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HOME > 게시판 > 자유게시판
2019-12-02 23:54:41 조회 : 30         
강남-요한복음 총정리(6)-요한복음 15장 (피하지말라)191119b-이근호 목사 이름 : 홍민희(IP:59.12.122.247)
강남-요한복음 총정리(6)-요한복음 15장 (피하지말라)191119b-이근호 목사



모세가 애굽에 내려갈 때 애굽에 가면서 애굽에서 그 아까 우리가 모세 이야기 창세기 4장에 했지요? 아니 출애굽기 4장에 했지요? 그렇죠? 4장에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는데 그 4장에 초반에 보게 되면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기적을 이런 기적을 할 것이다 했지요.


그게 주께서 기적을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기적을 감춰버려요. 감춰버리죠. 기적이라고 하면 나는 멀쩡하고 저쪽에서 내 능력이 마징가제트 하면서 내 능력으로 무너진다. 나는 멀쩡하고 했는데 그게 기적인데 진짜 기적은 따로 숨겨놨어요. 너를 쪼갤 것이다.


네 안에다가 나의 새로움으로 집어넣게 되면 모세 네가 그 이스라엘을 만드는게 아니고 하나님이 모세를 가지고 하나님이 모세 안에서 기적을 베풀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는 그것이 장차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원칙을 미리 보여준거에요.


우리 안에 성령이 오지 아니하면 요한복음 14장처럼 우리 안에 성령이 오지 아니하면 우리는 내가 스스로 나 구원받으려고 온갖 고상해보이고 경건해 보이는 그런 발악같은 짓들을 다 하게 돼요.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올 때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님의 고통이 우리한테 와요. 주님의 고통이. 주님께서는 일부러 악마를 더 쓰시고 가룟 유다 통해서 일부러 세상을 통해서 자기 고통을 만들어요. 만드십니다. 아까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스스로 고난을 유발한다고 했지요. 같은 뜻이에요.


자기 고통을 스스로 이렇게 만들어버립니다. 만들어버린다는 말은 그 고통, 만들어진 그 고통이 우리 안에 들어와 버리면 나는 내 자리다가 이게 아니고 나는 주님의 머무는 주님의 자리가 되어버려요. 주님 자리, 그게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성령의 임함입니다.


우리는 껍데기를 빌려줄 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안에 뭐가 계속 살아있느냐 하면 주님의 고통이 계속 살아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고통이 오니까 우리는 자꾸 피하고 싶지요. 그래서 피하지 말라는 거에요. 주제가. 오늘 제목도 “피하지 말라”. 주님께서 너를 통해서 이야기할 때 일할 때 네가 그걸 피하지 말라.


왜냐하면 네 구원을 지키는게 아니라 내 구원을 네가 지켜야 될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네가 진리를 지켜야 될 입장이기 때문에 피해서는 안된다는 거에요. 그러면 이렇게 고통이 오게 되면 우리는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살려주세요 하지요 그러면 고통이 뭐냐? 고통은 곧 그게 저주에요. 그게 심판이고 그게 지옥입니다. 고통이 온다는 말은.


아까 이목사님이 이야기했지만 로마서 8장에 예수님이 오실 때에 뭐로 왔습니까? 그냥 육신으로 오신게 아니고 앞에 뭐가 붙지요? 뭐가 붙습니까? 죄 있는 육신의 모습. 주님께서 일부러 인간들의 프레임, 언어적 프레임 말고 하나님 보시기에 프레임에서 죄가 먼저라는 것을 주님을 통해서 보여주셨고 성령을 통해서 이제는 그 죄라는 것을 거기에다가 우리에다가 집어넣는 거에요.


그러면 고통이 오고 이렇게 아픔이 올 때는 살려주세요가 나오겠지요. 살려주세요가 이게 뭐냐 하면은 이게 성도가 내뱉은 성도의 고백이에요. 이거 두자로 하면 이게 뭐가 됩니까? ‘기도’가 되겠지요. “살려주세요”.


그런데 물론 살려달라고 해가지고 평온하게 살게 해달라 이거는 아니고요. 그렇게 되면 그거는 신앙이 아니고요. 살려주세요 하는데 살려주세요 하면서 뭘 아느냐 하면 하나님이 주신 고통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 이 저주 안에 그리고 심판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 하면 천국은 바로 이 안에 들어있어요. 천국이.


살려주세요 하면서 아까 이야기 다시 해보면 살려주세요 하면서 스스로 내가 살고자하는 모든 의도는 이미 바닥났습니다. 이거는 소용없다는 것이 다 들통 났어요. 그렇다면 뭐만 쳐다보겠어요? 살려주시는 분만 쳐다보겠지요.


