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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3 18:28:23 조회 : 5193         
20070206c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하나님나라와 교회(2) 녹취 이름 : 한윤범(IP:211.218.2.253)
 

20070206c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하나님나라와 교회(2)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질문 마치고 두 번째 시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약성경 마태, 마가, 누가에서 교회란 말이 그렇게 중요하게 주님께서 이야기하셨든가요? 주님께서 이야기하는 천국이 더 중요하지요. 교회는 안 중요하잖아요. 안 중요해요. 교회란 말은 모임이라는 뜻이고, 교회라고 명칭을 해놓으니까 딱 중요하게 떠오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가 더 중요했어요. 더 중요하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어디 있느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라 너희 안에 있느니라. 라고 되어 있지요. 그 말은 주님께서 너희들 속을 사용한다는 겁니다. 인간은 교회고 천국이고 쥐려고 하고, 주님께서는 너희들을 이용하겠다, 사용하겠다는 쪽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서로 노리는 게 달라요.




그래서 여기 래드는 그걸 놓치고 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 천국이야기를 할 때. 권세 이야기를 해줘야 돼요. 이 사람은 여기 책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여기서 권세 이야기를 못하고 뭐라 하느냐 하면, 긍정적, 또는 능동적. 능동적이라는 말이 영어로 하면 다이나믹, 이렇게 되죠. 천국은 능동적이다. 이 정도 표현했는데, 그 표현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 능동적이라는 말을 가지고는 부족해요.




주님의 권세는 능동적이 되면 뭐가 있습니까? 수동도 있잖아요. 수동적에서 능동적으로 갑시다, 하는데 예수님의 권세는 능동, 수동 대비가 필요 없어요. 주님 권세 앞에 우리는 수동적이다. 라는 말 자체도 이거는 허용이 안 돼요.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나는 수동적이잖아. 라는 말한다는 자체가 나는 나를 계속 포기를 못하는 사고방식이잖아요. 권세가 임해버리면 나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권세가 임하죠.




여러분들 길에 가다가도 성령을 받는다든지 은혜를 받게 되면, 거기서 내가 주님의 복음을 알게 되고 주님의 사람 선택되었다는 것이 눈물나도록 고마울 때가 있어요. 가끔, 거의 가끔. 길에 가다가 거의 가끔. 그 순간에는 주님의 권세가 우선이지, 내 지금 두 시간 뒤에 뭐 하고 뭐 해야 되며 두 시간 뒤에 누굴 만나는데 어떤 말을 해야 되며 그게 생각이 안나요. 권세가 힘이 나를 끌고 가야 되지, 내가 그 힘 가지고 내가 활용한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울산서 할 때 했지요. 손전등 가지고 조사해 보세요. 동그라미 밖에 안보이잖아요. 그런데 바깥에 여명이 떠오르면 어떻게 됩니까? 손전등 필요 없잖아요. 배치물이다. 배치물 다 알아요. 아, 저기는 산이고 저긴 계곡이고 아, 길이 여기 있네. 알지만, 손전등 하게 되면 지가 길을 찾아가야 돼요.




권세라는 것이 여명과 같아서 어디에 권세에 내가 놓여 있죠. 손전등은 내가 쥐고 있어야 되잖아요. 내가 쥔 것이 나의 갈 길을 인도하지만 여명은 보면 서서히 어둠이 걷히면서 환하게 윤곽이 다 드러나면서 나는 지금 내 배치가 지금 어디에 놓여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주님의 권세 안에 놓여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뭐라 하느냐 하면, 이걸 가지고 천국이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신학자들은 이 권세 문제를 이렇게 시도 안 하고 그냥 표현상으로 뭐냐 하면, 천국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이렇게 하거든요. 통치. 제가 말하는 권세를 이야기했는데 구약학자, 신약학자는 뭐냐 하면, 천국을 뭐라고 합니까? 통치라 해요. 하나님의 통치, 지배. 여러분 비슷한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통치, 지배라고 해버리면 여기는 반드시 뭘 하느냐 하면, 정치적 개념이에요. 정치적 개념은 주권자가 지배자 없이는 지배받는 백성 없이는 정치력이 성립 안 됩니다. 통치, 지배한다는 말은 뭐로 시작하느냐 하면, 지배받고 통치 받는 백성의 존재를 여기에 약간 의식하고 있는 거예요. 백성, 우리는 여기 속했다 깃발 날린다는 거예요. 그리고 주권자 앞에서는 주권 받는 사람이 있어야 나라가 된다는 겁니다.




