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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3 18:41:32 조회 : 4388         
퍼 왔습니다....!! 이름 : 최종훈(IP:121.151.0.172)

한국 기독교, 대안은 무엇인가!?


“서구 역사의 주류 종교였던 기존 기독교가 이제는 퇴화기에 들어섰으며, 다가올 미래에서 이런 낡은 패러다임의 기존 기독교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신자화’와 ‘복음화’는 마땅히 구별되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의 선교 지역은 저 먼 나라의 오지가 아니라 놀랍게도 (복음화가 아닌 신자화만 추구하는) 바로 기독교 자신이다.”


지난해 한국 기독교 사상 최초로 신자수 감소가 확인된 것에 이어 최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억류된 분당 샘물교회 신도 인질사태를 계기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기존의 주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루면서 새로운 기독교 또는 대안 기독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플라톤에서 비롯된 ‘관념적 이원론’에 해석학적 토대를 둔 기존의 서구발 기독교와는 달리 ‘현실적 관계론’이라는 패러다임에 기초한, 새로운 기독교에 대한 논의다. 특히 ‘기독교사상’ 8월호는 ‘신학의 미래, 교회의 미래’란 제목의 창간 50주년 기념 특집에서 ‘미래에서 온 기독교와 한국교회의 미래’란 글을 싣고, 대안 기독교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했다.


정강길 세계와기독교 변혁연대 연구실장이 기고한 이 논문에 따르면 새로운 기독교는 ‘무조건 믿어라 기독교’에서 ‘깨달음의 기독교’를 지향하는 것이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주류 기독교가 성서 무오설에 기반해 취해왔던 ‘문자적 성서해석’이 합리성에 기반한 ‘사건적 성서해석’으로 가야하며, 니케아 공의회 이후 교리에 묶여 있는 ‘교리적 예수’도 다양한 사회의 맥락에서 예수를 파악하는 ‘역사적 예수’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종교에 배타적인 기독교가 이웃종교와 함께 가는 기독교로, 예수를 숭배하는 예배가 예수를 닮으려는 예배로, 수직적 구조의 교회가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죄의식의 종교가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영혼 구원의 기독교가 총체적인 생명 구원의 기독교로 나아가는 것도 새로운 기독교가 지향하는 핵심 내용 중 일부다. 이와 함께 전투적이고 배타적으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 천당을 강조하는 기독교를 ‘지금 여기부터의 하나님 나라 기독교’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이것도 한국의 기독교 현실에서 도출해낸 시급한 명제일 뿐, 보다 중요한 원칙으로 ‘오류와 비극 앞에서는 언제나 겸허한 기독교’,‘솔직하고 건강한 합리성에 기반하려는 기독교’를 내세운다.


용어는 다르지만, 대안 기독교에 대한 논의는 역사가 깊다. 1950년대 초, 기독교장로회가 ‘성서무오설’을 두고 대립하며 무오설을 옹호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와 이에 반대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로 분리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최근 기독교계의 대안에 대한 논의가 힘을 얻는 것은 국내 기독교계의 주류를 이루는 보수 기독교 쪽에서도 그간의 기독교에 대한 성찰과 회개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과도 관계가 깊다.


하지만 정 실장은 ‘국내 주류 기독교계는 에큐메니컬(교회 일치·연합)의 대상이 아닌, 선교의 대상’이라며 이들의 노력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잘못된 신비와 영성, 기적체험을 강조하는 기독교나 교회를 세습하고 교인수, 교권에만 탐닉하는 주류 기독교의 얄팍한 성찰은 외려 사람들을 미혹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성공회대 양권석 교수도 “최근 한국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과 권위에 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심층적인 변화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한국 교회가 이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와 화해의 길을 추구하기보다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묘책을 찾는 모습도 없지 않은 것은 우려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박윤진(IP:58.♡.49.76) 07-08-14 00:24 
1. 한국 기독교, 대안은 무엇인가!?
----> 대안은 무엇을 대신하여 기능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말이니 만큼, 이러한 제목은 한국 기독교가 적어도 그 동안 진리가 기능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진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이 글을 쓴 사람이  대안을 꿈꾼다고 하면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속해 있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그 어떤 대안도 요구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2. “서구 역사의 주류 종교였던 기존 기독교가 이제는 퇴화기에 들어섰으며, 다가올 미래에서 이런 낡은 패러다임의 기존 기독교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 모그룹, 모 회장님의 새해 벽두 조회시간 말씀과 똑같은 취지입니다. "21세기에 생존하려면 변화에 적응하라." 위의 구호는 이유없이, 목적은 묻지않고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식에 사로잡힌 애굽식 사고방식입니다.
 
