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HOME > 게시판 > 자유게시판
2011-02-06 23:00:02 조회 : 2797         
007강-호4장1-5(멸망당하는 어미)-hos110206-(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119.148.121.61)
 007강-호4장1-5(멸망당하는 어미)-hos110206-(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호세아4장1절에서 5절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1259페이지입니다.


호세아4:1-5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 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여기 성경 말씀을 이야기 할 때 이것만 생각하면 돼요. 성경 말씀은 딴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하늘과 땅 사이에 끼어있는 인간,’ 그런데 우리는 과학시대에 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하늘이라 하는 것은 천체 물리학이 지배하는 세계, 안드로메다가 있는 빅뱅이 터졌다는 그 장소, 그것을 하늘이라 보고, 그 외의 하늘은 없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나오는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하늘이 따로 있지 않고, 우리는 그저 서로 보고 있는 사람 있고, 사람은 땅에 있는 여러 가지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왔다가 소멸되고 또 태어났다가 소멸되고 그렇게 흘러간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 유명한 호킹 박사가 이야기 한 게 있어요.  호킹 박사는 세계적으로 천문학 박사로 블랙홀을 주장한 사람인데,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박사님, 우주는 왜 있습니까?’ 박사가 하는 말이 ‘우주라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우주라고 불러주기 위해서 있다.‘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면 이렇습니다.


우주 쪽에서 보는 것은 내가 알 수 없고 내가 단지 아는 것은, 내가 저것을 우주라고 불러주기 위해서 있다고 우리 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우주 쪽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우리는 알 필요도 없고, 모르겠다는 것을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이렇게 돼 있어요. ‘땅은 살아 있고 사람은 죽었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 이것은 오늘날 과학시대에서는 반대로 이야기 하는 겁니다. 과학시대에서는 뭐냐 하면, ’인간은 살아있고 땅은 죽어 있다.‘ 이렇게 보는 거죠.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고 반대로 ’땅은 살아있고 오히려 땅에서 사는 인간들은 날마다 병원 장례식장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누가 죽었는가? 죄송하지만 땅이 사람을 죽인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도 죽어가면서 왜 죽는지 모르고 그냥 나나 땅이나 다 같이 죽어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땅은 하늘의 지시를 받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게 중요한 거예요.


다시 이야기 할게요. 땅은 하늘의 지시를 받기 때문에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 전기 중에 하나가 창세기 3장에 나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떠나게 되죠? 이게 인간으로서는 참 아이러니한데요. 사람은 자기가 일단 떠나게 되면 그쪽에 대해서는 없고, 떠나버린 그 장소에서 새로 시작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떠나버렸으니까 에덴동산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길도 차단됐으니까 인간들은 뭘 하느냐 하면, ‘이 땅 자체를 에덴동산으로 한번 만들어 보자.’라고 시작한 것이 창세기 4장에서는 ‘문명의 시작이다.‘라고 보는 겁니다. 우리들끼리 이런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행복을 누려보세, 그러세.’하고 시작한 것이 문명의 시작인데, 그 시작을 도시의 시작이라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보지 않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범위를 넓게 봅니다. 너희들이 기껏 땅에서 보는 것은 원래는 에덴동산에 살아야 하는데 땅에서는 그렇게 안 살게 돼 있는데, 벌주기 위해서 땅에서 살게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들은 벌에 대해서 ‘우리에게 주는 벌은 뭐냐고 따져 묻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남자는 이마에서 땀을 흘려야 겨우 먹고 살고, 여자는 같은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같은 짝인데도 불구하고 차별화를 당해서 남자한테 쥐 터지면서 구박 받아가면서 그렇게 여자는 사는데, 여자는 아기를 낳는데 자연스럽지 않고 고통가운데 애기를 낳고 이미 여자는 낳으면서 고통이 아니고, 그 애를 키우면서 남자는 남이 되고  여자 혼자 고통을 안아가면서 자식을 혼자서 다 키워야 되는 수고를 겪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은 ‘원래 인간이 그런 게 아니고, 너희들이 뭔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일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 징벌로써 받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에 준하면 주변에 있는 땅이라 하는 것은 결국 우리를 힘들게 하는 환경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결국 하나님이 노리는 것은 ‘땅에서 죽어라‘ 이 말 이예요. ’니가 선악과 따먹으면 죽으리라.‘ 한 것처럼 ’좀 죽어줘.‘ 이 말 이예요. 죽을 때 비로소 ’니는 죽고 너를 죽이는 땅은 살아있음을 알 것이다.‘


