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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4 22:58:13 조회 : 33         
강남-요한복음 20장 17절(너희 하나님)190305b-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125.130.152.223)
강남-요한복음 20장 17절(너희 하나님)190305b-이근호 목사



우리는 성경의 전체를 몰라요. 그러나 주님은 성경내용 다 압니다. 본인이 출제했기 때문에 그래요. 출제위원이 문제를 낼 때는 반드시 뭐도 압니까? 정답을 혼자서 알지요. 야고보서에 나오지요. 100점짜리는 없다고요. 99점은 안돼요. 전체 율법의 다 지켜야 이게 천국에 합격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가치, 우리 구원은 관계 없어요.


말씀의 가치만 높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 말씀의 가치에 합당하지 않는데 얼쩡거리면 무엇이 와서 쳐버리겠습니까? 율법이 와서 죽여버리죠. 그래서 대구강의에서 광주이야기를 제가 예를 들었지요. 그 넓은 그 18차선 확실한지는 모르겠습니다. 16차선인가 그 넓은 도로에 한가운데 5만원짜리 있다면 보는 사람이 임자지요.


줍고 싶은데 주우려고 하니까 쌩쌩 달려오는 차들이 주우려고 하는 내 몸짓을 그냥 치고 넘어가버리는 거에요. 그러면 영생 구원 흔히 교회에서 그렇게 흔하게 세일되는 영생 구원 천국은 뭐냐 하면 율법 그물 안에 놓여있는 거에요. 그걸 쥐다가는 율법의 저주가 가만두지를 않는겁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누가 아느냐 하면 악마가 알아요. 악마는 인간들로 하여금 문제를 자꾸 풀라고 하는 거에요. 어떤 해석을 하느냐? 선과 악을 갖고 있는 이성이 있기 때문에 이미 너는 지식을 알았다. 지식을 가졌으니까 그 지식가지고 도전해보라는 거에요. 합격할 수 있는 그런 의로움을 향하여 네가 의지를 불태워라 이 말입니다.


꼭 이런 이야기가 기존 교회 목사이야기와 똑같아요. 독수리처럼 올라가라 뭐 성화되라니 뭐 거룩에 거룩을 더하라니 뭐 그런 류의 이야기죠. 도전하라 그리고 쟁취하라 그 영광은 너에게 뭐 이런거 있잖아요. 마귀를 이겨라. 마귀가 바보입니까? 세상에 마귀의 마음을 가진 인간이 무슨 마귀를 이겨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여러분 환자가 의사를 이기는거 봤습니까? 요새는 그런 사람 많아요. 하도 TV에서 민간요법들이 많이 나와가지고 의사보다 더 많이 알아. 처방도 자기가 다 내려버리고 의사 입도 못 떼게 만들어요. 자기가 말 다하고요. 요새는 내과 갈 문제가 아닙니다. 전부다 정신과에 들어가야 돼. 비뇨기과 산부인과도 정신과로 가버려야 돼 전부 다. 자기 자격증도 없으면서 의사보다 더 많이 알아.


인간은 이 세상의 해석을 모릅니다. 그래서 대구강의에 그런게 있지요. 내가 나 되는거에 대해 변수에 대해서 내가 다 모르겠다요. 욥이 바로 그런 이야기를 했지요. 욥이 내가 이렇게 고난받는 것에 대한 여기에 투입된 여러 가지의 정황들이나 변수에 대해서 자기가 왜 고난받는지를 모르지요. 모르면 입 다물어라 하는 것이 주의 뜻이거든요. 모르는게 왜 자꾸 아는 척을 하고 있느냐 이 말이죠.


네가 의로워? 네가 무엇이 근거해서 의로우냐? 무엇에 근거해서? 기껏 그런거 안다고? 출제 중에서 46개 안다고? 네가 안다고 될 수 있느냐 이 말이죠. 정말 아시는 분은 유일하게 악마로부터 이긴 분 벗어난 분이 모든걸 아시는 분이에요. 딱 한 분 이 세상에 딱 한 분 있어요. 주의 이름 오직 그리스도만이 악마로부터 벗어난 분입니다. 딱 한 분.


이 말은 뭐냐 하면 예수님이 마지막 한 분이었다 그걸 ‘마지막 아담’이라고 하는데 마지막 한 분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은 전부다 실패했다는 거에요. 문제는 인간이 자기가 실패자라는 것을 인정을 안 한다는 그 고집이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 직업을 어릴 때부터 쭉 보고 있으면 자기가 그 직업을 따라갈 확률이 많아져요. 엄마가 가수다. 그러면 아들이 별 공부도 재미도 없고 할 때는 어디 갈 확률이 많습니까? 가수될 확률이 많은거에요. 원래 가수 집안에 가수들이 많아요. 옥경이 불렀던 누굽니까? 태진아부터 해가지고 많잖아요.


립스틱 무지무지하게 짙게 바른다는 이름은 몰라도 돼요. 임주리, 그 아들도 전부다 많아요. 영화배우 아들이 영화하고. 그런데 그 애가 왜 그쪽을 하느냐 하면은 흉내를 내지요. 흉내를 내는데 문제는 아버지의 인기를 넘어설 수 없다는 거에요. 흉내는 내요. 후광을 입습니다만은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왜냐? 그 사람하고 그 사람하고 아들이 그 사람이 아닌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로 자처합니다. 그런데 전부다 아들이래. 전부다. 왜 그걸 가르쳤습니까? 랍비가 가르쳤어요 랍비가. 아까 랍비 이야기 했지요? 늦게 오신 분들을 위해 다시 이야기하면 선지자 끊어진 상태에서 빈 공백시간을 그냥 맹숭맹숭 보낼 수 없잖아요.