쉽게 하겠습니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이 천사하고 씨름할 때에 야곱이 마지막 부탁한게 뭐냐? 살려주세요 에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할 때 야곱은 뭐냐 하면은 나를 살려주시는 분은 오직 당신밖에 없습니다라는 뜻이에요.


야곱이 너무 이기주의 아닙니까. 하나님 이용하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하는데 야곱은 그런 뜻이 아니고 나를 이렇게 허무하게 만들고 나를 무능하게 만드신 분이 당신이라는 뜻이에요 그게. 그게 전제가 되어 있다고요.


멀쩡하게 살려고 누구한테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내 힘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것은 이건 내 프레임이고 나의 영역이고 나의 의미의 영역이에요. 그 의미의 영역은 항상 가치를 유발해요. 나는 이 정도로 괜찮은 존재다. 그 가치를 일순간에 박살내신 분이 누구다? 바로 당신이지 않습니까? 당신이니까 내가 이제부터는 의지할 분은 그동안 나를 의지했는데 이제는 의지할 분이 바뀌었다 누구로? 살려주세요 뽀빠이.


완전히 당신만 전적으로 의지합니다라고 바뀐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를 하면서 자기는 아까 불구자가 되었지요? 그러면 야곱이 불구자 되었다는 말은 곧 야곱 이름이 이스라엘이니까 이스라엘이 불구자 됐다는 모든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 구원받은 백성들은 전부 다 하나님이 주신 상처로 인하여 그들은 전부다 개인적으로 불구자가 되어야 되지요.


불구자라는 뜻은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스스로 무능한 자. 자기의 재주나 자기나 경건이나 그걸 재주 피울 그것으로 그걸 자기 구원에 적용시킬 그런 모든 것은 다 관계가 다 절단났고 끊어졌고 절단, 끊어진 거에요.


그 무능자가 느끼는 그 자유, 그리고 웃음. 살려주세요~이히히히. 살려주세요는 굉장히 심각한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 이 살려주세요~가 나온다는 자체가 야곱이 옛날에 했던 고백이 나한테 재생되어서 나오는 거에요. 재생되어서.


플레이 누르면 녹음기에서 살려주세요~~야곱의 고백이 나오듯이 나는 등치 큰 야곱이 되어가지고 입만 벌리면 무조건 살려주세요~히히히. 히히히. ㅋㅋㅋ. 히히히. 너무 기분좋아가지고. 내 구원받으려고 살려주세요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그 의미가 내 가치를 찢고 주님의 가치와 그 고귀함을 키워주세요. 그게 도드라지게 드러나게 하옵소서.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저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알게 하여주옵소서. 이게 바로 야곱이 느꼈던 것입니다. 따라서 야곱이 천사님 제게 축복해주시고 가세요라는 말은 뭐냐? 천사님 저 주님과 저와 관계를 잇게 하고 가세요. 관계, 통로.


주님과 나와 관계를 이어지게 하옵소서. 다른 말로 하면 천사여 주님을 위해서 사명을 부여받게 하옵소서. 이게 바로 요한복음 21장 아닙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온 성령 받으라하고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이제 내가 너희들에게 사명을 주노니.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너와 이어져 있다는 관계성을 주노니. 관계를 주노니.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너를 축복하노니.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받은 복은 상급은 뭐냐? 내가 복음 전한다는 이 자체가 복음전해서 뭘 얻는게 아니고 복음 자체가 이게 생명의 면류관이다. 이 관계가. 그게 전에는 뭘 해서 얻는데 이게 옛날 나의 프레임이고 새로운 프레임을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새로운 프레임을 한번 볼까요?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노라. 내가 삼층 셋째하늘을 올라갔는데” 셋째하늘 이야기 하니까 요새 태극기 흔드는 그 목사님 같애요. 그 사람 셋째하늘 올라가니까 문재인 박살내라는 계시를 받았데요. 완전히 옛날 프레임입니다. 세상 프레임. 주께 떨어져 나가고 남아있는 이 세상 프레임.


“이런 사람을 내가 아노니 내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모르거니와 그가 나를 끌고 나가서 그 다음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죠. 사람에게 언어라는 것을 통해서 이야기 정확하게 전달되거나 할 수 없는 말을 들은 거에요.


그러면 기존의 언어 프레임이 아니고 하늘나라만 통하는 언어 프레임 속에 자기가 놓여 있으니까 이거는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 나를 통해서 말이 나를 말을 시키는 거에요.