권세에서는 권세자는 새로 만들어요. 만든다니까. 성도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물론 있는 내가 예수 믿어서 달라졌다, 중생했다. 우리 보기는 그렇게 보이지만 주님 보시기는 뭐로 보느냐? 새로운 피조물로 보이는 겁니다. 없는 인간 새로 만드는 거예요. 아니, 내가 여기 있는데 왜 없는 인간이라고 합니까? 글쎄, 그때 있더라도 없는 인간이었어요. 주님의 권세가 없으면 없는 인간입니다. 주님의 권세가 담기면 있는 인간이에요. 관점이 달라요. 예수님 관점이 다르다고. 관점이 달라요.




능력, 권세. 다른 말로 하면 능력이지요. 능력의 문제입니다. 능력을 막을 재간이 없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교회라고 말을 할 때는 마태복음 16장에서 뭐를 드러내려고 하느냐 하면, 이 권세를 드러내가 위해서 “음부의 권세도 이기지 못하리라” 이 대목을 천주교나 개신교나 오늘날 교회에서는 어떻게 잘못 해석하느냐 하면, 우리 교회는 마귀가 못 이긴다. 맨 날 또 자기 존재수호, 체제방어 또 정치적 개념을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영역은 안전 빵이다. 왜? 음부의 권세가 못 이기니까. 자기 주인공 지키려는 거예요.




주님께서 음부의 권세라고 말을 할 때는 현재 너가 너 되는 것은 너가 어떻게 스스로 지키고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권세가 너도 예상치도 못하는 다른 놀라운 천국을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너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그 죽음의 권세, 악마의 권세도 내가 하는 예수님이 하는 일을 막을 위인이 없다는 겁니다.




만약에 막을 위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막잖아요. 막는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자신의 권세로써 나타내고자 하는 바로 악마, 악마의 정체를 폭로하는 하나의 방법이죠. 그래서 베드로가 주여, 그러시면 안 됩니다. 어떻게 고난 받아요. 하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그 뒤에 대목 나오지요.




그 사람들 이 흐름을 모르니까 이상하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해서 이 신앙고백 터 위에 뭘 세우고? 교회를 세워 놨는데, 아니 교회를 세워 논 그 당사자 보고 사탄아, 물러가라 하면, 사탄의 권세 위에 세워야 되는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무슨 말인지도 모를 뿐더러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 주님이여, 우리 교회 어떻게 하면, 악마의 죽음의 권세를 이길 어떤 방법이 없겠습니까? 방법론으로 나가는 겁니다. 교회가 그걸 걱정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걸 걱정한다는 것은 우리 교회를 그냥  포기 안 하려는 특징이에요.




여러분, 교회는 우리가 만든 교회는 포기 못하게 됩니다. 포기한다고 권세 오는 건 아니지만 권세 오면 자연적으로 포기가 됩니다.




제가 대전강의에서 했지요. 천 명 교회든 백 명 교회든 간에 그걸 예배당이란 창고라는 교회라고 보면, 오늘밤에 내 영혼 데려가면 저 창고에 있는 것, 다 누구 것이 되겠느냐? 이 말은, 목회자가 봉사했으면 그만이지, 봉사했다고 해서 저 교회 교인을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이 말이죠. 저는 그 정도만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가만 보면 목회자가 되서 제일 큰 시험거리가 뭐냐 하면, 바로 우리 교회 몇 명이라든지 시험거리입니다. 이게. 이것은 마치 그 사람들이 내 권세 아래 있는 것처럼 곡해하게 만들어요.




어제 심방을 갔는데, 새로 온 집사님 가정이 대대로 아버지가 세웠던 교회에 엉뚱한 목사가 와서 계속해서 돈을 빼가는 거예요. 이거는 뭐 교인들에게 방법 썼지요. 통장 따로, 도장 따로 해도 소용없어요. 계속해서 돈 다 빼가요. 지가 지 막 뭐, 이거는 세미나비, 지가 만들어서 무조건 다 빼가요. 그리고 헌금 들어오면 봉투 집어넣어버려요.




예를 들어서 심방해서 감사헌금 올라오면 심방 내가 했는데 지가 왜, 감사헌금에서 분리해서 자기가 넣어버리고. 그래서 그 권사님이 내 헌금했는데 명단에 안 올라왔던데요? 목사한테 한 것이 곧 주님한테 한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 사람이 아니고, 그 동네 촌이거든요. 그 동네 다 그래요.




왜냐? 목사가 그렇게 하니까 다른 동네 목사가 본 받아서 아무 문제없으니까. 교인들이 그래도 순종하니까. 촌에는 순종하잖아요. 목사한테 건드리면 찝찝하니까. 그래서 전부 다 그런 거예요. 그래서 이 교회 있다, 저 교회 있다 전에부터 알아서 우리교회에 오시게 되었는데. 우리 교인들이 놀래는 거예요. 설마 저렇게 심하게 심할 수가 하는데.




