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HOME > 게시판 > 자유게시판
2019-01-10 12:27:56 조회 : 121         
264강-YouTube강의(식사)20190108-이 근호 목사 이름 : 이미아(IP:122.43.170.138)

264강-YouTube강의(식사)20190108-이 근호 목사

 

제 264강, 제목은 ‘식사’입니다. 식사 안 하는 사람이 없겠죠. 다 식사를 해야죠. 그리고 유기질로 되어 있는 인간에게 외부에서 물과 영양소가 공급이 될 때 사람의 몸은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몸이 외부의 에너지요소를 공급받을 때 신호가 오거든요. 그 신호가 뭐냐 하면 배고프다, 에요. 배고프다. 뭐라도 먹자.

 

그런데 식사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배고프다고 주스를 먹는 것이 식사가 아니고, 사람들은 계속 식사를 통해서 타인과 나 사이에 공통적인 공간을 마련해나갔어요. 식사 가운데서 하고 싶은 말을 상대방에게 건네고, 듣고 싶은 것도 식사를 통해서 듣습니다. 그러면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나라의 옛말에 식구라고 이야기를 해요. 식구란 식사를 같이 하는 거예요.

 

그런데 식구라고 해서 자기 밥 따로 만들고 따로 하게 되면 그건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그걸 식구라고 할 수가 없죠. 식당에 가서 돈 내고 식사하게 되면 식당주인하고 식구가 되는 것입니까? 아니죠. 파출부가 와서 식사해주면 그 파출부하고 식구가 되는 것입니까? 아니죠. 식구라는 것,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고픔을 뭐로 표현하느냐 하면, 나 혼자는 못 살겠다는 표현으로서 “우리 배고픈데 식사 같이 할까요?”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게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죠. 요한복음 13장 3절에 보면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절,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렇게 했습니다.

 

제자하고 예수님하고 결국은 하나가 된다는 그 암시를 식사시간을 통해서 알려줍니다. 물론 이 요한복음 13장에서는 발을 씻는 것도 포함이 되어 있어요. 옛날에는 식사할 때 발을 씻었으니까. 손도 씻었으니까.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도, 마태복음에서도 그렇겠지만 예수님께서 정작 제자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있었어요. 떡과 포도주였습니다. 외부에서 볼 때 그것은 일상의 식사의 연장이라고 이래 볼 수 있겠죠. 먹을 수 있으니까.

 

근데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떡이라고 하지 않고 자기의 몸이라고 했다 이 말이죠. 요한복음 6장 53-58절까지 중요한 말씀이 나오죠. 53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라는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하지 않고서는 ~~가 없다, 라는 그런 방식으로 말을 하셔요.

 

이 말은 뭘 강조하기 위함이냐 하면은 너희에게 생명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예요. “생명이 없다. 생명이 없는 이유를 알려줘? 지금 너희들 속에 내 피와 살이 없잖아. 그러니까 생명이 없는 거야.”라고 하시는 거예요. 생명이 없다는 기준을 외부에서 주님께서 식사를 통해서 가져다주는 겁니다.

 

이걸 요한복음 13장에다가 적용시켜봅시다. 저녁식사 할 때에 생명 있는 예수님과 생명 없는 사람과 식사를 같이 해요. 그러면 그들이 기대하는 양식이라고 하는 것은 평소에 자기가 생명이 없다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생명이 있다고 여기니까 생명을 유지하려고 하겠죠. 인간이 자기 생명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먹었던 것이 뭐냐 하면은 떡과 포도주였습니다.

 

“나 이대로 살게 좀 내버려둬.” 이런 식이죠. “내가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 먹고 내가 마실 것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그게 자연스러운 것 아닙니까? 밥 먹고 사는 것이 사는 것 아닙니까? 이게 생명이 아닙니까?”라고,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그렇게 이미 의기투합했죠. 의견이 하나가 됐죠.

 

그런데 그들이 먹는 떡과 포도주가 본인의 생명을 방해하는 거라면? 그것으로, 그 떡과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이퀄(=), 떡과 포도주=생명 그러니까 생명이 된다는 그 생명이 진짜 생명을 가로막는 인식이라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 식사시간이 최후의 만찬이 되어야 되겠죠. 최후의 만찬.

 

주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일러주는 것은 같이 식사를 해도 하나는 생명이고 하나는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주는 자리를 마련해주셨던 겁니다. 그게 바로 예수님과 천국 가는 제자들과의 특수한 식사입니다. 그러면 이 특수한 식사를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천국가지 못하는, 지옥 가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식사도 생각해봐야 되겠죠.

