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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9 20:33:41 조회 : 4447         
20070406b 울산강의-창세기 13~15장 녹취 이름 : 한윤범(IP:59.6.189.236)
 

20070406b 울산강의-창세기 13~15장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헤어지는 장면인데, 이 장면을 설명하면서 아까 같이 똑같이 이야기하겠습니다. 역시 층이 두 개의 층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 층이 있고, 아브라함과 롯입니다. 하나님 층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층은 인간 층을 향하여 약속을 던집니다. 이렇게 해 줄게. 하고 약속을 하면, 인간 층은 항상 이것을 곡해하고 오해해요. 그것이 계속 갑니다.




여러분, 유명한 게 있죠. 니가 자식을 낳게 해 달라 하니까 아브라함 측에서 뭐라 합니까? 아, 이스마엘 낳아버리잖아요. 항상 육적으로 나가요. 영적으로 이야기해도 육적으로 해석하고, 영적으로 이야기해도 육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은 하나님이 갖고 있는 복안이 뭔지 몰라요. 다만 놀라운 사실은 그래도 계속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관계, 뭔가 내용은 엉터리지만 뭔가 안 끊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나중에 하나의 믿음으로 형성되는데.




오늘 두 번째 창세기 13장 같은 경우에도 12장 같은 경우에 아까 것처럼 아, 하나님이 애굽에 있어도 하나님이 이방인을 통해서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도 하나님이 더 큰 권세로 장악하고 있구나. 나는 바로 왕이 무서워서 어쩔 줄 몰랐는데 내가 무서워하는 바로왕도 다 하나님께서 나한테 나를 굴욕케 하기 위한 배치물들이에요. 하나의 장치들이에요.




모든 천하를 다 움직이니까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잘난 체하는 나를 계속 꺾어서 하나님 믿는다 할지언정 결국 하나님 없는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사람과 똑같이 하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하죠. 하나님 없는 식으로 살면서 하나님 이름은 계속 부르는 겁니다.




이 13장에 들어와도 땅 문제가 나와요. 13장의 주제는 뭐냐? 아브라함이 인간 층에서 처음에 올 때는 기근이 있어서 달랑 식구들 밖에 없어요. 그냥 사람들 밖에 없었는데 12장은 그냥 사람들이죠. 일군의 일단의 사람들 밖에 없었는데 14장에는 사람들 더하기 뭐가 생겼느냐 하면, 땅이 생겼는데 땅이 생긴 이유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복이란 팽창을 말합니다. 가축들이 늘어나면서 가축들 양육할 사육할 땅까지 주십니다.




자, 그런데 아까 제가 12장 한 것 또 잊어버렸겠지요. 다시 할게요. 하나님께서 가축 주시고 땅을 주신다 할 때 이것이 어디서 누구한테 준 땅입니까? 하나님 층에서 인간 층에게 준 땅이거든요. 하지만 인간들은 땅을 준다 하니까 자기가 평소에 알고 있던 땅 이용률, 그런 차원을 생각하는 거예요. 야, 우리 소유의 땅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땅 줄 때는 땅 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땅에 소유되라고 줬는데, 사람들은 오해하기를 야, 이제 땅을 받았으니까 이 땅은 나에게 소유된 땅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줄 때는 우리가 생명의 소유되라고 줬는데,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에게 영생을 주면 나는 영생 가졌다 해서 내가 영생을 소유하려고 달려드는 것이 인간 층에서 왜곡되고 해석하는 특징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은 우리가 축복의 소유되라고 줬는데 사람들은 오늘날 교회들은 축복을 달라 하잖아요. 왜? 왜 그렇습니까? 근대 주체사상이 뭐라고요? 우리 것이 아니에요. 뭐에 것? 나만이 될 때 희열을 느껴요. 명품을 나만이 차고 다닐 때 기쁘지, 온 동네방네 똑같은 명품 차면 그 명품 갖다 버립니다.




고속도로에 소형차만 다닐 때 SUV해서 레저용 큰 차가 올 때 그때 신나지요. 나중에 너도나도 다 SUV 내 차고 스키 달고 달려버리면 재미하나도 없습니다. 다시 원상, 본래 자리에 돌아와 버려요. 그 정도로 현대주체사상이 현대 우리 자본주의 하의 인간은 정말 병이 너무 들었어요. 자기 밖에 모르는 병이.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에요. 땅을 주니까 이 땅에 내 땅이요 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13장에 보면, 넓은 땅을 주신다 하니까 하는 말이, 니 어느 쪽 할래? 이렇게 되는 거예요. 질문이. 조카야, 니 어느 쪽 할래? 니가 저쪽하면 내가 이쪽하고, 니가 이쪽하면 내가 저쪽 할게. 아직까지 하나님의 복안, 하나님의 계획은 몰라요.




모르고 일단 우리가 가축이 너무 번성했으니까 어느 땅 할래, 땅 자체 우리 인간 층에 지시하는 건 생각 못하고 신났다 어쨌든 받자. 그리고 어쨌든 챙기자. 왜? 인간들은 하는 일은 자기 생존 밖에 모르니까. 하나님이 무슨 뜻은 준질 몰라요. 무슨 뜻인 줄 일단 고맙습니다. 하고 일단 자기 소유하고 자기 원하는 대로 그냥 살아갈 뿐이에요. 그 땅으로 인하여 자기가 힘들게 된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 만약에 하나님께서 새순교회 교인들 앞에 2억씩 그냥 주신다. 그냥 주신다 할 때 물론 새순교회는 이런 건 없을 거예요. 만약에 지금 2억 다 받고 난 뒤에 사람이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사람이 똑같이 받으면 짜증난다 했지요. 혼자 받아야 좋은데 다같이 받을 때는 그 다음에 뭐냐 하면, 고스톱 쳐서 한 사람에게 몰아주자. 뭐, 이런. 이럴 수가 있습니다. 지 2억 받은 것은 좋은 게 아니고, 남이 똑같이 받았다는 게 이게 기분 나쁜 거예요. 자기 개성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몽땅 다 차지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요새 케이블TV에 이런 게 있어요. 가방에 돈 1억 넣어놓고 당신의 가방, 7번 같으면, 가방 7번 안에 무슨 돈인지 모르고 현재 여기 10원부터 해서 1억짜리 금액이 쭉 나와요. 계속 가방 50개를 들춰보니까 이미 들춘 것은 이천오백만원 빠지고 천만 원 빠지고 빠지는데 나머지 10원 남고 1억 남았다 말이죠. 그래서 사장이 제안합니다. 어이, 가방주인, 한 오백만원 줄 테니까 오백만원 받고 떨어져라 하니까 이 사람은 아니오. 왜? 10원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고 뭘 생각합니까? 반드시 내 가방은 여기 나오지 않은 1억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프로 봤습니까? 그런 프로가 있어요. 완전히 도박 비슷한 그런 건데. 행운의 가방 그건데.




