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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4 18:33:32 조회 : 4483         
20070504a 울산강의-창세기15장(1) 녹취 이름 : 한윤범(IP:59.6.189.219)
 

20070504a 울산강의-창세기15장(1)


(강의:이근호 목사)






창세기 15장 오늘 대목이 창세기 15장 진도가 많이 나갈 수 있을지 장담 못하겠습니다. 아주 이게 오늘 창세기 15장 이야기가 이게 무지무지하게 복잡한 것이 깔려 있어서 이게 신약성경 갈라디아서부터 해서 디모데전후서까지 이 원리가 그대로 이렇게 성경전체에 이 원리가 그대로 밀려갑니다.




창세기 15장의 이 내용에서 신약성경 전부를 다 여기서 확정지어야 돼요. 신약성경에 있는 전체 내용이 창세기 15장을 재탕한 것이다. 이렇게 보셔도 될 정도에요. 지금 창세기 15장이 별로 길지 않아요. 길지 않지만 창세기 15장 안에 신약성경 전체가 다 들어있는 겁니다.




신약성경에서 구원이 뭐냐 하면, 구원은 건지는 거라 하죠. 구원이란 뭐냐? 건지는 것. 건져낸다는 이 갈라디아서 1장에 보면, “우리를 이 세상에서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이렇게 되어 있어요. 갈라디아서 1장에 보면, 4절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이렇게 되어 있는데.




여러분들이 잔치국수 국수 건질 때 얼기설기한 망 가지고 건지잖아요. 그리고 튀김할 때 튀김 다 되면 튀김 새우, 닭튀김 건지잖아요. 예수님께서 베드로 보고 뭐라 했습니까? 너는 고기 낚는 사람 되지 말고, 아니 고기 낚는 어부가 되지 말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 그 뉘앙스가 ‘건지는’ 양상입니다. 신약의 구원이란 게 건짐 받는 거예요.




그러면 구약에 초반기에는 뭐냐 하면, 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자기 자식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신약의 구원은 건지는 거고, 구약의 구원은 만들기고. 아들 만들기. 자, 이 두 개를 연결시켜 봅시다. 구약에는 아들 만들기고, 신약에는 건지는 거고. 그렇다면 이 두 개를 연결하면 이렇게 되겠지요. 하나님이 사람의 어떤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자기 아들 만들어내시고 신약에 와서 휘이휘이 이렇게 건지고. 건더기 건지고. 이게 구원이잖아요.  




그렇다면 신약성경에 건더기 건지듯이 건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자기가 구원받고자 저요, 저요 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아들 만들기 작업에 성공한 건더기. 건더기들만 신약성경에서 건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만들기에 일체 인간의 협조나 노력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만들기는 하나님 본인의 전적인 책임 하에 감리 하에 책임 하에 아들 만들어 놓고, 그걸 신약성경에서 허이, 한번 건져볼까. 건더기 스윽 휘젓고 건지는 겁니다.




요한복음 4장에 전도 이야기하면서 전도는 뭐냐 하면, 내가 다 내 사람 심어놓았고, 니는 거기 뒤따라 가 줍기만 하라는 그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니 줍는 것도 못하냐 이 말이죠. 건더기를 줍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신약의 구원이란 것은 건지심이란 의미를 이제 아시겠지요.




악한 세대에서 뭐 둥둥 뜨는 건더기가 있다. 그 건더기는 본인이 알아서 헤엄 잘 쳐서 건져내는 게 아니고, 아브라함에서 아들 나오는 양상으로 똑같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기 아들 만들어 놓은 자가 있어요. 영생 주기로 작정한 자. 영생주기로 작정한 자는 이게 세상의 악한 세대에 같이 섞이지 않고 혼합되지 않고 둥둥 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망 가지고 복음 가지고 이래 건지면 그걸로 천국 갈 사람과 그냥 남겨 둘 사람과의 확연하게 분리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신약성경이 구원이 쉬워지는데 아, 하나님이 다 만들어 논 아들은 건지기만 하면 되는구나. 굉장히 쉽지요. 그런데 그 다음에 뭐가 문제가 되느냐 하면, 그러면 어떤 자가 건더기냐?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에서 어떤 자가 건더기냐 하면, 하나님의 의로 둥둥 떠 있는 사람이 건더기다. 하나님의 의로.




이 '의' 봐라! 의로움 봐라 하고 의를 반짝반짝 빛내면서 물 위에 수면 위에 떠올라오는 사람, 하나님 의로 떠올라오는 사람이 그게 건더기입니다. 그 사람을 건지면 되겠지요. 그렇다면 애당초 하나님이 사람을 건지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무슨 의미냐 하면, 하나님의 의가 담겨 있는 사람을 건진다. 이런 얘기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담긴다. 사람이라고 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가 담겨 있는 사람을 건진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예수님 말씀 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씀이나 주께서 죄인을 불쌍히 여겨서 건진다는 말은 그렇다면 의인을 건지는 것이 아니고 죄인을 건지는 거니까 그거는 당신이 하는 말하고 틀리잖아. 사도 바울은 죄인을 건져서 구원한다 했는데, 당신 말로는 둥둥 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건진다 하니까 그거는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 하고 서로 안 맞는 거 같은데. 하는 그런 느낌이 들 거예요.




