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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6 08:05:47 조회 : 36         
323강-YouTube강의(자기변명 시편 42:5)20200915-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하림(IP:223.131.58.44)
323강-YouTube강의(자기변명 시편 42:5)20200915-이 근호 목사


제323강, 제목은 ‘자기변명’. 자기변명이 언제 일어나느냐 하면 자기 계획대로 안될 때 변명해요. 인간은 자기를 자꾸 좋은 쪽으로 이끌려고 합니다. 불행에서 행복으로, 비극에서 희극으로, 망한 데에서 성공한 걸로 그렇게 가다가 자기 뜻대로 안되면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 내 능력이 그것밖에 안돼서 그렇습니다.” 하고 변명들을 하는데 주님한테는 변명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주께서 유발한 일이기 때문에 변명하면 안됩니다.

변명이라 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이 계획해서 본인의 의지대로 뭔가 일이 벌어졌을 때, 그리고 그것이 남들에게 무슨 비난을 받을 일이 있을 때는 이제 변명을 하는데 나의 모든 일이 내 일이 아니고 주의 일이라면 변명하는 것 자체가 수상하잖아요. 주님이 조성한 상황인데 마치 내가 일을 잘못해서 일을 망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겸손해 보이는데 겸손이 아니고 불신이에요.

마음을 낮추라고 되어 있다고요, 성경에 보면.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을 그냥 안 낮춰요. 마음을 낮출 테니까 일 틀어지지 않게 해달라 뭐 이런 식으로 마음 낮추면서 딴 걸 또, 자기의 성공사례를 자꾸 얻으려고 하는 겁니다.

시편 42편에 보면 주님께로 가는 사람은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내가 내 조치를 하고자 하는 그 모든 것을 주님께서 허락을 안 해요. 시편 42편 5절에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그렇게 되어있죠.

이거 뭐 대학생 선교 단체할 때 유명한 구절이죠, 시편 42편 5절. 취직문제 때문에 불안하고 결혼문제 때문에 불안하고 가정문제 불안하고 장래문제 불안하고 그럴 때 적어도 선교단체 간사쯤 되게되면 이 말씀 하나는 비상용으로 딱 장착했다가 탁탁 던져주죠.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가스펠송에도 뭐 이런 가사들이 아마 동원될 겁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이렇게 되어있죠.

우리가 젊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미래가 불완전한 사람, 흔들리는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위로삼아 이런 구절을 자꾸 거론합니다. 특히 기독교서점에 보면 ‘사람을 위로하는 방법’ 해가지고 토정비결 보듯이 어떤 구절이 위로가 되느냐 하는 거죠.

성경은 토정비결이 아닙니다. 재수 좋으라고 보는 책이 아니에요. 근본적으로 성경은 인간이 가는 길이 아니에요. 인간이 갈 수 있는 길도 아니고. 인간이 갈 수 있는 지침서도 아니에요. 주님 혼자 가신 길을 소개한 게 성경입니다. 주님 혼자 가신 길, 아무도 갈 수 없는 길. 주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 성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따라 붙이려고 자꾸 성경구절해가지고 ‘주님 같이 갑시다’ 이럴 잽이 못돼요. 우리는 그럴 위인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꾸 우리 존재의 권리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요청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가짐 자체가 어떤 권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나는 행복할 권리, 구원받을 권리, 20대 초반에 벌써 취직할 권리, 20대 후반에 멋진 남자 만나 시집갈 권리. 어떤 말을 한다든지 어떤 태도를 볼 때 ‘나는 당연히 이런 권리가 있습니다’ 라는 것을 뒤에 갖다 붙여서 요청해요.

교회 나왔으니까 목사님, 복 주시옵소서. 이런 거요. 그럼 목사는 허겁지겁 무슨 복을 줄까. 그래, 청년아 네가 낙망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라. 이걸 복으로 주는 거예요, 시편 42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오히려 찬송하라. 하나님께서 늘 도울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너는 찬송할 준비만 해라.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네 불안도 없어지고 네 영혼의 낙망도 없어지고 하나님께서 착착 도와주신다. 그러니까 나중에 찬송만 하면 된다.

“그럼 도움받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하면 “네가 말씀보고 기도하고 두 개의 수레가 있으니까 균형을 맞춰서 말씀도 보고 기도도 하고 기도하고 또 말씀보고 그렇게 하라.” 이렇게 하죠. 그러면 그렇게 “네, 목사님 시키는 대로 말씀도 보고 기도 하겠습니다.”

