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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4 18:34:45 조회 : 4369         
20070504b 울산강의-창세기15장(2) 녹취 이름 : 한윤범(IP:59.6.189.219)
 

20070504b 울산강의-창세기15장(2)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은 초반부터 잠 팍 깨는 이야기를 할게요.




하나님의 성도가 되었으면 즐거운 게 뭐냐 하면, 무조건, '무조건 건져라'가 돼요. 사람이 무조건, 무조건을 경상도 말로 뭐라 하느냐 하면, 무대포? 무대포가 인정된다면 그것처럼 자유로운 사람이 없겠지요. 어떤 무대포도 하나님께서 인정해 준다면 최고 아닙니까? 보통 사람들은 아이 할까 말까 이러잖아요. 그런데 무대포, 무조건 할 게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한 하자, 실수 이런 거 일체 묻지 않습니다. 무조건 해야 돼. 무조건 해야 될 게 뒤에 뭔가 무조건으로 인도받는 뒤에 뭔가 있으면 이거는 괜찮은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건져라. 그 다음에 뭐냐? 무조건. 그러니까 내가 말을 실수를 하고, 뭐 복음을 제대로 해석 못해. 이게 아니고, 행동이 내가 아주 개차반이고 행동이 더러워서 이것도 아니고, 그거 안 물을게 그거 안 따질게. 무조건 건져라 이 말이죠.




그러니까 전도할 때 스스로 제일 시험 받는 게 뭐냐 하면, 내가 스스로 전도할 자세가 돼있나, 전도할 지금 쨉이가, 지금 전도할 기회냐? 이거 재재재 따진다는 거 이거 의미 없습니다. 저 사람이 나한테 악한 감정 있는데 전도해서 되겠나? 이런 거요. 그런 거 하지 말고 무조건 건져라에요.




그러니까 무조건 국수 망에다 그거 뭐라 합니까? 채, 채 가지고 국수 건지듯이 무조건 건져 올려라. 빠질 놈을 쑥 더 빠져버리고 무조건 건져라. 무조건 사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누구냐?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거칠 것 없는 하이킥이에요. 거침없는 하이킥. 무조건 살았어요. 그걸 이미아 씨 용어대로 하면 막 사는 거예요.




막 산다는 것이 인위적으로 막 살면 나쁜 사람 돼요. 나쁜 사람이에요 그거. 그런데 막 살라고 지시내리면 그거 자유인입니다. 지시받기를 막 살라고 지시 받으면 그거 자유인이에요. 주께서 모든 성도에게 지시 내렸습니다. 막 살라고.




어떻게, 목적이 뭐라고요? 무조건 건지기 위해서 막 살라고. 복음에서 나와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으로 돌아간다는 그 이유 때문에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도 복음 때문에 왔다면 복음을 위해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복음이라면 뭐든지 용납이 되고 가능한 겁니다.




제가 이 말을 드린 것은 꿀릴 게 없이 사시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실수는 그거 흠이 되지 않습니다. 실수 두 번, 세 번, 네 번, 천 번 실수되지 않아요. 일곱 번 죄 졌다고요? 용서합니다. 일흔 번 일곱 번 죄 졌다고요? 용서 또 해줍니다. 무조건 그냥 건지면서 사시는 거예요. 문제는 지금 사람들은 '무조건' 이건 되게 좋아하는데 문제는 뭘 안 좋아해요? '건져라' 이걸 맘에 안 들어 해요. 막 살자. 이래되면 곤란하고 막 살아서 건져라.




우리는 뭐 할 사람이다? 국수 채들고 설칠 사람이다 말이죠. 걸리기만 걸려라. 무조건 건진다. 이러면 이 세상에 겁나는 게 없습니다. 왜? 목적이 있는데 사는 목적이 있잖아요. 뭔 한다고? 건질 자를 건져내는데. 튀김, 닭튀김, 튀김 기름에서 건져내는데 어느 놈이 말리나? 못 말리죠. 못 말리는 그게 채라 카니. 못 말리는 성도라니까. 무조건 건져내면 되니까.




문제는 건져냄이 없이 무조건 살라고 하니까 이거는 뭡니까? 나 잘났다. 나 똑똑하다. 나 건드리지 마라. 이건 완전히 자기이기주의에요. 이거는 용납이 용서가 안 됩니다. 그건 아니지요. 그건 자기로부터 와서 자기로 말미암아 자기로 돌아가는 이게 무슨 신자입니까? 복음으로부터 와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으로 돌아가야 신자지.




그래서 앞으로 나오는 우리가 지금 해야 될 아브라함의 일은 한 마디로 말해서 복음을 위해서 무조건 막 사시는 분을 등장해요. 복음, 뒤에 반드시 들어가야 돼요. 빠지면 큰일 납니다. 복음을 위해서 또 언약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해서 막 사셨던 분이에요. 막 사셨단 말은 자기 계획대로 살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자기 나름대로 챙겨 논 계획은 다 그거 인정받지 못하고 다 무산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그 돼지 등어리에 불이 붙는 짚을 돼지 등어리에 갖다 안겨버리면 돼지가 가만있습니까, 정신없이 달립니까? 이거는 무조건 달리지요. 아브라함이 그 짝이 났습니다. 아브라함 등어리에 하나님의 언약이 불붙는 언약이 달리니까 달리는 그 대목이 그 다음 구절이에요. 함 봅시다.




여기 창세기 15장,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고 난 뒤에 약속이 아브라함 등어리에 올라탑니다. 올라타는데 이 약속의 내막이 뭐냐? 9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이래 돼있지요. 누굴 위해서 입니까? 누굴 위해서 되어 있어요? 여호와를 위해서.




참 사람이 제가 철학도 조금 공부 좀 하면서 쭉 이렇게 보니까 사람이 자기 말고 또 다른 이를 위해서 산다는 게 거짓말 같아요. 인간이. 모든 게 나를 위해서 내가 있지, 내 몸은 내건데 이 몸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다? 이거는 거짓말 같아요. 이거는 성립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사실입니다. 내 이 몸이 내건데 이 내 몸을 날 위해 살지 누굴 위해 산다 말입니까?