그 의라는 게 그 의가 뭐냐 하면, 바로 이 의가 인간들이 생각한 선행의 의는 아브라함에 의해서 기각 당해요. 그건 아니다 이 말이죠. 왜냐하면 지금 하나님께서 하나님 아들로 건지려 하는 게 누구냐 하면, 이삭입니다. 이삭이라든지 야곱이죠.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지켜서 구원받는 사람이 아니고, 잘 들어봐야 돼요.




하나님의 의를 말씀대로 잘 살아서 의인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의해서 만들어낸 작품으로서의 이삭이고 야곱이고 요셉이고 그런 겁니다. 하나님의 의의 작품으로서. 하나님의 의가 마술사 앞에 비둘기 뽑아낼 때 자, 수리수리 마수리 엇! 비둘기 나오듯이, 하나님의 의가 짠 나온다! 나오니까 이삭이 나오고 야곱이 나오고 요셉이 튀어 나온 거예요. 하나님의 의가. 그래서 수면 위에 떠오른 의의 작품을 내가 신약성경 사람을 건진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그 작품 만들 때 이삭이 누구 자식이냐 하면, 아브람 자식이 아닙니다. 아브람의 자식이 아니고, 이삭이 아브람의 자식이 아니에요. 아브람의 자식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자식이에요.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차이점은 제가 지난 달 이 시간에 이야기했는데, 오늘 다시 들어야 될 사람이 왜 안 왔는지 모르겠어요. 바쁘신 모양이죠.




아브라함의 자식이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현재 아브람이 있고, 아니 이삭도 없고 아브라함도 없어요. 단지 아브람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람 밖에 없는 곳에 뭐가 개입되어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개입돼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뭘 갖고 개입되느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개입해요. 약속을 가지고 개입하거든요.




하나님의 이름 되시는 어떤 어르신네가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누구한테 달려든다? 아브라함한테 달려들었더니만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고,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될 수밖에 없게 하기 위해서. 왜냐? 아브라함은 만인의 아버지니까.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은 자식 하나도 없잖아요. 전부다 있는 자식 가짜 아닙니까. 이스마엘도 가짜고 다 가짜라고.   




지금 아브라함 값이 격에 안 맞단 말이죠. 자식 달랑 하나 있는데 그게 무슨 아브라함입니까? 만인의 아버지에요?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아브라함 밖에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거기에 난데없이 하나님의 이름이 찾아오고, 하나님의 이름이 뭐냐? 약속을 가지고 찾아옵니다. 그 약속이 이 지상에 뭔가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그 작품이 뭐냐? 이삭이 되죠. 그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성취된 고 상황을 고 관계를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




여기 본문에 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신다"고 되어 있지요. 갈라디아서 1장을 한번 보게 되면, 오늘 진도 많이 못 나간다 했지요. 할 게 많아요. 갈라디아서 3장 6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뭐로 정하셨다? "의로 정하셨다" 그러니까 의라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하나님 믿는 걸 자체를 의라고 하나님이 규정했지요. 정해버렸지요. 의를 내놓으라가 아니라 의를 유발하게 했지요. 의를 내놓는 게 아니고 의를 유발한다 하지요.




대학교를 내놓으라 하면 대학교를 못 내놓아요. 왜냐하면 대학교라 하는 건 없고, 학생 내놓고 캠퍼스 내놓고 교수 내놓고 직원 내놓으면 그런 걸 뭐라 하느냐 하면 대학교라 하지요. 학생 있고 교수 있고 총장 있고 이런 거예요. 대학교 내놔라. 대학교 어디 있노? 대학교 어디 있어요. 학생 말인가? 아니, 대학교 내 놔라. 그럼 총장 말이야? 아니, 대학교를 내놓으라니까. 대학교하는 것은 학생 있고 캠퍼스 있고 직원 있고 이런 걸 모아서 이걸 대학교라고 지칭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없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그게 뭡니까? 약속을 믿으니 그 자체를 외부인인 하나님이 어이, 의해라. 의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의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의는 행함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걸 의라고 한다 말이죠. 얼마나 쉬워요. 뭔가 체증이 확 내려가는 기분이 안 듭니까?  




의를 도덕적으로 만들어낸 것은 의가 아니에요. 그럼 왜 의가 아니냐 하면, 안 착해서가 아니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의가 아니라 이 말이죠. 만들어낸 의는 의가 아닙니다. 애초부터. 그럼 당신이 말하는 뭐가 의인데? 약속을 믿는 게 의라니까. 글쎄 약속을 믿는 게 의라니까 그래. 그리고 그 의가 없으면 천국에 못 가고.




결국은 의가 없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 없으면 천국에 못 간다는 것과 똑같은 말 아닙니까. 그래서 믿음이라 하는 것은 뭐는 아니다? 내 행함으로 의는 아예 만들어지지 않고, 약속이 가져다준다는 사실이 흔적이 내 안에 고스란히 나한테 깔렸다는 거예요. 쭉 깔려 있는 거죠.




여러분 우박 내려 떨어지면 우박 떨어진 직후에 창문 열고 밖에 나가면 동그란 테니스 공만한 골프공만한 우박 떨어져 있지요. 거기 우박 떨어져 있잖아요. 난 창문 열고 그걸 지켜 볼 뿐이죠. 뭔가 우두둑 소리, 약속이 쏟아져 약속이 내 귀에 막 떨어져서 소리 나는 거예요. 내가 마음의 창문을 열고 보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떨어져 있는 거예요. 저건 뭐고? 약속이다 이렇게 하니까 니는 하나님의 의다 이렇게 돼버려요.