나는 그냥 통 파이프에 불구하고. 말씀이 성경말씀이 나의 절단난 삶을 통해서 틈을 벌어진 틈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가지고 말을 하는 거에요. 나의 삶을 통해서. 뭐라고? 나는 무능하다고. 나는 무능하다. 나의 믿음도 무능하고 나의 사랑도 소망도 다 허상이고 망상이다라는 이야기에요. 나의 신앙도 가짜다라는 이야기에요.


그러한 운명을 너는 피하지 말라. 그렇게 네가 망가지게 된 것을 피하지 말라. 이게 바로 요한복음 14장에 나온 성령을 주신 취지입니다. 자, 왜 피하지 말라 했을까? 요한복음 16장에 보면 나오지요. 16장에 보면 13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오지요.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진리가 오시면 예수님 이야기하는 겁니다. 내 뒤에 다른 보혜사 오게 되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리니 그가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지요? 뭐로 말하지 않고? 자의로 말하지 않고 누구만 이야기합니까?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니 오직 장래 일을 말하시니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말하리라”. 내 것을 가지고. 성령은 성령을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만 자꾸 내세웁니까? 성령 자신은 빠지고 예수님의 것을 지금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공동구매 원칙으로 그냥 이렇게 나눠주는 거에요.


왜냐하면 우리 집에 예수님이 살도록 그렇게 만들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내 프레임이 아니고 주님이 주신 사랑, 소망, 믿음 그것이 주님의 믿음, 주님의 소망과 주님의 사랑이 이제는 우리 집에 살게 되는 겁니다. 같이 사는 거에요.


그러면 여기서 야곱이 천사와 씨름했잖아요. 그때부터 나의 프레임과 주님의 프레임이 육신이 있는 한 평생 이제는 싸우는 겁니다. 싸우는데 이걸 싸운다는 말도 되고요 이걸 달리 표현하면 주님이 우리를 물고 뜯는다. 거머리처럼. 딱 물고 뜯어요.


목덜미를 드라큐라처럼 목덜미를 물던지 하여튼 그냥 싸우는게 아니고 이렇게 붙는게 아니고 권투 이렇게 붙는게 아니고 레슬링을 한다 레슬링을. 우리 인생에 어떤 상황이든 다 개입해가지고 우리를 쥐어뜯는 거에요. 물고 뜯는 거에요. 네 식으로 살지 말라고. 네가 예상한대로 살지 말라고.


그래서 주님은 무엇을 공격하느냐? 오시면서 나의 목표, 나의 기대, 나의 소망을 다 물어 뜯는 겁니다. 왜냐하면 목표, 기대, 예상 어떤 그런게 있어버리면 여기에 도사견 7마리 귀신이 다 달려들거든요.


제가 언젠가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죄 안 짓는 방법은 10분 후의 감정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러면 죄 짓는 방법은 뭡니까? 10분 후의 감정을 미리 예상하는게 죄 짓는 거지요. 아 어쩌나~ 갑자기 초조해지고 안되면 어떡하지? 안되면 어떡해. 안되면 나 못살거 같애. 이런 것.


우리 애 성적 나왔는데 가채점은 괜찮은데 진짜 채점하면 어떨까? 벌벌 떠는 것. 본인이 시체가 아니라서 갑자기 시체가 안되니까 꼼장어가 살아났어요. 꼼장어가 살아나니까 과거의 자기가 노력한게 다 살아나버렸어요. 자기의 프레임, 자기 영역이 다 살아나버렸어요.


완전히 미래까지 다 갑자기 과거, 현재, 미래까지 다 상상해서 다 갖다 붙입니다. 이 덩치 이 갈치 제주도 은갈치 다 살려달라 이걸. 성령께서 칼 들고 예수님의 하신 일을 너한테 집어넣는다고 했지.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났어 인간아. 그런데 왜 안 따라오고 있어.


다 토막 다 내버립니다. 예수님 전기톱 토막살인사건. 다 토막내버려요. 죽은 시체를 살려 줬더니 이게 또 잘난 척 내 보따리 다 내놓으라는 거에요. 그 잘려진 그 자체가 뭐냐? 그게 진실이고 그게 진리에요. 잘려진 자체가. 그게 뭐냐? 집단적인 보편적인 이스라엘의 원리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주님의 단절, 절단 또는 단절에 의해 생긴 그 보편성과 대비가 되는 그 사상의 구조가 뭐냐? 민주주의에요. 민주주의는 뭐냐?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평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게 민주주의입니다.


국가는 바로 나의 자유를 보장하고 나의 평등을 보장하라. 홍콩시위가 그거잖아요. 그러나 주님은 개인적 자유를 허락하지 않고 집단적 자유. 개인의 평등을 허락을 하지 않고 집단평등을 허락하지요. ‘집단평등’.