이게 그렇게 심해도 교인들이 참는 이유가 뭐냐 하면, 주님의 권세를 받은 것이 아니고, 교회가 천국이기 때문에 교회 안 다닌다는 것은 곧 죽어서 어디 가겠다는 말입니까? 지옥 간다는 소리 밖에 안 되잖아요. 천지신명을 믿는 사람들이죠. 교회 안 다니면 지옥을 가게 되고.




교회 주인 되시는 주님의 사자, 목사와 다투게 된다는 말은 결국은 뭐냐 하면, 천국에서 탈락, 배제 당하는 그러한 징계를 사람이 되니까 목사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지, 내가 순종해야 되지, 순종해도 억울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갚아주겠지. 그렇게 내가 나서서 주의 종을 하나님 종을 할 수 없다. 내가 하면 내 종이 되지, 하나님 종이니까 하나님 알아서 할 거다.




그게 바로 교회 권세라는 것이 없는 거예요. 교회의 권세를 음부의 권세가 악마의 권세가 죽음의 권세가 교회 권세를 못 이기는 게 아니고,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주님의 권세를 못 이기는데, 사람들은 교회의 권세를 마귀가 못 이긴다고 오도하는 겁니다. 곡해하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의 권세를 받은 목회자는 이걸 바꿔야 돼요. 이걸 이용할 생각 말고. 틀리기는 틀리는데 참, 이용하기는 멋지다. 이렇게 하거든요.




원래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은 참, 이용을 잘해요.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배운 사람들을 도둑놈이라 하잖아요. 옛날 같으면 세리에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말이 있잖아요. 저주할 때 니, 변호사처럼 돼라! 안다는 것 때문에 모르는 사람의 허점을 다 챙기는 겁니다. 장사꾼들이 소비자를 속여야 이문이 남잖아요.




마찬가지로 법을 알기 때문에 법 모르는 사람들에게 지름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가게 만들고. 아주 나쁜 택시운전사가 길을 모르는 사람에게 돌아가서 요금을 더 받듯이, 오늘날 목사들이 그렇고, 변호사들이 그렇고. 그 분야에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등 처먹고 이용하게 마련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새롭게 만들어가요. 내가 과거에 주님의 권세를 받았는데, 이거 안 돼요. 과거에 내가 받아버리면 받은 것은 받은 내가 또 깨져야 됩니다. 권세를 받았잖아요. 주님 계시고, 내가 여기 있는데 주님의 권세를 받았잖아요. 주님의 권세를 받은 권세는 내가 깨어지라고 받은 권세입니다.




이게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해석 안 되는 사람은, 이게 해석이 안 돼요. 내가 죽었고. 란 말을 해석 못하는 거예요. 언놈이 나를 죽이는데? 주님이 죽이잖아요. 뭐로 죽이는데? 십자가로 죽인다 말이죠. 십자가 지나간 이야기인데 왜 거론하느냐 이렇게 하거든.




어제 아래 설교한 게 있지요. 십자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십자가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괴롭혀 놓고 승리했다고 좋아하잖아요. 그래놓고 저거는 십자가를 믿는다 하죠. 십자가를 믿는다 하면서도 십자가만 외치니까 그 사람들이 망하기를 원해요. 십자가를 외치는 사람들이 망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단 말이죠. 그게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이듯이.




주님의 권세가 임한 것은 내 권세를 따로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주님의 권세가 오는 겁니다. 교회 유지하는 거요? 여러분, 주님 부활한 걸 믿는다면 우리가 왜 목회자가 교회유지를 왜 걱정합니까? 복음을 못 전한 것 때문에 걱정해야지, 사실은. 이것저것 신경쓰다 보니까 복음을 못 전한 거, 여기에다 아부하고 저기에 아부하고 저것 기웃거리다 복음 못 전한 그걸 신경 써야지, 왜 내가 교회는 주님의 머리인데 내가 왜 목회자가 교회 권세에 대해서 걱정을 하느냐 이 말이죠.




목사가 걱정해야 될 것은 교인들이 복음에 대해서 오해하고, 주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권세에 대해서 오해하고, 교회에 대해서 오해한 것을 그걸 걱정해야 돼요. 그게 아닙니다. 왜 아닙니까? 이래서 아닙니다를 성경을 통해서 쫙 설명해야 돼요. 이래서. 여러분들의 천국과 교회, 이래서 잘못된 겁니다.




여기에 우선 교재에 돌아와서 지금 래드가 자꾸 뭘 이야기하느냐 하면, 어쨌든 간에 천국과 하나님나라와, 거기 새번역에 '천국'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나라'로 되어 있어요?




