와 왕을 선지자와 왕을 구분하기 위해서 이 경계선을 친게 뭐냐하면 하프라는 것, 또는 거문고를 동원시킨 겁니다.


 


 


어떤 구역이 나누어 져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 경계선에서.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신약오게되면 경계선이 뭐가 되느냐 하면 존재한다는 자체가 무조건 육이 되요. 존재한다는 자체가. 그럼 존재의 반대말은 뭐겠습니까? 존재의 반대말은 부재가 되죠. 부재. 없음이 되죠.


 


 


없음이 있음을 살리는 거예요. 없음이 있음을 살린다는 말은 예수님이 없어지는 것이 그냥 없어졌습니까? 죽어서 없어 졌습니까? 사람에게 죽어서 없어졌지요. 그러면 그 말 다시 해보면 죽은자가 산자를 다시 살린다. 다시. 다시 살리는 거예요. 제대로 살렸습니다.


 


 


엘리야가 죽고 시체가 있을때에 모압 도중에 쫓겼던 사람이 시체를 갖다가 던졌는데 우연히 툭 엘리사 시체에 붙으니까 아이고 시체가 살아났어요. 엘리사는 안살아 났어요. 엘리사는 안 살아나고 시체가 살아났거든요. 그런데 엘리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입니까?


 


 


엘리야의 하나님이예요. 엘리야하고 엘리사하고 갈라질 때 분명히 엘리사가 뭐냐 하면은 엘리야의 하나님이여 나에게 두배의 능력을 주소서 해 놓고 엘리야가 벗어놓은 그 옷을 찟어 가지고 설렁설렁 하니까 건너왔던 요단강이 다시 갈라지면서 건너 갔거든요.


 


 


요단강 갈려져서 건너갔다는 말은 무슨 뜻이예요?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을 재연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엘리야의 하나님은 지금 엘리사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땅에. 없지요. 없으니까 부재인거예요. 부재.


 


 


그 부재를 엘리야의 그림자가 되는 엘리사는 지금 뭐로 보느냐? 시체가 되있는거예요. 시체는 있는데 그 시체에다가 죽은 인간이 갖다 붙으니까 어떻게 됬다? 아이고 살아나 버렸어요.


 


 


시체가 그러면 누가 제대로 산 사람이예요? 시체가 엘리사는 시체가 제대로 살고 있는거고 그 붙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그 죽은 자 덕분에 살아난거죠. 그래서 산자는 죽은자의 유산을 이어 받아야 한다는 공식이 나옵니다.


 


 


성도는 누구의 유산을 받아야 된다? 사람의 손에 죽었던 죽은자의 유산을 이어받는 것이 천국이예요. 천국은 그냥 천사 모였다고 천국이 아니고 이 땅에 와서 죽었던 자의 세계가 천국이예요. 아들의 나라.


 


 


죽었다고 가는게 하늘나라 아니고 죽은자의 유산이예요. 죽은자의. 그럼 죽은자의 유산이 될려면 죽은자가 동일한 사태와 사건이 이 땅에서 일어나야 되겠어요? 안 일어나야 되겠어요? 일어나야 되겠죠.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자만이 영생을 얻는 거예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이게 무슨 조건이냐 하면은 예수님 본인 조건이예요.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그러니까 예수님 살았던 모든 것이 내 뜻이 아닙니다. 내 뜻이 아닙니다를 연속적으로 살아온 거예요. 태어난 것부터 돌아가실 때 까지 내 뜻이 아니였고 누구 뜻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가 뜻입니다가 계속 연속해서 다 이룬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 아버지 뜻이 이 땅에 뭐였냐? 사는거 였습니까? 존재였습니까? 부재였습니까? 부재. 오늘 제목은 부재. 존재가 아니고 부재가 되는 거예요. 부재가 되니까 예수님 그냥 떠나버리고 떠나버리니까 사람의 존재의 세계에 구멍이 뚫려 버렸어요. 떠나버렸으니까. 떠난 빈 자리는 없는 자리죠. 제목대로 부재.


 


 


없는 자리가 떠나 버렸다. 없는 자리 떠나버린 그 자리에 여기에 누가 오느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내가 가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다. 내가 가지 아니하면 너를 살릴 부재의 자리가 생기지 안는다 이 말이예요.


