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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7 12:38:45 조회 : 4967         
20070306b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하나님나라의 윤리(2) 녹취 이름 : 한윤범(IP:61.73.20.111)
 

20070306b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하나님나라의 윤리(2)


(강의:이근호 목사)






참 누구 말대로 이 세상에 막 가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원래 가치라는 것은 마르크스는 순진하게 노동가치가 포함된다고 생각했거든. 얼마나 순진한지. 노동가치가 포함되는 게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걸 누가 구매자가 생기면 가치가 생겨요.




그리고 마르크스는 뭐라느냐 하면, 노동시간 자체도 허구에요. 왜냐하면 사람은 억지로 하는 일과 좋아서 하는 일을 구분을 못하는 거예요. 조각가가 조각하는 게 즐겁게 하잖아요. 그런데 똑같은 조각품을 열 개를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들은 해외 노동자들은 억지로 하는 게 아닙니다. 보너스나 월급날 바라보면서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똑같은 가치로 봐야 된다는 거예요. 그거는 아니에요.




목사님 많이 편찮아요. 몸 아프고 배고프고




어려운 거 해봅시다. 선교 사건이란 것은 이것은 항상 우발성이죠. 우발성입니다. 우발성이라 하는 것은 그냥 우발성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미 깔려 있는 이 세상은 악한 세상, 악한 세계에 대한 이 악한 세상은 뭐냐 하면, 이거는 합리적으로 자체 내에서 선과 악이 이미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요.




목사님, 유대인 체계 말합니까? 아니에요. 유대인만 아니고 모든 인간은 항상 선과 악으로 되어 있고 악을 배척하고 선은 지향하고, 그렇게 되어 있어요. 어떤 종교단체도 그래요. 어떤 종교단체도. 너희를 구원하는 선한 일에 열심히 하면 친 백성이 되게 하리라. 항상 선한 쪽을 앞장 세워서 악한 쪽을 감추는 쪽으로 체계되어 있는데.




이것이 너무나 확고하기 때문에 주님의 사건은 우발적이 될 수밖에 없지요. 쑤셔야 되는 거니까 이쪽도 쑤시고 저쪽도 쑤시고 양쪽도 쑤셔야 나오니까 우발적으로 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예수님의 사건은 이미 이거는 확정입니다. 왜?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는데 누가 너를 꾀더냐? 확정된 거거든요. 두 개의 서로 다른 확정된 사건이 그게 서로 만나면서 거기서 우발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게 선교사건이라는 거예요.




요한복음에 보면 내 나라는 여기에 없다 했거든요. 내 나라는 이곳이 아니다. 그러면 그 예수님 말씀을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 나라가 이곳이 아니라면 그러면 이 나라 어떻게 되든지 괜찮지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예수님 말씀에 순종 못하고, 제가 아까 '순종'이란 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만.




뭐라고 했습니까? '소속' 왜 우리는 내 나라도 아닌 내 소속도 아닌 남의 나라에 대해서 왜 그렇게 울고불고 같이 웃고 울고불고 그렇게 하느냐 이 말입니다. 남의 나라에 내가 실패했다고 해서 나를 왜 실패자로 확정짓느냐 이 말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선지자들이 그건 다 나그네였고 이방인이였는데.




이런 걸 볼 때 지금 선교사건을 가지고 우리의 소속을 분명히 하는 지금 두 번째 시간에는 더 어려운 걸, 해야 돼요. 천국이 무엇이냐 하는 것. 이 점에 대해 무엇이냐? 천국이 무엇이냐 하는데, 지금 래드 이야기를 계속 해 봅시다. 래드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의가 천국의 의란 말은 천국이 무엇이냐에서 나온 게 천국의 의 아닙니까? 그러면 그 의를 따라 가면 무엇이 알려지겠어요? 천국이 무엇이냐가 알려지겠지요.




그런데 래드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 의는, 여기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지, 그 대목을 다시 읽어보면, “하나님의 나라의 의는 더 이상 율법에 의해서 매개되지 아니하고 선지자들에 의해서 예언 되어서”라고 되어 있지요. '선지자들에 예언 되어서' 선지자들이 율법과 선지자들이 그 당시 어떤 행동을 하든지 말을 할 때 어떤 기적을 베풀 때 그들은 무엇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무엇과? 율법과는 무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하면, 장차 올 본성이 율법과 무관하기 때문에 앞당겨 오는 선지자들도 율법과 무관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최초의 것이 아브라함이에요. 아브라함이 받을 복은 믿음으로 했지, 아직 율법은 430년 후 그때 오게 되어 있다고 갈라디아서에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믿음으로 주어지는 복이지, 결코 율법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복은 아니라 이래 보는 겁니다.




엘리사 시대 때 아람군대 장관 나아만 장군이 율법에서 연구한 건 뭐였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그건 이방나라입니다. 그 사람이 기껏 용서받아놓고 죄 씻음 받아놓고 병 나아놓고 했다는 그것도 내미는 그 제물도 율법적이 아니요, 그들이 내미는 사고방식 있잖아요. 이런 소리합니다. 내가 이방신을 섬길 때도 여호와 생각하거든 여호와라고 쳐주세요. 라고 하죠. 




그리고 사무엘상 9장, 거기에 보면,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 뺏기고 난 뒤에 언약궤가 블레셋 나라를 돌아다니며 다 칩니다. 블레셋 나라가 언약궤 하나 감당 못해서 다곤 신상이 손모가지 부러지고 엎어질 때 그때 그들이 언약궤를 돌려보낼 때 들어있는 의식 한번 보세요. 그게 율법적입니까? 아니지요. 황금으로 금 쥐를 만들어서 아주 징그럽잖아요. 금 쥐를 만들어서 해서 줬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그걸 마치 뭐로 쳐줍니까? 율법에 의한 제물로 쳐주지요.




반대로 사울 왕은 율법대로 한다고 전쟁하기 전에 언약궤 붙들고 제사 드렸는데 그때 누가 안 왔어요? 사무엘이 안 왔지요. 자기는 제사지내는데. 그래서 제사는 율법대로 해야 되겠고, 전쟁은 나가야 되겠고. 그래서 하니까 사무엘이 하는 소리가, 순종이 뭐보다 낫다고 했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했지요.