그런데 만약에 외부에서 돼지 등어리에 불탄 진흙이 덮어지는 것처럼 만약에 덮어씌우면 그 다음에 날 위해 살고 싶어도 미친 놈 되서 날 위해 살 수가 없어요. 내 위에 올라 탄 그분을 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 흔적을 발견하며 사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성도는 실수하는 사람이 아니고 막 사는 사람인데 누구 뜻대로 막 산다 말이에요? 자기 등어리 위에 올라탄 사람, 그분이 인도하는 데로 막 살 수밖에 없어요. 내 마음대로 안 돼. 내 마음대로 하면 품위 지키지. 참 품위 지키고 정결하고. 이건 내가 원하면 나도 자존심이 있지 그러하죠. 안 돼요. 올라탄 사람이 망나니 같으면 망나니처럼 살아야 돼요.




진짜 오용익 목사님 말처럼 나도 미친년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미친년이 유명하게 됐는데 우리교회 와서 그런 설교했거든요. 미친년 되고 싶다. 미친년 돼야 돼요. 양동이 물 길러 왔다 양동이 벗어놓고 심봤다, 메시아 만났다! 그게 미친 년 맞잖아요. 자기 할 일도 잊어버리고.




매사를 복음을 위해서 움직인다는 게 이게 미친 사람입니다. 뭔가 올라탔어요. 귀신 씌웠어요. 못 말려요. 이거는 남편이 몽둥이, 야구방망이로 때려도 못 말려요. 복음을 위해 살아야 돼요. 남편이 때려도 교회 간다 그 말이 아니고, 복음을 위해서 미친 사람 된다 이거예요. 교회를 위해서 그게 아니고, 이건 이단이고. 복음을 위해서 그냥 내 지를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




그 운명인데 올라탄 게 뭐냐? 제가 적어 보겠어요. 올라탄 게 뭐라 되어 있어요? 처음에 일 번째 삼년 된 암소, 수입 암소일까요, 호수 산일까요, 미국 산일까요? 그 다음에 뭡니까? 삼년 된 암염소. 격이 벌써 낮지요. 소보다 염소가 격이 낮습니다. 레위기 보면 격 차이가 나요. 그 다음에 삼년 된 수양. 더 격이 낮지요. 염소보다 격이 낮습니다. 양이. 이게 레위기에 나와요.




레위기에 보면, 소는 최고 제사장들 위해서 이거는 백부장이라든지 관리들 위해서 이거는 수양은 일반인들 위해서. 그 다음에 또 있어요. 또 나눠져요. 뭡니까? 비둘기에요. 산비둘기, 산에 있는 비둘기 말고 살아 있는 비둘기에요. 이거는 가난한 사람들, 양이나 염소를 바칠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 그들은 비둘기를 바쳐요. 그 다음에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 새끼를 바쳐라. 이래 되어 있지요.




이때는 이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는 뭐가 없습니까, 뭐가 빠져요? 여기 햇수가 빠지지요. 몇 년 됐다 햇수가 빠지지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에 햇수가 빠지는 이유는 이것은 상품명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햇수를 따진다는 말은 팔아먹기 위해서잖아요. 집비둘기 이런 것은 팔아먹기 위함이 아니고, 집비둘기, 산비둘기 새끼 이런 것은 그냥 가난한 자가 그냥 키우는 거예요. 이건 소유개념이 좀 떨어집니다. 그건 나중에 설명하고.




어쨌든 이것이 누구 등어리에 올라탄다? 아브라함 등어리에 올라타면 아브라함은 이 올라탄 암소, 염소, 수양 이 취지를 온데 간데 마다 다 퍼뜨리지요. 돼지 등에다가 해 놓으니까 불붙은 짚을 갖다 해놓으니까 애가 뜨거워서 온 동네 사방 동네 들판에다 불을 지르듯이 아브라함 가는 곳에 아브라함이 가는 거 의미 없고, 아브라함이 짊어진 암소, 암염소, 수양 이 의미가 온 천지에 아브라함 가는 곳에 퍼지겠지요. 이걸 가지고 아브라함에게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 받는다. 그 이야기입니다.




결국 이것은 뭐냐? 이걸 한 마디로 하면 약속인데 약속이 아브라함을 지배하는데 약속은 결국 뭐냐 하면, 뭐가 달려 있느냐 하면, 약속은, 아까 제가 이것 때문에 설명한 거예요. 희생 그 다음에 뭐라 했어요? 희생 그 다음에 뭐가 있습니까? 죄 사함. 자, 아브라함이 등어리에 짊어진 것은 약속을 짊어졌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장차 오실 예수님의 희생하심과 죄 사함의 능력을 짊어졌다 이 말하고 같은 말이죠. 그죠? 왜냐하면 요한복음에 아브라함이 예수님 보기를 기뻐했으니까.




그러면 만약에 아브라함을 축복한 자에게는 복을 받는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저주한 사람은 왜 저주받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짊어진 것에 뭐가 있습니까? 죄 사함이 있는데 아브라함, 이씨 이런 게. 아브라함을 무시했다 한 말은 결국은 죄 사함의 능력과 무관하게 난 그냥 그대로 살래. 이래 되지요.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뭐가 내립니까? 죄가 있는 곳에 뭐가 있습니까? 저주가 비 오듯이 내리겠지요.




아브라함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고요한 가운데 자기 운명도 모르는 채 세상이 어떻게 끝나는 것도 모르는 채, 몰라. 그런 거 몰라도 돼. 그냥 양이나 키우고 소나 키우면 돼. 하고 살다가 아브라함이 난데없이 등장해서 참, 이런 예를 들면 안 되지만 아브라함이란 돼지가 보니까 돼지가 뛰어오는데 뒤에 보니까 불이 붙었어.




불붙은 돼지 한 마리가 온 동네 뛰어들었다 이 말은 그 돼지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그 불이 죄 사함의 불이라면, 결국 그 사람에게만 죄 사함이 있어서 저주에서 풀어나서 축복을 받게 되고, 죄 없으면 복 받습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을 거절하면 그 사람은 옛날 그대로 죄가 있기 때문에 저주가 주어지는 거예요.