 


 


늘 죽을 때 까지 예수님하고 붙어 있는 것은요 이것은 부처하고 그 제자들이예요. 부처는 죽을 때 까지 제자들과 함께 있었잖아요. 예수님은 정내미 없이 툭 먼저 떠나버린거예요. 떠나버리니까 제자들은 닭 쫓던 개가 되어 버리니까 흩어져 버렸죠.


 


 


부재의 자리입니다. 그들은 존재의 자리. 그들은 부재의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자기 각자 고기 잡으로 갔잖아요. 그때 이 부재의 자리에 누가 왔습니까? 성령이 오신거예요. 성령이 와서 뭐냐 하면은 성령이 딱 오게 되니까 존재에서 부재로 빠져 버린 이 과정 또는 이 경과, 과정 경과에 의해서 유발된 새로운 세계.


 


 


이걸 세상이 볼때는 이거는 뭐냐 하면은 이걸 전체를 다 합쳐서 존재와 부재를 다 합친 이것을 가지고 이렇게 할수 있어요. 초과만물. 현재 모든 것의 존재를 모은 것은 만물이죠. 그런데 그걸 초과한다고요.


 


 


초과하니까 보이는 것만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 까지 전부 다 통합하는 겁니다. 통합하는데 그게 범위만 넓어졌다고 중요한게 아니예요. 누가 거기 중심을 잡고 누가 그걸 흔들어 대고 누가 모든 변화를 장악하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그게 성령 오게되면 너희들과 함께 있었었는데 지금은 떠난분이 초과만물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때 이것을 거역하는 사람은 이 생에도 구원받지 못하고 오는 세계에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성령은 절대로 성령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예요. 성령은 부재를 만들 수 없어요. 부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아니고 성자, 예수님만이 부재를 만들수가 있습니다. 왜? 존재였다가 부재가 될 수 있는 거거든요. 성령은 처음부터 계신분이기에 그냥 계신거예요. 부재가 나올 리가 없어요.


 


 


예수님은 존재였다가 없어진 분이예요. 존재였다가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는 죄다. 죄다. 한꺼번에 전부 다 처단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걸 초과만물을 총괄하고 진두지휘하는 것을 부재라 하는데 이걸 순수부재라고 한다면 부재라 하는 것은 개인적 부재이지만 순수부재라 하는 것은 개인이 그 순수함이 모든 것을 장악, 순수부재라 한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순수부재에 의해서 뭐되냐 하면은 구원이 되요.


 


 


부재란 말은 알려주는 것, 전달하는 것, 다른 쉬운말로 하면 모든 만물은 주님안에 응집되있다. 이게 고린도 전서 1장 10절에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은 누굴 인하여? 주로 인하여 주로 말미암아 있는겁니다.


 


 


고린도전서 3장 한번 봅시다.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21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너희라 하는 것은 성령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누구든지 주를 성령이 없이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시인할수 없다 했지요. 그게 성령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세상 중심은 존재 중심이 아니고 부재, 순수부재, 없음 중심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두 번째 강의에 뭐라고 했습니까? 나 없는 요량으로 하라 이말이죠. 아버님 어머님 저 없습니다. 없는 요량하라.


 


 


그걸 가지고 제가 어느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 했습니다. 지난번 강의가 무슨강의 였죠? 안양강의에서 제목이 좀 특이해요. 제목이 세마포 귀신. 세마포 귀신. 그 세마포가 뭐냐 하면 예수님 부재하고 난 뒤에 남겨놓은 흔적이 뭐냐하면 포개놓은 세마포잖아요.


 


 


그 세마포 같은 찌끄러기 같은 존재가 누구냐? 성도들 사도들이예요. 고린도 전서 4장에 보면 우리가 마지막때 쓰레기 취급한다 이 말이죠. 만물의 찌꺼기 취급한다. 너희는 잘되고 우리는 고생하고 이게 예수님 가신길 답습하는 겁니다.


 


 


그리고 다 너희는 그래놓고 세상에 대해서 부러워하지 말라 말이죠. 세상은 존재해서 가지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 말이죠.


 


 


뭐 돈을 얼마 벌고 그런거 부러워하지 말고 부러워 하려거든 내가 귀신이라는 것, 정말 자랑할 것은 내가 죽은 존재라는 것, 나는 죽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니까 나는 주님이 들어있는 귀신, 주님이 함께 있는 귀신 그걸 자랑하라 이말이죠.


