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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1 01:16:33 조회 : 3123         
하나교회100805요한계시록 4강b 이름 : 이한례(IP:119.148.121.61)
 

하나교회100805요한계시록 4강b(서울하나교회, 이 근호목사)




제 4강b






자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아까 첫 번째 작업인데, 열린 문 안에 작업이 있는데, 이 작업이 무슨 작업을 위해서 뚝딱 뚝딱 뚝딱 무슨 작업을 했다 말이죠. 무슨 작업을 했느냐? 이 작업이 보좌에서 어떤 작업을 했고, 보좌의 작업이 어떤 작업이냐 하는 것은, 거기 배치돼 있는 생물들과 주변의 인물들이 영글어져서 뭐 하나 작업 하나 만들어 냈어요.




그 작업은 제가 아까 얘기한 것처럼 그 작업이 얼마나 우수하고 대단했던지, 여기에 있는 교회에 이런 지상에 있는 자기의 택한 백성을 거저 구원하는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손 댈 (우리가 지상에서 조금이라도 애쓰고 한다든지)필요가 없을 정도로 하늘에서 준 자체로서 완벽하게 구원이 되는 식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그 작업에 대한 모든 배치가 에스겔에 나옵니다. 에스겔. 에스겔에 보면 나오는데, 에스겔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보좌하면 어려우니까 좌석)의 특징이 뭐냐? 문이 움직인다. 움직인다. 움직이니까 뭐냐면 기능적이죠. 기능적. 기능적이죠. 움직인다는 말은 하나님의 보좌가 움직인다는 말은, 어!! 하나님 보좌는 우리의 선입관에 안 움직여야 된다는 생각이 기존에 깔려 있거든요.




하나님의 보좌가 움직인다는 말은 뭐냐면 지상에 이스라엘 나라에 성전이 있고, 이 성전 위가 바로 하나님의 보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래서 기도하면, 위에서 응답하게 되어 있어요. 편리하죠. 여기에 연통 같은 게 있어 가지고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내려오는 굴뚝 밑에 벽난로에서 오호~하면 굴뚝에서 소리 나는 것처럼 아래 성전에서 기도하면 위에서 응답하게 되어 있어요.




이건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이는 ‘역대 하’나 ‘열왕기 상’ 같은데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다 짓고 난 뒤에, 솔로몬이 엄청난 제사를 드렸죠? 수천 번제를 드렸어요. 수천 번제라 하면 한꺼번에 양을, 소를 수천마리 드렸어요. 성전을 완공하고 난 뒤에 갑자기 예상치 않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어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니까 아까 제가 말한 이사야처럼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하나님 영광이 나타나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보고 싶다 해놓고 막상 갑자기 하나님이 나타나니까 다 도망가고 말았어요. 다 숨었습니다.




마치 모세가 시내 산 올라가고 난 뒤에 감히 하나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 한다는 자체는 그 앞에 설 자가 없습니다. 사사기 같은 경우에 삼손의 아빠, 엄마가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난 뒤에는 “이제 우리는 죽었다. 죽었어.” 이렇게 한 것처럼 실제로 본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러니 이건 진짜 하나님이 영광중에 무서운 가운데 나타났다는 고백을 누가 하느냐 하면, 필리핀이나 핀란드나 덴마크 사람이 안하고 어느 나라 사람이 해요? 이스라엘 사람이 하죠?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기능적이다. 이스라엘이 기능적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 쪽에서 어느 다른  이방 민족에게는 하나님이 자기 영광을 나타낸 적이 없다 이 말이죠.




그럼 우리는 이방이잖아요?  이방이 그런 이스라엘 보고 할 수 있는 말은 하나 밖에 없어요. “너희들은 구라다” “거짓말이다.” 너희들에게는 나타났는데 우리들에게는 왜 안 나타나느냐? 그럼 이스라엘은 뭐라 합니까? 너희들 신은 우상이기 때문에. 그러면 이쪽은 “너희만 참된 신이고 우리가 우상이라는 근거를 대라” 그럼 이쪽은 “우린 모세 할아버지를 만났거든.” 우리(한국)는 “단군 할아버지를 만났거든“ 해야겠죠.ㅋ




이스라엘만 참 하나님 알고 다른 덴 전부 다 가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지상에서 인간의 지혜서로는 찾아 낼 수 없어요. 일방적입니다. 일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모든 민족에게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모든 민족에게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모든 백성 가운데 오직 “너희만 알았나니” 라고 말씀이 그렇게 된 거예요.




세 번째 합니다. 또 해 봅시다. “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소용없다.”라는 이야기가 우리가 이러고 싶었습니까? “이런 말씀 주세요.” 하고 기대했습니까? 뭡니까? 아니죠? 그냥 이 말씀이 있던 걸 알죠. 은혜 받기 전에는 “아 이런 말씀도 있구나.”하는 선이었는데, 막상 이 말씀 자체가 우리를 해보니까 이 말씀만이 진짜 현실인걸 알죠.




그럴 때 다른 이방 민족이 공자, 맹자도 그 비슷한 말이 있거든. 아무리 무슨 소릴 해도 그 사람 귀에는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그건 이방들이 한 소리고 그건 마귀가 그렇게 한 거고, 진짜 은혜 받아버리면, 우리가 그걸 이해 한 정도가 아니고 말씀 자체가 옴팡 뒤집어 씌워버리면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는 겁니다.




그 중에 하나가 뭐냐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거예요. 임해서 너희가 성전에서 기도하면, 하늘의 보좌에서 응답하는 조치를 내리겠다. 해서 이 성전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걸 “기도하는 집” 이라. 기도하는 집이라. 기도하는 집의 특징은 반드시 위와 하나가 되어 움직이지 않고 고정 돼야 되죠. 고정 돼야 한다 말이죠.




