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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6 15:02:38 조회 : 2864         
008강-계2장1-5(에베소 교회)-rev060409 이름 : 박온정(IP:211.202.16.177)

008강-계2장1-5(에베소 교회)-rev060409 /이근호 목사



요한계시록2:1~5



『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아멘.



교회는 천국을 이야기해야 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천국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현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의 ‘천국이 없다’ 그 이면에는 ‘지옥도 없다’ 그렇게 단정하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없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는데 왜 교회 너희들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우기느냐, 천국과 지옥이 있으면 모습을, 그런 양상을 드러내봐라, 라고 나오게 마련인 겁니다.



따라서 그것이 우리를 귀찮게 한다 생각하지 마시고 불신자들이 그런 식으로 도전하고 시비 거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왜냐면 자기에게 뭔가 천국이 있음을 보여 줄 사명 같은 것이 교회에게 부여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도라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기회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들이 주시한다 이거지요? 남들이 보고 있다 이거죠.



천국이 있다고 우기는 너희들이여, 천국이 어떠함의 너희 모습을 우리에게 전달해 달라, 이러한 요구가 우리 외곽에서 주어질 때 그걸 번거롭게 여기거나 미워할 것이 아니라 성도의 운명이라는 것은 ‘천국 있음’을 보여주는 값진 운명이구나,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셔야 되는 겁니다. 교회가 천국, 천국이 교회된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하는 일마다 만사형통이 천국이 아니라 천국의 특징이 뭐냐 하면 주 예수그리스도 앞에서 자신들의 가치가 녹아 없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온 세계위에 찬양을 받고 다른 이름을 가진 모든 피조물들은 무릎을 꿇은 상태가 천국입니다.(빌2:10-11) 예수그리스도의 모든 공로와 영광스러움과 칭찬꺼리는 다 주님께 쏠리게 하고 그 앞에서 자신의 가치 의미를 서로서로가 스스로 생각지 않은 상태가 천국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천국이기 때문에 교회가 무엇이냐, 교회는 자기 생각을 버려야 되는 곳이 교회다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여기에 대해서 주님께는 칭찬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서 이런 칭찬을 하시는 것은 여기 1절 끝에 보면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이래 돼 있어요.



주님께서 금 촛대 사이를 다니십니다. 금 촛대 사이사이를 다니신다는 말은, 여러분 중간고사나 학기말이나 시험 칠 때에 시험 감독하는 선생님께서 책상과 책상 사이를 다니시죠? 괜히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컨닝 하는가 싶어 살피기 위해서 다니시는 겁니다. 관심 있다 이겁니다. 한시도 교회에 대해서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책상과 책상 사이를 분주하게 다니시는 감독선생님께서 다니시면서 커닝 하는가 관찰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주님께서는 ‘교회가 천국이 되었느냐?’ 라는 차원에서 과연 천국다운 교회냐, 관찰하시기 위해서 구석구석 다니시는데, 다니시면서 자칭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하지만 가짜예요. 가짜를 추방시키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아주 후한 점수를 주시는 겁니다.



잘했다, 네가 천국에 대해서 아는구나, 그렇지 천국은 그런 자를 용납해서는 안 되지, 진정코 천국이 되고자 한다면 가짜 사도를, 가짜 목사를, 가짜 당회장을 추방을 해줘야 되는 겁니다. 주보 뒤에 있는 글 보셨나 모르겠지만 주보 뒤에 ‘이번 주 설교요약’ 에 보면 안 보셨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게 있어요. ‘오늘 본문에서 소위 전문 성직자를 에베소 교회가 거부한 것에 대해서 주님께서 칭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래 돼 있어요.



전문 성직자를 에베소교회가 거부한 것에 대해서 주님께서 칭찬한 대목… 자칭 사도라하고 주의 종이다 하는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복음을 전해야 될 사명이 우선이 아니라 목사, 당회장이라는 직책에 사활을 거는 사람들. 자기 평생 밥 먹고 살 수 있는 자격증을 지녔다는 것으로 목사 노릇을 해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 자칭 전문 성직자들.



전문 성직자라는 것은 전문이기 때문에 자격증이 있게 마련이고 그 자격증이 자신의 본질을 대신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사람. 그 사람이 거짓사도들입니다. 거짓선지자들입니다. 지금 교회가 천국이 돼야 되거든요? 왜냐면 주님께서 책상사이를 다니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낮잠 주무시는 게 아니고, 분주하게 교회마다 다니시기 때문에 교회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커닝해서도 안 되지만 성경에서 칭찬하는 것에 대해서는 수용을 해줘야 되요.