이것을 갈라디아서는 율법을 준 것은 너희 죄를 후비기 위해서 준 것이지, 너희 죄를 완전히 후비기 위해서 ‘텍사스 전기톱 사건’ 그 사람처럼 아예 전기톱으로 후비기 위해서 성경말씀 전체가 우리를 후비기 위함이에요. 사도 바울이 말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 이게 뭐예요? 우릴 후비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배고프면 몸 아프면 돈 밖에 생각 안 나요. 내가 수천 억 있으면 이런 수모 안 받는데, 이것뿐이에요. 니 목사해라. 하나님, 저 사람 목사하게 하세요. 나 수천억 주세요. 이게 우리가 원하는 거래라니까. 그렇잖아요?




어떤 목사가 말하기를 사도 바울도 율법이라 하는데, 모든 말씀은 그냥 옳은 게 아니고, 율법은 우리를 죄를 깨닫게 함이고, 오직 하나님의 의로 예수님의 선교적 사건으로 십자가로 우리가 의롭도다. 그 이야기한 예수님 증거용입니다. 성경 전체가 구약뿐 아니고 성경 신구약 전체가 예수님 증거하는 거예요. 예수님 증거하려면 우리는 뭐가 되어야 하느냐? 찌르는 자가 돼야 돼요. 우리는 왜 예수님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찌르는 자 역할을 해야 된다는 거죠.




천국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여기서 두 개의 확정된 질서가 나옵니다. 이쪽 천국 질서와 이쪽 질서가 붙습니다. 내 나라는 여기에 있지 않고 내 나라는 따로 있다. 이렇게 해서 다른 하늘나라의 질서의 방법과 이 질서 방법이 다릅니다. 이 래드의 교재 마지막에 보면, 유명한 천국이야기 하면서 유명한 포도원비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래드가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마지막에 관주 46번에 나오지요. 관주 되어 있습니까? “사실 한 시간 동안 일한 일꾼들은 한 시간 동안의 임금을 받아야 된다. 그들의 받을만한 대가는 온종일 일한 사람의 품삯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비유의 형태는 온종일 일한 자에 대한 밀착시킬 필요가 없다.”라고 되어 있어요.




이게 지금 어디에 때문에 그러느냐 하면, “전자는 공로와 보상이지만 후자는 은혜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지금 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천국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예수님은 비유했는데 이 래드가 이야기한 것은 관심사가 천국이 무엇이냐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고, 무엇을 얻을 것이냐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이것은 천국이 무엇이냐 하고 상관없는 거예요.




거, 굉장히 예민해요. 예리하게 구분돼야 됩니다. 천국이 무엇이냐에 대한 관심을 두어야 될 것인데 천국에 속한 사람은 어떻게 은혜를 획득할 것인가, 어떤 식으로 받느냐는 식으로 이 포도원비유를 해석한다면, 관심사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냐에 관심사가 사라지죠. 우리는 천국백성이다, 신난다, 구원받았구나. 라는 자기 확정에다 더 신경을 쓰는 것으로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포도원비유 해석은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고 해석을 달리해야 됩니다. 그 해석 달리 하기 전에 먼저 거기 들어가는 절차들을 설명해야 돼요. 그렇게 한꺼번에 나가면 너무 빠르니까 절차가 있습니다. 절차는 바로 예언자, 아까 이야기한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들이 어떤 선교적 사건을 미리 앞당겨서 할 때 율법과 상관없습니다. 그러면 예언자들이 율법을 없이 행동을 할 때 그럼 지 마음대로 행동했는가, 진짜 꼴리는 대로 행동 했는가, 진짜 성질대로 다 했는가? 안 그러면 상대방이 약 올리니까 화딱지 하다보니까 나왔는가, 아니면 어떤 일관된 원리가 있는가? 그걸 살펴야 되겠지요.




그 살피는데 구약 선지자를 구태여 예를 들 필요 없이 세례요한을 예로 들면 됩니다. 세례요한의 신학이 무엇이냐? 이걸 지난번에 했는데 이걸 한번 정리해 봅시다. 세례요한의 신학은 첫 번째는 하나님나라에 대해선 이야기 안 하고, 이 세상이 망한다, 쪽만 이야기했죠. 이거 차이 납니다. 하나님나라가 무엇이냐 하고, 이 세상 망한다하고 또 다릅니다. 천국이 무엇이냐 하고 천국에 속한 사람이 뭘 얻었는가 하고 다릅니다. 항상 주의 이름에 초점을 맞춰야지, 주의 이름 덕에 나, 이거 얻었다에 초점을 맞추면 곤란합니다. 이거는 성경의 본 뜻이 아니에요.




하나님나라하고 이 세상 할 때 세례요한은 뭘 모르느냐 하면, 하나님나라를 몰라요. 그래서 천국에 있는 어린아이라도 누구보다 신학이 더 깊다? 세례요한보다 더 깊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서도 주님께서 이상하게 여자로 태어난 남자 중에서 세례요한만큼 위대한 선지자는 없다 했거든요. 그러면 선지자 기능은 뭡니까? 하나님나라는 무엇이냐에 관심은 없고 어디에 관심이 있다? 이 세상은 망해야 된다.




그러면 두 번째, 세례요한이 이 세상은 망해야 될 때 그 망해야 되는 근거가 뭡니까? 망해야 되는 근거가, 세례요한에 있어서 몇 가지 오해가 있어요. 뭐냐 하면, 세례요한은 율법에 정한 그 더 이상의 급료를 받지 마라. 군인들에게. 그래서 세례요한이 이 세상이 망한다, 망할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은 율법을 제대로 안 지켜서 그렇다. 그 말이 일리는 있어요.




왜냐하면,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율법은 어디까지냐? 세례요한까지에요. 그러니까 세례요한이 율법에 속했는데, 그런데 율법이 세례요한까지다. 라는 이 말은 뭐냐 하면, 세례요한 속에서 뭘 끄집어내야 하느냐 하면, 율법이 왜 우리 인간을 구원하는데 힘이 되지 못하느냐? 라는 요소까지 세례요한 속에서 찾아내야 돼요. 그래서 일단은 세례요한은 이 세상은 망한다는 이유는 율법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그것과 두 번째 더 중요해요.




