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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30 15:54:03 조회 : 102         
강남-누가복음 7장 9절 (현장성) 210720a-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누가복음 7장 9절 (현장성) 210720a-이근호 목사



오늘은 누가복음 7장 2절에서 10절까지 빨리 한번 쭉 읽겠습니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권력 이야기입니다. 권력은 정점을 만든다. 이것은 같은 말로 이 세상은 동등하거나 평등하지 않다 이런 뜻입니다. 왜냐 하면은 힘이라는 것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유동적으로 흔들리거든요. 흔들리면서 순간순간 최고점을 찍어요. 최고점에는 왕이 등장하고 그리고 명령자가 등장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그 명령자가 아랫사람에게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여기 오늘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말씀처럼 7장 8절에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나이다” 그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이야기하기를 내가 아는 이 세상은 권력으로 짜여 진 세계인데 그 권력에 짜여 진 세계는 명령자가 따로 있더라 이게 바로 제가 알고 있는 이 현실입니다. 뭐 그 이야기했어요.


그 이야기하니까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다. 권력의 최종점에 이렇게 도달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눈에 안 보이게 되어있어요. 이 세상을 권력에 요동치는 세상으로 본다면 오직 명령자만 찾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백부장은 명령자만 찾고 있는 거에요. 어떠세요? 여러분도 명령자만 찾습니까? 안그러면 동등하자 평등하자 이것만 부르짖고 있습니까?


인간이 이렇게 명령자를 찾는 것은 인간이 명령자를 찾는 이유가 자기한테서 여기서 공백, 자기 자아의 공백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공백, 빈자리. 인간은 자기 육신 말고 플러스 자아가 있거든요. 이 자아가 육신을 모두 다 통제할려고 이렇게 하는데 통제가 이게 잘 안돼요 내가. 내 뜻대로 내 육신을 다룰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내 자아 안에 공백이라고 되어 있는데 다른 말로 하면 결핍. 모자람이 있어요. 모자람.


그러니까 이 세상을 권력의 체제로 본다는 것은 이 자아 자체가 나름대로의 소규모, 작은 권력체로 자기를 간주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신을 자아의 힘으로 다스리고 싶은 거에요. 자기 육신을. 다스릴 때 이 자아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은 선과 악, 다른 말로 하면 도덕이죠. 도덕이란 무엇을 생산하느냐 하면은 나의 가치를 생산해요. 나의 가치를 생산한다. 선이 많으면 착하고 악이 많으면 악하다.


그래서 이 도덕은 멈추지 않고 악을 줄여나가고 선을 키워나가는 거에요. 이것을 자아가 하고 싶어요. 그런데 육신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요. 육신도. 육신은 선악의 말을 듣지를 않습니다. 자기 보고 떼찌떼찌해도 말 안 들어요. 선악 말을 듣지 않습니다. 육신은 뭐가 없느냐 하면은 선과 악이 육신한테는 없어요. 없는걸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충동, 다른 말로 하면 본능. 본능 속으로.


본능, 충동이 나오면 뒤늦게 자아가 가동이 됩니다. 어어~~여기서 이러면 안돼. 이런 식으로. 자아는 육신을 감당을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육신이 악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선과 악을 알았기 때문에 계속 자아가 육신이 하는 것 중에서 저것은 악이다 라고 이것은 선이다 할 수 있는데 선의 경우는 뭐냐? 자아가 얼추 좀 맘에 든다 싶으면 선이 되고 자아가 손을 놔버리면 이건 악이 되는 거에요.


