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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22:25:26 조회 : 3150         
005강-호2장14-20(주인의 언약으로)-hos11012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119.148.121.61)
 005강-호2장14-20(주인의 언약으로)-hos110123-(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호세아2장14절에서 20절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1258페이지입니다.


호세아2:14-20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 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어떤 여자가 자기 남편하고 사는데, 갑자기 남편이라고 이름 하면서 덜렁 집에 들어와서 하는 말이 ‘내가 원래 니 본 남편이야.’ 한다면, 그 여인이 얼마나 난처해하겠습니까?  현재 살고 있는 남편보기에 미안하죠. ‘저 남자 누고?’ ‘난 모르는 남자다.’ ‘갑자기 찾아왔다.’ 경상도 말로 각 중에 갑자기 찾아들어서 자기가 본 남편이라고 우기는데 나도 황당하다.‘ 원래 사는 남편이 ’이실직고해라 옛날에 과거 다 용서해 줄게. 어떤 사인데? 이야기 해봐라 어떤 사인데? 내 다 이해해줄게 나 까칠한 남자 아니야. 이해해 줄게 이야기 해봐라.‘


그러면 그 중간에 있는 여인은 상당히 난처할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남편으로 등장해가지고 지금에 있는 부인을 난처하게 만드는 방식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입니다. 지금 재미나게 사는 남편은 사실은 남편으로 살아서는 안 될 남자를 살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원래 남편이 보는 남편감하고 내가 여자로서 내 입맛에 맞는 남자를 골라보니까 사귀는 남자하고 이게 엄청난 차이가 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자기 신부로 삼을 때 그 남편의 심정하고 이것저것도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태어나서 누구 나를 사랑해 줄 사람 없나 해서 자기편의 위주로 괜찮은 남자 멋있는 남자 없나 해서 골라잡아서 하는 남자하고는 완전히 다르죠. 문제는 다른데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 남자를 더 선호하게 돼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 자신이 남편으로 등장할 때, 우리는 오히려 그걸 이상하게 여기고 낯설어 보이죠. ‘누구십니까? 왜 이렇게 편안한 가정을 파탄내십니까? 누구야 너? 왜 잘 사는 가정, 화목한 가정을 왜 이렇게 흔들어 대. 나 당신 같은 남편 모른단 말이야. 그러면 본래 남편이 ’니 모르겠나?‘ ’모르겠는데요.‘ ’처음부터 너는 내 여자였어.‘ ’언제 말입니까?‘ ’하 니가 교통사고 나서 머리 다치고 난 뒤에 10년 동안 기억이 갔구나. ‘원래 니 남자야. 25살 때 만난 니 남자 모르겠나?ㅎ ’누군데‘ ’현빈,ㅎ 모르겠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왜 자꾸 우리를 궁지에 몰아 난처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보면, ‘언약’이라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언약은 내가 만든 언약이기 때문에 언약이 부실해요. 이 언약이 대자연과 더불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언약이 아닙니다. 이 우주를 평안케 만드는 언약이 될 수가 없어요. 그냥 나만 잠시 감깐 인생을 후딱 자극적으로 살다가 그냥 끝나버리는 그러한 약속만 생각하죠. 그처럼 나이트 가서 춤추다가 만나서 하룻밤 좋게 지내다가 만나서 곧장 헤어질 그런 자극적인 남편감과 그런 여인들, 나이트 가면서 전 세계 평화를 논하고 소말리야 구제나 그런 것 생각 안 하거든요. 그냥 지 술 먹고 춤추고 놀고 하룻밤 즐기고 헤어지자, 그거뿐이거든요. 그게 남북통일하고 무슨 관계있습니까?


우리가 산다는 것이 기껏해야 자기 몸 편한 것, 지극적인 것, 그 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은 살 때는 사는 것처럼 느껴지다가 그러다가 우리는 결국 왜 죽는지, 죽어서 어디 가는지, 그런 내용이 안 담겨있는 그런 언약을 마치 영원한 언약인 것처럼 쥐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본래 남편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언약을 맺으면 이것은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평안과 평화가 온 우주와 더불어서 축하받으면서 천사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공 하겠다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처음에 인간을 창조할 때 부부로 시작했다 하는 것은 지난 시간에 이야기 했습니다. 부부로 시작 했는데 인간이 이 땅에 살면서 부부라 하는 것은 둘 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상처를 갖고 인간은 출발합니다. 어떤 인간도 상처 없는 인간이 없어요. 아무리 고상하게 좋은 집안에 태어나도 그 마음의 상처는 있게 마련 이예요.