왜 율법대로 못 삽니까? 세례요한이. 왜 세례요한이 이 세상이 율법대로 못 살게 되었다고 보느냐 하면, 두 번째가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오실 메시아가 있기 때문에. 그러면 오실 메시야가 뭐냐? 하나님나라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오실 메시야는 사람에게 새로움을 기대하기 보다도 뭘 기대하느냐 하면, 크게 쓰겠습니다. 회개만 기대할 뿐이다. 회개라는 것은 이미 나는 뭐다? 나는 죄인, 맞습니다. 라는 쪽이죠. 죄인 맞습니다.




그러면 세례요한은 희미하게나마 뭘 알아요? 율법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온전히 지켜서 구원받는다는 게 아니라 율법 자체가 어떤 기능을 갖고 있다? 나, 죄인 맞습니다. 하는 기능까지는 세례요한이 감 잡은 거예요.




그리고 세례요한은 우리는 율법의 죄인 맞습니다. 하고 그것만 달랑 있으면 안 되고, 회개를 하려면 뭔가, 점선으로 하겠습니다. 점선으로. 뭔가 희미하나만 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끔 우리를 도와주는 어떤 메시야가 다가오고 있다는 겁니다. 마치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것처럼. 세례요한은 광야에 일부러 나갔어요. 원래 저쪽에 요단강 거기에 있다가 광야에 일부러 나갔다고.




이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기존의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자손을 완전히 부정해 버리고 광야에서부터 다시 입성하는 그 폼을 연출하는 겁니다. 이벤트를. 광야에서 요단강에 물 적시고 다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자는 겁니다. 그러면 요단강에 물길 속으로 들어가자는 게 아니고, 대기상태, 대기, 이 용어가 참, 멋지네. 대기상태. 회개하고 난 뒤에      죄에다 퍼붓고 대기상태에 있어요.




그래서 마태복음 9장에 보면, 바리새인에 제자들과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일 날 뭐 합니까? 금식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 제자들은 뭐해요? 죄인들과 함께 술 먹지요.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놀리잖아요. 그렇게 세례요한 제자들까지도 금식하는데 너희들은 술 먹느냐 할 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장례식에서는 술 먹으면 안 되지만 지금 결혼식이잖아. 잔칫집에 술 먹어야지. 신랑이 왔잖아. 라고 했어요. 세례요한은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왔잖아. 이미 오신 상태에서 알고 있는 것과 오실 거야. 라고 아는 것과 차이가 나죠.




여기서 세례요한 이야기하니까 한 마디 해야 되겠는데. 그러면 목사님, 지금 오늘날 교인들에게 성경할 때 그럼 세례요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됩니까? 이미 예수님 왔기 때문에 다시 오실 거야. 뭐, 대비하자.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됩니까? 아니면 제자훈련 하는 과정에서 1단계는 세례요한 단계, 2단계는 예수님 단계라고 해서 처음부터 예수님 단계로 접어들지 말고, 반드시 필수적으로 세례요한 단계를 밟아서 예수님 단계로 접어들어야      둘 중에 어느 것입니까? 한꺼번에 예수님 단계를 다 집어줘야 됩니까? 아니면 1단계 세례요한 단계까지 거쳐서 그래서 2단계로 예수님 단계로 접어들어야 됩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그것은 사도행전에 세례요한도 모르고 율법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성령께서 그냥 성령세례 왔다는 것을 염두에 보세요. 염두에 보게 되면. 그것은 세례요한 단계라는 것이 따로 절차 필요 없이 이미 성령 안에서 1단계, 2단계 한꺼번에 다 터지고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과거의 한 시점이 아니고 구원파처럼 몇 년도 구원 받았다고 과거의 한 시점이 아니라 내일 되면 오늘도 마찬가지고 내일 되면 내일 또 세례요한 단계, 예수님 단계 한꺼번에 다 터져요. 왜냐하면 주의 이름이라 하는 것은 우리 이름을 뭉개버리는 역할을 하니까.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면 뭐 합니까? 내 이름으로 스케줄 세우잖아요. 내일 되면 마찬가지에요. 내일 안 죽고 살아있다면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되면 주의 이름이 또 임하죠. 주의 이름이 임할 때 바로 세례요한 단계에서 한꺼번에 다 터져서 내가 계획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내일 되면 내일 몫의 또 한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의 은혜가 뭐냐 하면, 바로 우리의 소속이 어디냐? 우리의 소속이 이 나라가 아니고, 다른 나라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또다시 깨닫게 하지요. 이제 소속이 나와서 어떤 일을 하느냐 하는데 그 다음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어쨌든 거기까지는 이해하고.




세례요한 신학에서 망한다는 거죠. 망하는데 오실 분이 와서 한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하늘나라와 이 세상을 구분하잖아요. 이 명확히 분간하는 이거,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 책에도 나와 있습니다. 이 책에도 군데군데 중요한 게 있다고 했지요, 제가. 그게 어디 있느냐 하면, 이 책에 보면, 군데군데 중요한 이야기를 담아 놨어요. 못 찾겠는데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뭐냐 하면, 예수님은 철저하게 선인과 악인을 구분한다는 겁니다. 양과 염소, 오른쪽과 왼쪽, 죄인과 의인. 이 철저하게 구분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잘 들어보세요. 지금 이거 어려운데 잘 들어봐야 되는데. 세례요한이 회개를 하기 용도로서 악한과 선인을 구분했죠. 이거는 아직까지 미완료입니다. 회개하기 위한 용도입니다. 회개하기 위한 용도에서 악인과 선인을 구분했다면, 예수님은 이미 소속이 확정된 상태에서 선인과 악인을 구분해 버립니다.




이것은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주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잘하면 구원해 줄게가 아니라, 너는 창세전부터 이미 구원받았어. 확정한 조치로서 주께서 말씀 하신다 이 말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세례요한은 뭡니까? 너는 정신 차려! 이노무 자식아! 어. 회개해야 구원받아. 아직도 대망하는 게 있지만 예수님은 그게 아니라 이미 소속이 이미 빼도 박도 못하게 이게 확정하게 되었음을 선언한 쪽에서 선인과 악인을 구분한다는 거예요. 모든 하시는 기적과 말씀이. 예수님의 기적은 뭐냐 하면, 기적 보고 회개하면 구원받겠다. 이거는 세례요한 수준이고, 그게 아니고 아, 나는 구원받은 사람 맞네. 하고 오는 거예요.




