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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6 20:51:09 조회 : 2972         
004강-호2장8-13(본래의주인으로)-hos110116-(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119.148.121.61)
 004강-호2장8-13(본래의주인으로)-hos110116-(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호세아2장8절에서 13절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1258페이지입니다.


호세아2:8-13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연애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저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저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 저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주고 난 뒤에 도로 뺏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 호세아에 나오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면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도로 빼앗는 하나님이십니다. 빼앗는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데, 빼앗는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당연히 거부하죠. 그래서 구약 선지자의 특징은 뭐냐 하면, 예언만 하면 죽이고 그리고 공격하고, 추방시키고 길을 막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그걸 자기가 직업으로 삼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에게 후원 고객이 있어야 되는데, 호응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외치다 보니까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하고 이 직업을 가지고 자기 생계를 꾸려나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 말씀대로 전하면 하나님께 감흥이 돼서 주위가 도와주면 될 텐데, 하나님께서는 말씀만 줘놓고 전혀 생계에 도움을 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는 그냥 외롭게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죠. 그렇게 될 때 선지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하고 자기 신세가 한심스러운데, 주님의 뜻은 이겁니다. 장차 오실 예수님이 너보다 훨씬 더 심할 것이다. 장차 오실 메시야가 너라는 같은 맥락으로 오시되 너가 당하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선지자 같은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이 살아오면서 오는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의 구성요소를 바꾸어야 되겠죠. 오직 내가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기뻐해야 되고 행복해야 되지, 복음 전한다는 이걸 미끼로 삼아서 은근히 내가 노리는 세상 것들을 추구하면 안 되겠죠. 그러면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나오는 호세아라는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사람은 여자 하나를 집안에 잘 들이면 집안이 산다는데, 이 여자는 어떤 여자냐 하면, 음란한 여자입니다. 아주 유명한 여자고 아무도 그 여자를 고칠 수가 없어요. 남편 하나 잘 만나서 남편의 삶의 태도를 보고 감동 감화 받아서 개가천선 해서 착한 며느리 되었다. 이런 시나리오는 아예 생각조차도 맙시다. 남편은 훌륭했는데, 그 여자는 역시 안 되겠네, 그게 하나님께서 전략적으로 그렇게 붙여준 겁니다. 남편이 훌륭하다고 해서 아내가 같이 훌륭하다는 법은 없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죠. 개 같은 남자 훌륭한 여자 만나서 사람 되었다. 그거 거짓말입니다. 소설입니다. 인간 안 됩니다. 사람의 본성은 바뀌지 않아요. 사람의 본성이 바뀌지 않아야 바뀌지도 않는 인간을 내가 구원했다는 주님만의 공로가 높아지는 겁니다. 교회 와서 사람 된다는 그런 기대는 아예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부정적으로, 좋게, 좋게 이야기해도 될 성싶은 그러한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같이 호응해 들어가지 않고, 왜 그들이 격분하고 그들이 거부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모습, 그들이 호응하는 모습이 오히려 괜찮은데 왜 거부하느냐 이 말이죠.


시내 산이라는 산이 있어요. 그 시내 산의 특징이 뭐냐 하면, 밑과 위가 다르다는 겁니다. 밑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한창 축제가 벌어지고 있어요. 그런데 위에는 모세가 홀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세계에 홀로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40일 지난 후에 밑에 있는 상황과 위의 상황이 맞닥뜨렸을 때, 이 인간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터무니없는 여호와의 본뜻과 아무 상관도 없는 터무니없는 종교 Party(파티) 벌이고 있으니까 모세가 가지고 온 언약과 비교를 해보니까, 이것은 인간들이 자기 지혜, 자기 즐거움에 도취되어서 이름만 여호와지 사실은 그 안에 각자, 각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에 난장판을 만든 거예요. 그러한 것들을 끄집어내놓고, 자신의 자랑거리와 과시할 거리를 교회까지 들고 와가지고 ‘이렇게 복 받았다. 이렇게 복 받았다.’ 그런 것들을 쭉 깔아놓고, ‘센 놈 나와, 누구야, 나보다 센 놈 나와.’ 이런 식으로 믿음의 자랑과 복의 자랑, 기도 자랑, 성경 지식의 자랑을 하기 위해 교회 다니는 거예요.