약속을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고, 약속을 약속이라고 인정했다는 그것이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겁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의라 하는 것은 출처가 내가 원인자가 되어서 나로부터 나온 게 아니라 약속에 딸려 나온 거지요. 약속에 있는데 의가 있고, 의가 있는 곳에 약속이 있고 그리고 거기에 대한 반응이 믿음이 생기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방적으로 전부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일을 꾸미고 마무리 짓는 거예요. 나의 행함은 싹 빠지고.




방금 이 원리를 아브라함에게 적용시켜 봅시다. 지금 우리는 15장 아브라함에 대해서 듣도 보도 못했다고 칩시다. 아무것도 아브라함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고 그렇게 간주합시다. 간주하고 우리는 다만 갈라디아서 방금 이 이야기만 알았다 칩시다. 그걸 그대로 아브라함 사람에게 적용을 시켜 보세요. 아브라함 보고, 몰라? 아브라함 아나? 나 모른다. 당신이 아는 게 뭐고? 갈라디아서 3장 이거 안다. 그럼 그 3장을 옛날 사람 아브라함 한번 적용시켜 보자.




옛날 옛날에 한 옛날에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더랬어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는 천국 갈 마음도 없고, 그냥 자기 배때기만 채우고 그냥 밥이나 먹고 사는 그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찾아와서 약속을 했어요.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보고 이 웬 떡이냐, 웬 약속이냐 이렇게 했더니만 하나님께서는 그걸 니 의로 간주하시고 그때부터 니가 니 이름에서 약속대로 생판 알지도 못한 생각지도 않은 새끼가 낳다고. 이 새끼 이름이 이삭이래요. 그 이삭이 하늘의 별만큼 이삭의 새끼가 많이 깐데서 이름을 이제부터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으로 바뀌었데요. 나중에 그 아저씨는 아브람 아저씨에서 아브라함 아저씨가 되었답니다.




방금 제가 썼던 이걸 가지고 고대로 창세기 15장에 맞는가 확인해 보세요. 맞잖아요, 맞잖아요. 딱 맞잖아요, 그래. 창세기 15장 가지고 해석을 끄집어내려고 하니까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갈라디아서 딱 가지고 그 틀 잡아놓고 구약성경을 전개시켜 구약성경 그 다 되잖아.




여러분들이 성경을 해석한다 하는데 성경을 해석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뿐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성경은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받았던 감동을 나열할 뿐이지, 성경해석은 우리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경해석은 우리 담당이 아니에요. 우리가 담당관이 아닙니다. 성경이 만약에 해석이 된다면, 그 해석 된 것을 다시 역으로 조립해보면, 그 성경 본문 전개 그대로 튀어나와야 비로소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이 어려워졌는데 제가 한번 예를 들게요. 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 보면, 666 나오지요. 666에 대해서 해석을 한다는 자체가 666이 뭐냐 이걸 증거한다는 자체가 인간에겐 안 됩니다. 왜냐하면 시험을 해 볼게요. 제가 잠시 시험을 해 보겠습니다. 666을 괄호를 딱 해놓고 이거는 괄호 안에 어떤 숫자인지 아무나 모른다고 생각해봅시다. 모른다고 해놓고 앞에 있는 말, 뒤에 있는 말, 총동원 다 해서 알려주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앞에 이렇게 되어 있다.




말로 하는 것보다도 실제로 하면 더 이해가 쉽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잠시 한번 봅시다. 13장. 13장 17절,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라고 되어 있지요. 그래 놓고 괄호를 붕 띄우고 그 다음에 14장,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이래 나오지요. 앞에 666 빼놓고 앞에 이야기 제가 말씀 드렸고 뒤에 이야기 말씀 드렸지요.




자, 그렇게 해놓고. 자, 이 괄호 안에 뭐가 들어가겠습니까? 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알아 맞춰 볼 사람 아무도 없지요. 성경을 모른다 했으니까. 어린 양 이마에 표 받고, 뒤에는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있고. 앞에는 짐승의 숫자 한다. 아, 그거 내 짐작한다. 뭐냐? 짐승의 숫자라? 888. 지 멋대로. 그러면 이것 888 알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거는 거짓말이죠. 이걸 모르는 채 666이 나와 줘야 비로소 앞뒤가 해석이 된다. 확답할 수 있는 겁니다.   




욥의 이야기를 해석을 못해요. 욥의 이야기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느낌을 말할 수 있지요. 만약에 욥의 이야기가 해석된다면, 욥의 이야기를 한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욥기대로 그대로 지가 쓸 수 있어야 당신은 정말로 이제부터 욥의 해석자로 임명하노라. 이래 되는 겁니다.




국어 수능시험에 쭉 해놓고 그 다음 나올 말을 적당한 말을 골라 넣으세요. 그럼 얘들이 적당한 말 적어 넣잖아요. 이거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게 가능치 않아요. 왜 가능치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은 모든 인간에게 예상치도 못한 돌발사태기 때문에 인가의 기존에 없던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하여 있는 모든 성경구절 전체는 결국은 인간의 해석을 거절하는 그러한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문법적 해석, 역사적 해석, 기독교 해석이 엉터리란 말이에요. 자기 의견을 이야기할 뿐이죠.