창세기 5장에 넘어가면 아담부터 족보가 나오는데, 족보 끄트머리에 뭐가 있느냐 하면, ‘죽었더라. 죽었더라. 죽었더라. 가 나오는데, 모두가 죽었더라. 죽었더라. 죽었더라. 죽었더라.’만 나오면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뭐냐, 죽었더라. 해놓고 ‘한 집사님은 살았더라.‘ 왜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 합니까? 죽으면 다 죽어야지 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갔더라.‘라는 이야기를 왜 끄집어냅니까?


그것은 너를 죽이라고 명령한 이 하나님의 약속은 죽어가는 너의 곁에 함께 이 땅을 동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간 것은 그가 놀랍게도 사람과 동행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동행했더니만,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 간 거예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나는 죽어 마땅해.’라고 그러한 지시를 내리신 분도 살면, ‘우리는 살 수 있겠구나,‘라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문장이 긴 것을 이해해 주세요.


다시 이야기 할게요. ‘나는 안 죽고 살겠구나.‘ 이건 엉터리고요. ’나를 죽이신 분과 함께 동행 하면, 나는 살겠구나.’ 예수님이 십자가 죽을 때에 부활이 주어져요. 안 죽으면 부활이 없어요.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우리의 권한이 아니고 우리에게 기껏 주어진 팔자라는 것은 죽어 마땅한 팔자예요. 그 이상의 욕심은 내지 말란 말이죠. 죄진 인간이 죽는 게 당연한데 거기서 뭐를 욕심내느냐. 놀랍게도 ‘맞습니다. 죽어 마땅합니다.’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준해서 그냥 죽는 게 아니고, 약속에 준해서 약속과 함께 동행 하게 되면, 죽음을 보지 않는 혜택이 주어진다는 거죠.


그 약속이 하나의 구체화 돼서 등장한 나라가 네 자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입니다. ‘목사님, 이스라엘이 안 죽는다는 증거를 대세요.’라고 한다면  애굽에서 나올 때 다른 사람은 다 죽었는데, 다른 집사님들은 다 죽었는데, 한 집사님은 살았더라.‘ 이처럼 다른 애굽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그 집안사람들은 살았더라.’ ‘죽었더라.’가 발생해야 ‘살았더라.’가 빛이 나는 그러한 환경이 조성되는데 거기서 태어난 나라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입니다.


요즘 이집트가 분주하죠? 이집트에서 나온 천 명의 한국 사람이 뭐라 하는지 아십니까? 출애굽이라 해요. 전세기 타고 출애굽 했잖아요. 출애굽이 나만 살았다하면 출애굽은 의미 없어요. 나도 죽어야 되는데 ‘웬 떡이야.‘라는 식으로 살아나야 돼요. 나도 그들과 함께 죽어 마땅한데, ’아하, 문설주에 바른 피 때문에 살았구나.~‘ 그러면 피가 우리를 살게 하는 유일한 약속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문제 하나 내겠습니다. 속으로 답해 주세요. 노아 홍수 났을 때, 살게 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여러분 아시죠. 노아 방주였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뭘까요? 그것은 방주라는 물체도 아니고 교회라는 조직도 아니고, 오직 구원의 능력은 ‘그리스도(예수님)의 피에 있다.‘ 그 피는 우리가 공장에서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예수님께서 홀로 만드셔서 우리는 그 예수님께서 홀로 만든 것만이 죽어 마땅한 우리를 놀랍게도 영생 얻는 자로 돌변 시킨다는 것을 우리는 하나의 구원의 능력으로 받는 겁니다.


