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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7 18:37:30 조회 : 1640         
허락된 모임 (마 18:19-20) 대전- 64강 이름 : 주향(IP:222.116.177.93)

허락된 모임 (마 18:19-20) 대전- 64강

 

이근호

 

2015년5월26 일 본문말씀: 마태복음18장19-20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 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게 뭐냐하면 한마디로‘허락’이에요. 교회 만들기에요. 주님의 교회 만들기는요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하자! 한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게 아니고 주님의 재가가 나야 합니다. 주님의 허락이 있어야 되요. 교회란 뭐냐‘허락’된 결과가 교회가 되야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허락은 맡을 수 없어요.

 

인간이 아무리 요청해도 허락이 안되지만 허락된 상태에서는 반드시 교회가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뭐냐하면 이거에요. 이 말씀, 예수님 말씀을 할 때 지금 예수님 여기 계시고 제자들이 함께 있을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겐 보이거든요! “아! 저 말씀을 저 분이 저런 말을 하는구나!”보이는데,

 

만약에 예수님이 안 보이는 형태로 사라진다면 그때 이 말씀은 어떻게 성사되는가! 하는 그 문제가 남아요. 예수님이 어떤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면 멀리 가시더라도 그 자리로 가면 되잖아요 그 대표적인 것이 뭐냐하면 구약의‘성전’입니다. 구약의 솔로몬 성전이라는 특정자리가 있어요. 모리아산에 성전이 있거든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받쳤던 터가 성전 터 입니다. 특정 지점이 있기 때문에 백성들이 뭔가 병이 났다, 죄 지었다, 또는 전쟁에 패배했다 그러면 쪼르르 가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면 되요. 그리고 출애굽기에 보면 모든 남자들은 1년에 3번씩 그곳 성전으로 나오라 했다 말이죠!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세 차례 모든 남자들은 오게 되있어요

 

얼마나 편리 합니까? 이쪽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듯 가면 되잖아요 누구 만나러? 하나님 만나러 와! 편리하네요 참! 편리 하지요! 그래서 예레미야 같은 경우에는 성전이 없어질 때에 얼마나 가슴 아픈지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아프다 표현 했어요. 예레미야 애가 2장19절에 보면 나와요. 창자고 간이고 다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아프다했어요.

 

하나님이 모처럼 배려를 해 주셔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 특정 장소를 주셨는데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꾸 곁눈질 한거죠. 우상을 섬긴 거예요. 다른 신을 섬긴 거에요. 왜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겼을까요? 왜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을 섬겼냐 그건 뭐냐하면 다른 신에겐 언약이 없습니다.

 

언약이 없다라는 것은 율법이 없다라는 말이에요. 십계명도 율법이 없으면 다른 신에겐 무엇이 있냐하면 본인의 욕망만 있으면 되요. 욕심만 있으면 되요. 그러면 욕심에 비례해서 아부를 하면 됩니다. 돈을 받치면 되요. 돈 놓고 돈 먹기에요. 많이 받치면 복 받고 적게 받치면 퇴짜 받고 ‘지성이면 감천이다’만 있으면 되요.

 

그런데 언약은 누구에게 매어 있어야 되야 하면 레위 지파에게 제사장에게 교육을 받아야 되는 겁니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저건 무슨 뜻입니까? 이렇게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이건‘종속’을 의미 하거든요! 지배당하는 것, 권력에 지배당하는 것, 사람들은 남에게 관섭 받는 걸 싫어해요.

 

왜 관섭 받는 걸 싫어하냐 하면 사람들이 성격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분풀이되는 욕망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엄마가 아이보고 “얘 너 잘못했지? 너 매맞아야 되겠어!”라고 할 때 애들은 굉장히 스트레스 받고 기분 나빠 하는 게 뭐냐하면 이거에요. 매를 맞는 게 싫은 게 아니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한 것을 찾아내라고 하니까 그게 본인에겐 어처구니없는 짓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버려요. 잘못해서가 아니라 우선 안 맞고 보자는 식으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는 게 뭐냐하면 회개하는 겁니다. 회개, 반성을 내 쪽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반성의 내용을 내 쪽에서 만들기 때문에 회개, 반성이 전부다 엉터리입니다.