그처럼 땅을 주게 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다니까. 왜 몽땅 내 것이 되지 않느냐 하는 문제. 이 땅 싸움은 그 뒤에 창세기 14장에 보면 누구의 땅 싸움으로 번지느냐 하면, 바로 소돔과 고모라의 다섯 왕, 다섯 와인가, 아홉 왕이죠. 여기 당시에 시날 땅 엘람 왕 해서 14장 봅시다. 이쪽의 연합군 다섯 왕, 이쪽에는 맞는 편에는 몇 왕? 네 왕. 5:4로 대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 전쟁에 누가 들어 있느냐 하면, 롯이 선택한 자기 소유의 땅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하면, 이거 좀 피곤하더라도 참으세요. 이거 중요한 거니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아브라함에게 땅을 줄 게 한 것은 땅에서 농사짓고 가축 기르라고 준 게 아니고, 그 땅으로 인하여 너로 하여금 또다시 굴욕할 수밖에 없고, 그 땅으로 인하여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겁니다.




아까 첫 번째 내 강의할 때 여러분, 그래 이야기했지요. 아브라함이 축복과 저주할 때는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민수기에 24장에 보니까 축복과 저주가 뭡니까? 이스라엘을 축복 안 하면 니가 완전히 전쟁에서 패배한다 하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무슨 용도입니까? 소유용도가 아니고 전쟁용이에요. 세상을 하나님의 저주 편과 축복 편으로 나누기 위한 전쟁용으로 줬는데 일단 땅을 주니까 엄마야, 기분 좋아서 받는 거예요.




지금 하나님께서 현찰로 2억씩 주고 땅을 십만 평 나눠줘 보세요. 전쟁을 하던 뭐 하든 일단 받고 보자. 이거 아닙니까? 전쟁을 하던 부자 돈 맛이나 보자. 일단 받잖아요. 이게 우리의 본색이다 말이죠. 바라기는 새순교회 교인들의 여러분의 본색을 알기 위해서 한 사람당 2억씩 있기를 바랍니다. 전부다 10억, 2억씩 해서 이왕 인간 더러운 거 돈이나 만지고 더럽자 이 말이죠. 돈 없이 더러운 꼴 안 당한다 이 말이죠.  




하나님께서 돈을 주고 땅을 준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힘든 일을 점점 더 가중시키는 겁니다. 하나님께 받았던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가 고민이 쌓이고 걱정이 쌓이는 겁니다. 롯이 선택한 그 땅이 얼마나 좋은 비옥한 땅인 요지 땅인지 온 나라가 주변나라가 다 달려듭니다. 그 땅이 얼마나 좋은지 그 땅의 별명이 뭐냐? 에덴동산이에요. 에덴동산 씨만 뿌리고 돌아봐도 내일 모레 싹이 날 정도로 너무나 비옥한 땅이에요. 좋은 땅입니다. 그 땅 한 가운데 알박기 한 것처럼 롯의 땅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축복된 아브라함, 아브라함과 연계된 롯이 지금 무엇과 연계되어 있습니까? 세상에 땅 차지하는 인간 층과 연계되어 있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한테 나아가고 싶어도 어디서 당기는 힘이 셉니까? 지상에서 당기는 힘이 더 세지요. 또다시 여기서 굴욕을 당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이름 불러봤자 하나님 이름을 불러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몸 아프고 병이 낫는 게 좋습니까, 애초부터 병이 안 생기는 게 좋습니까? 애초부터 병 안 생기는 게 좋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 그런 일 하지 않고, 병나게 하시고 하나님 방식으로 해결하시고.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는 조용히 살기를 원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축복이랍시고 주시고 축복 때문에 고민하게 하시고, 고민을 통해서 우리는 굴욕하고 좌절하게 만들고 그 좌절을 하나님의 개입함으로 말미암아 희열로 바뀌고. 감사와 고마움과 하늘나라의 소망에 더 크게 하는 방법으로 해서 소망을 키우십니다. 환난 가운데 소망 있어요. 환난 없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환난이 있을 때만 비로소 절망 가운데서 좌절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신 영생의 가치가 더 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면 목사님, 차라리 우리는 고민 안 하고 그냥 살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하겠지만 우리는 인간 층이기 때문에 고민 안 하고 싶어도 고민할 만 것들이 계속 찾아와요. 계속해서 이 일이 터지면 저 일, 남편한테 일이 안 생기면 자식한테 생기고 자식한테 안 생기면 친정아버지한테 터지고, 계속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일을 만드는 게 아니고 일이 터져요. 정 일이 없으면 자기 일을 만들어요. 자기가 스스로 힘든 일이 터집니다. 이게 벌써 뭐냐? 우리는 땅과 떨어질 수 없는 뗄 수 없는 연관되어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만 그 본 자리는 땅의 자리지, 하늘나라가 아니에요. 그걸 또다시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롯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땅이라고 해놓으니까 자기한테만 좋은 땅이 아니고 모든 사람한테 다 좋은 땅이에요. 아브라함의 아내가 예쁘다. 자기만 예쁜 게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다 탐을 낼만한 여자에요. 롯이 받은 땅이 좋다. 자기만 좋은 땅이 아니고 다른 사람도 다 탐을 내는 땅이에요.




