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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09:31:11 조회 : 144         
형상 지우기 (마 26:14- ) 대전-110강 이름 : 주향(IP:124.5.122.56)
형상 지우기 (마 26:17-25 )
대전-110강  
이근호  

2019년 4월 30일   

본문말씀: 마태복음 26장 17-25 절


(마 26: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마 26: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마 26: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마 26: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마 26: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 26: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마 26: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마 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마 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마태복음 26장 17절부터 보면 중요한 대목이 난해한 것은 유월절이 나오지요. 유월절은 신약에 속한 것이 아니라 구약에 속하지요. 아시다시피 유월절은 출애굽 하기 전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건넌 날이지요. 그 날을 기억하라. 그러면 유월절날 그 당시의 히브리 인들이 양을 잡았는데 양을 잡는 주체가 누굽니까? 본인이 양을 잡고 피를 누가 바릅니까? 천사들이 와서 발라주고 하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했잖아요. 이런 일을 하려면 누가 확실히 의식되야 하는가 하면 내가 여기 있음이 우선 돼야 하지요.


내가 피도 바르고 양 고기도 먹고 전부 “내가”가 빠지면 유월절이라는 결과가 안 나온다는 결과가 완전 느껴지잖아요. 유월절을 지켜야 되니까 지킨다는 말은 주체가 내가 확연하게 있어야 되고 내가 없으면 유월절 자체가 성립 안 되니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이렇게 되는 거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이벤트 행사에 내가 빠지면 얼마나 섭섭해 할 거냐는 생각이 들겠지요. 사람들이 성경을 볼 때 이런 의식을 가지고 봅니다. 예배에 내가 참석을 했습니다. 예배에 내가 참석을 안하면 예배가 안 됩니다. 그런 의식을 항상 평소에 자기 자신에게 갖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것이 잘못된 거에요. 내가 없으면 유월절이 안 되는 것이 아니고 유월절이 나로 하여금 유월절을 지키게 했다. 구약에선 내가 지킨 건 나 잖아요. 그런데 유월절을 지켜 나온 결과가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고 다른 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유월절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이 나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고 네가 지키면 받아 줄께! 가 아니라 “너는 안돼! 네가 지킨 건 유월절이 아니야! 나는 안 받을 거야!” 이렇게 유월절을 지키는 분이 따로 있다라고 한다면 우리가 뭐부터 지워야 하냐하면 내가 지키겠습니다, 내가 하겠습니다. 유월절 정도는 내가 지킬 수 있습니다 라고 하는 나를 스스로 지워버려야 한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지울 수 있냐 하는 겁니다. 못 지워요. 인간이 생각하기를 내 몸이 여기 있다고 할 때 하나님이 계시고 지시를 내린다면 하나님과 그 지시는 내 몸 바깥에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밖에 있는 것이 우선이냐 내 몸이 우선이냐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 말씀이 우선이냐 내 몸의 컨디션이 우선이냐? 인간은 자기 몸의 컨디션이 더 중요해요. 그것이 더 시급하고 긴급한 문제이고 컨디션이 먼저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도 컨디션 나쁘면 못 지킨다고 하고 있어요.

말씀에 이웃을 사랑하라 하면 자기 몸이 불편하면 이웃 사랑도 못 한다고 하는 겁니다. 주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 몸 컨디션이 조금 나아지면 지키겠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아까 하나님의 지시는 나보고 지키라고 한 것 같지만 내가 아니고 말씀을 지킬 나는 따로 있다는 것은 알려 주면서 지우겠다고 나서는 나는 지움의 대상이에요. 사라짐의 대상이에요. 사라져야 될 대상이란 말이죠. 이 세상에 있는 나를 지운다는 말은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의 형상들이 있잖아요. 나를 지우는 방식은 모든 형상들을 다 지워버리는 겁니다.