여러분들 피곤한데 찾지 마세요. 제가 그냥 대표로 찾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사적으로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관심사는 뭐냐? ‘피’입니다. 새로운 거에요 이거는. 하나님의 프레임에서의 구원의 입구는 뭐냐? 유월절 어린양의 피에요. 피는 뭐냐 하면 예수님이 세상을 자진해서 떠나시면서 떼내시면서 남겨진 물리적인 실질적인 증거가 ‘피’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접촉점. ‘피’입니다. 유월절날 피를 바름으로써 피라는 물질을 바름으로써 죽음의 천사가 떠났다는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신기한 거에요. 그 피가 뭐길래 홍해도 갈라졌습니다. 그 피가 뭐길래 요단강도 갈라지고 그 피가 뭐길래 피 묻은 언약을 가지고 이스라엘 중앙에 서서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도니까 여리고 성이 다 무너졌습니다.


이 말은 세상은 어느 앞에 무너진다? 그 피 앞에 다 무너져요. 무너질 것 진작 무너지도록 우리에게 시체 만들기 위해서 십자가 피로 이미 성령을 통해서 성령 안에 있는 예수님이 하신 일, 그 피를 통해서 우리로 미리 시체 만들어버렸다 이 말이죠.


그 시체 만든 우리가 바로 이게 주님의 하신 일의 증거. 그 살아있는 것은 주님의 피 때문에 살아있는 거죠. 피의 원칙 때문에 살아있는 거에요. 민주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이게 짐승적인가를 악마적이다 하는 것을 인식해야 돼요. 그 민주주의 쳐다보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은 귀신이죠. 꿈꾸지 마세요. 다 귀신인데 뭘 귀신 꿈꿔. 꿈꾸긴 뭘 꿈꿔. 보이는게 다 귀신들인데요. 다 개인주의에요. 사적이에요.


요한복음 15장 봅시다. 아까 제가 물고 뜯는 것까지 이야기했지요. 물고 뜯는다는 말은 어느 정도냐하면 이래요. 여러분 에스컬레이터를 이렇게 탈 때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 있고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있잖아요. 그런데 휴대폰 본다고 정신없이 가다가는 내려가는데 올라가는게 가게 되면 삐 소리 나잖아요. 그렇죠?


그처럼 성령이 있는 사람은 누가 관리하느냐 하면은 성령이 관리하기 때문에 삑 하고 소리가 나요. 우리 마음속에 또 네 자랑하고 네 옛날 프레임 원리를 너한테 지금 네가 시동하고 있구나. 선악원리를 너한테 또 적용시키네. 그래서 네가 원하는게 뭐야? 네가 꼼장어되는 거야? 뭐야? 나 이만큼 잘나고 멋있게 인생 살았습니다 그거 자랑하는거야? 이런 식으로 나오겠지요?


그래서 성령께서 오셨다하는 것은 성령은 뭐냐 하면 소유용이 아니에요. 성령을 가질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성령에 의해서 잘려진 그것은 있지만 성령을 소유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 주도권이 성령한테 있으니까.


그게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베드로가 걱정이 되어가지고 아 나 앞으로 어떻게 됩니까?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은 자기 시간이 계속해서 생각하는 거에요. 꼼장어 생각하는 거에요. 네가 원치 않은 길로 간다.


네가 원치 않는 길로 간다는 이 말은 주도권이 네가 예상하고 네가 기대하고 네가 목표로 하는 모든 그 기대와 목표와 예상은 일체 그걸 피하는 식으로 주께서는 삐~하고 그쪽은 안돼. 그쪽은 지옥 가는 길이야 하고 삐~하는 거에요. 그러면 무엇이 방해되면 안돼요? 옛날 나의 프레임 세상적인 프레임이 방해가 되면 안 된다 이 말이죠.


15장 20절 요한복음. 이 말씀 들으면 이해돼요.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한다”.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한다는 것은 남보고 들으라는게 아니고 내가 너보고 들으란 이야기에요. 너보고. 제자들 너보고 들으란 이야기에요.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한다. 걱정들을 마세요. 걱정을 할 쨉도 안되는게 왜 걱정을 하느냐 말이죠. 주인이 어련히 있는데 주인이 있는데 왜 종이 걱정하고 있느냐 말이죠. 종이. 그러면 걱정을 왜하느냐? 종들이 핍박을 받기 때문에 핍박을.


그런데 핍박받는 이유도 주인과 함께 있기 때문에 악마가 누구보고 공격하면서 핍박합니까? 나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주님이 함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악마로부터 주위로부터 공격을 받는 거에요.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공격받는 거에요.