문제는 이게 사람이 서로 좋아한다는 거예요. 사람이 서로 갖기를 원한다고 할 때 이게 소유잖아요. 니가 내 땅, 처음에 하나님이 땅 줄 때는 약속을 줄 때는 약속을 소유하려고 했단 말이죠. 소유에서 하나님 소유로 바뀌게 하는데 여기에 전쟁이 동원되고, 이 전쟁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내가 축복의 근원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게 13장, 14장, 15장의 주제입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이 땅은 내 거라고 착각했는데 내 소유가 아니고, 오히려 땅을 통해서 나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소유란 말이죠. 하나님의 소유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것도 다 누구 것입니까? 하나님 것이에요. 로마서 14장에 나오잖아요. 우리가 살아도 주의 것이고 죽어도 주의 것이고,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다. 살아도 주의 것, 죽어도 주의 것,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란 말이죠. 걱정을 한다는 것은 이건 뭔가 문제가 있어요. 그거는 내 소유기 때문에 걱정하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 소유라기 때문에 걱정하는 겁니다.     




그저, 부산에서 강의하면서 그런 이야기했는데 여담을 했는데. 지금 세상 교회는 고난주일이라고 난리라. 그렇지요. 그래서 농담 삼아 그랬어요. 우리교회에서 금식하시는 분은 한 분 밖에 없다. 누구냐? 우리교회의 오 장로님이다. 신앙이 좋아서? 아니요. 위암수술 받아서. 강제금식. 강제금식이라.




그 장로님 찾아갔어요. 장로님, 지금 아픈들 안 아픈들 나았다 안 나았다. 낫는다고 내 소유고 안 아프다고 주님 소유가 아니고, 주님 것 주님 마음대로 위암 걸리게 하고 간 수술 받게 하고 위암수술 받게 하는데 제삼자인 내가 왜 걱정을 늘어지게 하십니까? 그 이야기 듣고 장로님 이렇게 했는데, 니나 한번 아파봐라. 말은 맞는데 신앙적인데 니도 한번 아파봐라. 그 소리 나온 거예요. 왜? 정작 아픈 사람은 누굽니까? 하나님이 아니고 내가 아프니까. 그러니까 인간은 인간 층에서 못 벗어난다니까.




우리는 추상적으로 신의 것인 줄 알지만 신의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은 하나님 손에 맡기세요. 괜히 이거 신의 것 한다고 아픈 게 안 아프게 되는 건 아니고 이런 아픈 나도 구원하는 겁니다. 현재 땅을 통해서 내 소유에서 하나님 소유가 되게 하게 한 매개체로 하나의 미끼로 물기 위해서 약속이란 땅을 줘요. 약속의 땅을 주신 겁니다.




땅을 약속으로 주면서 뭐까지 줬느냐 하면, 전쟁의 약속을 줬어요. 이건 빨간 걸로 해야 돼. 너무 어렵게 계속 하는데 빨간 걸로 해 봅시다. 땅을 약속했잖아요. 땅 약속이 어디 나오느냐 하면, 이게 바로 13장 14절 쯤.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어떻게 합니까? “주리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땅을 약속해 놓고 이 땅 약속이 아브라함 소유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하나님 소유의 땅이 되기 위해서는 여기에 뭐가 필요하냐 하면, 반드시 전쟁이 필요하고 이 전쟁의 용사는 아브라함이 아니고, 땅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아브라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이 전쟁에 나서게 되고 그 하나님의 이름이 서서히 자기 정체를 드러내는데 그게 뭐냐? 멜기세덱이라는 제사장이에요.




성경에서 제일 어려운 걸 가지고 하나님은 멜기세덱이라고 히브리서에 규정해 놨어요. 가장 어려운 것이 멜기세덱이라. 물론 더 어려운 게 십자가지만. 그건 진짜 어려운 정도가 아니고 어리석게 보이겠지만. 멜기세덱이라는 게 얼마나 이게 멜기세덱 해서 막 결혼한 새댁을 말하는 게 아니고요.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젖을 먹는 사람은 이해 못한다 했습니다.




멜기세덱이 왜 어려우냐 하면, 인간이라 하는 것은 자기 역사 속에 땅의 역사 속에 살고 있잖아요. 멜기세덱은 이 땅에 아비도 없고 족보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시작도 없고 끝이 없어요. 시작도 없는 생겨버렸고 생기고 난 뒤에 후손이 있어야 되는데 후손도 없어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요. 아버지가 없는데 아들이 생기고 아들이 있는데 손자가 없어요. 이건 어려운 정도가 아닙니다, 이거는. 꼭 귀신같아.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고 놀라운 것은 어디로 가는 지도 몰라요. 꼭 예수님 같아요. 요한복음 8장에서 이런 이야기했잖아요. 너희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는 말이, 이제 죽으려 하는가? 이야기하지요. 예수님이 죽는다는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이 독생자의 영광을 모르기 때문에 어디서 온지 모른다. 독생자의 영광. 이것도 설명해야 됩니다.




영광이 두 종류가 있어요. 오늘 모르겠다. 이해하든 모르겠다. 하나님의 층과 인간 층이 있잖아요. 고건 이해되시죠. 인간 층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따로 있어요. 인간 영광은 뭐냐? 호화찬란한 게 영광이에요. 하나님의 영광은 뭐냐?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독생자의 영광이라 하는 것은 비참한 영광이에요. 처참한 영광이고. 굴욕적인 영광입니다. 남들 보기에 저것도 영광 아니라고 치부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초라하기 짝이 없어요. 남한테 짓밟히는 영광이에요. 그런데 그게 독생자의 영광이에요.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독생자 안에 들어 있습니다. 처참, 비참, 우스운 꼴, 남한테 맥없이 얻어맞는 뺨 얻어맞고 귀때기 맞고 피 흘리는 그 피 속에 그 안에 진짜배기 알짜배기 영광이 들어있어요. 바깥의 영광은? 바깥에는 인간이 상상해서 집어넣은 영광이지요. 옛날 중세 때 그리스도 그림 보세요. 뒤에서 뭐가 나옵니까? 빛이 막 나오지요. 다 가짜입니다, 그거. 다 가짜에요. 십자가에 장미를 꽂지요. 장미 십자가 하잖아요. 다 가짭니다. 십자가에 장미를 꽂은 들 그 십자가 빛나겠습니까? 장미를 철거해야 십자가 빛나지요.




아는 이도 없고 돌아보는 이도 없고 돌보는 이도 없고. 그저 미천한 막달라 마리아나 와서 그것도 부활을 믿은 것도 아니에요. 시체나 잘 있는가, 독수리한테 안 먹혔는가, 그거 확인차 예의상, 죽은 자에 대한 예의상 찾아온 거예요. 시체 달라요. 부활 생각도 안 해 봤습니다. 주님의 독생자 영광 안에 외부에서 보면 처참한데 안에 들어와 보면 세상 영광과는 족히 비교도 안 되는 천국의 영광, 영생의 영광이 들어있습니다. 심지어 마리아, 마르다도 몰랐어요. 나사로는 죽어서 알았습니다.




