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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7 13:20:20 조회 : 731         
강남-요한복음 16장 21절(환원적 해석)180320b-이 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64.246)

강남-요한복음 16장 21절(환원적 해석)180320b-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해 봅시다. 제가 그 단절이라고 했는데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왜 이런 예를 드느냐. 예수 믿은 나, 성령받은 나, 이제는 잘 될걸야 충분히 격려해도 되는 문제를 근심이라는 것을 왜 이렇게 구태여 집어 넣었는가?   


그것은 제가 아까 단어하나를 썼는데 굴곡이라는 말을 썼거든요. 굴곡은 뭐를 의식해서 뭐 아니고 굴곡입니다 라는 말은 단선 또는 매끈한 면. 참기름 발르듯이 이렇게 매끈한 것. 매끈한 선, 또는 매끈한 아무 장애물 없는 깨끗한 것으로 가는것이 아니고 굴곡지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을 거기에 대해서 성경을 한번 찾아 봤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4장 32절에 보면 엘리사 이야기 거든요. 엘리사 이야기가 수넴 여인에게 찾아와서 참기름 맞지요? 수넴 여인 맞지요?


수넴여인에게 혜택을 주지요. 혜택을 주는데 아들 없는데 아들 있게 했지요. 잘 사는 데 아들이 없어 문제예요. 아들 줬는데 아들 줬다고 좋아했는데 기쁘죠? 아들 생각도 안했는데 아들 달라고 기도 한것도 없는데 아들 줬으니 기쁘잖아요. 기쁨인데 아들 어떻게 됬습니까? 아들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머리가 아파서 아야~ 하다가 뭐 머리가 아프다 하는가 하루는 곡식 베는 아비에게 이르되 19절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고 죽고 말았지요. 그러니까 이게 뭡니까? 근심이잖아요 근심.


근심인데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근심한다고 해서 아마 좋은일 있을 거야 절대 인간은 그렇지 않아요. 근심이면 코 앞에 좋은 일이 있다 하더라도 짜증나고 화나고 분노스럽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괴로움이 있죠.


20절에 괴로움이 있어가지고 그 다음에 여인이 따집니다. 뭐라고 따지는냐 하면은 여인의 이 따짐은 오늘날 우리 성도에서 진짜 치사하는 바가 있어요. 내가 언제 아들 달라고 먼저 손 내밀었습니까? 아들 없을때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있게 해준 것은 일단 감사했습니다만은 왜 그것을 하나님은 그것을 뺏어 갑니까?


제가 뭐 했다고 아들 달라고 욕심을 낸적이 있습니까? 아들 주겠다는 제안을 어느쪽에서 했어요? 본인이 아니고 누구쪽에서? 선지자 쪽에서 아들 준다고 해놨으면 우리는 그냥 받기만 했을뿐인데 왜 우리에게 이렇게 우리에게 근심을 유발시킵니까? 차라리 안줬으면 좋았을걸.


그렇게 할 때 엘리사가 사환보고 게하시 보고 먼저 지팡이 얹지라 하고 그 다음에 다 나가라 하고 32절에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누운지라. 들어가 문을 닫고 아이하고 두 사람 밖에 없지요.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그 다음에 보세요.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이렇게 되어 있지요? 제가 왜 이 대목을 거론하느냐 하면은 세상에서는 지금 문 밖에는 지금 엄마가 있고 엄마가 울고 있고 아이는 죽어 있어요. 죽었습니다. 뻗어 있습니다. 눈이고 입이고 머리고. 죽어있다 이말이죠.


세상에서는 뭐냐하면은 엘리사가 오게되면 엘리사는 누구와 관련되어 있느냐 하면은 누구의 그 작업을 계속하느냐 하면은 엘리야의 작업을 계속합니다. 엘리사는 후계자가 없지만 엘리야는 후계자가 있어요. 엘리사에게 주어진 업무를 계속하는거예요. 그 겉옷을 벗어서 그 능력을 전수했기 때문에.


엘리야의 하나님이예요. 무슨 말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시되 그 당시죠. 지금 그 당시도 일하시되 엘리야라는 실체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뜻이 엘리야의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뭐라했어요? 하나님 자꾸 찾지마라. 너 있잖아. 실체 있잖아. 너 옆에 아브라함 있잖아. 아브라함 봐. 아브라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봐. 엘리야의 하나님이다.


그럼 이삭은 이삭의 하나님. 야곱은 야곱의 하니님. 그럼 마지막때는 누구의 하나님? 예수님의 아버지. 예수님의 아버지로서 일하시는 거예요.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이말이죠. 예수님이라는 실체를 보았으면 보이지 않는 실체, 하나님도 아버지도 있다 이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승천하고 난뒤에 승천하고 난뒤에 실체는 어디에 있지요? 예수님도 안보이는데. 머리는 안보여도 지체는 보이잖아요. 이 소자한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성령받은 자를 왜 두십니까? 내가 너희를 데려가지 않는 이유는 바로 너희를 통해서 나의 이야기, 주님의 그 기능이 주님에 의해서 지속되기 위함이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것이 사도행전 3장 16절에 보게되면 저 사람이 앉은뱅이가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가 낫게 된 것은 그것은 내가 사도요한, 사도 베드로가 한 것이 아니고 그 사람하고 지금 주님 관계다 이말이죠. 우리는 목격자일뿐이고.