 

“잘못했습니다! 뭐? 잘못했습니다! 무조건 더 맞아야 되겠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뭐! 뭐!” 여자 친구가 친구남자에게 “오빠 잘못했지? 그래 잘못했다! 그럼 뭐 잘못했는데? 모른다! 모르니까 내말 건성으로 듣고 있잖아!”잘못했다고 해도 문제고 잘못 안 했다 해도 문제고 어떻게 할 줄 모르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왜 내 마음을 니가 몰라주느냐 하는 건데 그건 너무 무리한 요구에요. 인간은 텅텅 비어 있는 게 아닙니다. 상대방의 마음만 들어 있는 게 아니에요. 상대방이 어떤 소리를 해도 이걸 내식으로 전부 다 변절시켜 버리고 바꾸어 놓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 잘못을 자기가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진정 내가 내 잘못을 아는 경우는 자기 생각 내부에서 본인이 그러리라고 생각한 일방적인 추상적인 거에요. 하나님께서 원하는 회개는 인간이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회개 했다 잘못했다라고 해서 용서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그 안에 화해함이 포함된 회개이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 안에는 화해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회개를 줘요. 그런데 우리가 하는 회개는 매 안 맞으려는 이기주의적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인간의 회개는 안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네가 잘못했지? 예! 잘못했습니다 그러면 화해할께!”이게 아니고

 

잘못했다고 하는 이야기 안엔 이미 뭐가 들어있냐 하면 이미 용서했기에 추후적으로 죄가 발생되는 거에요. 용서를 용서답게 하기 위해서 “내가 너한테 죄라는 것을 알려 줄께!”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죄를 지적할 때 우리는 신나해야 됩니다. 왜? 이미 용서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까 (이 집사님)이 음악회 초청장을 주셨죠! 당신은 여기에 참석할 자격이 된다라고 준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초청장을 들고 갔는데 욕하는 곳은 노무현 6주기 추도식 외에는 없습니다. 노건호, 노무현 아들이 욕하는 것 외에는 없어요. 주께서 결국 교회란 뭐라고 했습니까?

 

허락된 자리 그것을 구약의 성전을 의미하게 되면 이미 내쪽에서 성전이 있다고 여긴다면 하나님은 그런 걸 허락하지 않지요! 구약 때 성전이라 하는 것은 죄지었다! 그러면 찾아가면 되는 거예요. 예루살렘이 거기 있으니까 그래서 병들었다 하면 가서 기도하면 되고 죄 지었다 하면 양 가지고 1년에 세 번씩 들어가면 되니까

 

그런데 그 성전이 불타버렸습니다. 그러면 불탔다는 건 무엇을 의미 하겠어요? 이제는 내 쪽에서 양을 가지고 특정 장소에서 제사하는 것을 이제 하나님께서 허락한다는 거예요? 안 한다는 거에요?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 안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양을 잡아서 드리는 것이 인간의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인데 어떻게 할꺼에요?

 

아까 우상이야기 다시 합시다. 우상과 참된 신앙의 차이점은 우상은 뭐가 없다? 언약이 없다! 참된 신앙에는 언약이 있다라는 거에요. 그러면 성전이 있을 때 그 당시 사람들은 그걸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십일조 하라는 말은 십분의 일 내면 십일조 된다? 이건 전부 오해 입니다.

 

자기 주제 파악이 안되서 그래요. 내가 뭔지를 모르고 하나님한테 드릴만한 자격이 있다고 뭔가 착각 한거에요. 마치 할례를 행하면 거룩한 백성이 되는 줄 알고 오해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지상에 있는 성전을 가지고 화해를 했더라면 성전은 영원해야 되요. 성전은 불타면 안됩니다.

 

그런데 성전이 있다 해놓고 성전이 없어졌을 때 이것은 하나님의 책임일까요? 아니면 누구의 책임일까요?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장소가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것인데 그 만나는 장소마저 불타 사라졌다면 하나님께서 인간과 만나는 것에 있어서 누구 때문에 만남이 성사 안된다는 말입니까? 이거는 하나님 쪽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인간 네 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 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을 섬겼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려운 게 뭐냐하면 우상이 뭐냐 하는 것은 그들은 우상을 섬기면서도 우상이 뭔지를 몰라요. 나중에 성전이 사라질 때 모든 것이 우상 섬긴 게 되요. 심지어 성전에 와서 한 것이 전부 우상 섬기게 된 것이 되요.

 

정답이 뭐냐 없어져야 해답이 나와요! 모든 게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붙잡을 수 있는 하나님을 섬긴 수 있는 모든 요소가 하나님 쪽에서 허락이 없어야 되요. 저리가! 손 떼 이렇게 해 줘야 비로소 우리 자신을 아는 기회를 부여 받게 되는 겁니다. 지금 교회가 무엇이냐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이냐를 설명하면서 제가 지금 성전부터 출발하는 거에요.

