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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7 05:59:36 조회 : 3393         
한국교회에 대해 분노하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가져온 글> 이름 : 김영완(IP:222.251.201.67)
2008. 6. 22. 목마른 자 사55:1-5
스스로 복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위험한 함정은 '나는 잘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주어질 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부터 그 답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결국 잘 아는 문제에서는 깊이 생각하지도 않은 채 쉽게 넘어 가버리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그리스도의 피, 십자가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성경의 중심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모든 사건 하나 하나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도하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이고 계시입니다.
때문에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삭제하여 버린다면 한낱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연 현대의 성도들의 관심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얼마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과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모든 관심을 집중한 채 성경을 들여다보고 설교를 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사실 목사들이 무엇을 설교할까? 고민하는 이유는 교인들이 잘 아는 문제,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대한 문제를 설교하기가 이제는 난처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교인들이 십자가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잘 아는 설교를 하려니 설교를 하는 당사자도 힘이 없고 설교를 듣는 교인들도 흥미가 사라지고 관심이 없기 때문에 하품만 합니다.
이것을 보는 목사는 고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말고 소위 설교거리를 찾느라고 애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환경운동, 기복신앙, 신유은사, 도덕, 교회건축, 이런 것들이 아니겠습니까? 교인들이 관심을 둘만한 것을 제공해서 교회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안다고 하지만 이는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십자가를 믿는다. 내가 죄인인 것도 알고, 예수님의 피로만 구원받는다는 것도 믿는다, 라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으로 십자가를 믿고 있는 것으로 여겨버립니다.
결국 이들은 십자가를 믿고 있고,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았음을 알고 있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는데, 설교할 때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습니다'라는 말을 한다면 과연 그 말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깊이 새겨들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것을 아는 목사들은 이러한 딱딱한 십자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가치, 보람, 꿈, 사람들이 통하는 상식을 설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와서 십자가를 듣고 내 입으로 인정한다고 해서 나는 다 안다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습니까?
잘 알고 있는 것을 믿음으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스스로에게 속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잘 안다고 해서 그냥 지나치려고 하지말고 잘 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시작해야 합니다.
소위 복음을 전한다는 목사의 위험성도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복음만 설교하고' 교회 부흥에도 욕심을 두지 않고, 오직 주님만 가르친다'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목사는 복음을 전하고서도 '내가 복음을 전했다'라는 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교회에 부흥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도 나는 교회 부흥에 관심 안 둔다는 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나는 과연 주님만을 사랑하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만약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마음에 두고 내가 주님만 사랑하는가?'를 점검하면 자신이 복음만 전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해서 나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답을 쉽게 내려버릴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나는 주님만 사랑하는가?'를 생각할 때 결국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고, 그런 가운데 역시 나는 주님의 피로 천국 가는 무능하고 못난 인간이다'라는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 길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안다는 말은 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하나됨을 말합니다. 주님과 하나됨은 주님을 아는 것이고 주님을 안다라는 말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이란 그분을 요구하는 간절성입니다.
즉 내 영혼의 욕구입니다.
사랑이란 그분으로 목말라하고 사모하는 욕구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이러한 목마름이 없고 사모하고 사랑함이 없이 입으로 십자가를 말하고 주장한다고 십자가를 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십니다.
물은 목마른 자가 찾습니다. 그렇다면 물을 찾지 않은 것은 목이 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물만 찾으라는 것이 아니라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합니다.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시면서 값없이 돈 없이 사라고 하십니다.
정당한 값은 하나님이 이미 다 치루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값없이 돈 없이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포도주와 젖을 사지 않는 것은 포도주와 젖에 관심이 없고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포도주와 젖은 가나안땅의 주요 산물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는 맛도 보지 못했던 것을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야 먹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수고하고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값을 치르고 하나님이 수고하시고 희생해서 이루어 놓으신 그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즉 포도주와 젖은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이루어놓으신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은혜 즉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고 사모하고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알게되고 하나가 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말은 하나 즉 한 몸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로서 하나이기 때문에 생명에 관계된 자이고 생명의 관계된 자로서 그분에게 속한 자는 그분을 필요로 하게 되고 사모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분 앞에 나올 때 자신이 얼마나 희망 없는 사망에 처한 자이고, 더럽고 추한 죄인 됨이 드러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필요로 해서 매달리게 됩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본능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해서 그분을 사모하고 사랑하도록 성령께서 간절 성을 가지게 합니다.