나는 이 단락을 이렇게 끊어서 이렇게 봤다는 의견이지, 다른 사람은 그렇게 보지 않고 다른 단락을 끊어버리면 마찬가지거든요. 다른 단락 끊었다 해서 그걸 나쁘다 하면 안 돼요. 나는 이 단락을 이렇게 끊었기 때문에 바른 해석이라 한다면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그걸 모른다 하고 그대로 써봐라. 들어본 적이 있어야지. 뭐, 알아야 듣지. 모르잖아. 진짜 니가 원인자고 그 원인의 바른 해석의 결과자라면 네가 생각한 결과와 성경과 똑같이 일치되어야 되는데 우리는 보고 난 뒤에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어도,




많이 어렵게 됐는데, 비타500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는 시골 사람에게 여기에 음료수 하나 있는데 이름을 뭐라 할까요? 산골수. 이래 한다 말이죠. 틀렸지 롱^^ 한다고. 그럼     내가 봐야 알지, 이카거든요. 보고 비타500이 이렇다고 설명하는 것은 해석이 아니고, 이건 의견이고, 이걸 감춰놓고 나는 산골에 사는데 비타500에 들어본 적도 없는데 음료수, 음료수, 뭐라? 아아, 비타500. 이러면 그 사람은 진짜 해석자로 할 수 있지요. 당신을 해석자로 임명합니다.




앞으론 비타500 말고 다음엔 또 만들까? 되는데 이걸 모르고 하면, 생명수? 시원한 물? 이렇게 지어내 봤자. 비타500이지 롱 하면 다 틀리죠. 그러면 아, 비타500 시원하고 이거는 생명수 같아. 이건 알고 하는 의견이고, 감추어놓은 채 그대로 튀어나와야 되는 것은 이건 인간의 소관을 벗어나는 겁니다. 성경은 인간의 모든 해석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모든 해석을 거부한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겨냥하지 해석자, 해석 기똥차게 잘하는 나를 절대로 겨냥하지 않습니다. 모든 예수님은 예수님을 증거하지 해석 잘하는 나를 증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자 그리스도에 대해서 의견들을 내놓으면 각자 거기서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느낀 대로 그걸 받지요.




사도 바울은 왜 해석 잘하느냐? 사도 바울은 말 자체가 계시에요. 이러면 알아맞히지 아니라 뭐, 말하면 전부다 성령이라, 그게. 왜? 성령께서 그렇게 사용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쓴 책들이 많아요. 다 성경입니까? 아니지요. 보세요. 사도 바울이, 사도 요한이 다 썼다고 해서 성경이 아니고, 그 중에서 성령이 역사한 것만 골라서 성경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 요한이 자기는 해석자니까 모든지 해석한다. 이건 말도 안 되지요. 사도요한이 모든 권한은 성령에게 주님께 일임할 겁니다. 해석은 주님께서 내리시지 우리가 아니다 이 말이죠. 어떤 식으로 내리시느냐 하면, 우리의 견해는 주님 해석보다 항상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내리죠. 자, 그건 해석 이야기고. 벌써 덥기 시작한다.




자, 그 창세기 다시 해 봅시다. 15장에. 지금 중요한 걸 제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야기하고 중요한 걸 이야기 안 했어요. 창세기 15장 이야기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고, 두려워 말라. 나의 방패고 나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이렇게 했죠. 하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약속을 내리십니다.




그 약속이 뭐냐 하면, 네 자손이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우리에게 내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할 때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내 씨가 될 것이니이다” 할 때에 하나님이 밖으로 데려나가서 뭘 봅니까? 하늘을 보죠. 그 하늘에 뭐가 박혀있습니까? 별이 있죠. 몇 갭니까? 뭇별이죠. 수많은 별들이죠.




결국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자식 낳을 때 아브라함이 지 자식 낳는데 뭔가 보탬이 되는 것을 일체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다.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자식 낳는데 도움 되는 건 일체 없게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하늘의 별처럼 낳는 거예요.




그러면 하늘의 별을 보면,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잖아요. 저 별은 전부다 내 별도 아니고 니 별도 아니고 저건 하나님 별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수많은 자식들이 있지만 그 자식들이 누구 작품입니까? 하나님 작품인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 작품이지 내 것이 아니라고 인정할 때 그게 뭐냐? 그게 의가 되고 그게 믿음이 된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에 의가 믿음이 된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제가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그겁니다. 여러분한테 먼저 질문을 던지고 여러분 속으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신약에서는 건지시고, 구약에서는 어떻게 한다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아들 만든다 했지요. 그러면 구원이라 하는 건 아들 만들고 건지면 되는데 왜 신약성경에 주께서 죽으시고 우리 죄, 왜 죄 문제가 왜 나옵니까? 그냥 아들 됐나? 건져갈게. 이러면 끝나는 문제를 왜 죄로 인하여 내가 죽고, 죄 사함, 희생문제, 그 문제 왜 나왔느냐 말이죠.