 

성전이 있을 때는 그들은 오해했다. 성전이 없어졌다. 성전이 없어지고 난 뒤에 (스룹바벨 은 B.C 538년에 제1차로 유대인을 이끌고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 중단되었다가 그 후 (B.C 457년에 에스라와 함께 유대인등이 2차로 귀환) 에스라, 느헤미야 성전인데 이건 성전 재건하는 겁니다.(B.C 445년경 느헤미야가 3차 귀환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재건)

 

재건하는데 에스라, 느헤미야가 성전을 재건하고 이게 다시 무너져요. 에스라 때는 뭘 하느냐 하면 율법을 낭독하고 율법을 지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가 하는 일은 뭐냐 에스라, 느헤미야를 누가 도와주냐 하면 바사(페르시아)에서 도와줘요. 바사는 여호와를 모르는 이방나라인데 이방나라에는 언약이 없습니다.

 

율법도 없고 귀신을 섬기는 나라에요. 소위말해 마귀 섬기는 나라로 보면 되지요! 마귀 섬기는 나라에서 후원을 받아 성전을 짓습니다. 그러면 성전은 누가 져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느헤미야가 바사 나라의 임금을 통해서 모든 재정을 보장 받으면서 성전을 지어요. 일반 백성들이 율법을 받는 백성들이 새로 등장했습니다.

 

제사장도 생기고 이렇게 이방나라에서 얻은 여인들과 강제로 이혼시키고 십일조도 하게 하고 성전에서 제사 드리게 하고 특히 율법을 공부하게 하고 이렇게 했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 중간에 보면 이방나라가 들어가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망하면서 다 흩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바벨론, 바사 나라 이후 이방나라의 압제를 받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이방나라의 압제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방나라의 압제를 받는 식으로 되면서 하나님의 언약이 진행에 차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차질이 없습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은 좀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그들이 실패하는 가운데 신앙생활이 되고 있습니까? 안되고 있습니까? 되고 있지요!

 

누가 도와줘서? 이방 나라가 도와줘서! 그러면 그들이 성전 안에서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지키고 하지만 이게 전부다 인간이 있으면 인간 주변에 누가 있습니까? 사단이 있고 사단의 도움을 받고 사단을 역사하게 하신 분이 누굽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죠! 그렇다면 사단이 있다는 말은 인간 쪽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신앙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마귀민족 마저도 하나님이 자체적으로 영광이 될 수 있도록 실패한 이들을 사용하고 있는 거지요! 이게 바로 언약 안에서의 신앙의 참 모습이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고 안되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 신앙에 대해서는 포기를 해야 되지요?

 

이것을 더 줄이게 되면 신앙생활 하지 맙시다가 되버려요! 신앙생활 하십니까? 실패하세요! 전혀 신앙생활을 안하고 있는데 주변 환경이 나에게 신앙생활 하는 인간으로 생산해 내시는 겁니다. 참! 기가 찰 이야기지요? 누구 좋으라고! 나 좋으라고? NO! NO! 누구 좋으라고? 하나님 좋으라고~. 신앙생활이 되지도 않는 인간을 신앙생활 되는 쪽으로 주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믿어질 때 신앙이에요. 이게 바로 신앙이에요. 왜! 막 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이게 신앙이라고, 자!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알았더라면 개축한 성전마저 타락되고 또 로마군, 짐승이 와서 사탄의, 짐승의 나라가 무산시켜 버려도 그 때는 신앙생활이 될까요? 안될까요? 되지요!

 

어차피 내 쪽에서 신앙생활 하는 게 아니니까! 방금 이것을 설명하면서 제가 아까 한 것이 허락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회개 안에는 이미 화해의 손길이 담겨 있다는 그 원칙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거에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려울테니까 말라기를 한번 봅시다.

 

(말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 리니

(말4: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 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데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여기서 크고 두려운 날이라는 것이 네팔의 지진보다 더 크겠지요!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신답니다. 따라서 내쪽에서 만약에 신앙생활을 하려면 누굴 찾아야 되요? 엘리야를 찾아야 되겠지요! 그러면 결국 엘리야를 찾으면 세례요한이 와도 그때는 실패지요! 왜? 그들이 원하는 엘리야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 엘리야만 기다리고 있으니까!

 

애초부터 인간은 실패다. 모든 신앙은 애초부터 실패에요. 그게 하나님 신앙생활의 절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보면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누가요? 하나님이 보내신 엘리야가요! 그런데 이 엘리야가 세례요한이었습니까

 

그럼 자신이 엘리야이어서 옥에 갇혀 버리면 그러면 끝났네요? 아니지요! 엘리야라고 여겼던 (세례요한)이 엘리야가 아니니까 그럼 세례요한 마저 선지자의 기능에 속합니다. 마지막 선지자가 세례요한이라면 선지자가 선지자되려면 마지막 선지자 때에 다 이루시는 분이 따로 있어야 되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실 엘리야가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말라기 말씀마저도 예수님 자신이 그냥 있지 않고 그걸 다 삼키기 때문에 모든 선지자의 말은 예수님의 영이 임합니다. 그러면 말라기마저 예수님의 영이 임해서 그런 것이고 그 말씀은 완성을 보지 않으면 안되거든요. 그 완성은 말씀을 주신 분, 율법을 주신 입법자가 올 때까지 계속 가동 돼야 하거든요!