결국은 더 이야기를 약간 더 길게 해보면, 하나님께서 고요한 이 세상에다가 아브라함 하나 갈대아 우르에 있는 아브라함을 딱 데려다가 이놈하고 궁둥이를 내리쳐버린 거예요. 그러면 아브라함은 맞아서 이힝하면서 돌아다니면서 온 아브라함이 가는 곳에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이 일어나겠지요. 세상에 대한 선전포고. 이제 새삼스럽게 죄 짓는 게 아니고, 죄 사함 받지 못하면 이젠 죽었다. 죄 더 지란 말이 아닙니다. 덜 지란 말도 아니에요.    




하나님의 복음은 죄 짓지 마세요가 복음이 아니고, 죄 사함을 받으시란 거예요. 그 저 키 작은 삭개오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니 집에 뭐가 이르렀다? 구원이 이르렀다. 구원이 뭐라 했습니까? 신약에서 건짐이죠. 구약에 보면 뭡니까? 죄 사함과 희생이 그 집에 임했다 이 말입니다.




아직도 예수님 십자가 지기 전이에요. 전이지만 미리 그 뒤에 있을 그 능력이 앞당겨서 미리 임해서 그 삭개오 집에 구원이 임했고, 심지어 고넬료, 고넬료가 아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심지어 딸이 죽었는데 죄의 값은 사망이요, 의는 뭡니까? 의의 축복은 영생이라. 죽은 야이로의 그 딸이 살잖아요. 십자가 지기 전에 그게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리고 가나 혼인잔치에 십자가 지기 전에 물이 뭐로 변했습니까?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이거는 천당 가면 포도주 마신다는 뜻이 아니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거예요. 새 생명. 포도주라는 것은 약속의 증거입니다. 새로운 약속의 증거에요.




다시는 포도나무에 난 것을 먹지 아니하리라 한 것은 포도나무라 하는 것은 약속의 땅에서만 난다는 상징하고, 그걸 예수님이 비유로 사용한 거예요. 새로운 천국에서는 이 포도나무에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않으리라. 이건 뭐냐? 새 생명이 주어졌기 때문에 옛날 술잔은 치워도 된다 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죄 더 지라가 아닙니다. 죄 덜 지자도 아닙니다. 뭡니까? 죄 사함을 받으라 이 말입니다.    꼭 바보 같아. 죄 사함 받으라하니까. 죄용서 받으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죄용서는 죄용서 받습니다. 이래서 되는 게 아니고, 죄용서 받으려면 앞에 뭐가 있어야 돼요? 희생이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아까 신학자들은 둘 중에 하나만 하면 안 되지요. 희생해서 희생 나온 결과가 뭐라고요? 죄용서. 그러니까 둘 다가 있어야 되죠. 희생만 있으면 뭡니까? 나 잘났다. 이래 돌아다닐 거예요. 나 예수 믿고 이제 새사람 됐는데 뭐 내 못 났는데. 이렇게 까불락댔다 말이죠.




하지만 희생과 죄 사함이 있으면,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되지요. 난 죄인입니다 할 때 희생의 의미도 살고 죄 사함의 의미도 살고. 죄 사함은 어디서 나왔다고요? 희생에서 나와서 죄 사함 되는 거예요. 그리고 희생의 피로 죄 사함 된다는 것은 우리하고 의논한 것이 아니고 창세전에 하나님하고 아버지하고 쏙닥쏙닥 이야기 의논됐기 때문에 니가 피로 말미암아 삶이 있느니라. 이미 창세전에 언약적으로 그렇게 지키기로 합의를 봤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관여할 사항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 신학자는 말하기를 그 피 흘리지 말고 그냥 사이다 먹고 용서할 수 없나. 이런 아이디어. 어떤 사람은 그 사이다 말고 그냥 '떽' 하고, 용서. 이카면 용서되는 거 없나. 하지만 그건 창세전에 인간이 관여할 바가 아니에요. 창세전에 있던 일이 지금 이 암염소, 이거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관여할 바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아브라함이 자기 등어리에 뭐가 탔는지를 관여할 바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탔구나. 그거나 알면 되지, 왜 이런 게 탔어? 왜 암염소야, 왜 삼년이야 오년하지, 이렇게 관여할 사항은 아니란 말이죠.




그러면 아브라함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고, 아브라함은 그냥 수용할 입장이라면 그럼이 관여는 누가 관여합니까? 바로 여기서 신적인 존재, 바로 성부, 성자, 성령께서 관여할 문제입니다. 삼 염소, 삼 암소, 수양. 이거는 바로 하늘나라의 하나님의 아들들, 천사들과 하나님과의 관여될 문제입니다.




제가 이 삼 염소라 할 때 삼년 된 염소잖아요. 그런데 염소라 하는 것은 무엇을 표상하느냐? 이게 약속이니까 이 약속대로 뭐가 아브라함은 늙어가니까 아브라함이 돌아다녀봐야 몇 키로 돌아다니겠어요. 아브라함 말고 또또또 돌아다닐 사람 있어야 되겠지요. 누구여야 됩니까? 약속에 의해서 태어난 애가 이삭이 태어나 돌아다녀야 되겠지요. 이삭이 죽고 난 뒤에 누굽니까? 야곱이죠. 야곱이 죽고 난 뒤에 몇 아들? 열두 아들. 하나의 이스라엘 집단이 되어서 약속의 땅에 온 천지에 돌아다니면서 축복과 저주를 구분하죠.




그렇다면 이 삼 암소, 삼 염소, 수양인데 이 삼년 된 암소, 삼년 된 염소, 수양 이것이 제가 질문 던지겠습니까? 아브라함에게만 해당 됩니까, 이삭에게 해당됩니까? 이 제사를 이삭도 드려야 돼요, 아브라함만 드려야 됩니까? 아브라함 때만 드리면 돼요. 이삭은 이거 드릴 필요 없습니다. 모세 율법에 이런 거 없습니다. 이 삼년 된 암소, 누구에게만? 아브라함에게만 해당된다 이 말이죠. 그렇다면 맞지요. 제 말. 맞잖아요. 이삭이 이거 바치지 않잖아요.




