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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6 14:30:46 조회 : 2256         
004강-욜2장1-3(에덴동산과 종말)110904-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7.76)
 004강-욜2장1-3(에덴동산과 종말)110904-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요엘2장1절에서 3절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1271페이지입니다.


요엘2:1-3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찌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 전의 땅은 에덴 동산 같았으나 그 후의 땅은 황무한 들 같으니 그 들을 피한 자가 없도다”


하나님께서 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현재 우리의 형편을 도와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없애는 것도 하나님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위치에서 없애는 것도 하나님의 몫이라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찾아왔을 때 하나님의 뜻은 이렇습니다.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거둬 가시는 자도 하나님이라.’ 한나의 찬송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라는 말씀이 찬양 속에 들어있거든요.


그럴 때 항상 우리의 반응이 뭐냐 하면, 죽이고 살리고 가난하고 부하고 북치고, 장구치고 하나님이 혼자 다하면 우리는 뭐냐 이 말이죠. 우리의 인격이라든지 가치라든지 우리의 할 일이라든지,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의미는 그러면 남아있지 않느냐, 싸그리 모든 걸 하나님이 해버린다면 인간은 괜히 왜 만들어 놨느냐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언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택했다는 말은 하나님이 영광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 너희들을 택하여 세웠다. 그것도 만민 중에. 내 앞에 하나님을 뒤로 하고 내 백성을 앞장세움으로 말미암아 ‘내가 잘났다.’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구원받았다.’가 아니라 ‘나를 이렇게 구원시킨 분은 진짜 하나님인데 숨어있던 하나님이 나한테도 나타났는데 그분은 이러이러한 일을 지금 벌이고 계시고 마감은 이러이러하게 마감을 하시는 분이십니다..‘라는 걸 증거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세운 겁니다. 그걸 피조물이라고 쉽게 이야기해서 피조물이라 하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반발이 뭐냐 하면, 그래도 피조물을 위해서 인격이라든지 가치라든지 있을 게 아닌가, 그래 피조물이 만날 로봇처럼 기계처럼 그렇게 하나님에 의해서 움직임을 당하면 그건 인간이 아니고 기계에 불과한데 설마 하나님께서 기계 만들려고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겠느냐 생각이 들 거예요.


신약 성경에 마지막 대목에 보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상에 천사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위해서 천사보다도 내가 너희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목숨을 바친 것이 그냥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천사나 다른 피조물이 아니고 오직 택한 자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전부를 집어넣은 거예요. 전부를 다 집어넣었으니까 옛날 껍데기만 쥐고 나의 가치, 나의 의미 하지 말고 쑤욱 하고 내 속에 들어온, 들어와 계신 분이 누구냐에 우리의 시선과 관심을 모아야 됩니다.


‘나는 예수 믿었으니까 훌륭하다, 가치 있다.’ 이렇게 나와 버리면 이건 자기 껍데기 쥐고 저를 자랑하는 셈이 되거든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하나님 자체가 들어온다는 말은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옛날 우리가 기억나지도 않는 에덴동산을 되풀이해서 적용시키겠다는 이 말입니다. 에덴동산을 되풀이해서 집어넣겠다.


그럼 에덴동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에덴동산은 사람위주가 아닙니다. 에덴동산은 사람 좋아라고 있는 세상이 아니고 거기에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통해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와 그리고 심판의 원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에덴동산이 있는 거예요. 그걸 제가 강의 시간에 ‘세팅 돼 있다. 짜여 있다. 구성돼 있다.’ 이 말입니다. 그 구성요소 중에 하나가 사람 이예요.


하나님께서는 선악과와 생명나무, 인간, 이 세 가지를 배치를 해놓으시고 선악과를 안 따먹은 조건하에만 니가 인간이다 하시고 만약에 선악과를 따먹어 버리면 너는 인간이 아니고 하나의 흙이 된다. 하나의 주체가 아니고 실체가 돼 버려요. 실체란 말은 쇠 덩어리, 나무 덩어리, 흙, 이런 금속, 물질처럼 그냥 만져지는 것, 선풍기, 컵처럼 분명히 있는데 실체로 덩어리로서 물체로서 있는 것, 여기 컵을 위해서 주께서 십자가 지시고 이런 거 하지 않습니다. 그냥 흙 이예요.


