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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8 23:19:09 조회 : 55         
임금 (마 25장 34- 46) 대전- 104강 이름 : 주향(IP:115.20.251.218)
임금 (마 25장 34- 46)
대전- 104강

이근호


2018년 9월 18일
본문말씀: 마태복음 25: 34-46


(마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마 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 25: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 25: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마 25: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마 25: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마 25: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마 25: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25: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 하더이까
(마 25: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마 25: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5장 34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심판에 관한 문제로 심판을 생각하게 되면 재판을 하는 법원에 피고 있고 변호사 있고 재판장 있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재판장이 누구냐 하면 임금이에요. 임금의 특징은 왕국을 자기 입맛에 맞춰 만들어요. 임금이 왕국을 만드는데 거기 주인공은 누구냐 하면 본인뿐이에요. 상당히 이기주의지요. 그야말로 왕국이잖아요. 지금은 어떤 시대이냐 하면 민주주의이지요. 우리나라 헌법에는 왕이 없어요. 모든 권력은 왕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있는 것을 왕조라고 해요. 왕조와 민주주의는 정 반대이지요.


왕조란 신분 제도가 있는 것이고 민주주의인 우리나라의 헌법에는 어떤 신분이나 종교도 차별을 두지 않는다고 나와 있어요. 인간에게 있어서 어떤 차별도 두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는 쪽이 진리인 것 같습니까? 민주주의가 진리 같습니까? 왕조가 진리 같습니까? 왕조가 진리에요. 인간은 자기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민주주의는 왕조 다음에 온 거에요. 그 다음은 타락한 겁니다. 이제 갈 때까지 간 거에요. 민주주의를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갈 때까지 간 겁니다. 민주주의의 시작이 아테네라고 하는데 그것도 아니에요. 21세 이상의 남성들,


그것도 돈 좀 가진 사람들 끼리 투표권이 있는 것이고 여자는 그것도 없어요. 왜 민주주의가 타락했냐 하면 대리와 대표 사이가 일치가 안되요. 좀 어렵지요. 대리라는 것은 일종의 위탁이에요. 내가 할 일을 대신 해 주는 거에요. 그리고 대표라는 것은 위임하는 것으로 권리를 다 가져가요. 권리를 다 가져가면 투표할 때만 말 잘 듣고 국회의원이 된 다음에는 말 안 들어요. 왜 대리자가 아니고 국회에 대표자이기 때문에 까불지마! 니가 나에게 권한을 넘겨줬으니까 내 만음대로 북한에 가든 말든 내가 알아서 할꺼야! 월급을 얼마를 받는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꺼야! 이렇게 되요.


대표에서 내각을 만든다, 내각 책임제가 되요. 국민이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아 버리면 위임제가 되겠지요. 권력이 두 개로 나눠지겠지요. 행정부와 입법부로 나눠져요. 권력이 두 개로 나눠진다는 말은 개판이라는 말이죠. 내각 책임제는 권력이 하나에요. 국회의원 중에서 총리를 뽑는 거에요. 그래서 국민들이 마음에 안 들면 내각이 전부 사퇴하는 거에요. 이 때는 권력이 하나에요. 물론 사법권리는 복속이 된다하고 의회라는 게 뭐냐하면 법을 우리가 만든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라는 것은 국민의 대표자가 법을 만들어요. 그리고 법을 만든 본인만 다스리는 게 아닙니다.


자기에게 권한을 줬던 모든 국민들을 자기들이 만든 법으로 다스리겠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 국회의원 월급이 1억 5천이라면 그것에 대해 너희는 군소리 하지 말고 구경만하고 있으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특별비를 사용 하더라도 끽소리 하지 말라는 거에요. 그러면 타락한 민주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이 뭐냐? 제가 수련회 때 언급했지요. 여론이고 이것을 구체화 한 것은 언론이에요. 그래서 전체주의국가에서는 뭐를 통제합니까? 언론을 통제하잖아요. 북한, 김정은 어버이~ 수령님! 하는. 언론을 통제해서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민주주의가 왕조에서 타락한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왕조에서 민주주의로 발전한 것이라고 보는 거에요. 그러나 민주주의가 왜 타락한 것으로 보는 가하면 그것을 구약부터 보면 왕은 보이지 않아요. 왕이 누굽니까? 하나님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하나님의 대리자가 있어요. 투표하는 게 아리라 왕과 같이 세습제로 합니다. 누구냐 하면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통치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중매자입니다. 또는 매개자 역할입니다. 제사장은 몸에 죽음이 품어져 있어요. 제사장의 귀에 피와 기름을 바릅니다. 피와 기름은 한 가지의 제물에서 나온 거에요.


