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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2 20:52:57 조회 : 2552         
003강-호2장1-5(음행)-hos110109-(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119.148.121.61)
 003강-호2장1-5(음행)-hos110109-(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호세아2장1절에서 5절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1258페이지입니다.


호세아2:1-5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저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저의 남편이 아니라 저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저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저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것이며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설명하면서 음행이란, 간음이란 그런 용어를 굳이 써가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설명한다는 것이 굉장히 여러분한테는 낯설게 느껴질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 같으면, ‘너 거기 있나? 나 하늘에 있다.’ 그걸로 끝나잖아요? ‘보이나? 하늘 높은 곳에? ’하늘이 보입니다. ‘그래? 보이지? 하늘나라에 내가 살고 있다.’ ‘아이고 그렇습니까? 신선님 이예요. ’그래 나 신선이다. ‘나를 섬겨라.’ ‘예’ 이런 식으로 대화가 충분하지 않습니까? 더 이상 뭐가 필요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음행이라는 불현 적인 거, 우리 인간을 공격하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 하는데, 섬기고 싶어 하는 우리 인간을 되레 공격하는 하나님으로 성경은 기록돼 있습니다. 참,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하고 영 다르죠? 쉽게, 쉽게 하면 될 텐데,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다.’이러면 끝날 문제를 ‘내가 보기에 너는 음행했느니라. 왜 이런 시비 거는 투의 대화를 가지고 우리에게 접근하시느냐 말이죠. 곱게 계시면, 잘 섬김 받을 텐데, 왜 밉상 받는 식으로 오느냐 말이죠.


집안에 어른이 계시면 주는 밥대로 주는 용돈대로 곱게 계시면, 자식들한테 이쁨 받고 귀염 받습니다. 괜히 나서서 그냥 촌에 계시지, 돌아다닌다 하면서 서울 나들이 한다고 서울에 있는 아들 딸네 집에 가면 가는 데마다 민폐, 한번 터뜨렸다하면 부부싸움,ㅎ 그냥 계시지 계시면 촌에 용돈 보내드리지 않습니까? 한 달에 20만원씩 보내주는데, 잘못 넣어서 10만원 넣는다면서 10원 넣을 수도 있지만...ㅎ잘못 눌러가지고,


뭘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느냐? 그것은 오늘 핵심은 이겁니다. 니가 신을 찾는다고 해서 내 아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 아들이 아닌 상태에서 아버지를 찾는지, 아니면 진짜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찾는지 내가 단단히 구분을 하겠다는 겁니다. 끝에는 지옥과 천국이 있으니까. 지옥 갈 사람도 하나님은 알아요. 알지만 자기가 만들어 낸 그런 하나님을 섬기다가 다시 지옥 가고, 진짜 천국 가는 사람은 현재 천국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그 분께서 제대로 하나님이 자기 뜻을 알려 준 사람은 천국 가는 겁니다. 우리가 짐작하는 하나님은 우리를 지옥가게 만들고, 우리가 진작하는 하나님을 치고 들어와서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야, 그건 잘못된 하나님이야. 이게 진짜 하나님이야.’ 라고 치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소식을 접한 사람은 천국 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진짜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상당히 듣기 거북한 이야기를 하나님께서 하시고 있죠. 그게 뭐냐 하면, ‘너희들은 음행 했다.’는 겁니다. 그럼 음행 했다는  그 뜻은 무엇인가? 우리가 지난 시간에 했는데 잠간 다시 한 번 복습하게 되면, 세상에서 말하는 간통, 간음, 음행이라 하는 것은 법적 차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아내를 놔두고 내 남편을 놔두고 다른 남자와 다른 아내와 사귈 때는 그걸 음행과 간음, 간통이라 보죠. 그러면서 세상 법정에서도 그것은 좋지 않은 행실로 보죠.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음행이라 하는 것은 법적 차원에서 내 남자 내 여자가 아니라, ‘니가 내하고 한 몸 됨을 니가 평소에 생각들을  해 본적이 있느냐고  묻는 차원에서 음행이냐, 아니냐.’ 하는 겁니다. 사랑의 차원입니다. 사랑이라 하는 것은 어느 정도를 사랑이라 하느냐 하면,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대 있음에 나를 잊어버리는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랑이 없으면 죽기 살기로 자기만 생각하는 것인데, 만약에 자기만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뭔가 뿅하고  ‘어’ 하고 놀랠만한 상대방이 등장하게 되면, 그때부터 그때까지는 나만 생각하면 되는데, 내가 배부르냐. 내가 배고프냐. 이거만 생각하다가 갑자기 24시간 그대, 그 사람만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를 잊어버리는 겁니다. 자기를 생각할 필요조차 없게 되었어요. ‘내가 내 생각하는 것도 싫어, 이제 그 사람 생각하는 것이 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아.‘ 이 정도 상태에 들어갔을 때, 그걸 사랑이라 하죠. 그래서 사랑은 반드시 병들었던 것과 동행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가 병들을 정도가 돼야 사랑이죠. 아가 서에 보면 나오죠. 나는 사랑에 병들었노라. 병이라 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 말이죠. 미쳤다 이말 아닙니까? 어디에 미쳤는가? ’나는 그대에게 미쳐버렸다.‘ 뭐 스토커 수준쯤 되겠죠.