나무가 있으면 나무도 지우고 해가 있으면 해도 지우고 달도 지우고 다 지워버리는 상태, 하나도 없게 하는 상태, 그것이 내가 서서히 죽어가는 상태입니다. 눈이 감기는 상태, 내가 보고 있던 형상들은 사실 내 몸이 일방적으로 자각했던 형상에 불가했던 거에요. 그래서 이 세상엔 내가 장악한 형강 따로 있고 주님이 뜻이 있어서 만들어 놓은 주님의 형상이 따로 있겠지요. 그래서 주의 뜻은 주님의 형상만 남기고 내게 있는 형상을 지워야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형상이 주님이 주신 형상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을 지킨다고요? 오늘 본문에선 누가 지킵니까? 예수님이 지키시죠. 그리고 본문에서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묻지요. 그래서 제자들은 준비해서 유월절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우리가 교회가서 예배드리고 예배 드렸다고 생각한다는 말이고 출석 체크 했다고 하는 거에요. 그러니 나의 형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바램대로 나됨을 뚜렷하게 하는 데 종교라는 것, 교회라는 것, 예배 드리려는 스케줄 이 모든 것이 더욱 나를 부각 시키고 나의 가치를 높이는 데 동원된 것들을 형상화 시켜 예배당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어디 기도 처소는 없나? 어디가서 예배드릴까? 이 말은 신앙생활을 50년이나 60년 해도 서슴없이 막 나와요. 예수님 그리심 산에서 예배드릴까요? 예루살렘에서 예배드릴까요?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데? 유대인들이 그렇게 얘기 하길래 우리도 안 지려고요, 끝내 이기리라! 우리도 안 지려고 그리심 산에서 드리는데 어느 쪽이 맞습니까? 하는 거에요. 이미 선택을 해놓고 주님께 묻는 거에요. 주님은 양쪽을 다 없애버리지요. 지워버린다니까요. 저 쪽도 아니고 이쪽도 아니에요.

예루살렘도 아니고 그리심 산도 아니고, 왜 그러하냐 하면 예배를 드리겠다는 내가 지워져야 하기 때문에 그래요. 예배는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성령이 오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과거보다 몸의 컨디션을 더 중요시 하듯이 지금도 주님께선 인간의 행함보다도 지금 벌이고 계신 이 일이 주께서 하실 일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겁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사람들이 떡을 먹으려 왔을 때 너희가 왜 왔느냐? 배부르려는 까닭이지 하나님의 일로 오병이어의 떡이 만들어졌고 그 떡으로 배부른 일이 만들어 졌다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로 혜택 입은 일로 본 거에요.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되는 거에요. 그러면 보낸 자가 떡을 먹게 되었으니까 주님을 믿습니다 라고 하거든요.
그러면 그들이 뭐라고 합니까? 보내신 자가 떡을 줘서 먹게 되었으니 난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할 때 그게 바로 너희의 오해이다. 내가 이야기 할 때니 믿을 수 있으면 믿어 봐라! 예 이야기해 보세요. 우리가 믿겠습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요한복음 6장에서, 믿습니다.


그러면 한 번 이것도 믿어볼래?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영생이 없다. 그들은 주님이 만나를 주면 거기까지만 하나님의 일이고 그것을 주워 먹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참여라고 생각해서 주워 먹으면 그 행위로 자기가 산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러면 주님은 이것도 한 번 주워 먹어보지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이라고 했으니 어떻게 주워 먹겠어요? 아까 첫째 시간에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을 경과한다? 인간의 뜻을 경과하지요. 인간의 뜻은 뭡니까? 내가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되기를 원하지요.


그러면 예수님이 쏟아내는 피와 살은 인간을 경과하는 인간의 어떤 것을 경과하냐 하면 긍정적인 것을 경과합니까? 부정적인 것을 경과해요? 인간이 하나님의 뜻도 아니면서 뜻이라고 우기는 핍박받는 경로가 아니면 뭐가 생산되지 않습니까? 예수의 살과 피가 생산되지 않아요. 가거라! 떠나라! 이 말이죠. 그냥 떠나는 것도 아니고 핍박해라! 나를 공격해! 공격을 해야 피와 살이 만들어질 게 아니겠습니까? 너희 죄를 위해 주께서 흐린 피라 하면 그들은 무엇을 생산해내야 되요? 우리가 성도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았다고 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뭡니까? 죄를 만들어 내는 거에요. 죄를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성화가 아닙니다. 참 쉽지요! 죄를 지면 되요. 죄를 안지어서 문제에요. 제가 주일날도 했잖아요. 아담의 죄에서 나의 죄를 따로 뽑아내지 말라고요. 가만히 점잖게 있어도 아담의 죄에요. 뭘해도 죄가 되요. 먹는지 마시든지 죄가 되요. 그래야 먹는지 마시든지 의가 되듯이, 지워버리는 일을 해야 되요. 이것을 증거한 자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이었고 고난 받으며 또 신약에 증거한 자들은 성령받은 제자나 사도들, 스데반 같은 자들이 세상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겁니다.