지나간 과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거슬러 해석 당해야 할 객체에 불과하고, 다가올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떠밀려가고 있는 파편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면, 즉 , 모든 인류의 역사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 안에서 지속적인 공격의 대상임을 안다면, 주류와 비주류, 퇴화기와 미래 등과 같은 허술한 대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 것입니다.
 
기독교라는 어떤 회사의 새로운 마케팅 방법을 소개하는 글에 제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요?
 
3. ‘신자화’와 ‘복음화’는 마땅히 구별되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의 선교 지역은 저 먼 나라의 오지가 아니라 놀랍게도 (복음화가 아닌 신자화만 추구하는) 바로 기독교 자신이다.”
 
----> 복음에 의해 점령당한 전리품이 바로 신자입니다. 복음과 신자는 하나의 관계안에 놓여져 있습니다. 신자를 흔들면 복음이 흘러나옵니다. 복음을 흔들어대면 신자가 묻어나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흘러나오지 않는 신자는 신자 아니요, 신자에 의해 자랑되지 않는 복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예수의 피로부터 나온 능력이며 신자는 그 능력에 사로잡힌 자들이기 때문이며, 복음의 능력은 신자의 평생을 통하여 예수의 피를 찬양하며 증거토록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신자화와 복음화를 나누어서 진짜 어떤 복음화가 있는 것처럼 연막을 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화(化)'라고 까지 하니 이미 택하시고 부르시고 의롭게하신 주님의 뜻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인간의 노력과 다양한 준비를 통하여 '어떤 것으로 만들어져 갈 뿐'이라는 사단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빼어 닮았습니다.
 
4. 지난해 한국 기독교 사상 최초로 신자수 감소가 확인된 것에 이어 최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억류된 분당 샘물교회 신도 인질사태를 계기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기존의 주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루면서 새로운 기독교 또는 대안 기독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 믿는 자가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쉬지않고 일하시고 계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영의 영역은 육이 평가기준으로 삼기 좋아하는 '양'으로 표현되지 않으며, 그 수가 줄거나 늘지 않습니다. 언제나 144,000명 입니다. 단지, 주님께서 역사속으로 우발적으로 던지시기 때문에 번쩍 번쩍 번개치는 것 같은 뿐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주신 그 숫자 그대로 아들이 구원하십니다. 다른 말로, 믿도록 작용하십니다.
 
 
5. 플라톤에서 비롯된 ‘관념적 이원론’에 해석학적 토대를 둔 기존의 서구발 기독교와는 달리 ‘현실적 관계론’이라는 패러다임에 기초한, 새로운 기독교에 대한 논의다. 특히 ‘기독교사상’ 8월호는 ‘신학의 미래, 교회의 미래’란 제목의 창간 50주년 기념 특집에서 ‘미래에서 온 기독교와 한국교회의 미래’란 글을 싣고, 대안 기독교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했다.
 
-----> 인간들이 알고 있는 미래란 고작 과거의 퇴적층일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머리로 하는 교회가 인간들이 쌓아올린 행위의 퇴적층 속에서 한자리 하기 위해 눈치 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주님은 주님대로 밀고 나가시고, 인간은 인간대로 버티면서 심판과 구원이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결과물들을 확인하는 시간만 주어질 뿐입니다. 새로운 것도 없습니다. 죄 아래 모두 가두어버린 마당에 새로움을 꿈꾸는 것 자체가 스스로 살 명분을 만들고 있는 중독증상입니다.
 
예수 말고 이 세상에 새롭다고 할 만한 이름은 없습니다. 모두 아담이라는 이름표 뿐입니다. 그 아담은 서기 3000년에 살아도 죄인입니다. 두번째 아담인 예수에 의해 정죄받고 용서받아야 할 과거 그 아담과 동일한 아담 맞습니다. 단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분 앞에서 가면바꾸는 기술(변검)만 인간보기에 세련되질 뿐입니다.
 
 
6. 정강길 세계와기독교 변혁연대 연구실장이 기고한 이 논문에 따르면 새로운 기독교는 ‘무조건 믿어라 기독교’에서 ‘깨달음의 기독교’를 지향하는 것이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주류 기독교가 성서 무오설에 기반해 취해왔던 ‘문자적 성서해석’이 합리성에 기반한 ‘사건적 성서해석’으로 가야하며, 니케아 공의회 이후 교리에 묶여 있는 ‘교리적 예수’도 다양한 사회의 맥락에서 예수를 파악하는 ‘역사적 예수’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 무조건 믿어라 기독교와 깨달음의 기독교는 같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믿는 주체와 깨닫는 주체가 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긍정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자꾸 믿으라고 하니까 어느 날 믿는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과 스스로 깨달아서 믿는다고 착각하는 것은 똑같은 착각상태 입니다. 죽어야 마땅한 자기 자신은 고이 간직한 채 무엇을 믿고 무엇을 깨달았단 말입니까?
 