아 저건 내가 도저히 감당이 안 되겠다. 내 몸이지만 도저히 내가 못하겠다. 이럴 때는 악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은 항상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이 자아는 육신과 함께 더불어 있으면서 남들한테는 자기가 선하다고 외치고 싶어요. 그러나 집에 돌아가서는 자기한테는 이건 뭐냐 하면은 악하다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자기가 선하다 했을 때 상대방이 진짜 너는 선하냐? 진짜 완벽하게 선하냐?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그저 대충 선하다. 대충.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평균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사는가? 평균적으로 살아가요. 평균적으로. 평균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점에는 악하게 살고 어떤 점은 선하게 살더라도 악함 그 시점을 딱 찍어서 너 이래서 이렇다 라고 지적 좀 하지 말고 선한 것도 있으니까 플러스 마이너스 해가지고 상쇄해가지고 평균적으로 대체로 건전하다 이렇게 좀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인간들의 생각이에요. 우리들 생각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강의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간다? 늘 평균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균을. 통계학적으로 그래프가 중간에 제일 많이 쏠리잖아요. 통계학에서. 천재는 몇 명 안되고 꼴지도 몇 명 안 되고 중간에 많이 몰려있지요. 사회가 될려면 그 중간 계급이 든든해야 사회가 건실한 사회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빈부격차가 심하면 안 되니까. 중간쯤에 들어가볼려고 하는 거에요. 너무 튀지도 말고 너무 후지지도 않고 중간쯤만 살면 된다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자, 그럼 평균으로 살게 되면 인간들이 얼씨구나 하면서 좋아하는 이유가 평균에 묻히는 걸 좋아하는 이유가 어느 누구도 나에게 명령할 필요가 없잖아요. 왜냐하면 내 힘으로 내 실력으로 중간쯤 갔으니까 뭐 날 칠려면 중간에 다 쳐야 되니까 설마 그럴 리야 있겠어 이렇게 하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백부장을 칭찬하는 것은 이건 아주 독특한 거에요.


보통 사람은 너하고 나하고 얼추 비슷하지? 이런 식으로 사는 나름대로 살아갈 만하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백부장은 그게 아니고 권력의 최정점에서 누가 우리에게 명령자가 등장한다고 보는 겁니다. 모든 명령체제의 최정점.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을 평균으로 본다든지 자기를 선과 악으로 보는 것 거기서 탈피를 한 거에요.


하나님 저 이 정도하면 어느 정도는 착하지요? 라는 그 생각하고 주여 명령만 하옵소서 그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요. 평균은 남 보여주는 거에요. 나 이 정도하면 중간쯤은 하잖아. 그러니까 나 너무 닦달하지마. 이거하고 아예 자기가 지금 꼴찌인지 평균인지 그런 거 신경도 안 쓰고 오늘은 무슨 명령을 해 주실렵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것하고 이건 확연하게 다르지요.


그렇다면 이걸 좀 더 이야기하면 평균에서 사람들은 타협을 보는 게 나오는데 이게 의미. 의미인데 남하고 얼추 타협을 본 의미를 사용하고 있어요. 아까 그래프에서 대다수가 중간쯤 차지하니까 이 중간쯤 많은 다수의 이야기가 이게 그 시대의 그 사회의 의미가 되거든요. 말할 때 담는 내용이 된다고요. 천국하면 대다수 사람이 인정하는 것을 천국. 대다수 사람.


그래서 이 중간쯤에 있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이 사람들은 천재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꼴찌도 더구나 더 안 좋아하고. 내가 무심코 내뱉은 그 말이 공통적인 그 사회에서 전부 다 동의가 되는 많은 사람이 그 의미에 협조가 되는 식으로 살아가는 것, 그들과 많은 군중 속에 섞여 살게 되면 자기가 모나지도 않고 티나지도 않고 어중간하게 인생 따라갈 만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인생은.


그럼 이것은 뭐냐 하면은 대중들의 의미죠. 대중들의 의미니까 무슨 의미냐 하면은 나만의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대중들의 의미이기 때문에. 이 대중들이 전에는 옷을 깔끔하게 입어가지고 바지가랑이 안 터지고 깔끔하게 다려서 입었는데 대중들이 전부 다 청바지 찢어 입으니까 나도 찢어도 바지 찢고 모자 구멍 뚫린 것도 이게 유행이라는 거에요. 점점 이게 대세가 이쪽이 대세니까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이유가 뭡니까?


나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고 나의 소원은 평균적 인생. 많은 다수 속에 쏙 들어가는 거에요. 목만 내 놓고. 나 탓할려거든 이 세상 다른 사람 다 탓해라. 됐냐?! 이런 식으로. 많은 숫자에 숨어 들어가면서 이게 안전빵이 돼요. 더 이상 별로 비난받을 일이 없어요. 중간쯤 가니까. 대다수 가니까. “너 왜 그 말을 그렇게 해?” “나만 그래? 다 그래. 다 그래. 남들이 다 그렇게 사용하는 거야.” 이러면 대다수가 사용한다고 그걸 진리로 여기는 거에요.