이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이고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양식이고, 갈증을 풀어줄 생수이고, 우리에게 힘과 능력이 되는 보양식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으로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는 그들이 예수님이 있는 교회이고, 예수님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없고 예수님을 모르면 내가 누군지를 모르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 목말라 하지를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목말라 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것에 집착하고 목말라해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 아닌 자들은 예수님으로 목말라 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것을 찾아 헤매 입니다. 그것이 2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고 배부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양식이란 뭡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떡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아무리 먹어도, 내 소유로 취해도 그것은 우리를 살릴 수 없고 우리에게 만족을 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허전하고 또 다시 목이 마르게 됩니다.
그런데도 소위 교회라는 많은 자들이 생명의 양식이요 하늘의 보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것들 때문에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목말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들로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주시고자 하시는 포도주와 젖을 필요로 하고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의 욕심을 충족시켜줄 애굽의 것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목말라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필요로 하고 사모하며 애타게 찾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까?
하나님이 우리가 치러야 할 죄 값을 다 치르 고 아무런 조건 없이 값없이 나와서 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감사한 만족의 행복을 누리라고 하시는데도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관심이 없고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아서 찾지를 않습니다. 이는 교회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신부도 아닙니다.
결국 이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라서 어리석은 삶을 살고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나와서 제대로 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 시고,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 좋은 예가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사마리아 이 여인은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에게 언제나 세상은 고달프고 헛되고 허무했습니다.
이 여인은 평생토록 육신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온 자입니다. 지금도 그는 육신이 수고하지 않고 만족한 삶을 살도록 예수님께 물 길러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해줄 수 있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다시 목마름의 저주 속에 산 것입니다.
이러한 그가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요4:13-1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하시고 또 (요4:39-42)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고 하십니다.
이로서 이 여인은 비로소 자신의 죄를 알고, 자신에게 필요한 생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목말라 했고, 생명이 되고 힘이 되는 포도주와 젖을 필요로 해서 찾은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본문 3-5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5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와서 들으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애써야하고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이는 것은 말씀을 듣고,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모임이 말씀이 중심이 아니고 단순한 종교의식으로 모였다면 이것은 하나의 미신이고 우상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의 내용이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서 세우신 영원한 언약의 말씀이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으로 주신 말씀이 두 가지로 말씀하셨는데 그 하나는 다윗의 왕위이고 다른 하나는 성전의 약속입니다.
(삼하7:13-16)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하십니다.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빠앗은 것 같이 아니하시고 그 위가 영원하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다윗의 후손으로 이땅에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언약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집은 하나님의 성전이고 이 성전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전에서 피의 희생이 이루어져 이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는 성전의 역할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에게 세우신 언약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귀를 기울어 들으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을 제대로 들을 때 우리가 저주받은 죄인임을 알게 되고, 이 저주에서 이 죄에서 이 사망에서 건져 주실 분은 죄에서 우리를 정결케 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되고, 이러한 깨달음이 있는 자들이 예수님을 목말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먹을 것이 없고 마실 것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목말라 하지 않아서 죽습니다.
세상에는 환경이 나쁘고 조건이 나빠서 고통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목말라하지 않아서 고통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재물이라는 돈도 아니고 높여지고 커지는 가시적인 힘이 아닙니다.
지금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알고, 자신의 더러운 죄를 알아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인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했듯이 이 세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목말라해야 합니다.
그분을 필요로 하고 그분을 간절하게 사모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오늘 5절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말씀대로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예수님을 안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은 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목말라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그리워하고 사랑해서 사는 것입니다.
나에게 종교적인 기술이 있다고 중요한 것도 아니고, 누구도 하지 못한 업적이 있다고 칭찬 받을 일이 아니라 다 잊어버리고 단순히 예수님으로 목말라 하고 그 예수님을 사랑하느냐'입니다.
이러한 자가 진정으로 교회요 성도라고 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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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leeth0110    설교내용은 다음카페에서 복사한 겁니다.

동영상은 http://jmh1.onmam.com  에 들어가서 6월 22일자 오전설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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