심판입니다. 심판 뒤의 모습을 미리 앞당겨서 알려주는 일을 사도들이 합니다. 제가 첫째 시간에 뭐고 했습니까? 모든 것이 무의미 한 거에요. 지워버리는 겁니다. 어떤 팝송 가사를 보면 이러한 형상 지우기와 결부되어 있는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서 찾아 봤는데 이 노래 가사가 나름대로 얼마나 심오한지 들어보세요. 빈센트 (반 고흐)라는 가사를 존 맥클레인이 불렀지요.

빈센트 ( 반 고흐 ) 노래 가사

Starry,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당신의 팔레트를 파란색과 회색으로 칠해 보세요

Look out on a summer's day 어느 여름날을 내다 보세요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내 영혼의 어둠까지 아는 듯한 눈으로


Shadows on the hills 언덕 위 그림자를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나무와 수선화를 그려 보세요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산들바람, 추운 겨울을 잡아내 보세요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눈처럼 하얀 린넨같은 대지의 색채들 안에서



Now I understand 이제 알 것 같아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을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당신이 온전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그들을 놓아주려 얼마나 애썼는지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지만

Perhaps they'll listen now아마도 이제는 귀 기울일테죠.



Starry,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환하게 빛나게 타오르는 꽃들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보랏빛 안개 속,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이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청자처럼 푸른 빈센트의 눈 속에서 빛납니다.

Colors changing hue 빛깔을 바꿔가는 색채들

Morning fields of amber grain 호박색 곡식으로 가득 찬 아침 들녘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고통으로 금이 간 낡은 얼굴들이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예술가의 애틋한 손길로 어루만져집니다.



Now I understand 이제 알 것 같아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을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당신이 온전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그들을 놓아주려 얼마나 애썼는지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지만

Perhaps they'll listen now 아마도 이제는 귀 기울일테죠




For they could not love you 그들이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어도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당신의 사랑은 언제나 진실했었죠

And when no hope was left inside 한 가닥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그때

On that starry,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에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간혹 사랑할 때 그렇듯 당신도 스스로 생을 거두었지만

But I could have told you Vincent 나는 빈센트 당신에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이 세상이 그리 의미 있지는 않다고

beautiful as you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




Starry,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텅 빈 벽에 걸린 초상화들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이름 모를 벽에 액자도 없이 걸린 얼굴들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세상을 보며 결코 잊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

Like the strangers that you've met 당신이 만난 낯선 사람들처럼

The ragged men in ragged clothes 다 해진 옷을 걸친 다 해진 남자들

The silver thorn of bloody rose 피처럼 붉은 장미에 달린 은빛 가시가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산산히 부서져 첫눈 위로 내리네요.



Now I think I know 이제 알 것 같아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을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당신이 온전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그들을 놓아주려 얼마나 애썼는지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도, 듣고 있지도 않으며

Perhaps they never will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별이 빛나는 밤~ 내 영혼의 어둠까지 아는 듯한 눈으로” 벌써 심오하지요. 화가 빈센트가 어렵게 고생하며 살면서 세상에 가진 자들이 얼마나 허위와 위선을 고발하는 쪽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말이죠. 그림에 담겨 잇다는 말이에요. “ ~이제 알 것 같아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을” 정말 중요한 건데 이것 때문에 이 가사를 보는 건데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당신이 온전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온전하기 위해)성화지요. 얼마나 힘들었는지~오늘날 교인들에게 목사라는 악마가 하게 해 온전하려고 얼마나 힘들었어요.


악마가 가르쳤지만 내 스스로도 원했던 거에요. 반 고흐처럼 세상은 더럽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주의 뜻대로 깨끗하게 살아보지 않겠느냐? 이게 성도의 삶이 아니냐?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그들을 놓아주려 얼마나 애썼는지~ ” 내가 하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거에요. 놓아주려하는 거에요.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지만 아마도 이제는 귀 기울일테죠. 별이 빛나는 밤에 환하게 빛나게 타오르는 꽃들 보랏빛 안개 속,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이 청자처럼 푸른 빈센트의 눈 속에서 빛납니다~”. 마치 인간의 혼돈을 바깥으로 표현했다고요.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청자처럼 푸른 빈센트의 눈 속에서는 인간의 위선과 울분 같은 것이 다 보이는 것입니다. “빛깔을 바꿔가는 색채들 호박색 곡식으로 가득 찬 아침 들녘~” 그 다음 가사가 참 좋아요.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고통으로 금이 간 낡은 얼굴들이~ 농부들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농부들이 밥 먹고 살려고 얼굴에 금이 가는 거에요. 그것을 누가 위로해 주냐?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예술가의 애틋한 손길로 어루만져집니다.