제물의 해체, 내 피와 살을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영생이 없고 결단코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를 누구에게 보낸다? 나에게 보낸다.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서 예수님에게 누가 오느냐를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보내줘야 알 수 있어요. 예수를 안다에는 두 종류가 있겠지요. 본인이 알아서 예수 믿는 사람이 있겠고 아버지가 보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있겠지요. 아버지가 보내신 사람을 택함 받든 사람이라고 해요. 인간이 예수를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거든요. 상상하는 것은 자유지요. 본인이 상상하겠다는데 아무도 말릴 수 없어요.


그런데 그 인간이 상상할 때는 뭐가 빠지냐 하면 택함이 누락돼서 빠져있어요. 택함은 내가 예수를 믿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뜻이에요. 나를 예수 믿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나를 제끼고 따로 계시다는 거에요. 이미 창조 전에 내가 있기 전에 내가 태어나서 믿어야 된다고 하기 이전에 결정된 겁니다. 부산 강의에서 한 건데 고기를 사서 도마 위에 얹어 놨는데 대가리 떼고 꽁지 떼고 몸통만 놨는데 누가 먹더라도 원래는 몸통만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잖아요. 그런데 우리네 인생은 대가리가 있었는지 꼬리가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냥 생일 축하합니다~ 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자기가 태어나는 것부터 해서 유황불로 돌아가시는 것 까지만 알아요.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몰라요. 몸통만 보고 전체를 안다? 이건 거짓말입니다. 평생을 살아도 자기가 누군지 몰라요. 그래서 결정을 누가해요? 하나님을 믿던 예수를 믿던 교회에 가든 모든 것을 본인이 결정해야 되요. 그러나 구원 받은 사람의 택함은 대가리에서 나와요. 대가리에서 나와서 그것을 현실화 시킨다 또는 실제화 시킨다는 말이 맞아요. 구체화 시키는 것, 우리가 인생을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절재로 내 마음대로 되는 개 아닙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등 모든 것을 몸통만 가지고 찾으려 하지 마세요.


괜히 소주 한 잔 마시고 저수지에 가서 아이고! 내 남편, 내 아내 왜 죽었나 하고 통곡해 봐야 몰라요. 아무 의미 없어요. 제사장은 왕이 아닙니다. 그럼 모세가 왕인가? 모세는 왕이 아니라 선지자라고 해요. 나중에 모세 같은 선지자가 오신다고 했거든요. 왕과 선지자, 그게 바로 메시야의 기능이 하나로 모아지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왕 같은 선지자, 또 예수님은 왕으로 오시거든요. 기름 부은 왕으로 오세요. 왕, 선지자, 제사장은 전부 기름을 부어요. 기름을 붓는데 요단강에서는 하늘이 열리고 비둘기 같이 성령이 오잖아요. 성령의 기름 부은 자, 그것을 그리스도라고 해요.


이것을 마태복음에서는 왕국의 시작이라고 해요.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늘나라가 온다는 것은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인물이 오는 거에요. 세 가지의 기능이 중첩된 분이 와요. 우리에게 대가리가 오는 거에요. 몸통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우리에게 창조 전에 프로그램화 된 우리임을 알려주러 오신 분이에요. 프로그래머가 자기 프로그램을 확인하러 오시는 거에요. 그것이 택함이에요. 이게 에베소서 1장 4절에 이미 창세전에 예정돼서 택했다고 되어 있어요. 어디서? 예수 안에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 프로그래머로 삽입이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가는 길이 삽입돼요
.

삽입이 되면 어떤 특징이 있냐 하면 민주주의를 포기해요. 민주주의가 되려면 본인의 가치와 권한이 계속 본인에게 있다라는 것을 고집해야 됩니다. 남들은 군대 안 가는데 나만 군대에 가면 억울하잖아요. 다같이 민주주의니까 차별을 두지 않는 거에요. 종교라든이 인품, 성격, 계급이나 어떤 차이를 두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가 탁락하고 범죄했다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주주의가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면 어떤 대안에서 비롯된 것인데 자본주의의 대안이에요. 자본주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민주주의가 정치적으로 이런 형식을 취하는 겁니다.


이 말은 민주주의가 목적이 아니고 자본 즉, 돈을 노리고 이렇게 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때 프랑스의 나폴에옹이 왕이잖아요. 황제인데 황제가 되어 돈 벌이 하는 것 보다 영국의 제도가 돈 벌이에 더 유리한 거에요. 경제 활동에 정치 활동이 장애물로 등장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왕조시대 우리나라 구 한 말에 고종 시대 때 왕 제도라 해서 모든 주변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탐냈잖아요. 우리나라 즉 조선 내에 의지 있는 사람들이 뭘 했냐 하면 우리도 힘을 키우면 되지 않겠냐는 거에요. 힘을 키우는데 있어서 왕조가 방해가 되는 거에요.