자 이렇게 구원을 받고 난 뒤에, 오늘 본문을 봅시다. 오늘 본문에서 땅은 살았고 너희는 죽었다는 그 이야기 예요. 여러 가지 이야기 했지만. 그런데 끝에 보면 자, 이제 골치 아픈 이야기가 나와요. 5절에 봅시다.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아~~ 이게 무슨 이야깁니까?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어머니가 왜 나와요? 그 어머니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호세아를 봐가지고는 짐작만 하지 몰라요. 확실한 증거는 신약에 보면 나옵니다. 갈라디아서 4장 26절에 보니까,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우리 어머니라.“ 여기서 자유라 하는 것은 더 이상 죄와 죽음과 사탄과 악으로부터 격리된 상태를 말합니다. 거기에 섞이지 않는 상태를 자유라 합니다. 빠져 나온 상태, 출 애굽한 상태거든요.


이 말은 어머니라 하는 것은 생산할 수 있는 여자를 말하거든요. 그러면 이 말은 기존의 있는 여자. 여성분들이 자식을 낳아 봐야 죽어요. 그것은 죽음에 속한 어머니가 아무리 자식을 낳아야 그 자식도 날 닮아서 계속 죽습니다. 아담을 닮아서 죽게 돼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피조물을 만드는데, 안 죽는 자식을 어떻게 만들 수 없을까. 낳아도 안 죽는 자식을 낳으면, 그것은 자식이 훌륭해서 안 죽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 자체가 죄에서 벗어난 어머니일 경우에 죄와는 상관없고 고귀하고 생명을 가진 어머니 몸에서 태어난 자식은 안 죽습니다. 영생 얻습니다.


바로 그 자식은 어떻게 나오는가? 그 자식은 살아있는 땅이 하늘의 명령을 받아서 그 자식을 낳는데, 도움을 주게 돼 있어요. 살아있는 땅에서 살아있는 엄마가 나오고, 그 엄마가 낳은 자식이 곧 살아있는 자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 4장에서 엄마를 두 종류로 나눴습니다.


한 엄마는 에서(하가)란 엄마고, 한 엄마는 사라란 엄마예요. 회집에 한 사라 두 사라 아니고요.ㅎ ‘마더’라는 영화가 있어요. 영화에서 김 혜자가 춤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 두 명의 여자를 제공합니다. 두 명의 여자가 나오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는 두 명 말고 한 명의 여자로 해서 ‘야야, 니 엄마 생명이다. 너도 생명이다.’ 라고 될 텐데, 꼭 두 명의 여자를 내세워요.


두 명의 여자를 내세워서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 목적이 아니고, ‘너는 구원 받았는데, 저 애는 구원 받지 못하고 저주 받았다.‘ 라고 대조되는 것을 만들어서 이렇게 흑백 배치도를 만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자랑거리고 하나님의 자기 즐거움 이예요.