튀는 교회 가지 말고 큰 교회 가라.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큰 교회 가라. 제발 중간쯤 되는 교회 가가지고 그쪽 의미와 그쪽 세계관 속에 흡수당해버려라. 그러면 너는 누가 뭐래도 너 뭐라고 할 사람 없다. 그렇게 이야기하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성경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여기 누가복음 7장에 보면 9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보지 못했다” 했는데 이 백부장은 튑니까? 아니면 평균입니까? 튀지요. 평균이 아니지요.


이 말은 주님께서는 평균을 물리친다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대충 많은 숫자 구원하실려고 오신 분 아니에요. 그게 대세인걸 알지만 그 대세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딱 등장하니까 주님도 놀래버린 거에요. 야 이거 뭐 대다수 사람과 다르네. 믿음이 달라. 마태복음에 보면 이렇게 되어있어요. 바로 이런 사람이 원래 가고자 했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천국에서 쫓겨나오고 이런 사람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천국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고 쫓겨 나오는 부류는 어떤 부류냐. 그리고 쫓겨 들어가는 사람은 쫓겨 나왔던 사람과 다른 원리와 사고방식과 생활관을 가졌기 때문에 쫓겨 나올 수밖에 없는 그곳을 차지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절차 같은 것을 그런 과정 같은 것을 집어넣고 설명하거든요. 여기도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중에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


이 말은 그 당시 대다수 이스라엘이니까 유대사회니까 이스라엘 중에서 믿는 사람 별로 못 봤다 그런 뜻이죠. 평균이 아니고 뭐 대다수라 할지라도 너희들끼리 평균이고 저희들끼리 진리지 주님께서는 그 평균에 말려들지를 않습니다.


자, 그렇다면 왜 이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서 주님께서 이렇게 칭찬을 하느냐? 왜 칭찬을 하느냐 하면은 이점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invariant’. 이건 뭐냐 하면은 불변량이에요. 수학에서 말하는 불변량이라고 하는 겁니다. 불변량이라고 하는 것은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라는 뜻이에요. 예를 들면 그냥 예를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형이 가출을 했다. 형이 가출을 했을 때에 그 부모와 동생들이 경찰서에 가가지고 또는 파출소에 가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형이 가출했어요. 찾아주세요.


그럼 경찰관이 인상착의가 어떻습니까? 쭉 나오지요. 인상착의가 쭉 나오면 키는 몇 센치고 어떻고 혈액형은 A형이고 뭐 쭉 나오겠지요. 그러면 경찰에서 정보를 해가지고 이 사람입니까 대조를 해본다고요. 당신 가정에서 생각하는 그 형이라는 그 정보. 그 신원, 그 정보와 당신이 준 것 가지고 쭉 모으고 찾아봤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게 동일하게 되면 그것은 불변량이 돼요. 같은 성질이 있다 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을 칭찬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가 갖고 있던 그 요소, 그 신원사항과 백부장과 이게 불변량이 돼요. 동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학에 집합론에서 여기 A,B,C,D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고 여기도 뭐 K,G,P,S,O 또는 A,B,C,D,E,F 있다면 여기 있는 예수님의 요소와 여기 있는 이스라엘, 성도 요소가 같은 걸로 이렇게 안에 예수님께 들어있는지 1:1 대응을 해보는 거에요. 대응이 있으면 이건 천국입니다. 두 집합에서. 일대일 대응이 있으면 돼요. 요소가.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철저합니다. 뭐 이렇게 업무가 그냥 대충하는 게 없어요. 예수님의 요소와 성도의 요소가 일치되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A,B,C,D 있다면 여기서 A,B,C,D 따로 뽑아내는 거에요. A,B,C,D 따로 뽑아내가지고 이 따로 뽑아낸 것 가지고 새로운 A,B,C,D 집합을 만들 수 있다. 이걸 선택공리라고 해요. ‘선택공리’. 선택. Choice. 선택한다는 거에요.