각자의 능력을 눈치 안 보고 발휘하려면 사람들에게 뭐를 제공해야 하는가 하면 사유 재산을 인정해 줘야 합니다. 왜 중국이 공산당인 사회주의를 하다가 때려치우고 자본주의로 들어갔습니까? 핑퐁 외교 이후에 자본주의를 왜 도입합니까? 그렇게 가다간 나라가 가난을 못 벗어나기 때문이에요. 중국은 일당 체제를 하되 경제는 무슨 주의로 바꾼다? 자본주의는 뭐냐? 사유 재산을 인정해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의욕과 용기를 제공해요. 내것, 인간의 탐욕이 노골적으로 정당화되는 구조가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를 받쳐주려면 민주주의가 되야 되요.

<참고>
[중국은 1978년 닉슨대통령과의 대표적인 핑퐁외교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시기 중국 정치구도에서도 마오쩌둥의 사망 이후 문혁4인방을 처단한 등소평이 권력을 잡게 됩니다. 등소평은 대양진운동의 실패 이후 실용주의를 주창하면서 권력을 잡았지만 마오의 문화대혁명으로 좌천되게 됩니다. 그런데 대양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인하여 중국경제는 완전히 파탄나게 됩니다. 적게는 1천만 명 많게는 1억 명 이상이 기아로 사망한 했다고 서구에서는 예측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중국은 그동안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실용주의적 경제체제로 이행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등소평이 생각했던 경제발전은 바로 전면적으로 대변되는 개혁개방이었습니다. 선부론 혹은 흑묘백묘론이라는 말처럼 서구식 자본주의를 실험적으로 선전 등 주요 5개 도시를 개방하게 됩니다. 선전은 홍콩 배후 도시로서 쉽게 서구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경과 완전히 반대 방향에 있는 남쪽 도시였기 때문에 실험이 실패했고 타격이 별루 없을 것으로 생각한 중국정부는 선전을 개방하게 됩니다. 광저우 상하이 등 후속으로 개방도시를 확대하면서 서구식 자본주의를 도입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공은 결국 동쪽의 도시 전체로 확대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제발전을 중국전체로 확대하게 위하여 중국은 서부대개발이라는 정책을 수행하여 오늘날까지 고도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경제의 명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고 합니다. 즉 정치는 사회주의 공산당의 일당독재이면서 공산당의 지도를 받아 서구식 자본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뭐냐하면 사회주의입니다. 사회주의의 대표적인 나라는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이거든요. 아르헨티나는 표를 얻기 위해 국민들의 세금으로 공무원을 너무 많이 뽑았어요. 그리스와 비슷해요. 일단 되고 보자! 권력을 쥐고 나면 편하잖아요. 한 사람당 표는 한 표이지요. 그것을 뭐라고 합니까? 민주주의지요. 민주주의는 뭐가 우선이다? 표가 우선이잖아요. 그런데 자본주의의 시유 재산을 인정하고 경제 구조가 되려면 반드시 골고루 잘사는 구조는 절대로 자본주의가 발단하지 않아요. 몇몇이 잘 살아야 되요. 재벌이 잘 살아야 돼요.


재벌이 잘 살아야 나라도 잘 살아요. 현대 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하던 말이 있거든요. 사람 열 명에게 오천 만원씩 줘보면 일 년 뒤에 한 사람은 일억으로 되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다 날려 하나도 없게 된다고 그러니까 그게 정상이라는 거지요. 다시 이야기 하면 세상은 뭐가 중심이다? 돈 중심이지요. 돈이 누구 것이 되야 하면 내 것이 돼야 하는 존 로크의 사상인데 그동안 내 것이 안 됐습니까? 내 것 되면 안 된다고 위에서 억누르는 힘이 있었지요. 그게 뭐냐하면 왕조였잖아요. 왕조의 특징은 그 나라의 백성이 잘 먹고 잘 살게 하면 당신 자식들이 후계자로 왕이 되도 군소리 안 하겠습니다가 왕조에요.