그 증거를 후대 학자들이 조사해보니까 인간이라 하는 것은 언제 자기 삶의 동의를 느끼느냐 하면, 남을 미워하면서 비로소 삶의 맛을 느끼는 거예요. 이거 희한하죠. 이거 변태죠? 미워하는 대상이 없으면 살맛이 없어!! 축구 할 때는 ‘죽여라, 이란! 저거,ㅎ 1:1이 뭐고, 5:0으로 조져야지.’ ㅎ 꼭 이렇게 살인충동, 미워하면서 비로소 내가 여기 살아있다는 걸 만끽하게 되는데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사람은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앞에 내가 쳐야 될 적들을 두게 됩니다. 적들을 둘 때 자기는 선해 지거든요. 적들을 두고 그 적들이 하는 것은 무조건 나쁜 거예요. 그 나쁘다고 지적하는 가운데 비로소 나는 선한 존재로 탈바꿈되는 겁니다.


이걸 학자들은 뭐라 하느냐 하면, 선이 있어 악이 있는 게 아니라 악이 먼저 있고 악이 선을 유발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악을 쳐부수고 나는 선인데 저쪽은 악이니까 ‘저쪽은 나한테 맞아 죽어도 싸.’라는 식으로 나올 때, 그 동원되는 선이 뭐냐 하면, 그 선이 악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무슨 행동을 해도, 아무리 선을 해도 악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유발할 수밖에 없는 계속해서 악이 나오는 겁니다. 사실 어떤 행동 하나도 ‘내 적은 죽어야 되고 나는 마땅히 살아야 돼.‘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들이 나오는 겁니다. 이게 태어날 때 갖고 있던 상처이고 상흔입니다. 그런 식으로 이 땅에서 원하는 부부를 맺어도 소용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광주에서 들은 이야긴데, 학교 교사인데 자기 부인이 새벽기도 나온다 해놓고 6개월째 소식이 없었어요. 6개월 만에 장가갔습니다.ㅎ 빠르죠? 아내가 6개월 째 안 들어오니까 죽었다고 치고 자기는 6개월 만에 장가갔어요. 교사가. 그런데 그 이야기 듣고 어떤 사람은, 어떤 목사는 사모 죽으니까 3개월 만에 장가간 사람도 있어요.


결국 이것은 뭐냐 하면 부부의 인연이라 하는 것은 사실은 적과의 동침이라 할 수 있죠. 내가 왜 저 여자를 만남으로서 왜 나는 훌륭한 남편감이 될 수 없는가를 증명해 줄 하나의 대상으로서의 나한테 잔소리를 들어야 되고 꾸중을 들어야 되는 대상으로의 아내. 이것은 피차일반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들의 한계를 호세아 선지자는 이걸 ‘바알’이라는 신으로 묘사한 거예요. 이게 좀 어려워요.


방금 이야기한 모든 것을 바알이라는 신으로 대변을 했는데 바알이라는 신을 일부러 이스라엘 주변에 바알 신을 둬서 이스라엘 사람이 입으로는 ‘여호와, 여호와’하지만 가만히 보니까 저쪽 바알 신이 더 자기한테 더 땡기는 거예요. 이게 왜 그러느냐 하면, 몸 자체가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이 상처는 적을 두고 적을 미워하는 데서 스스로 치유가 되는 겁니다. 자기가 욕할 사람이 없으면 자기가 곪아요. 정 욕할 게 없으면 경로당에 가서 화투를 세게 두들겨 쳐야 돼요^^ 그래야 속이 시원해지는 겁니다.