왜 나만 실체된다는 법은 없다 이말이죠. 주께서 일하시는 다시 말해서 주님이 성령을 주게되면 그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지체가 되고, 그걸 건드리는 사람은 누구를 건드리는 것이다? 주님을 건드리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물 한번 대접하면 주님께 대접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뭐냐? 이 아이가 어떻게 살것이냐에 모두 집중해요. 이것은 뭐냐? 아까 무슨 해석이냐? 확장적 해석이죠. 그러나 아이가 어떤 아이냐 하면 없는데서 생겨난 아이잖아요. 없는데서 생긴 아이는 죽지요.


모든 성도는 없어요. 없는데서 생겼잖아요. 그 생긴 사람은 아이처럼 날마다 죽어야되죠. 그게 실체가 해야될 일이예요. 아이가 어떻게 살리느냐가 아니라 굴곡이니까 엘리사의 입을 아이의 입에다가 그 다음에 엘리사의 눈을 아이의 눈에다가 그 다음에 또 뭡니까? 엘리사의 손을 그 손에서. 시작을 아이 살리기 위해서 아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고 위에서부터 내려오게 되면 핵심은 문제의 핵심은 엘리야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속에 살아있다는 거예요.


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실체로서 아이가 없는데서 생겼고 그 아이는 또 죽어야되요. 죽는데서 살려주는 거예요. 아이가 살았다고 좋아하지 말고 누가 살았다는 것을 기뻐해야되요? 엘리야의 하나님 엘리사의 하나님이 살아있음을 기뻐해야된다 이말입니다.


그럴 때 그 기뻐하는 사람이 이 시대에 21세기 이 서울땅에 예수님의 실체입니다. 내가 살아있음이 내가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살던 죽던 누구의 것이다? 주의 것이라 했잖아요. 로마서 14장에.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 우리중에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 없고 우리 중에 자기를 위해 죽는자도 없나니 사도바울이 그렇게 되있거든요. 로마서 14장에.


거기다가 하나의 추임새를 넣는다면 ‘그렇지요? 우리중에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 없지요? 혹시 이중에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손들어 보세요. 없지요? 없지요? 없습니다. 자 없습니다.’ 이렇게 간사하게 추임새를 넣을수 있어요. 간사하게. 촐랑대면서 넣을수 있다 이말이죠. 미안스럽게.


우리중에 그런 사람 아무도 없다. 다 주를 위해서 죽고 주를 위해서 산다. 살고 죽는 그 객체, 주님에 대한 객체, 우리가 객체잖아요. 객체에 대해서 신경쓰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요한복음 다시 돌아가 봅시다. 아 이제 어려워져요.


요한복음 16장에서 뭐냐 하면은 요한복음 16장에서는 핵심이 뭐냐 하면은 이 거듭났다는 말, 다시 태어났다는 말 할 때 아이가 태어날 때 초점을 어디다 두느냐 하면은 초점을 세상에 모든 것이 한 점위에 있다 이렇게 할수 있는겁니다. 한 점위에 있다.


모든 세상 모든 것은 다 한 점에 흡수된다. 흡수, 통합이 되게 되어 있어요. 누가 살아계신데? 지금도 누가 살아있다? 예수그리스도가 살아 있다는데 흡수 통합되도록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나의 점위에 전부다 집중하도록 그렇게 한겁니다.


그 집중하는 점이 그럼 목사님 그 점이 어떤 점 입니까? 그게 바로 실체가 없는 점이예요. 실체가 없어요. 환장하지요. 안 믿는 사람들은 미치는 거예요. 미치는 거예요. 실체가 없는데 모든게 거기에 집중되 있어요. 그거 실체가 없는 그걸 가지고 요한복음 3장에는 그거를 거듭남이라고 해요. 거듭남.


거듭났다할 때 실체가 어디 바뀝니까? 안바뀌어요. 어떤 거듭남을 증명할수 있는 실체는 없습니다. 몰라 성형해서 얼굴 좀 고치고 하면 거듭나는 거예요? 땡기도 땡기고 뽑고 뽑고 장미희처럼 이렇게 하고 뭔가 좀 해야 어?! 딴사람 됬네. 이런게 거듭나는 거예요?


거듭났다는 것은 조금도 티가 나서는 안되요. 왜? 티나는 거듭남은 없습니다. 왜그러냐하면 모든 세상의 변화를 북한의 핵문제 트럼프 문제 모든 문제를 흡수 통합하는 지점은 한 지점으로 모두를 한 실체가 설명할수 있는 이 지구상의 어떤 지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어떤 지점도.


그러니까 요한복음 16장의 이 이야기는 세상 사람이 성령 안받은 사람이 들어버리면 어떤 생각 드느냐 하면 예수님 이런 이야기가 교회 부흥에 무슨 도움 됩니까? 전혀 교회 키우는데 교회 확장 해석에 전혀 보탬이 안되는거예요. 이게. 전혀 보탬이 안되요.


보탬이 안되기 때문에 성령을 안받은 목사는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세상살이 할때는 굉장히 근심 많지요? 예수믿고 난뒤에는 말할수 없는 기쁨이 들어 옵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말할수 없는 기쁨이기 때문에 이 기쁨을 세상 끝까지 확장하기 위해서 돈 내세요. 그래서 예배당 지읍시다.


결국은 실체도 예배당 교회 목사님 설교때 이렇게 나온다. 거듭남 자체가 자기 교회를 하나의 중심으로 보는거예요. 계속 그것에 대한 확장되는것이 옳다고 보는 거예요. 만약에 자기 교회가 숫자가 줄어들고 헌금이 안나오고 교인들 떠나버리면 이거는 뭔가 주의 일에 실패가 온것처럼 실패왔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일의 실패지 주의 일은 아까 실패 없다고 했지요. 택한 백성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되지요?