그렇게 될 때, 그 순간 어떤 사람이 푹 쑤시면, ‘어이 니는 요즘 어떤 재미로 사나?’ 하면, ‘내가 애써서 노동해서 이 재미로 살아.’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니 무슨 재미로 살아?’ 하면 ‘나는 그이 때문에 살아. 그이가 누군데? ’ 안 가르쳐 줘.‘ ㅎ 이리 되는 거예요.


저는 배 용준, 이 병헌 이라는 이런 사람을 한국 사람이 볼 때는 같은 식구라는 점에서 별로 대단하다 생각이 안 들죠. 젊을 때 잠간 반짝하지만 일본 아줌마(아가씨가 아니고)들한테는 욘 사마 배 용준이라 하는 것은 옛날 자기 젊을 때, 꿈에 그리던 결혼하고 싶은 이상적인 남성상을 그대로 현실로 구체화로 보여준 사람이 배 용준 욘 사마 상입니다.ㅎ 그래서 여자 홀로 살면 재미가 안 나거든요. 뭔가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이, 꿈속에서 그리던 사람이 고 조건 다 갖춘 사람이 실제로 있다는 그것으로 인하여 힘을 얻고 자살을 벗어나서 그거 바라보는 재미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겁니다. 만약에 그 사람을 찾아가서 ‘결혼합시다.’ 이래 돼 버리면, 그 사람은 신비감이 없어져요. 왜냐하면 그 사람을 가져버리면, 그 사람이 나에게 와서 내게 속해 버리면, 또 다시 허무하고 허전한 거예요. 그런데 멀리 욘 사마 배 용준이가 멀리 떨어지게 되면, 그 사람 때문에 내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에게 예속이 되고, 복속이 된다는 그 안도감, 그 즐거움이 남아 있는 겁니다. 여자한테는 배 용준이지만 남자한테는 누구냐 하면, 이 승엽 입니다. 아비용, 하고 돌아다니면 어린애나 젊으나 이 승엽이가 그야말로 꿈의 우상같이 30~40대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긴데, 요새 한창 뜨는 영화가 ‘라스트갓파더‘라고 심 형래 감독이 주연하고 감독했던 코미디 영화가 있답니다. 그 영화를 어떤 사람이 보러 갔는데, 재미 하나도 없는 거예요. 재미가 하나도 없는데 관객 수가 많다 말이죠. 왜냐, 그 많은 관객이 초등학교 애 들이예요. 그 심 형래가 행동할 때마다 온 영화관이 깔깔 넘어가요. 재밌다고 웃다가 바빠서... 애들 영화보고 나오면서, ’영화 재밌다, 그지? 그래 웃기고 재밌다 그치? 고등학생들이나 어른들은 시큰둥해가지고 ‘돈만 날렸다. 이건 영화도 아니고, 뭐 이리 만들었나,’ 하는데, 애들은 좋아 재밌어 죽는 거예요.


