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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6 15:21:30 조회 : 2318         
007강-욜2장18-24(새 포도주와 기름)110925-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7.76)
 007강-욜2장18-24(새 포도주와 기름)110925-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요엘2장18절에서 24절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1272페이지입니다.


요엘2:18-24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군은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들짐승들아 두려워 말찌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서 놓치지 말아야 될 핵심적인 단어가 나옵니다. 그게 ‘땅’이란 것과 ‘시온의 자녀’라는 말이 나오죠. 성경을 보실 때 이 성경 자체가 특히 구약성경 같은 경우에 누구보고 이야기했느냐 하면 그 당시에 멸망하는 유대나라, 이스라엘 나라보고 이야기한 겁니다. 그런데 이 유대나라라는 것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특수한 사람인데 어떤 점에서 특수한 사람이냐 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있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찐빵에서 앙꼬가 빠지면 그건 찐빵이 아니죠. 앙꼬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그들에게 주어지게 되면 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위하여 그들이 존재하는 거예요.


사람이 우선이냐, 언약이 우선이냐 할 때 하나님은 언약이 우선입니다. 사람이 우선이 아니에요.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마는 앗수르 군대가 엘리사가 있던 그 예루살렘을 포위했어요. 그때 185.000명이 포위했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하룻밤에 185.000명을 다 죽였습니다.


이번 이라크 내전에서 시민군이 25000명 죽었어요. 많이 죽었지만 185.000명이 하루아침에 다 죽었어요. 그러면 그 185.000명이 한꺼번에 죽을 때 왜 죽이십니까? 다 같은 인간이고 인격적이고 다 귀한 자식들이고 귀한 군사들인데 왜 죽이느냐, 언약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착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귀한 것들이 있습니다. 귀한 것들을 지난주에 설교하면서 중국의 밀수 이야기했잖아요. 비누에, 잡지에 홈을 파서 마약을 숨겨 오듯이 밀수업자들에게는 비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홈 파인 잡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마약이 중요하거든요.


하나님도 언약이 중요해요. 언약이 중요하기 때문에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우주를 불로 태우시리라’ 하는 과격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너희들을 마지막에 다 불로 태우리라.’ 그리고 노아에서는 ‘물로서 다 죽이리라. 다만 노아방주란 언약만 살게 하리라.’


이것을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상식으로 이걸 믿으라고 내미는 우리자신들이 참 나쁘죠.ㅎ 이런 인격모독이 어디 있습니까? 대단한 인격모독이잖아요. 그러나 본인이 인격모독을 느끼든 말든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니고 이렇습니다. 이게 현실이고 이것만이 현실입니다. ‘다른 것은 죄송합니다만 현실이 아닙니다.‘라고 언급할 수밖에 없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언약이 중요한 입장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특수한 사람이고 이 특수한 사람에게 두 가지 다 나와요. 땅하고 시온 이야기가 나오는데 중요한 단어입니다.


땅이라는 것은 뭐냐, 그냥 땅이 아닙니다. 그냥 땅이 아니고 약속의 땅 이예요. 다른 말로 언약의 땅입니다. 땅은 땅이로되 언약이 중요하다는 걸 드러내는 땅, 이렇게 정리하면 됩니다. 땅인데 언약이 중요하다는 걸 드러내는 그런 작용을 하는 그런 특수한 땅이 된다 이 말이죠.


그래서 땅에 포도주와 기름이 이렇게 넘쳐난다는 것은 좋~다고 마시고 먹으라고 준 게 아니고 언약이라는 게 이만큼 언약 안에 이런 작용이 들어있고 언약 안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고 언약이 이렇게 특수성을 발휘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포도주요 기름이 되는 겁니다.


사람이 중요하다면 ‘야, 포도주 주는구나, 마시자. 기름 주는구나, 먹자.’ 그냥 인간중심이라면 ‘아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인데 마음껏 먹고 마음껏 감사해야지,’ 이렇게 된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그게 아니고 이 땅에 주는 기름진 것과 모든 것은 언약을 증거 하기 위해서 지금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걸 증거 하기 위해서 주신 그런 땅이기 때문에 이것 기름과 포도주가 오더라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찾아낼 수 있어야 된다 이 말이죠.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살았고 드디어 광야에서 살면서 만나를 줄 때 만나를 하늘에서 준 떡이라 할 때, 하늘을 잘라버리고 그냥 떡이라고 받은 거예요. 그냥 떡 같으면 애굽에 있는 국화빵하고 붕어빵하고 차이점이 뭐가 있습니까? 하늘에서 온 떡이기 때문에 하늘을 증거 하라고 준 떡인데 사람들은 당장 배고프니까 고기가 먹고 싶고 배고프니까 물이 필요하니까 ‘야, 물이다. 떡이다. 고기다.’ 이렇게 나온 거예요. 그러다가 망한 겁니다.