소경 열 명이, 소경입니까, 문둥병입니까? 문둥병 열 명이 했을 때 아홉 명은 뭐 했습니까? 야씨, 나 문둥병 나았다. 하고 가버리잖아요. 소속과 관계없지요.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인데 문둥병 난 사람은 어디로 옵니까? 낫고 난 뒤에 예수님께 오잖아요. 그 중에 결국은 병 낫고 지옥 가고, 이쪽은 병 낫고 천국에 이미 왔고, 저 사람은 병 낫고 이미 지옥 갈 사람으로서 병 나아버리고.




그렇다면 천국이 무엇이냐? 점점 뚜렷해지면서 뭔가 모호해지잖아요.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아직까지 여전히 지금 이 사람도 래드도 어느 수준입니까? 지금 세례요한 수준이라고요. 회개해야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이건 말도 안 되거든요. 회개해서 구원받은 사람 없습니다.




회개라는 것은 아까 이야기 다시 해봅시다. 내일 되면 내일 치의 뭐가 날아옵니까? 주의 이름의 능력이 날아오지요. 그러면 이미 소속이 천국에 된 사람한테는 무슨 단계? 세례요한 단계, 예수님 단계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지요. 그러니까 성도 같으면, 사람은 내일 되면 내일 스케줄 짜놨고 까불다가 내일 저녁 되면 또 다 깨져서 아이고, 수요일 날 이 사람 올 줄 알았는데 오지도 않고 이건 계획 다 깨져서 주께서 하셨구나, 하잖아요.




그러면 이미 회개한 것과 이미 소속이 구원되었음이 한꺼번에 다 일어나지요. 이게 이미 예수님 당시에 일어난 현상이에요.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현상이라. 선지자들이 하는 선교적 사건은 뭘 할 수 있어요? 선인과 악인이 지금 하나님께서 구분하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는 쪽은 선지자 선교적 사건이라면, 예수님의 선교적 사건은 뭐냐 하면, 이미 우리는 창세전에 소속이 결정되었다는 겁니다.




그걸 제가 울산 강의할 때 캥거루 주머니 이야기했잖아요. 서경수 들었지요. 캥거루 주머니에 아가 새끼 있으면 아는 지가 태어날 때 여기 자기 세계인 줄 보니까 엄마가 얼굴이 있거든요. 태어날 때부터 자기는 뱃속에 있었던 거예요. 우린 이미 창세전에 있었던 겁니다. 미리 아신 자를 불러내요. 미리 아신 자를 불러내는데 우린 그것도 모르고 회개했으니까 구원받았지, 이카고 있단 말이죠. 창세전부터 이미 사랑 받기로 작정되었는데.




그래서 세례요한의 신학이 공관복음에 나오는 그 신학보다 내용이 더 풍성하고 더 깊이 있는 겁니다. 왜? 창세전까지 다 포함을 시켜버리니까. 그래서 요한복음도 마찬가지로 공관복음 마태, 마가, 누가복음보다 더 포괄적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뭐냐? 소속에 관한 문제에요. 이제 소속에서 이 성도의 삶이 어떻게 나오는가? 그 대목을 이야기할 참인데. 어쨌든 간에 이 소속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세례요한적인 요소, 이 세상은 망한다. 이 세상은 우린 망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망하게 하기로 했었고 예수님이 오시면 이 세상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세례요한 이야기 다시 하면, 예수님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오실 분이 오면, 이 세상은 반드시 망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망하는데서 벗어나려면 뭘 해야 한다? 회개해야 한다. 회개할 때 기준은 뭐였습니까? 율법이었죠. 그러면서도 율법이 전부가 아니고, 뭐까지 생각해야 돼요? 오실 분이 망하게 하심을 즐겁게 반기면서 회개해야 되지요. 마땅합니다. 당해야 싸지요. 예. 잘 오셨습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그럴 때 요단강 회개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알고 요단강에 들어가죠. 오실 세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이 오셨으니까 세례요한이 하는 말이, 오실 이 당신 맞습니까? 물었지요. 그럴 때 예수님 답변이 아주 희한한 답이에요. 회개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외부의 능력이 덮쳐진 상태를 말하지요. 소경이 눈을 뜨며. 소경이 무슨 짓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냥 소경은 눈 띠게 되어 있고, 심지어 죽은 자는 살게 되어 있는 자는 살려주는 세계에요. 뭘 하느냐가 아니라 뭘 해주시느냐의 세계라 이 말이죠.




그렇다면 한번 정리해 봅시다. 결국은 이 세상은 망해야 되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뭘 하시는 게 없기 때문에 망해야 되고, 이 하늘나라에 된 사람은 주께서 뭘 했기 때문에 구원된 사람이에요. 본인이 뭘 했다는 게 양 쪽도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망하는 자리에서 그냥 망해야 되는 겁니다. 이것이 주님의 선교적 사건이에요. 우발적인 사건이에요.




그러니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을 배척할 수밖에 없지요. 심지어 성도들도 매일 같이 배척하지요. 이 말씀을.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있습니다. 라고 우기잖아요. 제가 이렇게 열심히 했기 때문에 보상해야 될 것 아닙니까? 지금 이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래드도 맨 날 보상이야기하고 있어요.




보상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보상 어떻게 하느냐? 소속된 그것이 주님의 일로 인하여 주어진 보상이 되는 겁니다. 우리 자체가 전리품이에요. 이거는 아까보다 한 걸음 더 나간 겁니다. 아까는 제가 뭐라고 했어요? 일한 자체가 보상이죠. 이건 일한 인간, 나 자체가 보상이에요. 하나님의 열매요 선물입니다. 주님의 열매요 선물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산상설교를 보자 이 말입니다. 그럼 이 산상설교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산상설교 한번 봅시다. 이 본문 이 교재에서.




오늘 정판옥 목사님이 아주 얼굴이 참, 많이 피곤하신데 미안해 보인다.