 

구약에 보면 이방인들이 나옵니다. 이방민족들은 누구하고 싸우느냐 하면 이스라엘과의 싸움의 대상이 되죠. 초창기에 이방민족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이스라엘에게 맨날 패배하기만 했어요. 나중에는 그게 역전이 됩니다마는, 이방민족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망합니다. 그런데 그 대목을 보면서 우리는 이걸 한번 생각해봐야 해요. 하나님이 없고 이스라엘이 아니더라도, 이방민족이라도 본인 나름대로의 행복할 수 있는 권리는 있지 아니한가? 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봐야 해요. 행복할 수 있는 권리.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권리. 이런 것 말이죠.

 

복음 모르고 예수 몰라도 그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처럼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눈으로 목격하게 되죠. 드라마 같은데 나오잖아요. 그들은 굉장히 행복을 원하고 있고 사랑을 통해서 그 행복을 추구하려고 애쓰지 않습니까? 그럼 식사는 뭐냐, 행복하기 위해서 먹는 거죠. 몸 아파서 굶으면 행복하지 않잖아요.

 

그럼 그들은 식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식사할 수 있다는 권리가 있다는 말은 그들은 나름대로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알려진 이방민족의 특징은 뭐냐 하면 너희들은 행복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멸절당해야 되니까. 너희들이 평생 자기행복을 위해 추구했는데, 그것이 이스라엘의 의미를 모르고 하나님의 전쟁의 의미를 가로막고 있는 요소가 된다는 겁니다.

 

나름대로의 행복 추구하겠다는 그 의지 때문에 정작 영생을 주려는 주님에 대해서는 그들은 배타시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방민족들이. 식사시간 같으면 좋은 시간이죠. 배가 부를 때는 포만감이 주어지게 되고 행복하니까. 그런데 주님보시기에 배부르다고 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배부르다고 해서 그게 복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에게는 영생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성도에게 있어서의 행복이 뭐냐, 내가 뭔가 빠져있다는 거예요. 내가 미흡하다는 거예요. 단독적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주께서 함께하셔서 주께서 계속해서 영생으로서의 살과 피를 제공하는 이 식사자리가 나의 아침, 점심, 저녁식사보다 더 우선돼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이것이 바로 성도입니다.

 

성도는 독자적으로 자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음을 아는 자가 신자에요. 내 식대로 인생을 사는 그것이 바로 오히려 진정한 복을 가로막는 짓인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게 오늘날 주님의 식사가 특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첨부파일 : 264강-YouTube강의(식사)20190108-이 근호 목사.hwp (32.0K), Down:3
게시물7,833건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읽음
공지   [책]2019 신간 '완전한사랑'출간&구입안내 최지영 19-06-11 85
공지   여름수련회 광고 서경수 19-05-28 255
공지   대장간 출판사에서 이근호목사님 저서를 다량 구입했… 관리자 18-08-25 867
공지   이스라엘 유적 답사 동영상 (1) 이근호 18-03-10 1169
공지   십자가마을(도서출판)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김종인 17-05-29 1948
공지   실시간 생방송 새주소 입니다. 관리자 17-02-19 5941
공지   이 근호 목사님 저서 안내 관리자 14-07-11 5468
8341   강남 모임 안내(6. 18. 화) 이명직 19-06-16 3
8340   대구 모임 안내 이근호 19-06-15 14
8339   191강-창 49장 19-21절(갓과 아셀과 납달리에 대한 예… 오용익 19-06-13 48
8338   서울 강의 안내 이미아 19-06-12 35
8337   20190610b 부산강의 : [시편]19(12편)-중첩 한윤범 19-06-12 35
8336   20190610a 부산강의 : [시편]19(12편)-중첩 한윤범 19-06-12 39
8335   안양모임 안내(6. 14. 금) 공은주 19-06-11 27
8334   정석훈목사 6월 집회안내 김동수 19-06-11 53
8333   20190607b 울산강의-레위기23장 : 시간의 의미 한윤범 19-06-10 56
8332   20190607a 울산강의-레위기 23장 : 시간의 의미 한윤범 19-06-10 54
8331   27강-엡 3장 12-13절(담대함)190609-이 근호 목사 오용익 19-06-10 68
8330   238강-여호수아 20장 1~3절(제사장의 부재)20190609-… 송민선 19-06-09 56
8329   주일학교 설교 / 돌아온 문둥병자 / 190609 정인순 19-06-09 49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