매표소에서 표 끊는데 사람은 안 보이고 아래에 동그란 구멍만 있는데, “울산 표 주세요.”소식이 없는 거예요. 화장실에 가버리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비록 사람은 안 보이지만, “표 주세요.” 하면 손이 매니큐어 바른 손이 쑥 나와야 된다 말이죠. 2500원. 나와야 된다 말이죠.




그런데 에스겔에 보면, 매표소 아가씨가 어디 가버렸어요. 무빙(moving). 움직여 버렸어요. 그러면 그 터미널 이제 문 닫아버려야 해요. 표 파는 사람이 없는데요, 뭐. 표 파는 사람이 없어요. 움직이더란 말이죠. 움직이는데 그 움직일 때 그냥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기능적으로 어떤 기능을 보여 주면서 움직입니다. 그 움직일 때 하나님의 신이 움직이는데, 그 사면에 소, 사자, 독수리, 사람 얼굴을 한 그런 모습을 한 사면, 한 면, 두면, 세면, 네면, 사면을 한 그 가운데 하나님의 신이 임해서 그것이 바퀴가 달려가지고 움직입니다. 전 세계를 다 움직이죠. 이렇게 움직이면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야, 이제 좋겠다. 이스라엘한테 복 주던 하나님께서 움직이니까 우리 대한민국도 복주겠네~이렇게 좋게 생각하시는데 그게 아닙니다.




성전(하나님의 보좌)이 고정되지 않고 움직인다 말은 요 보좌와 성전이 딱 끊어질 때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가 뭐냐면, 이 성전을 만들던 이스라엘이 뭘 했냐하면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상을. 요거 또 하나 이야기 해야겠습니다. 우상인줄 알고 우상 섬기는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우상의 이름 가운데 요런 게 있어요. ‘여호와’ ‘예수’ ‘삼위일체’ 이런 이름이 있어요.




명칭이 ‘부처’ ‘몰록’ 이래서 우상이 되는 게 아니고 지금 열심히 “주여~ 주여~” 하는 우상이 있다니까요. 삼위일체 우상이 있고, 우상이다. 아니다. 를 누가 결정하느냐 하면, 위에 계신 분이 결정하지 자기가 결정하지 않아요. 부부 사이에 아내가 이렇게 말해요. “당신 언제부터 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진 것 같애.” 할 때 남편이 ”내가 뭐? 나는 똑같애.“ ”아니야 여자의 육감은 못 속여.“ 여자의 육감은 못 속인다는 말 헌법에 나와 있습니까? 예레미야 몇 장에 나와 있습니까? 그런 거 없어요. 지 맘대로 생각한 거예요. 남들은 억울하지.


아니 요새 나한테 관심이 뚝 떨어졌어. 뭐 뚝 떨어져? 똑 같은데... 아니야. 아냐. 누가 달라진 겁니까? 그렇게 생각한 여자 쪽에서 달라진 공산이 많아요.




상투적이란 말 들어보셨죠? 요거 좀 설명해야 하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명해야 돼요. 왜냐하면 왜 우상을 섬겨야 하는지... 상투적이라는 말은 철학적으로 아주 어렵게 얘기 하면 ‘동질성’이예요. 동질성이란 말이 뭐냐면, 과거에 내가 알고 있던 것을 그대로 현재까지 잡아당기는 것을 동질성이라고 합니다. 어제 은혜 받은 것을 오늘 은혜 받은 걸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동질성이라 해요. 동질성. 10개월 전에 교회서 은혜 받은 것을 가지고 지금도 그 은혜 그대로 유지 하는 것을 동질성이라 합니다.




사람이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 순간도 같은 경우가 없어요.




그야말로 문 잠가놓고 안에서 컴퓨터하고 밖에 나가지 않아도, 그대로 백수가 그 자리 고대로 있더라도, 그 인간은 어제와 다른 인간입니다. 늘 달라요. 이미 생각이 다르고, 역사가 또 있어요. 요번 수련회 할 때 했는데, 1, 2, 3, 4, 5, 6  순서 정할 때 2라 하는 것은 1이 앞에 있을 때이고, 3이라 하는 것은 1과 2가 있을 때 3이 있어요. 이미 오늘이 돼 버리면 어제 있었던, 어제 만약 말하기를 “ 나는 어제와 똑같애.” 라고 말하는 것이 포함된 오늘이 되는 거예요.




오늘의 기억 속에는 어제와 똑같지 않아요. 이렇게 던져 놓고 “ 내가 합격해서 돌아올 때가 됐는데...” 라고 어제 기다린 기다림보다 오늘 기다림이 더 심화 되죠. 아,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더 심화 되죠. 같을 리가 없습니다. 같을 리가 없는데, 인간들은 자기가 자기 모든 게 달라지고 자기 주변 환경이 달라지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달라지는데, 뭐 만큼은 하나인 것처럼 자꾸 척하느냐 하면, 어제 믿음이 오늘 그대로 유효하다고 그렇게 조작하고 싶어 해요. 조작하고 싶어 해요. 이것은 그냥 어제 은혜 받은 거 공짜로 덩태미로 그냥 넘어가려 해요. 신앙생활 아니에요. 신앙생활. 이발사가 교회 나오면 목사님이 뭐라 합니까? 이발만 하지 말고 신앙생활 하라 하죠? 그렇죠? 교회 나온 의사보고, 병만 고치는 것이 다가 아니고, 신앙생활 해야 된다 하잖아요.




