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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4 13:28:54 조회 : 2722         
004강-렘 2장5-9(무익한 것)-jer090401-(이근호목사) 이름 : 오용익(IP:211.194.56.76)

004강-렘 2장5-9(무익한 것)-jer090401-(이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2장 5절에서 9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051페이지입니다.


예레미야 2:5-9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추궁을 해 들어가는데 추궁의 근거가 있습니다. 5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레미야가 사람의 말로 전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더불어 있다고 예레미야 1장 설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보는 그 시선에 맞추어서 예레미야가 말을 해야 되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불의한 것 봤나? 하나님이 일 잘못한 것 있나?’라고 하는 겁니다. ‘너희들은 이 하나님의 뭐가 그렇게 못마땅하고 너희 마음에 시원치 않아서 다른 신, 우상을 그렇게 따라가고 선지자나 제사장들과 관리들,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고 실시해야 될 너희들이 무익한 우상을 섬기게 되었느냐.’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따지지요.


그래서 ‘여호와께서 불의하냐.’라는 말을 하나님께서 끄집어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관심사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의냐, 불의냐, 그것으로 일하시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가 주어진다면 더 이상 우리는 다른 것을 바랄 필요조차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사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기준이 뭐냐, 하나님의 의에 있기에 때문에 그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우리가 뭔가 받은 게 있다면 우리는 받을 것 다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죽어도 좋아요. 그런데 거짓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불의한 것에 속하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제공하는데 급급하다 보니 여호와를 버릴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여호와는 주시려고 하는 것이 의냐, 불의냐, 그것만 따지는 것이 여호와인데 일반 백성들은 내가 출세하느냐, 내가 인생 성공하느냐, 내가 배 부르냐, 내가 넉넉하게 사느냐, 일반적이고 세속적인 관심사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의 주시려는 것과 일반백성들의 요구와 큰 차이가 벌어지고 말았어요.


그래서 여기 관리들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거기서 눈을 돌려버리고 일반백성들이 무엇을 아쉬워하고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매진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로움은 어떻게 주느냐, 6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7절에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기름진 땅에 들여 그 과실과 그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라고 되어 있지요. 여기 보면 일반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용어가 나옵니다. ‘내 기업을 가증히 여겼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상속분을 시답지 않게 여겼다, 시시하게 여겼다.’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를 지나고 난 뒤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셨는데 그렇게 하신 이유는 뭐냐, 광야를 통과할 때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통과할 수 없는 곳을 통과하게 한 겁니다. 지금 우상과 싸움을 하고 있는데요, 우상은 뭐냐, 쉽게 말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인간이 열심을 내어서 해내는 것, 이것이 우상의 가르침입니다.



하면 된다, 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싶은 게 있고 원하는 것이 있는데 항상 하나님께서 ‘네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가능하다.’라고 내려줄 때 사람은 자기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아, 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도 원하는 것이구나. 그렇지, 내가 신에게 구하면 주실 거야.’ 이렇게 자기가 간절히 기도해서 그 원하는 바를 챙기겠다고 나오면 그것이 다 우상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은 뭐냐,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지 사람이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차이점이 뭐냐, 거짓선지자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신이 채워준다고 선전하는 자들이 거짓선지자고 참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인간이 원하지도 않는데 주시는데 그것이 뭐냐,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셔야 줄 수 있는 것이 의라면 이 땅에서 인간들이 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가짜지요. 인간들은 이 땅에서 자기가 의로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은 의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의롭게 될 때 그것을 밑천 삼아서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 자기가 진짜 노리고 있는 바를 자기 의로움을 밑천으로 해서 달라고 하기 위해서 자기의, 선을 축적하는 거예요.



사실은 노림수가 따로 있어요. 그것은 자기 자신이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어요. 그것은 남은 죽어도 나는 계속 살아야 된다, 그 말이에요. 그런데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은 우리가 만들지도 못하고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의를 줘버리면 그 받은 순간 우리는 ‘당장 여기서 죽어도 좋아.’ 그렇게 되는 거예요.



