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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8 23:22:52 조회 : 3093         
하나교회110106요한계시록-8강a-(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119.148.121.61)
 하나교회110106요한계시록-8강a-(이 근호 목사)

제 8강a


시간이 되었으므로 요한계시록 7장을 시작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천사가 나오고 그 다음에 다른 천사가 네 분의 천사가 등장하고 네 분 말고 또 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인(도장)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올라와서 도장 찍을 사람들을 도장 찍는데, 인 맞은 자의 숫자가 144.000 이였더라. 라는 그 대목이 나오죠. 우리가 이런 요한계시록 7장 같은 경우에 전체적인 하나님의 하는 활동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우리가 아셔야 될 것은, 요한계시록의 모든 작업에 대해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먼저 명심을 해야 됩니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여기에 하나님의 일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있어도 있으나마나한 존재죠. 구원 받기 위해서 뭘 하느냐 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에 없습니다. 이건 요한복음에도 없고, 더 나아가서 성경 전체가 사람을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사람을 넣어주지를 않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관여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설쳐대는 것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그렇잖아요. 오늘날 한국교회는 사람이 내가 설쳐야 내가 내 구원 내가 챙길 수 있다고 하지만, 성경 자체에서는 사람을 일체 넣어주지를 않습니다. 사람을 넣어주지를 않기 때문에 우리는 뭘 알아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가 구원 받는데 조차도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우리 자체를 여기다 집어넣지 않느냐 그 이유를 알아야 돼요.


여러분 4영리라는 것 들어봤죠? 4영리 교육을 저도 받았습니다. 젊을 때 받고 조그마한 책자 화장품 팜플렛 비슷한 그렇게 생긴 책자가 있어요. 그것으로 전도하고 캔퍼스 돌아다니면서 벤취로 찾아다니면서 하는데, 보통 남학생 같으면 이쁜 여학생만 골라서 하죠.ㅎ 못생긴 여학생은 찾아가지도 않고. 전도하는 핑계대고 한번 작업을 해 보려고.ㅎ 저는 그런 적 없었습니다만.ㅎㅎ 그럴 때 4영리가 문제점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부천개혁교회 싸이트에 누가 질문을 했어요.


거기에 어떤 분이 4영리가 뭔지를 몰라서 친절하게 4영리에 대해서 올려  놨습니다. 제가 4영리를 할 때는 이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것은 무조건 성도라면, 믿는 사람이라면 이걸 해야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왜 해야 되는지, 성경에서 이걸 하라고 지시가 내렸는지, 검토할 생각도 없이  무조건 이걸 하는 것이 본분인 줄 알았어요. 성도의 본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에 부합되는 그러한 행위 중에 하나인줄 알았습니다.


성경의 요한계시록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수능 앞으로 일주일 전이예요. 총정리!! 총정리 하는 이 시점에 와서 인간은 애초부터 하나의 노리개였죠. 노리개였는데, 사실은 구원 작업에 있어서 완벽하게 빠져 있어야 돼요. 모든 인간은 빠져 있어야 됩니다. 노리개라 하는 것은 어떤 의미냐 하면, 유치원 애들이 갖고 노는 교육용 장난감을 은물이라 하죠. 은물이라는 용어를 저는 논문 쓸 때 처음 알았어요. 은물을 갖고 노는데 거기에 자연 나무 색깔을 주게 되면 자기가 물감을 분홍색 칠하면 분홍색이 되고 빨강색 칠하면 빨강이 되잖아요. 고 목재 색깔 그대로 갖고 있는 고 물체 하나, 하나가 인간이라고 보면 됩니다.


주님께서 어떤 색깔을 칠했느냐에 따라서 그 색깔을 그냥 뒤집어 칠한 거예요. 그게 인 맞음, 도장 찍힘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장 찍을 때, 우리가 의도했던 내 구원받기 위해서 도장 찍어줘야 됩니다. 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일을 하셔요. 그러면 상관은 무엇과 상관있느냐?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장이 동원되는 겁니다. 더 알기 쉽게 이야기해서 (동영상 켜 놓았죠)조각 대리석이 있다면, 대리석 조각을 할 때, 이걸 잘라내서 유명한 조각품이 나오잖아요. 잘라내는 것, 도려내는 것, 우리 인간들이 이래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조각품을 이렇게 해놓고 하나님의 언약이란 조각칼을 가지고 이걸 뜯어내게 되면, 남는 게 뭐냐 하면, 인간이 남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이 남게 돼 있어요.


이 하나님의 언약을 뜯어내는데 동원되는 숫자가 뭐냐 하면 바로 그 유명한 144.000이라는 숫자가 등장하는 겁니다. 7, 10, 1000, 전부 다 숫자가 구약에서 이미 알려 준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용되는 용어예요. 천년 왕 노릇한다는 1000, 7나팔, 7인, 7대접의 7, 666 이 모든 숫자가 하나님의 언약을 드러내기 위한 거예요.