멜기세덱이라는 것은 이처럼 손에 잡히질 않아요. 저, 멜기세덱의 아버지가 뭐하는 사람이지? 이렇게 물어볼 수가 없어요. 멜기세덱이 자식을 몇 명 낳았지? 그게 그 물음이 의미가 없는 것이 인간 층에서 포착되지 않는 하늘 층에 속한 사람이 멜기세덱이에요. 그런데 그 멜기세덱의 반열에 속하지 않으면 구원받지를 못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멜기세덱의 여기 우리는 이 씨면 이 씨 족보, 최 씨, 박 씨, 반열이 있지 않습니까? 가문이 있잖아요. 그 육적인 가문이 족보도 없는 멜기세덱 가문한테 박살날 때 그 만나는 초점, 위 하늘의 층이 아래층에 와서 점으로서 포인트로서 순간 다가올 때 이때 이 사람은 수직적으로 그 사람은 구원을 받는 겁니다. 바람같이 구원을 받는 거예요.




이걸 지금 아브라함이 경험했다 아닙니까. 뭐할 때? 땅 가지고. 땅 싸움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경험을 한 거예요. 아브라함이 318명 개인적인 용병을 가지고, 옛날에 용병이라 하는 것은 부자가 아브라함이 가축이 많잖아요.




여러분 주몽 보셨지요. 주몽 볼 때 그 계류, 졸본이 전쟁 벌일 때 그 군사들 어디서 모집했습니까? 소서노가 장사해서 돈 많이 벌어서 사람을 월급제로 안 줍니까? 현재 이라크 전쟁에 용병 가운데서 제일 많은 용병이 뭐냐 하면, 저 어디 서인도 제도의 피지섬인가 그 흑인들이 제일 많아요. 돈 많이 주는데 그거 가지고 폭탄받이 얼마든지 합니다. 미군들이 죽는 게 아니고, 그 사람들이 많이 죽어요. 용병들이에요.




아브라함은 마치 자기 자식 낳는다고 하니까 이스마엘 낳듯이 또 종을 자기 양자로 삼듯이 기껏 생각한 게 육적인 생각이죠. 318명 용병 사서 전쟁 승리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땅이 누구 땅이냐 하면, 하나님 땅이 되려면 그리고 하나님의 땅이 약속의 땅이 되려면, 그 전쟁은 용병 318명으로 전쟁 승리하지 말고 누가 승리해야 돼요? 멜기세덱이라는 반열에 속한 사람이 기도해서 승리해 줘야 땅은 약속의 땅이 되고, 그 땅에 아브라함이 복속되어야 아브라함은 약속의 사람이 되고, 그때 복의 근원되는 겁니다.




이 공식이 어려워요. 공식이. 너의 이름이 창대케,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이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고 인간 층, 하나님 층에서 그게 주고받고, 주고받고가 계속 시간 따라서 계속 흘러가줘야 이게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겁니다.




이 멜기세덱 반차에 들어오는 제사장이 나타나서 아브라함아, 니가 참 복 받았다. 이거는 하나님이 너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래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멜기세덱 본인은 하나님께 속하죠. 그럴 때 아브라함은 뭐냐 하면,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요. 내가 나를 인도해서 내가 나를 살려서 내가 살아가는 게 아님을 압니다. 알아봤자 돌아서면 또 마찬가지로 인간 층 그대로 머물겠지만.




어쨌든 순간순간 철저하게 나는 인간일 뿐이고 구원은 하나님의 자기 계획이지, 내 구원은 내 계획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 계획으로 돌아설 수 없는 계획이죠. 내 것이 될 수 없는 계획이 나에게 덮쳐진 겁니다. 덮쳐서 나로 하여금 정말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습인 것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굴욕적인 삶을 살게 함으로 내 이름이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새록새록 깨닫게 하는 거예요. 이게 신앙입니다.




정말 그럴 때 스데반처럼 돌에 맞을 수도 있고 사도 바울처럼 약한데서 강해 질 수가 있는 거예요. 이게 신약적으로 이야기하면 죽은 예수가 내 안에 있을 때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죽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죽은 시체 같은 나를 통해서 계속 일어난다.




강한 것에서 뭐가 나온다? 단 것이 나온다. (      ) 아닙니까? 삼손에게. 강한 것이 강하지 않았어요. 강함은 단 것한테 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강한 사자는 단 꿀을 삼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강한 사자는 겁대가리 없이 삼손에게 덤벼들어야 됐고 삼손은 그 안에 꿀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사자인 줄 알고 쳐버렸는데 나중에 보니까 삼손을 맛있게 만든 꿀이 자기가 때려죽인 그 사자 섞은 시체 속에서 피어나는 거예요. 이 하나님의 법칙을 블레셋 너희들은 아느냐 하고 수수께끼를 낸 거예요.




그렇게 잘난 체 했던 삼손도 미모 앞에 그만 미모, 아름다움 앞에 맥을 못 추고 헬레레 해서 성경에 보면 여자 아름다움 앞에 헬레레 거리는 사람이 또 나오지요. 에스더 앞에 아하수에로 왕이 헬레레 가버렸잖아요. 나라의 반을 주겠다. 얼마나 그게 뿅 갔으면 나라의 반을 주겠습니까?




세상에 아무리 남편 여러분, 아내가 잘해줘도 이 재산 반, 다 니 해라. 이런 걸 없을 거예요. 후회될 짓은 안 하잖아요. 얼마나 예뻤으면 이 나라의 반을 줄게. 그거는 뭐냐? 남자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니고, 남자가 그만큼 (      ) 하나님께서 약속의 사람은 하나님이 개입해버려요. 멜기세덱이 개입해 버리니까 애가 병신같이 뿅간 거예요. 에스더가 아무리 예쁘고 뭐 그래도 에스트로겐 여성호르몬 빠지면 테스토스테론 남성호르몬 돼버리면 나중에 별 볼일 없습니다. 당기고 주름살 해도 소용없어요.