그때는 선지자의 해석에 의해서 가장 진리에 가까운 해석들을 학문적으로 탐구해서 괜찮다 싶은 것은 다 끌어모아서 오실 메시아와 끊어진 선지자 사이를 그 다리를 이어줘서 이 시대에 있는 우리들도 이거 믿고 천국백성 되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랍비죠. 랍비는 유대의 그 탈무드 보면 랍비는 어느 정도 레벨이냐 하면 부모보다 더 높아요. 왜 이유가 뭐냐?


부모는 나를 천국에 못 보내게 하지만 랍비는 나를 천국에 보내게 하는 거에요. 그 정도로 높은 레벨이 랍비에요. 그래서 극존칭이라니까요. ‘영의 아버지’가 돼요 영의 아버지. 그래서 오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보고 뭡니까? 랍비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무시해서가 아니라 자기 딴에는 그 시대에서 성의를 다 표현하신거에요. 그런데 그들이 말한 그 해석, 그 해석으로 무장된 막달라 마리아가 그들의 인식으로 무장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지지 못한다고 거부당했다는 이 말은 앞으로 네가 잘해라는 뜻은 아니에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앞으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 그런 뜻은 없어요. 선악체제와 다른 식으로 해석이 되어야 된다는 거에요. 해석을 할 때 성경말씀을 해석을 할 때 인간이 악마가 주는 선악 가지고는 해석이 이게 안된다 이게 해석을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해석은 아까 첫째시간에 그 해석은 어디서 나왔다고 했습니까?


기존에 있는 내 몸에서 내 몸을 긍정할 때 나온 거에요. 내 몸을 나는 나쁜 것도 있지만 선한 것도 내 안에 있을 수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거에요. 그걸 제가 주일 낮설교 때 그걸 가지고 보조발전기라고 했는데. 간 보다가 여차하면 딴걸 또 시도하는 거에요. 선택과 판단은 어디까지나 누구한테 있다? 나한테 있으니까 그게 랍비였어요. 랍비. 그게 바로 성령 오기 전에 제자들이 그런 식으로 간을 본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들의 해석 +예수님의 해석을 추가해서 결합이 됩니까? 안 됩니까? 결합이 안 되지요. 몸과 몸이 결합이 안 되는 거에요. 옷을 만졌는데 12년 동안 즉시로 나았다는 말은 장차 오실 예수님께서 마무리 지을 상태에서 주어진 믿음을 몇십년 혈루병 여인이 그걸 주님의 뜻에 의해서 잠시 보인거에요.


그러면 12년동안 혈루병 걸렸다는 말은 여자가 얼추 괜찮다는 몸입니까? 망가져도 아주 된통 망가진거에요. 엄청나게 망가진거죠. 자기 힘으로 회복이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불가능하죠. 그럼 우리 몸에다가 아예 몸에다가 매직으로 써야 돼요. 불가능한 몸. 불가능한 몸. 어디에 불가능한? 천국가기에 불가능한 몸. 구원 받기에 불가능한 몸. 해석하기에 불가능한 몸이 돼야 돼요. 이건 자기 악마성을 노골적으로 그냥 보여준거에요.


내가 내 힘으로 악마의 힘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는 이런 가련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라고 이걸 보여주는데 누구한테 보여주느냐가 중요합니다. 바로 주님과의 관계에서 주님 앞에서 그걸 보여줘야 된다는 거에요. 남들 앞에서 같은 인간끼리 보여줘봐야 그것도 자랑이고 주님 앞에서 보여줘야 되는데 아직 그 몸을 보일 때가 안 된거에요. “만지지 말라.”


왜냐하면 지금 주님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자기 일이 마무리 되지를 않는거에요. 그러면 주님의 일이 마무리 된다는 것은 오늘 본문에 의하면 어떻게 무슨 요소가 추가될 때 마무리 된다고 했습니까? 어떤 요소가 될 때? 아버지께로 올라가야 이게 마무리가 되는 겁니다. 아버지께로 올라가야 돼요. 그런데 아버지께로 올라간다는 말은 이게 무슨 뜻을 갖고 있는지를 생각해봅시다.


먼저 여러분들께 질문을 한번 던져 볼께요. 질문이 이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사회 구성원입니까? 아니면 인간입니까? 여러분들이 사회 구성원 입니까? 인간입니까? 이게 말 안 되는 질문이 아니라 말 되는 질문이에요. 직장 가게 되면 여러분 사회 구성원이죠. 그리고 가정도 사회구성원이에요. 가정이라는게 혼자 있는게 아니고 식구들 있으니까.


가정이 중요합니까? 여러분 자신이 더 중요합니까? 라는 질문이에요. 어떤 연극이 있는데 여자가 50에 바다를 보았다라는 그런 연극이 있어요. 나이 50때 까지 외부에 주변에서 가정주부에게 요구하는 것을 열심히 다 준수해서 지켰어요. 그래서 흔히 가정주부는 이러해야 된다는게 뭐냐 하면 남편이 따박따박 월급주면 그거 가지고 살림 알뜰하게 살아서 자식한테 교육 잘 시키고 자식들 다 장가보내고 시집보내면 그게 주부로서 최고 주부다. 주부 자기일 다 했다라고 전통적으로 사회에서 그걸 요구하지요.