가짜 선지자가 주는 것은 ‘다른 사람은 죽어도 나는 죽으면 안 돼. 나는 오래 살아야 돼.’ 이렇게 나오지만 진짜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살 필요 없네.’라고 감사하면서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주께서 부르실 때까지 살아가는 거예요. 마치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에서 좋은 물건을 땡 처리, 백만 원짜리 명품을 만원에 구하는 횡재를 했을 때 다른 물건 쇼핑할 생각 없습니다. 그것 챙겨서 얼른 집에 갈 생각 하겠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는 것을 주신 거예요. 그게 뭐냐, 로마서 3장 26, 2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어요.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 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의로움이 세 개 나옵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 내사 자기도 의로우시고 예수 믿는 사람도 의롭고, 이렇게 되어버리면 하나님의 의는 우리에게 뭘 주고자 하는 자체가 우리에게 내 것이 없고 하나님의 의가 택배로 여기에 도달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몽땅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의를 전부 다 가져가버립니다.



이것을 다 치워버려요. 다 끌어 모아서 전부 버리고 텅텅 비게 만들어요. 하나님이 자신의 의를 나타내시는 방법이 뭐냐, 하나님도 의로우시고 우리도 의로우시고 둘 다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행함으로 의로운 것은 다 삭제시키고 없애버리는 겁니다. 사람들의 심리가 뭐냐, 하나님은 선한 자에게 복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시기 때문에 나는 선한 자, 의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 뭘 해야 되느냐, 이것이 인간들이 거짓선지자에게 매달리면서 얻고자 하는 겁니다.



‘목사님, 기도를 며칠간 해야 됩니까? 헌금은 얼마나 하면 됩니까? 봉사를 하게 되면 그게 내 의가 되어서 진짜 원하는 것, 대학합격이 되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자꾸 자기가 의로운 사람 되어야 비로소 그 다음에 하나님께 뭘 구할 수 있는 염치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의로움은 일체 자기 스스로 만든 의가 없어도 너는 괜찮아.’라는 것까지 꽂혀 있어야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겁니다.



사람이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따로 노리는 것이 있어요. 뭐냐, 자기생존의 문제와 일단 생존했으면 그 다음에 남에게 유명한 사람이 되고 남에게 돋보이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 이 근거가 뭐냐, 내가 그만한 복을 받기 위해서 뭔가 내가 의를 쌓아야 된다는, 신이 주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내 쪽에서 나름대로의 의로운 바탕을 축적해야 된다는 이것이 우리가 거짓선지자, 악마에게 꼼짝없이 매여 사는 덫이 되고 말았어요.



그런데 거짓선지자, 거짓목사 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만든 신학에 자기가 빠진 거예요. 정말 성경에서 주고자 하는 하나님 말고 자기가 상상하는 하나님, ‘하나님은 나하고 관계 맺을 때 이렇게 관계 맺는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관계마저, 모든 것을 새로 출발하시는 거예요.



아담은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를 지은 인간이 아무리 헉헉거리면서 의를 행해봤자 그 자체가 자꾸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더 못됐어요. 죄인이면 죄인인 것을 고백해야 될 텐데 죄인이면서도 자꾸 죄인 아닌 것으로 탈출하려고 하니까 그 발버둥 치는 모습이 더 얄밉고 더 미운 겁니다.



얼마 전에 제가 봉화에 가서 제가 20여 년 전에 살았던 그 집에 갔는데 그 집이 아직도 있어요. 이제 남의 집이 된 그 집을 보는 순간 그 집에서 내가 은혜 받은 것이 생각나요. 하루는 베란다 수도에서 물을 받고 있으면서 로이드존스 목사의 로마서강해를 읽고 있었는데 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어요. 언뜻 정신을 차려보니까 양동이에 물이 넘쳐서 베란다에 물이 흥건히 흘렀어요.



