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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0 21:50:10 조회 : 207         
223강-여호수아 12장 7~8절(정복의 원칙)20190210-이 근호 목사 이름 : 송민선(IP:116.46.79.235)
223강-여호수아 12장 7~8절(정복의 원칙)20190210-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수아 12장 7~8절입니다. 구약성경 338페이지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쪽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 쳐서 멸한 그 땅의 왕들은 이러하니라(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었으니, 곧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네겝 곧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이라)”

성경이 같은 책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방금 읽었던 이 본문에 대해서 성경에 많은 관심이 있었던 분들은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기억나게 될 겁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네가 애굽 땅에서 나와서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을 차지하리라”라고 되어 있어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차지한다고 했으면 그 모든 권한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없는 거예요. 미리 알고 있는 거예요. 모든 것을 반드시 차지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 가는 데 있어서 왜 하나님께서는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고생을 시키느냐는 겁니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뭐 못 잡아먹어서 분이 나는 것처럼 그렇게 족쳐서 가게 하는 그 이유가 왜 그렇게 힘들게 가게 하시는지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좀 의아해하는 거죠. 하나님께서 다 하시고 우리는 덤으로 이렇게 쑥 들어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천국이라는 것을 어디 특정 지점에 만들어 놓고 오라는 식이 아니고 하나님이 활동하면서 계속해서 없던 천국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없던 천국이.

그래서 인간들이 다 해놓고 가라 하면 그곳은 없어요. 그런데 목덜미 잡혀서 하나님께서 활동하시고 사용하시는 그 현장에서 ‘아, 여기네. 주와 함께 일하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네’라고 비로소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냥 몸만 홀라당 가는 천국은 그거는 우리가 잘못 생각한 천국이에요. 직접 부대낀다는 말이 있죠.

같이 주님에 의해서 부대끼고 하는 가운데서 천국이 좋은 나라가 아니고, 천국은 완벽하게 나를 잃어버리는 나라, 완벽하게 나를 잃어버리는 나라, 나의 가치와 의미와 내 행함이 기억되지도 않는 나라. 죄만 기억하지 않는 곳이 아니에요. 내가 착한 일 하는 것도 기억하지 않도록 하는 나라.

그 나라는 현재 멀찍이 봐서는 보이질 않습니다. 현장에 들어가야 해요. 현장에 뛰어 들어가야 합니다. 아는 사람 중에서 공고를 나왔는데 공고 나와서 다른 사람이 보면 “야, 너는 좋겠다. 공고 나와서 취직도 잘 되고” 그래서 그 아는 사람이 직물 공장에 취직이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이나 식구들 보기에는 “아이고, 공고 잘 보냈네. 졸업하자마자 취직되고. 이제 따박따박 월급 나오고 좋겠네”라고 하는데 본인은 들어간 지 6개월도 안 되어서 사표를 냈습니다.

자, 차이가 어디 있는지 보세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간에 한 달마다 월급 나오면 돈 나오고, 그 돈 가지고 네가 어른이니까 너 알아서 돈 모아서 장가가면 되겠네. 이제 인생 폈다. 취직했으니까. 다른 사람 취직도 못 하는데 19살 나이에 취직했으니까 됐다. 이제 군에 갔다 오고 다시 다니면 되겠다”라고 멀찍이 보는 거예요. 멀찍이.

본인이 직물 공장 일 안 하니까. 결과물만 챙겨보면 주머니에 통장에 따박따박 돈 들어오니까 괜찮은 거예요. 그런데 그 아는 사람 본인이 직접 직물 공장에서 일을 해보니까 일단 온도가 높아요. 40도가 넘고, 약속은 분명히 10시간 일하는 거였는데 이거는 뭐 12시간은 그냥 쉽게 넘어요. 젊다는 핑계 대고 계속 작업 돌립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집에서 쉬라고 하고. 막 들어온 신참들 막 작업시킵니다.