예술가인 고흐의 손길로 그들의 금이 간 얼굴을 어루만져 줍니다. “~이제 알 것 같아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을 당신이 온전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들을 놓아주려 얼마나 애썼는지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했지만~” 꼭 에스겔 같아요. 에스겔이 아무리 전해도 말씀을 들을 때는 닿지만 전할 때는 아프지요. “~아마도 이제는 귀 기울일테죠. 그 다음이 중요한데 For they could not love you 그들이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어도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당신의 사랑은 언제나 진실했었죠.~”


사람들은 고흐 당신의 뜻을 알지 못하지만 당신의 사랑은 언제나 진실했다는 말이죠. “ 한 가닥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그때 당신이 온전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별이 빛나는 밤에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간혹 사랑할 때 그렇듯 당신도 스스로 생을 거두었지만 ~” 고흐가 자살했거든요.“나는 빈센트 당신에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이 세상이 그리 의미 있지는 않다고~” 고흐씨 이 세상은 의미 없어요. 무의미 하다는 말이죠.

beautiful as you (누구에게?)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당신 자체가 아름다운데 남을 설득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별이 빛나는 밤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텅 빈 벽에 걸린 (무표정한)초상화들 이름 모를 벽에 액자도 없이 걸린 얼굴들~” 처럼 세상은 무의미 한 거에요. “세상을 보며 결코 잊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 화가의 그림에서 이러한 무의미한 것들을 잊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당신이 만난 낯선 사람들처럼 다 해진 옷을 걸친 다 해진 남자들 (농부들이지요.)


The silver thorn of bloody rose 피처럼 붉은 장미에 달린 은빛 가시가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산산히 부서져 첫눈 위로 내리네요.깨끗한 첫 눈 위에 피가 묻히듯이 고흐는 작품을 그런 식으로 했어요. 이 세상 순수함 속에 더럽혀졌다는 말이죠. “ ~이제 알 것 같아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을 당신이 온전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들을 놓아주려 얼마나 애썼는지” 마지막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도, 듣고 있지도 않으며


(그 다음 이 중요합니다.) Perhaps they never will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이 세상에서 고흐는 갔지만 사람들은 무슨 소리를 해도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금이 간 얼굴을 가지고 망가진 인생을 살 겁니다. 이게 빈센트의 가사에요. 왜 이 가사를 인용 했냐하면 이 사람이 화가잖아요. 화가는 뭐냐? 형상입니다. 그림 속의 형상은 기존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고 지워버려요.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것은 의미가 없거든요. 의미를 화폭 속에 한데 모아 놔야 되요. 이것을 유월절을 지켰던 그 많은 사람들 그 유월절 양을 예수님께서 하나로 응축 시킵니다.


자신의 몸에다가 백날 유월절을 지키고 백날 열심히 살고 제사 드리고 예배 드리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각자 거짓된 자신의 몸들을 통해서 주의 뜻을 이루겠다는 하나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데 자기 구원과 욕구를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거든요. 왜 본인의 형상을 지우지 않느냐 하면 자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자기를 지운다는 것은 구원받는 대상인 자기도 지우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나 주님이 이제는 나를 믿고 너의 형상을 지워버려라! 예수님이 빈센트 고흐 같아요. 왜 내가 무의미 한 것을 왜 무의미 하냐를 의미의 구심점으로서 내가 유월절을 지킬께!


예수님이 유월절을 지키면 기존의 모든 것, 예배도 의미 없는 정도가 아니고 이 자체가 의미 없어요. 12제자가 죽어야 되요. 없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성령을 통해 사도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예수님 죽을 때 12제자도 죽었어요. 13번 째 제자가 있었지요. 누구지요? 사도 바울이지요. 사도 바울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이미 죽었다는 겁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성령을 통해 소급해서 시간이 흘렸다고 해서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형이 되는 거에요. 십자가의 현재형이 되는 거에요.