그러면 가정주부지만 뭡니까 사회 구성원이 되는거에요. 왜냐하면 사회 눈치를 봐야 되니까. 그런데 그 연극의 주제가 뭐냐 하면 그렇게 아들 장가 취직 보냈어요. 그런데 자기 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골병들어 망가졌어요. 그럼 나는 뭐냐? 나는. 나는 뭐냐? 지금껏 나는 누구의 엄마였고 누구의 아내였고 누구가 지켜본 주부였지 누구 빼버리고 내가 질문하는 나는 누구냐? 내가 질문하는 나는 누구냐? 도대체 나는 그동안 나를 위해서 살아본 적이 있느냐 라는 질문을 하는거에요.


자기 성찰, 자기 질문을 해보는 겁니다. 여성해방 연극이죠 여성해방. 여성해방 운동. 너를 잃고 남 좋은들 약간의 환갑됐다고 유럽여행 보내주고 그런거 있지만 그것조차도 여행가는 것 조차도 이제는 어머니 이제 효도 받으소서. 아니 효도 받는 것도 거절할 자격도 없어요. 효도 여행가고 크루즈 여행가는거야 뭐 시키는 대로 해주면 수고했다 이러면 되는데 나중에 자기가 몸이 아파 죽고 싶은데 호수 이거 뽑고 싶은데 강제로 효도시험대상이 되어 가지고 안락사 되지도 못하고 이거는 자식들 우사 안 시키기 위해서 끝까지 자식을 위해서 충성한다고 자기는 암이 주는 고통 암세포가 주는 고통을 다 감내해야 돼요.


이 무슨 평생을 살아도 내 인생은 10초도 안돼요. 10초도 안 되는 거에요 도대체. 왜 살았어요? 누구를 위해서 종은 울리나라는 것처럼 나는 누구를 위해 존재했는데. 젊을 때는 왜 이런 질문조차 허락이 안 되느냐 하는 그 이야기죠. 사회구성원인가 인간이냐 할 때에 사회구성원 맞습니다. 하지만 잠복되어 있는게 있어요.


뭐냐 하면 인간은 자기가 인간이고자 하는 그 생각은 절대로 소멸하지 않습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뭐냐 하면 이런 뜻이에요. “너희들은 내 아버지를 모른다. 제자들아 세상 사람들아 너희는 내 아버지를 모른다.” 내 아버지를 모른다는 말은 너 자신부터 해가지고 나에서부터 세상에 대해서 네 안에 누가 있는지도 괴물이 있는지도 악마가 있는지도 전혀 너는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거에요.


그래서 주께서 일을 하려면 조건이 먼저 바탕을 깔아놔야 돼요. 택지조성하는 것처럼 깔아놔야 돼요. 너는 아무것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게 항상 이런 결과가 도출돼야 돼요. 쉽게 가겠습니다. ‘나는 너를 건졌으니까 옛 너는 없어졌다’가 아니라 그거는 구원론이에요. 그건 구원론이기 때문에 그것은 주의 뜻이 아니고 ‘너는 이런 인간이었어’가 생생하게 본격화돼야 돼요.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돼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줄도 모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나는 악마한테 농락당한거 외에는 할 줄 아는 재주가 없다. 마귀한테 농락당해서 나는 신도 아닌게 신인 양 행세한 거 그게 외에는 다른 기술이 없다라는 것을 즐겨 ‘꺄르륵’ 거리면서 그걸 즐겨 그 대목을 우리가 기쁘게 감사한 마음으로 이제 눈을 뜬 상태에서 내가 이 정도였어 눈뜬 상태에서 그걸 가볍게 그걸 받아들이면 되는 거에요 그게.


구원받았으니까 과거는 잊자 이렇게 나오면 안돼요. 그거는 자기 챙길 것 챙기겠다는 노림수 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 몸을 무슨 몸이라고 하느냐 하면 그 몸을 주의 몸이라고 해요. 그 몸을. 자, 그러면 여기서 약간 난해합니다. 지금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만날 때는 아까 제가 그 공식을 한번 적용시켜 보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에 대해서 압니까? 모릅니까? 모르지요. 모르니까 예수님 잡힐 때 도망치고 내빼고 한거에요. 부활도 안 믿고 시체 찾으러 온거에요. 아무도 몰랐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뭐냐 하면 그리스도의 아직도 몸이라는 것을 안 받아들여요. 왜냐하면 옛날 살던 행세가 뭐냐 하면 몸은 실체이기 때문에 물리적 조건 있잖아요. 몸이라는 물리적 조건, 키 얼마고 몸무게 그 범주 내에 안에서만 이게 몸이 돼요.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은 에베소서에 보면 그리스도의 몸은 확장이 되거든요. 물리적 조건을 넘어서서 이게 확산이 된다고요. 그걸 성령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자체가 성령에 의해서 확대가 돼요. 확산이 된다고요. 아 어렵지요?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제가 설명하는 것도 참 설명하기도 참 어려워요.


제가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여러분의 허리도 인내가 다 되고 엉치뼈도 인내가 다 된지 알겠지만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21절부터 보면 20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되어 있지요.