그러면 자연 조각 대리석을 뜯어내고 쪼아내고 남아 있는 것은 뭐냐 하면, 바로 12라는 숫자를 중심으로 해서 주변에 그것을 12라는 숫자에 대한 언약적인 활용도, 언약적인 여러 가지 시기에 따라서 달라지는 언약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 12라는 숫자는 어디서 나오는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을 할 때, 결국 마지막에 나오는 자식이 총 몇 명이죠? 12자식이죠. 지파는 13지파입니다만 12자식이죠. 12자식이라는 사람이 나올 때, 그 12자식은 사람이 아니에요. 이름이 하나님의 언약의 생산물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공장에서 만들어 낸, 없었던 사람이 등장한 것이고 죽었던 사람이 생겨난 거예요. 이것은 12지파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발생되는 그러한 새로운 조직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란 사람은 하나님의 작품 12지파를 만들어 내는 유일한 또 하나의 은물, 장난감이 돼야죠. 그래서 나온 게 뭐냐 하면, 사람이 나오는 게 아니고 뭐가 나오느냐 하면, ‘이스라엘’이 나와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사람들이 모여서 이스라엘이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하시는데, 사람이 모여서 이스라엘이 됐다가 하나님한테는 그게 별 의미가 없는 해석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거예요. 아들은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이스라엘은 사람들이 모여서 복수, 여럿이 돼야 하는데, 여럿이 아니고 이스라엘은 하나가 되는 거예요. 한 이스라엘, 오직 유일한 이스라엘이 되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스라엘 자체가 예수그리스도의 아들 됨을 보여주기 위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 때문에, 그 여러 명이 있더라도 그것은 나중에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 몸, 하나밖에 없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조각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되면, 이러한 자연적 대리석에 수많은 사람이 여기에 수천 명, 수만 명, 144.000이상 많이 있더라도 결국은 잘라내고, 잘라내고, 잘라내고 남는 것이 이것이 하나로 남을 때에, 이 안에 참여되는 사람이 144.000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50만, 60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결국은 뭐다? ‘하나’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보여준 겁니다. 그러면 인간들은 뭐라 하느냐, ‘어떻게 각각 사람이 두 사람이면 둘이 되고, 세 사람이면 셋이 되는데, 어떻게 그게 하나가 됩니까?‘ 라고 물으면, 그때부터 이야기가 시작 되죠. 그게 어려운 거예요. ’1000명이, 144.000이 어떻게 하나가 됩니까?‘ 라고 물어야 돼요. 144.000은 144.000이 아니고 오직 한 분, 하나예요. 한 몸을 이루는 겁니다. 따로 따로 각기 노는 게 없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설 되면 먹는 땅콩간정입니다. 이런 비밀을 함부로 누설하면 안 되는데,ㅎ 땅콩강정에 땅콩들이 막~ 있어요. 이걸 잘라버리면 뭡니까? 땅콩들을 붙이는 것이 뭐예요? 엿이잖아요. 144.000을 하나, 하나 묶는 본드 같은 역할을 하는 게 뭐냐 하면, ‘언약’이라는 겁니다. 너희들은 안 되는 걸 언약은 해냈잖아요. 해낼 때 땅콩 스스로가 ‘나는 땅콩이야. 구원받은 땅콩이야.’ 하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언약 때문에 우리는 구원받았어.‘ 라고 땅콩보다도 엿!!, ’하나님의 언약‘이 인간이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라고 찬양하는 대목이 요한계시록 뒤, 중간부터 뒷부분에 나옵니다.


144.000 아무리 숫자가 많더라도 이 사람, 저 사람들이 하나같이 땅콩강정 같아요. 땅콩강정이 마치 네모나잖아요. 동서남북 이예요. 동서남북이니까 여기 첫 번째 천사들이 동서남북 네 모퉁이를 이동하지 못하게 붙잡아 온다고요. 붙잡은 요것이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찬양하죠. 10절에 보면 나오죠.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해서 하나님의 어린양의 공로에 대해서 찬미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걸 보통 해석을 하게 되면, 이렇게 어린양을 찬미하니까, ‘찬미합시다.’ 로 나와요. 보통 교회에서는. ‘여러분! 구원 받은 144.000 되려면, 우리가 하나님과 어린양께 찬미해야 됩니다. 찬미 했잖아요. 찬미해야 구원 받습니다.’ 이렇게 나오죠. 하지만 그건 틀린 해석입니다. 여기는 ’인간‘은 빠집니다. 제발 좀  ’찬미하자, 합시다. 이런 것은 빠져 줘. 유명한 말로 ‘나대지 마라.’ 는 겁니다. ‘좀 빠져줘.‘ 괜히 니가 설치면 언약이 죽어요. 그리고 언약이  중심 움직이는 엔진은 보좌에서 나오지, 너희에게 나오는 게 아니에요.