그런데 막 본 것이 로마서 3장, 4장, 5장의 그 대목을 봤어요. 뭐냐, 하나님의 의는 단순히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달라고 하지도 않은 하나님의 자기 의를 꾸역꾸역 넘치도록 갖다 붓는 거예요. 스키장에 가면 눈 만드는 기계에서 눈이 막 뽑아져 나오잖아요. 커다란 호스에서 물이 눈이 되어서 막 퍼붓듯이, 우리는 용서만 해달라고 하는데 주님께서 용서만 해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기 의를 퍼부어서 아예 우리를 눈사람으로, 의인으로 만들어요.



양털같이 희어지리라, 우리가 양털같이 희어지기를 언제 원했습니까? 우리는 산타클로스정도만 되어도, 훌륭한 밥 퍼주는 목사만 되어도 만족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테레사 수녀냐 선종했다는 추기경정도가 아닙니다. 그 정도는 비교가 안돼요. 우리가 기도할 때 세상에서 염치 세우려고 ‘이 정도 기도하면 이 정도 의롭겠지.’하는데 그것은 어디로 갔는지 아예 흔적도 없이 주님 주신 의로움이 폭설을 내리듯이 우리에게 쏟아져 내리는 거예요.



하얀 의가 마구 쏟아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에게 도달된 하나님의 의 어느 구석을 봐도 내 것이 하나도 없어요. 전부 다 주님의 자기 의예요. 그러면 우리는 물을 수 있지요. 왜 하나님은 저를 의로움 덩어리로 만들었습니까? 그 때 로마서 3장 25절 말씀이죠. ‘당신의 의를 나타 내사 나도 의롭고 너도 의로울 때 비로소 하나님 자신의 의로움, 인간의 행함이 그야말로 1퍼센트도 섞이지 않는 하나님의 완벽한 자기 의로서 우리를 새롭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보고 인간되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삽니까?’ 이것은 거짓선지자가 주장하는 거예요. 이것은 우리가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인데 하나님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인간을 만들어내요. 우리는 현재 있는 이 인간인 내가 어떻게 하나님덕분에 삽니까,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마귀가 광야에 와서 예수님 시험할 때 첫째가 그 문제였잖아요. ‘살아야 일을 하지, 살아야!’ 그러나 주님은 그것이 사는 것이 아니에요. 뭐가 사는 것이냐, 말씀대로 사는 인간 만들어질 때 그것을 산다고 하는 겁니다. 하늘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뭐냐,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나라 의가 도달된 사람, 하나님의 의로 만든 눈사람, 그것이 아담과는 다른 마지막 아담에 소속된 새로운 인간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고 있는데 악마는 와서 ‘너도 밥 먹고 살아야지. 너 그게 사는 게 아니다. 노숙자가 그게 뭐냐! 예수 믿었으면 그런 신세를 벗어나야지.’ 맨 날 그러거든요. 하나님의 의가 도달되면 ‘주여, 노숙자라도 고맙습니다. 노숙자가 되든지 뭐가 되든지 노숙자라도 구원받았다는 주의 의가 자랑되면 그만입니다. 내 신세가 뭐든 내 수입이 한 달 십 만원이든 오만원이든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닙니다. 차라리 나를 죽여 버리세요. 이제는 그만 살렵니다. 힘든 인생, 죽어도 좋아.’



‘나는 이 정도는 돼야 돼.’라는 내 욕망으로는 생각하지도 못한 인간을 하나님이 새로 만들어놓았어요. 만들 때 콘크리트 타설하듯이, 하나님의 의가 콘크리트가 되어서 구석구석 우리 속을 없는 곳이 없도록 채워주는데 그만! 그만! 해도 안돼요. 계속 나와요. 마치 오병이어처럼. 그리고 과부의 참기름 병처럼, 병만 있으면 참기름이 가득, 또 병 있으면 참기름 가득, 사마리아여인처럼 속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이것은 아주 희한한 인간이에요.