이것이 아브라함에게만 해당된다면, 그럼 아브라함에 그 다음에 약속이 구체화된 게 뭡니까? 이삭의 출생이죠. 하나님이 지금 아브라함을 가지고 약속을 이룬다 했잖아요. 뭇별처럼. 그러니까 아브라함에 지금 올라탄 게 뭐예요? 약속 아닙니까? 삼년 된 이거잖아요. 이게 올라탔잖아요. 이 약속을 누가 이루십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메시아가 이루시면 뭐가 톡 튀어나온다? 톡 튀어나오는지 모르지만 이삭이 톡 튀어나오잖아요. 이삭이 무엇의 구현체다? 이 삼년 된 이 구현체가 뭐가 된다? 그대로 이삭이란 인물로 구체화된다 이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게 나중에 레위기에 이래 안 나와요. 레위기에 할 때 삼년 된 그런 이야기 안 합니다. 신명기 안 나오거든요. 이게 이삭 나올 때 이삭까지만 해당되는 거예요. 강조한 취지를 여러분 아셔야 돼요. 이게 아브라함에게만 해당된다니까요. 이삭한테 이삭아. 예. 삼년 된 암소된 거 바쳐라. 이래하지 않았다 말이죠. 모르지요. 이삭이 또 제사지낼 때 아버지 하는 걸 흉내 낼 진 모르지만 어쨌든 강조, 성경적으로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은 뭐냐? 아브라함 때 한단 말이죠.




그러면 이 구체적인 것이 약속대로 이삭이 나왔잖아요. 그죠? 그러면 암소, 암염소, 수양, 이거 비둘기는 짐승이 아니니까 이건 빼버리고. 가난한 사람 위해서 한 거니까. 결국 이런 계층마다 제사 드리라는 말은 돈에 과다를 막론하고 용서받는다는 그런 뜻이거든요. 그럼 이걸 비둘기를 지워버리고.




그러면 암소하고 이걸 지워버리면 뭐가 남는 게 뭡니까? 삼만 남지요. 염소라고 오년, 오년 암염소, 아니 오년 암소, 사년 암염소, 삼년 수양 이게 아니고, 소가 됐든 염소가 됐든 양이 됐든 지워버리면 공통적으로 남는 건 뭡니까? 삼 밖에 없지요. 삼은 뭣과 관련되어 있다? 이삭과 관련되어 있다는 걸로 통해서 하나님은 뭘 이야기하려고 하느냐 하면, 이삭의 출신의 모든 원인과 능력은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라는 뜻이에요. 이 점을 내가 오늘 강의에서 강조하고 싶은 겁니다.




여러분들이 새순교회 와서 예배드릴 때 제발 내가 내 힘으로 차비 드려서 내 몸뚱이 내가 끌고 질질 끌고 와서 올라왔습니다. 라고 하지 말라 이 말이죠. 이게 인간의 힘으로 예배가 되는 게 아니에요. 아브라함은 어떻게 지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살았습니까? 치우소. 삼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먹고 떨어지소. 왜 아브라함에 그런 마음 없겠습니까? 귀찮은데. 아브라함이 지 마음 지 마음대로 안 돼요.




여러분들이 새순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때 내 마음 나도 몰라. 이게 참, 성도가 찾으려면 그걸 찾아야 돼요. 뭐든지 인생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개입 없이는 성도라고 논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내 매일매일 중에서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가를 찾아보는 그 재미, 그 재미로 사셔야 여러분들이 마귀의 시험에 안 빠집니다.




아하, 하나님이 저 놈의 집구석에 내 꼴 보기 싫은 이웃 왜 만들었나? 아이쿠, 재수 없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재주 없어 할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이여 왜 저 인간을 만들어 줬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개입해보는 욕구를 아주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빵구가 났어. 아이고, 오늘 재주 없구나. 에이, 오늘 또 십만 원 날아갔네. 오만 원 날아갔네. 하나님 왜 저를 빵구 나게 했습니까? 아이고, 다음에 이사 갈 때 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고속도로 빵구 났으면 죽을 뻔했다. 감사합니다.




뭐든지 성도가 되었으면 매사에 발걸음 치는 매사에 하나님을 개입시켜서 하나님께 묻고자 하는 불탄 돼지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 등어리에 누가 나를 타고 애마부인처럼 타고 가는가? 그걸 의식하며 살아야 돼요. 의식하면서. 뭐 예배 꼭 참석하란 말이 아니고, 예배 참석 안 해도 왜 나는 오늘 참석 못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되는데. 물론 그래 생각하면 예배 참석하지. 예배 참석 안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쁜 사람이지요. 대부분은 잊어버립니다. 뭐 바쁘면 참석 안 한다 이래 된다니까.




누구를 꼴 보기 싫은데 왜 만나나? 내가 지난 시간에 했지요. 같은 교인도 지나가고 합동측도 지나가고 장로도 지나가는데 여호와증인이 날 도와주고. 얼마나 참 부끄럽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했는가? 여호와증인이 교리가 옳아서가 아니라 주께서 나를 지켜주는구나. 저 이단을 통해서라도. 감사하시라고 제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자, 그렇다면 암염소 이걸 다 빼면 삼이 남습니다. 왜 삼이 남는다는 말은 뭐냐 하면, 이삭이라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요만큼도 개입된 적이 없고, 이삭, 니 안에 ‘응애’하고 이삭 안거들랑 하나님이 의논해서 주신 진짜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으라. 라고 하지요. 그걸 누가 믿습니까? 아브라함이 믿으니 그 믿는 현상을 뭐라고 그런다? 의로 구원받는 거예요.




그럼 오늘날 우리가 예수 믿는 것과 똑같아요. 우리가 예수 믿으니 우리가 의인돼야 되는 거예요. 왜? 일하기는 누가 일했습니까? 성부, 성자가 일 다 해놓고, 우리는 그냥 믿기만 했는데 우리가 의인되었다.




그렇다면 증거는, 삼이라 하는 것은 신적인 존재다. 그러면 목사님, 신적인 삼이 왔습니까? 언제 나타났습니까? 이삭 출생을 예고할 때 세 명의 뭐가 왔습니까? 천사가 오고 그 다음에 심판할 때는 그 중에 한 명은 삼이 이로 빠져버려요. 세 명 중에서 두 명이 롯이 있는 소돔과 고모라 심판 날에는 삼이 빠졌어요.