이번 1월 말에 중국에 가서 강의하도록 지금 예정돼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인간에게 없습니다. 거기서 주제를 정해 왔어요. 주제가 뭐냐 하면, 성막과 성전에 대해서 이야기 해 달라. 성막과 성전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을 지금부터 계속 그 이야기 들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 강의를 준비하면서 마침 ‘미가‘ 수요일에 제가 한 미가 1장 3절에 보면,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주께서 성전에서 나오는데, 그게 뭐냐 하면, 지상의 모든 것을, 소위 인간이 관여된 모든 것을 짓밟는 총 사령부가 하나님이 성전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은 뭐가 되느냐 하면, ’전쟁의 사령부‘가 되는 겁니다. 총 본부가 되는 겁니다. 전쟁을 하기 위한 성전.


매트릭스3라는 영화가 있어요. 1,2,3중에 3부분 마지막 부문에 보면, 매트릭스에 보면 이름이 시온이라 해서 다윗 성전 같아요. 이름을 시온이라 해서 인간들이 동물 세계에 갇혀 있습니다. 기계들이 날뛰고 설치니까, 나중에 기계들이 마지막 인간, 최후의 인간이 있다는 걸 알고, 지붕을 뚫고 여기서 기계 로봇무기를 막 쏘아대죠. 여기서 인간들이 자기 최선의 무기를 가지고 오는 족족 기계를 쏘아대는데, 역부족이죠. 그래서 쫒겨 가는 매트릭스 3 봤어요? 기억나죠? 마지막 세 번 째,


그 쏘아대는 그 곳이 성전 이예요. 이 세상을 짓밟기 위해서!! 왜 그러느냐 하면, 여기 이 사람들 아무리 모여 봐야 이게 하나가 안돼요. 하나도 안 되고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여기 수많은 교회들이 있고 아무리 기독교가 있어도 여기는 각각 자기 따로 지 따로 놀아요. 하나라는 게 있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땅콩을 묶어주는 엿이 없어요. 본드가 없다 말이죠.


그럼 본드를 우리가 만들어 내면 될 텐데, 문제는 하나님의 언약을 우리가 성취할 수도 없고, 실행할 수도 없고 실천에 옮길 수가 없습니다. 기껏 지 나름대로의 신앙생활에 성실히 임하겠죠. 죄송합니다만, 성실히 임한 것은 그것은 자기 딴에 성실하지, 그 성실히 임한 것이 다른 사람들의 결합에는 실패하게 돼 있습니다. 모든 것이 성실하게 되면, 성실하지 않는 다른 사람과 대비가 되고 비교가 돼서 안돼요. 다 따로 놀게 돼 있어요. 그래서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인간은 실패합니다. 그래서 자기 힘으로 144.000 되는 것, 실패합니다. 안돼요. 그래서 그걸 아시고 처음부터 하나님은 ‘인간들아 제발 구원 문제에 대해서는 니가 빠져줘. 니는 니 하는 대로 그냥 놀고 있어. 그냥 가는 행세대로 살고 있어.’ 그냥 밀어내죠.


그래서 마태복음의 ‘씨 뿌리는 비유’의 핵심은 바로 사람들은 밀어낸다는 겁니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 했는데, 씨 뿌리는 비유, 농부가 씨를 뿌렸더니 어떤 것은 마귀가 와서 쪼아 먹고, 어떤 것은 처음에는 기뻐했다가 큰 바위가 있어서 기운이 막히고 시들었고, 세 번 째 밭은 뿌렸더니만, 가시덩굴이 걸려서 열매를 맺지 못했고 네 번째 밭은 30배, 60배, 100배 열매를 맺었다고 했잖아요. 그 내용의 핵심은 뭐냐 하면, 열매라 하는 것은 ‘씨’에 달려있지 밭에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씨가 밭을 무시하는 거예요. 밭은 전혀 열매 맺는데 보탬이 되지 못하는 거예요. ‘열매가 맺었다면 그것은 밭의 문제가 아니고, 씨가 갖고 있는 생명의 자생적인 능력입니다.’라고 인정하는 그 밭이 바로 옥토 밭이라는 겁니다. 그냥 씨가 그대로 씨답게 우리 마음속에 맘껏 씨가 씨의 본래 가치가 맘껏 펼쳐서 모든 걸 비워요.


그게 바로 씨 자체 생명력이죠. 그런데 어두운 기운이 그걸 막아버리면, 열매는 없습니다. 그건 안 맞는 밭 이예요. 뭔가 인간적인 의도가 담겨 있어요. 지가 자기가 어떻게 구원 받겠다고 시도하는 게 있어요. 그러니 구원 문제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제발 니 나가 놀아라.’ ‘나가 놀아라.’ 라는 말 젊은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옛날 개그 맨, 김 병서가 ‘나가 놀아라.’ 너가 거기에 대해서 손을 떼라. 구원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손을 떼야 됩니다. 손을 뗄 때 비로소 우리가 구원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기 숙제고 자기 작업인 것을 그대로 눈에 들어오죠.