그러면 왜 인간들이 그렇게 모세 입장에서 부정적인가? 그리고 모세 입장에서 왜 이스라엘이 부정적인가?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을 때, 항상 자기에게 문제 되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의논하기 마련 이예요. 자가기 해결이 안 되는 것, 자기가 난처한 일, 그런 문제가 터질 때만 그것 가지고 그걸 문제 삼아서, ‘자식이 시름시름 이유도 없이 아픕니다. 고부간의 갈등입니다. 이사 날짜는 언제 잡아야 되겠습니까? 이번에 공기업 시험에 5번 떨어졌는데 이번이 6번입니다. 부끄러워서 교회 못 나오는데 좀 해결 좀 해 달라.’ 항상 자기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는데,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이 인형 같아요. 인형 같아서 적어도 요런 하나님이 돼야 나한테 환영받는 하나님입니다.‘ 라고 고 안에 알맹이를 누가 채우느냐 하면, 인형의 속을 솜이 채우듯이 인간의 자기 요망과 희망사항을 가지고 껍데기 속에다 거기다 다 집어넣는 거예요. 그게 바로 시내 산 밑에서 했던 짓이고 인간들이 호세야 선지자 시대까지 왔고 오늘날 교회까지 계속 이어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다보면 그 사람들이 뭘 모르느냐 하면, 나를 문제 삼는 하나님을 몰라요. ‘내가 보기에 니는 인간이 아니거든.’ 라고 내 자신 전체가‘너는 진짜 말도 안 되는 존재야.’라고 나를 문제시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워낙 교회 와서 자기 존재만 신경 쓰다 보니까 이렇게 자기 이익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나라는 인간 자체가 하늘나라에 큰 골칫거리라는 것을 알려 주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겁니다.


예를 들면 한국교회가 썩었다. 그 썩었다고 이야기하는 그 사람도 한국교회가 썩었다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만약에 자기 교회가 사랑이 넘치고 서로 도와주고 그러면 ‘문제  없다.’ 영구 없는 게 아니고,  문제없이 돼 가지고 괜찮은 존재인 줄 알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시내 산 밑에서 시내 산꼭대기가 먼 것처럼, 인간은 신을 저 붙박이별처럼 봐 가지고 그저 멀리 보는 거예요. ‘하나님, 거기 계시면 우리가 갖다 바치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께서 우리 코앞에 너무 가까이 오시면, 우리는 공포에 빠집니다.


귀찮은 시어머니나 시아버지가가 촌에 혼자 아무 소리 없이 농사 잘 짓고 있으면 자식들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ㅎ 서울에 있는 자식들, 울산에 부산에 대도시에 간 자식들, 부모님이 멀리 촌에 계시면 며느리들이 기분 째집니다.ㅎ 가끔 전화해가지고, ‘어머님 잘 계시지요?’ 안부 전화 하죠. 그러면 쌀 좀 보내달라고, 배추 값 한참 올라가는데, 채소 보내 달라 말이죠. ‘잘 계시죠? 농사는 잘 되십니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예고 없이 ‘딩동’ 하고 영어로 된 아파트를 어떻게 찾았는지, 헤매고 오셔서 ‘딩동’  해서 문을 여니 얼굴이 벌겋게 돼서 얼마나 길을 얼마나 잃어버려 돌아다니셨는지 아파트 전체를 다 돌아다니 신듯, 손에 요즘 먹지도 않는 고구마를 들고 오셔서 ‘내 왔다.’ 그것도 혼자도 아니고 시아버지까지 쌍으로 오시면 기겁을 해버립니다. 어머니, 제 하루 스케줄이 있는데, 지금 오시면, 영어 학원에 못 간다고요. 수영장에도 못 가고, 전화 하시고 오시지...ㅎ


갑자기 들이닥치면 우리는 불안합니다. 우리는 멀~~리 있는 신, 추상적인 신은 좋아해요. 그러나 우리 앞에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사람이 되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우리는 외면해 버립니다. 우리 예상보다 우리 기대치보다 너무 초라하거든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어요. 왜 오셨습니까? 빼앗기 위해서 온 거예요. 넌 누구 때문에 존재하며 내가 지금까지 준 것이 누구 것인데, 너는 그 등기를 다 너 이름으로 다 등기를 해 놨다. 그것 가지고 우리 몸에 걸치는 겁니다. 우리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을 확 벗겨 버리기 위해서 오신 겁니다.