자, 이 이야기는 이 집합 이야기를 이 수학 집합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은 이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도 주께서는 이걸 거절을 한다는 뜻이에요. 나 어떻게 하면 구원받습니까? 어떤 시도도 거절하는 거에요. 그냥 있어. 내 요소 네 안에 들어있으면 나는 다 알아. 네가 어떤 요소가 들어있는지 다 안다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배신할 때 닭이 울었잖아요. 닭이 울었지요. 베드로는 뭐 했습니까? 배신했지요. 닭은 배신했습니까? 그때 울으라고 할 때 안 울고 막 버텼습니까? 누가 봐도 닭은 IQ가 없어요. 베드로는 자기 나름대로 따지는 게 많아요. 이 권력에서 내가 어떻게 평균 좀 되볼까. 어떻게 살아볼까 따지는데 닭은 그냥 주님께서 울게 하지요.


그러면 예수님과 성도 사이에 요소가 주님의 요소가 베드로 요소겠어요 닭 요소겠습니까? 닭을 집어넣어야 되지요. 닭을 집어넣어야 되겠지요. 닭이 있으면 이건 어디 가느냐 하면은 주님과의 연결된 직통으로 연결된 계시이기 때문에 이 닭이 들어 있는 사람은 구원받습니다. 닭 되기가 그렇게 쉽지 않아요. 왜냐? 아까 했잖아요. 선과 악이 있기 때문에 선과 악으로 자기 자아가 자기 육신을 명령을 하고 통제를 한다고요.


나쁜 일하지 말고 착한일 하라고요. 그것은 닭이 아니에요. 그것은 선이라는 것이 나한테 어느 것이 유리한가 불리한가 따지는 거에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어느 정도 가치 있는가 없는가 따지는 거에요. 닭에게는 가치나 의미같은 게 없어요. 그냥 울 때 울면 돼요. 울면 된다고요.


그렇다면 베드로의 입장에서 봅시다. 베드로 입장에서 닭이 없었지요. 베드로 입장에서는 닭이 주님의 지시에 따르는 것처럼 그게 없다가 무엇을 비교해서? 닭과 비교해서 베드로에게 그것이 없다를 보여주는 겁니다. 아까 없음을 뭐라고 했습니까? 빈자리를 뭐라고 했습니까? 공백이죠 공백. 공백이 구멍이 뚫린 것. 이걸 뭐냐? 구멍 난 것처럼. 구멍 난 것처럼.


인간의 자아는 구멍이 뚫려 있어요. 구멍이 뽕뽕뽕 뚫려 있다고요. 자기 딴에 굉장히 도덕적인데 이 도덕적이 자아의 허술함을 그냥 봉합하고 무마시키고 덮으면서 얼추 착한 사람 행세를 하고 싶은 겁니다. 주님한테 통하겠어요? 그 위선. 그 가식이 통하겠습니까? 안 통하지요. 통하지를 못하지요. 이걸 아까 제가 뭐라고 했느냐 구멍 난 것처럼. 구멍 난 것처럼 다른 말로 하면 총 맞은 것처럼. 총 맞은 것처럼.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구멍 난 그 자아를 가지고 주님이 주신 그 온전한, 온전하지도 않지만 늙어가지만 그 늙어가고 죽어가는 그 육신을 내가 어설픈 구멍 난 헝겊을 가지고 그 본능과 충동을 다 덮을 수가 있습니까? 못 덮지요. 덮을 수가 없어요. 뭐 30년 공직, 40년 공직 깨끗하다고요? 한번 털어봐? 깨끗한지.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없지요. 없습니다.


그 없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 하면은 바로 아담과 아담의 부인 이름이 뭐죠? 하와지요. 하와 사이에 A,B,C,D 요소가 있잖아요. 있으면 여기 아담과 하와 사이에 누가 나왔습니까? 가인 있고 아벨이 있지요. 이 요소사이에 선택공리 따로 뽑아서 집합을 만들면 이 요소와 이 요소가 확장되었잖아요.


그러면 여기서 뭐가 있느냐 하면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살인이 있지요. 살인. 그 살인 본성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자기 아버지 자기 엄마한테서 나왔지요. 여기서 나온 거에요. 나는 깨끗하다고요? 그러면 자식들은요? 깨끗한 데서 뭐가 나온다? 깨끗한 게 나와요. 깨끗한 데서 깨끗한 게 나오고 선한 데서 선한 게 나오고 악한 데서 악한 게 나온다고요. 그렇죠?