 


 


그리고 만물은 다 너희것이라. 순수부재 존재 함께 있기 때문에 중심지점에 있기 때문에 만물이 너희것이라. 그 다음에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고, 심지어 사도바울이 대장 아니예요?


 


 


사도바울이 대장으로 있는데 여기 뭐라고 합니까? 바울로나 아볼로나 게바 누구냐 베드로예요. 바울로나 아볼로나 게바 마저도 누굴 위해서? 너희를 위해서 종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겁니다. 에이 참 사도바울은요 이런말 할 때 가슴 아파요.


 


 


왜냐하면 사울은 나름대로의 포부가 있고 희망이 있어요. 뭐냐 하면은 빨리 부르실 것이다. 언젠가 나를 불러서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 볼거다라는 보고싶은 사람, 아까 이야기 했잖아요. 부재의 고통이 사랑의 측정의 양이라고.


 


 


그렇게 보고싶은 예수를 보고 싶은데 누가 발목을 잡는가? 너희들이 계속 살아서 복음 전해주세요. 발목을 잡도록 주께서 그렇게 조치를 하신거예요. 세상에 떠나는 사람에게는 협박은 안통합니다. 떠나겠다는데 협박이 통합니까?


 


 


여기서 뭐 사장님계시지만 어떤 직원이 사표를 딱 품고 사표 좀 낼려고 하는데 ‘그래 이따위로 하면 되겠어요!!!’ 지금 사직서 낼려고 하고 있는데,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되겠어요!!! 당장 내일부터!!’ 할 때 ‘Stop. 사장님 stop.’ 사표 내버려요.


 


 


사표 낼려고 하는 사람한테 그 사장님의 호통이 겁 나겠어요? 겁안나지요. 니가 이런 죄를 지었다!! 아 시작도 하지 말고 알았어 내가 떠날께! 나 죽으면 되잖아 그래. 참 이게 말 함부로 할게 아니예요.


 


 


지금껏 자식을 가장이 돼서 이만큼 다 키웠고 지금은 나 하고 싶은대로 좀 하게 놔둬라. 기타들고 원양어선 타든지 놔둬라! 지금은 나 하고 싶은대로 하고 싶다. 그냥 암에 걸려 죽게 좀 나둬! 암 같은소리하네. 상상 암인데. 드라마 이야기입니다. 황금같은 인생.


 


 


상상암걸린. 그 천호진이라는 탈랜트 하는 그 말이 죽는것도 내 맘대로 못하냐. 죽는 것은 좀 나한테 맡겨줘. 내가 죽겠다잖아. 그 드라마 주인공이 죽겠다는데 떠나겠다는데 겁나는게 없어요.


 


 


무당집에 보면 이런게 있어요. 무당 제사할때나 굿할 때 보면 눈여겨 보면 뭐가 있느냐 하면은 이게 있어요. 실 있잖아요. 투박한 색깔의 실. 누런 실. 실을 이렇게 묶어놓은게 있다고요. 묶어 놓은 것. 보신적 있습니까? 무당들이 이런거 사용해요.


 


 


뭐땜에 사용하는지 모르겠는데 자꾸 이게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어차피 인간은 부재의 함께한다면 이것은 지금 이미 삶의 방향이 정해져 있어요. 삶의 방향이 정해져 있고 갈곳이 정해졌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편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시험이 이미 합격했잖아요. 합격했으면 지금껏 마음껏 여자들 같으면 지금 화장하고 쌍꺼풀 수술하고 맘대로 해요. 왜? 합격했으니까. 성도가 이미 합격했잖아요. 그럼 지금 무슨날만 기다린다? 떠날 날만 기다린다. 어서 불러주기만 기다리는 거예요. 미련 없어요. 미련 뚝이예요. 없어요.


 


 


뭘 대상포진으로 죽이든지 독감 걸려 죽이든지 이래 죽이든 그것 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이래죽이든 저래 죽이든 죽여 주시기만 한다면 더는 소원없어. 죽이기만 하시면 더는 소원없어.