여기 모든 나온 단어가 뭐냐 하면 물리적 개념이고 벽돌 개념이고 부동산 개념이고 건물 개념이에요. 단어가. 그렇지요? 그런데 우리가 아는 물리적 개념가지고 아무리 짜맞추려고 해도 그게 어디 있는데요? 그게 어디 있습니까? 라는 질문밖에 없어요. 하나의 예를 들께요. 여러분 십자가 마을이 교회가 실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실체. 마치 벽돌같은 실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십자가 마을. 교회. 십자가 마을 교회.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실체가 없잖아요. 그냥 온라인 상태의 그저 모임이잖아요 모임. 그런데 실제로 있어요. 안산에 가면. 십자가 마을 있어요. 나라장로교회라고. 내가 그 교회에서 안산에서 한 몇 년간 제가 강의했지요. 그 교회입니다. 그러면 십자가 마을이 그곳에 가면 되네. 그럼 그게 전부에요? 아니지요. 우리의 몸을 가지고 구원을 받고자 하니까 우리는 뭐냐 하면 내 몸의 실재성 그게 내 몸을 그렇게 해석하는 그것을 포기를 안 하고 내가 내 몸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런 주님 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우리가 지울 길이 없지요.


오늘 이 본문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의 몸을 자기 몸하고 똑같이 본거에요. 주의 몸을. 내 몸 내가 관리하듯이 여기에 주의 몸 있으니까 내가 손으로 같은 몸이니까 같은 근육 단백질로 되어 있으니까 만지면 만질 수 있다고 여긴 겁니다. 내가 사랑한 사랑 가지고 다가서게 되면 그 사랑에 주님이 응답하고 같이 하나가 될 줄 알았던 거에요. 다가서는 사랑은 안돼요.


왜냐하면 그 사랑의 의미가 내 몸 챙기겠다는 그 의도를 담뿍 안고 가거든요. 위반의 요소가 계속 유지된 상태로 가는 거에요. 그러면 주님 쪽에서 십자가 진 이유가 뭐냐 하면 만지지 말라고 십자가 진거에요. 왜냐하면 너는 시체거든요. 주님이 우리 몸과 똑같은 몸을 가지고 이 땅에 왔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보다 먼저 선점해서 죽으신 분이에요. 죽게 되면 죽은 자를 뭐라고 합니까? 시신이죠.


시신을 만져버리면 뭐가 됩니까? 레위기에 보면 부정 타지요. 레위기 22장 8절. 이러다가 또 천식 안 걸리나 몰라. “시체나 찢겨 죽은 짐승을 먹음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말라.” 죽음의 인간의 몸에다가 율법입니다. 레위기 22장. 인간의 율법에다가 주께서 언약을 포함시켰으면 살아있는 몸이에요. 안에 언약이 들어 있으니까. 언약이 살아있는 몸인데 언약이 살아있는 언약의 취지가 언약의 어떤 취지냐 하면은 내가 언약에 함께 했으면 이게 죽음의 세계와 나는 결별이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죽음과 접촉하지 말라.


접촉하게 되면 ‘거룩’이라고 하는 것이 ‘분리’를 의미하잖아요. 분리됨이 희석되어져 버려 의미가. 언약 때문에 따로따로인데 언약의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언약없는 것과 접속을 하고 관계를 한다는 것은 이것은 언약 자체에 대한 모독으로 보겠다라는 것이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취지입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성경 구절 고린도후서에 나오는데 여러분 들으면 아 그 이야기하고 대번에 아실 거에요.


고린도후서 6장 읽어보게 되면 6장 14절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되어있지요? 또 몸의 확대잖아요 ‘몸의 확대’.


이게 어렵다 이 말입니다. 보통 어려운게 아니에요. 십자가 마을 안산에 있잖아 이러면 해석이 안돼요. 안산에 십자가 마을 교회 있다는 말은 지금 우리의 그 사고방식 해석 자체가 문제가 있는거에요. 교회는 두 개가 정답이에요. 교회는 없다도 정답이고 있다도 정답이에요. 없다도 정답이고 있다도 정답입니다.


루터가 고민한게 그거에요. 마틴 루터가 고민한게 인간은 죄인이다. 인간은 의인이다. 둘다 정답인데 이거를 본인이 그걸 설명할 길이 없네. 설명을 못했어요. 할 수가 없어요. 알려드릴까요? 알고 싶어요? 그거 설명 어떻게 하는지? 내가 죽으면 교회가 있고 내가 살아있으면 교회가 없어요. 내가 죽으면 의인이 되고 내가 살아있는 한 우리는 의인이 아닙니다. 이게 정답이에요. 나 여기에 목숨 건다. 목숨 걸어요.


그리스도 안에 십자가 죽으면 우리 의인이지만 산 채로 십자가를 보려고 하면 우리는 그것은 나의 의가 아니고 나의 악마적 의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나를 계속 살려고 하는 살고자 하는 그러한 악마적 욕구를 증강하는 것 밖에 안 되니까. 그러면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네가 아는 몸이 아니다 라는 것을 막달라 마리아는 알 리가 없지요. 그냥 스톱! 스톱시켜라. 스톱시키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셔야 돼요. 올라가셔야 돼요.


올라가지 않으면 예수님한테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왜 권한이 없느냐 하면 율법의 완성이 시편 110편에 이루어져야 되거든요. 시편 110편에 뭐냐 하면 원수를 깔끔하게 게임오버 처리했다는 처리했을 때에서는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되는데 그 결과가 무슨 결과냐 하면 하나님 우편에 앉는 결과예요.


하나님의 우편의 자리는 제가 어느 낮설교 때 잠깐 언급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이거 설명하면 설교 시간 다 지나가기 때문에 잠깐 언급했어요. 하나님 우편의 자리는 존재의 자리가 아니고 기능의 자리라고 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세요. 존재가 아니고 기능의 자리에요. 주님 어디계시냐고 물을 자리가 아니고 주께서 거기서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을 자리라고 어떤 일을 하십니까.