만약에 왕조가 백성들을 잘 살지 못하게 하면 구테타 일으켜서 죽여 버리는 거에요. 이것이 지난겨울 수련회에서 열왕기 하를 할 때 북 이스라엘에 구테타가 9번 일어났잖아요. 왜 이렇게 많이 일어났습니까? 백성들을 잘 살지 못하게 한 거에요. 남 유다는 구테타가 왜 일어났습니까? 유다는 잘 먹고 못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있어요. 성전이 있으면 하나님과 만나는 임재의 자리가 있으니까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누구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할 것이다. 왜? 하나님이 왕이시니까 여러분! 신을 소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북쪽 바알 종교는 인간이 신을 소유하려 해요. 신마저 소유하는 겁니다. 왜 나 잘되기 위해서 신은 소유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을 소유 할 수 없어요. 전부다 신이기 때문에. 옛날에는 땅에서 살았어요. 농경사회라고 하는데 땅의 생산물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신의 아들이 돼야 돼요. 땅에서 농산물이 잘 되려면 제때에 비가 와야 되고 오지 않아야 될 때는 안 와야 되요. 그러면 왕은 제사장의 역할을 해서 백성들의 요구 사항을 신에게 호소해서 농사가 잘 되도록 가뭄이나 폭우가 오지 않도록 해야 되요. 그러한 신이 땅의 신인 바알입니다.


왜 이스라엘이 바알 신을 믿느냐 하면 농경시대의 신은 바알이에요. 여호와는 뭐냐하면 여호와를 그들이 알았다는 것은 이 쪽을 떠나서 저쪽으로 가는 이동 중이에요. 이동 중인데 땅이 경작되고 난 뒤에는 이동 중일 때의 신은 필요 없고 땅이 잘 되길 원할 때는 바알 종교가 갖고 있는 노하우가 있어요. 신을 섬길 때는 반드시 예배가 있는데 그 예배의 방식들이 전통적으로 이어져 왔어요. 그 전통이라는 것은 통계이고 확률이에요. 점치는 것도 통계이고 확률입니다. 이 성씨와 저 성씨가 몇 시에 태어났고 사주가 얼추 맞으면 통계적으로 안 혜어지고 잘 살더라, 이게 궁합 보는 겁니다.

한의학이에요. 한의학이 통계입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것을 달여 먹으니까 감기가 낫더라! 그것을 외우는 것이 한의사들이에요. 손 어디쯤을 누르니까 허리가 낫고 전부 전통적인 누적된 지식의 축적이거든요. 그래서 한의사들이 공부를 많이 하는 거에요. 그냥 무조건 외워야 되요. 논리도 없어요. 바알 종교를 섬길 때 그냥 섬기는 것이 아니고 비 안 올 때 무슨 제물을 바치면 제때 비가 오더라! 또 무슨 제물을 바치면 풍재, 메뚜기 같은 것들이 안 오더라! 그런데 바알을 나의 주인으로 섬겼고 우리의 남편으로 섬긴 겁니다. 왜냐하면 바알은 짝이 있어요. 아세라라고 있어요.


실제로 이스라엘 유적지를 가 보면 바알 옆에 아세라가 세워져 있습니다. 심지어 여호와 옆에도 아세라가 있어요. 그러니 여호와를 뭐로 봤습니까? 우리의 농사를 잘 되게 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으로 본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이것이 너희의 남편이냐? 내가 남편이고 이것이 너희의 주인이냐? 내가 주인이라고 그렇게 에스겔이라는 후계 선지자 비로소 자기 자신을 남편으로 본 겁니다. 이스라엘을 아내로 본 겁니다. 내 아내를 애굽에서 끄집어 낸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 전까지는 그게 안 나와요. 충분히 죄가 노출되는 환경을 봐서 뒤엎는 겁니다.


왜? 그래야 심판이 되니까, 죄도 없는데 심판하면 안 되잖아요. 충분하게 죄가 드러나야 심판하는 거에요.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는 뭐냐하면 하나님은 왕이라는 거에요. 오늘 날 민주주의 사회에는 뭐가 없다? 왕이란 게 없어요. 그러나 성경에는 임금이라 되어 있고 이게 무슨 뜻인가를 설명하는 겁니다. 지금. 그렇다면 바알 종교의 특징은 인간들이 다룰 수 있습니다. 열왕기 상 18장보면 엘리야가 제단을 쌓을 때 바알 선지자와 450 대 1로 붙지요. 그 섬기는 바알 신을 어떻게 불러냅니까? 밤새도록 자해하지요. 어떤 제사장이 땀 뻘뻘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고 자기를 치고 하면 감동 받아요.