거기에다 고참들이 자기가 하기 힘든 것까지 신참들에게 다 미뤄요. 이거는 안 해도 될 일을 거기서 하라 하니까, 자기들도 처음엔 다 했다고 하니까, 그 동네가 나와바리가 있고, 텃새가 있는데 그건 사장도 몰라요. 자기들 직공들끼리 얼마나 텃새가 센지 곱빼기로 일하고 월급은 더 적게 받아요.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건강에 특히 천식에 안 좋아요. 공기가 나빠요. 공장이라는 것이 환경에 힘쓰지 않습니다. 사장이 거기에 신경 쓰다가는 그게 수익이 떨어져요. 원가가 높아진다고요. 그러니까 버틸 놈은 버티고 나갈 놈은 나가고 또 사람 뽑으면 되니까 배짱으로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점점 더 건강이 안 좋은 거예요. 이제는. 잘하면 죽겠다 싶기도 하고.

갑자기 산뜻한 사무실 분위기가 있는 대기업을 선호하게 되지 않을 수 없어요. 중소기업 취직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건 사람 잡겠다 싶어서 공부 좀 해서 대기업 시험 한번 보고 싶은 생각 들고 서너 번 떨어져도 들어가기만 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 슬쩍 생기는 겁니다.

열아홉 살 먹은 사람이 그 직물 공장에서 뭘 배웠겠습니까? 인생을 배운 거예요. 그전까지는 뭘 배웠느냐. 돈을 배운 거예요. ‘어떻게 돈 벌면 된다는데. 아, 돈이 그냥 공짜로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고 100을 주고 50을 얻는 것이 내 월급이구나’ 일은 백을 하고 월급은 50을 가져가는 게 이게 세상의 원리라는 것을 비로소 터득하는 겁니다. 갑자기 더러운 세상이 된 거죠. 이용당한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 대기업도 못 들어가고 공무원시험도 안 되고 이제는 거지꼴이 될 상황이 돼서, 옛날 떠났던 직물 공장 다시 들어가서 처음 시다부터 다시 시작할 때 자기를 잃어버린 겁니다. 천국은 이와 같습니다. 천국은 어디 있느냐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길 그 끝에 천국이 있어요.

멀쩡하게 하늘나라에 천국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늘나라 천국은 가짜입니다. 그건 환상이에요. 그건 조작된 거고요. 그건 종교단체에서 만든 거예요. 천국은 뭐냐 하면 십자가 끝에 있어요. 빌립보서 3장에 사도바울도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천국 가기 위해서 나는 십자가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십자가 길로 가는 거예요.

그 십자가 길은 자신이 알고 있고 자기가 챙기려는 것, ‘나는 이 정도 하면 나는 내 인생으로 인정해 준다’라고 하는 그런 챙기는 것조차 다 놔버려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여호수아를 보면서, 전쟁하면서, 그 모든 것을 놓는 쪽의 하나님에 속하느냐 아니면 쥐고 있는 쪽이 승리하느냐 하는 그 전쟁을 여호수아를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전쟁이에요.

달라요. 이스라엘 전쟁은 협상이고 타협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는 이스라엘 전쟁이고 저쪽을 다 진멸하라는 전쟁, 여기 오늘 본문 7절에 나오죠, “쳐서 멸한 왕들은” 진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천국에 오지 못할 사람들은 오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는 “나에게 가까운 서로 정을 나눈 우리 가족은 데려가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전쟁이에요.

‘중보 기도해서 저 사람은 데려가야 하겠다. 아내는, 남편은 데려가야겠다.’라고 생각하는데 아내 남편 따지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 건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고 너나 오라는 식이란 말이죠. 완전히 자기 자신을 잊어버려야 하죠. 과연 이 원리라는 것이 오늘 본문의 이 원리가 그 아브라함의 약속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그 약속과 오늘 본문 여호수아의 이 결과 사이에 계속 그 원리가 이스라엘 내에 살아있었는가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살아있지 않지요. 인간은 그렇게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수시로 적들을 치기 전에, 가나안땅 토착 왕들을 치기 전에, 이스라엘부터 먼저 치는 과정을 통해서 원리를 계속 거기에 심어 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신명기 1장 36절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요.