부모가 그렇게 깨끗한데 얘는 왜 개차반이에요? 옛날 노인네들 하는 말처럼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요? 그 DNA가 그 DNA데 뭘 주워와요. 부모가 자기가 깨끗하다고 A,B,C,D,E 까지만 그 자식들 속에는 내가 미쳐 숨기고 싶었고 내가 미쳐 알지도 못한 D,E,F,G 이런 더러운 것들이 자식들 속에 그대로 다 발현되고 있는 겁니다. 인간이 자기 괜찮은 것만 주워 모아서 괜찮다고 하면 안돼요.


만약에 어떤 남편이 꽃을 들고 자기 아내한테 생일이라고 꽃을 줄 때에 아내가 욕심내가지고 나는 이 세상에 아름다운 꽃을 원한다. 그러면 아름다운 꽃을 할려면 이 꽃다발이 직경이 2500km되도 모자라요. 세상에 모든 꽃들 다 끌어모아야 되니까. 이게 말이 돼요? 안되지요.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인간이 다 알 수 있습니까? 모릅니다.


꽃이 꽃이라도 그걸 끌어 모으는 작업 가운데 그 선입견, 행위 속에서 인간의 죄가 계속해서 스며들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그건 성사될 수가 없어요 인간은.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2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그냥 찾지 마세요. 여러분 다 아는 말씀이에요.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도 할 것이고 또한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라” 이 보다 더 큰 것을 한다. 확장입니다.


예수님이 하는 일이 제자들에 의해서 예수님의 일이 이 정도로 컸었어? 속속들이 교회 일이 주의 일이 아니고 모든 직장이고 어디든 간에 절간이든 이슬람 성전이든 이 세상의 어느 구석이든 주의 일이 퍼지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어요. 모든 곳에 다 퍼져있습니다. 그만큼 끝까지 확대되고 있어요. 지금 사도들은 주께서 성령께서 이끄는 대로 더 퍼져나가야 돼요. 주님의 일이 더 퍼져나가야 돼요.


가는 곳마다 그들은 쉽게 말해서 그들은 화투장을 들추는 일을 하죠. 성도가. 사도들은. 화투 뒷면 색이 짙은 주황색 아닙니까. 그런데 앞면은 어때요? 앞면은. 5월 난초, 9월 목단, 10월 단풍, 11월 피 뭐 이렇게 8월달 보름 3월달 꽃 쭉 나와 있지요. 화려하지요. 화려하지만 이걸 뒷면을 들추어보세요. 칙칙한 색깔. 똑같은 색깔들 전부 다 똑같은 색깔 칙칙해요.


사도 바울이 화투장 서너장만 들추는 게 아니에요. 48장 다 뒤집어요. 그거 다 들춰내요. 뒷면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어요. 이게 보통 큰일이 아닙니다. 저 죄인은 십자가 피 믿어야 되지만 나는 착해서 안 믿어도 된다 그런 거 없어요. 어느 누구도 그리스의 피가 필요치 않은 인간은 아무도 없어요. 모든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에. 평균해도 안돼요. 나름대로 도덕적으로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인간 세계를 질서로부터 어디로 까느냐 하면은 무질서로, 창조의 질서로부터 무질서로 이걸 보통 신학에서는 이걸 타락이라고 하잖아요. 타락. 너무 의미가 식상하잖아요. 이걸 바꿉시다. 몰락. 달의 몰락. 달이 시커멓게 되는 거에요. 몰락하는 거에요. 이 세상은 몰락하는 거에요. 요한계시록 보세요. 그냥 몰락해요.


질서가 뭐로 바뀌느냐 하면은 혼돈으로 바뀝니다. 혼돈. 혼돈이니까 혼돈인 것을 알아. 얼추 이걸 평균은 진리 값에 가깝다 이러고 싶은 거에요. 평균 정도. 평균에 들어오게 되면 무질서 가운데 좀 낫지 아니한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아까 공백, 빈자리를 이걸 좀 더 해보겠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게 되면 자아가 신처럼 행세해요. 신이라고 하는 것은 최고 자리를 희망한다. 추구한다. 같은 말이에요. 최고 자리를 추구해요. 그런데 이 최고 자리가 희망하는 이것을 잘 드러낸 것이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탑이 있어요. 바벨탑이죠. 바벨탑인데 점선으로 아직 완공이 못됐어요. 완공이 못되면 이렇게 되요. 완공되면 우리 이름을 하늘에 닿게 하겠다.