 


 


만약에 어떤 부교역자가 교회 취직하러 가는데 ‘그래 전도사 너 이 교회에서 포부가 뭐냐?’ 하면 ‘죽는겁니다! 죽여 주신다면 더는 소원없습니다.’ ‘그래, 죽여주마.’ 이렇게 될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말을 오해해가지고 니가 이 교회에 충성을 다하는구나 목숨 바치는 구나 오해해 가지고 그 멘트 써먹으라니까.


 


 


이 교회에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이런식으로. 오해한거죠. 주님을 위해서 목숨바치는데 복음을 외치다가. 그런식으로 이땅에 살면서 나이 20대 30대 관계없어요. 70됬다고 해가지고 뭐 이제 죽을래 절대 안됩니다. 80이 되보세요. 술 친구 불러줘야지. 넋두리 하기 위해서 넋두리. 외로워서.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자기가 잘해준 사람 떠나가 버리면 자기 존재의 반이 날라가서 그 고통이 심하잖아요. 그저 마누라, 마누라 이름불르면서 술이나 막걸리나 소주나 퍼 마시면서 해요. 주님같은 건 없어요.


 


 


그러니까 이거는 성령이 오게되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에 이미 합격했고 그쪽으로 우리는 총 헤쳐모여 할거고, 그리고 기쁜소식이 딴게 기쁜소식이 아니고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이미 죽었고 그리고 실제로 이 몸도 주님쪽으로 주 안에서 잠잔다라는 복이 잖아요.


 


 


이제는 편안히 쉴 날만 있어요. 쉴 날만.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도대체 이 선물보다 무슨 선물 줘야 만족합니까? 뭐 해태 종합 선물세트 드릴까요? 치! 이 땅을 미련 두지 말고 바꾸고 그냥 죽으면 되! 이것보다 더 큰 선물 어디있습니까?


 


 


모든 공포와 두려움과 쫓김, 벌벌떰, 죄로 오는 그 압박감 빚쟁이한테 쫓기는 거, 누구한테 사과못한 것, 이런 죄책의 무게, 그런 거 비오는 날 강아지가 털 털듯이 이제 전부다 털어버리세요. 남한테 미안해 하지도 말고 자기 자신 책임 지지도 말고.


 


 


이제는 나 하고 싶은 대로 누구 말대로 드라마 말대로 이제는 나 죽는거 내 마음대로 하자. 그렇게 하란 말이죠.


 


 


예수님이 누구한테 겁먹은적 있습니까? 없지요. 그게 남의 일처럼 느껴집니까? 성령이 오게 되면 남의 일이 아니고 지금 그대로 우리한테 넘어온 주님의 뇌세포 예요. 우리한테 넘어온 주님의 뇌세포. 시냅스.


 


 


자, 여기서 주께서 오실 때 존재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떠나버리고. 이 부재의 자리에다가 주의 성령이 오게 되면 어떻게 오느냐 하면 제자들이 있으면 성령 이제 오시고 그 뒤에 성령 누가 보내고 예수님 보내시고 예수님 뒤에 아버지와 함께 있지요.


 


 


그러면 사람들이 이렇게 성령오는 쪽으로 봐야 되는데 옆구리에 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삼위일체라는 거예요. 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 세분이라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성령을 안받은 티를 팍팍 내고 있는 거예요. 옆구리 있을 자리가 없어요.


 


 


정말 성령 받으면 성령도 한분이고 예수님도 한분이고 아버지도 한분이예요. 하나 하나 하나 하나 순서대로 맞이할 뿐이예요. 삼위가 있을자리가 없다니까 삼위가. 이거 알아서 뭐 할건데? 이거 알아서. 이렇게 눈으로 볼 이유가 없잖아요.


 


 


정말 맞딱드린다면 성령의 하나님 안에 예수님 하나님 안에 아버지 안에 같이 있고 우리가 하나가 되는 거예요. 삼위요? 없어요. 전부 다 합쳐서 전부 다 전체가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내가 하나이니이다가 성령 오게 되면 이제부터 예수님 아버지 성령 모두가 네분이 아니고 전부 다 하나가 되고 이 하나의 원칙이 성령 빼놓고 우리와 우리까지 100명이 모여도 전부 다 뭐가 되느냐 하면은 전부 다 하나가 되. 성령안에서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성도의 교제라 하는 것은 뭐냐? 하나됨을 확인하는게 성도의 교제이지요. 하나됨을 확인하는 것. 둘이 아니고 하나됨. 그 하나됨을 에베소서에 보면 한몸이라고 하는거예요. 에베소서 4장에 하나만 얘기하는거 아니예요.