주름살지니까 뒤에서 당겨서 팽팽하려고 뒤에 당겨가지고 펴게 하거든요. 당기는 것도 약간 몇 년 지나면 풀려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버려요. 왜? 인간 층이거든요. 인간 층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미로가 예수님의 영광이 따로 있는데 우리가 당기고 밀고 해도 소용  없습니다. 라는 말해도 우리는 합니다. 왜? 인간 층이니까 또 합니다. 자꾸 혼재, 섞이지 마세요. 우리는 딱 그어내야 합니다. 그럴 때만 거룩이 거룩이지. 안 그러면 자기가 거룩해져서 안 됩니다.




여기서 십일조가 나와요. 십일조라 하는 것은 이게 뭐냐 하면, 소속이에요. 소속을 말하는 겁니다. 십일조 내 놓음과 주고받음은 같은 소속에 속한다 이 말입니다. 같은 부대에 속한다 이 말입니다. 같은 전쟁을 일으키는 하나의 군사, 군대인데 같은 군대에 속합니다. 하는 것이 주고받고 십일조 내고 십일조 받고 하는 거예요. 내는 쪽은 십일조 바치는 쪽은 십일조 받는 분이 이번 전쟁의 장군이십니다. 총사령관이시고 당신의 능력으로 승리케 했습니다. 라는 고백을 동반해서 주는 겁니다.




이걸 예수님은 의와 신와 인이라고 한 거예요. 어떤 십일조도 의와 신과 의가 빠져버리면 십일조 아닙니다. 어데 하나님이 돈에 환장해서 한 줄 압니까? 의와 신과 의를 받고 싶어서 한 거지. 이 소속이 알고 싶어서 한 거죠. 바리새인들이 아무리 최소의 십일조를 해도 의와 신과 인을 그걸 채울 수 없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안 믿는데, 예수님을 안 믿는다는 말은 가짜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가짜 하나님은 가짜 의요, 가짜 신이요, 가짜 인이죠. 그러니까 이거는 백날 10% 월급 그냥 공제해서 교회 통장으로 내도 십일조 아니에요. 십일조 아닙니다. 이제 의와 신과 인을 받으시는 분이 오게 되면, 의와 신과 인은 이거 한번 봅시다.




의와 신과 인의 이게 실체가 누구냐 하면, 십일조의 실체가 예수님입니다. 왜냐하면 멜기세덱이 예수님과 연관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바치지요. 왜 바칩니까? 소속이 이제는 멜기세덱 소속입니다. 하나님 소속이라는 뜻에서 바치잖아요. 이분은 족보도 없고 아비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뭐가 있습니까? 족보도 있고 아비도 있지요.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갖고 있는 족보는 멜기세덱의 족보에 의해서 교체가 돼야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은 자식 아니에요. 멜기세덱의 약속에서 난 자식, 이삭만이 아브라함이 이삭으로 갑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뀌어져야 돼요. 아브람은 아버지가 이름이 데라입니다. 그러나 데라가 낳은 자식은 아브람이지 아브라함이 아니에요. 아브라함은 누가 낳았는가? 멜기세덱, 하나님이 낳지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를 낳으신 분이 누구에요?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보고서 기뻐했다고 요한복음 8장에 나와 있잖아요. 아브라함도 나 보기를 고대했다 이 말입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미쳤다고 저거 완전히 맛이 갔구나. 아브라함이 몇 살인데? 당신 나이 몇 살인데? 아직도 오십도 안 된 사람이 아브라함보다 당신 나이 더 많나? 더 많다. 완전히 맛이 갔구먼. 아브라함 있기 전보다 먼저 있었다. 선재하신 예수님. 성경이 이렇게 신비로워요. 그냥 윤리도덕 끄집어내는 책이 아닙니다.




십일조 해봅시다. 십일조에서 의와 신과 인을 낼 때 이게 예수님이에요.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다 하는 것은 그 십일조가 멜기세덱에 의해서 주신 것을 도로 바친 겁니다. 자기 돈을 바친 게 아니고, 전리품을 가지고 준 거예요. 예수님께 우리가 받은 게 사랑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사랑에 실어서 돈을 드리는 게 아니고 목숨을 바쳐야지요. 어떻게? 살아도 주의 것이요, 죽어도 주의 것입니다. 그걸 의와 신과 인을 그걸 바칠 때 우리 몸 자체가 십일조에요. 우리 몸 자체가. 자기를 바쳐야지 돈만 몇 푼 바치면 됩니까? 십분의 일 내면 십분의 구는 헤헤 내꺼다 좋아할 건데.


                       


이게 산 제물이에요. 영적제물, 영적제사를 드려야 이 말이에요. 니 몸을 이 세상 본 받지 말고 니 소속이 다르다 말이죠. 세상과 이 세대는 니하고 소속이 다르니까 니가 아브라함이잖아. 아브라함 같으면 아브라함답게 멜기세덱에게 우리 몸 자체가 주의 것이 제 것이 아닙니다. 하고 몸을 바쳐야지. 가라 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까라 하면 까고. 몸을 바치라 이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목사님,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 그렇게 되면 내 일이 아니고, 주의 일이 본격적으로 나를 타고 내려오지요. 지붕에 있는 물이 물통을 타고 밑에 땅까지 내려오듯이, 나는 무슨 역할을 하느냐 하면, 물이 내려오는 물통 역할을 하죠. 지붕의 물을 받아서 빗물 받아서 땅까지 전달하는 전달, 전달해서 땅까지 내리쏟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죠. 사랑이 쭉 내려와서 쭉 밑으로 빠져버립니다. 전부 빠지면 안 되니까 또 주시고 빠지고.




그래서 산 제물 바치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예배라 합니다. 예배라 하는 것은 성경 배우는 학원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경 공부하는 학원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그런 사람 있어요. 목사님, 몇 개월 떼면 복음 다 뗍니까? 학원 수강증 끊으러 온 사람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 그것이 바로 인간 층이거든요. 복음은 소유용이 아닙니다.




다시 이야기할까요? 약속의 땅은 내 것이 아닙니다. 복음 소유해서 천당 가겠다? 천당은 당신 소유가 아니에요. 내가 천국의 소유가 돼야 되고 내가 천국을 보여주는 물통이 돼야 돼요. 누구나 한번 져야 되고 누구나 한번 당해야 되는 걸 모르고 몇 개 떼어야 됩니까, 육 개월 다니면 됩니까? 이러잖아요. 평생 동안 우리는 주를 위해서 충성을 다해야 돼요.