정성이 저렇게 지극하니 우리도 감동 받는데 신이 감동 안 받을까? 라고 하는 거에요. 오늘 날 교회 부흥회하고 똑같아요. 감정 이입을 통해 신과 합의를 노리는 겁니다. 복음은 그렇던가요? 복음도 가슴치고 울고불고 할까요? 복음 즉, 영의 세계는 육과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육으로 행하는 것, 아무 상관없어요.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요. 그래서 안 믿는 거에요. 그래서 못 믿는 거에요. 바람을 피우고 도둑질을 하고 살인을 해도 영의 세계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왜 육의 세계는 모든 것이 사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육의 세계에 대장은 누굽니까? 악마입니다.


악마가 하는 일은 우리 행동 하나하나를 다 끄집어냅니다. 이래가지곤 너 이번 주 장사가 안 될텐데! 너 이러니 이번에 아이가 성적 내려 갈꺼야! 이렇게 했으니 다리 하나 부러 질꺼야! 어떻게든 영의 세계를 못 보게 막아요. 고린도 후서 4장 4절에 보면 악마가 이 세상 신이 하는 일이 표현도 잘 되있죠. 세상을 덮는 신이 하는 일은 복음의 광채인 영의 세계를 못 보게 계속 막는 거에요. 계속 잔소리하고 양심을 후버 팝니다. 좌절하게 만들고 스스로 미워지게 만들고 난 자살할 거야! 이렇게 살아서 소용없어! 나 같이 가치 없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스스로 파괴하게 만들어요.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점점 죽음에 가깝지요. 우울증에 걸리게 만들고 남과 비교할 대 난 너무 뒤진다. 남과 비교하게 만들죠. 타인은 사소한 존재인데 다 사소하거든요. 영의 세계를 보면 부자나 가난한 자나 둘이 맷돌을 갈든 아무 관계없어요. 이미 정해진 대로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두는 거에요. 주님은 우리와 의논 안 합니다. 의견 타진 안해요, 묻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조차 사소한 게 되어 버려요. 사소한 것 보다 더한 시시해요. 대수롭지 않아요. 영적인 내용을 알고부터는 옛날에 심각했던 그런 일들이 아무 문젯거리가 안돼요. 내가 왜 걱정하고 고민 했던가!


애가 군대에 갔다. 그게 뭐 어때서 그게 뭔데? 아무 문제가 안돼요. 바알 종교는 이게 아닙니다. 아래에서 위를 찾아가는 종교거든요. 어떻게 행하냐에 따라서 신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는 것이 바알종교입니다. 왜냐하면 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가진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신이 가진 것을 빼앗아 가거든요. 그것을 벌이라하고 저주라 하거든요. 내 것 안 빼앗기기 위해서 신을 달래야 되요. 안식일 지켜야 되고 십일도 해야 되고 안 빼앗기고 오히려 30배. 60배, 100배 더 오기를 바라지요. 어차피 돈 놓고 돈 먹기니까. 산에 가야 범을 잡고 교회에 가야 복을 받는다는 겁니다.


이게 종교이지요. 바알 종교, 기독교 종교 이렇게 장사하는 거지요. 협박해서 겁나게 만들고 괜찮은 사례들이나 간증들 주욱 해서 당신들 같이 이렇게 어려웠었지만 암 걸리고 기도원에서 주님 섬겼더니 나았습니다. 부자 됐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회유하는 거에요. 이 모든 중심에는 내 것 지키기에요. 여기에 벌벌 떨고 있는 거에요. 사소한 거에요. 주님은 내 몸을 보는 게 아닙니다. 주님 자신의 몸을 봐요. 하나님은 예수님의 몸에만 관심 있어요. 그래서 이사야 53장에서 그 분이 대신 채찍에 맞음으로 쓸데없는 우리가 구원 받은 거에요.


주님의 관심은 창세전에 아들에게 관심이 있지 우리에게 관심 없어요. 예수님을 증거 하라고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겁니다. 태어났는데 아담의 범죄로 사단에게 사로 잡혔어요. 세상 신에게 갇혀버렸어요. 악마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행하라! 행해서 탈출해야지! 예수님에게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서 뛰어 내리라고 했어요. 돌이 떡이 되게 해라! 저 많은 것들 부럽지 않느냐? 나에게 절하면, 나하고 협상하면, 내가 시키는 데로 하면 다 줄께!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시험하는 거에요. 갇힌 거에요. 네 행함에 따라서 네 미래가 결정된다는 거에요.


여고생들에게 그런 다잖아요. 네가 지금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느냐에 따라 신랑감이 바뀐다고 그렇게 하는데 우리의 강력한 의지, 그리고 성경 지식, 기도하는 뜨거운 감정, 지, 정, 의를 꽉 쥐고 평생 공격하고 있어요.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주저하지 말고 믿어라! 이런 것 있잖아요. 제가 울산에 강의하러 가면 그 근처 식당이 있는데 그 모퉁이에 타이어 집이 있어요. 거기에 광고가 어떤 것이냐 하면 우리 가게보다 더 싼 곳이 있으면 제가 해병대에 재 입대 하겠습니다. 그렇게 써 붙였어요. 해병대 갔다 온 것 자랑하는 지, 남자들에게 군대에 재입대하는 것이 꿈에라도 끔직한 일이거든요.