세상에 로봇을 만들어도 그런 로봇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로봇도 배터리 떨어지면 못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의라는 배터리는 감당이 불감당입니다. 계속 주어져요. 끝도 없어요. 우리는 말리고 싶지요. ‘하나님은 내 죄만 용서해 주시면 되는데 이 웬 것을 이렇게 많이 주십니까?’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의다. 네가 상상한 것 이상 무한대로 주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의다. 다 하나 하나가 예수님의 공로에서 튀어나온 거야.’



그 의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몰랐지요. 나중에 이스라엘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가보니까 인간이 통과할 수 없는 그 광야를 통과한 능력도 바로 새로운 인간이기 때문에 주께서 뒷받침 해주고 도와주심에서 나온 겁니다. 다른 민족들은 맛 볼 수 없는 만나와 돌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을 통해서 그들은 광야를 통과한 겁니다.



그들은 오해했지요. ‘아, 광야도 밥 먹고 살라고 통과하는구나.’ 밥 먹고 살라고 통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새로운 인간은 저렇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의를 덧입기 위해서 그들은 광야를 통과해서 약속의 땅에 도착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2장 오늘 대목에서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첫 열매라 했잖아요. 하나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은 예상도 못하는 인간형을 광야를 통과시켜서 새로 만들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갔는데 너희들은, 그리고 선지자나 제사장들은 왜 새롭게 하늘에서 주신 그 엄청난 하나님의 의로움은 알지 못한 채 왜 자꾸 다른 이방나라의 삶은 본받아서 ‘우리도 저렇게 잘 먹고 잘살자.’하는 쪽에 빠져서 그들을 위한 설교를 왜 하느냐,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9절에 하신 말씀이 “그러므로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합니다. ‘내가 주고자 하는 것을 왜 찾지 않고 마귀들이 주고자 하는 것을 왜 그리 찾느냐.’ 하는 식으로 다투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이 이 예레미야에게 오지를 아니하면 그들이 잘못 자체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몰라요.



만약 어느 교회에 하나님의 의, 로마서 3장의 하나님의 의를 눈사람처럼 퍼부어서 그래서 온 사람이 있다면 그 교회는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돼요. 그 사람 때문에 자기가 지금 엉뚱한 것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됩니다. 그 교회에 성도 한 사람만 있어도 그 교회는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요.



왜, 회개할 수 있으니까. ‘야, 우상을 섬겼구나.’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의 이야기거든요. 신명기 11장 28절에 보면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이렇게 하시면서 12장에 들어가면 5절에 유명한 말씀이 나오지요.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그러니까 약속의 땅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기대한 천국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몰랐던 거예요. 우리는 몰랐고 우리는 천국이 이런 세계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는데, 그렇게 몰랐지만, 모를 수밖에 없지만 하여튼 천국이 이런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뭐냐, 천국에 못 들어갈 인간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전조치로 콘크리트 타설하듯이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완전히 덮쳐서 넘치고, 넘치고, 넘치고, 또 넘쳐서 눈사람 될 정도로 넘쳐야만 갈 수 있는 세계라는 것은 우리가 짐작할 수 있어요.



천국이 여호와의 증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시원한 골프장이 아닙니다. 알라신 믿는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자가 많고 사람이 맘껏 살기 좋은 낙원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거룩과 의는 얼마나 거룩하고 무서운지 마귀조차 쫓겨나왔어요. 천하의 마귀가 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똑똑한 마귀도 쫓겨난 것 같으면 보통 거룩한 나라가 아니잖아요.