여기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그런데 뺏는데 그냥 뺏는 게 아니고 근거가 있습니다. 근거가 뭐냐 하면, 자,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내 것을 도로 찾는다 할 때에, ‘왜 도로 빼앗습니까?’ 하면 이런 근거로 해서 줬기 때문에 뺏는다는 겁니다. 이게 어려운 말인데 무슨 말이냐 하면, 주님이 주실 때, 물건 주듯이 그냥 준 게 아니고, 무엇에 근거해서 주었거든요. 그러면 돌려받을 때는 무엇에 근거해서 돌려받게 돼 있어요. 그 무엇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흠 없는 양의 피를 제물로 바쳐서 안 줘도 되는 저주 받은 인간들에게 사랑의 이름으로 줬기 때문에 뺏을 때에도 너가 갖고 있다는 권한은, 내가 너를 위해서 이만큼 피 흘렸다는 그 희생을 못하기 때문에 내 것이라고 벌벌 떨고 쥐고 있는 거예요.


뭣 때문에 그것이 내 것으로 된 줄도 모르고 그냥 오니까 무조건 일단 온 것은 더 이상 나는 누구한테도 추호도 줄 생각이 없습니다. 하고 붙들고 있다 말이죠. 예수님의 희생으로 줬는데, 복음 때문에 예수님의 피 때문에 줬는데, 이제는 복음도 생각 안하고 십자가도 다 잊어버린 상태에서도 여전히 ’이왕 줬는데 왜 뺏어‘하고 쥐고 있다 말이죠. 주신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진짜 알맹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라는 진짜 알맹이는 빠져 있으니까 바알이 되고 가짜 신이 되는 겁니다. 여호와의 절기로서 산 밑에선 절기라 하지만 안에 알맹이는 쏙 빠진 거예요. 알맹이는 빠지고 돈 내서 교회 세우니까, ’이 교회는 건들지 마라. 이 교회가 크는 것은 저와 여러분 자존심이 크는 겁니다. 라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세뇌를 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어디 가서 사람대우를 받겠습니까? 교회 와서 기도해서 사람대우 받고, 그래야 하나님께 대우받습니다.‘라는 내가 되고 싶은 요망을 자꾸 세뇌를 줘 가지고 ’나는 나를 위해서 산다.‘는 것을 확인케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께서는 그 걸치고 있는 것을 다 뺏어 버리죠. 그러면 남는 것은 벌거벗은 거예요. 처음으로 처음사랑, 처음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처음에 기준이 뭐냐, 그 기준을 성경에서는 뭐냐 하면, 언약궤라 해요. 처음에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되게 할 때, 이스라엘 나라 먼저 있고 이스라엘 살리기 위해서 추가적으로 뭐가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처음에 이스라엘은 아예 있지도 않은 나라였습니다. 그럼 있지도 않은 나라가 이스라엘이 된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 멘트 때문에 그 언약을 구체화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은 빈말이 아니고 농담도 아니고, 취중 술 먹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현실화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은 백성들이 중심이 아니고 그 이스라엘 나라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텐트가 있어요. 그 장막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 사건들이 이스라엘을 죽이고 살리고 결정하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언약궤’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언약궤라 하는 것은 희한한 것이라서 사무엘상 6장19절에 보면,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들여다 본 고로 그들을 치사 70명이 죽었다.‘ 했습니다. 언약궤를 들여다 본 사람이 70명이었는데, 그 사람들이 보고 난 뒤에 그 사람들은 저주 받아 죽었습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언약궤 안에는 뭐가 담겨 있다 말 이예요? 거기에는 바깥으로 새면 안 되는 요소가 담겨 있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나님의 거룩한 저주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해요. 시내 산 위에서 하나님은 거룩합니다. 어느 정도로 하나님은 거룩하냐 하면, 모세는 경험했어요. 모세는 40일 동안 물도 안마시고 밥도 안 먹고 심지어 잠도 자지 않더라도 내려 올 때는 화색이 환해 가지고 얼굴에서 빛이 쫙쫙 났어요. 한방 화장품을 얼마나 쳐 발라야 빛이 나겠습니까? 이건 뭐 색조 화장보다 더 윤기가 나서 환~~~하게 돼서 내려온다 말이죠. 거룩 이예요.  거룩!! 사람이 아무리 이 땅에서 피부 관리를 해도(고현정이 피부는 히터도 안 튼다는데..ㅎ) 40일 동안 그런 피부 관리 없습니다. 우리가 죽고 난 뒤에 그 몸을 입을 거예요. 장막을 벗어 버리면. 그 몸은 모세가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그 위에는 언약의 세계기 때문에 언약이 완성된 세계거든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서 이스라엘을 사랑한 것은 모세가 40일 동안 피부 관리 안 해도 윤기 나는 그 영광의 혜택을, 거룩의 혜택을 그대로  땅 밑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주기 위해서 언약을 들고 온 겁니다.