이걸 우리가 너무 어리다고 지나버린 거예요. 다시 말해서 뭔가 그리워하며 살아야 되는데 우리는 어느 시점부터 홀로 사는 버릇이 돼가지고 사랑을 잃어버렸어요. 사랑을 잃어버리니까 혼자 살다보니까 그다음부터는 남는 게 하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완전하고 실수가 없고 반듯하게 사느냐? 이거만 남아요. 법적인 조치만 자꾸 덧대기 해요. ‘하나님,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한 겁니다. 하나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겁니다.’ 사랑이라는 게 없어졌어요. 사랑이 없어졌으니까, 뭐냐 하면, 하나님은 법적인 관계, 아주 차가운 관계에 그냥 어설프게 아슬아슬하게 달랑달랑 이어져 있는 관계뿐이란 말이죠. 이런 사람한테는 배 용준이나 애들한테 심 형래처럼 뭔가 푹~ 빠져가지고 있는 사랑의 관계가 언제부턴가 없어져 버렸어요.


그렇다면 이렇습니다. 부부가 같이 살더라도 언젠가 상대방 때문에 내가 없어져도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아니하면 이미 그 부부는 바람 안 피워도 간음이고 음행이라 보는 겁니다. 한 몸이란 의식이 없어졌어요. 처음에 결혼할 때는 죽고 못 살지, 단칸방에 살아도, 진짜 비키니 옷장 하나만 있어도, ‘여보 우리 너무 잘 있다 그쟈? 일주일에 한번 만나다가 매일 만나니까 너무 횡재고, 이거요. 일 개월 갑니다. 하하하. ’옆집은 뭐하는데 당신은 뭐하느냐, 에이구, 집구석에, 에이구, 꼴 보기 싫은데, ‘니는 뭐 해 줬노, 하고 시집올 때 뭐 해줬느냐 하고 난리죠. 그래도 못 헤어지는 건 법적인 관계 때문에, 그러니 그건 이미 한 몸이란 것이 이미 날아가 버렸어요. 한 몸이라는 것이 언제 드러나느냐 하면, 상대방 아플 때, ’저거 안 죽나, 베개 가지고 잘 때 입을 막을까, 으구, 아파가지고 집안 다 거덜 내고, 결혼할 때 DNA 조사해 보는 건데. 병적 내력이 있나 조사해봐야 하는 건데..ㅎ 이미 한 몸이 아닙니다.


결국은 이렇습니다. 진짜 하나님은 하나님 쪽에서 택하여서, 그 택함이 법적으로가 아니고 사랑으로 선택했는데, 우리는 기껏 교회서 배운 게 뭐냐 하면, 법적으로 모이고 법적으로 예배 참석하고 뭐하고 법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만 만족시키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줄 알고, 이런 식으로 우리는 습관화 되고 말았어요.


자,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오늘 본문 2장 1절에 보면, 처음에는 하나님이 내 백성 아니다. 긍휼을 입지 못한다 하다가 오늘 2장 1절에 보면, “이제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이게 뭐냐 하면 ‘내 백성이다. 긍휼을 입었다.’ 이래 되거든요.


그럼 여기서 사랑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긍휼을 입혀주는 거예요. 긍휼을 뭔 뜻이냐 하면, ‘인간도 아닌 걸 내가 사랑해준다.‘라는 뜻입니다. ’니는 내게 긍휼 받을 쨉도 못해. 그런데 내가 불쌍히 여겨서 건져주는 거야.‘ 이런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이십니다. 법적으로 요구하는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이 법을 들이대시는데, 이유는 있어요. 법을 들이대시므로 말미암아 니가 얼마나 평소에 사랑으로 나한테 임하지 않고 법적으로 까불락 댔는가를 들추어 내기 위해서, 가짜 하나님을 섬겨왔던 것을 노출시키기 위해서 법적으로 들이댄 것이고, 실은 그 법 뒤에는 뭐냐 하면, ’봐라 니 힘으로 못 지키지? 하지만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겨주면 되는 거야.‘ 요게 진짜 하나님 이예요. 가짜 하나님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침투한 진짜하나님이 들어오시는 거예요. 근데 들어오실 때, 그때부터 진짜 하나님의 긍휼이 시작되는데, 그럼 긍휼이라는 것이 말만 그렇지 관념적이잖아요.