그러면, 목사의 목회는 뭐해야 합니까? 목사의 목회는 뭡니까? 의사는 병 고치는 것이고, 이발사는 머리 감는 거라면, 목사의 기술은 뭐예요? 목회잖아요. 설교고, 근데 그게 신앙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거 신앙 아니죠? 목사는 신앙생활 해야 되는데, 목회 생활로 대체해 버려요. 이건 마치 이발사가 머리 깎아주는 것으로 신앙생활 대체하는 것과 똑같고, 의사가 병 고쳤다고 신앙생활로 대체하는 것과 똑같고, 판사가 판결내리는 것이 마치 신앙생활이라 취급하는 거예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만나를 주듯이 매일같이, 매일같이 우리가 주님의 말씀 속에 있다는 감격이 매일같이 거기서 주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럼 감격 줄 때 어떻게 하느냐 하면, 기존의 보좌(성전)가 뚝 떨어질 때, 떨어지면서 이 성전은 아무리 성전에서 정기적으로 상번제, 아침, 저녁마다 양 잡아 드려도, 양 잡고 소제 드려도 이건 우상이 되죠. 아무리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해도, 기도하는 집이라 하여 기도해도, 적게는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두개인들이 하는 일이 뭐였습니까? 특히 사두개인이 하는 일이 뭐였습니까? 제사 지내는 일이었잖아요. 성전 관리잖아요. 바리새인 하는 일이 뭐였습니까?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거잖아요. 그들이 구원 받았습니까?




예수님 말씀은 반대예요. 세리와 창기가 너희들보다 먼저 천당 간다 했습니다. 금식한다고? 웃기고 있네. 신랑이 함께 있는데, 무슨 금식을 해??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어. 했다고요. 이거 누구 겨냥해서 한 거예요? 누구 겨냥해서?? 동질성, 상투적인 거. 그러니까  본인은 이걸 상투적이라고 봅니까? 안봅니까? 안 보죠. 그러니까 상투적 안 되려고 뭐했습니까? 금식하고 회개 집행한 거예요. 회개하고 금식했는데, 이걸 가지고 뭐라 했습니까? 옛 부대, 쉽게 말해서 옛 푸대. 옛 푸대에 옛 포도주를 담는 식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럼 목사님 바리새인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바리새인들은 그냥 그대로 지 상투적인 거 하세요. 하고. 주님 만나서 무슨 소리 하면 되느냐 하면, 주여 이 짓해도 구원하고 상관없고,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그거 하면 돼요. 그거 누가 했어요? 사도바울이 했잖아요. 사도바울이 율법에 흠이 있어요? 없어요? 흠이 없는데 그 소리 했잖아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때려죽이려 했잖아요.




상투적이고 동질성이 되게 되면, 여기에 뭐가 가미 되냐 하면, 그들의 믿음이라는 것이 그냥 주님이 주신 믿음이라 주님이 주신 은혜라고 유대인들은 알고 있어요. 믿음은 은혜로 오고 구원은 은혜로 오고 영광은 행함으로 한다. 유대인들, 바리새인들 주특기입니다. 다 그렇게 교육했어요. 요즘 한국교회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도 다 그랬어요.




문제는 이 믿음이 바로 동일성, 이 믿음의 주체 자가 봉사하기 위한 믿음이에요. 나를 살리기 위한 믿음이에요. 누가 주인공이에요? 내가 주인공이지 믿음이 나를 집어 삼키지는 않고 있단 말이죠. “나는 어제는 믿었지만 오늘도 믿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라고 나와야 돼요.


어제는 어떻게 은혜를 받았는지 주의 말씀대로 믿었는데, 오늘 아침 되니까 영 믿음은 없고, “아이고 참 10년 댕기나 20년 교회 댕기나 다 헛짓이고 소용없는 것이다.” 라고 언제라고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인정을 해줘야 됩니다.




고렇게 하면 은혜가 오시는 게 아닙니다. 고거 한다고.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할 뿐이죠. 그런데 진짜 은혜가 오면, 뭘 하느냐 하면 어제 믿은 것 가지고 오늘 잡아당길 수 없음을 압니다. 주께서 날마다 살아계셔서 은혜를 주셔야지, 이만한 믿음 같으면 내일까지 견딜 수 있습니다. 제 힘으로 버텨 보겠습니다. 라는 얘기는 하지 맙시다. 우리, 그런 식으로.




어제는 예수님 필요 했는데, 오늘은 안 필요하다 식으로 나오지 맙시다. 어제도 거저 은혜를 주셨지만 오늘도 거저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택한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천국 갈 때까지 계속해서 은혜를 주십니다. 15년 줬는데, 안 주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질문은, 그런 질문이 나올 때 은혜를 안 받았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나와요. 왜냐면 은혜 주고 안 받고의 결정권이 나한테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받았다면, 그렇게 요구할 쨉이 못되죠. 우리가. 이걸 말로 하려하니 답답한데, 실선으로 해 봅시다.




이 안에 우유가 있다고 합시다.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요구르트 아줌마가 아침마다 계속해서 갖다 넣고 가는 거예요. 다음에도 계속 해서 우유 넣고 가는 거예요. 그러니 애들이 “엄마, 우유가 공짜로 그냥 생겨” 내일도 보니 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온 식구들이 고맙다 인사하려고 기다리니까 우유가 안 오는 거예요. 우유 아줌마를 만났어요. “왜 안 오십니까?” “내 맘 대로야. 내 맘 대론데.” “아니 그래도 364일째는 왔잖아요. 왜 365일째는 안 옵니까?” 364일째 온 것은 온 거고 365일째 오고 안 오고는 내가 결정한다니까요.




“목사님, 그렇게 얘기 해버리면 믿음 불안해서 못합니다.” 어제 믿은 사람 내일 온다고 해줘야 안 불안하지 그리 얘기하면 실컷 예수 믿어도 그담부터 안 오면 어떻게 됩니까? 라고 하지만 진짜로 한 번에 은혜 받은 사람은 이것은 나한테 은혜 준 것이 내가 요구해서 내가 구원 받고자가 아니라 주께서 자기 택한 세계 계속 준다는 것이 보장하는 편에서 계속 우리에게 갖다 준다는 것이 믿어진다니까요. 그것이 알아지는 거예요.