-‘하나님나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와 천국과 다르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같이 봅니다.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연결시키고자 애를 쓰는데, 뭘 놓치고 있느냐 하면, 천국이 교회를 만들어나간다는 이 점을 이 사람은 몰라요. 만들어나간다는 거. 지금 이 사람이 노골적으로 그렇게 제가 척 보니까 이제는 천국이 교회가 아니고, 이거 이야기하고 또 증거한다 되어 있죠.   




-‘창조한다’고 되어 있어요.




‘창조한다’ 되어 있지요. 저도 봤어요. 천국이 교회를 창조한다. 늘 창조하려면, 만약에 늘 창조하려면 부셔진다가 있어야 돼요. 천국이 교회를 부순다는 말을 내가 못 찾아봤어요. 천국이 교회를 부순다는 말을 못했어요. 그러나 실제로는 촛대를 옮깁니다. 계속 옮겨 다녀요. 촛대를 옮기는 대목에 아주 적절한 예가 있어요. 그게 양복 만들 때나 있는데, 그건 좀 어려운 예지만.




이렇게 좀 일반적으로 쉬운 예를 들면, 여기 제과점에서 빵이 있잖아요. 그런데 주문이 들어왔어요. 하트모양의 길쭉한 직사각형 케이크 말고 하트모양의 케이크 원합니다. 라고 주문이 들어왔어요. 그러면 주인이 뭐냐? 철판으로 함석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잖아요. 만들어요, 이렇게. 그림 아시겠죠. 바깥으로 만들죠. 텅텅 비어 있고. 이것 가지고 콕콕 찍으면 되지요.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예요. 이 하트모양 콕 찍어서 이 하트 일곱 명 구원했어요. 자기들은 우리교회에서 구원받았다고 우리는 교회 다니는 거예요. 하트는 여기 가지고 여기 찍어 버린다고. 그럼 일곱 교회는 안 변하지요? 주님의 손에 있지요. 그런데 먼저 찍힌 교회는 교회입니까, 교회 아닙니까? 교회 아니지요. 왜? 하트모양이 이쪽에서 이리로 옮겼으니까. 이쪽은 아닌 거예요.




주님께서는 주님의 교회는 완전한 교회죠. 왜? 완전한 하트니까. 하지만 누구 편 되진 않잖아요. 누구 교회 편 되진 않는단 말이죠. 이럴 때 이 교회는 스스로 교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트 때문에 교회는 깨진 셈이 되죠. 사실은 주님께서 촛대를 옮겼으니까 이거는 부셔지게 되는 겁니다.




천국은 인간들의 공간과 영역을 부수는 분이기 때문에 덩달아서 인간들의 교회도 날마다 부셔져야 돼요. 인간들의 교회관이 부셔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 교회라는 의식은 매일같이 부셔지지 아니하면 그거 교회 아닙니다. 내 교회란 관점, 그거 부셔지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에요.




이것을 성경적으로 논리로 정립이 돼야 돼요. 그냥 은혜로써 그렇다. 맞는 말이네. 이렇게 납득이 된다. 이렇게 안 되고, 그것이 성경말씀을 동원해서 그게 하나의 신학적인 체제로 이게 정립이 돼야 돼요. 정립한 것이 제가 전에 이야기한 생성론적 교회. 왜 ‘생성’이란 특징을 갖느냐 하면, 생성은 없는데서 생긴 게 생성이에요. 기대한 데서 생긴 게 생성이 아닙니다. 기대했더니만 온 것은 개연성이지, 생성이 아닙니다.




세상에 저럴 수가. 예측도 못했는데 교회가 생겨날 때, 하고 그 예측 못한 교회가 생겨난 능력은 야, 이제는 우리 교회구나. 할 때 언제고 그걸 떠나버릴 수도 있다는 거예요. 떠나버릴 수도 있는, 떠나도 우리에서 반발 못하는, 그건 주님의 고유권한임을 인정할 때 그 사람은 주님과 함께 떠다니는 사람이 되겠지요.




그래서 제가 아까 이야기한 뭐가 없다고 했습니까? 우리에게는 뭘 남기지 않는다? 중심을 남기지 않는다. 내 중심을 허용하지 않는다. 천국에서는 예수님 중심이지, 내 중심이란 내 교회 중심이란 일체 허용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을 봐도 어떤 특정 지역에 있지 않지요. 쭉 다니지요. 감독과 집사를 세웠지만 그 감독, 집사가 곧 복음이란 이야기는 없어요. 그냥 감독하는데 무슨 감독하느냐?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한 거지요.