그래서 144.000이라는 것은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사람의 숫자가 아니고, 누구의 숫자냐 하면, 바로 언약 자체가 숫자로 표기하면 이렇게 돼요. 그러면 사람은 뭐냐, ‘분명히 인 맞은 사람은 사람 맞잖아?’ 개, 돼지가 아니잖아. 사람 맞잖아.‘ 하잖아요. 그것은 사람을 이용한 거죠. 마치 애들이 은물, 장난감을 이용해 색칠하듯이. 그냥 자연 목재 나무 쪼가리에다가 분홍색을 칠했을 때, 선생님이 보고’ 우리 영철이 어린이는 참 잘했어요. 왜 이렇게 목재가 반들반들하니? 이렇게 안하죠. 영철이 어린이는 참 잘했어요. 색깔이 이렇게 이쁘게 칠하니? 이렇게 말하죠. 그 입히는 과정은 언약 완성이고, 그 언약 입히는 코팅하는 것은 누구 몫이다? 우리 몫이 아니잖아요. 누가 하신 거예요? 언약 되신 어린양 되신 주님이 하셨기 때문에 그런 색깔을 입힌 오색 색깔을 입힌 사람들이 ‘모든 아름다운 색깔을 입은 것은 어린양과 하나님 덕분입니다.‘라고 찬양하는 대목이 요한계시록 7장10절에서 나오는 거예요.


만약에 인간이 스스로 144.000명에 가입하려고 애를 쓴다면, 대표적인 사람이 여호와증인, 신천지도 마찬가지지만, 왜 그렇게 하려고 한다면, 사실은 여호와증인이 욕을 먹고 있지만 그 전부터 있었어요. 꼭 서기 뒤에 9자가 들어갈 때, 990, 1299, 1399, 1999, 999, 꼭 9자가 2개 나올 때, 요때 꼭 이런 말이 있었어요. 사람의 심리가 9장에 약한 모양이라. 조사하면 나와요. 교회사 보게 되면. 9자 있을 때 종말론이 따라 옵니다. 사람에게 먹히는 모양 이예요. 사람이 숫자에 놀아나는 하나의 연약한 심정이죠.


144.000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숫자가 있고 언약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언약이 일구어 낸 자기 성과가 이렇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들이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들이 자기 힘으로 이걸 한다고 한다면, 오늘 본문 같은 경우에 어긋나죠. 하나님의 인을 갖고 온 사람이 누굽니까? 여기 누가 돼 있어요? 2절에 보면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오죠? 해 돋는데서 오죠? 그러면 우리가 스스로 144.000에 가입하려고 멘버쉽 등록하려고 하면, ID치고 비밀번호 쳐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돼요? 아무리 애를 쓰고 용을 써도 누가 안 오면, 헛짓입니까? 천사가 와서 그것도 빈손으로 오면 안 되겠죠? 하나님의 인, 도장을 들고 이마에다 찍어줘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천사는 누구 말 듣습니까? 언약을 이룰 수 없는 우리 말 안 들어요. 천사가 우리하고 의논하지 않습니다. 통보하지 의논하지 않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통보하지 의논하지 않아요. 혼자 수 144.000에 들어가려 하는데, 다른 사람은 천사가 와서 도장 다 찍었는데, 스스로 144.000에 들어가려면, 그것은 소용없는 짓입니다. 그리고 옆 사람에게 만약에 천사가 도장을 찍어놓으면, 그 사람들이 특징이 뭐냐 하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소리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용을 쓰고 있는 거예요. ‘주여 얼마나 좀 더 가야 144.000에 들어가겠습니까? 몇 미터 남았습니까? ’ 혼자, 용을 쓰고 있어요. 아이, 소설을 써요. 천사가 와 줘야 되는데, 부를 능력도 없고, 어디 천사가 택배 회삽니까? 전화 한 통화면 천사가 옵니까? 천사가 오지도 않을뿐더러 언제 올 지도 기약도 없어, 그리고 스스로 답답하니까 144.000 이라고 우겨봤자 진짜 하나님의 인 맞은 사람과 공통점이 형성이 안돼요. 왜? 지가 용 써서 애써서 기도해서 충성봉사해서 144.000 따냈기 때문에 이게 땅콩강정이 안 된다니까요. 그냥 나 홀로 땅콩이죠.ㅎㅎ나 홀로 땅콩이 지 혼자 엿 발라가지고 자기 홀로 땅콩강정이죠. ㅎ 아마 이 사람을 숫자로 표현하자면 144.001이 돼요. 죄송합니다만 이미 144.000 커트라인 됐거든요. 떨어져 나갔어요. 소용없습니다. 144.000에서 끝나버렸어요.


이게 사람의 숫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의 숫자기 때문에, 사람의 현재 우리의 개체 수와는 무관합니다. 개체 수!! 그래서 성경에 다른데 보면, 수많은 사람들, 아마 144.000보다 더 많을 거예요. 수많은 사람 이예요. 인간의 숫자는요 5가 되든 7이 되든, 이건 참, 십자가마을 수련회 때 하려고 아껴둔 건데,ㅎ 아껴 둘게 따로 있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데, 아껴 둘 필요 없죠.