이게 뭐냐? 삼은 어디 관련되어 있다? 삼은 이삭의 출생과 관련된 그런 분이고, 그 다음에 천사가 삼명에서 두 명으로 줄어들면서 두 명은 소돔과 고모라에 천사가 와서 그들한테 혼자지요. 깡패들한테 잡혀서. 내놔라! 천사 왔지. 괜찮은 인간 이제 내놔라. 이런 식으로 시비 걸려서 큰 일 날 뻔 했어요. 천사가 귀때기 맞을 뻔 했어요. 깡패한테.




결국은 여기서 느끼는 것은 일상적으로 드리는 일상적으로 아주 강한 사람은 내놓고, 보통 대다수의 사람들이 제사하는 소, 암소 같은 것은 고위 성직자들, 염소는 아까 뭐라 했느냐 하면 관리직, 중간 관리자, 양은 일반인들.




그 사람들이 어떤 일이 있든 간에 아브라함에 관련된 모든 언약은 누가 개입했던 것이다? 삼으로 표현되는 천사들을 하나님 아들의 개입으로 이삭이 나왔기 때문에 이걸 믿는 자는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아들이에요. 이삭도 하나님의 아들이고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아들 되는 특권을 주었어요.




아브라함의 아들은 몇 명입니까? 이삭 한 명 밖에 없어요. 그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삭을 믿는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특권을 누리는 것. 로마서 4장에 나옵니다. 방금 이 이야기가 로마서 4장에. 사라가 태가 죽은 걸 알고도 아브라함은 의심치 아니하고 믿었더니만 하나님은 의로 여기시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믿음의 조상이에요. 약속의 조상은 이스라엘의 차지고. 믿음의 조상이에요.




그 다음 진도 나갑시다. 뭐, 가끔 진도 나가는 재미도 있어야 되죠. 자, 그렇게 해 놓고. 이런 이야기가 일반 기존 책에 안 나옵니다. 폰래드의 창세기주석에 안 나와요. 그 다음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뭡니까? 잠들었지요. 이거 참. 




여러분, 여자가 아담에게 올 때 그 때 아담이 뭐하고 있었습니까? 잠자고 있었지요. 아담이 여자 고르는데 미스 코리아 백 명 중에서 미스 개성, 미스 순돌이 고르지 않지요. 잠들었을 때 여자를 줌으로 말미암아 여자가 누가 개입한 거예요? 하나님이 개입했지요. 아브라함은 잠들어 있으니까 아니 아담은. 이번에 아브라함 보세요. 아브라함은 뭐하고 있었습니까? 잠자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통과하지요. 통과하는데 뭘로 통과합니까? 쪼개놓고 통과하죠.




그런데 여기서 산비둘기는 쪼개놓습니까, 안 쪼개놓습니까? 새는 안 쪼개지요. 왜 그러냐 하면, 나중에 레위기에 나오는데 새 종류는 그냥 흔적만 제물 드렸나이다. 라고 폼만 잡는 걸로 봤어요. 왜 그러냐 하면, 새는 뭐가 안 붙어요? 삼이 안 붙을 정도로 제물의 대표로서 충분치 않아요. 삼이 붙어야 일단 아브라함 시대입니다. 그 뒤에 삼이 나왔다는 말은 아니니까.




아브라함에게 삼이 붙어야 제물 값을 하는데 비둘기는 삼이 안 붙잖아요. 그래서 비둘기로서 제물로 표현하려는 하나님의 그 뜻을 온전히 다 표현 못하기 때문에 그냥 비둘기 쪼개놓지 않고 가는 거예요. 다만 쪼개진 위단계의 제물에 끼어든 제물이라고 이렇게 배치를 이렇게 한 겁니다. 그거 안 쪼개도 삼년 아니라도 위의 운명에 속한다. 라고 하는 거죠.     




그러면 쪼개놓으니까 그 쪼개진 이유가 뭡니까? 뭔가 통과하기 위함이죠. 통과했더니만 쫙 쪼개진 게 아닙니다. 그거는 뭡니까? 그거는 홍해 때죠. 여기는 딱 쪼개놓으니까 통과했다는 말은 누가 통과합니까? 불이 통과하죠. 신명기 5장에 보면 불은 누굴 이야기하느냐 하면, 불은 여호와 하나님이죠.




그리고 출애굽기 3장입니까? 3장에 보면 떨기나무 불에 하나님이 어디 나타납니까? 여호와 나타날 때 불로 나타나죠. 여호와 나타날 때는 불로 나타나요. 그리고 마노아에도 여호와의 사자가 뭐로 옵니까? 불이 내려와서 태워버리죠.




일단 불꽃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통과한다 이 거죠. 그리고 쪼개놓았다 하는 것은 중간에 길을 내놓는 거죠. 통과하여 길을 낸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봅시다. 저거 알레고리 같아서 알레고리를 지금 진리라고 가르치는 같아 이게 가만 생각해보니 양심이 가책이 될 법도 한데 난 그런 생각 들진 않아요. 하여튼 그렇게 오해할까봐.




이 해석이 김의원이라든지 이런 총신의 언약신학한 사람이 해석 해 놓은 게 있어요. 제가 그걸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구약학자들이 이 삼년된 건 손도 안 되고 다만 통과한 거 이것만 한 게 있어요.




그게 뭐냐? 옛날 부족들 간에 국왕들이 할 때 주몽도 있잖아요. 단검을 두 개 딱 부러뜨려서 누굽니까? 자기 아들, 유리 만날 때, 맞추잖아요. 옛날 동맹 맺을 때 둘이 한 쪽 씩 나눠 가져서 둘이 붙여서 딱 맞으면 우리가 옛날 언약을 맺었다는 증표로 한다 이 말이죠. 옛날 어사또 올라갈 때 거울을 깨서 맞춰보면 아, 진짜 내 형 맞구나. 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설명해요. 기존에. 그러면 뭐가 필요 없습니까? 중간에 일부러 길을 낼 필요가 없다하니까.