그런데 사도 요한 하면 벌써 적그리스도 나타나고 난리나지요. 교만한 자, 제일 높은 자 되려고 사람들 등장하고. 그러니까 성경전체가 천국 중심은 맞지만 교회 중심은 아닌데, 그 천국이 그냥 교회를 늘 내 교회, 인간은 교회가 있으면 항상 그걸 나와 연계시키기 마련이에요. 이게 인력으로 안 됩니다. 항상 인간은 자동적으로 나와 연계시키기 마련이에요. 봉사를 해도 남의 교회 봉사할 수 없지 않습니까?




내 교회란 인식을 가져야 내 교회에 봉사하지, 이 교회 해놓고 다음주 다른 교회 설교하면 다음주 다른 교회, 이러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무슨 섬김의 자세입니까? 안 되잖아요. 그걸 누가 잘했다 하지 않지 않느냐 말이죠. 그럼 다른 교회 했다고 그 사람이 그러면 자기 교회를 자유로운 게 아니고, 본인부터가 어제도 강단 섰고, 다음주도 서지만 항상 지금 주님의 은혜에 권세에 의해서 섰고, 교인들은 내 소유가 아님을 늘 명심하게 하시는 능력이 주님한테 와야 그게 바로 주님이 그 장소에 세우는 교회다 이 말이죠.




자, 그렇다면 그럼 그 교회는 천국입니까? 천국은 아니에요. 천국이 만들어낸 교회라는 거예요. 그 점에 대해서 이 말에 동의한다. 천국이 만들어낸 교회고, 천국이 만들어낸 교회 있잖아요? 천만에 말씀. 천국을 증거해야. 천국이 증거해야 그게 교회되지요. 그래서 교회라 하는 것은 천국이 교회를 만들기 때문에 그 교회는 교회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만들어준 천국을 증거하는 것이란 이 논리에 부합된다 이 말이죠.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바로 이 책에 나오지요.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증거한다. 여기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성경구절들 쭉 나와 있습니다. 이 사람이 래드가 끝에다 끝부분에다가 뭘 실어 놓은 것이 참 잘했다는 거예요. 근데 그 내용은 미흡하지만 순서를 끝에다 뭘 실어놨는데 잘했다는 말은 뭐냐 하면, 나를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그 대목 실어놓은 것은 정말 잘했다 이 말입니다.




왜 그러냐? 왜 그걸 잘한 것이냐? 그걸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은 거기에 대해서 여기 단락 거의 마지막 대목에 나와요. 마지막 대목에 보면, 관리자 되어 있어요? 수호자 되어 있는데 교회, 하늘나라 수호자, 이 제목은 사실 잘못 되었고, 수호자 아니지요. 관리자도 아니에요.




그 대목에서 끝에서 뒷 페이지에 보면,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자를 영접함이라” 마태복음 10장 40절. 그 대목. 찾았습니까? 제일 팔 대목 제일 끝부분 바로 앞에. 여기 끝이라면 요 앞에. 찾았지요?




이게 굉장히 어려워요. 상당히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권세가 제자들에게 작용할 때 어떻게 해서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양식이 되느냐, 방식이 되느냐? 라는 겁니다. 만약에 요 비법만 안다면 결국 뭐가 되느냐 하면, 오늘날 날 건드리면 주님 건드리는 것이라는 공식이 되겠지요.




거기서 좀 더 나가면 뭡니까? 하나님도 안 건드리니까 이젠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내가 어떤 짓을 해도 그 어떤 짓도 주님이 하는 일으킨 권세라는 것을 믿는 자만이 구원되지요. 내가 어떤 짓을 해도. 내가 노상 방뇨를 해도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 누가 한 것이다? 주님께서 하셨고, 내가 노상 방뇨한 것을 주께서 하신 일로 믿는 사람만이 천국 갈 사람이다. 논리가 되죠.




이 논리를 중간에 뭔가 끊어줘야 되고 가지치기를 해야 되죠. 그쪽이 아니고, 이쪽 갈림길 이쪽입니다. 고 뭔가 당겨줘야 될 게 필요하잖아요. 여기에 복잡한 논리들이 있는 겁니다. 처음의 말은 맞다 이 말입니다. 여기 보면 여기서 래드의 주장들이 오해의 소지가 그런 거예요. 실컷 하늘나라가 교회를 만든다 해놓고 결국은 일 단계 천국에서 뭐가 됐습니까? 교회죠.




교회에서 일반인을 상담할 때 일반인은 천국을 바로 직접 접촉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통해서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천국이라는 것은 이미 접촉 불가능한 단체가 되고 말았고, 일반인들이 교회 말을 들으면 그제야 그걸 조건하에 천국도 문 열어 줄게. 라는 식이 돼버린다 말이죠. 그렇다면 앞에서 이야기한 것이 설득력을 잃어버리죠.