 

모든 법이라고 하는 것은 입법자, 즉 법을 만드신 쪽으로 달려가게 되어 있어요. 법을 만드신 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이잖요! 예수님한테 와서 완성이 됩니다. 모든 법은 예수님이 시행하게 되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이미 화해가 된거지요! {자식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그 중간에 누가 계십니까?

 

예수님이지요. 그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바로 교회가 된다는 그말 입니다. 오늘 본문 18장 다시 봅시다. 20절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 말이거든요! 주의 이름이 되는 거예요. 자! 질문을 다시 하겠습니다.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할 때 예수님이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보이지요!

 

예수님이 말을 하시니까 “아! 예수님이 여기 계시니까 우리가 안 떠나면 우리가 교회 된다.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왜 예수님이 자기네들 가운데 계시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 승천해서 떠나시면 어떻게 됩니까?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어디에서 찾을 거예요? 어느 지점에서? 지금도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감람산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거에요.

 

그러면 예수님을 어디서 만나면 되요? 감람산에서 만나면 되겠지요! 그러면 일본의 후지산에선 안되요? 여기 한라산은 안되나요? 한라산에 가있으면 주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감람산으로 가려고 했는데 왜 한라산에 있느냐? 나는 너하곤 안 놀아!”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 한라산이 감람산으로 되게 하시는 작용을 주님께서 못하실 것 같아요?

 

 

다시 쉽게 말해서 장소를 잘못 찾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화해 안하십니까? “내비게이션이 왜 감람산으로 가야 하는데 한라산으로 가라 하지? ”우리가 장소를 잘못 정했다고 해서 우리가 잠들어 있었다고 구원 못할 전도로 화해가 능력이 없는 거예요? 주님과의 화해가 잠에서 깨어 있어야 하는 데 잠들어 있었다고 우리를 구원 안해 주는 화해입니까?

 

화해하심, 용서하심이 “하여튼! 잠꾸러기들은 안돼!” 이렇게 잠꾸러기라고 우리를 내치십니까? 하나님의 용서가 그 정도 밖에 능력이 안되요? 하나님의 용서의 조건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조건이 없어요! 왜 조건이 없냐하면 우리하고 대화를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계약에서 제3자입니다.

 

우리는 나가 있어야 되요! 아버지와 아들이 계약하는데 우리가 도장 들고 나서면 안되요! 볼펜 들고 이거 필요합니까? 라고 해서도 안되고 어디 감히 끼어들어요! 제가 주일 낮 설교에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의 행동으로 우리의 운명이 바뀌어지지 않는다고 히6장 백날 들추어 보세요! 운명 바꾸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히6:4)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하신 능력을 어떤 경우라도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내치는 능력이에요. 주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그들 보고 똑바로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니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분,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아버지하고 예수님 본인이 이미 창세전에 했던 계약서를 마18장 18-19절로 이렇게 제시 하시는 거예요.

 

왜 제시하느냐 “너희들이 내가 아버지하고 아는 계약서를 백날 줘 받자 그들은 못 지키고 무슨 말인지도 알아먹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인간 제외하고 아버지와 아들하고만 계약 하셨지요! 봐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 인간입니다. 보면 볼수록 오해하지 봐도 몰라요!

 

20절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 말씀은 누가 할 숙제요, 과제요, 누구의 업무이냐 하면 예수님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업무입니다. 그걸 제가‘허락’이라고 하는 거에요. 주님의 허락이 있는 곳에만 교회가 있는 거에요. 그래서 전에 이야기 했잖아요 교회란 친목단체도 아니고 선교 사업의 중심 단체도 아니고 교회는 바람입니다.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

 

교인들 보기를 바람같이 보시길 바랍니다. 언제 왔다 언제 갈지 모르는 모였다가 흩어지는 거에요. 바람같이, 언제 우리가 모였었나? 기억이 안날 정도로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그냥 모였다가 흩어지는 거에요. 따라서“전에 오셨었는데 어떻게 잘 찾아 오셨네요?”이렇게 하지 말고 주께서 바람 불어 널어 주셔서 이렇게 와서 대전 모임이 되는 거에요. 기대하지 마세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어떻게 알 수 있어요?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인데 주께서 허락하셨다고 생각하세요. 지금 만약에 지진이 일어난다면 건물 붕괴하면 우리가 못 만나잖아요.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를 다 삭제해야 되요. 왜냐하면 우리가 할 수 있다라는 것은 어디에 포함 안되냐 하면 회개에 포함이 안되요.