십자가는 깨달았다는 그 존재까지 죽입니다. 바리새인이 깨달음이 없어서 예수님께 책망받은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내어버려 두심 안에서 자기 본분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간섭하신 인물과 좋은 대조를 이루면서 주님의 일하심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죄인들에게 확실히 해 두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십자가 복음이라면 헬라인에게는 무식한 것으로,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으로 느껴져야만 합니다. 예수 밖의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이것이 무슨 소리인지 말이 통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깨달음이라니요? 어떻게요?
 
이런 측면에서 성서무오설을 주장하는 사람이나 성서유오설을 주장하는 사람이나 모두 동일하게 취급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서무오설이든 유오설이든 모두 "인간의 합리성"을 그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배태한 합리성이라는 신을 가위와 풀 삼아 성경을 이리저리 자르고 붙여서 인간에게 어떤 것이 더 그렇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를 놓고 한 판 대결을 버리고 있는 꼴입니다. 사형수들이 모여서 재판장의 판결문이 얼마나 정확한지 내기하고 있는 꼴입니다. 판결문에는 ‘사형’이라고 쓰여있는데 말입니다.


7. 이웃종교에 배타적인 기독교가 이웃종교와 함께 가는 기독교로, 예수를 숭배하는 예배가 예수를 닮으려는 예배로, 수직적 구조의 교회가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죄의식의 종교가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영혼 구원의 기독교가 총체적인 생명 구원의 기독교로 나아가는 것도 새로운 기독교가 지향하는 핵심 내용 중 일부다. 이와 함께 전투적이고 배타적으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 천당을 강조하는 기독교를 ‘지금 여기부터의 하나님 나라 기독교’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 정실장이라는 분이 소개하고 있는 마케팅 전략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린 이런 부류를 한물간 CF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객이 OK할 때까지” – 인간이 OK할 때까지 입니다. 인간이 좋아하는 것은 모두다 하고야 말꺼야라는 각오가 엿보입니다. 이웃과 함께하고 주인과 종이란 구조는 그만 허물고 더 이상 듣기 싫어하는 죄라는 말은 이제 그만하면서 그저 구원시켜드리고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간이 OK할 때까지……

왜 정실장이라는 분은 하필 기도교를 ‘지금 여기부터의 하나님 나라 기독교’라고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요?(헨리 나우웬의 <여기 지금 우리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와 비슷하네요) 정실장과 헨리 나우웬의 이유는 똑같습니다.
여기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8. 정 실장은 이것도 한국의 기독교 현실에서 도출해낸 시급한 명제일 뿐, 보다 중요한 원칙으로 ‘오류와 비극 앞에서는 언제나 겸허한 기독교’,‘솔직하고 건강한 합리성에 기반하려는 기독교’를 내세운다.

----> 보다 중요한 원칙 또한 철저하게 인간중심입니다. 누가 보기에 오류이며 비극일까요?  누구 눈에 겸허합니까? 누구 기준으로 솔직하고 건강한 합리성일까요? 십자가 지신 예수님입니까? 예수님이 기준이라면 오류, 비극, 겸허, 솔직, 건강, 합리라는 단어들을 가득 물고 있는 입술이 우리의 행실을 빠짐없이 주님앞에 직고할 것입니다.


9. 용어는 다르지만, 대안 기독교에 대한 논의는 역사가 깊다. 1950년대 초, 기독교장로회가 ‘성서무오설’을 두고 대립하며 무오설을 옹호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와 이에 반대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로 분리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본질적으로는 죄인 중심의 논의가 겉으로는 신성한 어떤 것에 대한 순수한 열정인 듯 탈을 쓰고 버젓이 횡행한 일이 언제나 있었다는 증언입니다.

10. 하지만 최근 기독교계의 대안에 대한 논의가 힘을 얻는 것은 국내 기독교계의 주류를 이루는 보수 기독교 쪽에서도 그간의 기독교에 대한 성찰과 회개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과도 관계가 깊다.
하지만 정 실장은 ‘국내 주류 기독교계는 에큐메니컬(교회 일치·연합)의 대상이 아닌, 선교의 대상’이라며 이들의 노력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잘못된 신비와 영성, 기적체험을 강조하는 기독교나 교회를 세습하고 교인수, 교권에만 탐닉하는 주류 기독교의 얄팍한 성찰은 외려 사람들을 미혹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성공회대 양권석 교수도 “최근 한국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과 권위에 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심층적인 변화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한국 교회가 이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와 화해의 길을 추구하기보다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묘책을 찾는 모습도 없지 않은 것은 우려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 또한 이런 가증스러운 일은 우리의 본질이기 때문에 언제나 재판될 조짐이 있다고 합니다. 늘 새로운 그 어떤 것을 찾아서 권태로움을 달래려고 하는 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속이 다 시원합니다. 주님께서 심판하심이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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