왜냐하면 기존에 교회가 천국이란 말이 래드 말에 동의해도 결국 이 대목, 일반 세상 사람과 대목, 이 대목에 국한해서 하는 주장이라면 그 말도 틀린 말이 아니고, 맞는 말이 될 수 있지 않느냐? 앞에 뒤에 있는 교회는 역시 천국. 이런 주장을 기존교회에서 많이 하고 있지요.




허어, 교회 머리는 주님이시지, 목사입니까? 허어, 글쎄, 우리가 그걸 나도 총신 나왔다, 야. 그거 다 안다, 그래. 나도 총신 잘 배웠어. 나 그거 지금 믿고 있고 인정한다. 하지만 천국과 교회 관계, 여기에 대해서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만들어진 교회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천국할 건가? 여기에 국한 할 때 교회 관리자, 책임자가 누굽니까? 목사 아닙니까? 목사가 하지, 사찰이 합니까? 목사가 교회의 관리자, 책임자처럼 돼야지 마땅하지.




내가 이걸 부인하는 게 아니고, 교회 머리가 주님임을 부인하는 게 아니고, 교회는 나름대로 어떤 조직을 갖추어서 그들로 하여금 천국으로 인도하는 그 책임을 다 완수해야 되지 않느냐? 이런 주장들을 늘어놓게 될 때 그게 아니라고 반박이 돼야 된다 이 말이지요. 그건 아닙니다. 그쪽으로 가면 곤란하십니다. 라고 해야 된다 이 말이지요.




여기서 교재 본문 찾아봤는데 여기서 이 분이 지금 뭘 놓치고 약간 잘못 생각한 게 있어요. 아까 찾은 본문 있지요. 이 본문 더 밑에 보세요. 이 부분에. 더 밑에 보면, 마태복음 몇 장이고? 25장에 나오는, 무심코 호의를 그리스도인들, 이렇게 번역 되어 있는데 번역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새번역에. [친절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선교나 메시아에 한 것이 무심코 호의를 베푸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 비유로] 맞습니까? 그거 찾았습니까?




우연한 자선행위. 이게 뭐냐 하면, 마태복음 25장에 내가 목마를 때 배고플 때 먹을 걸 주었고, 그걸 이야기하거든요. 지금 래드가 하는 취지가 뭐냐 하면, 교회가 천국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뭐로 다가가야 하느냐 하면, 선한 일을 무심코 하게 되면, 그 사람들은 그 선한 일을 하는 것이 곧 누구한테 하는 일이다? 주님께 하는 일이 된다. 라고 이렇게 해서 교회는 선한 일을 통해서 천국을 이 세상에 선포해야 될 책임을 갖고 있다.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그렇다면 목회를 앞두고 있는 신학생들이 래드 책을 쭉 보면서, 신학생들의 관심사는 신학적으로 구조가 어떠냐 그거 관심 없어요. 아, 그래서 래드 선생님,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뭘 하란 말입니까? 목회계획을 어떻게 짜란 말입니까? 그걸 이야기해야지.




여기 보니까 제일 많이 뭐가 나와요? 아하, 선한 일을 하게 되면 그 선한 일이 주님에서 나왔다고 믿는 사람 같으면 그게 구원받은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 갈 사람이라면, 교회는 뭘 해야 돼요? 선한 일을 해야 되지요.




선한 일을 하려면 자본주의사회에서 뭐가 필요합니까? 돈이 필요하잖아요. 목사가 선한 일 하겠다고 돈 달라하는데 뭐가 나쁜데? 목사는 또 굶어죽어야 됩니까? 목사도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목사 월급 달라고 하는 게 뭐가 나쁜데? 아무 문제없잖아요.




기존교회가 욕심만 별로 안 내고 선한 일 하겠다면, 헌금 강요하는 게 뭐가 나쁜데 그래? 선한 일 하겠다는데. 돈에 환장해서 돈 달라면 안 되지만 선한 일을 하겠다는데 돈 달라하는 게 왜 나쁘냐 말이죠. 나쁜 놈은 돈을 사랑하는 교인들이 썩어 빠진 놈이지.




그리고 더 나가서 교회가 많은 돈을 끌어 모으면 그거 뭐에 쓰겠어요? 선한 일을 많이 할 것 아닙니까? 적은 돈 모으면 적은 일 밖에 못하고, 많은 돈 모으면 많은 일 하는데, 많은 돈 모아서 선한 일 하는 게 다 누굴 위하여? 주님 위해서 하는데 돈을 술집에 가 여자한테 주는 것보다 담배 피워서 하는 것보다도 그 돈 몽땅 다 교회 끌어 모아서 교회가 많은 일을 해서 부지중에 착한 일 해서 천국 보내는 게 뭐가 나쁜데? 래드 선생님도 아마 그런 이야기했을 걸. 이래 나온다 말입니다. 