한 쪽은 진노의 그릇, 한 쪽은 사랑받을 그릇으로 만들어 놔야 양쪽 두 그릇 다 만들어 놓을 때, 주님께서는 ‘호오, 됐다.’ 하시는 겁니다. 이걸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은 심판 주다.’ 이걸 더 줄이면, ‘예수님은 주다.’ 예수님은 주가 천국에만 주가 아니라 지옥에도 주가 되시기 위해서, ‘너는 내 뜻대로 지옥가고, 너는 내 뜻대로 천국 갔느니라.‘ 해서 양쪽으로 주가 주로서 온 피조물에게 주로 영광 받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방금 어려운 이야기 후딱 지나갔습니다. 땅이 어떻게 사라를 만드느냐 하면, 이 척박한 땅은 사라로 하여금 사라 자체가 육에 속한 사라입니다. 사라도 육에 속한 어머니가 낳기 때문에. 육에 속한 엄마기 때문에, 일단 사람은 자기의 몸으로는 자식을 못 낳아야 돼요. 육의 자식을 못 낳는 겁니다. 육의 자식을 못 낳는 과정에서 거기에 육의 자식을 못 낳으면 불임 여성이 되는 거예요. 애기를 못 낳는 거예요. 애기를 못 낳게 되니까 사라의 대가 끊어지게 돼요. 아, 요거 끊어져야 돼요. 아, 이거 너무 어렵게 해서 오후에 골치 아픈데, 쉬운 거 하나 할게요.


우리 처가에는 조카가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는데, ‘누가, 누가 잘하나’ 노래자랑에서 대상을 탔어요. 그래서 공부가 안 돼요. 공부가 딸려요. 그런데도 음악으로 유명한 예원 중학교를 그냥 쳐본다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제가 딱 떠오는 게 있었어요. 우리가 아파트 분양권을 따게 되면, 그것은 자기가 살지 않더라도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는 권한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조카애가 예원 중학교에 합격했다고 칩시다. 그럼 합격 한 것은 지가 남한테 물려주거나 되 팔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게 안 되는 거예요. 그게 되지를 않는 거예요. 왜 그럴까? 지가 딴 건데, 딴 다면... 왜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챙겼다는데, 안 믿는 사람들 술집에서 농담하잖아요. 니가 천당 가면 내가 니 다리 붙들고 가겠다. 하는데...


천국에 우리가 합격을 한다면, 이 천국 합격이 내게 현재 흐르고 있는 육적인 권리가 첨가돼서 섞여서 내 것으로 소유권이 내려오는 그런 자리가 아니에요. 그 자리는 ‘너는 집에 있어’ 하고 차단시켜 버리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예수님 자신이 만든 자리에 우리에게 분양을 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은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신앙생활 잘해서 그랬다 하는 말을 일체 못하고, 그냥 주님 것인데, 참 건방지게 황공스럽게도 내가 주님 가신 고난에 들어가는구나.‘라는 식으로 들어가게 하는 겁니다.


바로 사라처럼 자기애기를 못 낳아요. 나이도 이미 백세쯤이나 된 거예요. 여자로서는 이미 죽었어요. 그런데 뭐가 오느냐 하면, 중요해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오는데, 그걸 가지고 어려운 말로 ‘아브라함의 약속’이라 합니다. 아브라함의 약속이 오게 되면, 거기는 씨도 하늘에 합당한 씨가 되고, 땅도(기존의 땅이 아니에요. 죽어 있는 땅이 아니고 살아 있는 땅 이예요.) 자식을 축복되게 키워낼 수 있는 영양을 하늘로부터 공급받는 그런 땅입니다.