그러니까 우리 눈에는요 모든게 내뜻대로 안되고 모든게 실패가 될 때 비로소 요한복음 6장 39절이 이해가 되요. 내가 내 속마음, 뭔가 은근히 노리는 것, 챙기는 것, 주를 믿었으면 내 뜻은 조그만이라도 응답해 주셔야지 하는 순간 요한복음 6장 39절 내가 온 것은 주신자를 잃어버리지 않고 그것이 가리워져요.


실체는 보이지 않는데 내가 실체 노릇을 해버리는 거예요. 못 믿었기 때문에. 실체 없이 이야기 해버리면 아까 그 김혜선 그 사람처럼 뭐가 되느냐 하면 실체 없는 것은 이 세상에서 뭐가 된다? 사기가 되요. 그럼 나는 희대의 사기꾼이 되요.


의존교회 설교를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할려다가 좀 참았어요. 베드로는 희대의 사기꾼이고 사도바울은 사기꾼중에 사기꾼입니다. 왜? 실체가 없으니까. 나는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로다. 이거 뭐 허경영이도 아니고 뭐예요? 내눈을 바라봐 내 눈을 바라봐. 이게 뭐예요? 공중부양하고. 치료한다고 여자 온 몸 더듬고. 사기꾼이죠. 자기는 롤스로이스 타고 다니가 음주운전 걸리고. 피 선거권 박탈당하고.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이 성령을 안받았기 때문에 자꾸 실체를 찾아요. 진짜 예수 잘 믿는 사람, 진짜 복음 전하는 목사, 자꾸 그걸 찾아 다닌다고요. 그걸 찾아다니는게 뭐냐 하면은 주께서 실체를 안 없앴기 때문에 허전하거든요. 뭔가 보고 믿겠다는 거예요. 보고. 보고 그걸 믿고 손에 쥐어야 안심이 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스스로 내가 납득되도록 내 설득에 내가 좀 넘어 가도록 그럴 때 그걸 믿음의 대상이라고 내가 손에 쥐겠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어떤 분이 우리교회에서 비난하기를 이렇게 비판을 이렇게 해요.


그래 당신 말대로 이근호 목사가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복음 전하는 사람 많이 하기 위해서 그 교회가 키워져야 하는데 왜 교회가 왜 안크나? 교인수는 왜 몇 명안되? 이렇게 이야기 해요.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참 고맙지요.


평소에 갖고 있던 그 하나님이라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데 못 믿으니까 내가 나한테 설득이 될수 있기 위해서는 나라는 것은 뭐냐? 확장할 때 이것을 선으로 보는거예요. 확장하는 것이 복이고 선으로 보는 그 사고방식 가지고 거기에 부합되는 메시아, 예수, 메시아를 내가 찾아 다니는 거예요.


큰 교회 가는 이유가 하나님으 복을 줬으니까 숫자 많고 헌금 늘어날거 아니냐는거죠. 평소에 자기 속내를 그대로 교회당에다가 기입을 시키는 겁니다. 개입시키는 겁니다. 그 비슷한 예가 지방교회 다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고난 받는 것을 실체로 간주하는 교회가 있어요. 봐라 우리가 복음전하니까 고난 받잖아. 그들은 고난 받는게 훈장 다는거 같애. 질질 우는 것이 자랑거리 같아요.


제가 지난 오후설교때 했잖아요. 질질 울면 뭐라고요? 꽃뱀이라고. 동정심을 자기 잘못한거 감추지 위해서 동정심 유발하기 위해서 질질 울고 있는 거예요 그게. 새벽 제단에 앉아 질질 우는게 꽃뱀이고. 우니까 내 소원 들어줘라 이말아닙니까 우니까. 어디서 와서 수작이야!


실체는 없어요. 아까 목사님 성도가 실체라더니. 성도는 매일 같이 죽는게 매일같이 끊어지고 끊어지는 그 자체가 실체이기 때문에 실체 있다 없다 있다 없다 이것에 반복이예요. 나는 실체다라고 계속 이어지게 되면은 이것은 단선이 되요 단선. 연속이 된다고요 단선. 매끄러운 선이 되어 버려요. 매일같이 매일같이 툭툭 끊어줘야 되요.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살아나야 된다고.


왜냐하면 이게 안끊어지게 되면 나는 실체다가 그 실체다가 자기 믿음의 대상이 되버리거든요. 믿음 좋은 내가 믿음의 대상이 되버린다니까요. 그래서 이러한 가짜를 평할 때 뭐냐하면은 가짜는 자꾸 형식을 찾거든요.


실체가 있으니까 형식을 그럴싸하게 찾는 거예요. 웨스트민스트 신학 칼빈의 정신을 따라서 자꾸를 실체를 만드는 것은 이것은 가짜거든요. 이 가짜는 뭐냐하면은 완결의 형식이라고해요. 완결의 형식.


자꾸 이것으로 다듬을려고 거듭난 사람은 이래야되. 자꾸 다듬을려고 해요. 그 다듬는 그 주인공이 누구겠어요? 남이겠어요? 본인이잖아요. 그래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살아야되. 마지막때일수록 절제해야되. 절제하고 조심스럽게 때가 가까이 왔으니 구원의 때가 가까울수록 세상은 방탕에 빠지지만 나는 조심히 살아야되. 로마서에 보면 그게 나와.


하여튼 모든 성경 해석을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나는 신자 맞습니다라고 남한테 드러내기 위한 증거물 수집에 들어가요. 자꾸 괜찮은거 다 끌어 모아요. 십자가 그것도 괜찮네. 언약신학 어이구 그것도 괜찮다. 복음 그것도 괜찮다 좋은건 다 끌어모아.