그 정도로 우리 집은 비싸지 않다는 의연한 결의를 보여주는 거에요. (웃음) 인간은 소유 때문에 벌벌 떤다 했지요. 그 소유를 구체적으로 물질로 표현한다면 돈입니다. 임금이 있던 시대가 좋았던 것은 임금이 기도하고 제사장하고 해서 우리는 그냥 임금의 품안에서 보호받으면 되는 거에요. 골치 아프게 정권 바뀌는 것까지 신경 쓸 것 없이 나는 농사만 짓고 신의 혜택만 받으면 되고 임금은 신과 자기 사이에 신의 아들 역할만, 중매자 역할만 하면 된다는 구조가 고대 왕조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구조가 깨어지고 민주주의로 바뀌었느냐? 그게 바로 그리스, 로마에서 나온 철학입니다.

그것이 모든 기준은 인간이다. 신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보이는 것은 인간 밖에 없다. 따라서 신은 인간을 닮았다. 이게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이지요. 인간이 만물의 기준, 척도라고 이야기해요. 여기사부터 과학이 시작됩니다. 인간이 인간을 분석하면서 나중엔 기술이 발달하면하게 되고 인간이 신에게 기도하지 말고 노동과 기술이 접목되면 여기에서 우리가 그렇게 갖고 싶었던 돈과 재물이 생기다는 겁니다. 이 정도만 해도 괜찮아요. 그 다음 20세기에는 돈을 위해서 돈을 갖는 거에요. 원래 돈이라는 것은 물건을 교환해서 물건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가한데


그 다음부터는 없어요, 뭐든지 교환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신이 되는 겁니다. 앞으로 미래에 필요한 것 까지 다 할 수 있는, 전지전능이지요. 그건 돈 밖에 없어요, 이젠 물건이 좋은 게 아니에요. 돈이 되는 물건이 좋아요. 물건을 사도 다시 팔 때 몇 배가 되는 아파트도 살기위한 것만이 아니고 팔 때도 돈이 되는 가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에서는 누가 임금입니까? 내가 임금이에요. 내가 완이에요. 내가 신이고 이럿을 서로서로 인정해 주자가 민주주의입니다. 갈 때까지 다갔어요. 극한 타락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마태복음 25장에서 임금이라고 해놓고 임금의 특징이 뭐냐하면

(마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34절에 창세부터 예비 된 것이죠. 혼수를 따로 마련해 놓은 거에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혼인 잔치를 보세요. 혼인 잔치를 할 때 신부가 가져 온 것이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혼인 자치를 누구 주최로 다 합니까?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해서 음식을 다 준비해 버려요.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셨다는 말은 그 당시의 왕이라 하면 그냥 쳐다보는 거에요. 모든 운명은 왕에게 있는 거에요. 왕이 잘 되면 바알 신에게 복을 받아서 농사도 잘 되는 거니까 왕이 뭐냐 하면 나보다 중요한 타자(남)이 되요. 타인에게 복속되요. 소속이 되는 거에요. 왕 소속의 사람을 백성이라고 합니다.


이게 왕조의 특징이에요. 이순신 장군이 누구를 위해 선전했지요? 조산을 위해 했습니까? 왕을 위해 했습니까? 왕을 위해 했어요. 그 당시는 위인이 아닙니다. 백성을 위해 한 것도 아니에요. 자기는 왕의 신하에요.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도 왕에게 한 거에요. 자기는 소모품이라 왕만 있으면 나라도 있는 거니까 자기는 왕을 위해 소모품이 되겠다는 겁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왕이 있으면 나라도 있는 겁니다. 내가 있어야 내가 기쁜 거니까 내가 안 다쳐야 되요. 남이 죽든 말든, 나라가 어렵다? 이민가면 되요. 우리나라에서 스케이트 잘 타는 것을 안 알아준다. 소련으로 국적 바꾸면 되요. 안현수처럼.