사람이 살고 안 살고는 언약을 받아들이면 살고, 언약을 안 받아들이면 죽어요. 제가 서울 의존교회에서 처음 강의할 때 이런 이야기 했습니다. 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먹고 마시고 잠자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교회 가고 기도하고..... 이런 것들을 규합해서 우리는 산다. 살아 있다. 잘 살고 있다. 이렇게 보거든요. 그런데 왜 성경은 예수가 없으면 죽었다고 하느냐 말이죠. 그 차이가 뭐냐 말이죠. 그저 밥 먹고 숨 쉬고 건강하고 조깅하고 운동 잘하고 TV 보고 잠 잘 자고, 우리는 사업하고 장사하고 직장 다니고, 얼마든지 살았다고 그러고 싶은데, 성경에는 예수가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 하거든요. ‘예수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왜 자꾸 우리가 사는 모습을 집어넣어서 그것 가지고 그걸 기준 삼아서 살았다 죽었다 이야기 하느냐 이 말입니다.


어떤 인터넷 보니까 어떤 목사가 후배목사를 놀리죠. 목회를 어떻게 했기에 연봉이 1억도 안 되느냐 놀리는 거예요. 어떻게 예의도 없느냐 놀리는 모양인데,ㅎ그 사람은 살았다 죽었다. 를 몰라요. 거지 나사로는 거지는 했지만 산 사람이고, 그게 전반전이거든요. 축구는 전반전하고 후반전이 있다고 했죠? 나중에 후반전에 뛰어 보니까 전반전에 1등하면 뭐합니까? 후반전에 뛰어 보니까 부자하고 거지하고 역전 돼 버렸습니다. 그걸 성경에서 왜 이야기 합니까? 교회가 위험한 곳이라는 뜻 이예요. 교회가 잘못 된 것을 제시하는 곳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은 이런 겁니다. 저주가 담겨 있어요. 저주가 그대로 제거하는 게 아니고 그대로 놔두고, 그 저주를 거룩으로 바꾸는 것은 그 뚜껑에 발린 피, 언약의 피(내 피 니 피  인간 더러운 피 집어넣는 게 아니고, 베드로도 목숨 바쳐도 천국 못가요) 거룩한 분의 피가 발리면, 이 저주도 이렇게 커버가 되어서 모세가 살던 그 천국의 삶이 너희들의 삶이라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하나님의 생명이라 하고 하나님의 긍휼, 사랑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주변의 약속의 땅에, 언약궤가 가는 언약의 땅에 곡식이 잘 되는 것은, 그 곡식이 땅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중앙에 있는 그 언약이 계속해서 언약대로 가치와 자존심이 살아나면 땅은 저절로 춤추게 돼 있어요. 성경에 이런 말 있죠? 만약에 나에 대해서 사람들이 잠잠해도 돌들이 울부짖을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 니가 한 말이 아니라 니 속의 성령이 하신 말이다. 중요한 것은 너가 뭘 하고 싶으냐보다 속에 누가 들어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들어 있는 분이 바로 모세로 하여금 40일 동안 피부 관리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러한 거룩한 분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거룩은 인간의 윤리 도덕으로 종교적인 노력과 열심과 금식과 헌금과 충성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차라리 그런 것들이 오히려 우리 진짜 언약을 더럽게 덕덕 칠해 가면서 지저분하게 만듭니다. 차라리 벌거벗은 채로 십자가 벌거벗은 주님과 벌거벗은 동기생으로 같이 만나는 그것이 제대로 거룩을 파악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거룩이 어떻게 되는가? 그 저주는 흘러 넘쳐 버려요. 흘려 넘치면 온 우주에 필리핀이고 아르헨티나고 온 우주 역사에 저주가 넘쳐 버리면, 이것은 마치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떠나던 마지막 밤, 죽음의 사자가 전 애굽 가정을 다 일일이 찾아가서 문 두드리지 않아요. 그냥 들어가서 그냥 맏아들 다 살해한 것처럼, 그 저주의 넘치는 저주의 힘!!