한 번 주께서 은혜 주시면 계속 주신다는 것이 알게 된다니까요. 그래도 목사님 그것이 안 오면 어떻게 합니까? 안 오면 이란 말이 믿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니까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았죠? 그게 아브라함의 믿음입니까? 주님 믿음입니까? 주님 믿음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예수님 바라봤잖아요. 요구르트 아줌마, 예수님을 보기를 기다렸죠.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날 갖고 놀았다는 말이죠. 누굴 증거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거저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 2천 년 전에 하나님은 나를 갈대아 우르에서 데리고 와서 그동안 나를 갖고 놀았어요. 이스마엘 낳게 하고, 또 실망케 하고 낳은 자식은 저주 받아 버리게 하고, 생각도 않은 자식은 구원을 주는 이삭이 되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나를 갖고 놀은 거예요. 이것은 이스라엘이 기능적으로 하나님께서 다루신 거예요. 주체라는 것이 내가 믿음을(아까도 얘기 했지만) 소지 한다는 거, 이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소지해 버리면 내가 굳어져 버려요. 그렇다면, 자 여러분 질문 드리겠습니다. 너무 어려우니까.




하나님께서 보좌를 끊으신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멸망케 함이다. 멸망케 함으로서 이스라엘이 존재론적이 아니고 기능적이죠. 기능적으로 보인다는 말은 이러한 사실, 내막을 아는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도 구원을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구원 받지요. 아, 하나님의 본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나라 완전히 박살내게 만들었구나. 이것이 오늘 강의의 하고 싶었던 내용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 나오는 그 보좌의 움직이는 4생물의 특징이 뭐냐면, 지상에서 “강탈” 다 빼앗는 거예요. 다 빼앗아 버려요. 뺏기는 자가 구원되는 거예요. 난데없이, 생뚱맞게, 황당하게, 어쩔 수 없이, 본의 아니게 다 뺏기는 거예요. 아이, 목사님, 죄를 지었으니까 빼앗기지. 아닙니다. 죄를 지어서 빼앗기는 거라면 나보다 다른 사람 것을 다 빼앗아야 해요. 나보다 더 죄를 지은 사람이 더 많으니까. 그게 아니고 뺏아 주는 그 사람이 우리의 소중한 중력의 중심이에요. 블랙홀이에요. 무조건 끌어 당겨요.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고, 타고난 본능이 그래요.




그래서 이번 레위기 수련회에서 출생 자체가 처벌이라고. 사람이 태어나는 자체가 처벌이라는 거예요. 레위기에 나오잖아요. 여자가 해산하면 그 자체가 더럽다고, 아이고, 더러운 거 낳아 가지고 약속의 땅 버려놨다고 하는 거예요 .애들 3명 나도 4명 나도 다 처벌이에요. 그 집안에 소복이 4명 다 처벌받는 거예요. 처벌 받는 것이 합당한 조치예요. 죄 지은 자에게는 너무나도 합당한 조치. 남의 애 성적 내려가면 그거 별로 기분 안 나빠요. 그런데 내 애 중에 성적이 내려가면 환장합니다. 우울증 걸렸다 난리 나요. 우울증 걸렸다 뛰어 내린다 난리예요. 무슨 일 났어요? 왜 뛰어 내리게 .. 죽는 시험 있어요? 아파트서 왜 뛰어 내리는데...? 자기 세상이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우울증 걸리고, 뛰어 내리는 거...? 아주 합당한 조치입니다. 조치예요.




성경에서 지옥을  뭐라고 표현했냐 하면, 구더기를 튀기는 것으로 표현했거든요. 자 구더기를 뜨거운 가마솥에 넣고 뚜껑을 덮지 말고, 소금을 탁탁 쳐 봅시다. 그리고 밑에서 장작 불 때면 풀풀 뛰죠. 그 뛰는 것을 우리가 관찰하는 자가 아니고, 우리가 가마솥의 뛰는 구더기라고 하면 얼마나 뜨겁겠습니까? 그럼 주님이 뭐라 하시겠습니까? “아이, 고 놈 잘 뛴다.”합당한 조치기 때문에. 뛰라고 소금 친 겁니다. 뛰라고 장작 불 땐 거예요. 뛰라고 할 때 뛰어 주고 뜨거울 때 뜨거워해야 주님께 영광이 되요. 이거 미친 소리 같은데...ㅋ




그래야 영광이 된다고요. 이걸 이방인들의 하나님에는 이렇게 잔인한 하나님은 없어요. 이방인들이 창안한, 선악과 기준하여 창안한 하나님은 없습니다. 너무 잔인하잖아요. 근데 인간은 잔인 자체가 성립이 안돼요. 본인이 잔인하기 때문이에요. 왜 잔인하냐 하면, 본의 아니게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인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본의 아니게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죽인 자가 돼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픽, 할 때 이미 예수님 못 박혔어요. ‘흥’ 하고 조롱할 때 이미 또 못 박힌 것이 돼요. 물론 내부에는 인간 속에 악마가 있어서 악마가 그렇게 시키지만...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을 성전이 있으니까 성전이 고정되어 있으니까,




이것이 솔로몬 당시에는 맞아요. 솔로몬 이후에 이미 나라가 깨질 때 그들이 진짜 회개 합니다. 왜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졌을까. 이미 진즉에 회개해도 솔로몬도 마지막에 어떻게 했습니까? 이방 종교를 수입했죠? 수입해도 솔로몬은 이게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거예요. 왜냐면 이방종교가 그렇게 수입돼도 나라는 탄탄하고 든든하고 아직도 주변에서는 못 다 바쳐서 “아유~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가 당신입니다. 세상에 이런 지혜와 이런 부귀영화는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이 안 주면 이런 게 없습니다. 당신이야 말로 주의 종입니다.”라고 칭찬이 늘어서 막 쏟아지기 때문이에요. 