그런데 소련에서도 그러면 또 국적 바꾸면 되요. 전부 자기중심이에요. 캐나다로 이민 갔는데 못 살겠어서다시 와야겠다, 미국으로 이민 갔는데 못 살겠어서 다시 와야겠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살려줄 수 있어야 되요. 그러나 미국이나 자본주의가 발달한 곳은 대통령이 살려주는 것이 아니에요. 본인이 영어를 잘해야 되요. 영어를 못 하면 취직이 안돼요. 불편해요. 오해하기 때문에 영어가 안되면 다시 한국으로 와야 되요. 조금 배워도 안 되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영어를 해야 얼추 먹혀들어가요. 말이 통해야 되지 한국 사람끼리 모여 있어봐야 세탁소하는 사람이나 미장원 하는 사람,

자기들끼리 있어봐야 무슨 도움이 됩니까, 서로 살기 바쁜데 안 되지요. 오늘 본문에서 임금이 창세 전에 이미 준비해 놓았지요. 준비 했으니 그 다음에 인간의 행위를 일체 묻지 않습니다. 본문에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 하니 천국에 가는 사람이 주여 우리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임금에게 복속되어 있다면 충분히 설명이 되요. 임금의 나라에서 모든 움직임은 임금을 위해서 일어나야 되거든요.


그런데 이게 민주주의 같으면 이해가 안되요. 민주주의는 누구를 위해 삽니까?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거에요. 옛날의 왕조도 마찬가지지만 민주주의 되면서 노골화 된 거지요. 왕이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이 전통이니까 아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우리가 안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과거 밖에 모른다는 뜻이에요. 옛날 7080 노래들이 너무 좋아요. 윤형주가 기타 치면서 하얀 손수건 나오면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가 있나 하고 어니언스의 편지 나올 때는 어떻게 이런 가사가 있나 하고 아침 이슬 나오면 대모하고 싶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 노래가 좋을 땐 어떻게 생각하냐 하면 앞으로 이것보다 더 좋은 노래가 안 나올꺼야! 여겨요.


항상 그래요. 인간은, 그런데 그 뒤에 나미가 나와서 빙글빙글 돌고 호랑나비가 나와서 세상에 이렇게 즐거운 노래가 있나? 이것으로 끝이야! 더 이상 다른 노래는 안 들을꺼야! 그런데 그 다음에 이런 사랑 없습니다 나오고 임재범이 나와서 너를 위해 나오고 이렇게 가사가 완벽할 수가 전쟁 같은 사랑하니까 인간이 안다는 것은 오직 과거 밖에 난 몰라요. 그래서 본문에 예수님 보고 하는 말이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라고 하는 것은 머리 떼고 꼬리 떼고 몸통 밖에 모르는 그런 인간에게 거저 주신 거에요. 하늘나라를 창세 전에 예비 된 거니까.


그럴 때 우리는 민주주의적 대통령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 나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왕의 것을 받아요. 내가 평생 노동한 것을 받는 게 아니고 아무것도 한 것 없는 것을 왕이 다하신 그것이 마태복음 25장 34절에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상속 받으라, 상속 이야기하고 마치겠어요. 이 상속이야기를 하려면 오래 걸리는데 정말 귀한 거에요.

상속의 특징이 뭐냐하면 받을 사람이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은 과거밖에 몰라서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은 구원을 못 받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천국에 못 갑니다.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이 왜 못 가느냐 하면 자기 행함이 있어요. 자기 노동의 댓가만 생각합니다. 이게 과거만 알아요. 내가 이 정도 행했으니까 인정받겠지, 그런데 아브람에서 뭘 끄집어 내냐 하면 아브라함을 끄집어내요. 끄집어 낼 때 그냥 끄집어내면 안 되고 똑같은 인간은 안 되고 아브라함을 죽여야 되요. 죽이시는 방법이 이삭을 집어넣습니다. 이삭은 없는 자식인데 자식으로 인해 아버지를 변화시켜요.


자식이 아버지를 변화시킨다. 이 말은 미래가 현재 우리 밖에 모르는 과거를 미래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내가 이 만큼 헌금 했으면 복 받겠지요 했는데 그 다음 어떤 일이 있고 난 뒤에 헌금 하게끔 하는 이유가 헌금 하는 것이 내 구원과 관련 없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 때 그때에 헌금하게 하신 거에요. 왜냐하면 헌금함으로서 자기 잘난 맛에 도취 되서 난리도 아니에요. 그 사이에서 신자가 분리될 때 내 노동에 의해서 내 행함으로 구원받겠다는 악마에 속한 사고방식을 미래에서 다 천국을 마련해 놓고 그게 아니야!하고 수정해 주시는 쪽으로 성령이 오시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이 달라져요. 어떻게? 내 행함에 집중할 때 그 인간은 어디에 속하냐 하면 악마에 속합니다. 내가 완벽했을까? 좀 더 잘할 걸 기도 할 때 꿇어 안아 할 걸! 전에 꿇어 앉아 기도했으면 지금보다 나은 텐데 계속 수정하고 수정해 나갑니다. 악마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지고 옵니까? 율법을 가지고 오지요. 계속 지적해요. 너 지금 뭐하고 있어? 오른 손이 하는 일을 모르게 하라고 해서 그래! 완벽해야돼! 철저하게 성도라면 이 정도는 사랑해야 돼! 악마가 그렇게 하거든요. 착한 게 죄거든요. 착하다고 의식하는 게 죄인데 주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왔다.