왜 존재를 물어서는 안되느냐 하면 우리 주님의 기능에 우리가 도달하게 되면 우리의 존재가 존재라고 할 자격이 없는 죽은 존재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래요. 죽은 놈이 입 다물어 이 말입니다. 그 입 다물라 하잖아요 그 입 다물라. 주면 주는 대로 받아먹지 왜 말이 많아? 그게 광야의 생활입니다. 떡 달라 뭐 떡이 먹고 싶어요. 고기 먹고 싶어요. 그 입 다물라. 메추라기 주면 고기인줄 알고 만나 주면 떡인 줄 알고. 어디서 짜장면 시키신 분 그걸 왜 찾아요. 짜장면을 왜 찾고 짜파게티를 왜 찾습니까? 짬뽕을 왜 찾아요.


내 몸이 좋아하는걸 왜 찾습니까? 기도할 때 내 몸이 좋아하는걸 왜 찾아요. 이번 주일학교 녹취 올린거 강원도 목사님 어디 놀러갔는가 녹취 안 올라왔는데 주일학교 것까지 녹취하려니 얼마나 부담되는지 모르겠어요. 주일학교 설교내용이 뭐냐 하면 이방인 기도는 내가 아쉬울 때 결핍될 때 내가 요구하는 거고 주기도문은 뭐냐 하면 아버지 입장에서 ‘너희들은 이쪽 길로 가야 돼’ 주님의 길로 가야 될 내용이 주기도문 내용이에요.


주기도문 내용을 한다는 것은 주께서 나에게 주의 길을 가도록 주께서 매일같이 조치하십니다를 고백하는거에요. 그 주기도문에. 그 안에 뭐가 나옵니까? 일용할 양식 있잖아요. 하루살이 밖에 안 된다는거에요. 이틀치는 욕심이라는 겁니다. 내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모자라고 그거는 네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고 내가 알아서 할 문제다 이 말입니다. 이방인들은 맨날 뭐합니까? 주세요 주세요.


네가 율법을 다 알아? 네가 출제문제 다 알아? 하나님이 의를 어떻게 쟁취하고 악마의 굴레에서 어떤 수로 빠져야 빠져나오는지 네가 그 길을 아냐 이 말입니다. 욥도 몰랐는데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모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요. 몇 개 안다 하지 마세요. 몇 개 모르는 것은 전혀 모르는거에요. 99점이 안 통합니다 그게. 하늘나라. 완전한 100점이 아니면 거룩하지 않아요. 어설프게 성화는 없어요 거기에.


완전한 거룩인데 거룩은 얻어지는 것이지 쟁취하는게 아닙니다. 히브리서 10장 나오지요. 거룩함을 어떻게 합니까? 얻었노라. 그걸 제가 낮에 선물이라고 했어요 선물. ‘꺄르륵’하는 선물. 선물로 받는거에요 선물로. 저한테 이런 선물을. 주니까 받아라 너는. 저한테 이런 선물 하지마세요. 사람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있어요. 그것은 남 앞에서 면전에서 미안하다는 소리하는 것. 그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당신 음주운전해가지고 저 집안 거덜났잖아요. 미안하다 해. 나는 벌은 받겠지만 사과할 의사는 없다. 그게 인간이라니까요. 그게 위반의 요소인데 그 음주운전한 그 사람만 그럴까요? 아니면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남한테 사과한다는 것 그게 주기도문에 나오거든요. 사과한다는 것은 성령이 임해야 해요. 그 대목에만 미안하다는 것은 사과 아닙니다. 그 대목에만 미안하다는 것은 사과 아니에요.


아버지의 연금을 다 뜯어먹었다 미안합니다 아버지. 그건 사과 아니에요. 사과는 이렇게 하는 거에요. 아버지 저 죄인이에요. 아버지 앞에 아니라 주님 앞에 십자가 앞에 죄인인데 내가 딱 보니까 아버지도 만만치 않네요. 이게 바로 진정한 아버지를 향한 사과입니다. 다 갚았어요. 말 한마디에. 말 한마디에 돈 날린거 다 갚았다니까요. 참 쉽죠 잉? ‘ㅇ’ 붙어요. ‘ㅇ’ 붙습니다 ‘ㅇ’ 떼면 안돼요. 주님한테 애교 부릴 수밖에 없어요. 뿌잉뿌잉 할 수밖에 없어요. ‘ㅇ’ 들어 갑니다. 주님 앞에 사과를 한다는 것은 성령이 임해야 돼요.


그 기능이 뭐냐 하면 다 이루었기 때문에 여기 보면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다 이루었기 때문에 그런 사과가 아주 웃음, 감사로 나오는 거에요. 오늘 본문 봅시다. 오늘 본문 20장에 보게 되면 아버지께로 가는데 그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로 끝났습니까? 어떻게 됩니까? 그게 나의 아버지 끝이에요 아니에요? 너의 아버지죠.


다시 말해서 에베소서 2장 7절인가? 하늘에 앉혔잖아요. 우리는 뭐 예수님 잘나서 예수님 혼자 앉았는지 알았지요? 아니지요. 너희들도 같이 하늘에 앉아있다는 말은 그거 안 믿으면 그거 예수 안 믿는 겁니다. 예수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세요. 지금까지 예수 버리세요. 예수님 계시는 하나님 우편에 누구도 함께 있다? 예수님만 달랑 계시는게 아니라 누구도 함께 있다? 나의 아버지 곧 누구의 아버지? 너의 아버지.