하나교회는 지금 회비가 모자라서 쏟아지기는커녕....... 솔로몬은 막 갖다 바쳤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양을 보시는 게 아닙니다. 질을 보잖아요. 질을 보시는데 양을 받아 딱  챙겨가지고는 뭘 생각합니까? 질을 포기한 거예요. 양 있으면 됐지 뭐 이만큼 얻었으면 됐지 뭐 하나님을 애타게 찾느냐 말이죠. 그러면 하나님을 애타게 찾으려면 인간이 결국 무엇을 지표로 한다? 양, 이것은 힘이 되는 거예요.




양이라 할 때 하나님께 사랑 받는 것은 하나밖에 없어요. 양이라는 것 힘이라는 것, 이것을 포크레인으로 하늘에서 후벼 파서 강탈해 가면, 그것보다 더 완벽한 사랑 없어요. 최고의 축복 아닙니까? 니가 온 천하를 얻고도 니 목숨을 잃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거 언제 느낀다고요? 난데없이 귀한 재산 날라 가고, 자식 아플 때, 집구석 개판 됐을 때, 교회 교인 다 나갔을 때.......ㅎ  과연 우리의 보물은 뭐였습니까? 가정이었습니까? 교회였습니까? 정말 우리의 보물은 어디에 있었어요?  돈이었습니까? 진즉 그래야죠. 진즉 그랬어야죠. 우리의 보물은 예수님 이었습니다. 그런 입에 발린 거짓말 하지 마세요. 우리의 보물은 예수님이라고요? 말도 안 되는 그런 거짓말, 목사까지도 다 아는데.....  목사가 알면 다른 사람도 다 알지 뭐,...




사람은 자기가 육신이 살아 있는 한  자기의 보물이 고정적입니다. 뭐냐면 자기 육신이 보물입니다. 옆 사람 아파도 내 안 아프면 그만이에요. 내 아프면 옆 사람 건강해도 시기 나는 문제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손 뗀 교회가 중요하고 남의 집 애가 싫고 내 애는 좋아하고, 다른 나라 싫고 내 나라 좋고, 인간 똑똑해야 좋고, 내가 좋은 거예요.




내가 좋은 것 때문에 누가 싫은가 하면, 이 좋은 날 너무도 귀한 날 누가 나를 죄인이라 해요? 누가 나를 죄인이라 해요? 어, 분위기 와 이래요? 진짜 모릅니까? 누가 나보고 죄인이라 해요?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죄인이라 하면, 그럼 예수 죽여야 하죠. 믿는 척 하면서 내부에서는 “돈 만 주고 꺼져. 내가 원하는 돈 만 주고 꺼지란 말야.“ 양과 피만 주고 나가란 말야. 교회에 개척교회 목사 뭐랍니까? ”예수 당신은 교인 수 채워 주고, 헌금만 맞춰 주고 꺼져 나가. 이 교회 내꺼야.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옆에 교회 봐. 잘 안 되면 용서가 안돼. “




인간은 육신을 갖고 있는 한 항상 집중하는 거예요. 그 집중하는 기능을 고맙게도 누가 먼저 보여 줬습니까? 누가 먼저 보여 줬다고요? 이스라엘이 기능적으로 보여 줬죠. 이스라엘이. 우리에게는 여호와가 있고 성전 있고, 율법 있고 다 있다. 왕 있고 다 있다.




주께서 짝짝(손뼉 치시며) “ 장사 잘 해라. 내 떠난다.” 해서 떠나기 위해서 바퀴 달고 떠나버렸어요. 바퀴 달고 떠나 버렸습니다. 자, 이제 문제 하나 나갑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떠나면 다른 민족에게 간다? 안 간다? 1번 간다. 2번 안 간다. 둘 중에 하난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떠나면 딴 나라 간다? 안 간다? 안 갑니다. 왜냐면, 이스라엘은 대표자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멸망은 곧 뭐로 퍼지는가 하면, 전 모든 민족에 대한 멸망으로 퍼집니다. 고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미 바퀴 달린 보좌 나왔다 이 말은 자기 택한 백성을 어디로 위하느냐 하면, 미국 이민 보내고, 호주로 이민 보내는 것도 아니고, 아예 하늘로 데려 가버립니다. 하늘로 데리고 갈 때 그냥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십자가라는 코스를 밟아서 데리고 갑니다.




그래서 그 코스는 복음 전하고, 목 베임 당하고, 위에서는 축하 한다고 손잡아 당기고, “에이 복 받은 자들아, 요렇게 복 받을 줄 니 몰랐지? 요렇게 지상에서 너희를 왕창 빼앗아 갈 줄 몰랐지?” 그러면 목 베인 사람들은 “감격” 감격해서 “하나님, 어떻게 말씀대로 그대로 세상 일이 되갑니까?" 하고 둘이 짝짜꿍 잘 되서, ”나는 말씀대로 그대로 시행한다.” 택한 백성 “어떻게 그렇게 말씀대로 하나 빈틈없이 짝짝 되갑니까?” 주의 약속대로 7교회 다 망하고  아이고 얼마나 꼬신지... 다 망해 버리고, 왜 그렇게 약속대로 되갑니까?




7교회 이야기 보고 교회 바르게 해보려고 “그래 이렇게 했으니까 우리는 회개하고 바르게 해 봅시다.” 한 교회 다 망했거든요. 말씀대로, 망해야 하는 교회는 망해야 돼요. 안 망하려 하는 것이 말씀에 대한 위배 입니다. 교회가 망해야 본인이 성도인 것이 드러나요. 이게 무슨 이야기야...?? 교회가 망해야...교회가 보물이 아니고, 누가 보물이라고요? 예수 그리스도가 보물이라는 것이 드러나요. 예수님이.