그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절대로 교회에서 전문 성직자, 자격증을 가졌다는 그 이유 때문에 목사를 계속하고 설교를 계속하겠다고 우기는 자를 절대로 용납하면 안 돼요 그게. 용납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갑자기 여기서 열불나요 제가. 이것처럼 교회에서 십자가 지신 분이 한 분이어야 되요. 교회에서 우리의 구원의 토대가 되는 분은 한 분으로, 계속해서 한 분으로 남아야 되요. 중간단계가 없어야 되요.



계속 한 분으로 남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분의 특징이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걸 해결하기 위해서 계시는 분은 천국 같으면 한 분이어야 되는데 그 한 분의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이십니다. 보이지 않지만 부활하셨기에 존재하잖아요.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믿지 않습니까?



교회는 십자가지지 않은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면 다 같이 죽어가는 마당에 누굴 믿고 누구에게 기대를 건다는 말입니까. 주님 아니면 다 같이 희망없는 인간들을 어떻게 그 인간들을 믿는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중간 다리, 주님을 대신하겠다는 그런 다리를 거쳐버리면 그것은 책상 사이를 왔다갔다하시는, 교회를 왔다갔다하시는 주님이 보시는 그 천국이 아니에요. 아예, 천국을 포기한 겁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은 주님의 뜻에 따르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자격증 가진 목사 말을 들으려고 하느냐, 그것은 교회를 방치했기 때문에 그래요.



지난 주 처음 왔다고 해서 그 교회를 남한테 미루고 방치하면 안 돼요, ‘목사님 장로님 알아서 잘 하시는데…’ 이렇게 미루면 안 됩니다. 미루게 되면 하나님이 에베소교회에 편지한 이 편지는 교회에서 특정계층에 속한 사람에게만 주시는 편지가 되지, 지난 주 처음 온 사람한테는 유용성이 없어요. 무효가 되는 겁니다.



이 편지는 천사에 의해서 나에게 전달된 편지지 오래된 사람, 중직 자들에게 준 개인에게 읽으라고 주는 편지가 아닙니다. 지난 주 처음 왔다 할지라도 그 교회에서 전문 신학교 출신이니 목사직 계속해야겠다고 우기는 인간이 있다면 그것은 용납해서는 안 되죠. 지난 주 처음 왔다 할지라도. 왜?! 이 편지는 주님께서 나에게, 내가 믿고 있는, 신봉하고 있는 주님께서 나에게 준 편지기 때문에 이 편지를 거부한다는 것은 그러면 그 사람은 천국이 아니라도 좋다는 말입니까? 교회가 천국이 안 되도 나와는 상관없다는 말입니까?



‘교회가 천국이 안 되도 나는 천국 간다,’ 이 말입니까? 아니거든요. 그런데 앞에서 일하는 사람을 감시하고 관찰하는 건 좋은데 그걸 방치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교회라는 것이 인간들의 자존심 같은 것이 얽히고설킨 단체가 돼서 인간들의 자존심이 얽혀있기 때문에 자기 자존심을 높여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꺼벅 엎어지고 자빠지고 거기에 매달리면서 호감을 나타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해야 될 권리까지 다 뺏어가도 멍청~하니 다 빼앗기고 ‘뭐, 알아서 해 주이소’ 자기는 인정받는 그것에만 자족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하나의 국가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제도라는 게 있어가지고 ‘대의제도’ 자기의 뜻을 대신해주는 중간계층이 등장해버려요.



중간계층이 등장하고 또 중간계층은 한 사람에게 권한을 독점시켜 줘버립니다. ‘칼 슈미트’라는 법학자는 말하기를 자기는 히틀러가 그렇게 좋대요. 왜냐 하면 어차피 권력은 한 사람이 쥐게 돼 있는데 있는 권력가지고 맘대로 휘두르는 게 어떠냐, 이런 식으로 하는 거죠. 그게 독재주의자라고 우리가 비난할 수는 있습니다만 은근히 독재되기를 기대하는 우리의 심리를 그 사람이 반영해주는 것도 되요. 왜냐면 자기 편하기 위해서.