모든 율법을 지켜도 하나를 어기면 못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그야말로 저주받은 자,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자는 못 들어가는데 우리 힘으로 어떻게 그 저주를 이기고 어떻게 우리 힘으로 죄를 씻어줍니까? 죄를 씻어줘도 안돼요. 우리가 죄를 없애기만 하면 기껏해야 아담이 살았던 에덴동산밖에 못가잖아요. 에덴동산은 지금 있지도 않으니까.



우리가 가는 나라는 죄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넘치고 넘쳐서 우리로서는 감당 안 될 정도로 그렇게 많은 의가 되는 사람만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게 복음이에요. 그래서 그런 교인이 우리 교회나 어느 교회에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사람(혹은 그 목사)입에서 혹은 다른 교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기가 값없이 엄청나게 받은 의를, 예수님의 공로로 주신 의를, 과연 그것만 자랑하는지 아니면 다른 것을 자랑하는지 볼 것이 아닙니까?



다른 것 자랑하면 그게 바로 우상숭배지요. 받은 것이 없기에 어설프게 다른 것을 자랑하는 거예요. 우리 교회 교인 몇 명 모인다, 우리교회 헌금 얼마 나왔다, 우리목사 설교 잘 한다, 선교 많이 하고 구제 많이 한다, 지옥으로 가려고 아예 환장을 했어요. 지옥 가는 사람만 모였기 때문에 그것 자랑하는 거예요.



우리 교회는 새벽기도회에 3천명 모인다,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교회 새벽마다 3천명이 모이는데 다 지옥 간대.’ 그 소리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의를 받은 사람은 3천명 나오고 헌금 5억 나온다는 소리를 차마 못하지요. 왜, 행여나 그런 소리 하면 돈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의인 줄 알고 쫓아오는 가짜들이 올까봐 겁이 나서 못하지요.



가짜들이 모으기 위해서 교회 또 지어야 되잖아요. 지옥 갈 인간들을 모아두기 위해서 또 교육관 지으려면 또 헌금을 내야 되잖아요. 이번에 간 그 봉화마을에 교회가 있어요. 봉화 제○교회라고 통합 측 교회입니다. 교인들 내려오면서 욕을 한다는 거예요. 맨 날 설교가 신문 사설에 나오는 이야기라 다 아는 이야기를 한다고 욕을 하는 거예요.



교인들이 ‘휴, 다 아는 이야기, 신문 보면 다 아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니 미치겠다.’ 하는 겁니다. 그리고 설교의 결론은 뭐냐, ‘무조건 목사에게 복종하라. 그리고 교회에서 결정한 월삭헌금을 무조건 다 내라.’ 제가 책을 주고 왔어요. 제가 책을 주고 온 것은 일종의 제 4차 전도여행이지요. 목사가 설교를 하려면 어느 정도 되어야 되느냐, ‘지금 당장 죽어도 너무 좋습니다.’라는 그것이 있어야 설교를 할 수 있어요.



‘이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얼마나 은혜를 받는다.’는 이것을 계산하면 설교하면 안돼요. ‘나는 그만 죽을래요. 미안합니다, 먼저 죽어서.’ 이렇게 되어야 돼요. ‘그럼 당신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 이 엄청난 의를 퍼부은 곳으로 가지요. 뭔가 뜻이 있어서 퍼부었으니까 그렇게 엄청나게 퍼부은 그 분 만나러 가는 거예요. 갑자기 그 분이 그리워지는 거예요.