쪼개 놓았다 하는 것은 길에 강조점에 있는 거예요. 쪼개서 끼워 맞추는데 있는 게 아니고, 쪼개서 끼워 맞추는 것은 누가 강조하느냐 하면, 기존의 언약신학을 이야기했던 기존의 모든 구약학 박사들이 강조한 거예요.




내가 주장한 것은 두 개를 쪼갠 걸 마주본다. 이게 아니고 중간에 길을 냈다는 거예요. 그 길이 무슨 길이냐? 하나님이 지나갈 길이다. 이 말은 뭐냐? 이 언약을 관통한다는 의미에요. 언약을 관통한다는 말은 결국은 이게 누군가 지나가는 그 순간에 언약은 이미 완료됐다. 성취됐다.




결국 언약은 시작은 누가 하시고? 시작하시는 이도 여호와요, 마무리도 누가하고? 여호와가 하시고. 중간도 누가 지나가고? 여호와께서. 주께서 와서 주로 말미암아 주께 돌아가라. 마치 대로 통과, 중앙통 통과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주께서 와서 주로 말미암아 주께 돌아간다. 이 삼년 된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온 아이디어입니까? 하나님 아이디어고. 통과하신 분도 누구? 하나님이고. 마지막 그 언약을 이루신 분도 하나님이라 하는 게 창세기 15장에 나와요. 뒤에.




나중에 아브라함 자손이 4대째 마다 다시 돌아와서 가나안 열족을 물리치고, 그 뒤에 나오죠. 열족이 나옵니다. 겐 족속, 그니스 족속 나오잖아요. 몇 절입니까? 19절에. 이걸 마무리를 누가 한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하시고. 중간에 쪼개놓은 것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불꽃이 불로 표현된 여호와께서 그걸 관통함으로 말미암아 언약의 모든 것은 여호와 책임 하에 내가 다 이루리라. 하는 뜻이에요.




바로 이 언약이 불탄 섶이 돼지 등어리에 올라탄 것처럼 아브라함의 등어리에 올라타고 축복과 저주를 가름하면서 지상에 나가는데, 그게 뭐냐? 희생과 죄 사함의 능력으로 하신다 이거에요. 아직까지 이 대목에서는 그 삼년 된 염소, 삼년 된 할 일이 안 나와 있어요. 삼년 된 암소, 삼년 된 염소, 삼년 된 뭡니까? 수양. 이것은 아직까지 여기서는 이 구체화 기능은 여기 창세기 15장 안 나와 있어요.




어디서 나오는가? 창세기 22장에 뭐 합니까? 22장에 하나님께서 이 약속대로 이삭은 뭘 바쳐야 돼요? 이삭은 자체가 이걸 위한 제물로 드려야 되죠. 아브라함이 거침없이 드리잖아요. 거침없이. 가져 가이소. 아들 나무해서 들게 하고 지는 아들 끌고 가고. 아버지? 와. 불쏘시개 있고 다 있는데, 제물이 없는데요? 주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끝까지 하나님이 내가 너를 바쳐서 하나님께 바친다가 아닙니다. 자기 아들이 아니에요. 끝까지 주님께 준비한 거예요. 주께서 준비하실 것이다.




우리도 오늘날 예수를 믿을 때 예수를 어떤 관점이냐? 주께서 준비하신 예수님을 내가 건방지게 내가 믿다니, 세상에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내가 아브라함이구나. 올라탔구나. 내 구원받은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주님의 희생과 그리고 죄 사함의 권세가 쫘~악 여기에 도화지에다 그리는 거예요. 주께서 용서하셨다. 주께서 희생하셨다. 그래 되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입니다. 막 사세요. 복음을 위해서. 막 살면 되는 거예요. 거침없는 하이킥이다. 막 발길질 올려붙이든지 막 사시면 되는 겁니다. 실수? 뭐 그런 거 따지지 말고.




그래서 그 사이를 아브라함이 솔개가 하고. 그 다음에 17절에 보면,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학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내가 동의해요. 학자들은 말하기를 횃불이 지나감으로써 언약이 체결됐다. 그 점은 나하고 같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체결됐다만 인정하고 체결하고 나머지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간다? 아브라함 니가 알아서 해라. 이렇게 되잖아요. 그거 인정 못해요. 제는 체결되었음을 어디까지 체결되느냐 하면, 전부다 마무리까지 이미 완료 책임 체결되었다. 반드시 해주기로 체결되었다. ‘해라’가 아니라. 앞으로 여기까지는 내가 하고 니가 해가 아니라 다 할 수밖에 없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체결된 거예요. 하나님이 책임지고 보장한 거예요. 이게 유명한 아브라함의 언약 체결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는 하나님이 올라탔으니까 아브라함은 보통 사람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그때부터 특별한 하나님이 올라탄 증거로서 17장에 들어가면 새로운 또 추가적인 아브라함 언약이 제2탄이 나옵니다. 그게 뭐냐? 할례언약입니다. 15장의 제사언약과 17장의 할례언약이 겸하해서 이게 이스라엘의 언약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할례 받지 아니하면 어린양을 희생과 죄 사함을 할 수가 없어요. 할례 받은 자에 한해서 어린양의 피를 먹고 문설주에 바르면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의 사자가 관심사가 이스라엘에 있는 게 아니에요. 결국 뭡니까? 자기가 내세운 언약을 자기가 이루겠다는 겁니다. 피보고 넘어가는 것도 사전에 창세전에 약속한 게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하나님 하여튼 자기 마음대로 약속해서 자기 마음대로 다 지켜버리고 그 결과로써 우린 구원받고. 사태가 그런 사태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피를 보고 넘어가게 되어 있어요.




자, 여기서 몇 가지 빠진 게 있죠. 솔개가 왔다 쫓아냈다 하는 것과 그 다음에 뭐가 합니까? 여기에 11절에 보면,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하는 그 대목은 무엇이며, 그거는 솔개인데 솔개 재수 옴 붙어서? 솔개가 와서 쫓아냈다는 말을 저는 그냥 편하게 생각하고 싶어요. 그만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진지하게 생각했다. 뭔가 하나님께서 중요한 일을 한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느꼈다는 것. 하나님의 약속을 약속대로 믿었다는 표현이 아니냐 이 말이죠.