실제적으로 긍휼이 어떻게 주어지는가? 이것은 바로 ‘피’로 됩니다. ‘예수님의 피‘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찢어진 살과 피,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죽으심, 십자가 죽으심으로 이야기 하는 겁니다.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그들은 구원 받을만해서 구원 받았다고 우쭐됐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 들통 났느냐 하면, 모세가 시내산 위에 올라갔어요. 시내 산에서 일주일이면 올 줄 알았는데, 시내 산 코스가 30미터 됩니까? 그 코스라야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 넉넉잡고 일주일이면 되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오지 않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40일 동안 자기 나름대로 평소에 생각했던 구원의 하나님을 조작해 내기 시작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축제를 벌인 거예요.


모세가 진짜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오니까 그 밑에서 인간들이 자기 숨길 수 없는 본성에 의해서 만들어 낸 하나님이라는 이미지 형상이 엉터리거든요. 세상에 모세가 직접 본 하나님하고 하나님을 안 본 상태에서 만들어 낸 거하고 완전히 엉터리 중에 그런 엉터리가 없었다 말이죠. 그래서 모세가 제사장보고 다 죽여 버려라. 축제에 적극 가담한 사람을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 제사장이 죽인 그 사람들 수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제사장이 나와요. 제사장은 뭘 다루느냐 바로 ‘피’를 다루는 겁니다. 하나님을 법적으로 섬길 수 없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제사법을 추가시켜서 법적으로 지킬 수 없지만 이 제사의 의미를 아는 사람, 피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제공되는 장치를 그 안에 숨겨놓은 겁니다.


이스라엘 속에!!! 그렇다면 우리교회 속에 무엇을 뭘 심어놔야 합니까? 어떤 교회든 진짜 교회는 ‘십자가의 피’를 심어 놓으면, 우리는 어떤 느낌이냐 하면, ‘아! 우리가 바로 그토록 하나님을 상대하려고 설쳐대는 날 때부터 아는 게 그거밖에 모르는 이 허접스러운 신자가 아닌 신자구나. 그런데 그 십자가에서 나오는 피의 효력이 용서가 불쌍히 여기심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우리교회 교인들은 무슨 브랜드 ’불쌍히 여김을 받은 자‘ (9자, 너무 길죠?), 그게 뭐냐 하면 거룩한 자, 두자로 줄이면, 성도!! 그래서 교회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게 말로만 긍휼이 아니에요. ’사랑한다. 사랑한다.‘ 맨 날 말로만 사랑한다 해서 입술로 립 서비스만 해주고 때우는 게 아니에요. 목걸이도 안 사주고 뭐도 안 해주고...사랑한다고 말로 다 때우고....ㅎ


에베소서 5장에 보면, ‘ 남편 된 자는 아내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라’고 돼 있어요.ㅎ 다행스럽습니다. 법이라는 게 다행스럽습니다. 그 법을 지켜서 구원 받은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남편된 자들아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처럼 아내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라’ 아내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게 아니고 바로 그 법을 지킬 수 있느냐,의 여부를 묻는 겁니다. 니가 니 목숨을 내줄 정도로 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느냐 묻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 외에는 아무도 궁극적으로 결국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지, 사랑하는 상대가 자기 사랑을 보답 못해주면, 그게 미움으로 돌발하죠. ‘이제 못 살겠다.’ 그러죠.


그래서 요즘은 사람보다 개 키우고 고양이 키우는 사람이 많잖아요.ㅎ 그것들은 배신은 안하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사랑은 배신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게 사랑입니다. 배신 안하는 조건하에 사랑하겠다는 건 애초부터 사랑이 아니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애초부터 배신할 줄 알고, 사랑을 해주는 겁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능력에 맡기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한테까지 침투된 하나님의 자기의 피가 그 사람한테 같이 있기 때문에, 그 피를 보고 심판이 우리에게 넘어가는 그런 약속이 우리에게 찾아온 겁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게 뭘까요?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결국은 내 안에 내가 만들어 내지 못한 이질 적인 것,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 주신 것이 내 안에 차고 들어왔다는 사실, 그것으로 인하여 나는 졸지에 구원 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이 되어 버렸고, 졸지에 구원 받을 수 없는 자격으로 구원받는, 구원이 안 되도 괜찮은데, 그냥 구원이 안 되도 괜찮다는 그 생각을 만들어 내면서 우리를 기어이 구원하시는 하나님! 이게 바로 사랑이죠. 사랑!!