 

내가 잘나서 솜씨 있어서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나머지는 죄인지 모르지만 그만큼은 나의 잘남이 되어 버리면 나의 잘남에는 뭐가 빠져 있나하면 주님의 화해와 용서가 담겨 있지 않습니다.“잘났어요! 아이고! 잘난 거 가지고 네가 천국에 갈수 있나 한번 보자! ” 항상 우리는 실패해야 합니다. 항상 성사될수 없어요. 빡세게 기대한다고 교회 오는 것도 아니고 심방안가도 교회 안 나오는 것도 아니에요.

 

제가 설교하고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을 생각해서 설교를 하게 되면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데 다른 사람이 은혜 받았다고 하니 “나는 또 실패다” 그 사람을 생각하고 한건데 늘 콩닥콩닥거려요. 설교하고 난 다음에 내가 또 여러 사람 시험 들게 만들었구나! 그래서 “아이고! 집사님! 가정 이야기해서 얼마나 시험 들었습니까?

 

아이고! 잘 하셨어요! 저는 아주 기쁘게 들었어요! 마음껏 사용하세요! 저희 가정이야기 마음대로 하시고 저는 개의치 마세요! 라고 이야기 해주실 때 저는 고맙지요! 저는 한 사흘을 고민했었는데, 또 주제넘게 사적인 이야기해서 얼마나 상처받았겠나 했는데 오히려 그렇게 이야기 해 주시니까 굉장히 감사하지요! 그것도 이용해서 틈만 나면 사적인 비밀 또 캐내려하면 안되고 다른 분들이 마치 나보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습니다라고 할 때 제가 움찔합니다.

 

“내가 당신보고 이야기한 게 아닌데 차마 그런 이야길 못해요.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잠시 말할까 말까 고민했어요. 자 계속 이야기 하겠습니다. 자! 회개에 대해 해봅시다. 우리가 주 앞에 회개를 합니다. 그런데 회개할 때 반드시 내가 잘못했다라는 증거가 따라야 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하나님께서“너 그러면 증거 한번 제시 해봐라!” 우리는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모든 걸 아시기 때문에 “네가 잘못했다 하면 내가 모를 것 같지! 그래~ 잘못했어? 기특하다!”이러실줄 알지요!“네가 잘못했다는 반증, 증거 대봐라! 잘못했다는 증거가 없네!”그리고 증거 없다라는 것 회개했다는 그 자체가 자기 자랑이 돼버려요. 자기 의가 되버린다고요.

 

“앞으로 네가 증거 없거든 함부로 입 놀리지 마라! 정말 잘못했을 때 잘못했다 해라! 내가 그걸 수정해 줄께!” 사실은 그게 진짜 잘못한 게 아니고 수정 할텐데 잘못한 거 없으면서 겸손한 체 하고 맨날 입에 달듯 “저는 부족합니다! 죄인입니다!” 그런다고 주께서 그냥 넘어가실 줄 알지요!

 

그럼 한번 생각해봅시다. 18장봅시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잘못을 했어요. 잘못을 하니까 그 사람에게 권고합니다.“당신은 말씀에 의해서 잘못 됐습니다! 라고 권고를 했어요.(17절)권고를 하니까 그 사람이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하거든 교회에 받아드리고 만약에 거부하거든 교회의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그야말로 이인과 세리같이 여겨라 하시면서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 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따라서 이 말은 교회내에서 행정처리가 하나님나라에서 이미 추진하고 인정한 행정처리로 내가 간주하겠다라는 말씀을 하게 되지요. 그러면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 행정적인 처리를 완벽하게 갖추면 그것이 곧 하늘의 뜻을 지상에서 인간들이 모여서 구체화하는 하나님의 대행자 역할을 하는 셈이 돼버리지요!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어디서 많이 사용하는 것입니까?

 

바로 천주교에서 하는 행정이잖아요 교황이 누구에요? 예수님의 대리자, 그래서 교황은 오류가 없어야 되요. 오류가 없는 것이 아니고 오류가 없는 자리에 앉았다는 거에요. 말을 교묘하게 해요. 교황이 개인의 자격이냐? 신분의 자격이야? 구분되야 된다라는 겁니다. 왕이 오류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왕의 자리는 오류가 있으면 안되요.

 

왜 법을 집행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자 만큼은 어떤 경우에라도 법에서 벗어나 줘야 법이 교통신호가 잘돼요 교통순경이 “거긴 오른 쪽으로, 여긴 왼쪽으로 가시고!”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나 가다가 창문 열고 순경에게“너는 왜 거기 서서 길을 막냐!” 이런 말을 하면 안돼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초월적인 존재가 따로 있어줘야 돼요. 그것이 공터, 빈터에요.