그 바알 종교의 특징이 뭐냐 하면, 땅으로 시작해서 땅으로 끝나는 종교가 바알 종교입니다. 땅의 종교예요. 땅에서 계절상 일어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순환 되는 게 있어요. 그 순환되는 것이 가을철에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만족하게 되면 화가 나게 돼 있어요.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사람이 만족하면 행복해야 될 텐데, 만족하게 되면 왜 화가 나느냐 하면, 새로운 것을 욕망할 수 있는 빈자리가 마저 메꿔지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거예요. 사람은 빈자리를 자꾸 만들어가는 재미로 살아가는데 만약에 모든 것이 만족스러우면 갑자기 화가 나는 겁니다. 만족하면 내가 욕할 게 없잖아요.


‘하나님이여 내가 이거, 이거 이루어져야 하는데 왜 안 이루어집니까?’라고 해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말을 할 이유가 있다 말이죠.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떤 훌륭한 사람을, 어떤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서 볼 때는 여분이 있기 때문에 부드럽게 보이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분을 가까이서 마주 대해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그 신비감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본인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정신병자는 해답을 주면 안 돼요. 정신과 의사가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 사람에게 계속 해답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당신이 만든 해답은 왜 그렇게 잘 만들었습니까?’ 띄워주는 거예요. ‘당신의 정체는 이렇고 당신의 문제는 이렇습니다.’이러면 그 사람 화가 나서 정신과 병원 5층, 6층에서 자살해버립니다. ‘왜 미진한 것을 안 남겨 둬? 미진한 것을 채워주면 나는 무슨 재미로 살아?’ 이런 게 정신병자의 특징입니다. ‘그래 당신은 요번에는 뭐가 되고 싶어? 지난번에는 나폴레옹 된다더니 이번에는 케네디 한 번 돼 볼까? 이번에는 박 지성 돼 볼까?’


 본인이 채울 수 있는 내부적인 어떤 희망 같은 것을 자기가 조금씩 만들어 내요. 그래야 치유가 되는 겁니다. ‘나 이제 선생님 안 찾아와요. 나는 내가 내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라고 해서 병원에 안 찾아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당신의 문제점은 이렇고 ...’ 문제점을 지적해 버리면 해답이 나와 버리면, 사람은 해답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해답이 없는 미진한 부분을 남겨 두는 그것이 돌아오고 돌아오는 순환 바퀴 구조 속에서 계속해서 미래가 보장 될 때, 어디로 가는지 강물 따라 흘러가는 것이 사는 보람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복음을 아는 사람은 이미 해답이 나와 버렸어요. 이게 미친다니까요. 뭘 해도 죄가  되고, 그 죄는 용서 받을 경우에만 구원 받는다. 나한테 해답을 왜 주냐 말예요.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 복음 전하면 되게 싫어합니다. ‘그건 알거든, 그건 아는데 뭐를 모르느냐 하면 내 애가 서울 대학교 재수하는데 내년에 될까 안 될까 그걸 몰라서 새벽기도 하는데 니가 해답을 내려 버리면, 새벽 기도하는 내가 우스운 꼴이 되잖아.’


교회라 하는 것은 상처를 치유하면 안 되고 상처 받는 사람이 계속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목사는 개개인에게 상처를 많이 줄 때, 크게 부흥되는 겁니다. 얻어맞는 재미, ‘목사님, 제가 어디 맞아야 돼요?’ ‘때려 줄까?’ ‘때려 주세요.’ 때려 줄 때 그게 고린도전서 11장에 보면 나오는 겁니다. 얻어맞을 때 본인은 순교자가 되는 겁니다. 순교자라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죽음의 충돌 속에 가까이 가면서 ‘그래서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야.’하고 죽어버려요.ㅎ


이런 바알 종교의 특징은 땅에서 있기 때문에 땅에서 해결점이 주어지면 안 돼요. 계속 미진한 상태로 계속 남겨져 있어야 돼요. 문제는 그렇게 남겨준 미결 점을 뭐로 때우느냐 하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문자 한 번 썼죠. 인간이 할 일을 진하게 하고 난 뒤에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 요게 바알 종교의 열심입니다. 인간의 할 도리 인간이 다하고 나머지 결과는 하나님께 맡긴다. 요거 개혁주의 신학입니다. 요게 바알종교예요.


로켓을 만드는 과학자들이 로켓을 다 만들고 난 뒤에 뭐 하는지 알아요? 놀랍게도 고사지냅니다. 로켓을 만드는 합리적인 철저한 논리적인 기계의 조립과정은 진인사예요. 인간의 할 도리를 진하게 다 한 거예요. 그 다음에 로켓이 올라가고 내려오는 그 과정은 하늘에 맡기는 거예요. 하늘에 맡기는 미진한 것 때문에 그들은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살아가는 거예요.