이걸 가지고 이근호 목사는 십일조 안 해도 된단다, 이카고. 그래서 이근호 한 사람은 돈 좋아서 그 교회는 십일조 안 해도 된단다. 그 교회 갈란다. 뭐 이런 사람 있는데 다 그거는 인간 층에서 곡해한 것이고, 제 원 뜻은 다 바치는 겁니다.




그러면 목사님, 만약에 십일조도 안 하고 다 바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교회 애초부터 안 되지요. 안 되면 안 되잖아요. 왜 안 돼요. 주께서 하게 하시는데. 교회는 주님 소유지 새순교회 소유가 아니잖아요.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죠. 모든 교회 머리는 주님이지 우리가 아니잖아요.




제 말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인간 층으로 하던 대로 그냥 사세요. 걱정하지 마시고. 주께서 구원할 자와 구원하지 않을 자는 주께서 하시지 우리는 몰라요. 이십년 십일조 냈다고 구원 받는 거 아닙니다. 언제 복음 차버리고 도망갈지 몰라요.




우리교회 오시는 특징이 있어요. 재산 있을 때는 절대 우리교회 안 오고 재산 남의 교회 다 바치고 말아먹고 빈털터리로 옵니다. 부아가 나지요. 큰 교회에서는 헌금 많이 내면 칭찬해주고 인정해주니까 바치는 재미가 있는데. 다 털어먹고 와요. 다 털어먹고, 참. 그래도 우리교회 오는 게 주님의 교회에 오니까 그게 감사하지요.




여기 전쟁에서의 전리품을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줌으로 말미암아 그 십분의 일은 십의 구와 동일한 성격의 십분의 일이 아닙니다. 그 이야기는 그 뒤에 민수기, 신명기에 보면 나와요. 십분의 일이 십분의 구에게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다른 말로 하면 십분의 일을 받는 쪽이 십분의 구를 쥐는 쪽을 축복을 하게 되면 십분의 구를 갖고 있는 이쪽이 땅이 복을 받아서 계속해서 십분의 일을 내는 식으로 이런 관계, 그래서 너나 나나 복 없이는 하나님 주신 축복 없이는 못 산다는 것을 같이 엮여가는 그런 관계에요. 이렇게 엮인 관계를 외부에서 저주하면 저주받고 축복하면 복 받게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축복한 사람은 누구냐 하면, 기생 라합 같은 경우에 여호와를 축복했잖아요. 그래서 복 받아 구원 받았고, 안 그러면 저주받고. 이제는 하나의 덩어리가 돼요. 이 내부가 덩어리가 균열이 일어나면 이제는 축복해도 축복이 아니고 저주가 되고, 저주해도 복이 되죠. 저쪽에서 이쪽이 오히려 더 이쪽을 쳐야 됩니다. 이쪽이 이런 체제가 붕괴 돼버리면.




그걸 가지고 어려운 말로 이걸 아브라함의 언약.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언약입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 되게 하는 그 언약. 그 하나님의 개입은 주의 이름으로 개입됩니다. 주의 이름은 하나님 층에서 약속을 가지고 던져줌으로서 이루어집니다. 땅 줄게, 자식 줄게, 씨 줄게, 씨와 땅이죠. 씨 줄게, 땅 줄게. 씨와 땅, 땅과 씨. 자식과 땅, 땅과 자식.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그런데 그 인간적인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기 때문에 인간적이다 하고 달려들면 개떡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봤더니 인간적인데 현재 우리의 인간 쪽을 굴욕시키고 이걸 좌절케 하는 낯선 새로운 인간적인 모습으로 땅과 씨가 우리에게 주어지죠. 아브라함에게 주어집니다. 그걸 구분해야 만이 아브라함은 자기 자식 이삭을 과감하게 내 자식이 아니고 하나님 자식이라고 도로 주님께 반납할 수 있죠. 그렇게 되기까지는 거대한 무수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사건을 계속 추적해 봅시다. 




15장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우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방패'란 말은 어떤 뉘앙스를 주느냐 하면, 나는 니 방패가 된다. 이 말은 나는 너를 지키는 자다 이 말은 뭐냐? 너는 네가 원치 않는 전쟁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전쟁은 누구하고 하는 거예요? 적하고 하죠. 원수보고 하죠. 지금 아브라함은 구태여 적을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남에게 적대관계에 있다. 싫어요, 우리는. 우리는 좋은 관계가 돼야 다 우리의 이용가치가 있지, 적이 되면 사람이 외롭잖아요. 왕따 당하잖아요. 우리는 그런 관계가 싫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전쟁하는 신을 개입해서 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전쟁 통에 우리를 몰아넣는 식이 돼버립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너희를 지켜줄게. 방패되리라. 방패. 방패는 전쟁 해야만 등장하는 기구 아닙니까. 그리고 상급. 이거는 전쟁에 승리했을 때 전리품 아닙니까. 이것은 뭐냐? 너를 통해서 영적인 전쟁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벌어진다는 말이죠.




이걸 좀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생판 너무나 인간적인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너무나 인간적이죠. 제가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자기 밖에 모르는 털팔이 같은 인간. 정말 아무것도 자기 한 몸만 챙길 줄 아는 이런 털팔이 같은 아브라함을 가지고 이 세상을 전쟁으로 몰아넣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털팔이 같은 우리나 아브라함 같은.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뭐냐? 너의 뭐라 했죠? 너의 방패요 우리의 상급이죠. 그러면 이 약속을 누가 했습니까? 하나님 층에서 인간 층, 우리 보고 했지요. 그럼 이건 누가 이룹니까? 하나님이 이루는 거예요.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 이렇게 해 주신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죠.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방패라는 걸 알려면 내가 방패 될 수 없음을 알아야 돼요. 그리고 우리는 내가 나를 지키는 방패 되려고 무던히 애 쓸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좌절케 되고 실패로 끝나게 만들어요. 내가 스스로 만든 방패들이 무용지물 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이 방패이어야 되지 내가 또다시 제이의 방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내가 나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수시로 우리고 하여금 그걸 깨닫게 하는 일을 합니다.