“오직 여분에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라고 되어 있어요. 이게 뭐냐 하면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자, 이제부터 중요합니다.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으니까 눈동자가 24개예요. 24개 눈동자 가운데서 천국에 쓸만한 눈동자가 달랑 4개밖에 없었어요. 달랑 4개.

12명이 전부 다 예비타당성 검사를 한 거예요. 예비타당성 검사를 한 거예요. 정상회담하기 전에 미리 타협을 해보는 거예요. 12명이 24개의 눈동자를 굴리면서 약속의 땅에 몰래 가서 정탐했습니다. 했는데 10명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아니되옵니다. 주여 못 들어갑니다”라고 해요.

우리가 어느 편에 서야 하느냐 하면 10명의 편에 일단은 섭시다. 10명의 편에. ‘하나님 그런 식으로 하면 천국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라는 식으로 여러분은 천국을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대충 믿기만 하면 들어가겠네’라는 식입니까? 어느 쪽이에요? 우리가 뭔가 내가 나에게 지금 속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 뭐 쉽게 들어가네’ 이런 쪽에 우리가 속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열 명의 정탐꾼이 바보가 아니에요. 다 같이 나름 지도자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에요. 오히려 누가 이상한 사람들이냐 하면, 오전에도 이야기했듯이, 누가 미친 사람들이냐 하면 그 강력한 군대가 주둔해 있는 그곳을 소수에 우리 이스라엘 연약한 이스라엘이 들어간다고 우기는 갈렙과 여호수아가 또라이입니다. 이거 이상한 거예요. 눈동자 4개가 뭔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우리가 안 가본 제 3자 입장에서 예비타당성 검사하고 온 그 사람들 말을 이렇게 공개석상에서 들어보잔 말이죠. “자, 어떠하던가요?” 열 명이 하는 말이 “못 들어갑니다” 열 명이, 대다수가 그래요. 그들이 아이큐가 낮은 게 아니에요. 똑똑해요. 똑똑한 사람이 대다수가 그래요. 열 명 같으면 벌써 퍼센트가 80% 넘잖아요.

똑똑한 사람들이 이르기를 못 간다는 겁니다. 우리가 갈 수 없는 나라를 지금 무리하게 시도한다는 겁니다. 오늘날 이 원리가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 바가 뭘까요? 우리는 한 번 천국 들어가고 그다음부터는 자동으로 들어가는 줄 알고 있어요. 우리가 직물 공장 하루 일하고 그만둔 거예요. 하루 일하고 그만두니까 얼추 견딜만하니까 ‘야, 천국가도 견디겠다’라고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에 천국 갈 때까지 그 환경 나쁜 직물 공장에 매일같이 출근한다면 우리는 몇 달 안 되어서 “더러워라”라고 하면서 사직서 던지고 뛰쳐나올 그런 속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천국 가는 길에서 못 벗어난 것은 주님께서 야무지게 일하셨기 때문이에요. “너는 네 마음대로 이 천국 가는 길에서 못 벗어나. 너 혼자 탈출할 수 없어”라고 아주 단속을 잘하셨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로 하여금.

옛날에는 나 자신의 하는 모든 경험을 내가 믿은 건데, 이제는 아예 나 자체부터 내가 믿을 놈이 못 된다는 것을 갈수록 점점 더 확실하게 만드는 그러한 쪽으로 주께서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셨습니다. ‘나 잘났다’가 아니라 ‘이렇게 못난 인간도 다 있나. 이런 천방지축 망나니가 어디 천국을 갈 수 있느냐.’라고 할 때 지금 천국은 가까운 겁니다. 천국 지금 다 왔어요.