이것을 설명하자면 다메섹에서 내려가는 사울에게 누가 찾아 왔습니까? 예수님이 찾아 왔지요. 사울이 예수님에게 누구십니까? 물었을 때 그냥 나는 누구이다라고 하는 게 아니라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 핍박을, 울산 강의에서 했는데 너 나에게 왜 그랬어? 만약에 회사에서 일하는데 프린트기가 고장 났을 때 누가 그랬는지 모르니까 문자로 직원들에게 다 보내는 겁니다. 너 왜 그랬어? 하면 누구만 몰라요? 고장 낸 사람, 다른 사람들은 나랑 관계없는데 그 사람은 들켰구나! 사울에게 주님은 뭐라고 하냐하면 너 나에게 왜 그랬어? 십자가에서 죽은 것도 니가 날 죽였어!


이 말은 자기가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을 죽일 기회가 없었지요. 왜냐하면 예수님과 관계없이 살았기 때문에 그런데 주님께서는 니 행동과 자기의 죽음을 연관시키시는 게 아니고 네가 그런 행동을 한 공간 있잖아요. 니가 생각하는 과거라는 공간 그리고 니가 알고 있는 전부의 세계가 결국은 구원자를 죽게 만드는 원인에 듬뿍 잠겨 있다고 하시는 거에요.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린다고 한 짓이거든요. 그게 예수님을 죽게 한 거에요.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데 꾸역꾸역 하고자 하는 게 지금 악마에게 말려든 거에요. 그냥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살면 되요.


그래도 그렇게 네가 나에게 했다라는 거에요. 그 일이. 자식에게 먹인 것도 나를 먹게 했다는 거에요. 내가 보기에 이미 창세 전에 니를 위해서 이미 그런 일을 하도록 프로그램화 괬다는 거에요. 주께선 다해놓고 막상 천국에 와보니 내가 뭘 해서 얻은 게 하나도 없고 전부 다 주님께서 창세전에 예비하신 것이고 준비해 놓으신 겁니다. 그것을 상속이라 합니다. 상속이란 아버지의 재산을 자식에게 주는 것이잖아요. 아버지의 노동이에요. 자식이 노동한 거 아니에요. 자식들은 고마운 줄 알아야지 꼭 비교해서 형님은 (부보님) 아플 때 몇 번 와봤습니까? 이런 거, 막내 시동생은 유학 간다고 돈 다 가져갔지 않습니까?

그 때가 되면 시시콜콜 다 끄집어내요. 인간은 과거 밖에 모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한 과거 밖에 몰라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제가 언제 했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이건 과거에 행한 것 상관없이 미리 준비하신 것을 성도에게 상속이라는 형식으로 주시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이게 천국이에요. 천국은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신경 쓸 필요 없고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시시하게 태어나서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되요. 죽을 때도 시시하게 죽어야 되요. 이번에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즈음 생전 안 오던 여동생이 와서 갑자기 우리 돌아가며 밤샘을 하자는 거에요.

지는 일 년에 두 번 인가 와놓고 졸려 죽겠는데 밤샘을 하자는데 아무도 동의 안 했거든요. 그랬더니 자기 혼자 밤샘해서 나중엔 뻗어 버렸어요. 막상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는 못 왔어요. 힘들어서 결정적인 순간을 놓쳤어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어요. 흑흑 제가 왔어요. 어머니! 이걸 원했던 거에요. 그래서 제가 영상을 찍어 놨어요. 너무 섭섭하지 않게 보여 줬어요. 이게 마지막 순간이다 하고 그얀 숨 가쁘게 쉬시다 잠들 듯이 했어요. 인간은 자기 행한 것만 생각하니까 성령이 아이고! 시시한 인간아~ 나는 신경도 안 쓰는데 니가 왜 신경쓰느냐 이렇게 성령께서 우리를 꾸짖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이런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달라진 인간에게 상속해 주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내 행함에 매이다가 악마에게 농락당하지 말고 차라리 주님만으로 좋아요 하는 마음으로 자기로부터 벗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대전104강 마 25장34절.hwp (66.0K), Dow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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