지금 래드가 결정적으로 잘못한 게 있어요. 뭐냐 하면, 선한 일을 하는 그 선한 일과 선한 일을 하는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에 대해서 이 사람은 이것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선한 일이 따로 존재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한 겁니다. 쉽게 말해서 지금 마태복음 25장에 분명히 예수님이 목마를 때 마실 걸 주었지요.




그런데 래드는 그걸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목마를 때 마실 걸 준 게 아니고, 예수님 일을 하고 있는 그러니까 교회 성직자들이 선한 일 했다고 주체를 바꾼 거예요. 주체를 바꿨다 이 말이죠. 주체를 바꿔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목사가 예수님을 대신해서 세상에서 선한 일 하게 되면 목사가 선한 한다는 걸, 압니까, 모릅니까? 본인이 알잖아요. 왜? 자기가 알아서 바꿨으니까. 주님이여, 제가 이 돈 가지고 선한 일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5장에는 본인이 압니까, 모릅니까? 본인이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선한 일이 선한 일이 되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야 하느냐 하면, 선한 일을 하는 주체가 본인이 아닌 상태에서 나타날 때 선한 일이 되어야 된다 말이죠. 진짜 어려운 이야기다. 본인이 선한 일인 줄 짐작이 안 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주님께서 선한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그게 선한 일이 돼요.




본인이 만약에 선한 일을 하겠다고 나서면 거기에 뭐가 필요합니까? 돈이 필요해요. 돈이 필요하면 돈은 어디서 나옵니까? 끌어 모아야 나와요. 강요를 해야 나올 것 아닙니까? 그렇잖아요. 그렇죠? 지금 여기 헌금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헌금하는 사람이, 목사님 이 돈 가지고 좋은 일 쓰세요. 라고 하면 그건 헌금이 아니에요. 그거는 지금 협력하는 거예요.




헌금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느냐 하면, 제가 언제 헌금했습니까? 이렇게 돼야 돼요. 헌금 내는 사람이 그렇게 돼야 된다고. 그런데 그렇게 헌금 낸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아무 없는 상태에서 주께서 하게 해요. 그게 기적입니다. 그게 주님의 권세에요. 주님의 권세가 임한 사람은 헌금할 때 어떤 특징이 있느냐 하면, 그 헌금을 통해서 내가 때려죽일 죄인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




참, 나는 짠돌이다. 세상에 그런 십자가 은혜 받아놓고 이게, 정말 주여, 날 때려 죽여 버리소서. 이 정도로 돈 사랑합니다. 세상에 십자가 은혜 받았는데 돈 백 원이 뭐꼬. 아, 정말 나, 헌금을 통해서 내가 지극히 나쁜 놈이고, 정말 이 헌금이 누굴 하나 구원한다면 공로는 누가 받아야 돼요? 우리 주님이 받아야 되지, 저요? 저는 주님 목마를 때 물 한 모금 준 적 없습니다. 나, 워낙 나쁜 놈이기 때문에. 라는 사람이 주의 종입니다. 그 사람이 주의 종이에요.




그럼 목사는 어떻게 해야 주의 일을 하느냐? 주여, 나 이 교회 있으면 방해되는 사람입니다. 나 때문에 목회 안 됩니다. 나 같은 놈은 딴 교회 가면 딴 교회 망칩니다. 나는 죽어야 될 놈입니다. 나 아무것도 아닌데 지금 주께서 쓰시니까 설교한 거지, 이 교회하고 나하고 무슨 관계있습니까? 나, 지금 나가라 하면 나가야 됩니다. 정말 나 같은 놈, 또 없을 걸요?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 생각, 어떤 권세입니까? 주님의 권세입니다.




그럴 때 어이, 김 목사. 예. 니가 나의 보배로다. 주님, 누구 보고 이야기합니까? 저 이 목사 보고 이야기하지, 저 보고. 저는 아무 한 것도 없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지요. 그 이야기를 래드가 담지를 못하고 있어요.




본인이 몰라요. 진짜 몰라요. 모르게 합니다. 우리 모르게. 왜? 우리가 알게 하면, 우리는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다 압니다. 우리 기도해놓고 그냥 입 딱 씻는 놈이 아닙니다. 지 기도하고 반드시 기도한 대가를 항상 그 다음부터 새벽에 기도하면 그 다음부터 하루 종일 찾습니다. 오늘 새벽기도 했는데 뭐 특별한 보너스 없는가? 찾는 인간입니다.




주님의 권세라는 것은 뭐냐 하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전혀 하늘나라 남을 구원하는데 전혀 보탬이 안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그러면서도 택한 자는 주께서 알아서 택한다는 거예요. 알아서.