왜? 예수님이 함께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래서 제가 대구강의에 잘 알지도 못하는 영어를 썼지요. with. 나와 주님과 함께 있는게 아니라고 했지요. 내가 with 그 자체에요. 함께 자체에요. 내가 주님과 함께 있는게 아니고 나 자체가 with 함께 나 자체가. 중간에 누가 있고? Lord 주님이 계시고. 다른 성도는 다른 with가 있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할 필요 없어요. 주님이 이미 with 함께 라고 규정하면서 나를 그냥 붙여줘가지고 예수님의 취지만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게 하실 뿐이란 말입니다. 이게 뭐냐? 종이 주인보다 크지 않는다 이 말은 제자들 좀 귀담아 들으란 말이죠.


왜 네가 네 인생 걱정하느냐 말이죠. 저 사도 요한은 오래 사는데 나는 어떻게 될까요? 네가 왜 사도 요한 걱정하느냐? 사도 요한은 너 죽을 때까지 살아있더라도 그거는 네가 관여하지 말란 말이죠. 그 관여하지 말라 그 이야기가 요한복음 15장에서는 포도나무 이야기합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참 포도나무 들으니까 우리나라에 있는 포도나무 교회가 왜 그리 많은지. 교단 자체가 포도나무 교단인지. 포도나무. 신천지는 또 말하기를 포도주에서 난걸 다시는 마시지 말라 그것 가지고 기존 교회 해석해봐라 이렇게 도전하고요.


전부 다 구원파들이거든요 구원파. 주님 희생 이용해가지고 저 구원받겠다고 나선 사람들 박옥수 구원파 있잖아요. 자기로부터 못 떨어져 나가요. 내가 예상한 천국에 가야된다는 거에요. 우기는 거에요. 여호와증인 천국은 뭐냐? 골프장 만들어놨어요. 그림 보세요. 삽화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와보라. 그림에. 전부 다 뭐냐 하면 이게 성령을 안 받았기 때문에 끝까지 사수하고 지키는 것은 뭐냐 하면 자기 이익밖에 없어요. 그런데 요한복음 15장은 계속해서 뭐냐 하면 너는 쫄따구야 종이야 주인은 나야. 세상이 미워할 때 너보고 미워하는게 아니야. 너는 아무것도 아니고 나보고 나를 겨냥해서 공격하는 거야.


끊임없이 뭐냐 하면 네 자리가 아니고 누구 자리다? 너 사는 인생 자리는 주님의 자리가 되는 거에요. 주님의 자리가.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다” 할 때 계속 주어가 누구입니까? “나”.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죠. 이거는 처음부터 요한복음 1장부터 나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매 우리가운데 거한다. 한번 볼까요? 말씀이 뭐가 된다? 육신이. 그 다음에 어디 가운데? 우리 가운데죠. 주께서 없는 우리를 예수님을 육신을 통해서 없는 우리를 만들어내서 그 만들어진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는 거에요. 이게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그 핵심이 요한복음 끝까지 갑니다. 그 줄거리가.


없는 우리를 성령을 통해서 없는 우리라는 것이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요한복음 14장에 성령이 와야 처소가 마련돼요. 비로소 아버지가 내안에 너희가 아버지 안에 이게 우리라는 것이 요한복음 17장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라는 것이 주님이 와서 만들어지지 기존의 신천지 같이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만드는게 아닙니다. 자기 프레임이 있고 그거 아니에요.


기존 프레임에서 떠나고, 떠나고 난 뒤에 기존 프레임을 야곱처럼 붙들고 싸워서 우리로 하여금 살려주세요라고 만들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나를 박살낸 그 박살낸 원리 원칙이 내 몸을 통해서 살아나게 하옵소서.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야곱 이름이 아니고 주님의 이름이 이스라엘 되는 거에요. 야곱에서 개인적으로 있는 야곱이 예수 안에 있는 야곱으로 바뀌면서 이름도 같이 야곱으로 바뀌는 겁니다. 사울은 뭐로 바뀌고? 바울로 바뀌고. 사울이 이름 지으려고 어디 점쟁이 찾아갔습니까? 누가 지어준거에요? 예수님이 지어준거에요. 사울에서 바울로.


그 바울이라는 것은 바로 주님이 그 안에 있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이름 뭘로 지을까요? 천주교처럼 마리아라고 할까요? 아니요. 우리 이름은 없어집니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우리를 실질적으로 예수 이름의 자격으로 남자 여자 40대 50대 이렇게 살아가는 거에요.