오늘 본문 한번 봅시다.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논쟁을 하시되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이런 게 없으니까, 2절에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 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이런 것들이 일어나서 나중에 3절에 보면, “ 이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보세요. 땅이 살아 있잖아요? 땅이 살아있는데 그냥 살아있는 게 아니고 누구의 지시와 누구의 명령을 받습니까? 하늘의 지시와 명령을 받죠. 이것을 두 자로 뭐라 하느냐 하면, ‘땅은 약속대로 철저하게 시행하는 거예요. 약속을 따르는데, 땅도 사람의 약속을 따르고 거기의 씨도 하나님의 약속을 따르는데, 그 다음에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축복을 받는데, 그 축복이 뭐냐, 딱 한 자예요. 한국말로 딱 한 자예요. ’의‘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으니, 의가 있으니까 축복이 안 올  이유가 없어요. 저주가 있으면 저주가 안 오려 해도 안 올 수가 없듯이, 꿀 따는데 벌 따라오듯이, 저주가 오게 돼 있는데, 의가 있으면 계속해서 축복이 의를 보고 오는 거예요. 여러분의 의를 보고 축복하는 게 아니고 여러분 속의 의를 보고 복이 오게 돼 있어요. 그것도 하늘과 땅 전부가 전체가 다, 온 우주 전체가 다 약속대로. 왜 그렇습니까? 물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게 약속으로 구성돼 있고 그 약속에서 하나님의 의가 있는 곳에는 ‘무조건 축복 해줘라‘라는 사전지시가 하늘과 땅 다 있어요. 제가 거짓말 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 갔을 때, 바람이 불었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불었어요. 제자들은 황급하게 물 퍼내고 난리 났습니다. ’이제 죽게 되었구나.’ 그때 예수님을 깨웠죠. 예수님이 주무셨어요. 해적이 쳐들어오는데 예수님이 주무시는 거나 똑같아요. 그럴 때 예수님이 뭐라 그러셨느냐 하면, ‘바람아, 그리고 바다야, 너 까불래? 조용 하래이. 내 제자들이다. 조용해라.’ 하니까, 마치 말은 안했지만, ‘예이’ 하는 식으로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 졌습니다.


자, 땅과 바다와 물과 하늘의 모든 천지, 누가 만들었습니까? 제가 하늘이 말 듣는다 했죠? 그 하늘이 말 들으신 분이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 말이죠. 그리고 그것이 자기 백성에게 의를 주므로 말미암아, ‘자 나와, 다들 죽지만 내가 준 의를 가진 자는 이렇게 영생 얻어졌잖아.’라고 예수님이 자기 솜씨를 자기가 즐기기 위해서 자기가 일방적으로 다 해놓은 자기 의를 우리에게 축복을 해주는 것이 본인이 즐겁고 주가 되시고 기쁘시기 위해서 우리를 채택하신 겁니다. 채용하시고 채택하시고 그 하늘나라의 직원으로서 하늘나라의 일꾼으로서 우리를 채택하신 겁니다. 그걸 ‘아브라함의 약속’이라 합니다.


아브라함이 누굴 기다렸습니까? 요한복음 8장에 보니까, 자기는 양이 많아도 양을 기대하지 않고 소가 많아도 소를 기대하지 않고 영소가 많아도 거기에 기대하지 않았어요. 소 많아야 구제역 다 걸리죠. 오직 아브라함은 예수님 보기를 기다렸다가 예수님 보고 기뻐했어요. 왜, 그것이 바로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로써 사라는 약속에 의해서 자식을 낳는데, 그 자식 이름을 이삭이라 하고, 그때부터 이삭의 노선, 사라의 노선을 약속의 노선이라 하고, 반대쪽으로 약속이 없이 혈통으로 자식을 낳는 사람을 혈통으로 낳는, 율법으로 낳는 사람들은 율법으로 저주의 공격을 받게 돼 있습니다. 죽었더라, 죽었더라. 저주의 공격.


‘죽었더라.‘ 속에 살았다는 새로운 노선이 밝혀지는 거죠.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이 성경 전체에 관통하는 맥 이예요. 모든 움직임의 주체는 이 잘난척하는 인간이 아니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약속대로 움직여서 약속대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주님이 이 땅의 모든 것을 통일하는 약속의 주체가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저 앉아서 의를 얻어먹었고,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믿음, 주님께서 믿게 하신 선물까지 택배로 보내서 카드 쓰고 싶은데 카드까지 카드회사에서 택배로 다 보내주고, 그 카드 가지고 SK배경 홈피 하고 빠리 바케트 15% 할인 받고, 전부 다 믿음이란 카드까지 내 것이 하나도 없네요.