 

국민들에게 첩을 두지 말고 근친상간을 하지 말라는 법을 유효하기 위해서는 왕은 근친상간을 해야 되고 첩을 둬야 돼요. 그래야 되는 겁니다. 솔로몬은 첩이 1000명이에요. 다윗은 일곱 명인가 여덟 명인가 그렇지요? 아브라함도 마찬가지고 자녀들도 많이 낳았어요! 법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 법에서 벗어난 사람, 그럴 때 질서가 잡히거든요! 왜냐하면 질서를 잡는다는 말은 죄를 생산해 낸다 이건 우리의 상식과는 완전히 대치되는 거지요. 질서가 잡히는 걸 우리는 의로 보잖아요.

 

질서가 잡힐 때 비로소 죄가 만들어져요. 왜냐하면 이 지상의 질서라 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의인이 없다라고 할 때만 질서가 잡혀요. 이것을 여러분은 미리 아셨죠? 두더지 게임에서 두더지가 나올 때 머리를 때리잖아요. 맞아도 싼 존재인 인간 두더지 이래야 질서가 잡히는 거에요. 만약에 두더지가 아닌 어떤 사람의 남편 얼굴이 나오던지 이웃집 원수가 나오면 우린 깜짝 놀라겠지요? 원래 두더지가 나와야 되는데..

 

예수님만 의인되기 위해서는 모든 자가 죄인 돼야 되요. 그래서 죄인 되기 위해 투입된 것이 율법입니다. 그 율법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속해있는 세상, 예수님이 지상에 오셨을 때 지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죄악 된 세상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다 똑같이 다 죄인 만들기 위해서, 만약에 예수님이 말씀을 안하게 되면 바르세인들은 남을 치는 두더지를 때리는 초월적인 위치에 있는 겁니다. 왜 자기들은 의인이니까

 

따라서 그 질서를 예수님 빼놓고 무두 다 죄인 만들어 놓을 때 비로소 그 질서가 잡히는 겁니다. 교회가 뭐냐? 교회란 사람들의 모임이지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이니까 혼자는 교회라 하지 않으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모이면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따지겠지요! 그렇다면 “너는 잘못했다”라고 권고 하겠지요? 그런데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이 있겠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 자체가 법에 의해서 사람들이 잘했다 잘못했다는 것 자체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죄가 생산되는 환경이 되겠지요? 이런 환경이 될 때 예수님의 피가 여전히 이쪽에서 유일한 의로써 유효한 게 되요. 왜냐하면 여기선 뭐가 살아있기 때문에 법이 살아있고 법이 살아 있으면 뭐가 살아 있는 겁니까? 죄가 살아 있지요 “너는 잘했냐? 나는 너 보단 못했지! 그럼 너는 완벽해?”이게 계속 교회 안에서 어떻게 됩니까?

 

고린도전서 보세요. 그 법을 가지고 서로 고소하고 난리 났잖아요! 서로 네가 잘했냐? 내가 잘했냐? 가 계속 있어줘야 돼요. 계속 있게 되면 예수님의 피와 십자가의 살이 계속해서 유효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에서 사람들은 누굴 쳐다보겠어요? 나는 잘났다하게 되면 자기 이름이죠! 그런데 교회는 누구 이름을 봐야 돼요? 주의 이름을 불러야 되겠지요! 주의 이름을 부르려면

 

여기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내가 그 사람을 평가해요. 평가 할 때 어떻게 평가 합니까? 내가 아는 법의 지식으로 평가하겠지요! 지켰는데 넌 못 지켰다라고 평가 하지요! 그리고 권고 하겠지요! “회개해라!”이쪽에선“너는 뭐가 잘났냐!”그럼 다른 쪽에서“너를 교회에서 내 보낸다”그러면“잘 먹고 잘 살아라!”하고 나오겠지요!

 

그렇게 A가 나왔다 하면 그 다음에 조용합니까? 누가 B보고 이야기 하지요 “너는 잘났나?”또 나가겠지요? 그 다음에 C가 네가 잘못해 하고 내보내겠지요?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뭔가 묻는다는 것은 특정 전문가 집단이 있다는 것이 아니고 법 앞에서는 모든 인간은 법이 계속해서 한두 번이 아니고 법의 지시와 명령과 법의 지적에 노출 돼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되는 거에요.