좋은건 다 끌어 모아서 우리교회는 십자가 복음 전하고 거기에다가 선교하고 우리는 헌금해도 헌금 티 나지 않게 투명성 있게 하고 온갖 좋은거 다 끌어 모은게 그거 뭐라고요? 결국 노리는 것이 나 이정도로 완벽해 라는 완결의 형식을 갖춥니다.


정말 성령받은 사람은 내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개판이라는 것을 감사하게되요. 내가 개판같이 살아가는 것을 감사합니다. 식사할 때 기도하는거 개판, 헌금할 때는 헌금해가지고 귀하게 드리는 그 개판, 그 막살기, 예배시간 11시인데 그전에 와서 마음정리하는 그 막살기. 이게 전부다 막살기 거든요. 왜? 막사느냐? 그거 안하면 찝찝해서 못견뎌요. 찝찝해서.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전부 다 나 어때요? 하나님 저 어때요? 저 근사하지요? 저 추하게 살기 싫어요 라고 결부되어서 돌아오는 내가 열린 내가 믿음의 주인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육적인 겁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죄인아니고 무엇입니까를 보여주는 증거물들이예요.


그런데 그게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느냐? 그게 바로 아까 무슨 해석 했습니까? 환원 해석. 환원된 그 자리에서는 어떤 인간도 다 세상이고 저주받을 인간이기 때문에. 이 지점에 다 하나님께서 머물게 하는 겁니다. 이 지점에.


지옥가야될 인간이 뭐 지옥가는 그것도 자랑인가? 지옥가는것도 자랑이예요? 그 부자가 거지 나사로 앞에 있던 그 부자는 굉장히 날마다 호화로이 아모르파티. 인생 파티죠. 인생파티 김연자가 부른 신나는 노래 있죠.


자기 인생을 즐겼어요. 왜? 그것이 자랑이 되기 때문에. 사람 사는게 뭐 있어요? 자기 잘난거 자랑하는 보람에 사는 거잖아요. 그런데 개는 이집개는 거지가 핥고 있고 그리고 거지는 누구집에 던져졌나? 부자가 던져준 그거 먹고 있고. 그게 세상기쁨. 그런데 그런 요소가 우리가 가득 들어 있지요?


우리는 절제하고 이게 왜 나쁜 일이냐 하면은 있는데 아닌듯하게 자꾸 이걸 갑옷을 입는 버릇이 있어요. 이걸 아담한테 배웠어요. 아담과 하와가 부끄럽다고 자꾸 가렸거든요. 가리는 버릇이 똑같은 DNA 받았기 때문에 똑같이 틈만 나면 가려요.


우리교회는 심방이라는 것이 심방은 거의 있을수 없습니다. 심방은. 왜? 가리는 도사들이기 때문에. 심방하면 청소해야되죠. 스케쥴 또 시간 빼야되죠. 뭐 목사님이야 말씀만 전하면 되는데 심방 같이 오는 이 입들이 가벼워요.


집사님 사는 거 보니까 그렇지고 않더라만은. 언뜻 봤는데 안방에 보니까 뭐 이상한 여자 비키니 달력이 있더라 이게 집 계약하러 온것도 아니고 온 심방와가지고 다 둘러봐요. 어떻게 사는가? 아이고 냉장고 열어보고 아이고 살림살이 꼬라지 하고는 전혀 성령의 열매 없이 이게 뭐니 이게. 유통기한 벌써 이틀 지났어요 우유. 어휴 살림 꼬라지 하고는 맨날 말씀 공부는 참석하는데 이거나 챙기지. 이런 말들이 올까봐 사전에 차단시켜버렸어요.


심방오지 마세요! 심방 아예 오지 마세요. 참 그래서 우리 유일자 집사님 성경 공부하면서 사람 이름 거론하는거 실례지만 몇 년이예요? 그 많은 세월동안 이집사님도 그렇고 그 좁디 좁은 집을 개방해가지고 내가 할때마다 참 존경스럽다. 참 존경스럽다란 생각이 들어요. 자기 집을 개방하잖아요. 성경공부가 목적이 아니고 다른사람 다른게 궁금하다니까. 한달 수입 얼마쯤되고 남편 뭐하시고, 우리 유일자 집사님은 개만 보여줘요. 공부시간에 개도 딱 앉아 가지고.


그처럼 인간은 타고 났어요. 자기를 숨기는게 타고 났어요. 나타낼때는 장점들만 나타나죠. 약점을 전부다 보상할만한 장점들. 그것이 숙달되었어요. 이것이 버릇됬다니까. 평생을 살면서 그런식으로 스스로 자기를 훈련시켰습니다.


그럼 그 말은 뭐냐 하면은 나는 근심을 경유해서 기쁨에 이르기 싫다는 말이예요. 기쁨+기쁨+기쁨+. 근심되는 것은 감추고 감추고. 그런 작업을 위해서 뭐냐? 조심하게 살고 절제하고 경건해서 사전에 하나님이 나한테 근심되는 일이 나지 않도록 충분하게 헌금 드리고 충분하게 성의를 표하고 헌신해서 주께서 나한테 징계 내리지 않도록 내가 부끄러운 일 생기지 않도록 그렇게 하게 되면 그게 기쁨이겠어요? 아니면 근심이 세상적인 근심이겠어요. 세상적인 근심이잖아요 이게.