왜냐 하면 본인이 본인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전에는 믿을 놈이 나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제는 그 믿을 대상에서 나를 탈락시키고 말았어요. 왜 이런 터무니없는 원리가 우리에게 장착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이 약속의 땅에 처음 들어갈 때 정탐꾼을 보내는 상황과 그리고 오늘 본문 12장에 나오는 이 여호수아의 상황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직물 공장에 환경개선 전혀 안 하고 그냥 쌩쌩 기계 가동되고 있습니다. 젊을 때 뭣 모르고 들어가서 못 견디겠다고 뛰쳐나온 사람이 한 20년 동안 떠돌이 생활하다가 그냥 밥이나 먹여주면 감사하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들어갔다고 해서 그 직물 공장의 환경이 좋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내 삶의 환경이 조금도 변화되지 않아요. 내 몸이 더 나아지고 이런 거 없습니다. 다만 그냥 몸 아플 때 길길이 뛰고 한 것은 그것은 몸이 아픈 것이 아니고 자아가 너무 안 아파서 문제예요. 자아가 너무 쌩쌩하게 살아있어서 활어 같아요. 펄펄 뛰어. 장어도 그런 장어가 없습니다. 너무 자기가 잘났어요.

그 잘난 이유가 뭐냐 하면 남들 보기에 내가 보기에 잘난 코스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래요. 이만하면 남에게 기 안 죽는다고 너무 과거 자아상에 축 늘어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십자가 없어요. 십자가 앞에서 못 박혀 달려야 된다는 것은 자기에게 해당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강도가 아니고, 세리가 아니고, 창녀가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꼭 바리새인 같아요. 이래가지고 무슨 전쟁을 합니까? 이래서는 전쟁 못 해요.

사도바울 보세요. 얼마나 잘났던 사람입니까?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 요즘 같으면 0.1% 가장 상위의 엘리트예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자신은 요강단지에다 버렸다는 겁니다. 배설물로 똥오줌으로 여겨서 다 갖다 버렸다는 겁니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겁니다. 정말 빈말 아닙니다.

“나는 세상에 빚진 자로다” 왜? 나 같은 인간이랑 똑같은 인간이 하도 많으니까. 안타까워 죽어요. 이거 알리고 싶어서 안타까워 죽어요. 쪼다면서 쪼다인지 모르는 거. 꼭 옛날 자기 모습을 보는 거 같아요. 방송 뉴스를 보면 복음 전하고 싶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에요. 손혜원, 문재인, 도올 김용옥, 김제동, 복음 전하고 싶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에요.

멸해야 할 사람이 누구냐 하면 내가 나를 멸해야 해요. 그건 내가 내 힘으로 절대 멸할 수 없거든요. 내가 싫다고 뛰쳐나온 그 직물 공장이 천국인 줄은 상상도 못 했지요. 내가 기피 한 십자가 그 장소가 내가 갈 유일한 구멍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이 세상은 천국의 입구가 있어요. 이 세상은 그냥 살아가는 게 아니라 입구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세상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입구가 사람들이 기피 하는 곳에 있어요. 얼마나 망가져야 그 구멍이 크게 보일까요? 얼마나 도대체 얼마나. 도대체 얼마나 아파야 나 자신을 잊을 수가 있겠어요. 지금 여호수아가 물리쳤다고 하니까 우리 눈에는 쉽게 보이지요? 그리고 제가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약속대로 했다고 하니까 굉장히 쉽게 보이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걸 쉽게 쉽게 그냥 넣어주질 않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넘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간 개조가 일어나는 거예요.

10명이 갈 수 없다는 그곳이 바로 가야 될 나라예요. 갈 수 없다는 그 나라가 반드시 가야 할 나라인 거예요.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나라, 뒤돌아설 수밖에 없는 그 나라, 그 나라 천국이 바로 코앞에 있었던 겁니다. 그걸 안 가고 40년 동안 뺑뺑이 돌다가 결국 갔잖아요. 후손들이.

주님이 오셨을 때 이사야 53장에 나온 것처럼 사람들이 흠모할 것도 없고, 볼 것도 없고, 흉하기 짝이 없어요. 도대체 어느 면을 보고 메시아인지를 겉에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채찍에 맞았지요. 반항하지 못하고 맥없이 돌아가셨잖아요. 어디를 봐서 메시아입니까? 어디를 봐서 위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에요?