만약에  교회가 안 망하게 되면, 그 사람은 본인은 분명히 예수님 믿는다고 했고, 이 교회는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과 능력이 덩어리째 떨어져서 이 교회가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이 교회 욕하면 용서가 안 되죠. 그런데 예수님이 교회 욕해버려요. 그 교회.


그 교회 지을 때 어느 장로님이 기도 하니까, 응답 받아서 땅 값 확 올라서 지은 교회인데, 기적과 기적이 연속으로 일어나서 지은 교회인데, 그 교회가 바로 이것이 바로 과거 현재 미래, 이것이 동질화에요. 동질화




이거 없고 그담에 내 새로운 교회 할까요? 이래 나오면 “주님 뜻대로 하세요. 주님 말씀대로 하세요.” 해야 하는데, 있는 교회나 크게 해 주이소. 이게 뭐냐면, 동질화잖아요. 동질화. 어제 것 그대로 땡겨서 굳어지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양적으로 이정도 하면 슬슬 안심되는 그러한 수준에 올라갔습니다. 라고 할 때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이 저주하겠다는 말씀대로 유업은 너희들이 나와서 이 땅에서 배불리 먹고 좋은 집 질 때, 하나님을 모든 출애굽 때 빈털터리로 나왔던, 고아와 과부가 되어 나왔던 그 때 그 시절을 깡그리 잊어버리겠다. 이만하면 제가 살겠습니다. 휴우~ 이제 숨이 트입니다. 그 숨 확 막아 버립니다. 숨 막아 버려요.




4가지 짐승은 에스겔 10장에 나옵니다. 바퀴 안에서 불꽃이 나옵니다. 그 불꽃이 무슨 용도냐 하면, 유다 나라를 완전히 불살라 버리는 용도에요. 완전히 불 질러 버리는 거예요. 중국산 라이타와 똑같은 거예요. 한쪽에 휘발유 쭉 뽑고, 라이타 획 던지면  확 타죠. 그것이 바로 마지막 때 말씀대로 되는 겁니다. 말씀대로.




그것을 보고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하소서.” 위에서 “말씀대로 했는데?”  “우리 다 타 죽습니다.” “아니야, 건질 사람 벌써 건졌어. 니 손으로 다 작살냈잖아. 목 베어버렸잖아.




문제는 이 4생물이 배치돼 있는데, 이 4생물이 기능적으로 에스겔 10장의 말씀대로,  전 세계가 불신으로 처해 있는데, 요 앞에 아버지의 보좌 말고, 그 앞에 어린양의 보좌가 있어요. 보좌가 2개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어린양의 보좌는 뭐냐면, 아버지하고(이제부터 조금 어렵습니다) 아들하고 고 관계를 여기에 있는 4생물이 그대로 수행을 하게 돼 있습니다.




4생물이 하는 일이 자기 안에서 판단하여 적당히 불사르자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하고 하나님이 합의된  내용을 펼칩니다. 합의된 내용을. 합의된 내용이 뭐냐면, “하나님의 아들을 주님이시다.”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늘나라에서 어떤 짓도 다 합니다. 무슨 짓도 다 해요. 살리고, 죽이고, 천국가고, 지옥가고, 이 모든 소관은 교회 소관도 아니고, 사람 소관이 아니라 순전히 어린양의 소관에 의해서 어린양에 따라서 다 결정돼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천사들의 지시는 어린양의 어린양 됨을 어린양이 주로 등극되었음을 축하 공연이죠. 어린양은 예수님이 주가 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작업이 필연적으로 따라 오게 되는 겁니다. 따라 오게 되어 있어요. 그 점을 에스겔 성전 가지고 해 보겠습니다.




에스겔 성전의 이 보좌 이야기가 에스겔 1장에 나옵니다. 1장에 나오고 4장인가 5장...가물가물한데 확인해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르겠다. 1장에 나오고요. 10장에 나오고, 두 장에 나옵니다. 그담에 제가 말한 것은 지금 설명이 시간상 어렵기 때문에, 설명을 쉽게 하려고 정리를 집중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합시다. 4생물 안에 하나님의 신이 임했다. 신이 임했으니까, 지금 에스겔 전체 내용이 뭐냐면, 성전이 있는데, 하나님의 고정된 보좌가 움직이니까 성전에서 하나님의 신이 동쪽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성전은 불바다가 됩니다. 하나님의 신이 떨어져 나갔어요. 그러니까 성전을 백날 때려봐야 소용없죠. 너희들은 우상을 섬겼으니까...




그리고 아까 잊어버렸는데, 우상 이라하는 것은 반드시 앞에 붙는 게 있어요. 자기를 위한, 자기를 위하여, 자기를 위한 신은 무슨 신이라고요? 우상이죠. 그럼 우상이 아닌 신은, 자기를 위하여 대신에 (  )에 누구를 위한 신이 들어가죠? 주님을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오늘 강의에 의하면, 다른 말로 하면, “ 말씀 성취를 위한 기능인”, 말씀 성취를 위하여, 말씀이 우리를 가지고 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거예요.




고 관계를 구원이라 하는 거예요. 구원이라 하는 것은 내가 구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나를 가지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어디를 가나, 발로 걸으며 툭툭 치면 말씀이 생각나고, 누구를 만나도 말씀이 생각나고, 펄럭거리며 다니면 냄새나는 향수처럼 말씀으로 다 나오죠. 아~~이런 경우가 바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라 하는구나.’ 자꾸 말씀이 생각난다니까요. 아하, 이런 경우가 마귀가 예수님께 돌더러 떡 되게 하라는 그 대목이네.