한 가지 예를 들면 아내가 진짜 남편을 사랑하는데, 그리고 남편이 출근해 버리고 집에 혼자 남았습니다. 청소를 하는데 구석, 구석에 남편이 흘린 피가 있다 합시다. 그럴 때 아내가 ‘여보, 나도 청소 깨끗이 하지? ’ 이렇게 지 자랑, 법적으로 자기 행함을 자랑하지 않는다 말이죠. ‘남편이 훌륭한데 아내도 훌륭하더라.’ 이런 것은 아내가 그런 생각을 먹으면 안 돼요. ‘우리 남편은 훌륭한데 나는 그 앞에 쪼다야.‘ 이래야 훌륭한 아내예요. 남편만을 자랑하기 때문에. 에베소서 5장에 보면, “아내 된 자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교회가 주께 복종하듯 하라” 이때도 마찬가지예요. 법이라는 게 다행스러운데, 이거 할 수 있는 아내가 없어요. 왜냐 하면, 반드시 복종하면 복종 값을 내라고 합니다. 그런 복종은 복종이 아니올시다.


사랑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우리 보통 사람이 통용되는 허접스러운 사랑이 아닙니다. 기껏 줄 거주고 받을 거 받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나타나지 않아도 될 분이 나타나서 나를 데려가는 식의 사랑, 그런데 그 분이 그냥 힘이 좋아서 데려가는 것이 아니고, 희생의 사랑 때문에 사랑을 우리한테 심으면서 그냥 가는 거예요. 정말 여러분들이 구원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수시로 뭐냐 하면 ‘나는 너에게 법이나 힘을 요구한 것이 아니고, 내가 준 긍휼하심, 불쌍히 여겨주심만 받는다.’ 돈이나 받고 희생이나 봉사를 받으려는 하나님은 교회가 만들어 낸 가짜 하나님이고요. 진짜 하나님은 목사나 교회가 만들어 낸 하나님이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은 거저 주시는 예수님의 피에 대해서 그 앞에서 우리가 할 말을 잊는 그런 자세로 따라 오는 겁니다. 모든 일에 대해서 주께서 일체 보지 아니하시고 ‘니가 잘했나, 못했나, 그걸 따지지 않는 그저 잔소리만 하는, 문제는 잔소리를 하는데 사랑하니까 잔소리를 한다고 하는데, 영 미덥지가 못해요.


부모가 자식을 때리면서 ‘사랑하니까 때리지.’ 이것도 부모 되면 안다고 하는데, 부모 돼 봐야 압니다. 그게 부모가 자식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ㅎ 아이가 애 낳아 봐야 부모가 얼마나 자기 사랑했는지 안다고 하는데 저는 안 믿습니다. 아이 낳으면 자기 애 생각하지 부모보다 애 챙기지 부모 생각 안 합니다. 인간의 통용되는 사랑은 그대로 인정해 줘야 해요. 인정을 해 줘야 비로소 주님께서 잔소리해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피가 들어와서 구원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은 그 제사장 중심 이예요. 피를 다루는 사람이 중심이 돼 가지고 그 제사장이 죽으면 이스라엘도 같이 멸망당하고 계속 제사장이 살면, 이스라엘도 사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장 마지막에서 2장 초반에 보면, 1장 11절에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 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지금은 너희들이 이렇게 개판이라도 언젠가는 너희 중에 한 분이 등장해서 그 분을 다시 불쌍히 여길 날이 올 것이라는 겁니다. 불쌍히 여길 날이 올 것인데, 6장에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뭔가 십자가에서 죽고 난 뒤에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을 예표하신 거예요. 물론 여기서 이런 일을 하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나서 사흘 만에 살아났는데, 바로 이러한 십자가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성취한다는 입장에서 결국 십자가 주신 것은 ‘너희가 살 수 없는 데 나로 인하여 살았다‘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십자가 사건을 우리에게 일으키신 겁니다. ’피‘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피, 그것만이 진짜 음행이 아니고 사랑의 차원에서 간음이 아닌 그 모습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잘못 생각했거든 이 시간 다 수정해 주시고,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법이 아니라 주님 주신 십자가 피고, 용서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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