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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8 16:30:42 조회 : 45         
안양20201112a슥3장8절(순)-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119.207.152.148)
안양20201112a슥3장8절(순)-이 근호 목사

스가랴3장8절 보겠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그렇게 되어있지요. 스가랴 전체가 신비입니다. 신비. 신비는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를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데 하나는 신비가 오면 기쁨이 올 수도 있고, 또 신비가 오면 두려움이 올 수 있어요. 그것은 이 신비가 일상을 깹니다.

선지자 같은 경우에는 선지자가 살아온 나름대로의 어떤 인생관이 있을 것이고, 자기도 남들처럼 살고 싶은 생각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신비로움이 와버리면 그의 일생은 기쁨 아니면 두려움 둘 중에 속하게 되는데 보통 성신 받은 선지자들은 두려움보다도 기쁨이 주가 됩니다. 물론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에요. 에스겔이나 예레미야 이 사람들도 많이 두려워했는데, 태반은 인생의 대부분은 기쁨입니다.

왜 기쁘냐 하면 난데없이 진리가 주어졌기 때문에 난데없이 하늘로부터 진리가 주어졌다. 여러분, 진리가 주어지게 되면 우리 마음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진리가 주어지게 되면 겁이 없지요. 세상 살아가면서 겁을 낸다는 말은 마음 둘만한 진리를 안 받았다는 그러한 우회적인 표현이 되는 겁니다. 진리를 앞장세우고 진리로 인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그 누구한테도 주눅 들거나 부끄러워하거나 겁을 집어먹을 하등의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 말은 진리 앞에서 진리가 너무나 소중하고 귀중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누가 안 소중하냐 하면 내 인생 내가 전혀 소중하지 않아요. 내 인생이라는 게. 내 인생이 어떻게 된다 한들 그게 신경 쓸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가 없어요. 왜냐 하면 나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진리가 오게 되면 내 일상은 진리가 아니었다, 를 알지요. 진리가 오면 특징은 뭐냐, 진리가 온 사람의 특징은 뭐든지 한다, 입니다. 뭐든지 한다는데 이렇게는 오해하지 마세요. 뭐든지 된다. 이렇게는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뭐든지 된다는 건 노림수 가지고 있는데, 노림수 가질 이유가 없어요. 뭐든지 한다, 가 됩니다. 뭐든지 된다, 가 아니고.

안 돼도 상관없는 거예요. 진리가 앞장서있기 때문에 나는 그 진리를 졸졸 따르는 똘마니거든요. 어릴 때 시장이나 어디 길거리에서 혼자 다니는 것보다도 집에 어른 듬직한 형이나 어른이나 이렇게 다니면 애들이 아주 신나지요. 안하던 까불거리기도 하고 평소에 친구에게 기죽다가 기 팍 살아서 하지요. 천하에 눈에 뵈는 게 없잖아요. 이게 진리를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된다고 하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모든 걸 성취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진리를 알게 되면 무엇이 없어지느냐 하면 성취해야 될 부담도 날아가 버려요. 성공, 실패, 그거 무슨 소리에요? 그게 뭐예요? 이리 되는 겁니다. 성공, 실패가. 진리가 나를 대체해버리니까. 그걸 영어로 instead of. 나를 대신하기 때문에 그냥 졸졸 따라가는 식으로만 하면 되는 겁니다.

사람이 갑자기 주눅 들고 가슴이 억압을 받는 이유는 인생을 본인이 해결하려고 하는 거예요. 믿을 구석이 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라도 뭘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나라도 하게 되면 그게 목표가 생기고 그 목표가 나를 정신적으로 더 압박을 해가지고 쪼그라들게 만들어요. 위축되게 만들어요. 그러면 사람이 위축되게 되면 여기서 반발이 나오잖아요. 내부적으로 반발이 일어나가지고 위축되니까 더 과격한 행동으로 반발심으로 튀어나오게 되어가지고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전혀 안정감이 없다고 하거든요. 진리가 없는 사람의 특징은 안정감이 없어요. 설교 틀어놓고 집에서 진리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걸 막 쏴대고 하는 것은 다른 식구들이 쏴대는 것은 본인이 안정감이 없다는 것이 그만 튀어나왔어요. 듬직하지 못하고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겁니다.