그렇다면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한 사람이지만 그 에덴동산에서 살 수 있지만 선악과 따먹어버리면 더 이상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위해서 만든 동산에서 실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좀 나가주세요.’ 해서 추방시켜 버립니다. 에덴동산의 가치를 위해서. 에덴동산은 쓸데없이 인간도 아닌 것이 들어와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낸 거예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에덴동산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간다는 말은 어디에서 뭐로 바뀌어야 하느냐 하면 실체에서 우리는 사람으로 바뀌어져야 그 나라 갈 수 있습니다. 흙이 되어가는 입장에서는 그 나라에 갈 수가 없는 입장 이예요. 한때 살았는데 실제로는 그건 내 기억 속에만 있는 남의 동네, 남의 나라가 돼 버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선악과 따먹었느냐.’ ‘따먹었습니다.’ ‘그러면 못 들어온다. 나가줘.’ 그래서 그들은 나갑니다. ‘다시 돌아올게요.’ ‘안 된다.’ 하여튼 막아버리죠. 결국 이 말은 하나님 쪽에서 추방시켜 버리고 다시 두 번 다시 얼씬거리지 말라고 길을 막았다는 말은, 니 인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에덴동산이 중요한 거예요. 이거는 우리 사상의 전환 발상이 바뀌어져야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니까 설마 나를 버릴 리가 있겠느냐.’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사람에 해당되는 것이고 흙에는 그게 해당이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사람이 사람답게 되려면 우리 속에 흙에서 사람으로 바꾸어주는 요소가 새롭게 주어져야 됩니다. 그건 참 사람, 마지막 아담, 하나님 보시기에 완벽한 인간, 최후의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해서 우리 속에 같이 와 계시면 비로소 우리는 껍데기 가지고 사람이라 우길 수 없고 우리 안에 내용물 가지고 니는 에덴동산, 천국에 살 수 있는 인간이라고 규정받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의 모든 과정과 절차는 뭐냐 하면 흙인데 어떻게 해서 사람이 되느냐에 대해서 주님께서 얼마나 고생했고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는가, 오직 모든 영광을 예수님께만 공로를 돌리는 그 스토리가 성경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사람이라 우기는 우리들이 해야 될 몫은 무엇이냐, 우리가 해야 될 몫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소용없는가, 우리가 행한다는 것은 소용없지만 주께서 우리를 찾아오고 방문한다는 데서 의의가 있습니다.


엘리사 시대 때 그 이스라엘 땅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른 과부한테는 찾아가지 아니하시고 한 사람 사렙다 과부에게만 찾아갔다고 누가복음에 보면 4장에 일부러 언급돼 있어요. 무슨 뜻일까요? 사랑의 하나님? 전부 다 찾아간다? 아니다 이 말이죠.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한 사람만 살고 많은 소경이 있었지만 몇 사람만 눈을 뜨게 하는 것은 그것은 뭐냐, 너희 위주가 아니고 너희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이 생각해 놓은 인간이 따로 있는데 그 만들기 작업에 이미 하나님 쪽에서 개시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시온 산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어떤 지명이 나올 때는 항상 뭣을 보시면 되느냐 하면 에덴동산의 원칙, 인간을 추방하고 생명나무를 보호하는 원칙과 원리를 특정 공간과 특정 지역에 심어놓았다 생각하시면 되는 거예요.


여기 2장 1절에 보면 시온에서 나팔을 불죠. 시온에서 나팔을 분다는 의미가 이것이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이렇게 돼 있습니다. 시온산은 지명 상 지금 어디 예루살렘 근체에 있는 산 이름인데 시온 산이라 해서 지도에 나오는 시온 산이 시온 산이 아니고 누가 거기에 기거하시느냐, 그것이 시온 산 되게 하고 안 되게 하는 결정적 요인입니다.


변화 산이라는 게 있지요. 변화 산 지금도 있어요. 변화 산 있는데 실제적인 의미 있는 변화 산은 그때 그 순간뿐이었습니다.  어떤 순간?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3명 데리고 올라갔을 때 거기서 엘리야와 모세가 마중을 나와서 함께 있었던 그 사건, 그러니까 제가 하는 말 용어가 어려운 게 뭐냐 하면 어떤 특정 공간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업적, 실적, 어떤 행함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말이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말 이예요. 어떤 사건이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이끌어 내는 거예요.


계속해서 그 구원 사건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어나고 있는데 왜 우리는 그 사건을 모르냐 하면, 사건을 한번 경험하게 되면 이것을 마치 훈장처럼 딱 잡아서 자기 행함의 실적으로 주머니에 소유를 해서 한 때 또는 과거에 10년 전에, 또는 20년 전에, 내가 5년 전에 이러이러한 놀라운 기적을 받았다. 그걸 계속 울궈 먹는 거예요. 5년이든 10년이든 계속해서, ‘그러면 집사님, 어제는요.’ ‘어제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5년 전에. '그러면 2년 전에는?’ ‘그때는 없었어.’ 그저 5년 전에.ㅎ 10년 전에.