안양이나 대구나 주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주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 꼬라지가 왜 이 꼬라지냐. 멀쩡한 꼬라지가 없습니다. 왜 이렇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바로 주님이 떠날 때도 멀쩡하게 떠나지 않았거든요. 그걸 아까 뭐라고 했느냐 바로 주님 주신 상처. ‘축복받은 불구자’. 축복받은 불구자로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는 모세처럼 우리가 내세울 것은 ‘멀쩡한 나’가 아니라 내 안에 피 있다. 할례 언약의 피 있다. 유월절 피 있다. 그 피를 내세우기 위해서 하는 거에요. 살아가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성도니까 이렇게 판단하고 분별할 때에 교회에서 그 사람에게 피 이야기 나와야 돼요. 피 이야기가.


피 이야기 나오는데 피 이야기 함으로써 “내가 성도인데” 이게 나오면 안돼요. 그냥 피 이야기만 나와야 돼요. 뒤에 자기가 막 딸려나오면 안돼요. 피 때문에 작살난걸 이야기 나와야 된다고요. 피 소유해서 내가 살았다 하면 안되고 우리는 피를 소유할 수가 없어요. 16장 봅시다. 보혜사 이야기죠.


자, 21절 보게 되면 19절 봅시다.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이게 뭐냐 하면 예수님이 스스로 만들어낸 단절입니다. “본다”. 본다고 했을 때 제자들은 이 세상에 있어요. 주님은 이 세상을 떠나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비로소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다른 세계’. 다른 세계. 다른 세계 있지만 이 세상이 있는 제자들은 다른 세상에 대해서 상상하거나 어떻게 예상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제자들을 놔두고 떠났기 때문에. 그리고 오지 못한다고 단언했기 때문에. 오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거에요.


아까 고린도후서 12장에 사도바울이 인간의 말로 지상의 인간의 언어 프레임으로 설명이 된다 안된다? 설명할 수가 없어요. 언어 프레임으로 언어 개념만 설명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꾸 꼼장어처럼 또 길어져요. 상상의 상상을 더해가지고 온갖 괜찮은 용어, 멋있다 화려하다 이런 식으로 하는데 이게 안됩니다.


그래서 성경 자체가 세속적인 언어를 쓰더라도 헬라어 히브리어 쓰더라도 이거는 근원적으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이해하지 말라고 준 글자에요. 이해하지 말라고. 이거 보고 이해 안된다고 고백하라 이 말이죠. 그리고 이거보고 예상해도 네 예상은 다 헛방이란 것을 다 인식하라 이 말이죠.


그럼 성경 해석은 뭐로 해석하느냐 반드시 십자가로 모이는 식으로 하는 거에요. 십자가 모든 성경해석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쪽으로 해석이 되야 그 해석이 되는 겁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다시 말해서 오늘 식으로 하면 주께서 의도적으로 우리를 떼어냈다. 또는 주님께서 알아서 떠나셨다. 난 너하고 안 논다고 떠나버렸다 쪽으로 해석이 되어야 돼요.


그래서 그분이 다시 오지 않는 한, 조금 있으면 못 보고 조금 있으면 다시 오시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한 천국은 못갑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주님께서 그때가 언제입니까 물으니까 주님이 하신 말씀이 "기다려봐. 잠시 기다리면 성령이 올거야. 기다려봐."


제자들이 “안 오면 어떻게 됩니까?" "기다려보라니까." 주님 구름타고 올라가니까 "아 가고싶어라." 천사가 와서 "기다려봐! 기다려봐." 약속이라는 그 단어조차도 인간의 약속은 그냥 초조하지만 주님 약속은 인간의 초조함과 관계없이 순서적으로 주님이 계획잡은대로 오게 되어있어요.


그렇게 왔던게 뭡니까? 오순절 성령강림 아닙니까. 오순절 성령강림. 왔잖아요. 오시고 난 뒤에 이 사도들은 뭐가 되느냐 하면 꼭 바람같이 됐어요. 바람. 바람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가 되고 말았어요.


그걸 대구강의에서 그걸 액체라고 했는데 어느 환경, 어느 처지에 있던지간에 꼭 투명한 사람 되요. 투명하게. 못할게 없어요. 어느 위치에 풍랑이 일어도 핍박이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도 좋다고 뭐 좋은건 아니지만 좋다고 주님 바라보고 기뻐하고. 성령이 주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르다.


그러면 우리는 뭐냐 하면 우리가 주님의 자궁이라면 우리는 주님의 자궁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듭남이 있어야 되겠지요. 요한복음 16장 20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보세요. 근심이 먼저 있고 기쁨이 되지요. 그래서 주께서 우리에게 죄를 짓게 하시는 거에요. 우리의 할 일은 죄 짓는 거에요. 죄 짓는 겁니다. 죄가 죄로 알게 되는 이 기쁨이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에요.