20세기 중반에 신학자들한테 신약신학하는 사람들이 골치 거리가 하나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예수님은 희생하려 왔느냐, 죄 사함하려 왔느냐? 이 문제가 걸렸어요. 이 문제가 골치 거리였습니다. 하나님이 희생하려 왔느냐, 죄를 용서하려 왔느냐? 이 문제에요. 여러분 보기에 어떻습니까? 이게 문제 거리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희생하려 왔어요, 죄 용서하려 왔어요?




이게 어느 쪽을 선택해도 문제점이 있습니다. 누가 내 대신 희생했다 하면,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거예요. 심지어 내가 예수 안 믿어도 돼요. 왜? 주님께서 희생 덕분에 나를 건지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내가 예수를 안 믿어도 이미 건짐 받은 사람이 돼버립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평생 몰라도 나중에 예수 안 믿고 떡 죽어보니까 여기 어디고? 천국이라. 누가? 예수님이 희생했단다. 그게 사도 바울이 그렇데 우리에게 소개하던가요? 믿으라고 했지요. 안 믿어도 돼. 이런 이야기 안 했지요. 그러니까 희생이란 자체가 말 그 자체에 이런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누가 희생했더니만 난 가만 있다가 보니까 천국 왔더라. 이래 돼버린다 말이죠.




그 다음에 희생은 문제가 많구나. 그러면 죄 사함을 택하겠다. 이래 돼요. 죄 사함에도 문제가 있어요. 죄를 사하면 죄가 없어지지, 하나님의 아들 되지는 않는다 이 말이죠. 제가 죄를 지었잖아요. 그러면 죄를 지어서 죄를 사해줬잖아요. 그럼 또 죄 짓잖아요. 또 사하잖아요. 또 용서하잖아요. 또 죄 지으면 또 용서하겠지요. 그러면 나라는 도화지는 맨 날 죄 지었다가 씻어지고 죄 지었다가 씻어지잖아요. 그러면 건지는 게 어디 있어요? 그냥 그 자리에 있지. 그대로 있어요, 계속. 칠판도 아니고. 칠판하고 지우고 또 지우고. 이 칠판 통 채가 건짐 받는 건 아니다 이 말입니다.




아까 희생이라 하는 것은 뭡니까? 건짐에 강조가 있지요. 니가 무슨 짓을 해도 내가 건진다. 희생으로. 이런데 강조가 있다면, 죄 사함은 이 칠판에 뭐가 써 있는데 이것이 하얗게 지워졌다. 이 문제 아닙니까. 그 대신 이거는 건져지진 않지요. 어, 깨끗하네. 그걸로 끝나잖아요. 나 깨끗해서 가는구나. 이래 돼요.




그러면 내가 깨끗하면 깨끗한 사람 되는 것이지 건짐 받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건짐 받을 때는 죄가 있어야 건짐 받잖아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깨끗한데 왜 건져요. 가만있어도 깨끗한데 왜 건져요. 하자가 없는데 왜 건져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거지는 거예요. 깨끗하면 깨끗함 그 자체로 나 깨끗하니까 천당 갈만 합니다. 이러면 되지, 절 건져주세요. 불쌍히 여기 주세요. 이럴 필요 뭐 있느냐 말이죠. 죄만 사하면 그만이지.




신학자들은 거기에 대해서 큰 딜레마에 빠졌어요. 어느 쪽을 해도 신 신약에 그걸 온전하게 해결되지 못했어요. 자, 문제점 어디 있어요? 이 문제점. 누가 이야기해보세요. 잠도 오고  하는데. 피곤한데. 자, 여러분 이야기해 보세요. 이 문제점이 어디 있습니까? 희생이 되도 문제점, 죄 사함도 문제점.




죄 사함되면 건질 필요 없이 그냥 나 깨끗합니다. 그 소리만 외치면 돼요. 믿긴 왜 믿어요. 희생하는데 뭘 믿어요. 희생은 주의 희생을 믿습니다가 성립되잖아요. 나중에라도 나 천국 가서 아, 됐는데 주님께서 날 건져버리면 천국 가서도 믿든지 하면 되는데, 희생은 씻어줘 이래 돼요. 와서 딱 이래 되잖아요.




이게 뭐가 문제점이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구원받는 우리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게 갈라디아서에 제일 어려운 문제에요. 아브라함 자손이 몇 명입니까? 몇 명이에요? 한 명. 이게 어려워요. 한 명이라는 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준 거지요. 우리 건지주려고 우리 구원하려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고 우리를 위하여 죄 사함 한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병행된 속성들이 희생이었고 죄 사함이었어요.




너의 구원을 믿으라가 아니고, 주 예수를 믿으라 입니다. 이거 이해해야 돼요. 이 차이점 이해해야 돼요. 목사님, 희생해서 구원받았습니까, 죄 사함해서 구원받았습니까? 지금 그 문제가 아니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 예수를 믿어야 돼요.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느냐를 믿으면 안 됩니다.




지금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그것은 어떤 시절이냐 하면, 아브라함 적 시절이에요. 야, 주님은 저런 분이었구나. 하고 아는 것은 언제 적 시절이냐? 아브라함 때 되고 난 뒤에 알게 된 거예요. 아브람 때는 이건 내 자식이고, 집에서 길리운 사람입니다. 이스마엘로 됐습니다. 그만 넘어갑시다. 이스마엘 내가 낳았잖아요. 이스마엘을 아들로 쳐주세요. 아브람 때에요. 그러나 아브람은 죽어야 되고, 골로 가야 돼요 이거는. 불씨를 꺼야 돼요. 끽, 꺼버려야 돼요.