저는 기독교 가정에서, ‘이집에 오면 평화가 있을지어다.’ 라는 그런 간판 하지 말고, ‘하면 된다.’ 이런 것도 하지 말고, ‘여호와는 목자시니....’‘ 이 말하면 걸리는 사람 많아서 못하겠고.ㅎ ’저주가 넘친다.‘ 온 천하에, 얼마나 멋있어요? 전에 제가 이야기 했잖아요. 우리 딸  애가 초등학교 때, 가훈을 적어오라 해서 ’아빠 가훈 뭐라 하꼬?‘ 나는 농담 반 이야기 했죠. ’죽자.‘ 그런데 그 애는 순진해서 ’너 가훈이 뭐예요?‘ 하니까 ’두자예요. 죽자.‘ㅎ 네 자로 ’같이 죽자.’ 더하면 ‘주와 함께 죽자.’ 주와 함께 죽는 자가 산다니까. 왜 죽어야 되는 거예요? 우리 몸도 빼앗길 때에 우리가 구원 받기 때문에 그렇죠. 내 몸이 있으면, 끌어 모으려고 애씁니다.


내가 여기 우리교회 오면 놀라워요. 세상에 세탁기까지 구비돼 있죠. 에어컨이 석대가 되고 대형 TV있죠. 컴퓨터가 두 대에다가 노트북이 한 대죠. 마이크가 몇 개입니까? 자산 가치가 대단해요. 부동산은 얼마 안 되지만 동산은... 그런데 이런 것들을 도둑맞았다고 칩시다. 그런데 빼앗길 때 비로소 평소에 우리가 우리 것이 아님을 아는 순간입니다. 제가 바라기는 제발 빼앗기기 전에 미리 알아서 평소에 아예 둥근 압류 카드를 맘속으로 집에 있는 TV, 컴퓨터에 붙여 놓으세요. ‘내 것 아님, 예수님의 피로 만들어 줌,’ 그렇게 함으로써 그 가정은 모세가 피부 관리 하지 않아도 되는 시내 산 위쪽이 되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언약이 살아있다.’ 또 사랑이 살아있다. 봐 주기가 극에 달한다. 주께서  봐 주기를 저주 받아 마땅한 인간을 피로써 눌러 주니 어떻게 그 피를 잊을 수가 있습니까? 그 피를!!!! 십자가 피를 잊을 수가 있습니까? 주께서 그냥 빼앗는 게 아니고 피 때문에 주어진 거니까 피 때문에 가져가니까 ‘니 할 말 없지?’ 이런 식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그렇다면 아침에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자체가 여기 못 생기고 나만 챙기고 나밖에 모르는 나와 관련된 것만 귀하게 여기는 못난 우리 자체가 주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해답이 되는 겁니다. 걸어 다니는 해답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보냈죠? 자 호세아를 보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까이 오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그 정신과 그 마음을 담은 사람을 먼저 그들 백성 속에 같이 섞이면서 한 시대를 풍미 하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호세아가 하는 말이 뭡니까? ‘너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래, 내가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이 말하는데 너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래. 너희들은 여호와의 이름이라는 이상한 종교, 사실은 바알인데, 껍데기는 여호와인데 속에는 바알이라. 왜냐, 바알은 자기 야망을 들어주는 신이거든요. 자기 자존심을 높여주는 것과 결탁된 내가 골라잡은 신이거든요. 다시 이야기 할게요. 내가 묻는 것을 가지고 신과 결부시킨 내가 문제 삼은 그 안에서만 형성되는 신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문제 될 때, 가정이 어려울 때, 교회 어려울 때, 그때만 부르짖는 신이거든요. 그러다가 배부르고 편안하면, 나 몰라라. 하고 지 맘대로 살아가거든요. 내가 만들어 낸 신인데 그렇게 살도록 외부에서 문제 삼아서 낯설기 짝이 없는 예상 못한 피 흘리는 주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 니 멀리서 보니 저주 받았다. 완전히 저주야 너, 그런데 이 피로 말미암아 니가 사는 거야,‘ 이것이 바로 생명이라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제대로 산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걸 호세아에서는 그걸 사랑이라고 하죠. 그리고 긍휼이라고 합니다. 내 백성 아닌 자를 사랑으로 구원하고 내 백성 아닌 자를 긍휼로 내 백성 만드는 작업. 이 작업이 주님께서 일으킨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우리의 몸은 아담과 그리고 새로운 아담, 예수님 사이가 서로 만나는 그 장, 그 매개된 중간 장이 우리 몸입니다. 우리 몸이 완전한 게 아니에요. 우리 몸속에서는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의 본성은 그저 내 것만 챙기면 죽든 말든 모르겠다. 하는 것이고, 주님의 몸은 ‘아니거든, 니 몸은 내 피가 담겨 있는 거룩한 몸이거든,’ 서로 싸움이 벌어져요.