요새 혼자 사는 분들이 늘어났는데, 혼자 사는 분들을 대충 조사를 해보니까 대체로 삶이 만족해요. 둘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걸 만족하는데. 보니까 조건이 하나 붙었어요. 주거가 안정이 될 때는 혼자 사는 게 만족하다는 거예요. 이사 할 거라든지, 전세 마련 그런 거 없이 내 집에 있어서 내 혼자 살면 천하에 그게 그렇게 좋답니다. 밥 뭐해줄꼬. 생각할 필요도 없고. 자기 외에 다른 사람 때문에 걱정할 필요도 없고요. 주거 안정성.

진리가 오게 되면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그 상황 속에 안정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뭐든지 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주눅 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쪼그라들지 않는다. 위축되지 않는다. 주눅 들지 않는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게 선지자의 특징이죠.

그런데 선지자가 외부적으로 고생을 많이 해요. 외부적으로 고생을 하는데 왜냐, 워낙 적들이 많으니까. 어제 수요일 기도 내용처럼 복음으로 조롱을 받거든 감사해야 돼요. 마태복음 5장에 보면 나와 내 복음을 위하여 미움을 받거든 기뻐하라. 선지자들의 계열이다. 오늘 나올 수도 있는데 계열. 선지자 계열은 공통성이 있어요. 진리를 알았기 때문에 진리 계열이기 때문에 세상은 진리 계열 아니잖아요.

진리를 하늘에서 주셔야 된다는 말은 이 땅에서 아무리 찾아도 이 땅에서는 없다는 말이고 진리가 없다는 말은 모든 개인 개인은 아무리 재산이 많고 건강하고 화목해도 주눅 들고 자체적인 불안감을 억제하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불안정해요. 진리가 없으면.

그런데 선지자는 개코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진리가 있으니까 누구 앞에서도 겁이 없는 겁니다. 마태복음2장에 나오는 동방박사 있지요. 동방박사가 뭐 따라왔습니까? 별 따라 왔어요. 진리 따라 온 거예요. 자기가 진리 계열인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예루살렘에 헤롯왕에게 기죽었습니까? 기 안 죽었어요. 거짓말 팍 쳤어요. “예~ 예. 베들레헴에 가서 왕 만나면 내가 알려드릴게요.” 그런데 그건 빈말이고요. 그 동방박사가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체로 사기 친 겁니다. 왕을 상대로.

그래서 헤롯왕이 화가 나가지고, 헤롯왕이 화가 났던 이유가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이렇게 나와요. 성경에는. 어떻게 속였는지는 자세히 안 나왔지만, 나중에 헤롯왕이 속은 줄 알고 그 다음에 베들레헴 애들 2살밑으로 다 죽였잖아요. 화가 나서. 속은 줄 알고. 화풀이한 겁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게 되면 진리는 어떻게 온다? 계열을 형성하면서 오게 되어있어요. 계열을 형성하면서. 그런데 진리가 오게 되면 좋은 점은 이게 신비롭다니까요. 세상 사람은 두렵지만, 우리에게는 뭐가 됩니까? 두려움을 지워버리면 우리에게는 기쁨이 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진리, 다른 말로 신비로움. 신비로운 진리.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공부해도 좋은 대학 다니고 아무리 공부해도 알지 못하는 그게 만약에 이 기쁨이 없다면 여러분들은 평소에 세상 기쁨으로서 기쁨을 찾는다고 두더지 노릇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주님이 주신 진리의 기쁨이 없으니까. 그저 인간의 육적인 본능대로 기쁨을 찾아내는 주로 하는 게 술. 여러분들은 술은 입에도 안대니까. 무슨 뭐 놀러가는 거. 젊은 애들 맨날 배낭매고 해외 놀러가는 거. 거기에 무슨 신비가 있는 줄 알고. 니 왜 가느냐고 하면 거기서 뭐 배울 게 있는 줄 알고, 진리가 있는 줄 알고, 진리는 이 땅에는 어디에도 없어요. 저도 해외에 나가보니까 눈에 뵈는 게 뭐냐 하면, 저 사람은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고, 스케줄 어떻게 되고, 돈을 하루에 얼만 벌었느냐, 그것만 보인다고요. 어디에 가도. 왜? 돈 벌이 하는 방법은 똑같거든요. 돈벌이 하는 방법이 똑같아요.