왜냐하면 십자가로 모든 것을 응축했기 때문에 나라는 의미는 제거 대상이 되는 겁니다. 애가 군대에 가 있고 이런 것도 제거 대상이 되는 겁니다. 언제? 요양 병원에서 눈 감을 때, 눈 감을 때는 과거에 몇 년 살았다도 아무 의미 없는 겁니다. 그 순간도 성령이 일으킨 사건이지요. 모질 게 살았고, 힘들 게 살았고. 아까 노래 가사에도 나오지요.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당신이 온전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왜 그렇게 쓸데 없는 짓을 했어요? 그놈의 성화론 때문에 쓸데 없는 짓을 했냐는 말이죠.


어차피 죽을 의미 없는 개체인데, 없어야 할 형상에 불가한데 그놈의 형상을 천당 보낸다고 얼마나 공 들였습니까? 차라리 절에 가서 도를 닦지, 사월 초파일 날 연등이라도 달게 되면 죽어도 등은 남지, 또 아들이 제사 올릴 수도 있고. 예수님의 유월절을 양을 준비했느냐 질문을 묻는 가운데서 모든 형상을 지워버리고 화가가 화폭의 담은 예술가의 심정으로, 그 심정처럼 주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세상을 보라는 겁니다. 제자들은 아직 성령을 안 받은 때이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께서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를 몰라요.


종말을 두 가지로 보면 되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종말이 있고 내가 말하는 종말이 있어요. 사람들의 몸의 컨디션이 우선인 것처럼 어디에 관심이 있느냐 하면 내 인생의 종말을 먼저 챙기고 다음에 주의 종말을 이용하려는 겁니다. 죽음이 가까이 온다, 세상 끝이 온다, 그러면 난 어떻게 살지? 평소에 어떻게 살지? 이렇게 되는 거에요. 종말 때에 내가 어떻게 살아남지? 라는 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악마에게 매어 사는 가를 보여주는 겁니다.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뭔들 못 하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식으로 매어 삽니다. 악마님! 사단님! 제 목숨만 좀 살려주세요! 제 모든 것을 바치겠나이다. 제발 내 목숨만 살려 주세요! 이것을 조금 확대한다면 내 가족만 살려 주신다면 또는 내 자식만 살려 주신다면 뭐든지 다하겠습니다. 50쯤 돼서 사회와 단절 돼서 아줌마가 들어 갈 자리가 뻔하지요. 식당일 같은 이것을 왜 하냐하면 애들에게 용돈이나 유학비 보내주고 장가갈 때 집 사면 보테주려고 하는 거에요. 다들 그렇게 사니까 이게 마땅하고 착실 한 것처럼 되지요. 제가 문제 하나 낼테니 한번 맞춰보세요. 어릴 때 자식 키우느냐 애쓰고 남편도 변변치 않아서 애도 키우면서 돈 벌이 하러 나와 고생했으면 이 여자분 구원받습니까?


사람이 고생한다고 인간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생한다고 인간 안되요. 고생한 것이 아까워서 자기 형상을 지울 줄을 몰라요. 성경 천 독 한다고 무슨 소용 있어요? 아무 소용없어요. 교회에 뻔질나게 일주일 내내 출석해도 소용없어요. 교회에 와서 비는 게 이건 데요. 그저 내 남편 건강하고 우리 가족만 잘 된다면, 목숨만 살려 주신다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교회 청소부터해서 꽃꽂이도 내가 다 할께요. 평생을 매일같이 반복하면서 이런 거래를 악마와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와서 차라리 천벌을 받으세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천벌 받는 낙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천벌이 뭐지? 이런 식으로 살면 되잖아요. 히브리서 2장 15절에 나오지요.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아하! 날 살리려 오신 게 아니라 없애버리러 오신 거에요. 악마와 거래하고 맨 날 악마에게 빌빌 비굴하게 노는 나를 없애버리고 무의미하게 본다니까요. 예수님 흘린 피를 찍어 바른다고 구원받는다고요? 사도 바울의 복음이 그렇던가요?