그러면 무엇이 공백이냐 하면은 이거 짓다 만 이게 공백이 아니고 비어있는 이게 공백, 이게 빈자리 되겠지요. 그러니까 인간은 처음부터 탑이 완성되기를 기대해서 공사에 들어갔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인간도 아무리 이게 흩어져도 이 점선부분은 이걸 안고 가는 거에요. 아무리 흩어져요. 아무리 넓은 아파트에 고급 차를 사도 이 빈자리는 여전하게 크게 많이 남아요.


이게 무슨 자리냐 하면은 이게 바로 총 맞은 자리. 구멍 난 총 맞은 자리. 그러면 이 총 맞은 자리, 구멍 난 자리에 이 자아가 전체 일부이기 때문에 자아의 이런 속성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인류라는 이 집합에서 선택공리로 몇 가지를 골라서 ‘나’라는 요소를 만들 때에 선택공리이기 때문에 집합을 따로 만들 수 있다는 거에요. 명제가.


따로 만들어버리면 내게 있는 모든 A,B,C,D 요소로 세상에는 A,B,C,D,E,F,G 요소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중에서 A,B,C,D만 끌어 왔기 때문에 E,F,G 이거는 나에게 갈구대상이 됩니다. 갈구. 나에게 희망의 대상, 이게 공백이에요. 별로 어렵지 않지요? 그런데 나는 A,B,C,D만 만족할려고 했는데 막상 시골에 있는 아가씨나 총각이 서울에 딱 와보니까 A,B,C,D만 있는게 아니라 E,F,G,H 이런 좋은 것들이 많이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갑자기 공백이 작다가 공백이 더 커지겠지요. 아무리 내가 A,B,C,D로 만족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이걸 못 가져서. 이걸 가질 수가 없어가지고. 예를 들면 옛날 어른들은 결혼할 때 방 한 칸만 있어도 만족했지요. 그때 가구라는 것은 비키니 옷장 하나만 있어도 만족했을 겁니다. 비키니 옷장. 이게 언제 적 이야기에요. 1970년대 이야기죠.


비키니 옷장만 있어도 만족했는데 자기가 지금 남들 서울에 최소한 35평 아파트에 사니까 자기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자기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도덕이 동원돼요. 그래 나는 신자잖아 주님 가신 길을 생각해야지. 나는 이것도 만족합니다. 만족합니다. 아무리 자기한테 호소하고 호소하고 하소연하고 아무리 해도 이게 치료가 안돼요. 치료가. 이건 여전히 남아요 이게. 그러면서도 비실비실 야위어져 가는 거에요.


이것을 잘 알 수 있는 동화가 있어요. 이게 뭐냐. 신데렐라. 신데렐라. 맞지도 않는 신발인데 억지로 발에 맞출려고 끌어 모으는 거에요. 백화점 가서 이것 사고 아무리 많은 물건을 사고 해도 신어 보면 뭐 약간의 1,2개월 만족하다가 그 다음부터는 덜 만족스러워요. 신발도 갈아치우고 옷도 갈아치우고 심지어는 남편도 갈아치우고. 교회도 갈아치우고. 계속해서 자기의 있는 빈자리를 온전히 그 욕망을 채울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치료도 받을려고 하고. 그렇게 노력을 해도 이게 봉합이 안돼요.


오늘 7장 9절에 말씀에 이스라엘이 되지를 못하는 겁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주님 앞에 백부장 하나 등장해가지고 이스라엘 요소를 전부를 쳐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하늘나라가 주인공이고 A,B,C,D 요소가 있는데 백부장한테는 예수님의 요소와 백부장의 요소와 통하는 같은 게 있는데 이스라엘은 그게 하나도 없어요.