어떤 경우 그러니까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항상 말씀을 버리는 것이 아니고, 말씀 풀장에 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다 말씀이에요. 말씀대로. 얻어맞으면, 아 이게 얻어 맞을만해서 얻어맞는구나, 얻어맞는 것도 주의 말씀이 와서 때리는 거예요.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가 이런 경우구나...  그리고 또 맞았죠. 그러면, 아하 아까 맞은 것은 징계 근처도 안가고 이게 징계구나.. 이렇게 늘 말씀이 함께...술집에 가든, 미국에 가든, 교회에 가든, 집에 있든,........말씀과 더불어 항상 있는 거예요. 그게 무슨 생활? 그게 신앙생활 이예요.




신앙이란 방주에 실려서 사는 거예요. 내가 지키는 게 아니고 요건 주일날 지키고, 요건 월요일에 지키고, 내가 골라잡는 것이 아니고, 지키고 말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말씀이 듬뿍 뒤집어 씌워버렸는데, 내가 청와대 가도, 교도소 가도 말씀이 가득 차 있어요. 창살을 보면서, “사도 바울도 이런 고생 했구나.” 어디를 가도 말씀 생각이 나게 되어 있어요. 어디 가도. 그러니까 말씀 주위 상황을 내가 만들지 마세요.




이미 주어진 상황이 말씀이 충분히 헤엄치는 상황 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에서 “내가 가난에 처하든지 부유에 처하든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상황 탓을 하거나 누구 탓 한다든지, 시어머니가 교회가지 마라 해서 못 갔다 고 이런 핑계 는 달지 맙시다. 시어머니 보내주신 것도 말씀대로 보내주신 것이고, 시어머니 핑계대고 교회 안 간 것도 말씀대로 안 간 것이고, 그러다가 얻어맞는 것도 말씀대로 얻어맞는 것이고, 모든 것이 말씀대로 이끄시는 겁니다.




왜냐면, 인간은 안개이기 때문에, 내 자체에 관심은 없는 거예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주의 말씀이 새롭게 주어질 때,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의 신인 성전이 깨어지겠죠. 성전이 깨어지는 것을, (잘 들어보세요)그걸 목격하고, 그담에 증거 하는 자를 에스겔 11장에서는 ‘하나님의 신이 임한 새로운 공동체’로 보는 겁니다. 희한하죠?




있는 성전 잘 해도 될 걸, 있는 성전 와장창 불타 버리고 불태운 것을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탔다는 것을 목격하고 증거 하면서 이방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그들 속에 ‘나의 신이 운반하는 수레바퀴가 나는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멸망은 말씀대로 하나님이 잘 조치가 된 겁니다.




그런 조치를 제가 설명하면서 “강탈”, 강탈이란, 달리 얘기하면, (이 말이 표준말인지 모르겠어요) ‘움푹 파이는 것’ 표준말이에요? 움푹, 삽으로 푹 파는 것. 삽으로 톡 도려내는 것,  우리의 주체가 있으면 주께서 삽을 동원시켜 푹 파서 우리를 허하게 만드는 것, “나 그거 없이는 못 살아요.”할 때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 “ 나 그러 없이 죽어요.” 하면 움푹 푹 가져가는 것, “그래 죽을테면 죽어라.” 말씀대로 움푹 파는 것. 우리의 주체를 움푹 파는 것을 더 잔인하게 얘기하면,(오늘 잔인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네요) 단층 촬영하죠? 여러분 단층 촬영하면 사진 찍는 걸로 하지만, 빛의 안목에서 보면, 단층 촬영이 정육점에서 전기톱 가지고 모든 단면을 자르는 걸 말해요. 막 잘라 버려요. 막 잘라 버린다고요.




말씀께서 항상 우리를(잠 잘 때는 못 자르니까 자고)말씀을 가지고 단층 촬영하듯이 막 잘라버리면, 요 단면 하나하나가 주의 말씀대로 다 이끄신다는 것을 알게 돼요.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이 아예 말씀의 풀장에 들어가니까, 말씀대로 안 되는 게 없어요. 여기서 문제 하나, 신자만 말씀의 풀장에 들어갑니까? 불신자도 말씀의 풀장에 들어갑니까? 신자, 불신자 다 말씀 속에 들어가요. 그런데 불신자는 뭘 몰라요? 불신자는 이게 잘라지는 게 없고, 뭐가 단단합니까?  ‘나‘ 주체가 단단하기 때문에 지켜도 내가 지키고, 구원 받아도 내가 열심히 해서 하고, 지금은 내가 바쁘다. 항상 주체가, 누구든지 나를 건드리면, 난 용서가 안돼.




자기 몸 중심으로 버티기 때문에 이 사람은 현실을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현실을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4장에서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요한계시록 이제 4장 봅시다. (아이고 참, 본문 들어오는데 애 먹었다) 요한계시록에 금 면류관, 5절에 보면,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는 것이, 이게 어디 축제 합니까? 고추 아가씨 축제 할 때 폭죽입니까?  뭤 때문에 번개  뇌성이 있습니까? 완전히 하나님의  분노, 진노의 표현이죠. 찌직, 찌직, 뻔쩍, 뻔쩍, 뻔쩍 이게 뭡니까? “불안하지? 불안하지? 겁나지? 너희들 완전히 망가지지? 그래 이게 보좌안의 나의 뜻이야“ 이런 겁니다.




다시 말할게요. 이스라엘이 멸망하면 더 이상 다른 이방 민족은 볼 것도 없어요. ‘개‘이기 때문에.... 그럼 구원 받는 사람은 오직 목격자들 밖에 없습니다. 무슨 목격자? 이스라엘이 성전 지었다가, “얼레리, 꼴레리, 자기 믿는 하나님한테 멸망당했다. 하고 이렇게 놀릴 때 그 때 하나님이 그것을 의도 했어요. 너희 이방민족이 너희를 포로 잡을 때 비로소 이방인들이 여호와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구약 성경 보면 많이 나와요.