(히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갈라디아서 1장에 내가 사람을 좋게 안한다 했잖아요. 사람에게 받은 계시도 아니라 했잖아요. 그러면 성경을 보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 지 생각해야 되지 않습니까? 사람에게 좋게 안한다면 내가 평소에 뭘 원하고 있고 뭘 좋게 하고 있고 평소에 어떤 식으로 안일하게 살아 왔는가 보세요. 기돌를 하고 헌금을 하며 옆집 아저씨 좋으라고 하는 겁니까? 아랫 집 담배 피우는 인간 좋으라고 기도 생활 하는 겁니까? 그 인간 죽어버리지! 자기 자신이에요. 그 인간 죽어라! 왜? 누가 편하게요? 내가 편하잖아요. 왜? 담배 연기 안 올라오니까.


아까 죽으면 죽으리라는 뭘 지우기라고요? 형상 지우기. 우울병이니 조현증이니 하며 칼들고 설칠 때 이건 뭐냐 하면 자기를 안 지우겠다는 거에요. 나는 안 죽이고 내가 사는데 지장을 주는 누굴 죽이겠다? 옆집 이웃, 형상을 지우겠다는 거지요. 이것은 주님이 하시도록 맡기세요. 심판의 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주님이 심판하십니다.


(갈 1: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갈 1: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시편에 그런 말씀이 있지요. 괴롭히거든 기다려봐라! 너를 괴롭히는 자가 없어진다고 주께서 괴롭히던 자들을 다 없애 버려요. 누가 가장 우리를 괴롭힙니까? 나, 나를 없앤다. 나를 없애 버려요. 그날이 기쁜 날이에요. 그동안 내가 온전해 지기위해 애를 썼습니까? 그래서 주님의 형상을 지웠잖아요. 어떤 분이 질문을 했는데 진지하게 했어요. 뭐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형상 자체가 뭔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질문을 아주 잘 하신거죠. 분명히 그 사람은 교회에서 들었을 거란 말이죠.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우리 속에서 착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분명히 배웠을 게 아닙니까? 개혁주의 신학대로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에 굉장히 반가웠어요. 하나님의 뜻이다하고 친절하게 가르켜 줬어요. 형상은 예수님이 형상입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 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 졌다는 거에요. 예수님이 중심이고 우리는 시다발이가 되는 거에요. 그런데 그 예수님이 없어진 거에요. 왜? 자기가 주인이 돼버렸으니까 그런데 신학이란 게 뭐냐하면 여러분이 주인공입니다.


이렇게 하거든요. 신학부터가 그래요. 여러분들의 형상이 천당을 못갑니다. 착하고 바르게 살면 천당간다는 거에요. 에베소서 5장을 뭐 어떻게 해 가지고 창세기에서 형상대로 본받고 삽시다 해가지고. 형상은 예수님이에요. 골로새서 1장에 나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어떤 상태나 상황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대상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형상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에요. 형상이 우리 속에 나타난다는 말은 나를 지운다는 거에요. 내 고집이 있으면 예수님의 형상이 죽어요.

(골 1: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 1: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그래서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날마다 나를 없애버리는 겁니다. 어떻게? 매일매일, 잘 때는 죽은 거 같잖아요. 의식이 없으니까 아침 되면 또 시작하는 거에요. 형상을 의미 없게 지워버린다니까요. 그냥 무의미하다하면 안되요. 왜? 무의미하다고 하는 나는 의미 있게 되니까 안 지워지고 내 본성대로 그냥 발휘해요. 먹고 싶은 것 먹고 백화점에서 사고 싶은 것 사고 놀고 싶으면 놀고 하면서 아이고 피곤해! 의미 없다! 이쯤해서 빈센트 노래 가사중 중요한 대목을 다시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언덕 위 그림자를 나무와 수선화를 그려 보세요 산들바람, 추운 겨울을 잡아내 보세요.’ 그림 자체가 산들 바람은 그냥 흘러가잖아요. 그림에 그것을 포착해 버리지요. 그러면 흐름은 중지가 돼버리지요. 이 말은 그림 자체가 형상이거든요. 이 세상에는 형상이 없어요. 일시적이에요. 봤다! 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여보! 애가 다쳤어! 하면 경치보고 있다가 애 아프다니까 경치는 좋은 데 그 형상이 날라가 버려요. 어디에 놀러 갔는데 갑자기 생각나는 게 집에 가스 불 안 끄고 온 거,

부부 동반해서 구라파 여행 갔는데 가면서부터 싸워서 기내 닭고기 요리 먹을래? 다른 거 먹을 래? 하다가 싸워서 남편 헛짓 하는 거, 쓸대 없이 돈 쓰는 그 형상이 보여지니까 이쪽 형상이 저쪽 아름다움을 다 가려버려요. 아침에 주님의 은혜로 주신 아침 식사 시간을 누가 방해하냐 하면 말썽꾸러기 아들이 다 방해하고요. 주님의 은혜를 만끽하고 싶어도 계속 내가 살아있는 한 내가 나를 가만두지 않고 없애버려요. 내가 감상하고 만끽하고 내 중심의 형상을 주님은 용납 안 해요.