신비로운 인간, 별다른 인간이 없다는 것이 뭘로 증명했느냐 하면 코로나19로 증명됐어요. 코로나 19로. 동양형 바이러스가 전 세계용 바이러스로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중국의 우환 바이러스가 전 세계 다 먹힌 것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서양 사람들은 오히려 치명적이지요. 이 바이러스 앞에서 모든 인간은 똑같은 아담의 후손들이라는 게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스가랴 공부하고 보면서 먼저 전제할 것은 모든 인간은 똑같다. 모든 인간은 다 불안 불안하게 살고, 불안하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에요. 불안하기 때문에 그들이 의지하는 것이 어디에 의지하느냐 제국에 의지합니다. 힘이 실린 나라를 제국이라 하지요. 힘이 실려서 사람들이 없는 기쁨을 힘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여력이 있는 나라. 그게 바로 제국이지요. 이 세상에 미국이 제국이 되겠지요. 가끔 옆에 일본도 되는데. 일본의 촌에는 너무 못살아요. 일본의 도시도, 촌도 못 사는데 나라만 잘 살아요. 희한해요. 개인적으로 일본사람들은 되게 못 삽니다. 늘 아껴야 되고, 그저 사는 재미라는 것은 뭐냐 하면 맛 집 찾아다니는 거예요. 고독한 미식가지요. 맛 집이나 찾아다니면서 그렇게 사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인간은 똑같다. 신비가 없고 진리가 없으면 인간은 전부다 힘에 압축이 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쥐포처럼 눌려서 살아가는 거예요. 눌려서 사는 것을 아주 간단하게 표현한 사람이 있었어요. 최근에. 몇 달 전에. 인생을 눌려 사는 걸 이렇게 표현했어요. “아프다. 테스형!” 테스형 2절 가사에 나와요. 아프다, 에요. 다른 긴 말이 필요 없어요. 세상은 이렇고 저렇고 다 필요 없어요. 한 마디로 하면 돼요. 세자로. 아프다. 너도 아프고 나도 아프다.

세상은 왜 그래? 그냥 아파요. 테스형? 소크라테스에게 물어봐야 지도 압니까. 그냥 아파요. 눌려서 아파요. 기쁨이 없어 아파요. 아프니까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서 힘센 사람에게 굴복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굴복하는 나라가 스가랴에서는 뭐냐 하면 첫 번째는 바벨론이고, 두 번째는 바사나라에요. 누가?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바벨론이란 제국의 지배를 받고 바사나라라는 제국의 지배를 받아요.

이 말은 이스라엘 자체에서 뭐가 빠졌느냐 하면 힘이 빠져요. 하나님의 진리의 힘도 빠지고, 기쁨도 빠지고, 자유 할 수 있는 힘도 빠지고, 다 빠져버렸어요. 이게 여호와를 약속을 버리니까 다 빠진 거예요. 약속이 진리 아닙니까. 진리 없어 한 번 살아볼까 하다가 진리 없이 자유롭게 하다가 오히려 이 세상에 제국에 억압이 된다고요.

선악과 없이 선악과라는 그러한 규칙이 없이 한 번 살아볼까 하다가 결국은 누구한테 억눌립니까? 마귀의 힘에 눌려 살잖아요. 창세기4장 가인 같은 경우는 동생 안 죽이고 싶어도 동생을 죽일 마음이 그래서는 안 되는 마음보다 더 강렬하게 일어나서 죽여 버린 거예요. 꼭 술 먹은 것처럼. 술김에 한다고. 내 마음이 아니고 술이 나로 그 짓하게 만들었다. 이리 되는 겁니다. 악마가 노리는 것은 바로 뭐냐 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를 제거하는 거 이게 악마의 필생의 숙원입니다. 없애는 거. 사다리를 걷어차는 게 악마의 평생의 숙원사업이에요.

왜냐하면 이 땅은 악마가 접수했다고요. 진리가 아니고 비진리가 이미 접수했습니다. 비진리가 접수했기 때문에 이 모든 인간을 슬픔 속에서 아프다 속에서 통제하고 있는 거예요. “아프냐? 그러면 덜 아픈 쪽으로 네가 한 번 내 말에 순종하면 덜 아픈 쪽으로 한 번 해줄게.” 이런 쪽이다 말이죠. “사는 게 아파? 그러면 죽어서는 천국가야지.” 이건 누가 하는 짓거리입니까? 교회 악마가 하는 짓거리에요. 교회에서 하는 수단 아닙니까. “가난해? 기도해. 그러면 복 받아.” 전부 다 그거 교회 마귀들이 하는 짓이에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기쁨을 내가 객관식으로 내가 바구니에 요거 기쁘고, 요거 기쁘고, 기쁜 것을 내 바구니에 담겠다는 것은 이미 이건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나 진리는 뭐냐 하면 내가 기뻐할 요소가 없는데 그냥 들이닥친 거예요. 그냥. 알프스 산에서 양치고 있는 하이디. 올라레리오~~ 하이디가 꽃바구니에 만약에 온갖 에델바이스부터 해가지고 온갖 아름다운 꽃들을 바구니에 담으면서 나름대로의 기쁨을 하다가 만약에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 꽃바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집어던져버리지요. 그러니까 진리라는 것은 내 인생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라는 큰 기쁨이 선도한다 할까. 앞서서 이끄는 거예요.