너희들이 멸망당할 때 ”나 여호와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일을 했다.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래도 너무 섭섭하게 여기지 마세요. 그런 식으로라도 우리가 몰랐던 현실이 나타난다면, 현실을 알았다는 그것만 해도, 우리는 온 천하를 얻은 것보다 더 큰 것을 얻었어요. 아~~, 성경속이 그냥 동화책이 아니고, 드라마가 아니고 실제상황이구나.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이 실제 상황이듯이, 사도바울에게 예수님 나타나기 전에는 실제상황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나타나고 난 뒤에는 야, 이게 실제상황이구나.




그래, 여기에 요한계시록 4장에서는 에스겔처럼 움직이는 대목은 없어요. 완료된 상태이기 때문에, 신약 성경에서 이미 어린양이 에스겔에 나오는 모든 걸 완료된 상태에요. 그렇다면, 이제는 에스겔에 나오는 내용대로 그대로 적용시키면 그만입니다. 그대로 적용시키면 됩니다. 주의 자리에 앉아서. 에스겔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지만, 신약에서는 어린양의 보좌에서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심판하는 권한이 있다. 찌직 찌직, 뻔쩍, 뻔쩍, 하는 거예요.




4가지 짐승들의 특징이 있어요. 날개에 뭐가 있습니까? 날개에 ①귀가 있다  ②코가 있다  ③ 눈이 있다 뭐가 있어요? 눈이 있죠? 쉽죠. 눈이 있어요. 빡빡하게 있어요. 4생물이 동서남북을 전체를 카바(cover) 합니다. 이 4생물이 이사야에서 이사야가 6장에서 하늘 보좌에 보니까, 자기만 있는 줄 알았는데, 천사가 있죠? 천사가 뭐합니까? 천사가 이리이리 가리죠? 가리는 이유가 뭐냐면,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모든 어느 피조물도 감당을 못해요. 그래서 가린다 말이죠.




그런데 주위에 있는 4천사가 가리는 날개에 뭐가 있다고 합니까? 수북하게 눈이 있죠? 그 눈들은 뭐를 보는 눈이냐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주시하고, 심판하고, 탐색하고, 시예스아이(csi), 과학수사 보다 더 세밀하게 낱낱이 보는 그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가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4생물에 의해서 4생물의 존재를 현실로 보는 그 성도는 천사와 함께(뭘 해야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앞에서 천사와 똑같은 일을 해야 될 하나님의 귀한 피조물이 되는 겁니다.




주여 진짜 이 영광스러운 천사도 감히 못하는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 앞에 구원받아서 저희들도 우리의 주님 앞에 그냥 엎드릴 뿐입니다. 하는 천사가 하는 짓과  똑같은 짓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계시록 4장 마지막에 보면 뭐를 던집니까?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24장로들이 엎드려서 자기의 면류관을 누구한테 던집니까? 이게 본인이 원해서 했습니까? 말씀이 그렇게 만들어서 그랬습니까? 말씀이 만들었죠. 지금 24장로(순교자)들이 엎드려 있을 때에, 그때 누가 하나 들어와서 “저 김장로, 애 이번에 공무원 합격 됐어? 안됐어? 이렇게 물으면 뭐라 하겠어요? 그게 질문이 가당키나 합니까? 지금 24장로들이 엎드려서 천사도 감히 못 보는 영광스런 보좌에서 완전히 황홀과 감격과 경악스러운 모습으로 엎드려서 모든 만물이 주의 뜻대로 되었습니다. 라고 분명히 언급을 했고, 그게 현실인데, 뒤에 철없는 자가 와서 ”요번에 아 공무원 시험 됐는가 몰라. 아이그 자식 애 먹인다.“ 이런 소리가 나오겠어요? 안 나오겠어요? 안 나오죠. 그리고 지금 목사님 쭉 엎드려 있는데, 어느 철없는 집사가 와가지고 ”목사님 여기 요번에 교회 부흥 되다가 부흥 안 되죠? 그런 소리가 나오겠어요? 안 나오겠습니까? 지금 부흥이 문제가 아니고, 회비가 문제가 아닙니다....(하~ 하~ 하)


그냥 현실 그대로 엎드릴 수밖에 없죠. 이걸 어떻게 지킵니까? 자기가 주체라 하면,  단단한 주체에서 어떻게 나와요? 주체가 움푹 파여야죠. 뭐로? 면류관을 바쳤나요. 말씀이 그대로 오게 되면, 오늘 바칩니까? 안 바칩니까? 말씀이 오게 되면, 어느 순간에 이미 바쳤어. 왜? 말씀이 우리를 장악하기 때문에. “ 좀 받쳐줘. 부탁이야. 면류관을 벗어봐. 날씨도 안 덥나 좀 벗어. 이럴 필요 없어요. 그냥 말씀이 오면, 말씀이 그대로 합니다.




물가에 있는 베드로보고 예수님이 뭐라 했어요? “ 베드로야” 오라 할 때 베드로가 물에 연습해보고 걸었습니까? “오라” 하는 명령이 가다 보니까 가는 거예요. 그러다가 중간에 와가지고“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할 때 물에 빠졌습니다. 이게 바로 말씀의 위력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 부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말씀대로 면류관을 바치게 한 모든 능력과 은혜가 우리한테 있다? 없다? 없고 오직 누구한테 있다? 주께서 그렇게 현실 그대로 나에게 덮쳤고 시켰습니다. 라는 고백, 그게 바로 ‘주의 증인’입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괜히 걱정했습니다. 지금 살아온 것도 내가 나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미래조차도 우리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주께서 다 결정해 놓은 사항인데, 그것을 약속을 우리가 보면서도 주춤주춤하지는 않았습니까? 이제는 매일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같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움푹 파이는 그 즐거움과 감격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말씀만 담기는 주의 목격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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