사람들이 제가 새로 나온 [정죄함이 없나니]하는 책을 마지막으로 대장간에다 원고를 넘기고 인쇄만 남았는데요, 그 글에 보면 이렇습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밥 먹고 살게 되면 그 다음에 노리는 것이 뭐냐 하면, 명예와 관련된 물품을 구입합니다. 명예와 관련된 물품은, 우리가 생존에 필요한 먹는 거, 입는 걸로 족한 줄 알라 했잖아요.




먹는 거, 입는 걸로 족한 줄 아는 그때는 이게 경쟁적이 아니에요. 덜 경쟁적인데 명예와 관련된 명예는 먹는 거, 입는 거는 하루 세 끼 먹잖아요. 정주영이 하루 네 끼 안 먹습니다. 하루 세 끼 먹어요. 그리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으면 더 안 들어갑니다.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먹는 거, 입는 거는 한정되어 있어요.  




그런데 여기다 명예라는 걸 집어넣으면 명예는 끝도 없이 명예시합을 끝도 없어요. 고급 레스토랑의 입장료가 오만 원이다 합니다. 이게 재료값입니까, 음식값, 솜씨 값입니까, 무슨 값입니까? 이것은 오만 원 없는 놈 아예 여기 발 들여놓지도 말라는 멤버십이죠. 그걸 멤버십카드라 하죠. 우리들끼리의 고 가치에요. 원가가 원래 재료값 만원에다가 요리사 솜씨 만원인데 나머지 삼만 원이 뭐냐 하면, 돈 없는 놈 들어오지도 말라는 우리끼리의 명예 프리미엄이 삼만 원 붙는 거예요.




명품이 그런 거잖아요. 명품이 물건이 좋습니다만 좋아봤자 몇 만원 차이 안 나거든요. 그런데 턱없이 많다는 말은 뭐냐 하면, 지나 개나 사게 되면 명예가 찾을 수 없어요. 개나 소나 다 사면 그게 어떻게 명예가 되겠습니까? 남이 못 산 걸 차고 다녀야 삐까삐까 빛이 나잖아요. 그 빛 값, 그 명예 값 그게 동원된다고. 그게 비싸다니까, 그게 아주 비싸요. 근데 그 명예 값은 경쟁적이 되면 무한대로 늘어나요. 무한대로 늘어나요.




마릴린 몬로가 신었던 스타킹 한 짝, 경매에 나왔다? 천만 원. 스타킹이 얼맙니까? 안 신어봐서 모르겠는데 보통 얼마에요? 몇 천 원이나 돼요? 천만 원이 뭔 뜻이에요? 그런데 마릴린 몬로의 스타킹이 전 세계에 안 백만 켤레 있다. 천만 원 하겠습니까? 줘도 안 해요.




이거는 결국 뭐냐 하면, 희소가치가 명예와 통하고 그 명예가 명예 값을 하는 거예요. 우리는 바로 그런 부자 가진 명예가 없다고 얼마나 자기 가슴을 쥐어뜯습니까? 그래서 성경을 말합니다. 먹는 거, 입는 걸로 족한 줄 알라. 남 다리가지 째지 말고, 먹는 거, 입는 걸로 족한 줄 알라 하는 말이 뭔 뜻인지 알아요? 세상이 그런 식으로 터무니없이 돌아가는 세상이란 말이죠. 무슨 이야기하다 이렇게 되었노.




아, 예. 내가 스스로 나를 지키고자 하는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그것 대신에 바꿔치기 해서 하나님이 나를 지킨다는 것이 큰 명예가 되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외칠 때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놀립니다. 하도 없으니 저런 식으로라도 스스로 위로하려고 애를 쓰는구먼. 놀리든 말든 이게 실제라면 놀라운 겁니다.




사람에게 성도에게 가장 흥분된 순간이 뭐냐 하면, 진리가 확정될 때 가장 흥분됩니다. 왜? 그 진리를 목숨 바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 목숨 바칠 게 있다는 것만큼 흥분되는 게 없어요. 사람이 어디 백화점에서 물건 살 때 제일 흥분될 때가 언제인 줄 압니까? 이거다. 내가 찾던 옷이 이거다. 라고 봤을 때는 이거는 다른 아주머니 살까봐 먼저 확 내가 할 때 돈을 얼마 주던 그걸 살 수 있어요.




제일 안타까울 때가 뭐냐? 이걸 할까 저걸 할까 때는 이거는 불안스러워서 못 살아요. 사람이 확정이 될 때 그때 희열이 옵니다. 야, 흥분돼요. 참, 하나님께서 이 옷 구입하라고 이런 롯데백화점까지 인도하셨구나. 할렐루야. 그 기쁨. 물건 사는 것도 희열인데 목숨을 바꾸어도 좋을 만큼 하나님의 확정된 진리가 있다면 그거는 세상에 굶어죽어도 기분 좋을 거예요.




그 확정된 진리가 뭐냐 하면,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확정 원리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 하나님은 그 복음을 위해서 원 복음. 그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움직입니다. 그게 확실히 들어와 버리면 나는 그 약속을 위해서 목숨을 걸 수가 있고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 무서울 게 없어요. 아무 걱정도 없고 무서울 게 없어요. 이것 일까 저것 일까 저거 할까 이래 되면 스스로 무서움을 차초 합니다. 흔들리는 마음이에요.




결혼식 할 때 저 여자야. 하고 딱 찍고 이거 평생 배필이다, 이거는 하나님 주신 인연이다. 하고 결혼하면 결혼식이 굉장히 기쁜데. 양다리 걸치고 세 다리 걸쳐서 저 여자 하면 돈은 되는데 인물이 빠지고, 저거하면 가문이 좋아 어떠고 저게 안 되고, 저거 하면 믿음은 좋은데 돈이 없고, 이거는 믿음은 좋은데 복음은 아는데 돈이 없고. 이런 마음으로 억지로 에라 집어넣으면 결혼식 할 때 얼마나 찝찝한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합니까, 죽도록? 이~예. 속으로 살아보고요. 임시적으로 하겠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한 여자를 보고 평생 동안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은 그만큼 두고두고 자기 결정에 자기가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당신하고 만나기 참 잘했지 하는 그것이 첫 해가 아니라 계속 살면서 우려내는 맛이 있잖아요. 소고기, 소갈비_ 계속 정말 당신하고 결혼하길 잘했어. 이게 계속 우러나는 겁니다. 남편과 아내가 나이 많을수록 나누는 대화가 뭐냐 하면, 이런 대화에요. 참 당신 만나길 잘했어. 잘했어. 그 대화 계속 나오잖아요.