183페이지 있는데. [내적 삶의 윤리] 찾았습니까? 번역, 그렇게 되어 있는데. 번역판이 세 개나 돼서. [절대적 윤리] 또 다음 번역 뭐라고 되어 있어요? [내적 삶의 윤리]라고 되어 있는데, [내면생활의 윤리] 또 다른 번역에는 뭐로 되어 있어요?




[내면생활의 윤리]에 보면, 여기 이 사람이 바른 소리한 게 있어요. 뭐냐 하면, 이게 얼마나 귀한 말인지. 바리새인들은 뭐냐? 모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되어 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내가 이르노니’ 아, 이거 얼마나 건방진 이야기입니까? 내가 이르노니.




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한 이 가난 개념, 애통 개념, 그 다음에 의에 주린 개념, 그 다음에 마음의 청결 개념, 이 모든 개념은 어디 안에는 없습니까? 모세 율법 안에는 없는 거예요. 율법 없다는 말은, 율법이라는 것은 잘 들어보세요. 율법이라는 것은 인간의 뭔가 들어있는 것을 겨냥해서 그런 개념을 가지고 준 게 율법인데, 율법 안에 이 개념들이 청결, 가난 개념이 없다는 말은, 예수님만 알고 다른 사람은 전혀 모르는 개념이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다시 이야기할게요.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 개념에 준해서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그걸 인정했어요. 그래서 바리새인보다 더 의가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 했습니다. 그만큼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열심 내는 것을 충분히 인정했다 이 말이죠. 하지만 예수님은 내가 이르노니, 이 개념은 율법이라는 것은 인간 속에 율법적 개념과 접촉이 소통이 되는 그런 개념을 겨냥해서 율법을 줬거든요. 그래야 그런 죄를 끄집어내니까.




그런데 여기에 '내가 이르노니'는 예수님이 가난과 애통, 주림, 청결 전혀 우리 속에 들어있지 않은 소통이 안 되는 우리가 납득이 안 되는 그런 독특, 예수님만이 따로 만들어낸 개념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거예요. 이것을 가난, 애통, 주림 이걸 합쳐버리면 이걸 압축시켜보면 뭐냐 하면, 나의 복음입니다. 나의 복음과 나의 의에요. 그것이 팔복 마지막에 뭡니까? 누구든지 내 의와 내 복음을 위해서 핍박을 받으면 복이 있나니 즐거워하라. 옛날 선지자는 이와 같이 즐거워했느니라. 하늘나라에 뭐가 많다? 상이 있으리니.




여기서 그렇다면 천국,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했을 때 이것은 기존에 모세 율법에 준해서 여기 질서에서 이 질서, 심령이 가난한 질서로 넘겨올 수 있습니까, 못 옵니까? 못 넘겨 오는 거예요. 넘겨 올 수 없는 거예요. 그럼 예수님께서 아까 이야기했죠. 예수님께서 이 세상 망하고 저쪽 세상이 납득이 안 되고, 납득이 안 되면 실행이 옮길 수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영어선생이 애한테 주르륵 이야기했는데 영어를 못 알아듣는 애가 선생이 뭐라고 했는지 못 알아듣잖아요.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언어를 이야기했다는 말은 결국은 그쪽이 아무리 애써도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올 수가 이 질서는 넘어올 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망해야 될 세계는 망하게 하는 거예요.




예수님만이 아는 질서를 들이댐으로 말미암아 저쪽 질서가 그 질서에서 더 이상 굳어지고 빠져나오지 못함을 깨닫게 해서 망하는 자는 망하게 만들고 이쪽 질서에서 새로 되는 겁니다.




그림으로 설명해 봅시다. 래드 책을 읽어봐야 이게 이해되는데. 이쪽 질서가 옛 질서입니다. 그림만 보세요. 쭉쭉 뻗어나가 바리새인들은 어디까지 이른다? 이 힘은 무슨 힘입니까? 율법적 힘이잖아요. 율법이라 하는 것은 인간 속에 이미 납득이 되는 요소가 있다 이 말입니다. 납득이 되니까 설치려고 하는 게 행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사랑할게요. 뭡니까? 나도 사랑의 의미를 안다는 거 아닙니까? 이걸 확장시켜서 어디까지 이른다? 여기까지 이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질서로 바리새인보다 의가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이르지 못 한다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심령이 뭐한 사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천국에 있잖아요. 그러면 심령 가난이 이게 천국이라면, 이 질서에 납득이 된 질서 가지고 의에 이르지 못해요. 그럼 이쪽 질서, 옛 질서에서 새 질서로 옮겨 올 순 없다 이 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옮겨 올 수 없다 이 말이죠.




본인이 소속된 사람이 아니면 이미 소속된 사람이 아니면 이쪽 질서에서 옮겨 올 수 없는 거예요. 처음부터 소속되지 않으면 옮겨 올 수 없다는 이 말은 결국은 이미 확정되어 있다 이 말이죠. 확정되어 있다는 이 말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고, 심령이 가난했다는 뜻 자체가 이미 천국에 소속되어 있단 뜻이다 이 말입니다. 내 말은. 내가 하는 이 말은.




그런데 뭘 행해요. 하기는 개뿔이 행해. 뭘 행해도 이미 소속인데. 아니 소속을 이야기하는 건데 왜 행함이 왜 들어가느냐 말이에요. 로이드 존스나 래드, 이 사람이나. 당신 신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데 왜 행함이 왜 나오느냐 이 말입니다. 산상설교하면서. 지가 심령이 가난한 게 뭐가 아나? 뭐가 알아요.




공주가 낳은 애는 날 때부터 왕궁에 속합니다. 지난주일 날 아침에 그런 설교했지요. 신분이 해를 태양을 덧입고 별 면류관 쓰고 발에 별이 있는 고귀한 신분의 어머니라면 그 애가 나온 모든 아기는 이미 그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고귀한 신분이에요.




천국 백성은 예수님께서 갈라디아서에 보면, 어머니에 의해서 낳게 잉태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애써서 신분을 따내는 게 아니고, 어머니가 따로 계셔서 그 어머니에서서 나게 되어 있어요. 그게 성령으로 난 사람이라면, 내가 나를 고쳐서 변화시켜서 하려 하면 이거는 율법에 속한 사람이라서 이거는 종놈의 종놈이라 하지 종년이라 하면 안 돼요. 하여튼 종의 출신자나 하는 짓거리란 말이죠.