지금까지 제가 한 것은 뭐냐, 기존의 이스라엘 계열과 스가랴 계열의 차이점. 그렇다면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벨론, 바사 이런 제국에게 압제를 받게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출애굽부터 나오는 원칙이 있지요. 구원 다른 말로 하면 구출. 구출은 구원의 의미가 있으려면요, 갇혀있어야 돼요. 갇혀있는데 뭐 하나가 어떤 내가 원하는 힘이 아니고 생소한 힘이 딱 꽂혀버리면 졸지에 해방이 되고, 졸지에 구원이 되고, 졸지에 구출이 된 거예요. 구출이 되면서 자기가 전에 살던 것을 물끄러미 내다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제목 후보. 물끄러미. 부사 이거 괜찮네. 물끄러미 바라볼 수가 있는 거예요. 물끄러미. ‘아, 인간아, 니 왜 저래 사나?’ 이런 거. 구출을 할 때 주님께서 스가랴를 통해서 뭘 구출하느냐 하면 바벨론 그 다음 나라가 바사거든요. 바벨론 70년 동안 잡히다가 70년 끝났으니까 바사나라 다리우스1세에 의해서 성전 지으라고 해가지고 오는데, 구출하고 구원할 때 사람들은 뭐를 구원하고 구출하느냐 하면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구출하고 구원한다고 하는데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게 아닙니다.

뭐를 구출하느냐 하면 성전을 구출해요. 성전을. 빨건 걸로 써볼게요. 구출하는데 뭐를 구출한다고요? 성전을 구출해요. 성전을 구출합니다. 이스라엘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인간들만 있지만, 구출된 성전은 누구와 함께 있느냐, 마태복음 1장 23절 한 번 읽어보세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 뜻이 뭐지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는 거예요. 인간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겁니다.

그러면 마태복음의 주제가 뭐냐 하면 그 우리가 누구냐 하는 거예요. 그걸 갈라내는 이야기가 마태복음입니다. 마태복음의 모든 이야기들은 이미 하나님은 오셨고, 그 오신 하나님의 속성에 동질 속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끄집어내어서 함께 있겠다는 것이 마태복음 1장부터 28장까지 한결같이 통하는 유일한 맥이에요. 그게.

마태복음28장에 보면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했지요. 그 와중에서 너는 아니고 너야! 너도 아니고 너야! 이런 건 아니고 이런 거야. 계속해서 선별작업에 나서는 겁니다. 골라내는 거예요. 과수원의 사과 농사 딸 때 다 상품화 되는 거 아니에요. A등급, B등급, C등급 다 나와요. A등급은 상품화하고, B등급은 많이 친한 사람에게 보내고, C등급은 별로 안 친한데 보내고. 그런 것처럼 골라 선별하는 작업이에요. 누가요? 이 땅에 오신 주님이.

그 선별할 때는 기준이 있을 게 아닙니까. 기준. 그 기준을 마태복음에서 축약하면 그게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 기준이 뭐냐 하면 ‘너를 잊을 정도로 내가 소중하다.’ 그게 기준입니다. 너를 잊을 정도로. 너를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예수님이 너보다 더 소중하다. 이게 기준입니다. 주일 낮 설교에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천국이란 나를 지켜주지 않는 곳이 천국이다.

나가 두 개 있거든요. 옛사람 나를 계속 발로 차버립니다. 내가 나한테 새로운 나에게 달라붙지 않도록 끝까지 차버려요.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나. 나는 내가 아닌데도 자꾸 옛날 살아온 관행이 있어가지고 거울에 비친 내가 자꾸 나라고 고집을 부려요. 그런데 막상 누가 와서 너가 누구냐 라고 물으면 몰라요. 모르고 남이 누구라고 알려줄 때 비로소 어, 그게 나인모양이야. 하고 임시방편으로 그게 나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와서 니는 이렇게 되어있어. 하면 어, 그게 나야. 하고 또 고민에 빠져가지고 난리하다가, 누가 또 격려해주면 그게 바로 나였어. 이렇게 하고. 미친 것도 아니고.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나.