물을 먹을 때 광야에서 반석에서 나온 물이어야 되는데 그냥 물이다 이 말이죠. 반석에서 나온 물이라 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나온 물인데 십자가에서 나온 물이 생수인데 그냥 먹는 물이라고 생각하니까 그것만 먹고 죽은 거예요. 모든 게 그렇습니다.


그래서 항상 내 속에 언약이 있는가, 내 속에 약속이 들어있는가, 그걸 찾아봐야 됩니다. 그걸 성령께서 찾도록 도와주시죠.


그럼 땅은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주는 땅이라 치고, 그럼 시온은 뭐냐, 시온은 사람들의 집합입니다.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주기 위해서 언약을 위한 집합인데 그럼 기존 약속의 땅의 이스라엘과 차이점이 뭐냐 하면, 시온의 설명이 필요한데 잘 들어보세요.


시온이라 하는 것은 북쪽 이스라엘 쪽 수도가 아니고 거기는 사마리아가 수도고 남쪽 유다나라에 있는 성이 시온 성입니다. 이것은 북쪽의 10지파를 포기하고 남쪽의 유다지파 중심으로 2지파를 유다나라로 지은 거예요.


그러면 기존의 이스라엘하고 시온의 자녀하고 차이점이 뭐냐 하면, 기존의 이스라엘은 땅에만 살고 하나님이 땅에서 주는 기름진 것의 혜택을 입으면 그것이 이스라엘이 되었었는데, 시온은 그게 아니고 시온에서는 그 이스라엘 땅에다 복을 주시는 중심 되는 인물, 왕이 등장해서 그 왕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된 나라가 유다나라로 보시면 됩니다. 다윗이죠. 다윗이 왕으로 있던 땅이 시온 산이고 시온 땅이고 그것이 예루살렘이고 그 유다나라에 다윗으로부터 혜택을 입은 자들의 무리가 유다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약속의 땅에 사는 것은 자기 힘으로, 옛날 이스라엘처럼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 하신 그 범위 안에서만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을 시온의 자녀, 시온 성에 있는 백성이라 이렇게 하는 거예요. 굉장히 복잡하죠. 이 복잡한 게 왜 복잡한가 하면 우리는 그냥 얻어먹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자꾸 잘린다는 느낌, 제거된다는 느낌을 받죠.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 유다나라마저 잘리게 되고 제거돼야 됩니다. 성경에서 유다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현재 니가 알고 있는 유다나라가 잘려줘야 그게 삭제돼 줘야 눈에 들어오는 진짜배기 하나님께서 마지막 언약에서 준비된 진짜 시온 산에 있는 사람들, 144.000명이 그때 눈에 들어온다 이 말입니다. 그 이전에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대목들이 잘려내는 작업을 하는데 그걸 뭐라 하느냐 하면 ‘남은 자 만들기’


이 남은 자 만들기 특징은 오늘 본문에 18절에 보면 나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여기 긍휼히 여긴다는 것, 불쌍히 여겨준다는 것이 남은 자로 되는, 144.000명이 되는, 남은 자가 되는 핵심 포인트가 되는 겁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는 거!!