사건은 매일같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매일같이 엘리야와 모세와 예수님이 무슨 이야기했는가를 우리에게 전달하는데 왜 그러느냐, 그 원래 원칙이 빠진 법이 없습니다. 원래 원칙은 우리에게 적용했다 안 했다 그런 원리 원칙은 없어요. 우리는 그걸 잊어버리고 몰랐을 뿐이지 매일같이 주님께서 에덴동산 원칙을 우리에게 적용시켰습니다. 때로는 우리 하는 일이 안 돼서 절망을 한 가운데서 성령을 받고 보니까 ‘아! 주께서 매일같이 인도하는 걸 모르고 한때 인도하는 줄 알았다.’라고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지만 거기서 돌아서면 또 ‘아! 며칠 전에 은혜 받았어.’ 또 며칠 전의 은혜로 엉터리 해석을 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이제 어떻게 구원하는가, 에덴동산 원칙을 어떻게 적용하는가, 이거 말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인터넷 보니까 고추 축제에 고추가 없다는 말이 나왔어요.ㅎ 고추 축제를 하는데 정작 알맹이 고추가 없어요. 고추는 없고 노래자랑하고 고추 아가씨 선발대회 이런 거 하고 끝나버리는 거예요.


그럼 고추 축제에 고추가 있으려면 계속해서 에덴동산에 주님은 안계시고 에덴동산이라는 껍데기들만 있으면 그건 정말 허전하잖아요. 얼마나 허무한 개그입니까?ㅎ 마치 교회처럼 말이죠. 형식은 모였는데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거예요.


창세기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세 사람이 찾아옵니다. 세분 다 하나님의 천사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그분들을 성부, 성자, 성령이라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한 분이고 천사가 두 분이라고 하는데 그건 모르고 하여튼 인간은 아닙니다. 천사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 이 목사님 말씀대로 사건이 터졌다. 사건이 터졌으니까 찾아왔으니까 이제 구원받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찾아올 때는 ‘야! 고생 많이 했지? 천국 데려갈게.’ 이렇게 오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생각 안 해요. 사건이라 하는 것은 우리 현재 껍데기밖에 없는 자리에다가 에덴동산 사건을 거기다 터지게 만들어 버려요.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그네, 천사처럼 보이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대접을 잘 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년에 이맘 때 쯤에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해요. 우리 같으면 ‘나 천사다.’ ‘감사합니다.’ ‘너 영접했나.’ ‘영접 했습니다.’ ‘너희들 구원받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하면 이야기 간편하게 끝나잖아요.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내가 하나님 섬겼는데 이렇게 방문해 주시니 확신에 확신을 더하는군요. 고맙습니다.’ 이러면 끝나는 이야긴데 뭐라 그러느냐 하면 ‘이맘 때 쯤에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항상 사건을 기다리는 우리가 예상 못한 사건을 일으켜요. 우리에게 하나님이 찾아온다는 것은 내가 기대하지 않던 내가 생각도 못한 일이 터져버립니다. 그 일은 현재 우리가 얼마나 믿음이 없었나를 까발리는 사건 이예요.


‘아들이 있을 것이라’ 할 때 아들을 달라고 한 적도 없고 아들을 기대한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 늙어빠진 할머니, 나이도 90가까이 된 사라가 천막 뒤에서 호호 웃습니다. 혼자 들키지도 않고 웃었어요. 그런데 천사가 ‘그럴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어. 너희들은 너희들 구원, 축복만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너희들을 사용하려고 한다.’ 사용 당한다는 것, 내가 여기 존재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주께서 나를 가지고 일을 벌인다는 그 일이 더 소중한 거예요. 우리는 평생을 가도록 이걸 잊지 말아야 되는데 평생을 가면서 이걸 잊어버립니다.


구원받은 내가 중요하고 나를 가지고 일을 벌이시는 주님의 그 착실한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안중에도 없어요.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같은 천국, 에덴동산의 일을 계속 반복시키는 겁니다.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할 때 웃었을 때 천사가 말합니다. ‘왜 웃었느냐.’ 사라가 이야기합니다. 그거 줄 그어놔야 돼요. 뭐라 그러느냐 하면 ‘제가 안 웃었습니다.’ 그 대목,ㅎ 하나님은 우리가 평소에 어떤 태도로 하나님 이름을 부르면서 예수 이름을 부르면서 어떤 안일한 태도로 살아가는가를 뻔~히 다 압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 이상으로 생생하게 아셔요. 너무 잘 압니다.