주께서는 버려버려라, 하는데 안 버리고 계속 버릴 패를 버려야 되는데 주님은 버렸는데 내가 안 버려. 내가 나를 안 버리고 있는 거예요. 붙들고 있는 거예요. 스가랴 말씀에 오늘 3장 8절 읽었잖아요. 읽어 보면 스가랴 말씀의 완성이 순이지요. 순. 새싹. 새싹이라는 뜻입니다. 스가랴 말씀의 예언의 완성은 인물입니다. 인물. 어떤 인물이 등장해요. 인물이 등장해버리면 인물은 무엇을 몰고 왔느냐 하면, “모든 것은 벌써 다 지나갔느니라.” 이거 됩니다.

내가 90이 안 돼도 80이 안 돼도 내가 평생 살다가 지금까지 안 죽어도 이미 죽은 자로 되는 이유가 instead of 나와 교체할 그 분이 이미 등장했으면 나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이미 과거완료입니다. 이미 버스 간 거예요. 찾지 마세요. 나에 대해서 어떤 의미도 찾지 마세요. 다 나에 일어난 모든 일은 내가 한 모든 일은 무의미합니다. 내 목표, 내 목적, 내 기대, 다 무의미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도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온갖 일을 만나게 합니다. 온갖 사람 만나고 온갖 경우를 평생에 만나게 하는데 만나봤자 수요일날 설교한 것처럼 만나봤자 안개입니다. 안개. 안개에요. 안개는 무서운 거 없어요. 그냥 그 때 되게 되면 시간 지나면 다 지나가는 거예요. 이런 노래 있는데 가사 바꿔야 돼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없죠. 있죠가 아니라 의미가 없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없기 때문에 지나간 거예요. 왜냐 하면 그 의미라 하는 것은 나한테 지독하게 딱 들어붙은 의미거든요. 그런데 새로 나를 대체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버리면 나한테 달라붙은 모든 의미는 무의미가 되는 겁니다. 의미가 없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대제국의 그리고 바벨론, 바사나라의 치하 속에 그 지배 속에 있으면서 이스라엘은 이제 이스라엘을 잊어야 돼요. 옛날의 화려한 홍해를 건너오고 어떻고 다 잊어버려야 돼요. 주님은 이스라엘 편이 아닙니다. 주님은 인물편입니다. 그 인물이 이 땅에 오는 표적이 뭐냐, 인물이 왔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새 성전입니다. 새 성전.

그 점에서 잠시 스가랴6장 한 번 보겠습니다. 역시 신비로움이 있지요. 6장 12절을 보게 되면,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보라, 순이라. 순, 새싹. 새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뭐를 건축한다?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은 건축할 수 있다? 없다? 다른 사람은 건축할 수 없습니다. 13절에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그러니까 새로운 이스라엘의 특징은 이 사람들이 아쉬워서 사람 건지려고 아등바등 애쓰시는 분이 아니고 치워라! 다 치워라! 니 라는 인간은 과거 존재지. 다 없애버려라! 그런 겁니다.

이 바벨론, 바사 나라가 아무리 바사 나라가 성전 지으라고 이렇게 후원금 대줘도 바벨론이 다니엘에 보면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짐승이에요. 짐승. 그러면 짐승이 새끼 놓으면 짐승 새끼. 그 새끼 놓으면 새끼. 욕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자식이라는 뜻이에요. 이게 하나의 계열이에요. 무슨 계열? 짐승의 계열입니다. 짐승의 계열.

인간은 인류 역사 끝날 때까지 짐승의 계열이기 때문에 악마의 계열이죠. 짐승이라 표현한 것은 이 땅에 악마가 있음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짐승이라고 한 것은 이 짐승, 이게 하나의 제국이죠. 이걸 인간들의 용어에 의하면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정치적 집단이라고 하는 거예요. 정치적 집단.

그러면 여기 주께서 약속하신 순이라는 분은 이 악마의 성향과 정 반대가 되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실 분은 어떤 성향이냐 정치적 성향이 아니고 그 앞에 뭘 붙이느냐 하면 비정치적 성향이지요. 반대 한다, 의 반정치적 말을 제가 하지 않는 이유가 자꾸 반정치가 되면 쿠데타 같은 뉘앙스를 줘요. 기존의 세상을 엎어버려라. 이런 거 있잖아요. 그건 아니에요.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이 이슬람교도 많고 불교도 많고 기독교는 조금밖에 안되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위대한 기독교 영웅을 보내주셔 가지고 전 세계를 기독교 복음으로서 통치되기를 바란다든지, 그게 너무 면적이 넓으면 요쪽만 광명 요쪽만 33번지 요쪽만 이렇게 안 되겠습니까. 요쪽만 이렇게 안 되겠습니까. 우리 아파트만 안 되겠습니까. 안되겠다고요. 그러면 요쪽 줄 아파트만 안 되겠습니까.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 집은요? 우리 집도 안 된다고요. 자꾸 이렇게 정복력, 정치적 정복력은 뭘 낳느냐 하면 미흡감을 줘요. 미흡감을 주게 되면 그 비워있는 만큼 초조감을 유발하고 초조감을 유발해버리면 아까 처음에 이야기한 진리의 기쁨은 다 날아가 버려요. 없어요.