힘든 건 당신이 다 알아서 하시고 우리는 당신 덕이나 보자,입니다. 당신의 영웅적인 성과는 이루어지고 우리는 힘들지 않고 영웅적으로 이루어지는 그 성과에 맛이나 보자, 식으로 나갈 수가 있습니다. 교회가 된다는 것은 힘의 조직체인데 그 힘을 한 사람에게 전부 다 양도해서 그 사람이 쥐고 흔드는 대로 따라가면 그냥 편하다, 라는 식으로 교회가 되게 되면 그런 교회가 소위 부흥 되는 거죠.


카리스마가 있으니까, 그런데 아까 제가 얘기했듯이 교회는 교회가 크냐 작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게 천국답냐, 천국답지 않느냐가 운명을 좌우합니다. 노아홍수 때 바깥에 있으면서 큰소리쳐봐야 소용없는 일 아닙니까? 가정이라 하는 것은 식구가 많다고 더 위대한 가정이 되는 게 아니에요. 식구가 많든 적든 간에, 평상에서 살든 간에 가정은 행복한 게 최곱니다.



그런데 가정이 크다고 해서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교회라 하는 것은 복도를 다니시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보다도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높이느냐에 몰두하고 관심이 쏟아져야 그게 교횐데 사람들은 주님이 보이지 않으니까, 보이지 않는 주님보다도 보이는 어떤 정치적인 세력에 매료되어 가지고 그것이 자신의 자존심을 대신하고, 나는 큰 교회 다닌다든지, 자존심으로 그걸 대체하려는 거예요.



큰 교회 집사라든지, 그만큼 신용도가 단단하다든지 이런 쪽으로 나온다 말이죠. 그러니 사람들은 어느 정도냐 하면, 새로운 아파트단지에 새로 지은 상가에 치과를 낸다든지 약국을 하나 내면 거기서 제일 큰 교회 가가지고 ‘늘 푸른 약국 개업했습니다’ ‘빛난 이 치과 개업했습니다’ 감사헌금 내고 그건 단골 모으겠다는 그런 심보죠. 교회에 예수그리스도가 빠졌다고 지레짐작 하고 가는 거예요.



교회라 하는 인간들끼리 있으면 우두머리 목사가 오야붕이고 밑에는 자기 부하들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사람들은 편하게 오기도 하고, 만약에 ‘주님이 계십니다, 자기를 낮추세요, 부인하세요’ 하면 그런 교회는 부흥이 안 되거든요. 그러니 주님께서 거짓사도라 쫓아내는 것을 칭찬하는 것은 인간들의 심보에 얼마든지 거짓교회들을 양산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다 아시는 상태에서 이 말씀 하시는 거예요.



그 당시 에베소교회 뿐만 아니고 모든 교회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에베소교회야 우상덩어리 사도바울이 3차전도해서 세운 교횐데 가득한 우상, 위대한 아데미여! 하면서 우상을 섬기는 가운데서 장로님 기도한대로 좁은 길을 가겠다는 다짐 하에 세우는 교회이기 때문에 물론 자기는 복음 아닌 것은 거부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교회가 너무 많다 보니까 교회가 우상을 자처하고 나서게 된 겁니다.



사람들이 거짓사도에 대해서 거짓사도냐 사도가 아니냐 하는 것은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사도의 감독된 자의 특징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성령님께서는 감독자로 세워서 자기 양떼를 치게 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양떼를 치게 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될 뿐입니다, 라는 것을 증거 할 수 있는 자라야 그게 목사지 예수님의 피에다가 인간의 노력과 헌신과 이런 것을 섞이는 목사는 성령께서 친히 세우시는 목사는 아니고 가짜 설교자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들 잘 아시다시피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목자와 강도를 구분 지었습니다. 선한 목자 따로 있고 강도 따로 있는데 그 기준이 뭐냐, 그것이 우리가 궁금합니다. 요한복음10장14절에 보면 그 기준이 이겁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이겁니다.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는 거죠. 그러면 강도는 뭐냐, 강도를 위해서 양의 목숨을 내 놔라, 하는 것이 강도가 되는 겁니다. ‘당신들은 죽더라도 나는 먹고 살아야 되겠다.’<ㅡ강도 이게 강도예요.



목자는 ‘내가 죽는 건 괜찮고 여러분들은 사세요.’<ㅡ선한목자 이게 참된 선한목자입니다. 목자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 이유는 자기한테 이익이냐 손해냐 보다도 이게 참된 진리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그것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나를 추종하느냐, 이게 관심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뭐냐, 말씀이 뭐며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사람.