결국 이런 결심을 한다는 것은 기도자체, 말씀자체가 뭔가 내가 얻고자 하는 수단이 되어버려요. 아직도 자기 포기, 자기 권리를 여전히 주장하고 싶은 겁니다. 이걸 뭐라고 하느냐면 전에 어떤 강의에서도 얘기했지만 내가 나다울려고 하는 거예요.

서울강의에서 그런 얘기했잖아요, 자아표준모델. 나는 이 정도 되어야 나답다는 겁니다. 나는 이 정도 안 되면 나는 낙망할거야, 절망할거야. 이렇게 되는 겁니다. 자기 모델을 자기가 이렇게 정했어요. 구색 맞춘다고 하죠. 이것저것 구색 맞춰서 이 정도는 되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이 정도는 되어야 그게 나답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편 42편에 이 말씀은, 이 뜻은 뭐냐. 주님 가신 길이 이런 길로 너희를 인도할 것이라는 겁니다. 낙망하고 절망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그 길을 주께서는 강제로 질질 끌고 가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낙망하고 절망할 때는 여전히 내 생각을 포기 못한 상태에요.

그런데 내가 지금 가는 그 길이 주님께서 나를 주시해서 불러가는 길이 아니고 먼저 가신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 합류하라고 나를 거기다가 강제로 집어넣은 길이에요. 집어넣은 길이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아이고, 내가 이 길로 가는 것 보니까 내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하고 자기 딴에 ‘최선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목사님 시키는 대로 기도하고 말씀 봤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어려움이 주어집니까?’ 하고 자꾸 자기 변명조로 나오는 거예요.

마치 중간에 누가 없고 하나님하고 자기하고 직접 상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편은 누구 이야기이냐 하면 내 이야기 아니고 예수님 자신이 어렵게 힘들게 가셨던, 이 땅에서 가신 그 길을 시편에서 미리 우리에게 알려주는 거예요. 주님도 낙망하고 주님도 절망하고 주님도 불안하고. 비록 예수님이지만 이 땅의 삶을 살면서 그것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만 경험하는 게 아니라 주님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주님은 아버지의 도움을 인하여 찬송한 거예요.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기도할 게 뭐 있나 아버지 뜻대로 하면 되지’ 이게 아니고 기도해야 될 이유가 예수님의 육신 자체가 죄 있는 육신이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진 육신이에요.

물론 인간은 죄가 주장하지만 예수님은 성령께서 주장하기 때문에 죄를 안 지었어요. 안 지었지만 죄의 결과에 대해서는 온 몸으로 느끼는 겁니다. 불안하고 절망할 때마다 예수님 뭐했습니까? 히브리서에 나온 말씀처럼 그때마다 주님께서 아버지에게 간절히 기도했다고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바로 그 길, 그 길이 주님께서 꼭 가셔야 될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길을 가면서, 예수님께서 먼저 그 길을 가면서 아버지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잘 들으세요, 내가 설정한 나다운 길을 아버지께서는 일체 허락지 아니하시고. 일체 허락지 아니하셨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날 때부터 천국이 아니고 가짜 천국을 기대하는, 내가 잘되는 엉터리 가짜 천국을 내다보면서 악마가 시키는 대로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었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가는 길이 천국이 되게 하신다는 말이죠. 그러면 우리는 가짜 천국이니까 우리의 마음가짐을, 내 뜻을 포기하게 되어야죠. 예수님도 마찬가지고.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셨잖아요.

이것이 지금 천국 가는 모든 사람에게 교체되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겁니다. 사람이 왜 불안합니까, 왜 낙망합니까? 자기 뜻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걸 주님께서 강제로 사태를 일으켜서 없애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절망하고 낙망하고 불안하죠.

그런데 다시 한번 주께서 이끄시면 ‘아, 이 길이 정답이다. 이것은 내가 몰랐던 길인데 야, 목자가 되셔서 이 길을 가게 하시는구나.’ 그러면 도리어 누구한테 찬양합니까? 오직 아버지께, 하나님께 도리어 찬송하리로다.

그러니까 말씀대로 사는 거예요. 불안하고 절망감을 겪어야 하고 아, 나 진짜 미치겠다. 해놓고 나중에 예상 못한 주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나는 도리어 찬송하리로다. 날마다 새로움이 우리에게 유발되는 겁니다. 그것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니고 주께서 가신 길을 우리에게 체험케 하시는 이게 바로 잘 된 것이고 이게 복입니다.
 첨부파일 : 323강-YouTube강의(자기변명 시편 42편5절)20200915-이 근호 목사.hwp (31.0K), Dow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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