자, 다시 이야기할게요. 인물이 왔다는 것은 모든 것은 벌써 지나간 거예요. 잊어도 상관없어요. 어제 내가 뭐했지? 몰라도 돼요. 아, 우리 점심 때 뭐 먹었어요? 몰라도 돼요. 육개장4인분 시킨 거 그거 몰라도 돼요. 그러니까 이게 왜 몰라도 되느냐 하면 주께서 누구를 부각시키기 위해, 돋보이기 위해서 하는 겁니까? 순을 순 또는 순의 계열, 새싹이라는 분을 돋보이기 위해서 이런 제국들, 짐승들, 악마까지 전부다 친히 다 다루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악마가 또 이걸 모를 리가 없어요. 알아요. 악마는 도사거든요. 알기 때문에 아까 했지요. 마귀가 하는 일은 뭐만 하면 된다? 사다리만 걷어차면 돼요. 천국과 이 지상과의 사다리만 걷어차면 돼요. 그래서 악마가 걷어차는 방법은 스가랴3장 한 번 봅시다. 1절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뭘 합니까? 대적하지요. 누굴 대적한다고요? 여호수아를 대적하지요.

여호수아가 누구냐 하면, 바벨론 70년을 압제당하고 그 다음 나라가 바사나라거든요. 바사나라의 다리우스1세에 의해서 너희 집에 가라, 해서 갈 사람은 가라, 해서 오는데 여기 4인방이 와요. 4인방. 스룹바벨이 오고 이건 왕입니다. 왕(총독). 그 다음에 여호수아 나와요. 이건 누구냐 하면 대제사장입니다. 여기서 또 누가 나오느냐 하면 선지자가 나오지요. 선지자가 스가랴만 나오는 게 아니고 투톱이에요. 두 사람와요. 학개, 그 다음에 스가랴. 스가랴가 이스라엘로 돌아올 때가 2살에서 3살쯤 돼요. 그리고 예언을 하게 될 때가 한 20살쯤 됩니다.

그런데 그 때는 이미 학개는 늙어죽었다고 보시면 돼요. 나이 많은 학개가 성전 다시 지으라고 잔소리를 했고, 그리고 학개 1장 2장 남기고 돌아가셨고, 그 다음에 계시가 끊어졌고, 학개를 이어서 스가랴를 하는데. 스가랴가 이어서 하거든요. 스가랴는 그냥 성전 지으라고 끝나는 게 아니고 성전의 완료까지 이야기해요. 아까 성전의 완료가 뭡니까? 인물. 어떤 인물. 순이라는 인물까지 언급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인물만 등장하게 되면 나머지 모든 것은 다 지나가버렸다. 그런데 이 순이란 인물이 등장할 때, 그 순 안에 뭐가 들어있겠어요? 성전이 들어있겠지요. 그러면 성전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성전 안에 지나온 성전에 연류 된 성전의 과거가 다 담겼다고 보니까 이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온 우주가 다 들어있는 거예요. 성전 안에. 예수님의 세계가 펼쳐지는 겁니다. 예수님의 세계가.