그리고 그 말씀을 위해서 목숨조차 중요시 여기지 않는 사람. 그걸 선한목자라고 돼 있어요. 이게 기준입니다. 이 기준을 주님께서 그대로 요한계시록에 적용시킨 거예요. 이런 거짓 목자들 추방하라고 당부하신 것은 악마는 교회라고 무서워하는 그런 악마는 없습니다. 요즘 악마는 안 그래요.



따라서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세워놓았다고 다른 사람이 그걸 안심하면 안 돼요, 이제는 우리는 참된 교회다, 복음 아는 교회다 안심하지 마시고 우리들 자신이 늘 긴장해서 지옥 가는 교회로 방치하면 안 돼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책망할 게 또 나옵니다. 그거에 대해서 칭찬했고요, 책망할 게 뭐냐 하면



『계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돼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사랑으로 구원했다는 것을 여러분들 다 아시죠?



만약에 거짓사도를 쫓아내고 칭찬도 받고 훌륭하다는 소리 듣게 되면, 그 다음에 거짓사도를 쫓아낸 그 행위 자체가 우쭐대게 만드는 토대가 되요. 그래서 복도 사이를 왔다갔다 하시는 주님께서는 얼마나 주도면밀한지 네가 어떤 행위는 잘했다마는 그것이 반드시 사랑에서 나와야 주님께서 원하는 것이다, 그 사랑이 뭐냐 하면 네가 너 자신에 대한 사랑보다도 우리 주님에 대한한 사랑에 의해서 누굴 쫓아내든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도출 돼야 된다는 겁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 이것만큼 성경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대목이 없다고 봅니다.(아멘) 왜냐면, 사랑이기 때문에, 행위가 아니거든요? 사랑이다 말이죠. 사랑은 동일한 행위를 해도 사랑 없는 가운데서도 모방할 수 있고 흉내 낼 수가 있습니다. 행동가지고 파악이 안 돼요. 그래서 이 사랑이라는 게 어려운데, 원래 사랑이라 하는 것은 우리한테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게 아닙니다. 우리한테는 사랑이란 게 나올 수가 없어요. 왜냐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듬는데 정신이 팔려있는 사람입니다. 공기와 햇빛 주시고 비를 내리시고 우리에게 거주할 집을 주시고 먹을 양식을 주시고 아무리 하나님께서 은택과 은혜를 줘도 우리는 뭘 하는데 투자를 하느냐 하면, 나의 잘남과 훌륭함과 위대함을 견고하게 하는데 소비시키고 마는 거예요.



‘주님 덕분에 잘 됐습니다,’ 말은 하지만 그것은 주님에 대한 예의범절 수준, 주님에 대한 상식의 선이고 정작 사랑은 나에 대한 사랑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걸 어떤 학자들은 정체성이라 하는데 전체주의 알죠? 전체를 포함하는 것.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에 어떤 친구를 만나든 교회를 다니든 자기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 그런 것은 괴물처럼 삼켜 삼키면 삼킬수록 자기 힘의 영역이 넓혀지는데 그것을 다 소비시키고 마는 거예요.



자기 영역에서 자기가 절대 신이 되고 내 영토를 넓히고 자기 권한을 교회에서 많이 번지게 해가지고 자기 사람들을 많게 하고. 그러니 말로는 주님을 사랑한다 하지만 주님을 사랑한다는 그것을 문제로 삼아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자기에 복속된 사람으로 자기 수하의 사람으로 만들어내려고 서로들, 서로들 애쓰고 있는 거예요. 그게 무슨 사랑입니까. 이기주의죠.



그래서 이 사랑이라는 것을 해석하기 힘든 거와 마찬가지로 학자들마다 성경에서 난해구절, 참 해석하기 힘든 구절 중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뭐냐면, 디모데전서 2장15절입니다. 그 대목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여자가 아이를 놓음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이 대목입니다. 이 대목이 굉장히 어렵다는 거예요. 이 대목을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밖에 모른다는 것을 제가 방금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남자에게 여자, 여자에게 남자는 평소에 자기가 알아서 자기가 해석할 수 없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세계에 속한 느낌을 서로에게 주고받고 합니다.