우리 성도들도 함께 앉아있는 거에요. 성도도. 그럼 내 존재가 앉아있습니까? 하는데 그 우편은 존재를 말하는게 아니고 기능을 의미하는 거에요. 그럼 우리 존재는 어디 있습니까? 지금 죽어가고 있지요. 우리 존재는 죽어가고 있잖아요. 이리 보아도 죽어가고 저리 보아도 죽어가는 거에요. 그러나 죽어가는 모습인데 주님 보시기에는 이리 봐도 내 사랑 저리 봐도 내 사랑이에요.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저리 가거라 뒷태를 보자. 아장아장 걷는거 모든게 행동이 똑바로가 아니라 모든게 사랑이 덧입혀지니까 이리 걸어도 저리 걸어도 전부다 사랑 사랑 사랑 전부다 사랑이에요. 찬송가 들어가야 돼 춘향가 사랑가가. 찬송가 415장 들어가야 돼. 전부다 사랑이에요. 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사랑이래. 그냥 사랑이래. 나도 몰라 그냥 사랑이라고 불러준답니다. 김사랑 최사랑 박사랑 그냥 사랑이라고 불러준대요. 기뻐하심을 입었대. 우리는 무슨 영문도 몰라 왜 그런지.


참 이거 황당하다 할까요. 남자를 몰라요. 아직 남자와 동침을 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배가 불러옵니다. 이거는 황당 곱하기 황당 제곱이에요.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의리가 있어가지고 입 다물고 그냥 조용히 결별선언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이런 일은 없기 때문에. 여자가 처녀가 임신했다고 하는 것은 누구야? 어떤 남자야? 뭐 이렇게 나올건데 그 말하지 않아요. 굉장히 신사다워요. 신사다우면 천당갑니까? 신사다운 지옥가지요. 신사다운데 지옥가요.


천사가 찾아오지요. 그리고 천사가 마리아한테 이야기 합니다. 일방적이다. 주님의 일방적인 조치 네가 받아들여라. 받아들여라.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마가의 다락방같이 여기 좁지만 어떤 사람이 이 난처한 지경을 보고 쫓겨난 난민들 마치 그 저 시리아에서 이태리 바닷가에 몰래 숨어들어가는 그런 난파선 배 밑에 앉아있는 처지를 보고 몇 푼 15억도 안되지만 이거 해가지고 강남에 가게 얻어라 할 때에 우리가 기뻐해야 됩니까? 황당해야 됩니까? 예가 너무 터무니 없나. 황당해야 됩니까?


주여 우리를 죽이시지 않으시고 왜 이렇게 우리를 살려주십니까? 정말 이렇게 또 고생시킬겁니까 미세먼지 속에서. 이렇게 나올까요? 아니면 할렐루야 나올거에요. 그 자체가 황당해야돼요. 왜 내가 예측도 못하고 왜 내가 예상도 못한 일을 왜 하십니까? 예측 못하고 예상 못한 것을 세자로 ‘선지자’에요. 그게 선지자에요. 자기 뜻이 안돼요. 마지막 때에 그렇게 선지자가 폭발적으로 많을 줄 유대인 사회는 상상도 못했을거에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가 바로 ‘성도’입니다. 풍선에다가 바람 넣어놓고 입구를 꼭꼭 싸맸지요. 고무줄을 확 풀어버렸어요. 샴페인 터트리듯이 뚜껑을 막 흔들어 해놓고 억지로 참고 있다가 뚜껑을 딱 열면 폭발하지요. 기능이 우리 성도 후진 우리 몸과 우리의 사고방식과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를 통해서 성령이 그 주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폭발하듯이 터져나와버려요.


그걸 제가 오후설교때 하교길에 애들 교문 앞에 나올 때 초등학교 애들 한꺼번에 터져나오듯이 물론 학원 차들이 쫙 대 있지만 태권도 이런거 있지만 터져 확 쏟아지듯이 이 복음이야기를 누가 막습니까. 누가 했어요? 누구라는 존재를 이야기할 때는 꼭 주님 이름이 나가요. 우리는 우리 몸이 아니고 누구 몸이다? 주의 몸이에요. 주님에게 합세된 통합이 이미 성사된 몸이에요. 내 몸이 내 몸이 아닙니다.


몸이 아파도 천식 걸려도 어쨌든간에 일주일에 한번씩 서울대학 병원 가든지 말든지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니까요. 주께서 그렇게 기능적으로 쓰시는 거에요. 어디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편에서 ‘꺄르륵’ 거리면서. 네가 그거해도 구원받네? 그런 질문 잘못된 질문이에요. 구원을 받고자함이 아닙니다. 구원파 구원론 그거 다 잘못된거에요. 구원파만 구원론 잘못되었습니까? 한국교회 전체 다 잘못되었어요. 13만명 다 잘못되었어요. 전부다 구원론이에요 전부다. 왜? 고객이 원하니까.


옛날 절에 가서 아이고 우리 가정 올해 그냥 행복하고 사업 잘 되고 아이 건강하고 공부 잘 하겠습니까. 그럼 부채도사가 한번 보자 아이고 이렇게 넘어지는구나. 부채도사 개그가 이게 언제적 개그인지 모르겠습니다. 보자~~ 이렇게 하듯이 내가 나중에 천당 가겠습니까 지옥 가겠습니까? 보자~~~믿음은 성령으로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는다 이렇게 나오네. 점괘가. 점괘가. 광주에 차가 쌩쌩 받아버리는 것도 모르고 그냥 멀쩡한 몸 가지고 믿으면 되는 줄 알고 있어요.