어떻게 아느냐? 아프리카 프로를 봤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이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이건 짐승이 사는 게지. 그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거예요.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아프리카 사람 안 된 것을 얼마나 다행스럽게 여깁니까? 하지만 그것은 잘못 된 생각 이예요. 다행스럽다 여기지 말고 사실은 우리도 얼마든지 아프리카 사람 돼도 우리는 할 말이 없는 사람인데, 주위에 있는 털옷과 모든 난방 기구는 주님께서 피 알라고, 복음을 전파하라고 주신 그런 것들 이예요. 니가 챙겨서 ‘훌륭하다. 나는 니보다 세다.’ 과시하라고 준 게 아니고 오직 ‘십자가 피’만 우리에게 생명이 되는 것, 그걸 증거 하라고 주신 거니까, 우리의 평생을 너희 것을 버릴 것도 없고 교회 갖다 바칠 필요 없어요. 그냥 사시는 대로 사시면서 예수님 피를 증거 하는 여러분 자체가 하나님의 교회고 성전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저희들의 조작된 신은 우리가 문제 삼아서 된 건데, 문제없다고 여기면 항상 갖다 버릴 껍데기 신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런 인간을 문제 삼았으니 낯설게 여겨지는 예수님이 이제는 거부반응 일어나지 않고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을 아버지께 과시하고 다 함께 증거하고 자랑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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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7   003강-욜1장15-20(그날, 여호와의 날)110828-(이 근호… (1) 이한례 11-08-29 2291
3010   003강-호2장1-5(음행)-hos110109-(이 근호 목사) 이한례 11-01-12 2559
3058   004강-계1장8-9(예수님의 환난)-rev060312 박온정 11-01-29 2519
2979   004강-렘 2장5-9(무익한 것)-jer090401-(이근호목사) (1) 오용익 11-01-04 2726
2909   004강-삼하3장1-5(사울의집과다윗의집)-2sa091108-(이… 이한례 10-12-15 2705
3551   004강-욜2장1-3(에덴동산과 종말)110904-이 근호 목사 이한례 11-09-06 2252
  004강-호2장8-13(본래의주인으로)-hos110116-(이 근호… 이한례 11-01-16 2973
3072   005강-계1장10-16(주의 날)-rev060319 박온정 11-02-04 2506
2918   005강-삼하4장4-12(사울집안의몰락)-2sa091115-(이 근… 이한례 10-12-17 2608
3560   005강-욜2장4-11(맹렬한 심판 기세)110911-이 근호 목… 이한례 11-09-12 2601
3047   005강-호2장14-20(주인의 언약으로)-hos110123-(이 근… (1) 이한례 11-01-23 3150
3085   006강-계1장16-20(주님 앞에서의 교회)-rev060326 박온정 11-02-07 2491
2922   006강-삼하5장1-3(이스라엘의왕)-2sa091122-(이 근호 … 이한례 10-12-18 2572
3574   006강-욜2장12-14(마음을 찢으라)110918-이 근호 목사 이한례 11-09-20 2616
3061   006강-호3장1-5(주인님의 깊은 뜻)-hos110130-(이 근… 이한례 11-01-31 2516
3125   007-계시록2장1(주의 사자)-rev060402 (7) 박온정 11-02-15 3235
2937   007강-삼하5장6-10(다윗성)-2sa091129-(이 근호 목사) (1) 이한례 10-12-24 2698
3584   007강-욜2장18-24(새 포도주와 기름)110925-이 근호 … 이한례 11-09-26 2326
3083   007강-호4장1-5(멸망당하는 어미)-hos110206-(이 근호… (1) 이한례 11-02-06 2804
3127   008강-계2장1-5(에베소 교회)-rev060409 박온정 11-02-16 2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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