그래서 그런 것들은 많다고 여기는 거예요. 왜? 육체가 많으니까. 하지만 하나님이 잉태한 사람은 없어요. 없지만 없는 사람의 자식이 있는 자보다 나중에 더 많다는 이 말입니다. 더 많다는 이 말은 그만큼 가치가 더 우월하다 이 말이죠. 우리 어머니는 하늘에 있다 했잖아요.




참,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여러분들하고 마음속으로 하면서 생각하는 게 이래 가지고 목회 되겠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주님이 잉태 안 해 주는데 아무리 설교해도 믿어주지 않으니, 참 목회 끝나버렸어.




산상설교가 우리한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라는 식으로 우리가 의미를 찾기 위해서 산상설교를 봅니다. 지금 래드는 말하기를 산상설교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율법의 일획이라도 다 폐지할 수 없다고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 또 래드가 주저하는 거라.




아까 뭐 캤습니까?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의 선교적 사건으로 예언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해놓고 율법과 상관없이 만들어진다고 해놓고 또 마태복음 5장에서 율법을 일점일획이라도 폐지할 수 없다 하니까 또 울렁증이 생겨서 또 어떻게 신학자로서 아주 양심적인 신학자로서 어떻게 이걸 뺄 수도 없고 난처하게 있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래드가 빌리는 것이 종말론적 윤리다 하는 겁니다. 하르낙의 주장을 빌려와서. 종말론적 이렇게 보는 거예요.




종말론적 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율법의 완성 자체가 새로운 종말을 맞이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율법의 완성 그 자체가 또 오해의 소지를 낳지요. 아까 처음에 강의했잖아요. 율법의 완성 자체로 자꾸 이렇게 하늘나라를 봐버리면 또 우리가 율법의 완성적인 행동을 해야 되는 것처럼 비칠 수가 있단 말이죠.




아까 율법을 매개를 안 한다 했잖아요. 안 했는데 또 관심사가 또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신다, 그런 식으로 오해해서 로마서 8장에 나오잖아요. 우리로 하여금 율법의 요구를 율법을 또 완전하게 지켜야 되는 것처럼 한다 이 말이죠. 그렇게 되면 교회에서 산상설교 지키기 운동이 벌어져요. 산상설교 지키기 운동해서 안 지키면 안 된다고. 또는 안 지키면 구원은 받지만 복은 못 받는다고 이런 식으로 곡해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면 산상설교의 핵심에 대해서 이제 뭐냐? 산상설교의 핵심은 천국이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천국은 이렇다는 겁니다. 천국은 이렇다 입니다. 이 말은 천국에는 이런 힘이 나온다. 이래 보시면 됩니다. 새로운 질서 천국에서는 이런 힘으로 너희들은 구원해 내느니라 입니다. 계속해서 너희를 구원해 내느니라. 심령이 가난한 힘으로 너희를 구원해 내고, 애통하는 힘으로  너희를 구원해 내느니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무엇을 입을까 마실까 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고, 그 나라 의를 구하게 되는 그 힘으로써 너희들 소속을 분명히 한다는 겁니다. 산상설교가 분명히 한다.




좁은 문을 가지 않을 수밖에 없게 하는 거예요. 좁은 문으로 가지 않을 수밖에 없게. 그런데 좁은 문의 개념은 우리는 안다, 모른다? 우리는 모르지요. 우리는 몰라요. 육에 속한 사람은 우리는 신체가 있어서 몰라요. 그런데 좁은 문이 뭐냐를 나중에 천국에 가보면 천국에 도착해 보니까 지나온 넓은 길이 모두 좁은 문이라. 예수 믿고 집 세 채 있고 한 달 월급이 2억 이고, 이게 전부다 좁은 문이에요. 좁은 문은 천국의 예수님께서의 능력이 좁은 문이었어요. 주의 능력이 끌면 좁은 문이고, 아무리 좁은 문도 좁은 문 아니에요. 자기 힘으로 들어가려면 좁은 문이 아닙니다.




그 나라 의를 구할 때 자기 힘 가미되면 아니고, 주님의 능력에 의해서 그 나라 의를 바라 볼 때 그게 주님의 능력이 그게 그 나라 의를 바라보는 하나의 주의 능력이에요. 맹세 하지 마라. 누가 맹세 안 해요. 누구나 다 맹세하거든요. 다 다짐을 하고 결정을 내리고. 그것이 다 소용없는 겁니다.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그것은 다 이루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어디 가버렸노? 어디 가버렸지? 성경 책 앞에.




율법의 기능을 뭐냐 하면, 인간의 죄를 고발한다. 이거는 로마서 3장 21절 나오지요. 19절부터 나오잖아요. 율법을 이룬다는 말은 더 이상 인간의 자력으로서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그 기능에 대해서 주님에게서 양보할 생각이 없다. 양보 안 하고 반드시 다 들추어내버립니다. 어디 안에서? 새로운 질서 안에서 다 이루어내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 [내적 삶의 윤리]라고 되어 있는데. 아까 절대적 의라 했습니까, 의의 완성 했습니까? 그 바로 위에 봅시다. 네 번째. “그 같은 하나님나라의 의는 심령의 의가 온 후에 오는 것이고 실제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양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질에 있는 것이다. 그 나라의 시대는 종말적 왕국이 임재 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지만 그 나라의 본질은 지금 이 시대에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래드가 엄청나게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왜 오해하고 있느냐 하면, 이 래드의 이런 주장은 무척 잘못 된 것이에요. 그 사람은 지금 뭘 믿느냐 하면, 예수를 믿는 게 아니고, 시간을 믿어요. 오실 때까지 한번 기다려보는 거지, 뭐. 다만 지금 터진 하나님의 의를 잠시 맛만 보면서 오실 때까지 기다려보는 거죠. 이렇게 할 때 기다리는 주체가 누구에요? 나잖아요. 말이 안 되지요. 또 나가 등장하는 거예요. 윤리란 자체가 내가 있을 때 성립되는 거예요. 내가 죽어야 될 입장에서는 윤리라는 게 성립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거 하고 우리가 재림 기다리는 거 하고 아무 상관이 없어요. 우린 재림 기다리다가 죽어야 될 겁니다. 예수님께선 우리가 죽든 말든 오시게 되어 있어요. 지금 하나님의 나라는 심령의 의, 심령은 누구한테 속한 거예요? 우리한테 속한 겁니다. 그러면 이걸 고쳐야 돼요.