그게 내 소유 믿음 소유하고 천당 소유하면 되는 줄 알고 있어요. 몸 자체가 박살나야 되는데 율법에 의해서. 유대인들이 뭐라고 가르치는 줄 알아요? 랍비들이. 구원은 믿음으로 복은 행함으로. 그게 바리새인입니다. 서기관들이고. 인간 아이디어 같이 악마입은 동기생끼리 그 아이디어가 그 아이디어에요. 모든 종교적 아이디어는 전부다 그런겁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기도와 행함으로 찬송 돌린다. 하나님의 의의 일꾼 13만명의 목사들 지금도 외치고 있어요. 그 마귀 복음을 외치고 있어요. 존재를 따지고 오면 안돼요. 존재는 반드시 교회를 이용하게 됩니다. 내가 살아온 것이 주의 은혜인줄을 알아야 돼요. 지금까지 내가. 왜 은혜냐 하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모르냐 하면 내가 꼭 천국 가야 돼 못가야 돼? 그것도 관심이 없어.


정말 남들처럼 그렇게 사회 구성원으로 살면 되지. 그게 내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간다움이니까. 아까 제가 이야기했지요. 구성원입니까? 인간입니까? 실컷 성경공부 하다가 갑자기 제가 질문이 뭡니까? 사회 구성원입니까? 인간입니까? 제가 물었잖아요. 성경 안의 이야기 하다가 성경 바깥의 이야기하니까 여러분 전혀 낯설지 않지요? 굉장히 친숙하지요? 그걸 가지고 뭐냐? 그걸 가지고 ‘친숙한 이방인’이라고 해요. 우리 자아를.


자아는 친숙한 이방인이에요. 성경적으로 보면. 이게 남인데. 그것도 내놓은 자식이거든요. 십자가에 죽었다는 말이 뭐냐 하면 거들떠보지 말라는 뜻이에요. 자꾸 내 것이라고 자꾸 회수하지 마세요. 집에 동네에 있는 치매 걸린 할머니가 동네에 있는 빈 병 해가지고 매직가지고 이 병은 내 것 쓰면 그거 완전 치매현상 아닙니까. 그렇지요?


버려도 우리는 이미 소유주가 누굽니까? 내 소유가 아니고 낯선 이방인 소유가 아니고 친숙한 이방인 소유가 아니고 누구 겁니까? 주님의 것이잖아요. 주님의 것이니까 주님의 것에 주의 말씀대로 채울까요? 아니지요. 주님의 것이라는 자체가 주님의 기능이 있으니까 사나 죽으나 앞으로 내일 어떻게 될지는 그거는 내일 미세먼지 있고 없고 그거는 기상대의 역할이 아니고 주께서 얼마나 미세먼지를 많이 깔아놓느냐 그 역할이에요.


내일 노후 화물차 다 탔다 이제. 미세먼지 체감법을 가동시킨다고 하니까 체감하는 법을 가동시킨다고 하니까. 그러면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는데 나라는 존재는 편입되어 있어요. 그런 몸이 있잖아요. 그리스도의 몸이죠. 몸인데 저 몸하고는 다릅니까? 몸에 실체가 확대됐다니까요. 이게 집단적 의식인데 아까 예를 든게 있어요.


십자가 마을이 교회가 몇 개입니까? 질문이 잘못된 거에요. 존재를 십자가 마을은 기능이기 때문에 존재를 물으면 안돼요. 이스라엘 전체가 뭐냐? 하나님의 아들이에요. 이스라엘이 몇 개입니까 물으면 안 된다니까요. 교회는 하나에요. 몸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에베소서 4장에 나오지요. 세상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라고 했지요. 하나되려고 애쓰면 안돼요. 그거는 네존재 내 존재가 억지로 끼워 맞추는 거에요. 그러면 흉내내는 것밖에 안돼요 흉내. 저 사람 선배 따라가면 그 선배하고 같이 되는거 아니잖아요.


이미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그 기능이 있는데 그 기능이 뭐냐 우리로 하여금 개뿔도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고 그 모르는 상태로 계속 가야 돼요. 모르는 상태 또 다른 말로 하면 죄인 중에 괴수. 죄인보다 더 무서운 말이 아무것도 모르는 거에요. 죄인들 같으면 자기 양심의 가책이라도 있지. 그러나 실제로 나중에 여러분들이 배고파보세요. 배고픈 것도 전부다 남 탓이고 나는 잘났는데 사위가 아파서 나 배 곪고 있다고 남 탓해요.


마지막에 믿는 것은 자기 존재뿐입니다. 자기의 의로움뿐이에요. 절박감이라고 하잖아요. 사회적 절박감. 자기 있는 보조 발전소. 세상 깜깜한데 자기는 밝다는 것. 이런 것 주장하잖아요. 십자가 뻘겋게 해놓고. 스마트 폰에 그림 있는 것처럼. 인간은 자기 긍정은 이건 위반의 요소입니다. 그걸 없다고 하지 말고 주께서 기능적으로 사용하시는 거에요.


네가 하는 행세에 대해서 밥 먹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내가 밥을 먹을 때 감사하는 겁니다. 잘해서 밥 한끼 얻어 먹는게 아니고 그냥 이쁘다고 그냥 주시는 거에요. 이쁘다고. 왜 이쁜지는 모르겠어요. 그거는 주님 마음을 우리가 거기다 시비 걸 이유는 없잖아요. 예배처소 하라고 15억 줬는데 이제 와서 이거 가져가세요. 미쳤어요. 왜 가져가세요 그게 얼마나 좋은건데. 주신거 받으면 되는 거에요.