바로 그분이 예레미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의가 있을 경우에만 세상에 대해서, 모든 시사평론, 문학평론, 신학평론, 철학평론 모든 세상에 대해서 평론할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의가 있을 때 저것은 저래서 아니고 이것은 이래서 아니고 저런 예술도 아니고 저런 철학도 아님을 알지요. 그 인간들의 세상 것은 다 하나님의 복 받기 위해서 자기가 무엇이 가능하냐를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진짜 성도는 이미 인간으로서는 예상도 못하고 불가능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가지고 출발하는 인간들이 우상숭배자인 것을 다 아는 겁니다. 그래서 영화평론이고 문학평론이고 예리하게 평론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것은 인간이 자기 선함을 통해서 복을 추구하는 이단적인 것 밖에 안 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예상한 것이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3장 25절에 의해서 하나님의 의가 주어지고 또 주어지고. 다시 이야기합니다만 이제는 죄용서 정도가 아닙니다. 죄용서 정도가 아니라 계속 하나님의 의가 주어지니까, 매일같이 하나님의 의가 주어지니까. 불났을 때 소화기로 불을 끄는데 불은 이미 꺼졌어도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식으로 마구 쏟아 붓지요.



그런 식으로 우리는 이미 불은 꺼졌는데, 죄용서는 받았는데 거기에 엎친 데 덮치는 식으로 계속 하나님의 의가 계속 쏟아지니까 자랑할 것이 주님의 의밖에 없어요. 처음에는 좋지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다가 나중에는 입이 떡 벌어져요. 하나님의 의가 자꾸 주어지는 거예요. 이것 자체도, 이런 엄청난 선물조차도 하나님의 의인 것을, ‘나도 의롭고 너도 이제 의롭다’ 하는 그 하나님의 의를 받았기에 그 의를 감사하고 자랑하는 성도가 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거짓선지자들은 사람들의 한풀이를 해준다고,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준다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무당 짓 하고 있지만 참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그 기업, 사람은 만들 수 없는 그 상속, 그 약속의 땅에서 필요한 것, 하나님의 의를 주고 또 주고, 주고 또 주는 그것을 증거 하는 일을 했습니다. 저희들도 세상에 나갈 때에 나의 실력 자랑하지 말고 돈 자랑하지 말고 주께 엄청나게 받고 있는 하나님의 의만, 예수님의 의만 증거 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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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온정(IP:123.♡.206.192) 11-01-04 14:13 
감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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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4강-렘 2장5-9(무익한 것)-jer090401-(이근호목사) (1) 오용익 11-01-04 2723
2909   004강-삼하3장1-5(사울의집과다윗의집)-2sa091108-(이… 이한례 10-12-15 2702
3551   004강-욜2장1-3(에덴동산과 종말)110904-이 근호 목사 이한례 11-09-06 2246
3032   004강-호2장8-13(본래의주인으로)-hos110116-(이 근호… 이한례 11-01-16 2965
3072   005강-계1장10-16(주의 날)-rev060319 박온정 11-02-04 2501
2918   005강-삼하4장4-12(사울집안의몰락)-2sa091115-(이 근… 이한례 10-12-17 2605
3560   005강-욜2장4-11(맹렬한 심판 기세)110911-이 근호 목… 이한례 11-09-12 2599
3047   005강-호2장14-20(주인의 언약으로)-hos110123-(이 근… (1) 이한례 11-01-23 3146
3085   006강-계1장16-20(주님 앞에서의 교회)-rev060326 박온정 11-02-07 2487
2922   006강-삼하5장1-3(이스라엘의왕)-2sa091122-(이 근호 … 이한례 10-12-18 2566
3574   006강-욜2장12-14(마음을 찢으라)110918-이 근호 목사 이한례 11-09-20 2612
3061   006강-호3장1-5(주인님의 깊은 뜻)-hos110130-(이 근… 이한례 11-01-31 2509
3125   007-계시록2장1(주의 사자)-rev060402 (7) 박온정 11-02-15 3228
2937   007강-삼하5장6-10(다윗성)-2sa091129-(이 근호 목사) (1) 이한례 10-12-24 2691
3584   007강-욜2장18-24(새 포도주와 기름)110925-이 근호 … 이한례 11-09-26 2318
3083   007강-호4장1-5(멸망당하는 어미)-hos110206-(이 근호… (1) 이한례 11-02-06 2797
3127   008강-계2장1-5(에베소 교회)-rev060409 박온정 11-02-16 2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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