제가 울산 강의 가서 이런 이야기했거든요. ‘영은 육만큼 강하다.’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우리의 육이라 하는 것은 자식하고 부부관계, 남편, 아내, 형수, 시동생, 일가친척, 형제관계, 이것은 우리가 꼴 보기 싫다고 끊는다고 끊어질 관계가 아니잖아요. 절대 안 끊어지죠. 자식이 애먹인다고 ‘들어오면 호적에서 파가라.’ 한다고 자식이 유치장에 들어가서 연락하면 ‘안 간다.’ 할 부모가 없어요. 그래도 자식이고 못나도 지식이고 미워도 자식이고 고와도 자식이라고 자식의 일은 절대로 우리 힘으로 끊어지지 않습니다. 부모도 마찬가지고 모든 지 다 그래요.


인위적으로 키를 작게 하고 크게 할 수가 없습니다. 키가 작게 나왔는데 무슨 수로, 키가 큽니까? 이게 육이예요. 육은 절대로 우리 힘으로 육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천국에 못 가요. 육에서 난 것은 육이기 때문에 육에서 아무리 교회 다니고 몸부림 쳐봐도 우리는 하늘나라를 볼 수가 없습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으로 그냥 떨어지는 거예요. 비행기도 날면 착륙하게 마련이고 새도 피곤하면 땅에 떨어지게 마련 이예요. 인간의 육은 땅, 흙과 친밀하기 때문에 흙을 떠난 인간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런 천국보다도 눈에 보이는 흙, 금, 돈, 이게 더 좋다 이 말이죠. 더 친숙하다 이 말이죠.


무슨 수로 우리가 붕붕 떠서 하늘나라 갑니까? 안 되죠. 그런데 여기에 안 되는 것에 대해서 찾아오십니다. 안 되는 것을 찾아와서 우리 속에 없는 것을 이 껍데기밖에, 흙밖에, 죄밖에 없는 우리 속의 것을 죄에서 손을 집어넣고 거기서 의를 끄집어낸다니까요. 이게 놀~라운 기적 이예요. 우리는 보면 죄밖에 없어요. 그냥 돈, 세상, 출세, 성공, 자존심, 명예, 이거밖에 없어요. 그거밖에 없나 한번 들어가 볼까 해서 고무장갑 끼고 쓰윽 집어넣으면 ‘하나님 집어넣어도 없습니다. 죄밖에 없습니다. 그거 괜히 집어넣었어요.’ ‘그런가 한번 보자.’ 팔 걷고 집어넣었다 빼 보니까 거기서 하나님의 부활이 나오고 거기서 생명이 나온다 이 말이죠.


놀라긴 누가 놀랍니까? 주님이 놀란 게 아니에요. 아브라함이 놀란 거예요. ‘어! 하나님, 제 아내 태는 이미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 죽은 걸 알고 애 낳잖아.’ 요새 말로 하면 ‘주여 저 죄인입니다. 천국 못 갑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떠나소서.’ ‘내가 알고 왔다니까. 니가 가능성 있고 니가 훌륭할 수 있고 착할 수 있고 그것 보고 온 게 아니고 바짝 마른 해골인 줄 알고 온 거예요. 알고!!! 일을 일으켜요. 안 되는 줄 알기 때문에 주께서 일을 일으킬 만합니다.


두 번 다시 우리의 헌금과 기도와 전도로서 구원받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너무나 잘 알기에 ‘오~ 쓸 만하네.’ 이런 겁니다. 그게 우리의 가치예요. 한 발자국, 한 발걸음도 주께서 세시고 머리카락도 세시고 우리의 목숨도 주에게 달렸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주께서는 집어넣고 의를 끄집어냅니다.


십자가 죽었다가 부활한 이유가  뭔지 알아요? 죽었는데 거기서 생명이 나오더라. 따라서 ‘너도 죽었지?’ ‘죽었습니다.’ ‘자, 생명이 나오도록 해줄게.’라고 주님의 성령을 집어넣어버립니다. 그거하고 아브라함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문제, 이거 설명하고 설교 마치겠습니다.