당신, 김 집사 내일부터 교회 나오지 마. 그리고 이 집사, 당신은 구원받은 사람이야. 라고 판정했는데 나중에 천국에 가보니까 나가라 한 사람은 천국에 가 있고, 당신은 구원받았다는 사람은 지옥 가 있더란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못된 엉터리 같은 나를 지금 주께서 쓰신다는 걸 믿는 사람이 그 목사,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그게 권세입니다.




그럴 때 백부장처럼 까라면 까는 거예요. 가라 하면 가고, 오라하면 올 수 있는 사람. 그거 몇 초 안 돼요. 한 3초 쯤 되는가? 그 다음은 내가 했잖아. 내가 설교했잖아요. 또 나온다고. 그게 몇 초 안 돼요. 하지만 몇 초 순간만큼 인간은 주여, 내가 바로 하나님 일의 방해꾼입니다. 라는 것을 절감 절감하게 돼요.   




다시 말해서 나란 인간 없어도 주님 일 잘 됩니다. 그게 아주 기분 좋아졌어요. 기분 좋아져야 돼요. 그게. 나 없어도 나 지금 목사 안 해도 주의 일, 내 백성 안 돼도 택한 백성 지옥 가는 일 없습니다. 왜? 내가 온 것은 내 백성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라. 했잖아요.




이거는 꼭 이근호가 개입될 이유가 없어요. 아무 이유 없어요. 내 죽더라도 일, 잘 돼요. 결국은 나를 쓰시는 것은 내가 안 되더라도 일 잘됨을 이야기하라고 쓰시는 거예요. 주의 일에 방해꾼이 납니다. 여러분 자신들이에요. 이걸 믿는 사람만이 주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인간들이 하는 주의 일은 항상 죄를 드러내는 식으로 하고, 주님이 일을 하시는 주의 일은, 인간들은 주의 일, 그것도 주의 일, 주께서 인간을 사용할 때는 죄를 드러내는 식으로 하고 주님만이 공로가 높아지는 식으로 합니다. 그게 언약입니다.




그걸 래드는 언약을 모르기 때문에 이걸 완전히 빼먹고 있어요. 그래서 래드 식으로 해버리면 뭐가 돼버리느냐 하면, 그대로 들어가면 제목대로 들어가면 교회가 관리자다 보니까 교회가 정신 바짝 차려서 나쁜 짓 하지 말고, 주의 명예를 생각해서 이름을 생각해서 착한 일 많이 해야 된다. 그래야 주의 일을 넓이 전파한다. 이러한 아주 상식에 맞는 그런 쪽으로만 신학이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끝으로 하나만 중요한 거 하겠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 했잖아요. 여러분, 사도를 영접하는 자가 그 사람 능력으로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돌, 짱돌 가지고 안 때려죽이면 천만다행이에요. 어느 누가 사도 바울의 복음을 영접할 자가 누가 있어요?  에라이, 이단 놈아. 이단 새끼야. 어디서 율법을 폐해. 어디서 하나님의 법을 니가 뭔데 예수만이야. 하고 사도 바울에게 달려들고 성에서 메치고 도망치고,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었잖아요. 누가 영접해요? 영접 못해요. 우리 능력으로.




그런데 영접한다는 것은 결국 뭡니까? 주의 성령이 임해서 주의 권세가 임해서 영접합니다. 그럴 때 사도가, 저 사람은 나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고, 지금 보이지 않는 주님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앉은뱅이가 걷게 한 거고, 예수 믿은 거지, 사도가 말빨 써서 한 게 아니란 말이죠.




그게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내가 말한 것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고, 주의 성령이 나타남으로 하신 것이다. 나는 십자가 밖에 이야기 안 했었는데. 이거는 인간이 믿을 게 못되고, 감추어진 하나님의 깊은 세상 어리석은 하여튼 놀라운 구원의 능력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도는 고맙지요.




아무 쓸모 짝 없는데 인간이 가는 곳마다 손수건 하나 툭 던지니까 손수건 주워서 낫잖아요. 그러면 손수건을 빨고 다녔습니까? 그 다음부터. 사도 바울이. 와아! 자기가 화들짝 놀라는 가운데서 일을 해요. 왜냐? 한 것 없는데 구원받으니까. 예수님 고백하니까. 바로 이것이 내가 받은 복음의 상급이다. 이걸 위해서 공간을 영역을 뛰어넘어서 예수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자꾸 내가, 내 교회, 내가 한 일, 의미 두고 중요하다 여기고 겸손과 모든 낮아짐을 이야기하면서도 겸손하는 나마저 낮아질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주의 권세로 말미암아 우리가 훼방꾼이며 우리가 하나님 일을 가로막는 이기주의인 것을 늘 깨달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한 백성 건지는 놀라운 주님의 부활하심과 능력을 새삼스럽게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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