자, 이제부터 진짜 어렵습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아서만 남은 자가 된다면, 제가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데요.ㅎ 동전 10개 가운데서 1개를 취할 때 9개를 제하여 버리고 나머지 하나, 우리가 보통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럴 때 우리는 남은 자 할 때 아홉 개는 아니고 한 개 남았으니까 고 한 개를 남은 자라 하잖아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아홉 개 남았다 할 때 남아있는 한 개가 아홉 개 속성과 똑같은 속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쌍히 여김이 덧붙여지면 그 떨어진 나머지 하나가 남은 자로 승격됩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가 죄인이라고 이야기해요. 왜냐하면 떨어진 사람과 똑같은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만 차이점은 그 하나가 덧붙여진 거예요. 불쌍히 여겨줬다는 거예요. 안 불쌍히 여겨도 되는데 불쌍히 여겨주는 거예요. 그래서 불쌍히 여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자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자기가 알아서 저쪽과 밀어내고 지가 독특하게 특수한 존재가 되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래서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뭐냐 하면, ‘목사님, 우리 집에 다 제사지내는데 저는 제사 안 지내요.’ ‘우짜라고?'ㅎ ’남 담배 다 안 끊는데 나 담배 끊고 술 끊었습니다.‘ ’어쩌라고?‘ ’다른 사람은 십일조 안 하는데 난 십일조 했어요.‘ ’어쩌라고 그래.‘ ’우리 집안은 다 불도가 심한데 저 혼자 교회 나옵니다.‘ ’우짜라고.‘ 그렇게 한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특수한 존재로 만드는 거예요.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 때문에 기존 교인들 목사들하고 대화가 안 돼요. 어휴, 미치겠어요. 대화가 안 된다니까요. ’헌금 한 게 뭐가 나쁩니까? 전도한 게 뭐가 나쁩니까?‘ 만날 이래요.


‘죄인인데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런 고백이 안 나와요. 지독해요. 본성대로 간다고, 그 본성이 지독한 본성이라. 아무리 친절, 친절을 베풀어도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걸 더 어렵게 하면 인간은 타인을 통해서 자기를 발견하면서 타인과의 차별 나는 자기를 통해서 자기를 재구축한다. 어려운 말로 하지만 쉬운 말로 하면 이겁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이 내 잘나서가 아니라 전에 떨어져나간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데, 오직 하나 불쌍히 여겼다 하는 사실입니다.


그게 친절하게도 성경에도 나오네요. 로마서 11장 30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순종치 아니하므로 긍휼을 입은 거예요. 순종하지 말아야 된다 이 말입니다. 막 살아라 이 말 이예요. 또 나온다. 여기서. “순종치 아니하므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모든 인간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이렇게 돼 있다고요. 이게 뭐냐 하면, 어떤 인간도‘나 순종했습니다.‘하는 그렇게 나올 인간은 단 한 명도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아무도 순종 안 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판단하는 거예요. 이건 하나님이 ’땡땡땡‘ 판정을 내려 버린 거예요. ’나 순종했는데요.‘ 이따위 소리 하지 말라는 말 이예요.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두심은 그 가운데 긍휼을 입은 자만 남은 자가 되어서 구원하기 위함이라.‘ 그것이 시온 산에 있는 시온의 자녀가 되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목사님이 설명하는 하나님은 왜 그렇게 복잡합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인간은 자기가 하나님을 만들어 내니까 그 하나님을 자꾸 잘라내려 하니까 이렇게 힘든 겁니다. 그렇다고 잘린 거는 아니지만.


그러니까 뭐냐 하면 보통 인간들은 인간을 위로하는 하나님을 지가 만들어 내서 섬겨요. 죄 지적 안하고 자기를 우대해주는, 죄 지적하더라도 지가 반성할 수 있는 죄만 지적해 주는, 쉽게 말해서 죄를 알고 죄를 회개할 수 있는 나라는 인간을 우대해 주는 하나님을 원하는 거예요. 그게 아닙니다. 회개 백날 해봐요. 그것도 순종치 아니함 이예요.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이지, 어떻게 말씀 어느 대목 지키고 어느 대목 못 지키는 진짜 하나님은 그런 게 없다니까요. 우리는 매일같이 순종 안 하고 주께서는 매일같이 긍휼 주시고 매일같이 순종 안 하고 매일같이 긍휼 주시고, 지금 하나님하고 둘 다 바빠요. 한쪽은 죄만 짓고 한쪽은 은혜 주시고 둘 다 되게 바빠요.ㅎ