그런 모습으로 우리를 낮추시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모습으로. 따라와라. 채찍에 맞아도 너에게는 과분하다는 겁니다. 네 주제에 채찍 좀 맞아도 괜찮다는 겁니다. 상관없다는 겁니다. 네 목숨이 죽어가는 그 목숨에 비하면 그 죽어가는 목숨을 천국에 넣어주려면 인간 개조가 일어나야 합니다.

방송을 보면 아는데 의성 단촌이라는 곳이 있어요. 단촌에 구계 이리라는 곳이 있어요. 단촌 구계 이리에 보면 다른 곳과의 차이점이 ‘리훈’이라는 것이 있어요. 가훈, 학훈처럼. 마을 사람들끼리 지켜야 할 훈계 같은 것이 있는데 첫째는 웃어른을 공경하라, 둘째는 이웃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 세 번째는 먼저 보는 사람이 먼저 인사하기, 네 번째는 남보다 앞서가는 주민이 되자 입니다. 거기 이사 오는 사람은 반드시 그 리훈을 지켜야 해요.

여러분 천국은 지킬 리훈이 없습니다. 왜냐면 이걸 지키면 지킬수록 자기가 잘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잘난 사람이. 천국은 그 열 명의 정탐꾼 말이 맞습니다. 그들이 정말 직언을 했어요. 제대로 봤어요. 천국은 갈 수 없는 곳입니다. 왜 우리는 이걸 잊어버렸습니까? 지금 기적이 뭐냐 하면 내 힘으로 내 안목으로 내 상식으로 갈 수 없는 나라에 주께서 억지로 지금 밀어 넣고 있는 겁니다.

누가 반대하겠어요? 내가 반대해요. 주님은 천국 보내주려 하고 내가 삐져서 내가 안 갈려고 하고 어떡하면 좋겠어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게? 코앞에 있어도 안 갑니다. 그냥 리훈을 지키려고 해요. 리훈 지키기. 서로 먼저 인사하기처럼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계명만 자꾸 지켜서 그것으로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방법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다음에 언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따라서 그 땅을 얻었다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왕들을 치고 땅을 얻었습니다. 그게 주로 서쪽, 여기 나온 지명들이 주로 서쪽인데요. 이기고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땅 차지하면 뭐합니까? 이스라엘 여기서 안 끝났어요.

그다음 여호수아 다음에 사사기 나옵니다. 땅 다 날려 버렸어요. 그러게 이것은 그다음 언약이 필요해요. 그다음 언약은 뭐냐 하면 인간이 어떤 땅을 소유하고 부동산을 쥔다고 해서 자동으로 계속해서 천국의 삶을 살 수 없는 곳이에요. 그러면 여기서 뭐냐, 오늘 본문에 보면 왕을 멸했다 했거든요.

왕을 멸할 때 이 세상에 두 종류의 왕이 필요가 없고 한 종류의 왕으로 이게 굳어져야 해요. 하늘에 태양이 두 종류가 없듯이. 왕이라 하는 것은 모든 진리가 그쪽에서만 나오는 게 왕이에요. 왕의 지시가 곧 그 나라의 법이 되는 겁니다. 하나의 왕, 여호와가 왕이 되면 돼요. 그러면 여호와의 왕이 있어서 기존 왕을 물리쳤다면 기존의 이스라엘은 자체적인 왕을 뽑아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이게 이스라엘에 왕이 필요 없다고 하는 이런 깊은 뜻이 있어요. 만약에 왕을 내가 원해 버리면 이것은 뭐냐 하면 10명의 정탐꾼이 약속의 땅에 가는 그 심보를 가지고 약속의 땅을 그런 식으로 관리하고 유지하고 붙들려고 하는 그런 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약속의 땅은 계속해서 기적이 되풀이돼요. 내가 살 수 없는 땅, 내가 못 들어가는 땅, 이런 것들이 반복되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한 번 되고 난 뒤에는 ‘알아서 내가 관리 잘하면 되겠지. 앞으로 내가 살면 더 살 수 있겠지’라고 자꾸 오해하는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왕이 없어서 제 맘대로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시기 끝에 늘 나와요. “왕이 없어 제 맘대로 살았다”라고. 자기가 왕이었다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 언약을 통해서 이제는 두 번 다시 왕이 필요 없도록 고정된 왕을 보내주는데 왕의 모습은 사무엘 하 6장 22절에 나옵니다. 거기 보면 다윗이 언약궤를 메고 오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 너무 좋아서 “이건 기적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언약궤가 우리와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았다는 것은 기적이다”라고 하면서 춤을 춥니다.