사람이 왜 자꾸 주저하느냐? 자기가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뭔가 행동할 때 주저주저하게 되요. 이러다가 망하는게 아닌가? 아 죄인이 망해야지 그럼 뭐 누가 망해야 되요? 죄인이 망해야지 그럼. 죄인인 주제에 안 망할려고 생각했던가요?


죄를 안다는 것은 어떤 사태도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결혼하시는 분에 대해서 어떤 결혼하시는 분에 대해서 제가 그런 식으로 했거든요. 그 사람의 죄를 온전히 압니까? 라는 질문을 한 이유가 뭐냐 하면 여자 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몸이 아프다든지 어떻게 고질병이 걸린다든지 어떤 것도 기쁨으로 감수할 수 있는 남자입니까? 라고 묻는 거에요.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는 남편 같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혼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결혼한건 무를 수 없고 할 수 없고. 참 내가 참 불가능한 일을 하는데 지금. 본인이 죄인인걸 아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면서 용납이 되요.


네가 뭐 암에 걸렸든 뭐 엄마가 와서 신장 떼어달라고 해도 공효진은 지금 고민하고 있던데 그런 뜻이 아닌데 갑자기 연속극 이야기가 왜 나와. 동백이 이야기 말입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되면 세상에 하루치만 부여되는 이 오늘 마지막 날이 그렇게 기쁨으로 끝맺을 수 있다니 이것 자체가 기뻐요. 환희란 말이죠. ‘환희’.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어떻게 됩니까?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지요. 주님을 자궁으로 생각하고 우리가 주님이 자기 자궁 안에 우리를 집어넣는 거에요. 그걸 그렇게 이야기해도 맞고요.


주님이 우리 안에서 새로운 우리 자리에서 새로운 우리 자아를 날마다 매일같이 절단시키면서 우리를 새로운 자아로 기쁨으로 만들어내는데 그 모습이 우리는 천하의 죄인의 모습으로 튀어나오더라 이 말이죠. 천하의 죄인의 모습으로.


그 기쁨은 이 이야기들을 때 제자들이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몰라요. 오순절날 성령 받고 난 뒤에 알아요. 야 나는 시체다. 나는 시체다 또는 나는 귀신이다. 고린도전서 15장에 “율법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했지요. 제가 대구강의에 했지요. 바람보고 화살 쏴 보세요. 바람이 어어어~~이렇게 합니까? 이미 죄인인데 나의 프레임 안에서 내가 기대할 필요가 없게 된 거에요.


그 사람 이름이 뭐냐? 삭개오에요. 삭개오는 구원이 이미 그 집에 임한 이상은 집에 내 잔고 얼마 있고 내 재산 얼마 있는가 그거는 아무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안됐어요. 아 4배나 줘버려 4배나 줘버려. 그까짓 것 뭔데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요. 그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게 삭개오거든요. 구원이 네 집에 이르렀다 이 말이죠.


다시 말해서 네 집이 아니고 누구 집이다? 내가 네 집을 내 집으로 내가 인수했다 이 말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살거야 이런 뜻이거든요. 네 집이 없어 이제 내 집이야. 주님 집인데 왜 볼품이 없습니까? 나는 너보다 더 심해 육신의 모양보다 더 망가졌어. 너도 호화주택이야. 걱정하지마.


너 밥먹고 사는 것도 죄인인 주제에 하루 세 끼 먹고 있는 것도 고마운 줄 알아. 북한 보세요. 전부다 빼빼. 평양 고위층 빼놓고 다 야위어있잖아요. 어버이 수령님~ 이러고 있다고요. 중국 보세요. 홍콩도 마찬가지고. 그들 왜 그렇게 데모하는 거에요? 아까 했지요. 개인적인 평등과 자유를 보장해라.


다시 말해서 나를 나 되게 내가 가지고 있는 목표와 이상과 기대를 국가가 훼손하지 말라 이 말 아닙니까. 우리는 이미 훼손당했어요. 개 취급당한 거에요. 그런데 그게 기뻐요. 왜? 옛날 프레임을 떠났으니까. 주께서 떠나게 했으니까.


나한테 주어지는 것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 때문에 구원받지 내가 사적인 나의 열심과 충성으로 개인적인 구원은 이미 그런 것은 악마가 그렇게 귀신들이 그렇게 가르친 거거든요. 24절에 보면 요한복음 16장 24절.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기도하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뭐냐 하면 네가 주님의 구원이 가리지 않도록 주님의 구원을 살려주세요. 주님의 고통을 부각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상처를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함께 계신 예수님이 예수님 되게 드러나게 하옵소서 할 때 그거는 바로 지금까지 네가 기도한 차원과 다른 차원일 것이다.