해답을 다 주면 안 되는 겁니다.  오늘도 성 재필 성도님하고 이야기 하면서 하도 생중계가 끊기고 아무리 애써도 주위에서는 소홀히 한다고 하고, 계속 노력을 해도 안 되니, 농담 삼아 했어요. 성도님, 생중계 잘 되게 고사 지낼까?‘ ㅎ 이게 뭐냐 하면 고사 지내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진 인사. 내 할 일 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한테 허점을 나한테 잔소리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이야기. 땅에서 스스로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 보여주는 거예요.


자 그러면 오늘 본문에 개유한다는 말이 진짜 본남편 나와서 하는 말이 너를 개유한다는 말은 꼬신다. 유인한다는 말인데, 유인해서 어디로 가느냐 하면 광야에 데리고 갈 것이다 하는데, 이 말은 어려운 말인데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어렸을 때 골목에서 놀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유난히도 많아요. 대구시 비산동 141번지 대성초등학교 앞에 골목길에 온 동네 애들하고 저녁 늦게 까지 놀다보면, 이젠 어머니께서 ‘야야, 저녁 했다 밥 먹으러 와라.’ 하면 애들이 손을 털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오늘 재미나게 놀았던 요 공간과 요 시간과 장소를 잊지 말고 내일 다시 모여서 오늘처럼 재밌게 놀자.‘ 라고 헤어지죠. 그때는 학원이 있었습니까? 피아노를 칠 집안 형편도 안 되고, 그냥 방목이 교육 이예요. 방치할 수밖에 없고 그럴 수밖에 없는 시절에 애들은 고 현장 고 지점 고 시간대를 고수하게 됩니다. 바알 종교의 특징은 뭐냐 하면, 내 몸 위주로 내 몸을 즐겁게 했던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겁니다.


진인사대천명. ‘우리가 할 것을 다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열심히 했다는 것에 대해서 칭찬해 주시고 사랑을 해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좋은 부부사이가 내 맘에 드는 내 남편감이 됩니다.’라는 것이 바알 종교의 특징입니다. 사실 남편 사랑하지 않아요. 뭘 사랑하느냐 하면, 내가 했다는 거예요.(진인사) 내가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복을 안 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 사로방식 갖고 교회에 오는 거예요. 바알 종교 믿으러 오는 겁니다.


그렇다면 호세아에서 말하는 그게 땅의 종교고 바알종교라면, 여호와 종교는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거기서 뭐가 빠지느냐 하면, ‘나는 주님을 사랑했습니다.’라는 진인사가 빠져야 돼요. 그게 빠진다는 말은 ‘나는 절대로 주님을 사랑한 적이 없고 항상 나 만을 사랑했습니다.’가 유지가 돼야 되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원대한 우주적인 하나님의 원래 언약 속에 초대받는 진짜 남편의 신부의 참 모습입니다. ‘내가 이 정도 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라는  최선을 다하는 진인사하는 그런 태도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느냐 하면, ’너는 그동안 더러운 남편 만나서 더러운 짓거리 하면서 기껏 알게 된 것이 진인사하는 바알 종교라.‘ 추론하죠. 그 추론하는 방법이 뭐냐, 이 지상에서 미완료적인 실컷 고생을 하는 그런 방법입니다. 실컷 광야에서 유인해서 얼마나 험한 인생을 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광야 이야기 하면서 어디다가 써먹느냐 하면, ‘나왔는데 못 들어갔다‘에 광야를 집어넣어 버려요. 광야라는 그 무대를 같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다는 못 들어갔다.’를 보여주는 무대, 탈락 시킬 자는 탈락시키는 무대장치로서 광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탈락된 자의 특징은 그들은 그들 자신의 애굽에 살았던 그 행세, 그 성깔, 그것 가지고 지금 동행하시는 사랑과 억지로 매치시키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사랑은 모든 조건과 모든 능력의 문턱을 넘어버리는 겁니다. 밤에 산책하다 보면, 난데없이 밤이슬이 적시는 것처럼 그냥 소리 소문 없이 내 몸을 휘감는 것, 내 몸을 적셔오는 것,  그게 바로 사랑 이예요. 사랑이 하나의 대상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내가 사랑해 준 자기 때문에 당신도 필히 내 한테 반대로 ‘내 흡족하도록 사랑을 해줘.‘ 조건부가 돼 있어요.