그렇게 되면 뭐되냐 아까 그 엘리사처럼 아이가 엄마처럼 내 아이 살려내라. 내 아이. 지금 하나님 살아있는 것은 관심도 없어요. 지금 그 수넴여인은 내 아이를 살려내라 이말이거든요. 그럼 그 아이는 단면이 이렇거든요. 거기에 엘리사도 그렇잖아요. 입에는 입 코에는 코 이렇게 하면 똑같은 원판을 그대로 모델을 뜬거예요. 완전히 붕어빵처럼.


아이 모습이 그렇다는게 아니고 아이가 없는데서 생겼고 있는 아이가 죽었다는 것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땅에 오실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앞당겨서 보여준거예요. 그리고 엘리사는 거기에 참여했고.


그리고 지금은 이 엘리사 밑에 누가 있느냐? 예수님 밑에 누가 있느냐? 오늘날 우리가 우리들이 똑같은 굴곡을 가지고 인생을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주님이여 부도나야 됩니까? 망해야 됩니까? 가정에 우환이 있어야 됩니까? 이렇게 또 걱정하지요. 걱정하는 그게 이상해.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분명히 아까 이야기 했는데도 불구하고 참 이상해.


사는것도 주를 위해 살고 죽는것도 주를 위해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이런 이야기하면 슬그머니 질문을 먼저된자 나중된다고 지금 나중된자 아무말안하고 있어. 지금 믿음없는거 티날까 싶어서. 차마 이 질문을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눈치채고 내가 질문해야되겠지요.


그러면 망하는데 얼마나 망해야됩니까? 얼마나 망해야되요? 애 하나 있는데 뭐 되고 뭐 이렇게 되야되요? 그래서 자기가 또 상상할수 있는거 있잖아요. 온갖 굴곡적인 거 있잖아요. 인생파탄. 자기가 생각할거 다 끄집어 내가지고 미리 또 예상한다고요. 아까 했지만 예상한 것은 그것은 응답이 안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앞으로 부자될려면은 가난한것만 예상하세요. 꼼수써가지고.


이런 굴곡적인 삶을 우리가 예상을 하게 되면 예상하는 주인공이 내가 되요. 그 예상되는 주인공을 주님께서는 흡수 통합 없애버린다니까. 내가 내 걱정 앞일 걱정하는 자체가 그게 생각이 안나는 새로운 사태를 우리에게 줘버려요. 새로운 사태를.


거기 다시 오늘 본문 봅시다. 21절 봅시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여자가 임신을 하게되면 근심하나 이게 근심이거든요. 아프거든요. 하지만 이 아픔이 없으면 뭐가 없습니까? 나중에 애를 낳고 난뒤에 기쁨은 없는거예요.


그래서 주께서는 우리한테 기쁨을 없게해요. 그런데 근심을 하는 순간 뭐냐 하면 내가 꼼수써서 미리 예상하는 나의 행복 나의 기쁨도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면 근심은 나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늘 근심속에 있는 사람은 마음이 편해요.


예를 들어서 바람에 휙 두바퀴 날려서 종이 붙었는다 로또다. 버리기 미안해가지고 이번 토요일까지 기다려보자 그게 일등됐어요. 70억 됐어요. 그 사람은 성령 안에 있는 사람같으면 근심하는 거예요. 아 70억 관리 어떻게 하지. 아 미쳐 고민되네. 이럴 때 나라는 주체가 있어서 예상되는 기쁨은 없습니다.


근심속에 있는 사람은 나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언제 배신하느냐? 좀 좋은일 앞두고 촐랑될 때 완전히 내 인생은 망가져 버립니다. 그 근심하는 것, 그것은 바로 마음 낮추기고 그게 주님의 모습이예요.


주님이 이땅에 살 때 어떻게 했습니까? 허허허 바보같이 웃고 살았습니까? 세상 죄 때문에 늘 근심했지요. 그러면서도 할건 다 하시고 또 기뻐할건 기뻐하셨어요. 너희들 귀신들이 항복하는걸 기뻐하지 말고 이름이 기록되는 것을 기뻐하라. 그리고 백부장도 기뻐했지요.


기쁨이 기쁨이 되는 것은 대부분은 뭐다? 이 세상에 기쁨을 기대할것이 없는 아까 회환과 통곡과 소원을 드렸다 했지요. 그 모습이 주님이 뭐 행복해 하는 모습일까요? 후딱 이 땅을 할 일을 마치고 이땅을 빨리 떠나야 된다는 그런 생각 나그네 생각이죠.


아이고 70억 이거 넣어둘 가구도 없는데 이거 사과박스에 넣을까? 아이 괜히 70억 들어와가지고 우리 집도 좁은데 이거 어디다 놓지? 가만히 생각만 해도 기분좋아요. 모든 일에 건방떨지 않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근심중에 있기 때문에.


기쁨은 이 땅에서는 온전한 약간의 지속되는 기쁨은 없어요. 주께서는 곧장 뭐로 바꿉니까? 기쁨을 뭐로 바꾼다? 곧장 근심으로 바꿔 줘야 되요. 그래야 우리가 나그네고 제대를 해야되니까. 사도바울의 소망이 뭐예요? 빨리 죽는거라 했지요. 그 말은 뭐냐?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은 뭐냐? 이 땅에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힘들어요 이게. 힘들기 때문에 힘들어서.


왜냐면 자기안에 뭐가 올라온다? 교만과 자만과 죄가 올라오지요. 이걸 무슨수로 자기가 말씀전하면서 이걸 자기가 죄가 있이 한단 말이죠. 이걸 어떻게 그때그때마다 처리해가지고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까? 못하지요. 성령의 도움 없이는 안된다 이말이죠.