어제 수요 설교를 하고 난 뒤에 수요 설교에 참여했던 우리교회 집사님이 끝나고 난 뒤에 저한테 “목사님, 다른 건 다 이해가 되는데 락키산맥의 호수에 잠긴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라고 이야기 했었어요. 록키산맥이 2000m높이가 있고 호수가 이리 있어요. 둘러싼 설산들이 마치 물속에 잠긴 듯 명경지수잖아요. 다 잠기겠지요. 그러니 사람들은 뭘 생각하느냐 하면 이 호수에 비췬 것은 이건 허상이고, 실제로는 뭐가 실제냐, 리얼리티냐 하면 설산이 이게 진짜다. 라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자, 이렇게 생각한다고 이게 기쁩니까. 이게 안 기쁘지요. 왜 안 기쁘냐 하면 이게 산이 실상이 되어버리면 누구도 실상이 되느냐 하면 그 산을 관람하고 있는 나도 실상이 돼요. 그런데 나는 실상이 되는데 내 마음은 기쁘지 않고 늘 두려움과 주눅 들고 있어요. 잘난 사람 있으면 기죽어요. 그리고 캐나다 여행 갔다 오게 되면 아이고~ 오백만원 날아갔다. 아깝다. 뭐 이런 거. 그 때는 좋았는데 또 아깝다 할 수 있고, 다음에 또 돈 모아서 또 가야지 할 수도 있고. 전부 다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이 실제로 있는 것 가지고 고민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실은 그 원인이 내가 가짜가 아니고 진짜다. 라고 나는 안개가 아니고 진짜로 있다, 이것 때문에 된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 누가 끼어드느냐 하면 예수님이 끼어들었거든요. 이 세상에. 예수님이 끼어들었다 말이죠. 예수님이 끼어들었는데 예수님은 이 전체를 뭐로 보느냐 하면 이 전체를 허상으로 보는 겁니다. 허상 정도가 아니고 진짜 있는 하나님에게 도전하는 불순한 힘이지요. 불순한 힘으로 보는 겁니다. 그리고 이 전체가 뭐냐, 어제 설교에 의하면 불로 멸망해요. 불로 멸망한다고요. 불로 멸망해버리면 하나님의 창조하신 그 창조의 취지는 어디서 살릴 것인가, 바로 이거 물속에 있지요. 왜냐, 이 호수가 죽음의 세계, 죽음의 세계인데 예수님의 모든 활동은 무엇을 앞장세우느냐 하면 자신의 빈 무덤을 앞장세우잖아요. 빈 무덤.

무덤인데 다른 무덤은 다 뼈가 있는 무덤인데 이건 빈 무덤이에요. 제가 어제 미이라 이야기했지요. 인간이 아무리 그럴싸하면서 사무실에 쇼파 앉아서 김양한테 커피 시켜 먹으면서 앉아있어도 결국은 나중에 쪼그라 들고 바짝 마르지요. 미이라가 되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미이라가 아니고 부처도 미이라고, 테스형도 미이라인데, 예수님은 뭡니까? 그 무덤에 예수님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없었지요. 어디 가셨어요? 어디 가셨습니까? 예수님 어디 가셨어요? 없는 분이 그러니까 무덤에 계시지 않을 뿐, 없음이 있는 모습으로 있음의 세계에 인간이 있다고 여기는 실제 세계에 나타나셔서 홀연히 자기의 실상을 가지고 이 땅을 떠나버린 거죠. 그 남은 흔적은 빈 무덤이고. 그러면 어느 게 가짜입니까? 무덤에서 이 뼈 조각이 남아있는 게 가짜 아닙니까.

그럼 여기서 물음이 질문이 뭐냐, 왜 인간은 죽는가, 인간은 잠시 있어 보였는데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왜 지금쯤 우리 선조들은 어디가 있는데? 없는데? 이 질문에 대해서 답변이 없지요. 그럼 답변이 없으면 진리입니까? 아닙니까? 답변 없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라는 것은 이미 답변 자리에 그 안에서 사는 게 그게 기쁨이지 답변도 없이 문제지만 들고 있는 게 뭐가 진리겠어요.

내 아내하고 왜 아들은 죽입니까? 해가지고 바이든 이라는 사람이 Why me?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불렀던 도 있지요. Why me? 주여!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이렇게 하는데 주님의 응답이 Why not. 너는 왜 안 되는데. 이런 답변을 했다는 거예요. 주여! 왜 접니까? me가 없음으로 뭐로 바뀌어야 돼요? not없음으로 바뀌어야 된다고요. 없음으로.

그래서 어제 수요설교에서 했잖아요. 주여! 왜 저를 자꾸 살리십니까? 따져 물어야 돼요. 저를 왜 자꾸 살리십니까. 이유는 너가 있음이 아니라 진리가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너를 앞장세우기 위해서 살려주신 거예요. 빈 무덤이 주도권을 갖고 있고, 꽉 찬 무덤은 주도권이 없어요. 보이지 않는 분이 주도권을 쥐고 보이는 사람은 이건 백날해도 의미가 없다니까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집에 강아지고 뭐고 간에 의미 없어요.

어떤 건물에 부동산 주인이 부동산 세받아 먹는 거 외에는 할 짓이 없다는 것을 뭐로 알 수 있느냐면 그 집에 키우는 고양이가 살이 찌면 그 사람이 할 일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고양이는 그 주인 닮아가지고 지도 가만히 앉아있거든요. 고양이 가만히 앉아있으면 뭐 됩니까. 살만 찌지요. 살만 찌는 거예요. 그것처럼 성도라 하는 것은 나에게 의미 있으라고 살려준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분을 증거 하라고 살려주신 거예요.