그거하고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천사가 찾아온 이야기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는 거죠. 사도행전 19장, 이게 이번 수련회에서 한 디모데 전후서 하면서 일종의 핵심처럼 생각했는데 그걸 많이 강조를 못했어요.  사도행전 19장 15절에 이런 말씀 있습니다.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이걸 마귀가 이런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사람은 악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데 악마는 사도바울도 알고 예수도 알아요. 특히 내가 주목하는 것은 ‘예수도 알고 내가 사울도 알거니와’ 해서 옛날 이름 있잖아요. 사울이라 거명할 수도 있는데 악귀가 뭐라 하느냐 하면 ‘예수도 알고 바울도’ 사도바울이 바울로 이름 바뀐 것도 다 알아요. 희한한 일이라니까,ㅎ


그 이유는 뜸 들이지 않고 결론을 맺겠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 보면 ‘우리가 복음에 가리운 것은 세상 신, 악마가 믿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희미하게 안개를 끼게 해서 복음의 광채를 비취지 못하게 함이라.‘ 다시 말해서 내 껍데기, 내 존재가 중요하지, 주께서 다루시는 일이 안 중요한 걸로 마귀가 그런 식으로 연막작용을 우리의 모~든 일에 안개처럼 깔아놓은 거예요. 대구 육상대회 하죠. 그거 바쁘고 또 박주영이 세골 넣는 거 신경 쓰고 또 월급 오르는 거, 주식 폭락 그것도 신경 쓰고 모~든 것이 내 육에서 육으로 나온 그 일에만 신경 쓰게 만들어서 정말 껍데기밖에 없는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인간을 천국에 넣어 주고 영생 주는 그 작업에 대해서 우리가 그 신경을 고마울 줄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기뻐할 줄도 모르게 그렇게 악마가 역사합니다.


자, 천사가 왜 아브라함에게 왔습니까? 아브라함이 자기가 하나님 믿고 다 믿죠. 좋은데 본인은 아무리 믿어도 육이기 때문에 육에서 영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니는 육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 니를 놓지 않고 늘 너를 버리지 않았다.’ 방치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방치하는 인간, 버려두는 인간, 내어 버려 두는 인간이 제일 무서운 거예요. 매일같이, 매일같이 ‘너 또 육 생각했지?’ ‘예’ ‘니 또 웃었지?’ ‘웃었습니다.’ ‘웃어도 난 널 구원하겠다. 니 이름을 아예 이삭이라고 져. 니는 만날 하나님이 이야기하면 ’히히‘ 웃고 ’설마 그럴 리가, 내가 이거밖에 못하는데 어떻게 나 같은 인간이 구원받습니까?‘ ’내가 이 같은 너를 더 필요한 존재로 삼아서 이것이 불신앙이고 이같이 너밖에 모르는 인간도 주께서는 우리를 끄집어내는 작업, 시온 산에서 주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셔서 뭐라 하느냐, 세상 전부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소식을 듣게 하는 거예요. 우리는 불바다 만들겠다는 소식에 대해서 얼마나 우리는 겁을 냈습니까? 이제는 겁내지 마시고 손 털면서 ‘속 시원합니다. 잘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그런 생각을 성령을 통해서 할 수 있어야 돼요. 이게 성령을 통해서 될 일이지, 육으로 하면 ‘안 됩니다. 애 시집도 못 보냈습니다. 안 됩니다.’ 이런 식으로 말릴 거예요.


하지만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주께서 쓰시고자 하고 주께서 이런 일을 하시겠다면 우리가 말릴 수가 없고 오히려 저는 영광스럽습니다. 그런 말씀대로 쓰여 지게 하옵소서.‘라는 고백, 성도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느냐가 원칙이 아니었고 에덴동산에 추방될 수밖에 없었고 죄인이라는 사실, 그 원칙을 적용시키는 돌로 주께서 찾아와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는 만날 비웃고 하나님 일에 시큰둥하고 내 육적인 것만 몰두했는데 그럴 때마다 말씀 주셔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가치와 의미를 복음과 연관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주님의 늘 떠나지 않는 은혜를 평생 동안 증거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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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4   006강-욜2장12-14(마음을 찢으라)110918-이 근호 목사 이한례 11-09-20 2620
3061   006강-호3장1-5(주인님의 깊은 뜻)-hos110130-(이 근… 이한례 11-01-31 2520
3125   007-계시록2장1(주의 사자)-rev060402 (7) 박온정 11-02-15 3237
2937   007강-삼하5장6-10(다윗성)-2sa091129-(이 근호 목사) (1) 이한례 10-12-24 2702
3584   007강-욜2장18-24(새 포도주와 기름)110925-이 근호 … 이한례 11-09-26 2329
3083   007강-호4장1-5(멸망당하는 어미)-hos110206-(이 근호… (1) 이한례 11-02-06 2807
3127   008강-계2장1-5(에베소 교회)-rev060409 박온정 11-02-16 2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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