솔개 앉더라도 뭐, 니 앉는데 내가 이게 아니고, 쫓아냈다 하는 거. 그 점에서 그만큼 아브라함도 이 약속에 대해서는 상당히 숙고하면서 중요시 여겼다는 그런 간단하게 그렇게 이해하고 싶지, 솔개는 더러운 짐승인데 와서 시체 먹으면 안 되고. 아하, 그거는 너무 비중이 해석비중이 하나의 의견개념 비중이 주제하고 안 맞는 엉뚱한 데로 흘러간 게 아니냐 하는 제 의견입니다.




자, 그 다음에 이 체결됐다 이전에 또 약속이 뭐냐 하면, 니가 그 다음에 뭡니까? 저 13절에 보면,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래 되어 있지요. 아브라함의 자손에 관한 문제입니다.




자,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이런 언약의 체결이, 묻습니다. 여러분한테. 아브라함에게만 자기에게만 해당됩니까, 아니면 대대로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이것이 똑같은 원리로 적용됩니까? 어떻게 아브라함에게만 적용됩니까, 그 후에도 적용돼요? 똑같이 적용되죠. 어디까지? 그들이 고난 받고 4대만에 많은 재물과 인원수를 몰고 애굽에서 나올 때 그때까지 어디가 적용된다? 창세기 15장의 언약이 그대로 적용되겠지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이이야기를 제가 왜 이 책에서 왜 그걸 써놨느냐 내가 왜 이걸 강조하고 싶으냐 하면, 언약해석에 있어서 언약을 이렇게 해석하고 언약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하나님께서 일관성 있는 일을 이야기할 때 그 언약의 범위가 어디까지 계속 이어지느냐 할 때 보통 학자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 이야기하잖아요.




그 다음의 언약이 뭡니까? 모세언약이죠. 거기에 제가 동의하고 싶은 것이 이거다 말이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누구 언약 밖으로 못 벗어납니까? 방금했던 아브라함 언약 밖으로 못 벗어나죠.




그럼 이 말은 뭐냐? 이삭에게 새로운 언약이 주어지더라도 해석은 어느 테두리 안에서 해석해야 옳다?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 해석 안에서 해석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게 안 되면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이고, 이제 손 털고 가버리고, 이삭은 이제 새로운 약속이니까 이삭대로 하고, 야곱은 야곱대로 해야지 이삭은 왜 같이 해. 이렇게 설치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끝까지 어디까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까지 그 4대에 걸쳐서는 어디에 적용돼요? 아브라함의 이것으로 해석을 해줘야 이게 정답이 되는 거예요. 




아하, 결국은 요셉이 애굽에 팔리는 것이 뭘 위해서? 고난을 받아야 하는구나. 잘못했더니만 고난주는 게 아니고 고난을 받아야만 했던 자가 요셉입니다. 그리고 그는 반드시 애굽으로 팔려가야만 하는 거예요. 애굽이 무슨 땅이냐? 함 땅입니다. 함 땅에 팔려가야만 했고, 나중에 요셉은 알아요. 하지만 처음에는 그 요셉이 엉뚱하게 내가 뭐가 잘못돼서 이런 고생하나? 이래 생각하고 있어요. 그거는 요셉이 고생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언약을 돼지에다가 불탄 짚을 얹게 해서 하기 위해서 한 겁니다.




그렇다면 요셉이란 인간은 왜 태어나야 됩니까? 아브라함 언약을 위해서 태어나야만 하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왜 태어났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천구백 몇 년도에 그걸 가지고 사모님, 천구백 몇 년도? 천구백 몇 년도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야 돼요. 사모님 천구백칠십 몇 년도에 육십 년도? 그럼 칠십 년도는 너무 젊었다.




이 땅에 태어나야만 하는 거예요. 누가 관여합니까? 내 운명을? 새 언약이 관여하는 거예요. 새 언약이 뭡니까? 예수님의 희생과 죄용서. 그걸 두 자로 간단히 말하면, 피와 살. 내 살과 내 피를 마신 자는 생명을 얻나니. 그런 사람은 동동 뜨는 건더기죠. 그럼 구원은 뭡니까? 이미 하나님 아들 된 사람을 건더기 건지듯이 건지는 것이 신약성경의 구원의 개념이다 이겁니다.




자, 여러분 오늘 따라 유난히 사람들이 얼마 안 되니까 더 피곤을 느끼는지, 안 그러면 내가 강의를 해서 피곤을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만 5분만 더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왜 하필 4대냐? 그리고 왜 고난을 받아야 되느냐? 요것도 한번 봅시다. 삼년 된 암소, 삼년 된 암염소, 삼년 된 수양이죠. 암소, 암염소, 수양 맞잖아요. 맞죠? 그런데 제가 지금 또 설명하는 게 왜 수소고 암염소고 수양이냐 이걸 제가 설명 안 했어요. 이 설명은 내 나름 대로에 [교회를 넘어서]란 책에 나와 있어요. 아주 복잡한데 그건 좀 있다 설명해 드리고.




어쨌든 이것을 중간에 누가 통과합니까? 이걸 하나님이 통과하셔서 하나님이 반드시 다 이루잖아요. 그렇다면 그들이 아브라함 자손이 고난 받고 다시 나온다는 말은 결국 이건 뭡니까? 그들과 함께 있는 하나님이 이런 수난을 당하고 수난에서 더불어 함께 그들을 해방시켰다 이 말 아닙니까?