그래서 이 순 계열은 순에게 새싹계열의 특징이 뭐냐 하면 항상 무엇과 동반하느냐 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난리치고 그렇게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걱정하는 이 짐승 안에 있는 눈에 보이는 유일한 현실이라고 우기는 이 현실과 대비되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 순의 계열이 등장하는 겁니다. 순의 계열.

다시 말씀드려서 순이라는 분이 하실 일이 스가랴 6장에서는 성전 짓는다 했지요. 성전. 그러면 옛날 이스라엘 생각해 봅시다. 이스라엘이 최종점에 이를 때에 솔로몬이 뭘 지었습니까? 성전 지었지요. 사실은 솔로몬 성전이 아니고 이게 다윗하고 하나님하고 계약에 의해서 주신 성전이에요. 솔로몬 성전하면 잘 못됐어요. 사실은 다윗성전이에요. 계획은 아버지가 했거든요. 다윗성전이에요.

다윗성전인데, 사무엘하7장 읽으면 너무 복잡하니까 읽지 않고 그냥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성전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건 뭐냐 하면 다윗의 아들이 성전 돼요. 다윗의 아들이 성전 됩니다. 다윗의 아들이 성전 될 때 이것을 로마서1장에 보게 되면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걸 복음이라고 해요. 복음.

복음이 나타났으니, 다윗이 아들을 낳는 게 복음이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이 고대하고 있는 어떤 건물을 지을 거 같으면 우리가 건물에 들어가면 구원받아요. 그런데 어떤 인물이 등장했다는 말은 인물이 복음으로 등장했다는 말은 나냐? 너냐? 이걸 묻는 겁니다. 다윗의 아들이야? 아니면 지금 니가 붙들고 있는 너야? 어느 게 기뻐? 어느 게 진리야? 어느 게 영구적이야? 어느 게 영원해? 우리한테 묻는 겁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이 영구적이지요. 그러면 너는 니 할 일은 뭐냐 하면 늘 하루, 하루, 잠깐, 잠깐, 이 세상을 살면서 늘 소실된다는 거. 사라진다는 거. 나는 망가져서 지워진다는 것을 증거 해야 될 임무가 있지요. 의미 없음을 알리는 차원에서 의미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까 가사 다시 고쳐야 돼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죠. 의미가 없다고 했다가 다시 의미가 있다.

뭐냐 하면 이스라엘에게 주께서 허락한 것은 순, 새싹을 허락한 것은 이스라엘에게 돌아갈 곳을 주시는 겁니다. 돌아가라고. 돌아갈 곳은 니가 성전 짓는 그거 아니야. 순이라는 분이 오시는 그 성전이 있는 그 이스라엘 그 약속의 땅이 영원히 너희가 돌아갈 그곳이야. 돌아갈 곳이 있다는 말은 주께서 받아들이겠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인정하겠다는 겁니다.

한 때 공개적으로 졸혼, 결혼 졸업한다 해가지고 화제를 끌었던 백일섭이라는 사람이 자기는 졸혼을 이제는 선전하지 않고 이걸 사람들에게 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졸혼 할 때 그렇게 떠들더니만 왜 졸혼을 좋다고 광고를 안 합니까? 졸혼 하니까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 듣고 지난 낮 설교 생각났어요. 인간 몸에서 나온 배설물은 돌아갈 곳이 없지만, 주님께 나온 살과 피는 주님께서 다시 거두어버려요. 내 살과 내 피를 마시면 네가 영생을 얻으리라.

그렇게 보시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영생은 어디서 나오는가, 질투심에서 나온다. 질투심이라는 것은 성경에 여러 군데 나옵니다만, 사람들이 잘 주목을 안 해요. 하나님도 삐지나? 이런 생각이요. 하나님도 참 마음이 좁아가지고 삐질 수가 있느냐, 하는데 하나님께서 불심판할 때 그냥 심판하는 게 아니고 질투심으로 심판하거든요.

그 질투심이라 하는 것은 내 옆에 같이 있을 사람이 딴 데 가있기 때문에 질투를 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빈자리에 들어와야 될 사람이 들어오지 않고 못 들어오기 때문에 질투심을 해가지고 질투심으로 하나님께서 불심판을 내리는 겁니다. 신명기4장24절, 내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시는 불이시오, 그 다음에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이리 되어있어요.

질투라는 말은 아가서에 보면 사랑입니다. 사랑과 질투 그거는 10분 쉬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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