아마 제일 어려운 대목일거예요. 숫자라 하는 것은 항상 1부터 시작되는데, 1이 왜 1인가? 그것은 숫자 헤아리는 내가 두 사람이 아니고 나는 한 사람이라는 인식. 그러나 인간은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은 한 사람이라고, 자기가 ‘너 몇 명이야? ’나 한명이야‘라고 말 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창조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나를 만들었으면, ’나 하나 있고, 우리 아내 있고, 딸 둘이 있으니까, 합해서 넷이요.‘라고 인간 세계에서는 사람 숫자가 되지만, 하늘나라 숫자는 그 1, 2, 3, 4 가 그게 출발이 있는 중심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그 1, 2, 3, 4 숫자에 하나님의 언약이 개입되지 않고 있습니다. 숫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안돼요.


다윗이 이스라엘 자기 이스라엘 숫자 세다가 혼났잖아요. 그러면 다윗이 숫자를 안 세었습니까? 아니 민수기에 보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숫자를 헤아리게 돼 있죠? 민수기란 말이 뭔 뜻 이예요? 민: 백성들, 수: 숫자, 기: 기록, 사람들이 숫자를 기록해서 해야 되는 게 있잖아요. 그럼 그때 사람 숫자 세면 그건 나쁜 짓 아니고, 다윗이 자기나라 백성 세면 그건 나쁜 짓이 되고, 뭐 하나님의 기준이 왔다 갔다 일관성이 없습니까? 왜 그런 거예요? 하나님의 숫자의 헤아림은 하나님의 자기의 ‘언약에서 나오는 사태’ 가운데 있어야 돼요. 아, 이것도 그림으로 해야 돼요. 동영상 아니면 설명도 안돼요.


사람이 이래 있으면 목에 진주 목걸이가 있어요. 진주 목걸이처럼 돼 있는데, 이것이 144.000인데 여기 진주 한 알을 떼 가지고 1이라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전체를 헤아려서 1이라 해줘야 이게 줄이 언약이 되는 거예요. 목걸이 줄이 언약!! 목걸이 줄에 꿰였을 때만 고 위치, 선이라는 줄에 꿰였을 때만 이것이 하나, 하나가 보석으로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숫자는 꿰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인간은 태어나기를 자기가 자기 하나를 보고, 나는 하나니까 하나, 두 사람이 오면, 나는 하난데 저기 상대방이 맞은편에 두 사람이 오니까 2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린 에디슨이 이해를 못한 게 거짓인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옛날 위인전 다 거짓말이라고 보면 돼요. 피사의 사탑이 뭐 어떻게...갈릴레이...그건 것 다 구라예요. 하여튼 구란데 교육을 위해 할 수밖에 없죠.


에디슨: 어떻게 2라는 숫자가 어떻게 2가 됩니까?


선생님: 여기 사과가 하나 있지?


에디슨: 예


선생님: 또 하나 있지?


에디슨: 예


선생님: 합하면 몇 개지? 그래서 두 개잖아


에디슨: 그게 왜 2가 되냐? 3이 하지 않고 4라고 하지 않고 왜????? 2라고 했는지 대라고요?


환장하죠. 우리 같으면 패야 될 일이예요. 그냥 어릴 때는 의미가 있는 거예요. 뭐냐 하면 하나, 하나가 의미가 있는데, 선생님 같이 가르치면 의미가 아니고 하나의 그냥 지시, 하나의 사인, 기호, 2,4,8이 기호 지시라면, 2대신에 4를 집어넣고 8을 집어넣어도 무방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어린 에디슨의 생각이라 말이죠. 똑똑하죠, 그 사람. 정말 똑똑한 거잖아요.


어느 때 호주 영화를 보니까 이런 대목이 있어요. 아버지가 위 뜰에서 운동을 하니까 아들이 찌질이 같이 바지를 흘러내리게 입고 왔어요.


아버지: 너 바지 좀 올려, 니 나이 몇 살이야?  단정하게 해야지 니 요새 뭐하고 다니지?’ 아들: 아버지 왜 나한테 그런 잔소리 합니까?


아버지: 내가 니 아비거든


그 말을 아들이 못 알아들어요. 현대 서양의 아버지와 아들이 대립은 뭐냐 하면, 처음 낳아줄 때 DNA 처음 만들어질 때, 그때 낳아준 아버지지만 낳고 난 뒤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다 누구 덕이다? 내가 알아서 살아왔는데 아버지 꼰대 니가 뭔대 내가 바지를 헐렁한 걸  입던 니가 왜 간섭 하느냐고 물었는데, 아버지가 하는 말이 ‘내가 니 아비거든,’ 했거든요. 그러니 자기가 아는 아비하고 아버지가 아는 아비하고 아버지 개념이 같아요? 달라요? 다른 거예요. 그걸 보고 내가 무릎을 치면서 ‘저거다.’ 오늘날 교인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고 믿으니까 ‘고맙습니다. 내 죄 용서해 줘서 고맙습니다.’ 해놓고 그 다음부터는 십자가가 끝 이예요. 왜? 십자가가 끝이고 그 다음부터 ‘십자가, 예수가 누구? 그런데 왜 나한테 간섭합니까? 내가 믿어줬잖아요? 십자가 믿어줬잖아요? 그런데 지금 와서 왜 나한테 간섭합니까? 내가 예수를, 아버지를 내가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데, 지금 내가 이만큼 살아온 것은 내 덕이지 아버지 덕이 아니잖아요?‘라는 것이 그 호주의 철딱서니 없는 아들이라면, 오늘날 교인들이 ’주여, 주여‘ 하지만 새로 마음속에 딱 깨놓고 마음속에 이야기 해 보세요. 예?