그러면 장차 오실 메시아는 무슨 기능을 해야 돼요? 일단은 자진해서 어디 들어가야 돼요? 자진해서 수난을 받아야 되고, 수난 속에서도 이것이 인간의 힘으로 나오면 안 돼요. 그러면 메시아 필요 없어요. 꼭 누구 힘으로만? 꼭 장차 메시아의 힘으로서만 해방, 구원을 맛보아야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의해서 자진해서 수난이 와야 되고 자진해서 해장이 되려면 여기에 뭐가 필요 하느냐 하면, 인위적으로 억지로 인위적으로 수난 받는 것과 인위적으로 해방되었다는 것을 이쪽에서 이걸 부정하고 정죄할 필요가 있겠지요. 아, 이거 어렵다. 예? 어렵다. 이거 어려운 말이에요. 머리 좋은 사람은 안다, 이거.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있으면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은 마치 자기 공로로 돌리는 아주 천재 같은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헌금했습니다. 내가 예배 참석했습니다. 뭐, 내가 전부 참석했습니다. 뭐든지 나한테 공로를. 너는 안 했지. 난 했잖아. 믿음이 억수로 좋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완전히 모독하고 하나님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은 가만 계시오. 내가 알아서 구원받을 테니까. 자기가 하는 경향이 있겠지요.




심지어 이 경향이 아브라함에게도 있었고, 놀랍게도 놀랍게도 이삭에게도 이삭에게. 대표적인 예가 뭡니까? 자기 아들에게 편애하는 아들에게 축복주기 위해서 뭘 해라? 별미를, 사냥한 고기를. 이게 뭡니까? 자기가 알아서 해주겠다는 거잖아요.




심지어 야곱도 마찬가지죠. 야곱도 팥죽 끊어서 뭘 빼내겠다? 장자 빼내겠다.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예요, 그거. 그러니까 하나님의 수난과 하나님의 해방을 결국은 누구한테 수난 받는가 하면, 함께 바깥쪽은 물론이거니와 함께 있는 소위 구원시켜줄 그 사람의 오해와 곡해로 인하여 수난당하고 해방되어야겠죠.




신약에 대표적인 사람이 누굽니까? 베드로. 예수여, 제가 목숨 바쳐 죽도록 하겠습니다. 니는 닭 울기 전에 몇 번 부인하리라? 세 번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안디바 해서 채찍 맞는 것도 수난이지만 뭐도 수난입니까? 사랑하는 제자, 가룟 유다한테 버림받는 것도 수난이에요. 시편에 나옵니다. 내가 친구한테 버림받았다. 저도 경험했습니다. 20년 친구한테 버림받는. 아무나 그런 경험이 오는 게 아니죠. 여러분, 지금 20년 친구 만나면 좋아서 에에 이렇게 할 거예요.




결국은 이 하나님의 수난은 두 개의 종류의 수난이에요. 첫 번째 종류는 뭐냐 하면, 지옥 갈 세상 사람들,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수난과 그들을 해방하는 그들의 능력에서 벗어나는 해방이죠. 두 번째 뭡니까? 함께 있는 자기 백성들로부터 수난 받고 그것마저 해방하는 거예요.




그래서 할 때 주님이 애굽에서의 열 재앙은 결국 뭡니까? 기존의 바로 왕한테 당하는 수난이라면, 광야의 40년은 뭡니까? 자기 백성의 원망소리 들어가면서 가잖아요. 공통점은 둘 다 모조리 몰살시킨다는 거예요. 갈렙과 여호수아 빼놓고 모조리 죽여 버린다는 거예요.




죽여 놓고 해방, 그래놓고 주님이 수난 받은 그 공로에 의해서 만약에 구원받는다면 이렇게 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 공로로 돌리겠습니까? 나 수난 받았다. 나 순교했다. 이 공로 돌리겠습니까, 안 돌리겠습니까? 안 돌리죠. 고따위 식으로 잘못한 것 해서 주께서 십자가 졌기 때문에 주께서 희생한 덕분에 내가 아무 죄 밖에 없는 나는 이 세상과 주님을 오해하고 곡해하고 맨 날 죄만 짓는 내가 주님의 희생 덕분에 공짜로 죄용서 받았습니다. 할 거 아니냐.




그러면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주님의 희생과 죄용서 약속은 다 이뤘잖아요. 성취 됐잖아요. 그런 장을 형성하기 위해서 4대째 가서 가나안 백성과 만나서 전투를 벌이는 가운데서 이방 사람한테도 수난 받고 자기 백성에게도 수난 받는 그러한 경로, 경과를 양쪽 다 보여주기 위해서 이 아브라함은 4대째 나와야 되고, 나와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열 족속과 맞닥뜨리면서 싸워야 된다 말이죠. 그래야 아브라함 언약을 마감이 되는 겁니다. 오늘 강의 끝.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가슴팍에 내 구원받았다, 내 잘났다가 박혔는지 아니면 주님의 희생과 이 죄 밖에 모르는 인간을 거저 용서한 주님의 죄 사함의 권세가 있는지 날마다 돌아보아서 주님의 개입을 인정하면서 주님께 물어보고 살아가는 저희들 남은 생애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마치겠습니다.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예. 




-아까 제물을 쪼개놓고 횃불이 지나갈 때 길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관통했다.




-그러면 예수님께 십자가에 죽으시고 휘장이 찍어지는 그것하고는




어하,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건 히브리서에 보면 휘장이 찢은 것이 길을 내기 위함이 아니라 휘장 자체의 시작이다. 율법 시대가 이제는 그 의미가 없어졌다는 뜻이에요.



-이것하고 그거하고는 관계가




관계없습니다. 




-그리고 암소, 암염소, 수양 그건




그건 설명해야 돼요. 그건 내가 [교회를 넘어서]에 보면, 이게 왜 수소, 수염소가 먼저 안 나오고 낮은 단계에서 수양은 낮은 단계에서 왜 나오고 위에 높은 단계에서 암소가 나오느냐 하는 그것은 여자의 후손과 관련지어서 창세기, 여자의 후손의 모습으로 그 제물을 표현해서 이렇게 했다. 저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럼 하늘의 어머니에 가서 암소하고




예예. 원래 암소하고 하늘의 어머니하고 직접 연결한 게 아니고, 창세기 3장 15절하고 갈라디아서 연결시켜놓고, 그 다음 차례로 암소와 연결시켰죠. 그러니까 창세기 여자의 후손으로서 해놓고 그 어머니가 하늘에 있는지라. 이렇게 해놓고 그 다음에 그런 측면에서 암소와 연결시키고, 이래 되었지요. 순서를 그렇게 제가 해놓은 겁니다. 그거는 좀 복잡하니까 나중에 책을 한번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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