그렇다면 도대체 이스라엘이 어떤 나라였기에 이스라엘 될려고 그렇게 애쓴 그들은 다 추방이 되고 이방인 백부장이 어떻게 이스라엘 요소에 들어갔느냐. 이걸 따져보면 그 해결점이 나오겠지요. 해결점이. 지금 바벨탑 이야기를 했는데 바벨탑 이것은 짓다 말았잖아요. 그러니까 마음속은 뭔가 계속 허전한 거에요.


새로운 신발 신어도 또 새로운 신발 해야 되고 옛날 필리핀 독재자 부인은 이멜다 신발이 그때 당시에 250켤레 해가지고 한국 사람이 다 놀래버렸어요. 무슨 여자가 그렇게 사치를 하느냐. 신발이 무슨 250켤레나 되는가. 그게 몇 년 전이냐 하면은 벌써 40년 전이거든요. 지금 어지간한 연예인들 전부 300켤레 넘어요. 어지간한 연예인들 전부 300켤레 넘는다고요. 그래서 큰 집 사야 돼요. 신발장 큰 거 사야 돼요. 욕 얻어먹었을 거에요.


하지만 지금 뭐가 됐느냐 하면은 지금은 이게 평균입니다. 왜 평균이 위험한줄 알겠지요. 절대적인 진리가 안에 들어 있지 않아요. 거대한 욕망의 담론, 욕망의 강물, 독일에 비와가지고 골목마다 강물 됐지요. 거대한 욕망의 흐름에 섞이게 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죄가 아니고 그것은 이 시대의 추이에 불과해요. 조류에 정당한 것으로 이게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참 편리하지요. 남들 다 그런데 뭐. 그런 식으로 때울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아까 강의할 때 평균에서 뭐가 나온다고 했습니까. 평균에서 뭐가 나오지요? 의미가 나오지요. 가치가 나온다고요. 이게 나를 정당화시키는 겁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나만 닦달내지 마라 뭐 이런 식으로 정당하게 자기 방어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백부장 같은 사람은 이스라엘의 시작은, 이스라엘이 시작할려면 반드시 이스라엘에 들어올 수 없는 요소가 있어야 돼요.


이스라엘이 A,B,C,D 있을려면 이게 성립될려면 이스라엘은 나중에 생겨나야 돼요. 먼저 이스라엘이라는 게 없고 그냥 히브리인들이죠. 이 전체에 뭐가 있느냐 하면은 E,F,G,H,I,J 이런 것들만 있는 세계 속에 그들도 하나의 E,F,G,H,I,J 요소로서 그냥 자기 안에 자아로 박아놓고 평균적으로 살았던 그런 틀이에요.


그럼 A,B,C,D는 이건 어디서 왔습니까? 세상으로부터 온 게 아니고 어디서 왔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온 거에요. 하나님의 약속에서 온 겁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털레털레 빈손으로 온 게 아니고 예수님의 본연의 요소 또는 속성 이런걸 가지고 온 거에요. 예수님의 본연의 요소와 속성을 자기 백성에게 전달해서 집어넣으면 이 진짜 백성은 예수님과 같은 요소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쉽지요?! 참 쉽지요.


뭐가 어려우냐 하면은 이 전달할 때 전달을 이스라엘이 요구해서 얻을 수 없다는 점이에요. 이게 이해는 쉬운데 실제로는 이것이 기적적입니다. 왜냐하면 E,F,G,H,I 세상적인 것 가지고 아무리 조작을 하고 아무리 여기서 변형을 해도 A,B,C,D가 안 나오게 되어있어요.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세상은 세상 요소를 단일화한다. 세상 요소를 단일화해요. 단일화라는 말이 뭐냐 하면 이런 겁니다. 어느 남녀가 선 볼 때 보통 선 볼 때 남자가 먼저 와 있잖아요. 여자가 뒤에 와가지고 커피할까요? 교양 떨면서 이제 둘이 이야기한다고요. 쭉 한잔해가면서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됐다 이 말이죠. 어떤 결정을 내릴 시간이 온 거에요. 커피숍에서 한 두 시간 동안.


그래서 남자가 용기를 내가지고 아가씨 보기에 저 어떻습니까? 신랑감 좀 됩니까? 이렇게 물어보게 되면 여자가 신랑감 된다는 소리는 안하고 자꾸 딴 이야기하는 거에요. 우리 아버지는 벤츠 아니면 안 탄다는데 뭐 이런 거. 우리 엄마가 한창 바빠요. 왜냐하면 별장이 두 개 있어 가지고 그거 하나 청소한다고 바쁩니다.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에요.