뭐든지 구한다 해가지고 사도들이 돈 구했습니까? 출세 구했습니까? 어디 성전 구했습니까? 뭐 대통령 국가원수 되게 해달라고 베드로보고 로마 황제 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했습니까? 사도들이. 안했지요. 예수님이 주이심을 드러내도록 기도했잖아요. 주님의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알게 해 달라고 사도 바울은 그렇게 기도했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성령이 오게 되면 나를 작살나고 내가 절단되면 그런 기도가 나옵니다 절로. 그 다음에 33절하고 마치겠습니다. 33절 16장.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뭐겠습니까? 평안을 누리죠. 평안을 누린다는 것은 제가 주일날 이야기했어요.


고요함이에요 ‘고요함’. 고요함. "뭐 무슨 일 있어?" 주께서. "종아." "예 주인님." "뭐 네 집에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집 두 채 불났고 애 성적 떨어지고 딸 애 백혈병 걸리고 그 정도. 그 정도 밖에 안됩니다." "뭐 고요하네. 평안해라." 그냥 가버려요. "무슨 일 있어?"


죄인 주제에 그동안 살아온 것만 해도 감사하고 죄인 주제에. 내일은 없어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까. 내일 되면 주께서 뜻이 있으면 내일 또 새롭게 만들어 주실거에요. 새로운 사람으로서. 내 프레임이 아니라 주님의 틀에 맞춘 새로운게 올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이 목사님 그 말이 맞는것 같은데 사는 재미가 없잖아요. 사는 재미. ‘사는 재미’. 마지막은 이겁니다. 사는 재미를 누가 주느냐 하면은 악마가 줘요. 그러니까 악마가 줄 때 받으세요. 왜냐하면 우리는 악마하고 주님하고 싸우는 싸움터가 되야 되기 때문에.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안 받는다 해놓고 아이고 받을걸 이러지 마시고 사는 재미. 공부 잘하고 수입 늘어나고 남편, 아내 잘 해주고 뭐든지 건강하고 올 때 감사함으로 받으세요. 누가 주는지 묻지 마시고 악마는 항상 주님께서 악마를 우리 집에 항상 보내요. 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승리함을 증거하는 집으로 만들기 때문에.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악마가 오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주께서 뜻이 있어서 주어진 것이기에 우리는 감사와 기쁨으로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강남-요한복음 총정리(6)-요한복음 15장 (피하지말라)191119b-이근호 목사.hwp (169.5K), Down:4
게시물8,122건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읽음
공지   겨울수련회 안내 관리자 19-11-03 235
공지   [책]2019 신간 '완전한사랑'출간&구입안내 최지영 19-06-11 475
공지   대장간 출판사에서 이근호목사님 저서를 다량 구입했… 관리자 18-08-25 1273
공지   이스라엘 유적 답사 동영상 (1) 이근호 18-03-10 1482
공지   십자가마을(도서출판)후원회에서 알려드립니다. 김종인 17-05-29 2264
공지   실시간 생방송 새주소 입니다. 관리자 17-02-19 7271
8634   부산 주례사 191207 이근호 19-12-07 45
8633   광주강의20191129b 마가복음14장 32-42절(겟세마네 기… 이미아 19-12-05 29
8632   광주강의20191129a 마가복음14장 32-42절(겟세마네 기… 이미아 19-12-05 26
8631   18강-호 5장 1-2절(가짜이스라엘)191204-이 근호 목사 오용익 19-12-05 33
8630   297강-YouTube강의(슬픔의 이유)20191203-이 근호 목… 이하림 19-12-05 27
8629   296강-YouTube강의(만남)20191203-이 근호 목사 이하림 19-12-05 21
8628   울산 성경공부 안내 서경수 19-12-05 6
  강남-요한복음 총정리(6)-요한복음 15장 (피하지말라)… 홍민희 19-12-02 31
8626   강남-요한복음 총정리(6)-요한복음 15장 (피하지말라)… 홍민희 19-12-02 40
8625   52강-엡 5장 18-19(술취하지 말라)191201-이 근호 목… 오용익 19-12-02 35
8624   7강-욥기 2장 1~6절(하나만 주목) 20191201-이 근호 … 송민선 19-12-01 38
8623   주님의 겸손 (1) 송민선 19-12-01 90
8622   강남 모임 안내(12. 3. 화) 이명직 19-12-01 30
8621   대구 모임 안내 이근호 19-11-30 18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끝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