그래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뭐다? 안식이다. 또는 쉰다. 휴식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이 땅에서는 휴식 없어요. 왜냐하면 늘 근심되는 일들만 찾아오기 때문에. 근심과 근심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기쁨은 어디에 있습니까? 기쁨은 그 사이사이에 있어요.


그런데 이 기쁨이 보통 기쁨이 아니예요. 마음을 낮춘 상태에서 오는 기쁨이기 때문에 돈 주고도 살수 없는 기쁨입니다. 맨날 근심하고 맨날 죄만 지어서 근심하는데 이 근심한다는 자체가 이미 주님의 일에 참여 되있다는 이미 합격통지서 받았다는 증거로서 오니까 얼마나 기뻐요?


남들은 전부 자기 자랑하기 바쁜데 나는 아무리 봐도 내 자랑할게 없어요. 내 자랑할게 없다는 그 자체가 우리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겁니다. 만약에 내가 좀 까불면서 뭔가 앞으로 잘될겁니다. 우리 교회 부흥되요 이러면 나중에 안될때에 그 배신감이 어떻겠어요?


하여튼 아들 낳으면 아들이나 땋 낳으면 한 세 살까지 다 천재라. 천재 아닌 애가 없어. 같은 나이가 서른 중반이라도요 결혼 하지 않은 서른 중반 아가씨들은 배냥 여행 이야기 밖에 안하지만 저쪽에 애 있는 서른 다섯살 먹은 사람들은 전부 다 자기 아들 천재 이야기, 그 이야기 빨리 하고 싶어서 빨리 빨리 만나요.


전화해가지고 전화 통화만 두시간 세시간 하는데 자기 아들 천재, 천재인 증거. 그런데 다섯 살 이후에는 뭐 그 천재 다 어디갔는데? 다 천재 였으면 우리나라 벌써부터 선진국 국민소득 10만불 됬어요. 천재 어디갔는지 몰라요. 나중에 검찰청 앞에 가서 째려보고 이런 천재. 우병우 천재. 이명박 천재.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밤 11시까지 일했던 우리나라 토목 건설을 현대를 일으킨 주범. 주범이 아니지. 주역. 주역이 주범이 되었지만. 처음부터 근심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꺼예요. 나한테 기대할거 없어요. 기대하지 마세요. 이 인간의 실체라는게 그렇지 뭐.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누가 너희를 칭찬할 때 주의하라. 하나님이 칭찬하도록 해야지 니가 칭찬한다든지 남들이 칭찬할 때 그 좋아하지 마라. 그리고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사람한테 높임 받거든 그것은 하나님께 미움받고 있는 중인줄 알아라. 하면서 나온 이야기가 거지와 부자 이야기.


예수님께서 그런 말하는 것은 철저하게 이 세상을 뒤집어서 보는 안목이 있어야 된다는 이세상이 좋아하는 것은 전부 다 반대로 뒤집어서 보는 안목이 있어야 된다. 그럴러면 뒤집어 볼려면 니가 멀쩡하면 안되거든요. 왜? 우리자신도 이 세상에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거꾸로 서서 봐야되죠.


거꾸로 서게 되면 내 동전 우르르 다 쏟아지겠지요? 그러면 누가 배신해야되요? 내가 누굴 배신해야되요? 내가 나를 배신하는 삶을 살아야되요. 내가 만약에 취업할려고 하는데 취업이 됬다. 그러면 내가 나한테 이야기 해야되요. 니가 취업해봐야 벌써 상사하고 싸워가지고 몰라 한달 가는지 모르겠다. 한달 뒤에는 튀어나올거야.


자기가 자기한테 좀 가혹하세요. 평가 점수가 항상 F학점을 주세요. 인간말종이예요. 언행일치 안되지요. 인간말종이죠. 자기 계획대로 큰소리만 칠줄알지. 속에는 뻥하니 비었죠. 아무것도 없죠. nothing 이죠. 있는척 해야되죠. 세상에 못때먹은 것은 다 하죠. 잠재적 죄인이죠. 그런걸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런걸 자랑해요.


본인한테 본인이 배신당해야 이게 세상에서 엎드려 사는 방법입니다. 납작 엎드려 살아야 되요. 납작 엎드려 살게 되면 잘났다는 인간들이 전부다 괴물로 보여요. 괴물로 보인다고. 귀신으로 보인다고. 인간 같지도 않아요. 나도 못났지만 서있다고 우기는 인간도 인간같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자기 분야에 영화면 영화 시인이면 시인 자기 분야에 좀 유명한 사람 만나가지고 옆에 앉아 가지고 성추행이나 당하면서 그걸 참으면 나는 나중에 있는 자리에 갈 것이다 그런 꼼수 쓰지 마세요. 거기의 거장들 거목들이 괴물입니다.


훌륭한 목사? 괴물이예요. 그게 어느 눈에 보이느냐? 납작 엎드린 자에게만 보여요. 납작 엎드린 자에게. 그러나 기존 교회는 뭐냐하면은 누가 누가 높으냐? 누가 누가 잘하나 이런식이예요. 누가 누가 기도 오래하고 누가 잘났느냐.


KBS 목요일날 5시에 하는 거예요. 누가 누가 잘하나? 목요일인가? 금요일날 하는가? 금요일 4시인가? 왜 이걸 자랑하느냐 하면은 꼭 광주가는 차에 이걸 틀어요. 누가 누가 잘하나. 꾀꼬리 노래 부르는거 나온다고요. 제목이 변하지 않아요. 수십년 변하지 않아요. 누가 누가 잘하나.