밥 묵었나? 아는? 자자. 밥 묵었나? 자자. 귀찮다. 휙 등 돌리고. 우리 밥 묵을 때 이야기 좀 하자. 시끄럽다. 피곤하다. 우려내야 감자탕이 되죠. 감자탕이 아니라 이거는 식어버렸어요. 식은 게 아니라 쉬어버렸어요. 쉰 탕이에요. 쉰 탕.




주님께서는 놀랍게도 아브라함에게 옛날 했던 거 하고는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해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를 돈독케 하는 그런 감자탕을 계속 뼈다귀가 우려내게 하는 일을 유발시킵니다. 유발시킴으로 말미암아 나는 어디까지나 인간이었으면 내가 신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하고 인간인 이상 나밖에 모른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고 반대로 모든 구원은 하나님 소관으로 일방적으로 나한테 나를 붙잡아서 흔들어서 강제로 데리고 감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것을 더욱더 알게 하는 겁니다.




그런 가운데서 방패, 상급 아직 개인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개인되게 합니다. 뭐가 등장할 때? 나중에 원수가 등장해요. 이 원수가 등장할 때 이 방패, 상급은 빛이 나죠. 이 방패, 상급이 아브라함 개인에게 되는 게 아니고 아브라함 자손에게 이어집니다.




아브라함 자손을 다른 말로 하면, 국가가 되는데, 이 이름이 무슨 나라냐? 이스라엘 됩니다. 이스라엘 나라 속에 아브라함의 방패, 상급이 그대로 생생하게 녹아 있고 살아 있어요. 거기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만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오늘날 교회도 살아 있어요. 우리들 속에도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원수 두는 걸 싫어해요. 원수 두면 이용가치가 없어요. 친한 친구가 많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세상 살면서 우리로 하여금 원수를 만들어서 우리의 지키는 방패, 상급은 확정된 방패, 확정된 상급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방법을 우리를 데리고 인도하십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내 식으로 살아가는 내가 나의 방패고 내가 나의 상급되려는 이것이 굴욕적으로 깨지는 경험을 겪게 하지요.




여러분, 굴욕적이 되더라도 구원되었다는 기뻐할 정도로 확정 진리를 여러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굴욕 되더라도 상관없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이 이야기는 잊고 싶어도 잊혀지질 않아요. 창세기 3장 15절, 애초부터 박혀있고 나머지 모든 역사는 이 중심으로 몰려오는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에서 어떤 변화가 있든 간에 이거는 약속은 달라지지 않아요.




여자의 후손, 뱀의 후손, 뱀의 후손이 뭡니까? 마귀 아닙니까? 예수님이 마귀를 이긴다는 것은 이거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룬 거예요. 십자가가 여러분 눈앞에 있는데 누가 너를 꾀더냐? 하는 말은 어떤 변화에서 흔들릴 필요 없다 이 말입니다. 십자가로서 어리석은 십자가 피가 우리를 구원했기 때문에 내 피 안 째내도 괜찮고, 내 기도 안 들어도 괜찮아요. 그거는 괜히 오바하는 겁니다. 오바하는 거.




그래서 뭐냐? 그리고 하는 말이, 내게 뭘 주렵니까? 뭣을 방패로 주시려고 뭘 상급으로 주시렵니까? 이 방패, 상급이 바로 자식으로 나타나죠. 자식으로 나타나요. 자식이 하늘에 별만큼 많지요. 그러니까 세상에 부모가 제일 든든한 게 뭐냐? 자식들이 많을 때 부모는 마치 기마대 위에 올라간 것처럼 든든합니다. 나 무시하지 마래이. 우리 자식들 많데이. 지금 뉴질랜드 둘이서 가 있다. 자식들 아주 자알 키웠다. 뭐, 이래요. 자식들이 많은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돈 많고 똑똑하고 목회 잘해도 자식이 교회도 안 나오고 개떡 같이 술집에 돌아다니고 여자문제, 폭력해서 경찰서 들락날락 하면 아버지 얼굴에 똥칠하지요. 결국은 자식이 아비의 명예를 높이고, 자식이 어떠냐에 따라서 아버지의 가치가 결정되는 식으로 이끌어집니다.




이것은 갈라디아서에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브라함을 살려요. 아브라함의 자손이 몇 명입니까? 두 명입니까, 세 명입니까? 하나, 한 명.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 다수가 아니라 여럿이 아니라 오직 하나. 예수님이 아브라함을 살리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때를 바라보게 되어 있어요.




약속은 내 때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이 약속 스스로 하나님 약속답게 되려면 내 새끼를 내 씨를 통해서 약속이 계속해서 약속의 정체, 본질에 이르기까지 쭉 뭔가 카페트 깔리듯이 역사 속에 쫙 깔린다는 것을 믿은 거예요. 저 믿습니다. 니가 믿음으로 의롭게 한다. 아브라함의 깔린 카페트 있잖아요. 카페트 끝에 있는 자식이 이 앞에 있던 아브라함까지 말아가지고 약속의 구원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천년 전에 있었던 십자가가 사도 바울이 십자가에 안 죽었지요. 안 죽었지만 사도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내가 십자가와 함께 죽었나니. 십자가의 긴 그림자가 사도 바울까지 뱀 혀처럼 말아서 집어넣어 버려요. 그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세례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 때에 나온 약속의 끝이 예수님이 도로 소급해서 아브라함을 말아 챙겨서 아브라함도 구원될 때 아브라함은 나의 방패요, 나의 상급이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안단 말이죠. 그 여호와 하나님이 주요, 주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호와 당신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여호와입니다. 라는 고백이에요. 우리는 그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겁니다. 확정 진리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걱정 필요 없이 다 이루었다 했는데 왜 그 소리가 우리가 자주 놓치는지 바라기는 새순교회 모든 성도님이 다 이루었다가 우리의 걱정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희열로 감격으로 다가올 수 있는 남은 여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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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20061201a 울산강의-창세기 3장 녹취 한윤범 07-02-06 4913
201   20061201b 울산강의-창세기 3장 녹취 한윤범 07-02-06 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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