육적으로 나오는 모든 노동과 행위는 하늘나라에는 안 통하니 멈추라는 거예요. 너는 지상만 보지 말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무엇을 가졌느냐, 이것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된 ’의’입니다. 이게 어미예요. 그 어미를 위해서 지상의 예루살렘이 멸망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바꿔치기, 교체, 구닥다리는 가라, 새로운 예루살렘을 하늘나라에 건설하겠다. 이 모든 것은 장차 오실 메시야가 하늘나라에 건설하는 그 어머니에서 자식을 낳게 되면,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비로소 거저 받은 의로서 축복이 안 올래야 안 올 수 없는 축복된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이 중앙에, 이 중심에 호세아와 이스라엘 나라가 있었던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세상은 능력 과시하기 분주하지만, 저희들은 약속 자랑하기에 분주합니다. 약속 속에 의가 들어있어 축복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 없는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어떤 환란과 고난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 이 축복을 마음껏 자랑할 수 있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링크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호세아-2011/오후설교 110206.MP3, Hit:287
 첨부파일 : 007강-호4장1-5(멸망당하는 어미)-hos110206-(이 근호 목사).hwp (48.0K), Down:16
 성재필(IP:221.♡.137.77) 11-02-07 14:38 
성도는 주님의 약속을 자랑하라고 만드셨는데 저희는 내 몸 자랑하기 바쁜 인생입니다. 날마다 주와 함께 죽여주시고 또한 살려내셔서 주의 피흘린 공로로 가득찬 세상을 보게 하소서.
게시물9,186건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읽음
3537   003강-욜1장15-20(그날, 여호와의 날)110828-(이 근호… (1) 이한례 11-08-29 2284
3010   003강-호2장1-5(음행)-hos110109-(이 근호 목사) 이한례 11-01-12 2552
3058   004강-계1장8-9(예수님의 환난)-rev060312 박온정 11-01-29 2513
2979   004강-렘 2장5-9(무익한 것)-jer090401-(이근호목사) (1) 오용익 11-01-04 2723
2909   004강-삼하3장1-5(사울의집과다윗의집)-2sa091108-(이… 이한례 10-12-15 2702
3551   004강-욜2장1-3(에덴동산과 종말)110904-이 근호 목사 이한례 11-09-06 2246
3032   004강-호2장8-13(본래의주인으로)-hos110116-(이 근호… 이한례 11-01-16 2965
3072   005강-계1장10-16(주의 날)-rev060319 박온정 11-02-04 2502
2918   005강-삼하4장4-12(사울집안의몰락)-2sa091115-(이 근… 이한례 10-12-17 2605
3560   005강-욜2장4-11(맹렬한 심판 기세)110911-이 근호 목… 이한례 11-09-12 2599
3047   005강-호2장14-20(주인의 언약으로)-hos110123-(이 근… (1) 이한례 11-01-23 3146
3085   006강-계1장16-20(주님 앞에서의 교회)-rev060326 박온정 11-02-07 2487
2922   006강-삼하5장1-3(이스라엘의왕)-2sa091122-(이 근호 … 이한례 10-12-18 2566
3574   006강-욜2장12-14(마음을 찢으라)110918-이 근호 목사 이한례 11-09-20 2612
3061   006강-호3장1-5(주인님의 깊은 뜻)-hos110130-(이 근… 이한례 11-01-31 2509
3125   007-계시록2장1(주의 사자)-rev060402 (7) 박온정 11-02-15 3228
2937   007강-삼하5장6-10(다윗성)-2sa091129-(이 근호 목사) (1) 이한례 10-12-24 2691
3584   007강-욜2장18-24(새 포도주와 기름)110925-이 근호 … 이한례 11-09-26 2318
  007강-호4장1-5(멸망당하는 어미)-hos110206-(이 근호… (1) 이한례 11-02-06 2798
3127   008강-계2장1-5(에베소 교회)-rev060409 박온정 11-02-16 2860
맨처음 이전 [1] [2] [34 [5] [6] [7] [8] [9] [10] 다음 맨끝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