이것은 여담인데 성경과는 관계없는데 누가 누가 잘하나에 초빙 가수가 누가 나왔느냐 하면은 소향이 나왔어요. 제목이 뭐냐? 유트부 제목이 동심을 파괴한자. 노래를 너무 잘하니까 아이들이 꿈이 다 깨져 버렸어요. 부른 노래가 let it go. 잘 나왔어요. 왜? 기를 팍 죽여버렸어.


제발 좀 기죽고 삽시다. 우리. 음메 기살어 하지 말고. 음메 기살어 하다가 평창 해설 엉망으로 해가지고. 기 살지 말고 이제는 경쟁적으로 누가 기죽고 사는지. 원래 기죽고 살아야 이게 무서운 사람이 되는 거예요. 무서운 사람이 없어요. 기죽고 살아야.


뭔가 노림수가 있으면 아부가 나와요. 노림수 있는 희망이 전무한 사람은 아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남한테 잘보일 마음도 없어요. 왜? 자기는 잘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마귀는 반드시 가능성 보고 달려들면 그거는 뭐냐? 오늘 제목이 나 이거 할려고 자꾸 하는데 잘 안되네. 뭡니까? 먹잇감, 먹잇감.


현대인들은 서로가 서로의 먹잇감이예요. 서로가. 등쳐먹고 산다니까 전부다. 어이 친구야 하면서 등치잖아요. 친구 조심해야되. 등쳐먹고 사는거예요. 아이고 반갑다 친구야. 등 안 맞도록 조심해야되. 전부 다 먹잇감이 안될려면 자기가 죽은자가 되면 되지요. 나는 너한테 소용없어. 나는 너한테 소용없어. 나는 너한테 어떤 것도 쓸모 없는 인간이야.


자식이 돼서 부모가 야 너 커서 뭐할래? 어머니 저 부모한테 아무 쓸모짝 없습니다. 아 정말 그런자식있으면 정말 자식 교육 잘 시켰습니다. 엄마 나 나중에 훌륭한 사람 될게. 그땐 쥐어 박아야되요. 이게 어디서 엄마 돈 노리고 또 집 바치고 대출할려고 이 인간이. 유산 빨리 빼달라고 하는 인간. 엄마 나는 작은것에도 감사해. 그런 아 말 또 잘못했다 집에가면 애 또 잡겠다. 아이치고 그런 애가 없어요. 왜냐하면 학교 자체가 누가 누가 잘하나를 경쟁시키기 때문에.


쉽게 말해서 기쁨을 내가 엎드리면 다 기쁨의 대상이 되는데 내가 자꾸 높아지니까 시시한 것은 이제 기쁨의 대상이 안되버려요. 이 이상한 병 됬어요. 그 병에 그 돋은 병 원인 제공자가 누굽니까? 바로 우리 자신이잖아요.


근심속에 있으면 모든게 기쁨이예요. 바깥에 주어진게. 그런데 빨리 근심을 탈출할려고 한다? 그러면 그거는 뭐냐 무슨 형식 했습니까? 그 순간 완결의 형식이 되어 버려요. 이거는 딱딱한 당구공이 되요. 완악한 인간이 된다니까 완악한 인간. 완악한 인간이 되게 되면 남들이 다쳐요.


자식 중에서 제일 나쁜 자식이 완악한 자식 아닙니까? 이거는 부모도 모르고 형제도 모르고 자기 밖에 모르고. 완악한 자식. 그때는 그러면 엄마는 누구 닮았다 합니까? 꼭 아빠 닮았다 하고 아빠는 누구 닮았다 하죠? 너희 엄마 우리집 와가지고 너 같은거 낳았다. 그 완악한게 나쁘다는건 다 아는 모양이야.


그런데 누가 완악하게 교육시켰습니까? 양쪽 다 그렇게 시켰잖아요. 은근히 그걸 바랬지 않았습니까? 너는 나의 보람이라고. 내가 못한 것을 니가 너의 대에서 해야 한다고. 얼마나 압박을 줬습니까? 그러니까 애들은 내용은 하나도 없어요. 완결이 뭐냐? 내용은 없어요. 내용은 없어요 형식이라는게.


완결의 내용이 아닙니다. 완결의 내용은 성도인데 왜? 한 지점에 지체없는 그 지점에 그 거듭남의 지점에서 흡수 통합되었으니까. 예수님께 흡수 통합되었으니까 완결된 내용이기에 완결된 내용이기에 완결된 형식을 갖출 필요가 없다 이말입니다. 거지되도 괜찮아요. 거지 나사로가 천당간다는 이야기 나오잖아요. 뭐 별로 기쁘지 않죠.


완결된 형식은 안되요. 오늘 제목을 완결된 형식으로 해야겠다. 완결된 형식으로 안된다고요. 완결된 내용은 우리가 채울수 없고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단절의 그 대목을 성령을 줘서 땡긴거예요.


이제는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고 성령이 주인공이 되어서 완결된 내용을 만듭니다. 완결된 내용을 만드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걸 못알아보기 위해서 형식은 세상이 요구하는 완결된 형식은 절대로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습니다. 아이고 교회 다니더니 너 출세했다 너 돈벌었다 그런 것은 제공하지 않아요.


그렇게 될수도 있지만 그럴 때 마다 주의해야되죠. 내가 이럴려고 한게 아닌데. 이렇게 부자 될려고 교회다닌거 아닙니다. 뭐 우리하고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부자 될려고 내가 예수 믿은거 아닙니다. 주께서 알아 그래서 부자 안되게 했어. 기쁘지? 별로 기쁘지는 않는데. 마지못해 수용은 하겠습니다만 기쁘지는 않습니다.