지금 산상설교를 이렇게 보는데 '종말론적'이라는 어려운 말소리하고, 종말론적 말 자체도 어려워요. 종말론하고 종말론적 다르거든요. 어려운데. 임재 할 때 기다려야 하지만. 그러면 기다리다가 만약에 잠시 잠들 때 생각 안 나면 어떻게 돼요. 그 나라의 본질은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심령에 천국이 있는 것이 아니고, 누가복음 17장에 나옵니다. 그거 찾아서 봅시다.




누가복음 17장 21절. 17장 20절에서 21절, 누가 한번 읽어 보세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볼 수 있게 임한 게 아니지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은 인간에게 없는 거예요. 심지어 여기서 말이 어려운데, 그러면 사람이 심령으로 보인다. 심령으로 보이는 것도 보이는 거예요. 심령으로 아는 것도 아는 게 아니에요. 그건 지가 상상한 겁니다.




구원은 주의 능력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내가 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그거는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사람이 마음에 깨달아서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는 마음으로 깨닫지 못해요. 외부의 능력이 임해야 천국을 알지, 내 마음 속에 마음으로 깨달아서 주의 십자가를 깨닫는다고 해서 십자가를 알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심령의 천국이라 하는 말이 안 됩니다. 너희 안에 하는 것도 우리 심령 안에 있는 것도 말이 안 돼요. 그냥 계신 거예요. 그냥 계신 거. 지금 이 나라에 그냥 다른 나라에 그냥 계신 거예요. 눈에 보이는 식이 아니고. 우발적인 아까 선교적 사건처럼 뭔가 사건이 터지는 겁니다.




그 사건 내용이 뭐였습니까? 이 세상은 망한다. 이 세상은 망하고, 주님의 창세전에 예정된 사람한테는 주님의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자신의 의의 능력으로 우리를 발휘한다. 하나님의 의의 능력을 발휘하면 뭐가 생기겠습니까? 열매가 생길 것 아닙니까? 그 열매가 바로 보상이요, 열매가 바로 전리품이요, 열매가 바로 성도요, 열매가 바로 우리의 천국인 겁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 일의 결과가 있듯이 천국도 주님의 자신의 일을 한 결과가 천국이에요.




무슨 소리고?




마태복음 17장 봅시다. 17장에 중요한 게 많은 모양이라. 우연인데, 이건 우발성과 관계없습니다. 16장 28절 봅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라고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일하시지요.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했잖아요. 그리고 5절에 보니까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봤잖아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거 누가 이런 짓을 했어요? 누가 이런 이벤트를 일방적으로 누가했어요? 예수님이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렇게 하심에 의해서 그걸 믿게 되고 보게 되고 알게 된 그 사람들은 누구 작품입니까? 예수님께서 일하신 결과들이죠. 흔적들이 남겨진 사람들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결국은 천국이라는 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이 해서 얻어진 그 자기 사람들 속에 예수그리스도가 천국의 주인공이다. 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그것이 천국의 모습이고 천국의 윤리라 하고 천국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이죠.




삶이라 하는 것은 주께서 뭔가 일을 저질러 놓은 그 흔적들이 삶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걸 개인적 입장에서는 보상이 되는 거죠. 개인적 입장에서 성도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보상이 은혜라는 말이 되는 거예요, 이제.  래드가 하도 일관성 없이 중구난방으로 엉터리 같은 소리해 놓으니까 내가 짜깁기하는데 내가 애를 먹었는데.




보상이 은혜라는 말은 그 일한 주체가 누구란 말입니까? 예수님이어야 그게 은혜가 되지, 그냥 은혜라 하면 우리는 맨 날 뭘 생각해요? 일을 개떡 같이 해도 공짜로 받는구나. 자꾸 공짜로 받는 거만 생각하지, 자기 챙겼다, 얻었다만 좋아하지 주님이 나를 지금 만들고 있다는 거, 나를 일관되게 하고 있다는 여기 주체자에 대한 어떤 바라봄, 이것은 여기서 빠져버렸단 말이죠.




그러면 나 은혜 받았다하는 자기를 증언하게 돼요. 나, 은혜 받았다 증언하지 말고 예수님이 일 하신다는 걸 예수님을 증거해야 될 건데, 나 은혜 받았다 나 구원받았다 그것만 맨 날 증거하고 있으면 그게 무슨 천국 백성이냐 그게 무슨 삶이냐 말이죠.




자꾸 내가 은혜 받았다, 구원받았다,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증거하려니까 다른 사람이 그러면 당신 삶은 어떻게 되느냐? 그럼 산상설교 지켜야지. 또 나중에 지킴이 또 나온다고. 산상설교조차도 우리가 미처 도저히 지킬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 계획을 몰라요. 우리는. 좁은 문인지 몰라요. 우리는 맨 날 좁은 문 같으면 예수 믿고 살리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잘못된 거라고.




주여, 먹을 거 입을 거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그것도 생각한 거예요. 우리는 자꾸 생각한다고. 애통한다, 애통하는 걸 꾸미는 거예요, 우리가. 애통한다는 것은 주님께 일을 저질러야 애통이 생기지, 우리 힘으로는 애통이 안 생깁니다. 복음의 위해서 살아간다, 죽는다. 그것도 우리 힘으로 되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망해야 될 자이기 때문에. 망한 나라기 때문에. 그럼 새 나라는? 새 나라는 주님이 하실 몫이지, 우리가 할 몫이 아닙니다. 주님이 안 하면? 안할 리가 있습니까? 지금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 했는데 안할 리가 있습니까? 다 이루지요.




주님이 하는 작품으로서 주님이 한 열매로서 우리가 맺혀야 됩니다. 그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잖아요. 진짜 성도는 주님 이름만 증거하고 그 앞에서 자기 이름을 부인하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살리라는 말이 그 말 아닙니까? 주의 이름이 높이는 앞에서 우리 이름은 날마다 작살나는 쪽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고백하는 겁니다.