왜? 우리는 하나님의 재물로 가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안 받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준비한 양은 예수님 본인을 이야기 하겠지요. 본인 속에 누가 같이 함몰돼야 됩니까? 12제자도 함몰돼야 되겠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떡을 만들어서 주시는 거에요. 제자들은 아직 정신 못 차렸지요. 선생님께서 자비로운 사랑으로 우리를 먹여 살리려고 떡을 주시는 줄 알았어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이미 선악과를 먹었잖아요. 그때 부터 먹는 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거에요. 먹어서 사는 것이 아니고 먹어도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먹이시는 거에요. 매일같이,


음식 먹어도 죽어요. 이것이 생명이 아니라고요. 영생의 만나가 아닌 것을 알고 먹는 거에요. 모든 시작을 나부터 하니까 성경 해석을 아무리 해봐도 안되는 겁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내 스스로 복 있다고 한 조치로부터 떠나 두 손을 놔버린 겁니다. 내가 나를 평가하는 것을 놔버린 거에요. 지난 오후 설교에 기도 제목이 뭐였냐 하면 내가 나를 감시하지 마라고 했지요. 내일 같이 내가 나를 감시하는 거에요. 내가 나를 놔야 되요. 이래 사나 저래 사나 관계 없어요. 아직도 남편 앞에서 방귀를 못 트면 곤란합니다. 트림이나 방귀나 재채기 같은 것. 코 고는 것.


그러면 결혼 생활 힘들겠지요. 트림 할 때마다 다른 방에 가서 하고 와서 고상한 티를 내고 그건 관계가 끊어진 거에요. 사랑이란 한 쪽에서 사랑을 줄만 했기에 사랑이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자기 것으로 꼬시기 위해 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자기 선언을 한 거에요. 아름답다고 선언을 한 겁니다. 사랑이란 사랑을 위하여 서로가 필요한 거에요. 주님의 구원을 위해 반드시 지옥에 가는 사람이 있어야 하듯이, 우리가 물을 마시잖아요. 지옥에선 물 한 컵도 과분합니다.


아까 첫째 시간에 지옥을 경과하지 않으면 뭐가 안 보인다고요? 천국이 안 보이지요. 그러면 세상에서 살면서 물 한 컵을 마실 때 마다 아이고! 왜 이리 과분한 은총을 하는 마음가짐으로 물을 마셔야 되요. 왜? 지옥인데도 불구하고 마실 물이 아직 있으니까, 거의 공짜로 있으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이 땅에서 안 죽거든 뭔 뜻이 있어 머무시는데 단 기대는 하지 마세요. 지옥 구경해보라고 머물게 하시는 거에요. 패스트 트랙( fast track) 이런 거 있잖아요. 구경하라고 아무 의미 없는 거거든요.

내일 죽을 지 모르는 인간들끼리 안 죽겠다고 싸우는 거잖아요. 복 받은 자 입장에서는 세상 사람들처럼 한심스럽고 안타깝고 어리석은 자가 또 없어요. 복음을 모르는 부모님이 안 찾아오면 네 유신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데 나이 먹었다고 다 철이 난 건 아니에요. 얼마나 철딱서니 없는 사고방식인지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데려가시면 저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왜냐하면 살아온 방식이 악마가 가리켜 준 그 방법 외에는, 그 스킬 외에는 다른 방법 알지 못해요. 악마가 가르쳐 준 것.


그러고 보면 여기도 개가 있지만 개가 인간들보다 훨씬 나아요. 아무생각 없잖아요. 부모에게 효도하는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지옥으로 가고 계십니다.” 그런 식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떡을 주는 것은 먹고 죽으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너는 살아 있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이미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달으라고 떡을 주는 겁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주는 것도 이미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달으라고 왜 죽은 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살과 피라는 새 언약이 안 받아지기 때문이에요.