남은 자가 두 군데 나오는데 로마서 9장과 11장에 나오는데 둘 다 말씀드릴게요. 로마서 9장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모래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한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한테는 이야기를 안 해줬어요. 아브라함한테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니 자손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을 것이다.’ 이거 듣는 사람 다 오해합니다. 누가 오해한 줄 알아요? 유대사람이 오해했고 이스라엘사람이 오해했고 예수님을 죽였던 그 자들이 오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은 아브라함 자손이고 아브라함 자손이 이만큼 숫자가 많아져서 이스라엘 됐으니까 ‘예수 당신이 뭐라고 소리해도 우리는 믿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습니다.‘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는 말이 ’니들이 천국 가면 그 천국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브라함 자손이 천국 가는 건 자손이 아니고 진짜 아브라함 자손은 백부장 같이 아브라함 자손도 아닌데 예수님을 믿게 되어서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께 긍휼을 받아서 가는 사람만 천국 가고 그 외에는 ‘나가라. 본 자손은 엉뚱한 자리에서 있지 말고 다 나가, 다 나가.’고 내쫒는 작업이 예수님의 모든 말씀의 작업입니다.


남은 자만 남은 자 되기 위해서 다른 것은 잘라내는 작업이 하나님의 분류작업 이예요. 보기는 보아도 듣기는 들어도 믿지 못하게 하는 작업이이라니까요.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오직 긍휼을 아는 사람만 남아있어. 니만 남아있어. 니만 남아있어.’


남자들 군대 이야기하면 싫어하는데 할 수 없이 실감나게 군대 이야기해야 되겠어요. 군대 자체가 싫은데 그 중에서 싫은 게 뭐냐 하면 예상 없는 작업을 할 때 사열을 해요. ‘너, 너, 너 나와, 나머지는 쉬어, 너, 너 삽 들고 나와.’ 할 때 ‘너 아니고 너 아니고’ 뽑아내잖아요. 군대고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것도 그렇지만, 뽑혔다는 것, 그리고 잘렸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세상에서는 수평적인 똑같은 질 속에서 그냥 일방적으로 뽑아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뽑아낼 때는 그것이 어떤 긍휼이라는 불쌍히 여긴다는 질적으로 뽑아냈기 때문에(잘 들어보세요) 내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뽑아내는 그 질적인 거, 불쌍히 여김이 나 존재보다 구원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바로 성경의 뜻입니다. 그게 왜 중요하냐 하면 예수님의 주되심, 구원자 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내 구원 하려고 내가 존재하는 게 아니고 ‘세상에 나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니’ 구원자 예수님을 돋보이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이걸 구약의 이스라엘한테 이야기했는데 이스라엘은 그걸 믿지를 못했습니다. 분명히 시편에도 나오거든요. 내가 너희를 위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고 나 이스라엘 여호와 이름을 위해서 구원을 했다고, 수백 번 이야기해도 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요. 왜, 인간은 타고난 지밖에 모르기 때문에. 자기밖에 모르면서 땅에서 기름진 것도 먹고 혜택을 다 받고 주는 혜택을 다 받으면서도 지 중심이라.


오늘날 불신자들이 숨 쉬고 뭐 하고 모든 혜택을, 생명도 유지하고 햇빛 공기 다 받으면서 자기한테 영광 돌리잖아요. 어려울 것 없어요. 손가락 가지고 자기 코를 눌러 보세요. 숨 못 쉬죠. 그래서  성경 이사야 2장 22절, “호흡은 코에 있나니” 이것도 그렇게 힘든데, 그냥 코 벌렁벌렁하게 해 주시지, 공기 맘대로 주시지,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그것이 시온 산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른다니까요.


통증이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이건 좀 어려운데요. 통증이 있어서 치과에 갈 때에 의사가 통증을 고쳐줍니다. 그런데 통증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고 해서 통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고 설명한다고 실제로 아픈 것이 결코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 몸 자체가 통증 이예요. 이걸 어떻게 신학을 하고 신학박사가 되고 어떻게 목사가 된다고 이 통증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통증이 나예요. 내가 통증입니다. 내 존재가 아픈 거예요. 십자가와 관련된 아픔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시온과 땅에서 기름진 것을 주고 다시 축복을 주신다고 할 때, 그러면 이것은 삭제인데 무슨 삭제냐 하면, 니가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 쪽에서 기름진 것을 못 줘서 니가 그동안 고생한 것이 아니고 니가 긍휼히 여김을 받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긍휼을 모르는 존재기 때문에 기름진 것을 해봐야 소용없어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은 삭제되고 제거되고 남은 자에게 합당한 것만 남고 남은 자가 아닌 사람한테는 안 되는 것만 삭제하는 형태에서 계속해서 기름진 것과 많은 곡식과 이런 것들을 제공 한다 왜 있죠.