 

그러면 이 사람들이 무얼 의지해야 됩니까? 교회는 우리가 유지하는 게 아니고 누가 유지한다? 주의 이름으로 유지되게 하옵소서! 라고 되겠지요! 이게 뭐냐하면 바로 모든 사람에게 뭐가 통한다? 예수님의 피만 경유해서 통하는 거에요.“나도 죄인인데 당신도 죄인입니까? 아이고! 그런 죄도 용서 받았어요!”그런 죄를 지었습니까가 아니라 그런 죄로 용서 받았습니까가 되는 거지요!

 

그렇다면 이야기 다시 해 봅시다 어떤 사람에게 죄를 권고 할 때 당신이 죄인입니다라고 권고 하면 안되지요 뭐라고 해야 됩니까? 당신이 이런 죄를 지은 죄인이아도 예수님은 피를 흘렸습니다라고 해줘야 돼요. 그럴 때 삐져서 “나는 그 딴것! 예수님의 피 필요 없어! 나는 내가 완벽하게 살았기 때문에 필요 없어!”그러면 그때 어떻게 해야 하냐?“나가세요!”

 

그러면 땅에서 한 조치가 하늘에서도 인정받는 조치가 되는 겁니다. 이 설명이 이렇게 깁니다. 이 노선이 롤러코스트처럼 한 바퀴 돌고 반전의 반전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보통 교회에서 어떻게 권고 합니까? 교회법 만들어서 어떻게 합니까? “당신은 이걸 못 지켰으니까”라고 하지요!

 

참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피를 믿습니까? 이렇게 해야 되지요! 행함이 아니고 우리 가운데 주님이 우리를 용서 하는 것을 믿습니까? “나는 내가 열심히 해서 구원 받지 누구로 부터 용서 받기 싫습니다! 그러면 나가세요!” 그런데 실제로 누가 나갑니까? 교회에서 나가세요! 라고 한 사람이 나가게 돼있어요. 왜냐 그 쪽에선 행함으로 굳어진

 

교회 행정가들 목회자들이 행함으로만 줄곧 유지했기 때문에 누가 쫓겨 나가냐 하면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사람이 쫓겨나게 돼있어요. 그러면 목사님! 누구나 쫓겨나면 주의 사람입니까? 여기서 주의해야 돼요. 그래서 이 내용이 할 말이 많은 거예요.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해라! 주의 이름으로 쫓겨나면 구원받습니까? 그게 아니라니까요!

 

지금 주의 이름으로 이야기 할 때는 우리 앞에 있는 주의 이름이 아니고 우리를 포함하고 있는 주의 이름입니다. 우리 앞의 대상으로 있는 주의 이름이 아니고 “내가 주의 이름으로 살면 구원 받겠지!”그게 아니에요. 그러면 주의 이름 자체가 나의 밖에 계시는 대상이 돼버려요. 그래서 주의 이름으로 모여야 된다니까요! 주의 이름으로 모이지 말고 주의 이름으로 모여야 된다니까요! 말이 참! 미안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야! 우리 주의 이름으로 모이자!”이러면 이건 교회가 아니에요. 주의 이름으로 모여야 된다니까요! 그러면 “우리 주의 이름으로 모이자!”이러면 안돼요! “주의 이름으로 모였네!”가 돼야 되요. 결과적으로 봐야 돼요. 주의 이름으로 모였네 “나는 내가 알아서 왔다! 나가 주세요!”이렇게 돼야 되는 거에요. 권고해서“나가 주세요!” 이렇게 돼야 되요.

 

그래서 이런 실수를 해선 안돼요! 주의 능력으로 모였기 때문에 “이 모임에 반대하는 사람은 나가주세요!”이러면 또 안된다니까요! 그걸 왜 자기가 이야기 하는데요! “자! 묻겠습니다? 베드로가 가롯 유다에게 나가라고 했습니까? 본인이 알아서 나갔지요? 그래야 된다니까요!” 그래서 기존 교회가 교회가 아닌거에요! “저 사람은 예수님 안 믿고 부처 믿었기 때문에 망했다!”그러면 안된다니까요!

 

부처를 믿든, 부처 믿는 사람을 붙여 주셨다고 보면돼요. 걱정하지 말고 목사는 복음만 전하면 돼요. 간단하게 할께요! 이겁니다! 이거 하나만 알면 돼요! 오늘 강의 다 이해되는 거에요. 개한테 진주 던지지 마라! 이 원칙만 알면 돼요. 그게 개인지 아닌지 내가 알바 아니에요. 우리는 진주만 던지면 되는데 이 생각은 해선 안돼요! 저 사람이 개이지만 진주 던지면 인간될꺼다? 이런 노림수는 우리 소관이 아니라니까요!