22절 봅시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성령이죠.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왜? 세상이 보지 못하는 분과 함께 살고 있다는 체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보지 못하는 분과 함께 살고 있다는 체험.


그 체험은 나를 쪼다 만들고 낮추고 바보 만들고 등신 만들고 나로 하여금 납작 엎드리고 세상 속에서 살면서 근심, 언제는 이 세상을 떠나나 그 근심 속에 살게 만드는 그 주인공이 바로 나와 함께 있다는 겁니다.


제가 그 고등학교 1,2학년 시절에 우리 동네에 우리 고모가 선생님인데 고모한테 과외를 받는 아주 이쁜 동네에서는 제일 이쁜 중학생 여학생이 있었어요. 있었는데 과외를 받다가 사정이 있어가지고 과외를 안받고 몇년했고 오랜만에 이제 우연을 가장한, 우연을 가장해서 어떻게 만나가지고 우리 고모 가정교사니까 고모 집에 와가지고 했어요.


그런데 고모가 털털한데가 있어 가지고 남자 같아서 이렇게 아주 청소년때는 감수성이 예민하잖아요. 그런데 고모는 아무 생각없이 뭐냐 짜장면을 시켜준거예요. 서로 애틋한 감정이 있는데 짜장면을 시켜줬단 말이죠. 있을 때 세상에 어느 청소년 여고생이 허겁지겁 묻혀가면서 짜장면 먹겠어요. 하나도 안 먹는거예요.


자, 그러면 한번 물어 봅시다. 어느게 진실 짜장면이 있다는게 진실입니까? 내가 있다는게 진실이예요? 짜장면은 그냥 아무 죄가 없어요. 짜장면은 죄가 없습니다. 고모는 짜장면이 좋다고 했어요. 짜장면 시켜가지고 먹었는데 자기는 짜장면이 좋으면서도 안먹는체하고 있는 바로 본인이 거짓이고 짜장면은 있음 자체가 진실입니다.


성도는 진실된거예요. 남 눈치 보지 않고 있음 자체로 감사하는 겁니다. 누구 눈치 보지 마세요. 누구 의식하지 마시고 그냥 한그릇의 시커먼 짜장면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끄럽다는 것은 이미 아담의 후손으로서 나 말고 다른 나를 상징하고 있는 거예요. 근사한 나, 멋있게 이쁘게 보이는 나.


뭐 그 나이쯤 되면 사춘기 여고생은 다 그런게 있지요. 웃을 때 호호 웃고 그런데 짜장면을 시켜줬으니 뭐 이렇게 되겠어요? 나는 그때 저것 좀 나 더 주지. 곱빼기 시킬걸. 이렇게 했는데


주님께서 그날에 기쁨을 준다고 했는데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닙니다. 내가 여기 있으면 주님처럼 주님 하나님의 아들 되기 위해서 성령주신 상태로 여기 있음 그걸로 완결의 형식이 아니고 완결의 내용이예요.


내용이 완결 되어 있으면 여기서 빨간 옷을 입든 파란 옷을 입든 그 옷 타령하지 마세요. 노란 옷을 입든 그건 뭘 걸쳐도 주님이 모르겠어요? 그걸 모르겠습니까? 제가 그 처음에 교회다닐 때 그때는 성령도 뭐고 없었지요. 십자가를 몰랐으니까 십자가를 모르고 이거는 교회 나와서 착함대회 일등하면은 상급받는줄 알았어요. 착함대회.


남한테 또 지기 싫어하잖아요. 착함대회. 그래서 늘 전도사 보다 일 더 많이 했어요. 돈 받는 전도사 보다 일 더 많이 했어요. 주일날 더워도 겨울 양복입고 주일날 예배드리는줄 이렇게 하고 그런 경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했을까요? 그것은 뭐냐 하면은 나를 위한 하나님이라는 것이 이것은 일반화 되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그래서 그게 세상은 정상이예요. 어떤 형식을 갖추는 것, 종교행위를 하는게 정상이예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구애 받지 않는다는게 이게 비정상이거든요. 그게 인간의 능력으로 되겠습니까? 이세상에서 미움받은 예수님의 능력아니면 도저히 그런 일이없습니다. 구애받지 말고 살게 해주신것에 대해서 주님 앞에 늘 기뻐하고 감사합시다.


그래서 23절에 보면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그 다음에 뭡니까?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 묻지 않아요. 왜? 성령께서 예수님의 영이기 때문에. 먼저 예수님이 다가가서 그 사람을 다루기 때문에 감사할 것, 기뻐할 것 외에는 없어요.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 늘 우리 자신이 나를 가혹하게 배신하세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배신하세요. 만약에 우리가 내가 기도하는 것을 내가 의식하거든 우리가 나를 놀리세요. 아이고 속이 시커먼 것들은 기도했다하면 자랑질하나. 내가 자꾸 나한테 그렇게 질책을 하라 이말입니다.


그러면 나는 또 뭐라고 합니까? 이거는 성령이 주신 기도인데... 성령은 무슨~ 성령은 주님이 기도하게 하는데 니가 무슨 기도해. 자꾸 질책성 나에 대해서 가혹한 질책성 발언들을 쏟아 부어서 나로 하여금 완결된 형식을 날려보내도록 주께서 성령을 주신 기쁨을 주신 그것만 감사하는것 그것이 주님 주신 자유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자신에 대해서 너무 관대했습니다. 너무 핑계 대고 변명을 일관했습니다. 지금 망한다 할지라고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임을 오히려 기뻐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강남-요한복음 16장 21절(환원적 해석)180320b-이 근호 목사.hwp (72.0K), Down: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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