이런 말을 듣고 동창생들을 한번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아까 말했듯이 아~지옥이란 것을 이런 것을 보고 말하는구나! 지옥에고 혼자 가는 게 아니에요. 으싸! 으싸! 뜻을 모아 가요. 교회에 가보세요. 전부 지옥으로 가고 있지요. 뜻이 하나로 가고 있지요. 전부 나를 위해서, 교회나 절이 똑같아요. 21절을 한번 봅시다.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유월절 준비된 음식을 먹을 때에 평소 했던 것처럼 유월절을 지킨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때 예수님은 누군가 나를 팔리라 했다고요.

(마 26: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렇다면 유월절을 지키면서 그것이 유월절이다? 아니다? 유월절을 지키면서 내가 개입되어 있는 유월절은 유월절이 아니다가 나중에 성령 받고 난 뒤에 유월절을 생각해 볼 때 아하! 그렇구나! 하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가 인생을 살 때 인생을 누가 산다고 해요? 누가 하루하루 애쓰며 힘들게 살았어요? 내가 산다고 느끼게 해요. 느끼게 하면서 성령이 오면 내사 사는 게 아니고 주님이 살게 하신 인생인 것을 바꿔치기 하면서 깨닫게 하는 겁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변수가 미리 예측한 게 아닙니다.


내가 예측한 것도 제한된 한계에서 예측하는 거에요. 나는 짜장면과 짬뽕이 좋아! 그건 팔보채가 없는 상태에서의 말이고 나는 당신만 사랑해! 그건 여러 여자를 안 사귀어 봐서 그래요. 내겐 당신 같은 남자가 없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남자를 몇이나 사귀어 봤습니까? 키 크고 성격 좋고 돈 있고 음성 좋고 건강하고 자기 관리 잘하고 아내 잘 챙겨주고 집안 살림 다 해주고, 키 크고 많이 배웠고 성격 온화하고 돈 있고 목소리 좋고 누구 말하는 겁니다. 배우 유동근 있잖아요. 이런 사람 멋있잖아요.


그런데 후보감이 키 더 크고 돈 더 많고 성격 더 좋으면 둘이 비교 된다고요. 당신이 최고 좋아! 하는 경우는 나는 억지로 행복한 가정인체 하기 위해 떼쓰고 있는 것이고 발악을 하는 경우죠. 실재는 안 그런데 아니면 내가 죽었거나 내가 죄인인 것을 알 경우 둘 중 하나입니다. 잘해주면 주의 뜻이다 하는데 거짓말이에요. 내가 잘해줬으니까 잘해 줄꺼야! 라고 자기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내 뜻이지 주의 뜻이 아니에요. 인간은 함부로 자기 뜻에서 안 벗어납니다. 인간은 절대로 자가 뜻을 포기할 위인들이 아니에요.


성령은 새 언약에서 나오거든요. 따라서 성령이 뭡니까? 내 살과 내 피를 마시는 거에요. 그러면 거기에서 뭐가 나오냐 하면 성령을 받으면 너희가 나를 팔리라는 요소가 성령이 오실 때 마다 쏟아내는 겁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 우리를 핍박에 해당하는 자로 알려줄 때 비로소 의인과 죄인의 만남, 새 언약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용서가 성립되요. 용서받을 때는 자기의 죄인인 것을 알아야 되요. 그것은 날마다 주신 은혜에 대해서 감각이 없다는 겁니다.

왜 자기가 너무 힘든 인생을 살기 때문에 내가 살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왜? 이래야 우리 가정이 산다. 믿을 것은 나 밖에 없다. 오직 내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소 똥 치우고 밭일 하고 힘들어도 내 몸 부서져 일해야 우리 가정이 산다. 그러면 그럴수록 인간이 안 되는 겁니다. 사람이 될 수 없어요. 악만 남지요. 독하기만 하지요. 제가 지난 주일 날 독하지 말고 악해야 된다고 했지요. 애초부터 아담이 악해요. 세상에서 나쁜 짓 하라는 말이 아니고 아담의 죄를 성령을 통해서 발견하는 것, 그것은 새 언약에 해당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복된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유월절 작업을 우리를 통해서 적용시킨 것을 너무나 감사합니다. 주님을 팔아넘기고 내가 행한 것으로 영광 돌리려 했던 우리가 주님 앞에 죄인인 것을 날마다 유월절 속에 있으면서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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