여성이 다가왔다는 것은, 남성은 때려죽여도 여성을 이해 못해요. 제가 결혼식 주례하면서 당부하는 게 그거거든요. 서로가 각자가 자기 집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가 이질적인 것, 서로 확연하게 다른 두 가정에서 성장하고 구축된 그 성격이 둘이 함께 맞는다는 것은 이거는 탁구공처럼 튕길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둘이 눈빛이 맞았는지 뭔가 맞고 서로 수긍해서 동의해서 결혼했다는 것은 그거는 사랑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안 돼요. 다른 걸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살아온 버릇, 그 건방진 버릇이 신기하고 낯설고 이상스런 존재를 만날 때 허물어져버리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당신과 함께 같이 살 수만 있다면 내 모든 것을 포기해도 당신만을 위하여 살리라. 이거거든요. 이게 사랑이라 말이죠. 그거 한 2초 가지만..ㅋㅋ



당신만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보고 싶은 당신이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당신이 요구한 대로 다 들어주고 그동안 내가 철딱서니없이 나만을 위하여 누굴 만나도 다 내 것을 만들어야 속이 차고 비로소 속이 풀리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나밖에 모르던 것이 왠지 당신 앞에서는 허물어졌다는 겁니다. 허물어져버릴 때 그걸 사랑이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절대사랑, 첫 번째 사랑을 다 잊어버렸냐 말이죠. 거짓목사 쫓아냈다고 그걸 자랑스러워하고 그게 아니다 말이죠. 거짓목사 쫓아낸 그걸로 천국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계속 그 사랑이 유지될 때 천국이다 말이죠! 자기를 부인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처음 사랑을 만날 때는, 자기 이기주의로, 너는 죽든 말든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그러한 총각들 처녀들 생각에서 만나다가 갑자기 하나님이 주시는 신비로움, 손만 만지면 짜릿한 그런 감촉,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나로 하여금 그동안 살아왔던 나의 모든 생각들을 허물어버리는 한 요소로서 둘이 결혼하게 됩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난 뒤에 몇 개월 가지를 않아요.



시들해져버리고 중고가 되 중고. 이제는 타성에 젖어버렸어요. 그때 그 짜릿함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합니다. 거기서 둘이 싸우기 시작하는데 그 싸우는 시절이 제 삼자의 출생으로 말미암아 휴전상태에 들어갑니다. 그 삼자가 누구냐 하면 새끼를 낳을 때, 자식을 낳으면서 그때부터 자기가 어머니가 되거든요.


 


   이제는 남편과의 문제가 아니라 자식이 보기 때문에 싸우는 것도 속으로 삭히면서 안 싸워야 되는 걸로 이제는 남자도 그냥 남편이 아니라 아버지가 되기 때문에 뭔가 하고 싶어도 자식이 보기 때문에 자식 앞에 책임지는 사람으로 스스로 뭔가 자기의 성격도, 담배도 끊고 술을 끊고 주식도 대충하고 스스로 자기를 아이 앞에서 부인하고, 총각 때는 늦게 오고했는데 자기 맘대로 안 살고, 낯선 새로운 시대로 들어간 겁니다.



이것이 「해산함으로 말미암아」제 삼의 인물이 등장함을 말미암아 그 새로운 3의 인물 앞에서 -그게 주님의 사랑이거든요.- 주님의 사랑의 열매 앞에서 나는 다시 어떠해야 되는가를 자기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겁니다.



이것이 이러한 경우가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바로 다윗과 밧세바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여러분, 다윗이라는 왕이 밧세바라는 부하의 부인과 통간을 하고 그 남편은 전쟁터로 나가는 사이에 그때 나단 선지자가 와가지고 ‘다윗 당신은 바로 죄인입니다!’ 라고 지적했을 때에 다윗이, ‘예, 맞습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하고 수용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아기가 때어났습니다. 그때 그 관계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태어났을 때 다윗은 아픈 아이를 살려달라고 죽어야할 것은 나지 왜 아이가 죽어야 하느냐,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으니까 - 죽어야 되는 것은 나입니다. 애를 죽이지 마세요. 애걸복걸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만 죽고 말죠. 그걸 통해서 주님께서는 이 다윗을 살리기 위해서 애매한 아무 죄도 없는, 죄 값을 대신한 그 아이가 내 죄를 씻어주기 위해서 대신 죽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죠. 그 애가 죽으므로 말미암아 내가 살아난 거예요.