전라도 감퇴 작업 하면서 두 번씩 울어가면서 대학 보내려고 힘든 작업 할 때, ‘아주머니 이 모든 것이 대학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면 귀때기 맞습니다. 그 추운 날 맞바람 받아가면서 그 바다풀 뜯는 작업을 누가 했습니까? 자기 팔짱끼고 있는데, 주님께서 헬기로 공중에서 내려줬습니까? 지가 쳤는데, 그런데 그것이 하나의 은물이고 배치물이고 그게 장난감이라 이 말이죠. 뭐냐 하면요 니가 보기에 나는 편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인간의 주장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너는 죄인 값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저주 값을 해야 되기 때문에 평생 동안 실컷 고생하다가 쉬는 것은 천당 가서 쉬라는 거예요. 하늘나라 가서 쉬라는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강력하게 반발해요. 반발하는 것을 조사해 보니까, 주님이 세어야 되는 숫자를 누가 센다? 자기가 숫자를 세는 거예요. 다윗처럼. ‘야, 이 나라 내 백성 몇 명 되노?’ 자기가 세는 거예요. 이게 뭐냐? 숫자를 센다는 것은 그 중심이 결국 뭐가 있다? 오늘 제일 중요한 문제예요. 뭐가 있다? ‘중심 성’을 아직도 자기가 쥐고 있다는 겁니다. 아~~~~~!! 이게 중심 성 싸움 이예요.


계속해서 인간이 갖고 있는 그 이름을 시온 성이라 하는데 영화에 보니까, 시온 성이 있고 메시야가 있어요. 메시야가 주인공 이름이 있는데...유명한 영화배우가 그 사람이 메시야예요. 지붕이 뚫리면서 기계나라에서 막 여기로 쏟아질 때, 강력한 무기로 역부족이라 했죠. 이 성전에서 쏟아지는 것이 뭐냐 하면, ‘언약의 소낙비’ ‘언약의 폭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이 세상은 인간들이 만든 소박한 아름다운 정경이 있는 너무나 참한 세상이라.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꾸민다.’ 하는 세상을 천사들이 4명이 ‘너들이 정원을 가꿔? 뭘 심고 뭘 심고, 뭘 심는가 보자.’ 하고 보자기 네 모퉁이를 쥡니다. 쥐고 흔들어 버리죠.


흔들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천사 4마리라 하든가 알아서 하세요. 천사가 네 모퉁이를 쥐고 있습니다. 세상을 쥐고 있으면서 흔들어 버리면 뭐가 생기죠? 물결이 생기죠. 흔들어 버리면 여기서 뭐가 되느냐 하면, 인 맞을 사람과 인 맞지 않은 사람과 구분이 되겠죠. 일종의 타작입니다. 이렇게 붙든다는 말은 이렇게 세상을 천사에 의해서 네 모퉁이를 붙든 요러한  그림, 요런 세상 그림과 그렇지 않고 이 세상에 천사도 없고 하나님도 없고 언약도 없고, 오직 우리가 어떻게 거기다가 장식하느냐에 따라서 인류의 문명은 우리 손에 달렸다. 하는 그런 세상관이 있을 거 아닙니까?


이 세상 관, 비 언약의 세상 관, 이 세상 관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여기서 하나님의 언약 받은 사람을 추려내는 동시에 이 언약 받은 사람을 하나의 모델, 역할 모델로 통해서 이쪽을 징벌할 수 있는 언약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러면 또 예수 믿는 사람은 또 뭐가 돼요? 하나님의 언약 작업에 또 동원되는 인부, 하나의 도구가 되겠죠. 우리는 우리 구원 받으면 입 싹 닦고 ‘ 구원 받았으니 이제 슬슬 내가 하고 싶은 거 해 볼까.’ 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언약은 그걸 가만두지 않죠. 어디로 한 분위기 확 휩쓸려 가는데 그것이 따로따로 휩쓸려 각자 따로 하는 일처럼 보이죠? 어떤 사람은 약사, 어떤 사람은 판사, 가는데 결국은 모이는 곳이 뭐냐 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 어린양 덕분입니다. 하나의 거대한 흐름에 땅콩강정이 돼 가지고,(아까 땅콩강정 봤죠?) 그게 뭐냐 하면, 144.000이 언약을 본드로 해서 하나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 전체 이야기를 하나로 하면 뭐냐 하면, ‘인간은 빠져라. 내가 알아서 다 해낸다. 인간은 제발 너 구원 문제에 대해서 손을 떼라.’ ‘그러면 우리가 내 구원에 대해서 신경을 안 쓰게 되면 구원받습니까?’라는 물음 자체가 못됐다 말이죠. 그 물음 자체가 뭐냐 하면, ‘내가 태어나는 것은 신이지만 태어나고 난 뒤에는 독자적으로 난 하겠습니다.’ 하고 아까 뭘 챙깁니까? 중심 성을 챙기죠.