그런데 진짜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어디를 가도 만족함이 없어요. 항상 미완료고 항상 불평이고 누구 하나 나한테 욕 얻어먹는 대상이 있어서 그 씹는 재미로 우리가 평생을 살아야 하고 뭐가 최선을 다해서 진 인사 대천명하지만, 최선을 다했지만 그 최선이 나에게 만족함을 줄 수 없게 만드는 세상이라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래 니가 그 세상에 들어가야 해, 니가 본래 선택한 남편이 개판인가가 드러난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사랑을 준 이유입니다. 사랑을 하신 이유가 니 자신이 니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해결 할 수 없는 지경에서 니가 원치 않는데 니 본래 남편이 와서 원대한 언약으로 우리를 감싸주는 겁니다.


이 이야기 하고 마치겠습니다. 바리새인 이야기를 했는데 바리새인과 비교할 때 바리새인과 등장하는 인물이 막달라 마리아가 등장해야죠. 그 마리아는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행실이 나쁘다고 소문난 여인 이예요. 그 여인이 울면서 그 비싼 향수를 예수님의 발 앞에 뿌릴 때, 그 바리새인은 ‘왜 행실을 안 고치고 너의 진인사 대천명에서 너가 최선을 할 걸 안하고 무슨 태도로 예수님한테 엎어졌느냐 말이죠. 예수님도 문제가 있지. 저 여자가 행실을 고치고 그래서 깨끗한 자세로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어떤 행실 나쁜 여자가 와서 해도 주님한테도 불만이고, 그것에 비해서 자기 자신들은 그만큼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는 진인사 대천명의 자세 같다는 마음이죠.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그때 사랑을 이야기 했어요. 사랑!! 사랑이라 하는 것은 사랑에 필요한 것은 하나 밖에 없다는 겁니다. 내 죄가 있으며 이 죄는 내 스스로 용서 받을 길이 없습니다.‘라는 고백만 있으면 사랑의 문턱은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이 이슬처럼 축축하게 적셔오면 이유 없이 무조건 나는 뭘 해도 타고난 자체가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나는 죄인이 용서받을 것은 진인사 대천명이 아니고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방어 내 변명밖에 안 되니 그냥 주님 앞에 이 몸을 드리겠나이다.


그때 예수님 하시는 말씀이 ‘사랑을 적게 받은 자가 적게 사랑한다.’ 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 남편이 아내에게 원하는 것 오직 하나, 그것은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는 너를 온 우주를 동원해서 너를 사랑했다. 비록 니가 지금 힘들고 얼마나 땅의 삶이 어려운 줄 알지만 그것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한 번 실컷 고생하는 가운데서 니가 평소에 얼마나 알고 있던 세상과 이 사랑이 격차가 나는가를 톡톡히 봐서 사랑은 니 생각보다 위 그것보다 더 위에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게 더 넓게 사랑은 너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라 하는 것이 호세아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법으로 죄 앞에 나설 수 없고 진인사 대천명 자세로서 나설 수 없고 그저 삶을 사는 대로 살 뿐인 것을 자백합니다. 살아가면서 뭘 해도 죄인 것을 이제 남은 것은 이 죄를 간직하지 말고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분에게 이 몸을 드릴 수 있는 사랑을 아는 사랑의 문턱을 아는 사랑의 세계를 아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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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온정(IP:211.♡.16.177) 11-01-26 12:06 
방금 이야기한 모든 것을 바알이라는 신으로 대변을 했는데 바알이라는 신을 일부러 이스라엘 주변에 바알 신을 둬서 이스라엘 사람이 입으로는 ‘여호와, 여호와’하지만 가만히 보니까 저쪽 바알 신이 더 자기한테 더 땡기는 거예요. 이게 왜 그러느냐 하면, 몸 자체가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이 상처는 적을 두고 적을 미워하는 데서 스스로 치유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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