그럼 답답해서 남자가 쫌 단일화해서 이야기해요. 단일화. ‘단일화’. 이야기해달라고 하면 당신 싫다는 이야기에요. 결국. 모든 인간의 언어와 여러 가지 빙 돌려서 이야기해도 핵심은 단 하나로 모아집니다. 모든 이야기가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십자가 이야기에요.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했잖아요. 십자가로 모아지듯이 인간의 모든 언어는 이게 전부 다 다 따로따로 노는 것 같지만 따로따로 노는 게 아니에요. 이야기 하고 싶은 게 더 있어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더라도 인간은 여러 가지 의미 그냥 나열하는 게 아니고 그중에서 이것 뽑고 이것 뽑고 뽑아서 단일화될 수 있는 꽃다발을 언어의 꽃다발을 자기 나름대로 만든다고요. 심지어 어린아이가 엄마한테 이야기할 때도. 엄마 배고픈데 저건 좀 짠 것 같고. 딴소리 하지 말고 뭐 해달란 소리야? 피자 사줘. 된장은 어떻고 김은 어떻고 돌려서 얘기하지 말고 딱 이야기해봐. 엄마 외식하자. 딱 단도직입적으로 외식해달라는 거에요. 맛있는 거 오늘 사먹자 이 말 아닙니까.


바로 왕이, “남자만 가서 제사 드리세요. 보내드리겠습다.” 빙빙 돌려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게 뭐냐 하면은 바로가 왜 히브리인들을 못 내보내려고 했느냐 히브리인들 내보내면 단일화가 깨져요. 단일화가. 애굽 나라라는 단일화가 깨진다고요. 단일화가 깨져버리면 최종 의미가 다 아작이 나버려요. 전부 다. 해체가 되어 버려요. 해체.


그동안 모든 의미는 이 나라에서 바로가 절대자거든요. 왕이잖아요. 힘의 정점이에요. 힘의 정점. 남들은 나의 명령을 들어야 돼요. 그런데 나의 이 통치적 명령에서 벗어난 게 있다고 한다면 이 나라의 통치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 말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한 구원은 뭐냐? 악마로 하여금 어떤 인간도 못 빠져나가게 만들었어요. 하나님께서.


악마가 힘의 최종점이 어떤 인간도 자력으로 악마에게 못 빠져나오게 딱 해놓으시고 심지어 12제자라고 할지라도 자발적으로 예수님의 편에 서지 않도록 그렇게 모든 일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단일화했어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처럼 모두 다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놨어요. 그게 본성이에요. 인간은 그 자기 본성이 예수님의 본성 A,B,C,D에도 없어요. E,F,G,H 이런 것만 있다고요.


있는데 예수님만이 그 E,F,G에서 빠져나와버렸어요. 무슨 힘으로? A,B,C,D 힘으로. 그게 바로 부활의 십자가, 죽으심의 능력이에요. 그렇게 되는 거에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선악체제, 스스로 자기 관리가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 듣고 바르게 살아야지. 이건 아무 소용도 없는 거에요. 그거 해봐야 결핍에서 결핍으로 나갈 뿐이에요. 야고보서 2장에서 보면 모든 것을 지켜도 하나를 어기면 그건 결핍이에요. 구멍난 거에요. 그거. 온전하게 봉합이 다 안됐다 이 말이죠.


그래서 이것하고 첫째 시간 마칩시다. 이스라엘에서 이스라엘이 처음 생길 때 여기 뭐가 있느냐 하면은 바로 여기 없는 것, 애굽에 없는 것, 즉 애굽의 없는 것에 대해서 언약의 있는 것으로 여기서 뭐가 일어나는가? 심판을 행사함으로서 히브리인이든 누구든간에 A,B,C,D가 없기 때문에 일단 유월절 그날은 다 죽이는 거에요. 히브리인이든 애굽인이든 상관없이 다 죽여버려요. 주님이 찾는 언약의 요소가 없는 것은 그냥 죽음뿐입니다. 그 죽음 뿐에서 어떻게 나왔는가? 그건 10분 쉬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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