지금부터는 우리가 공부할 게 뭐냐 하면, 이 중심 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에서 그렇게 하시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언제 올지 어떻게 아느냐, 못 믿겠다. 차라리 답답한 이상 우리가 알아서 내 구원 내가 챙기고 싶다. 성경대로 그걸 준수하고 법대로 지켜서 그래서 내가 구원 받으면 그렇게 어떤 느낌과 보람을 갖고 싶다.‘라고 하는 자기중심성을 챙기는 고 원인,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뭐냐 하는 거예요.


여기서 먼저 우리가 이걸 그냥 빠져버리면 철학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쉽게 하기 위해서 지구를 한번 그려보겠습니다. 지구의 중심에는 고온이 돼서 액체 금속이 있어요. 액체 금속이 있고 위에서 20키로~2900키로 쯤에서 고온의 금속으로 돼 있는데, 이걸 맨틀이라고 합니다. 지구 궤도에 디지털로 전파를 보내 조사해 보면 이래 돼 있답니다. 여기 있는 액체 금속과 여기 움직임 때문에 지구의 중심축으로 해서 자기장이 형성되는 거예요. 그러니 여기에 보면, 여기가 아주 뜨거워요. 5000도 정도로 뜨거운데, 이 뜨거운 것이 올라오면서 이게 식어지면서 어떤 현상이 나타나느냐 하면, 이 윗부분에서 뭐가 일어나느냐 하면, 올라오면서 식어지고 뜨거워지고 식어지면서 컨베이어 벨트 같은 요런 흐름이 맨틀 윗부분 상부에서 흐름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지구과학 시간 이예요. 여러분, 지금 과학을 하고 있습니다.


흐르면서 (여기부터 중요한 거예요) 뭘 쥐고 있느냐 하면, 여기 위에 판때기(p1ate)를 쥐고 18개~20개 이하의 Plate가 움직이면서 이 plate가 밀도가 높은 것이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부딪히면서 대륙이 이동하는 거예요. 이걸 ‘대륙이동설’이라 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라 하는 것은, 뜨거운 고온의 맨틀이 빙빙 돌아가면서 움직이면 같이 움직이면서 판과 판끼리 받혀서 인도네시아나 태평양의 plate가 부딪히면서 지진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걸 생각하면 우리가 땅 사놓는 것도 허무하죠.ㅎ 땅 값은 맨틀에 달린 거예요.ㅎ 어디서 지진이 날지 몰라요. 제가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라는 것은, 사실은 아무 힘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거예요. 아무 힘이 없는 거예요.


우리 인생이라는 게 위에서 떠받히는 대로 흘러갈 뿐 이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옛날에 고래 나왔던 울산에 있는 언양이 지금은 육지로 들어갔지만 옛날에는 바다였습니다. 그래서 울진에 보면 고기잡이 했던 유적지가 있어요. 알래스카도 옛날에는 육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동하거든요. 그런데 그 사실을 알려면 어디로 내려가야 합니까? 땅 조사해서 안 되고 땅 밑으로 내려가야 되죠? 지금 그 이야기 하려는 거예요.


성경이라는 모든 판때기(plate)는 그 밑에 뭐가 있다? 보이지 않는 어두운 세력, 밑에 어두운 영적 세력이 맨틀처럼 서로 대치되고 부딪히는 거예요. 요한계시록은 밑에 있는 숨어있는 그 모양새를 언약을 통해서 구약에 사용했던 언약적인 쪼가리들, 언약적인 plate, 언약적인 쪼가리들을 붙여가지고 영적인 것을 표현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문장들은 어디서 온 거예요? 다니엘, 에스겔, 예레미야, 이사야, 사실은 구약의 떠돌아다니는 문맥들과 문장들과 단어들이었어요. 그런 단어들이 여기에 마지막 총정리 단계에서 서로 부딪히고 마주치는데, 그 이유는 뭐냐? 바로 숨어있는 영적 세력의 전쟁에 인간들은 그냥 활용될 수 있는 역할만 했을 뿐 이라는 것을 그걸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게 요한계시록 해석 방법의 전부예요. 해석 방법을 이렇게 해야 돼요. 맨틀( plate) 대륙 이동 설


대륙들의 모습은 144.000 어떻게 우리가 쓰는 말로 돼 있지만, 우리가 보통 사람들의 인간세계의  통하는 말로 돼 있지만 그 밑에 있는 건 다른 말 이예요. 이미 바벨론 나라라는 것은 페르시아 에게 망했어요. 망했지만 요한계시록 18장에 보면 무슨 나라가 나와 있습니까? 바벨론이 나와요. 바벨론은 망했잖아요. 망했다고요. 요한계시록 주석에 보면 바벨론을 뭐라 하느냐 하면, 로마라고 돼 있어요. 이거는 밑의 맨틀을 생각 안하고, 그냥 껍데기만, 맨틀 없이 그냥 껍데기 채로 ‘대충 그냥 넘어가자’ 하는 식으로 해석하니까 이렇게 되는 겁니다.