아브라함 때는 자기 구원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침투되었음을 내 안에 뭐가 어떤 괴물이 들어왔음을 믿습니다. 이래 돼야 돼요. 그런데 그 괴물, 예수님을 괴물하면 안 되지만 그 괴물이 뭘 했다? 혼자 희생하시고 홀로 죄 사함을 주시는 권세를 가졌다. 라는 분을 믿습니다.




말을 어렵게 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죄 사함 받았습니다가 아니라, 나는 예수님이 나에게 죄 사함 했습니다. 이래 돼야 돼요. 나는 예수님이 날 위해서 희생했어요. 이래 되는 거예요.




희생, 죄 사함은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일들이지, 내가 어디 희생 없나 희생,  아이씨, 누구 내 죄 사함 없나? 아, 예수 좀 이리 오소. 이렇게 예수를 부리듯이 하는 것은 어느 적 시절? 아브람 때 시절이고, 아브라함이 돼버리면 그야말로 새사람 돼버리면, 관심사가 오오, 주님 혼자 희생하셨고 주님 혼자 죄 사함 했는데 그 이유가 뭐냐? 주님께서는 그걸 함으로 구원하시는 중보자가 되십니다를 표내기 위해서 희생하시고 죄 사함 했습니다. 이래 되는 겁니다.  




그래도 아직도 문제가 시원하게 깨끗하니 안 끝났어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뭐냐 하면, 그렇다면 주님께서 신약성경에 희생하시고 죄 사함 했다는 것을 예수님이 그런 일을 하시고 믿기는 우리가 믿어서 구원받으면 되지, 왜 그걸 몽땅 희생과 죄 사함을 주님 홀로 했다 그 자체를 왜 믿을 이유가 뭐가 있느냐?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지금 마귀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희생이라든지 죄사함이라든 복잡한 소리 다 듣기 싫으니까 어이, 근호, 니 올라와. 이러면 된다 이 말이죠. 뭐 죄 사함, 희생 그런 복잡한 이야기 하지 말고 너 올라와. 너 아들 만들었어. 이제 건져줄게. 이게 하나님 의야. 이렇게 하면 되지, 왜 하나님이 우리 속에 희생과 죄 사함의 복잡한 이야기를 자꾸 섞어 넣어야 되느냐?




그것은 이렇습니다. 그 답변을 참 답변하는 사람이 현재 신학자들 이런 사람들 내가 보기에 신학자 아무리 봤지만 그 답변을 도저히 그 답변이 나올 수 없는 거예요. 주석 쓴 사람들 백날 봐도 방금 한 이 질문에 답변이 안 나와요. 질문조차도 이해 안 되는데 무슨 답변이 나오겠어요.




그거는 뭐냐 하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요거 잘 나오네. 그러니까 아까 질문한 게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그냥 건져주면 되지 뭔가 희생한다든지 번거로운 이야기를 일을 왜 하시느냐 이 말이에요. 번거롭잖아요. 십자가 지고, 주여 나를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상당히 번거롭지 않습니까?




어이, 올라와. 끝나는 이야기 아닙니까. 빛이 있으라. 되게 간단하데. 빛이 있으라 할 때는 되게 간단 해놓고 예수님 구원하는 데는 왜 그리 복잡하냐 말이죠. 죄 사함, 희생하고 이 잔을 할 수 있거든  내게 지나가게. 왜 복잡하게 하느냐 말이죠. 주여, 저놈 건질까요? 가자. 간단하잖아요.




그런데 왜 복잡하게 하느냐? 구원하면 구원해주면 되지 왜 이런 걸 해야 되느냐? 그것이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언약의 성취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인 예수님과 의논하시기를 희생과 죽으심 or 죄 사함. 죄 사함을 이걸 가지고 언약의 내용으로 채우기로 합의를 봤습니다. 이거는 인간들 배제해요. 인간들 니 말 안 들어.




인간들은 뭐 합니까? 아주 치우고 니 올라와. 천국 올라와. 이건만 바라는데 주님께선 우리 인간을 이제 이해했습니까? 우리 인간을 안 듣고 희생과 죄 사함을 언약의 약속으로 이렇게 창세전부터 합의를 보시고 아브라함에게 이 사실을 아브라함을 가지고 희생과 죄 사함을 이걸 알려주는 그런 도화지로 아브라함을 사용한 겁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도화지로 사용했다 이 말은 결국 이 말은 뭐냐 하면, 이 세상의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실 희생과 죽으심의 죄 사함을 증거하기 위해서 증거용지로 A4 용지로 사용한 의미로서만 인간이 존재의 가치가 있다. 이걸 제가 지금 이야기하고 싶네요.




목사님, 그런 이야기하고 뭘 노립니까? 왜 그런 이야기합니까? 왜 그런 이야기하느냐면, 박옥수 파들은 뭐냐 하면, 여러분, 십자가 믿었으면 이제부터 회개할 필요 없고 죄 용서받았습니다. 그들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그들 박옥수 집단이 필요한 건 뭡니까? 하나님 저기 계시고, 예수님은 잠간 들어왔다가 용서하시고 빠지고, 이제 자기 뭐만 달랑 남았어요? 나 구원 받았네. 이것만 달랑 남았죠.