 


 


세례도 하나요, 몸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다 합치면 여섯이요?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그래서 하나예요. 하나입니다. 하나.


 


 


내가 상대할분이 아니고 나의 존재를 부재로 만드는 분. 있어도 없는 존재로. 있음 없음 우리는 그러면 다 가루가 되잖아요. 아니예요. 그분이 하나이기 때문에 부재가 우리 이 세상에서는 부재이지만 아버지 나라에서는 존재잖아요.


 


 


새로운 존재가 초과된 만물을 지휘하는 그 염력이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를 부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거죠. 새로운 피조물. 예수님처럼 있는 존재.


 


 


그래서 둘이 아니고 하나다. 아담과 하와가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것처럼. 모든 성도가 합쳐서 하나가 되는 거예요 하나. 어디있든지 간에.


 


 


그 하나인데 그 하나는 사랑의 하나로서 묶였기 때문에 전부 아무리 관계를 매저도 하나의 사랑만 주님의 사랑만 드러내게 되어 있어요. 상당히 어렵지요? 어려운거 이해합니다. 어렵지만 여기서 멈출 제가 아닙니다. 할수 없어 이왕 어려운거.


 


 


그러면 평소에 존재에서 나오는 하나 하고 부재, 내가 없는 가운데서 하나의 차이점이 뭐냐? 내가 여기 있어버리면 이 하나는 조건이 있어요. 내가 여기 있다는 조건이 뭐냐 하면은 시간과 공간입니다.


 


 


몇시에 내가 있고 나는 몇 년까지 살고 나는 80세에 죽었다 죽었다라는 시간이 형성되고 어디 있으며 지중해에 있지 않고 한국땅에 한반도에 있으며 이게 환경이 되어서 그런 배경을 가지고 나는 지금 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너 지금 어디 있는데? 그냥 있어. 얘가 이상해. 어딨어? 지금 어느군에 있는거야? 강남 대치동에 있어. 어 그래? 그래, 언제 만날까? 5시에. 항상 시간과 공간이 생긴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이게 있어줘야 이게 그 사람과 둘이가 만날 수 있는 그게 되잖아요.


 


 


그런데 부재의 공간에서는 이런 시간과 공간이 필요치 않아요. 지금은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구와 함께 있는가. 어디서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어디에 살든 관계없어요. 북한에 있든지 한국에 있든지 뭐 관계없어요.


 


 


그리고 얼마나 오래사는가 그것도 상관 없어요. 50,40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누구와 함께 있는가? 그게 마태복음 11장에 보면 변화산이죠. 지금 엘리야 나이가 몇 살이냐? 모세가 몇 살이냐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디있느냐에 대해서 산 밑에 있는 베드로하고 야고보 요한은 굉장히 중요시 여겼어요. 산밑에 있다가 산위로 올라갔거든요. 갑자기 선물을 줬는데 그 선물이 뭐였죠? 빌라 세채. 초막 세채를 지어드리겠다는거예요.


 


 


초막은 산밑에서 누가 살던 곳이예요? 자기의 시공간을 결정하던 자기의 시공간 존재를 결정하던 요건을 어디에 함부로 하늘나라에다가 집여 넣습니까? 그거 집어 넣으면 예수님이 아이고 베드로야 요한아 모세야 엘리야야 살자 이렇게 나올줄 알았어요?


 


 


엘리야와 모세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모세가 시내산 올라갔지요. 그때 벤또, 도시락 몇 개 가지고 올라갔습니까? 생수는? 에비앙 생수는 몇 개 가지고 올라갔어요? 없어요. 그런데 몇일 있었습니까? 40일.


 


 


뭐 코펠 가져가고 라면 가져가고 없어요. 그냥 올라갔는데 40일 있었습니다. 무엇을 먹을거냐? 내 존재를 어떻게 할것이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 주님과 함께 있으니까 주님의 조건에 맞는 존재된 모습으로 내려오니까 밑에 있는 사람이 그 영광을 이기지를 못해가지고 할 수 없이 그 송월타월, 송월타월 알아요?