 

우리도 개였어요! 우리 같이 개 같은 인간이 천국가는 것은 주의 이름 때문이니까 주님 앞에서 “저는 개입니다!” 수로보니아 여인처럼 “저는 주님! 개인데요!” 이렇게만 살면 돼지 남 걱정까지 할 필요 없다니까요! 저 사람 꼬실려고 할 필요 없어요! 예수님이 십자가 지셨거든요! 그런데 니 같으면 믿겠나? 그런데 믿는다 말이죠 그럼 뭐에요? 주께서 그렇게 하신 거에요. 마치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에 생각한 건데 저는 교회를 뭐로 보느냐하면 교회를‘복면가왕’이라고 봐요! 복면 쓰고 노래 부르는 것, 복면 쓰고 노래 부르는데 사람들이 뭘 기대하냐 하면 나중에 복면이 벗겨질 때 기대하지요 그게 개입니다. 개, 돼지였습니다. 우리는 계속 끝까지 복면을 못 벗게 주께서 하시지요. 왜냐하면 복면 뒤에 내 본 모습이 이미 죽어 없어졌기 때문에 주님의 가면이 나의 가면이 되었어요.

 

내가 지금 살아가는 게 주의 이름으로 사는데 거기다가 다시 또 내 이름으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CF에 이런 게 있지요. 대장금을 패러디한 유명한 CF있잖아요. 어린 아이가 임금 앞에서“어째서 너는 다른 사람은 못알아 맞췄는데 너는 어떻게 아느냐?” 하니까 어린 아이가 하는 말이 “한우를 한우라 하는데 어떤 말이 필요합니까? 딱! 한우인지 다 알수 있는 데 한우를 한우라고 하지 뭐라고 하겠습니까?”

 

“너는 어떻게 주님을 믿게 되었느냐? 주님이 구세주인 것을 다 아는 데 어떤 말을 더 합니까? 네 정체를 밝혀라!”정체를 밝힐 필요 없어요. 주님은 그냥 주님이지. 내 정체를 보탤 필요 없거든요! 내가 누구이기에 주님을 알아챘다고 할 필요 없어요! 그냥 내 본 얼굴이 주님의 가면이고 주님의 가면이 주님이고 그래요! 그게 주의 이름이에요. 그리고 바람 같아요. 항상 모일 때 주께서 바람으로 불러서 모인 거에요. 흩어질 때도 바람으로 흩어진 것이고,

 

여러분! 전부다 복면가왕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인 얼굴 내놓지 마세요! 내놔봐야 늙은 죽을 얼굴들인데 보고 싶지도 않아요. 전부다. 주의 이름의 얼굴을 쓰고 다 오시는 거에요. 따라서 만약에 진짜 개이면서 돼지이면서 그럴싸하게 주의 이름 붙이고 복음전하면 그 복면 다 벗겨져 버립니다. 들켰구나! 그게 바로 가롯 유다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택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이 택했지만 다른 제자들은 가롯 유다를 자기들의 형제로 자기들의 한 교회로 간주했다는 사실, 왜냐 귀신을 쫓아 냈거든요. 주의 능력을 행했거든요!

 

그러니 의심할 바 없이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모인 12명이라고 믿었고 이 시대의 12지파를 대표하는 마지막 때 12지파라고 생각했지 누가 그 사람을 사탄이 들어갔다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가롯 유다에게 “네 할일을 해야지!”라고 한 것을 다른 제자들은 유다가 빵 준비하는데 비용이 들어갔고 그가 회계 담당이었기 때문에 오늘 얼마가 들었습니까? 그가 장부처리 하라고 한 것으로 알았지요!

 

예수님을 팔아먹으려는 건 몰랐지요. 나중에 알았지요. 우리가 눈치 채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주님은 빈틈이 없고 실수가 없고 하자가 없습니다. 주님은 아버지가 보내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때에 다시 살리십니다. 이건 실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실수 없으신 주님을 믿어야지 그걸 눈치 챈 나를 믿으면 안돼요. 나를 믿으면 복면 벗어버리고 자기 자랑 할 수 있어요.

 

두번 째 제목을 뭐라 한다 했습니까? 허락. 복면가왕이라 할걸,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였다는 말은 세명, 다섯 명, 열 명 되기를 바라지 마라! 두세 사람도 내 이름으로 모였으면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너희를 모이도록 만나게 해 주셨는가! 만약 두세 사람이 모였다면 그건 모임이 아니고 만남이지요. 두세 사람 밖에 없으니까!

 

우리 가운데 주님이 함께 계시다! 이것은 우리가 어느 장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게 아니라 그런 시절은 끝났습니다. 주께서 함께 계신 곳에 주의 뜻으로 모였다면 이미 그것이 바로 교회가 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주와 함께 있는 것인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을 저희가 감사합니다. 이것이 성령안에서 이루어진 일 인것을 우리는 날마다 되새겨 가면서 느끼고 또 느끼고 또 감사하고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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