오늘 본문 다시 보면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진 것을 준다”는 이 말은 조금만 견디면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는 그런 게 아니고 사람 자체가 약속을 품고 있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품고 있을 때 준다 이 말이거든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사람에게는 모든 게 그 자체가 축복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겁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어떤 여자가 임신을 했습니다. 임신을 해서 아기를 낳았어요. 그러면 그 아기가 엄마하고 몇 달인가 같이 살 때 그 아기가 알고 있는 세계는 어떤 세계죠? 굉장히 좋은 세상이라고 보고 있잖아요. 그런데 외부에서 보면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무슨 생활하고 있는 겁니까? 수감생활 하고 있는 겁니다. 누구 덕분에? 엄마 덕분에.


이 말은 인간은 자기가 태어나고 알고 있는 세계가 무척 좋은 세계라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고 다른 외부에서 보면 그것이 갇혀있는 세계, 죄에 갇혀있는 세계, 죽음에 갇혀있는 세계, 저주에 갇혀있는 세계이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게 약국도 개업하면서 거기서 병원도 개업하고 거기서 자기 나름대로 살면서 사업 벌리고 어떻게 트랙터 가지고 농사지으면서 그래도 좋다고 한다 이 말이죠.


그럴 때 본인이 만약에 남은 자라고 한다면 자기가 아는 세계는 무슨 세계냐 하면, 그것조차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서 주는 기회요, 혜택이라고 보는 겁니다. 혜택!! 오스트리아에서 피아노 칠 때도 하나님이 주신 혜택, 하나님이 주신 혜택이라 말이죠. 그것도 불쌍히 여겨줘서 주는 기능이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보라는 거예요. 나중에 다른 혜택이 주어지면 바뀌어서 떡 볶기 집 할지 포장마차 하든지 할 지 모르지만.ㅎ 어쨌든 그 순간순간 만큼은 항상 주어진 혜택이 되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어려운 말로 ‘완료‘라 해요. 어렵죠? 완성!!


오늘 제 설교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 이예요. 그 자체가 완성이고 완료라 하는 거예요. 인간은 항상 미완료를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남아있는 게 없어요. 긍휼하심 자체가 완성이 되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한테 ‘얘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한다고, 니 사랑한다.’ 이건 미완성이 없어요. 나이가 60이 되고 엄마가 90이 되고 자식의 나이가 60이 되도 그 사랑은 그 사랑인 거예요.


아니라는 눈치를 하는 사람이 있어요.ㅎ 하여튼 그렇게 생각하시고, 엄마 사랑은 한결같은 사랑이 온다 이 말이죠. 그 자체가 완성이니까. 사람 사랑은 아니겠지만, 하나님 사랑은 자기 아들의 피를 주고 값을 주고 산 그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는 새 포도주와 그리고 새 기름은 그 자체가 맘껏 만족하고 불쌍히 여긴다는 선물로 그렇게 이해하시면서 기름진 세상, 기름진 축복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미 완성된 것을, 사랑을 받았는데도 또 우리는 두리번두리번하면서 하나님, 더 좋은 걸, 달라고 미완성처럼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저희들, 과연 남은 자 맞습니까? 긍휼 입은 사람 맞습니까? 불쌍히 여겨줬다면 앞으로도 불쌍히 여길 것인데 그 불쌍히 여겨주시는 그 중심인 십자가를 잊지 말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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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4   006강-욜2장12-14(마음을 찢으라)110918-이 근호 목사 이한례 11-09-20 2612
3061   006강-호3장1-5(주인님의 깊은 뜻)-hos110130-(이 근… 이한례 11-01-31 2509
3125   007-계시록2장1(주의 사자)-rev060402 (7) 박온정 11-02-15 3228
2937   007강-삼하5장6-10(다윗성)-2sa091129-(이 근호 목사) (1) 이한례 10-12-24 2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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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3   007강-호4장1-5(멸망당하는 어미)-hos110206-(이 근호… (1) 이한례 11-02-06 2798
3127   008강-계2장1-5(에베소 교회)-rev060409 박온정 11-02-16 2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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