 


 


송월타월 얼굴에 딱 이렇게 해가지고 자기에게 비취는 영광으로 인하여 시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배려해가지고 이게 경계선입니다. 타올이 충분히 경계선이 되어서 대화는 되되 얼굴을 못보고 대화는 돼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처럼 고린도후서 4장에 보면 지금 이 시대는 그 수건이 뭐로 바뀌었냐 자유로운 예수의 영으로 바뀌었다는 것 .


 


 


이제 수건은 벗겨지고 성령안에서 우리가 이땅에서 어떤 행새를 해도 뭘 해도 주님 보시기에는 그것이 바로 용서에 대해서 사죄의 대상이 됩니다. 니가 존재하기 때문에 없을수가 없었다 이 말입니다.


 


 


니 속에 사탄이 존재하기 때문에 너는 사탄의 대리자 이기 때문에 나는 너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고 너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야. 그래서 죄 없는 자가 뭐다? 돌로 쳐라 이 말은 뭡니까? 사탄과 무관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그런 이야기예요.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이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오직 주님만이 사탄과 관련없는 자유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진리가 너희를 이 예수님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요. 내가 품어주면 그것이 곧 생명이니라. 내가 품어주면.


 


 


이것을 성령을 안받은 사람에게 이런 강의를 한번 해보세요. 귀신시나라까먹는 소리입니다. 왜? 그런 소리해서 교인 얼마오고 헌금 얼마 나왔어? 이렇게 따지죠. 그런게 진리라면 당신 말이 진리라면 교회가 커져야 되지 않겠느냐 이러는 거예요.


 


 


진리는 하나님이 진리고 니가 진리라면 하나님이 진리를 안도와 줄 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도와준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교회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야 그게 설득력이 있지 않느냐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사도바울 교회 몇 명이였습니까? 그리고 교인수가 얼마나 적었으면 편지에 사람 이름이 들어갈 정도예요. 아무개 외 2600명 이거 없어요. 아가보의 집에 몇 명 별 볼일 없어요. 앞으로 교회가 잘될지 어떨지 그것도 보장 못해요. 그냥 말씀만 전할뿐이예요.


 


 


왜냐면 구원되기로 작정된 자만 구원되는데 본인이 몰라요. 사도바울은 누가 작정된지 몰라요. 많이 몰려온다고 그게 구원받은 사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정신머리가 교회 어떻게 교회장사 해보겠다하는 그런 정신머리는 어떤 복음을 들어도 전부 다 ‘이건 내 존재야. 내 존재를 위한거야. 존재의 잘남의 증거물이야.’ 그걸 붙들고 있으니까 그게 바로 우상숭배다 이말입니다. 교회가 우상이예요. 우상숭배예요.


 


 


자, 그 다음에 진도 나가 봅시다. 이 본문 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렸다. 봅시다. 자 요한복음 16장. 자, 그렇다면 보혜사가 오셔서 하시는 일이 뭐냐? 십자가 사건을 자꾸 거론해요. 십자가 사건을.


 


 


십자가 사건 때문에 예수님이 같은 존재로 있다가 부재로 없음으로 자리를 만들었잖아요. 없음으로 갔잖아요. 세마포 남기고 사라져버렸어요. 이 사라진것에 대해서 모든 예수님을 예수님 오실 때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다 관련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


 


 


방공망. 방공망이 뭐냐하면 전파를 쏘아 가지고 레이다를 쏘아 가지고 적기가 오는지 전부다 촘촘히 레이다 기지에서 막 쏘게 되면 여기서 막 이게 거의 빈틈이 없잖아요. 다 있지요? 예수님께서 모든 세상을 자기의 죽음에 관련에서 전부다 레이다 전파를 다 쏘아대가지고 다 망으로 만드는거예요. 전부 다.


 


 


이 모든 하는일이 결국 어디로 몰리게 되어 있다? 예수님을 제거하는 쪽으로 전부 다 관련된 일들이 벌어져요. 일들이. 따라서 성령이 오게되면 이 부재의 자리에 딱 오게되면 예수님 십자가에 대해서 영원토록 계속 가는 겁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이게 요한계시록에 나오죠. 요한계시록도 사도 요한이 썻는데. 거기에 뭐 되어있느냐 하면은 1장 7절에 보면 그를 본자도 요한계시록 1장 7절에 아멘 볼지어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그를 찌른자들, 찔렀다는 사실을 성령께서 핵심요소로 방공망을 형성하는 거예요. 인간이 사람을 죽였잖아. 사실은 인간이 죽인게 아니고 인간 배후에 누가 죽였다?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꽉 물은거예요. 물으면 피나지뭐. 꽉 물은거예요.