춤을 추니까 그 부인이 하는 말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아이고, 칠칠치 못한 이 양반에 당신이 명색이 왕인데 백성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은가”라고 되어있어요. 이게 바로 열 명의 정탐꾼이 착각한 것과 똑같은 사고방식이에요. 보이지 않는 분에 의해서 우리는 올 수 없는 나라에 올 수 없는 천국에 살았으면 자기 상식을 포기해야 할 텐데 이 부인은 뭐냐 하면 아직도 남들의 눈을 의식하는 거예요. 왕이 왕답게 처신을 해야 존경할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존경해서 뭐 할 건데? 존경하게 되면 우리 남편은 계속 왕 된다는 겁니다. 다윗이 여기서 올바른 이야기를 합니다. 다윗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 이 사람아, 내가 옷을 벌거벗고 그들 앞에서 춤을 췄는데 너무 좋아서 춤을 췄는데 이깟 나의 수치를 가리는 옷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지금 언약궤를 봐라. 나를 보지 말고. 나는 언약궤 앞에 이렇게 비천한 자, 더 낮아져서 네가 비천하게 보는 것보다 더 비천하게 된다 할지라도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높임을 받을 것이다”라는 이 원리입니다.

천국이 뭐길래, 하나님이 준비하신 천국이, 십자가가 도대체 뭐길래 우리가 그 앞에 어떠한 부끄러운 인생을 산다고 할지라도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제 남의 눈치와 시선 그만 보세요. 다 열 명의 정탐꾼들이에요. 열 명의 정탐꾼 말을 우리가 왜 들어야 합니까? 그들은 들어갈 수 없는데. 그들은 약속의 땅에 못 갔잖아요.

정말 우리가 살아계신 주님이 어떤 분인 줄 안다면 주님부터 먼저 벌거벗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잖아요. 물론 지금도 가서 갈보리 교회 가서 벌거벗고 나서라고 하면 용감하게 나설 사람이 한 둘이 아니지만, 우리 인생 자체가 나 이 정도 살았다고 내놓을 것 없기를 바랍니다. 나 이 정도 괜찮은 존재라고 내놓을 것 없기를 바랍니다. 이게 뭐냐 하면 진짜 왕의 성품을 그대로 인수인계한 성도의 새로운 품성이에요.

이게 인간 개조입니다. 내 인생이 이 정도 망가져도 별 상관없다는 거. 세리와 창기가 너희들보다 더 먼저 천국 들어간다는 그 원칙이 지금도 작용하는 천국의 원칙이에요. 다른 원칙은 안 받습니다. 십자가요? 남들에게는 부끄럽지만, 우리 성도에게는 영광스러운 사건이고 기적의 능력이 거기서 나와서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만 바라보게 하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평소에 뭘 생각하고 있는지요. 열 명의 정탐꾼이 곡해한 것처럼 똑같은 착각으로 우리가 죽으면 천당 간다고 우기고 있지는 않은지요. 주여 우리 인생에 함께 개입하사 날마다 나 자신을 놔버리는 그런 기적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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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5   2019 여름수련회 요약 : 이 근호 목사, 08142019 (2) 19-08-17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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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3   3강-호 1장 8-11절(망해야 되는 자식)190814-이 근호 … 오용익 19-08-15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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