밑에 맨틀 생각 안하고 마치 땅이 단단한 것처럼 그 단어 자체가 움직이는 단어인데 이걸 고정시켜 못 박아놓고 해석하니까 이걸 로마로 해야 될 지 해보니까 안 맞고, 이걸 해도 안 맞고, 안 맞을 수밖에 없죠. 진리는 숨어있는데, 역사에 드러난 거 가지고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니까, 무지 몽매한 사람은 거기에 다 넘어가서 2012년에는 누가 옵니까? 예수님 재림은 언제 옵니까? 날짜 계산하고 난리를 죽입니다. 말장난, 단어 장난,  어느 주석이든 요한계시록 해석을 보세요. 밑에 내막을 이야기 하는 책 없어요. 전부 다 껍데기가지고 써요. 그 쪼가리 가지고, 신문지 쪼가리 가지고.


이건 스포츠 신문도 마찬가지고 일반 신문도 마찬가지예요. ‘원빈 죽었다.’ 검색하면 원빈 고소 공포증으로 죽을 것이다. 뭐 비밀의 정원에서  죽을 것이다. 시크릿 가든.. 안 맞는 두 개의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하는 말과 똑 같아요. 안 맞는 두 개의 쪼가리들을 이렇게 붙여 놨을 때, 언제까지 너희들이 이렇게 문자나 문맥을 가지고 진리를 발취하려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느냐고 질책하는 책이 요한계시록 이예요.


현재 요한계시록을 문자와 문맥을 분석해서 나올 진리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석이 안 되는 이유가 그 해석하는 해석자 안에 뭐가 들어있습니까? ‘자기중심 성’ 자기  중심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거예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지구 맨틀이 있죠. 이게 대륙이 있는데, 여기 사람이 있다 말이죠. 내가 이쪽을 바라보는 일반 사람들,(기계 전문가도 아니고 암석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바라보게 되면, 그냥 부동산은 뭐냐, 이거 팔고 이거 사면 얼마 남겠느냐, 부동산 가치를 볼 것이고, 나중에 내가 밭을 일굴까도 자기 노후 대책이지만, 만약에 진짜 암석 전문가라면, 땅을 보는 것이 아니고 맨틀을 보겠죠. 그렇게 분석하는 본인 자신도 맨틀의 힘에 어쩔 수 있다, 없다? 어찌 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해석자 이어야 한다 말이죠.


해석을 해냈다고 해서 그것이 나로 하여금 구원이 된다? 안 된다? 안 되는 거예요. 성경의 해석을 똑바로 해서 구원되는 게 아니고 성경의 해석과 상관없이 ‘구원은 우리 주님 멋대로 입니다.‘ 라고 믿어져야 이것은 성령이 와서 믿어지는 것이죠. 성경 해석을 어떻게 완벽하게 해내면 그 지식을 내가 소유하게 되면, 내가 구원 받는다. 이 말은 여전히 이 사람은 자기  중심 성에다가 온갖 좋은 것을 집어넣는 거예요. 자기중심성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세계로부터 공격받아야 돼요. 완전히 폭파 돼야 돼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 성전이다. 성전에서 뭐가 나온다?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전쟁의 총사령부가 되어서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박살내 버리죠. 모든 걸 다 박살내요. 그런데 그 기준이 내 중심으로 갖고 있으면 박살내지만, 내 중심이 없고 오직 예수님 중심에 의해서 미리 자기가 도장 찍어 놓은 사람만 조각칼로 다 잘라내면 남는 게 뭐예요? 언약적인 자기 몸둥아리만 남겠죠. 그게 144.000입니다.


144.000명이 아니고 그냥 한 분되신 예수님의 144.000의 분신들이죠.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모습. 다양한 144.000가지의 색깔이라고 그렇게 볼 수도 있죠. 나중에 요한계시록 21장에 색깔로 표현돼 있죠. 뭐든지 철학이나 물리학에서도 색깔로 표현하는 것은 이미 객체를 잃어버렸을 때 색깔로 표시해요. 뭐 참,  참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콕크의 종류에, 여러분, 콕크라는 말 들어 본 적 있어요? 원자핵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 성분들 간의 원자핵, 중성자, 양자를 구성하는 것의 제일 밑 단계가 콕크인데, 그것은 어떻게 표현하면 바틈, 바닥, colorful하게 물리학자들이 붙였어요. 기존이 객체와 차이 나게 해서. 이것은 뭐냐 하면, 결국 이것은 객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기능, 너는 어떤 언약 적 기능, 만약에 약사라면, 약사로서 언약 적 기능, 교사 하면서 언약 적 기능, 가정주부라면, 주부로서 언약 적 기능, 언약 적 기능을 통해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공통적으로 한 몸에게 땅콩강정처럼 모이는 현상, 그것은 자기가 능히 극복할 수 없는 자기도 어찌 할 수 없는 자기조차도 능가하는 힘이 이미 자기 안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모습입니다.


10분 쉬고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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