박옥수 그 앞에 나와서 구원받는 거 찬송하라 하잖아요. 세례 받고. 그럼 뭐가 빠져요? 그 사람의 도화지는 도화지에 뭐가 빠져요? 나 구원받았다. 나 구원받았다. 이것만 덜렁 있을 뿐이지요. 뭐가 없어요? 희생과 나타난 죄인을 용서했다는 이게 그 사람한테 이게 각인이 안 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단이라 이 말이에요. 내 말은.




왜 그게 이단인데? 언약적으로 이게 안 들어 있으면 그건 이단이라니까요. 아니 죄 용서가 박옥수가 맞잖아. 지금 이 구원받는 것이 언약의 내용이 아니라니까요. 지금 이거하고 한국교회가 싸우고 있는 거예요. 우리 십자가마을이 싸우는 문제가 뭐냐 하면, 구원문제가 아니에요.




십자가마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뭐예요? 양무리인지, 무슨 무리인지. 양무리 입장인지, 마귀무리 입장인지 그 입장이 뭡니까? 아이, 우리 이미 구원받았는데 왜 자꾸 죽었다고 합니까? 여러분 이제 눈 좀 뜨이십니까? 한번 보세요. 그들은 하기를 우리 이미 십자가로 죽은 거 인정하는데 이미 살았잖아. 살았잖아 우리. 나 살았다가 있는데 왜 자꾸 죽었다고 하느냐 이카거든.




그러면 당신이 만약 도화지라면 그런 도화지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도화지냔 말이죠. 그럼 무슨 도화지인데? 주께서 희생하시고, 왜 희생하셨는가? 우리가 죽을 죄인이기 때문에 죄 용서하기 위해서 희생했다. 그러면 우린 뭐가 돼야 돼요? 죽을 죄인이 돼야 돼요. 조승희? 내가 조승희라.




우리는 죽을 죄인 되고, 그걸 주께서 능력으로 용서하시고 희생하셔서 구원했다. 이게 있어야 그게 성도다 이 말입니다. 그게 언약이고. 근데 니들은 뭐만 생각하느냐? 박옥수와 똑같아요. 뭐만 생각합니까? 나 구원받았네. 이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내가 이단이라 하는 거예요. 그게 이단이라 말입니다. 저거들은 이단이 뭔지 몰라요.




그리고 제가 한 걸음 더 나가서 이런 이야기했지요. ‘나 구원 받았네’는 이거는 기독교만 아니라 일반 모든 불교, 유교, 이슬람교 모든 종교에 인간이 종교 믿는 이유가 뭡니까? 신을 믿는 이유가 뭡니까? 자, 지 구원받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홀로 힘으로 안 되니까. 선행해도 안 되니까. 기도해도 안 되니까. 어데 와서 공짜로 구원하는 놈 없나? 아이씨, 아무것도 안 해 놓고. 이렇게 구원받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구원을 받잖아요. 그게 그러니까 한국교회 이만큼 부흥됐잖아요. 구원해준다 하니까. 시킨 대로 하면 구원받고, 뭐 십자가 믿으면 구원받고.



그러니까 그것은 인간들이 육의 본성에서 그건 성령 안 받아도 성령을 새삼스럽게 안 받아도 나오고, 우리도 성령 받기 전까지는 십자가 구원 받으면 감사합니다. 그럼 빠이빠이. 교회 가끔 나올게요. 왜? 구원 받았는데 뭐. 목사 자신이 했잖아요? 과거의 죄, 미래의 죄 다 용서받았다면서. 그럼 교회 안 나와도 죄 지어도 용서 받는다며. 빠이빠이 하고 이제 가끔 나올게요. 한가하면 나올게요. 이런다 말이죠.




내 지난주일 했어요. 여러분 교회 나오는 이유가 한가해서 나온다고. 지금 바빠 보세요. 휴대폰 들고 받다가 회사 갈 사람들이지. 여기는 휴대폰 들고 가는 사람 없습니까? 예배시간에. 있는 모양이네.




인간의 종교성, 육적인 것은 누구나 구원받아 기분 좋아졌어. 기분 좋아요. 그런데 진짜 성령을 받게 되면, 나는 진짜 죄인이며 오직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 구원받았다가 아니라 나같은 인간도 희생으로 용서받았다. 이것이 여기에 쫙 깔려있는 거. 그거는 성령 안 받고서야 백날 인격도야 해보세요. 정신훈련 해보세요. 나오는가 그게. 성령 받았으니까 나오지요.




성령 안 받은 놈은 나 구원받았다. 쫄랑대고 그러지요. 성령 받은 사람은 나 죄인인줄 이제 알았다. 주님의 희생 아니면 나 구원 안 돼. 나는 내 구원받았다는 그딴 거 집어치우고, 예수님이 이 정도로 아무것도 없이 그냥 공짜로 구원해줬더라 하는 예수님을 크게 드러내는 그거는 진짜 예수의 영을 받지 않으면 그런 형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없어요.