 


 


그러나 결정적으로 주의 일은 좌절시키지 못합니다. 꽉 물은거 보고 ‘이게 어디서 물어!’ 하고 그 뱀의 대가리를 쳐버리는 거예요. 끽 하고 죽지요. 주님과 마귀의 싸움이였습니다. 사실은 사탄은요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고 주님의 원수예요.


 


 


왜냐면 하나님도 사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리는 종이기 때문에. 아들의 대한 원수예요. 아들은 십자가로 다 이루었고 사탄은 이미 인간을 장악함으로서 다 이루었다고 이룬척하고 있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세상신이 인간의 모든 영혼을 아담의 영혼속에 전부다 자기 마음을 복제해서 다 집어 넣었기 때문에 꽉 차 있는거죠.


 


 


제가 그 이미아 성도님 그 죽었둥 살둥했다 글쓴거 있죠. 거기에 댓글하나 달았잖아요. 그게 뭐냐하면 마치 제가 그 구워봐서 그 붕어빵 구울 때 원판 불판에다가 돌아가면서 하나씩 앙꼬 집어놓고 밀가루 붓고 한바퀴 돌고 그 집어넣듯이 팥 앙꼬 집어 넣듯이 사탄이 마음을 집어 넣는데 그 사탄의 마음이 뭐냐 자기 의입니다.


 


 


사탄은 뭐냐? 사탄은 어디 있느냐? 자기 변명, 합리화 자기 정당성 그게 나의 정의. 그런데 사도행전에 1장 8절에 보면 누구의 증인된다? 나의 증인이 예수의 증인되는거 이거 불가능 합니다. 이거 죽지 아니하면 우리가 존재에서 부재되지 아니하면 있을수 없는 거예요.


 


 


성령이 아니면 예수의 증인이 안되요. 꼭 그 자기 잘난거 하는데 항상 비교 하기를 남하고 비교하면서 자기 잘난거를 자랑하겠죠. 상세한 것은 유투브 강의 올렸으니 한번 들어보세요.


 


 


어쨌든 간에 이 방공망에 모두 걸쳐 있으니까 성령께서 이 모두 걸쳐있던 이 모든 것에 대해서 뭐로 규정하느냐? 죄로 규정합니다. 죄. 죄로 규정할때는 그 근거가 있어야 되지요. 근거가 뭡니까? 십자가.


 


 


인간에 의해서 하나님이 살해당한 그 근거로서 죄에 대해서 따지고 그 다음에 뭐가 의로운가를 따지고, 그 다음에 뭐가 심판이라고 하는데 이걸 다른말로 하면 판단기준 세상을 보는 판단기준에 대해서 시비걸고 따지는 겁니다.


 


 


판단기준에 대해서 뭐가 죄며 뭐가 의로우며 뭐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것이냐에 대해서 딴 기준은 없어요. 오직 십자가를 기준으로 해서 이것을 지적하는 겁니다. 지적하는 것은 아 이런 의가 있네. 아니요. 아, 니가 죄 피했구나. 아니요. 니가 이거는 판단해보니 괜찮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십자가로 비교해 볼 때 어떤 짓을 해도 우리는 죄에 대해서 몰랐고 의에 대해서 몰랐고 판단기준 글러 먹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날마다 지적받지요. 그 지적받는 중에 한 예를 찾아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자 여러분 피곤하겠지만 조금만 하면 끝나는 겁니다.


 


 


로마서 8장 26절 한번 읽어 보세요.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그 다음에 뭡니까? 빌바를? 알지 못하나. 책망이죠. 마땅히 어떻게 책망하느냐 탄식하면서.


 


 


탄식하면서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빌어요. 기도라는 것은 인간의 속내의 솔직함이 그대로 노출되잖아요. 노출되는데 막상 노출되고 보니까 하나님 판단 기준에 딱 비춰보니까 뭐다? 십자가에서 하나님 죽을 수밖에 없는 그 기준이 그대로 노출되는 거예요. 그러니 탄식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인간이 내놓는 그 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사탄의 마음이기 때문에 누구를 위한거다? 누구를 증거 하는거다? 남? 타인? 아니죠. 나 잘되라고 기도하잖아요. 내가 생각해도 말 참 잘했다.