산상설교 다시 합니다. 산상설교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예수님께서 천국을 이루시면서 남긴 여러 가지의 주님의 작품들입니다. 저는 더 이상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없다고 봐요. 주님이 주체가 되셔서 이룬 남긴 여러 가지 사태들, 사건들이에요. 그게 뭐냐? 심령이 가난한 것이고, 애통한 것이고 그렇다 이 말이죠. 의에 주리고 굶주린 거고, 좁은 길로 가는 거고, 남을 비판하지 않는 거고.




비판하지 않는다 하니까 앞뒤가, 만약에 세상적인 관점에서 비판하지 않는다? 그러면 뒤에 나오는 말씀이 뭡니까? 선지자를 삼가라. 선지자를 삼가라 하려면 뭘 해야 돼요? 판단해야 될 것 아닙니까? 저 놈은 가짜 선지자. 그러면 앞에 말한 것과 또 모순된다고. 구하라 주실 것이요, 두드려라. 이거는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어요. 우리 힘으로 되질 않습니다.




다만 주께서 그렇게 하실 때 우리는 뭐냐? 우리는 주님 앞에 아무것도 대적하는 그러한 나밖에 모르는 죄인임이 드러나죠. 주의 일이 벌어지면 주의 일이 산상설교를 우리한테 적용시키면 우리는 그 앞에서 철천지원수였으며 죄인인 것을 드러내는 노출되는 그런 한 계기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산상설교부터 모든 말씀이 우리를 율법적 기능으로 우리를 다 헤집는 거예요. 그 율법적 기능이 뭐냐? 아까 이야기한 세례요한 코스를 밟고 있는 거예요. 내일도 또 밟고. 그러니까 한번 밟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매일 같이 주의 이름이 임하시면 세례요한 코스를 매일 같이 밟으니까 우리는 매일 같이 회개하는 겁니다.




매일 같이 회개하고 우리 소속은 이미 이러한 천국에서 이미 깨닫게 되고. 이러한 과정그것을 그대로 교인들에게 설교하는 거예요. 말씀을 통해서 설교하는 거예요. 말씀 가지고 이렇게 회개해야 되고, 이렇게 기쁨이 오는 거 이것이 바로 성도입니다. 라고 증거가 되는 겁니다.




조금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피곤하시죠.




여기 181페이지 나오는데 이게 [의의 완성]하고 [보상과 은총] 그 중간에 쯤에 나와요. 래드 이 사람이 중요한 거 이야기한다고 했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 “그의 제자들은 이미 그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나라를 위해 사는 자들이다.” 혹시 찾았습니까? “그에게 무슨 사건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찾았습니까? 그 뒤에 번역 보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가 멸망한 것이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그 밑에 밑에가 마태복음 16장 24절 성경구절 나와 있고. 그 위에 방금 한 거 ‘가장 중요한 것은’ 번역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세요. 




-그 나라의 장래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아아, 그렇게 되어 있어요? 여기는 이렇게 되어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가 멸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번역에 문제가 있지요. 아마 이 말이,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 나라가 멸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있을 거예요. 그죠? 원래 번역이. 제 삼의 번역은 모르겠는데. 마태복음 16장 24절 그 위의 구절. 관주 38 달려 있는 문장 한번 읽어보세요.




-39로 되어 있는데, 불트만이.




그거 말고, 38.




-38은 JR 21 




아아, 이게 아니구나. 여기 이런 말이 있어요. “그리스도인이 교회 일부라면 예수의 윤리는 실천 가능한 윤리이다. 그가 세계 일부라면 그 말은 적절한 말이지만 실천이 불가능한 말이다.” 이게 지금 중요한 말을 래드가 했거든요. 굉장히 내가 어려운 말이기 때문에 설명을 안 하고 있는데.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이런 뜻입니다.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지금 제자들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주의 이름이 임하면, 다시 하겠습니다. 복잡하게 안 하고 쉽게 하겠습니다. 주의 이름이 우리한테 임하면 뭐가 이루어진다? 세례요한처럼 이 세상은 망하고, 하늘나라는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이미 이루어졌기에, 이루어진다는 세례요한 단계고, 예수님 단계는 이미 하늘나라 이루어졌기에 세상 나라는 이유 없이 반드시 망해야 되지요. 이것이 제자들에게 중요하다 이 말입니다. 그 말은 곧 뭐냐 하면, 실천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이 말이에요. 실천 불가능한 문제.




저는 여기서 하나 더 보태고 싶어요. 그렇게 세상 나라가 멸망해야 되지만 뭐도 멸망해야 되느냐 하면, 세상 나라가 생각했던 뭐도 망해야 된다? 천국도 망해야 돼요. 이것이 바리새인과 예수님과의 마지막 다툼이었습니다. 천국이, 너희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망해야 될 천국이다. 망해야 될 천국이고, 왜냐? 이미 천국은 진짜 천국이 이미 왔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결행하는 천국은 이거는 멸망당해야 될 세상 나라와 다를 바 없는 천국이다. 그 속에는 너의 행함과 너의 실천력이 포함된 천국은 천국이 아니죠.




그 비유가 마지막에 무슨 비유? 포도원 비유입니다. 첫 번째 먼저 일찍 왔다고 뭐 달라? 품삯 더 달라. 망해야 될 천국이에요. 진짜 천국은 주님이 주체가 돼서 이미 전리품으로 내 사람이라고 주께서 작품으로서 자기 백성을 따로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너희가 너희를 만들 필요는 없다 하는 것이 천국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우리를 손댈 필요가 없도록 주께서 강하게 목자로서 손대고 있는데 우리는 매일 같이 스케줄 짭니다. 내가 내 관리하고 내 미래 설계하고 평생 다가도록 우린 배고픔과 아픔을 면하기 위해서 시도하게 됩니다. 주여, 주께서 매일 같이 오셔서 우리의 소속과 신분을 확정짓게 해 주시고 그 속에서 주님의 의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증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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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20061103a 울산강의-창세기 1장 녹취 한윤범 07-01-29 5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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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20061201a 울산강의-창세기 3장 녹취 한윤범 07-02-06 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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