그전까지는 다윗은, 내 아기니까 내가 책임지고 살려야 합니다. 내 소유의 아기로 봤는데 그 아이가 죽고 난 뒤에 다시 간통한 밧세바와 관계를 해서 여디디야,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이름의 솔로몬을 낳습니다. 솔로문은 더 이상, 다윗 본인의 아이가 아니에요. 이건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제 너의 모든 죄를 청산했다는 증거로서 정식으로 밧세바를 다윗의 부인으로 하나님께서 새로 가입시켜 주신 사랑의 증거로서 솔로몬은 밧세바의 사랑의 아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 14대 15대 14대인데, 어떻게 중간에서 15대가 되느냐 하면, 다윗이 솔로몬을 낳은 게 아니고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다윗이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은 게 아니고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밧세바의 남편이 다윗이 아니고 죽은 우리야가 남편이라는 거예요. 여전히.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빼버리고 14대 14대 14대 합해서 42대가 되는 것이 마태복음1장에 나오잖아요. 이것은 결국 뭐냐 하며는, 사랑이라는 것은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교회가 계속 교회가 되는 것이지 교회를 그냥 놔둬버리면요 교회 전체 자체가 자기 자존심을 옹호해주는 바깥 조직체가 돼 버려요.



그래서 교회가 으쌰 으쌰 위해주면 교회 다니고 교회가 나를 무시하면 교회 안 나오고, 교회에서 나의 건질 것이 없으면 교회 안 나오고, 그렇게 돼 버린다고요. 장로 투표 할 때 문제가 장로 투표에 떨어지면 교회 안 나오고, 권사 투표에서 권사 투표에 떨어지면 교회 안 나오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교회도 투표 한번 해봐야 되요. 떨어진 사람 교회 나오나 안 나오나.



교회 복도에는 주님께서 다니십니다. 지금. 거짓 목사 쫓아낸 게 잘한 게 아니에요. 인간이 나밖에 모른다는 거. 교회 전체가 날 위해 주어야 그 교회 다닐 맛이 나겠다는 거. 그것이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절실하게 우리는 느껴야 되는 겁니다. ‘나는 안 그렇다.’ 안 그럴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사건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게 들통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들통날 때마다 이게 바로, 내가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사랑을 이미 확증했다는 사실. 주님께서 이미 사랑을 확증하는 도장을 꽝! 찍었어요. 이미 내가 어떤 경우라도 너를 사랑했노라, 하고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도장을 찍어줬어요.



어떤 사람은 십자가 사건이 사랑의 도장인 줄 모르고 기도할 때 병 낫는 거, 방언 한 것 이런 걸 가지고 사랑이라고 착각한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귀의 속임수예요. 그것은 거짓목사들이 사람들 가지고 놀 때 하는 수법들이에요. 거짓목사냐 아니냐 하는 것은 오직 진짜 사랑에 확증된 십자가 사건과 복음만 전파해야 참된 목사예요. 십자가 사건만 전하는 목사가 참된 목사라고 우기는 목사도 주의해야 됩니다. 그것도 주의 해야 되요.



어쨌든 지금 보이지 않는 분이 지금도 촛대사이를 다닐 수도 있다는 것. 우리는 그걸 보이는 사람한테 같이 어설프고, 같이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을 기대하지 마세요. 내가 저 사람을 이렇게 잘해주는데, 저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목사가 잘 안 해주고, 헌금도 많이 했는데 잘 안 알아주고 -우리교회에 해당도 안 되지만 ^^*-이런 식으로 자꾸 보이는 사람에게 기대를 걸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분이 십자가 사건으로 첫 사랑을 보여줬습니다.



나올 수 없는 사랑을, 십자가만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낮추는 사건, 사건들이 지금 교회를 아직도 우리가 사랑해야 될 이유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들이 조금만 잘한 일을 하면 자기 자랑하기에 분주하고 조금만 못나면 낙담과 낙담을 해서 누구 탓, 누구 탓하고 결국 자기밖에 모르는 소심한 인간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웬 은혜인지 웬 축복인지 그 십자가가 강도조차도 구원하는 십자가가 창녀조차도 구원하는 그 보혈의 피가 저희에게 해당이 됨을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 사람 믿는 게 아니고 십자가 피 믿었사오니 나를 낮추면서 교회가 천국을 바라보면서 변치 않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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