 


 


기도가 누구 잘되라고 기도하는 겁니까? 나 못되라고 기도합니까? 나 잘되기 위해서 기도하잖아예요. 나 잘되기 위해서. 나라는 내 존재, 내 존재를 붙잡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성령께서 하는 기도는 뭐냐 하면은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자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한 것을 그 다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영화롭게 그 다음에 영화롭게 확증했지요. 수시합격했잖아요. 합격된 것을 니가 왜 모르느냐 이 말이죠.


 


 


주님이 정했는데 니가 왜 새삼스럽게 니 인생에 왜 손대느냐 이말입니다. 왜. 니 인생을 꼼지락 꼼지락 갖고 노느냐 이미 확정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라 하는것은 십자가가 올때에 ‘맞습니다. 우리속에 마귀있어 가지고 아벨 동생을 죽였습니다. 하는 말처럼 내가 하나님을 죽인 사람중에 한사람입니다.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라고 인정하면 되요.


 


 


왜? 인정을 해도 구원받는 이유가 구원받기 때문에 그게 성령에 의해서 자신의 부재가 나오면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어있다 이 말이죠. 나는 아니고요. 나는 틀렸고요 주님이 옳았습니다를 증거한다니까요.


 


 


그 증거를 스스로 실시한자가 바로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린 자. 십자가에 동기동창. 같은 십자가에 달리는거. 그 어떤 강도는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지요. 그게 중요한거예요. 하나님 예수님 풀어주시고 이런 인간은 지옥갔잖아요.


 


 


그런데 천국간 강도는 풀어달라고 했습니까? 아니면 오늘밤 이야기 했습니까? 예? 저를 기억해달라 했지요. 뭡니까? 끝났다는 거예요. 이 끝남이 혼자 끝난게 아니고 누구와 하나가 되어서? 주님과 하나된 그 끝남이 사실은 모든 인생의 복 받은 인생의 마지막 주어지는 최고의 축복을 강도가 되어서 받았습니다.


 


 


주와 하나가 되는 것. 이제는 영원히 사는것만 남았어요. 그동안 가스관 올라간다고 고생 되게 많았어요. 사람이 거짓말하면 스트레스 얼마나 받습니까. 남 몰래 남 잘 때 야간 근무하면서 담 타고 넘어간다는 것이 그것도 가정을 위해서 그렇게 했을거예요. 가정을 위해서. 자기 도박 빚도 그것도 갚아야 되지만. 가정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요.


 


 


가정하나 살리기 위해서 그 도둑질한다는 그것이 가장으로서의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Bravo, my life. 이거 모르죠? 중년 청년들의 로망이다 이말입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했던 사람이 마지막 위로 받을 것은 인생 잘살았다! 하고 이렇게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것, 자기 칭찬하는 것,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Bravo 멋졌다 이말입니다.


 


 


조금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그러니까 죄에 대해서 판단 기준에 대해서 우리가 육적인 요소가 있잖아요. 그러면 그냥 사세요. 살게 되면 성령이 와서 이런 짓거리 너 잘났다고 증거하면서 사는거 맞잖아 그 답변은 정답은 나와 있어요. 네 나 잘나기 위해서 이런 짓 했습니다. 그래도 되잖아요.


 


 


그게 구원 받은 사람 아닙니까? 되도않는 주의 영광을 뭐 하늘나라 확장을 위해서 그런 입에 발린 거짓말좀 하지 말란 말이죠. 월급 안주면 다 안하잖아요. 주의 일이고 뭐고 다 돈과 관련되 있잖아요.


 


 


왜 그런 소리 하면 되잖아요. 뭐 그거 챙긴다고 지옥갑니까? 인자를 거역해도 구원받는데. 그렇잖아요. 인자를 거역해도 구원받잖아요. 성령오게 되면. 성령이 우리에게 죄임을 알려주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편하게 죄짓고 살면 되는데 부산을 떨고 요란을 떨고 우상을 섬기면서도 아닌 척하고 그래놓고 잘난척하고 변명을 하는 저희들입니다. 여전히 마귀의 속성이 유감없이 터져나옴을 주께서 아시고 조기 합격시켜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제는 못난 인간 조기합격시켜 주신 우리 주님만 증거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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