바로 그것을 그 법칙을 그대로 창세기 15장에 집어넣어 보세요. 비로소 이해가 됩니다. 아아, 스토리 전개가 왜 이름을 처음부터 아브라함이 아니고, 아브람 가지고 구원하면 될 건데 왜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왜 바꿨어요? 그거는 뭐냐 하면 너를 사용하기는 사용하되 너가 모르는 하나님 나름대로의 뜻을 너에게 담기 위해서 너마저 딴 인간으로 달라질 할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브람이 내가 왜 달라져 나같이 착한 사람이 왜 달라져. 너는 기껏 해봐야 하나님의 약속을 오해하기를 이스마엘 낳았잖아요. 여기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있잖아요. 이따위 식으로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깊은 뜻,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이런 거 모르고, 어쨌든 자식 낳으면 되지요? 한번 낳아 볼까요. 어이, 하갈 이리와. 나하고 동침하자. 얘 낳자. 왜?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기껏 하는 게 이것 밖에 없다고 기껏 한다는 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성령 받기 전에는 예수 믿으라 하면 믿습니다. 믿으라 하니까 아니 믿습니다 했잖아요. 믿으라. 아이, 이 양반이 남의 말을, 믿습니다. 믿어서 구원받았습니다. 교회 빠이빠이. 왜? 구원받았는데 뭐. 제 말은 그게 아니고, 당신이 죄인인 줄 인정합니까? 인정합니다. 뭐, 아홉 살 때 어땠고, 열두 살 때 학교에서 커닝했고, 스물 몇 살 때 자위했고, 서른 살 때 속이고 결혼했고. 아이고, 씨.




그 죄가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을 통해서 비로소 나는 처음부터 죄라 하는 걸 느꼈습니까? 당신 착한 일 해도 죄라는 걸 알았습니까? 아니, 착한 일 하는데 왜 죄입니까? 이래 따지네. 내가 찬양하는데 왜 죕니까? 목사님은 설교도 죕니까? 죕니다. 기도하는 것도 죄입니까? 죕니다. 이단이구만. 이래가 삐져서. 헌금해도 죕니까? 죄지요. 미쳤구먼 .




선악적인 사고 가 아브람이라면 선악적인 사고가 완전히 없는 새로운 피조물적인 사고가 아브라함입니다. 아무 한 것도 없이 아브라함은 은혜를 의롭게 되고, 아무 한 것도 없이 의롭게 된 거예요. 전부다 하나님의 약속이 우박처럼 떨어지니까 이런 놀라운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우박처럼 약속이 두두둑 떨어지니까 이런 약속이 떨어지는 거예요.




이걸 오늘날 실제로 적용시켜 보면, 만약에 차를 몰고 가는데 차가 고장나버렸다. 화딱지 나지요. 하나님, 왜 저한테 재앙을 내리십니까? 그때 아마 일반목사들은 당연히 니가 기도 안 했으니까 내가 벌 줘서 차를 멈췄다. 이래 되겠는데. 진짜 복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니 구원받는 거 하고 차 고장 난 거 관계있나? 관계없습니다. 없으면 내가 주는 대로 먹든지 말든지 니가 관여할 상황이 아니지. 이러면 되는 거예요.




하나님 우리 집 얘 왜 아픕니까? 마음속으로 목사님을 원망해서 아픕니까? 혼자 하는 거예요. 하나님 뜻은 관계있나? 관계없습니다. 아무 관계없는 도둑놈이 지 발 저린다고. 이게 왜 관계없느냐 하면, 우리가 기도 하나 안 하나 죄인이에요. 이 말 했다고 또 오해 되게 할기라. 또 오해. 이근호 목사는 뭘 해도 안 해도 죄다.




우리가 해도 안 해도 죄인 이유가, 하나님이 우리를 도화지로 그렇게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게 했는데 나라도 할 수 없지요. 하나님이 그런 도화지로 사용하기 때문에 니는 뭘 해도 죄다. 이런 도화지로 사용했단 말이죠. 그렇게 하니까 비로소 그 위에는 희생의 의미가 피어나고 죄 사함의 무조건 죄인 돼 무조건 의인된 거예요. 무조건 용서받은 거예요. 기도해서 용서받은 게 아니고 무조건 용서받은 거예요.   




이러한 의가 이런 의미를 놀랍게도 신약에는 건더기 둥둥 뜨는 거 던진다 했지요. 늦게 오신 분 잘 모르지요. 다시 이야기하면, 신약에는 건져내는 것. 튀김, 닭튀김 둥둥 뜨는 거 건져내는 것. 구약에는 구원이 뭐라고요? 없는 아들 하나님의 약속으로 새로 만들기. 구약에는 ,신약에는 만들어진 놈 건져 올리기. 이게 구원이거든요.




그러면 지금 제가 이야기한 것은 뭡니까? 만들어질 때 뭘 담아서 만들었다? 장차 오실 예수님이 하실 일, 뭡니까? 희생과 죄 사함 권세를 담아서 아들 만들기에 나선 게 두 자로 이삭이라 이삭. 그게 바로 이삭이라는 겁니다.






10분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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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20061103a 울산강의-창세기 1장 녹취 한윤범 07-01-29 5364
196   20061103b 울산강의-창세기 1,2장 녹취 한윤범 07-01-29 5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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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20061201b 울산강의-창세기 3장 녹취 한윤범 07-02-06 5123
205   20070206a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하나님나… 한윤범 07-02-13 5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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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200700403b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인자, … 한윤범 07-04-11 5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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