오늘 결론은 그겁니다. 주거든 뭐하라? 그냥 받으면 안돼요 넙죽. 이름 바꿔야 되겠다. 김넙죽 최넙죽 박넙죽 허넙죽. 우리는 평소에 넙죽 안 받아도 한평생 넙죽 받은 인생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할거 밖에 없어요. 모든게 진작에 죽어야 되는데 그리스도의 몸이 되가지고 죽지도 않아. 내 몸 같으면 자살하면 되는데 이건 자살하는 것도 이게 지시가 와야하는데 주님이 자살하라는 지시를 내리겠어요?


치매 걸려서 아무거나 먹다보니까 죽은거 말고 의도적으로. 자살할 때는 뭐냐 하면 자기가 강렬해서 그래요. 주님 내가 평생을 주님 살라고 했는데 제 능력이 이것밖에 안되네요. 평생에 자기 사랑가지고 다가가는 사랑을 했기 때문에 나중에 주님 복음에 돌아섭니다. 십자가 마을에 한 트럭 넘을걸? 돌아선 사람이. “예수님을 위해서 죽읍시다” 거기까지 동의해요. 그러나 “예수 믿고 죽는 것도 죄다” 거기에 다 돌아섭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다 갔어요. “끝인가보오.” 그런 노래 있지요? 편지라는 노래.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끝인거에요.


오늘 정리하겠습니다. 만지지 말라 할 때에 경계선을 주목하셔야 됩니다. 경계선. 막달라 마리아가 만지지 말라고 해서 안 만졌으면 막달라 마리아는 지옥갑니다. 시키는 대로 해도 지옥가요. 만지지 말라고 하는 것은 네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천당 갈 나라가 아니다. 왜냐하면 악마를 이긴 최후의 승자는 오직 우리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 주님의 육체가 확대되지 아니했으면 우리는 주님만 천당 가고 우리는 아무도 못갑니다.


성령을 통해서 막 쏟아지는 거에요. 그 육체 안에는 이스라엘이 들어 있어요. 예수님이자 곧 이스라엘이에요. 요한복음 1장 마지막처럼 내 인자위에 오르락 내리락 야곱처럼. 예수님 자체가 이스라엘인데 다수를 의미합니다. 다수가 하나로 대표이름으로 움직이는게 이스라엘이거든요. 여러 가지 움직이지만 지체로 움직이고 우리는 문어발처럼 움직이고 그러나 그 몸통은 그리스도 몸 하나 밖에 없어요. 몸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그때 존재로서 그걸 파악하려고 하면 이건 우리의 한계를 넘어 섭니다. 기능적으로 하되 몸에 속했다 안 속했다 어떻게 속하지 아느냐. 나는 nothing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에요. 왜? 10년 20년을 복음 전해도 지금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께서 담아주지 아니하면 주께서 해석하지 않으면 우리는 내 자아를 또 재편합니다. 이정도면 하면 괜찮은 자아상이잖아. 또 제3의 제5의 제 n의 자아상의 매일같이 형성하고 있을거에요.


주께서 어제 준 은혜 말고 오늘 준 은혜 가지고 바늘로 그 풍선을 팍 터뜨려 버려야죠. 어제 준 은혜 말고 일용할 양식이니까. 또 내일 되면 내일 또 주신 은혜가 있을 거에요. 그 은혜가 뭐냐 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이처럼 날마다 챙겨주는 것은 내 이름이 아니라 내 구원이 아니고 이미 구원받았음을 누구 덕분에?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와 함께 하늘에 앉혔다는 그것을 증거하라고 우리를 충실하게 사용해주시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18절 봅시다. 내 아버지께로 올라간다고 할 때에 이 이야기가 이게 예수님만의 이야기일까요 우리의 이야기일까요? 이 이야기가 예수님만의 이야기가 되고 동시에 성령을 통해서 이제는 나의 이야기가 곧 누구의 이야기다? ‘너의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제가 그 이스라엘 설교 시간에 그런 이야기했지만 지금 그 이야기하면서도 감격스러워요.


예수님 죽으신 시체를 뉘었던 그 바위, 반질반질한 그 바위 사람들이 흑흑거리고 울고 대부분 사람들 그 앞에 세상 사람들은 거기에 키스를 해요. 이 말은 십자가 우리 죄를 다 지시고 시신을 눕혔다는 그 모습을 볼 때에 이걸 빼놓고 인생을 산다는 것은 도대체 인생을 헛산 거에요. 그 현장에 갔던 저. 그동안 이 땅에 태어나서 1900 분명한 날짜를 이야기 안 하겠습니다. 물론 생일이 6월달이라는것도 제가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태어나서 뭘 볼라고 했습니까? 무엇이 종을 평안히 놓아줘서 쉬는 거에요? 시므온이. 아기예수 안았지요. 그것이 성령이 임하지 않았습니까. 오직 나를, 구원을 보고 기뻐하는게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실 일에 뿅간 거 그게 그리스도와 한 몸이라는 증거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일방적으로 해대시던 그 일, 우리는 이제 받기만 했을 뿐입니다. 나는 이제 소유했다가 아니라 은혜 받으면 받을수록 내가 죄인이며 아무것도 할게 없음을 더욱더 감사한 마음으로 고백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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