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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8 16:31:28 조회 : 33         
안양20201112b슥3장8절(순)-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119.207.152.148)
안양20201112b슥3장8절(순)-이 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영생은 질투심에서 나온다, 라는 말은 질투는 하나님 곁에 누가 있어야 되는 누락을 의미해요. 하나님께서 자기 있으니까 1이잖아요. 하나님은 1로 일하시는 게 아니고 자기 곁에 빈자리를 두고 1이 아니고 2가 되겠지요. 1이 아니고 2가 될 때 여기서 뭐가 생기느냐 하면, 관계성이 성립되는 겁니다. 관계성. 하나님은 예수님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했어요. 내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아가에 보면 이 사랑하는 이것을 사랑하는 자. 사랑=질투, 이 질투의 힘을 가지고 아가에서는 이게 죽음의 힘이라 합니다. 죽음의 힘.

그러니까 이걸 사람이 죽을 때 왜 죽느냐 하면 죄 때문에 죽는다는 거죠. 그러면 인간의 죄는 무엇인가. 죄는 주님의 사랑이 아닌 것이 죄가 돼요. 그럼 주님의 사랑이 아닌 게 죄라는 게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마련하신 그 빈자리에 차고 들어올 수 없는 것, 채워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겁니다. 사랑의 대상이 아닌 것. 버릴 카드지요. 들어오지 마라는 겁니다. 여기 아가8장6절에 보면,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리 되어있습니다. 질투, 사랑, 죽음 그리고 심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질투심에서 비롯된 거예요.

이 말은 하나님은 뒤끝 있다는 거예요. 뒤끝. 다시 말해서 “내가 선악과 따먹지 말라고 했잖아! 내가 에덴동산 망치지 마라 했잖아!” 하고 하나님께서 그냥 안 봐주고 그냥 안 넘어간다, 라는 식으로 오는 겁니다. 마태복음13장39절에 보면,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데려갈 자와 남겨둘 자를 가려내는 그 활동에 빈 무덤으로 활동하시는 주님도 지금 오늘날도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선별 작업하는 거예요.

사랑으로 데려갈 자와 빈자리 채울 자와 사랑의 대상이 아니고 밀어야 될 대상, 그것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질투 작업은 바로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에 대해서 다 드러났었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하나님의 그 질투심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자기 아들을 사흘 만에 도로 살려냅니다. 살려내는 것이 생명이거든요. 생명은 질투심에서 나와요.

“니는 죽어있으면 안되지. 일어나! 일어나! 잠자는 자여! 일어나 깨어라.” 하고 주님께서 진리가 우리한테 침투해버린 거예요. 진리가. 생명이 침투한 거예요. 사랑이 침투한 거고, 주님의 질투심이 가득한 사랑으로 와버리면 더 이상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미련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되던, 어떻게 망가지든 없어요. 지금 죽어도 상관없어요. 다만 내일 사는 것은 주님의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 살려주는 거예요. 내 일하라고 살려주는 게 아니고 주의 일을 하라고 하기 때문에 목표나 목적이라든지 기대 이 모든 것은 주님의 몫이지 우리의 몫이 아니에요.

선지자의 특징이 그거 아닙니까. 어디 가서 무얼 하라 할 때, 자기의 재정적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거기 가서 주님의 진리 증거 하라고 거기 가게 하신 거예요. 어느 과부 집에 가서 얻어먹어라. 엘리야, 엘리사 이 모든 활동이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 낫는 것, 이 모든 활동이 장차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어떤 입장에서 일하시는가를 그 선별 작업을 무슨 기준으로 하는가를 미리 선지자를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그 기준은 이겁니다. 순.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 없던 혈육입니다. 없던 혈육.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혈육입니다. 순. 다윗의 혈통인데 다윗의 혈통이 아니에요. 아까 말한 중복성이지요. 1이 아니고 2가 되는 겁니다. 2가 될 이유는 다윗의 혈통과 이 순의 혈통 사이에 2개가 중복되어 있어서 순의 혈통에서 다윗의 혈통에 있는 자를 질투심으로 사랑으로 건져주는 자만이 이 계열에 들어올 수 있는 겁니다.

어제 수요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나부터 출발하는 것은 어떤 경우도 하나님께서 넣어주지 않습니다. 나부터 출발하는 것. 그런데 십자가부터 출발하게 하신 것은 십자가부터 출발해서 나한테 오신 분 그 분에 의해서 우리는 합류되게 되면 그건 바로 성도가 되는 겁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부터 출발하게 되면 자꾸 이익과 손실을 생각하게 돼요. 어떤 경우라도 만회하려고 하고 손해 안 보도록 빨리 보상하고, 다시 회복되려고 애를 씁니다. 내가 나다운 것을 자꾸 자체적으로 설정을 해가지고 내가 나다움에서 조금이라도 이렇게 모자람이 있으면 괴로워서 어쩔 줄을 몰라 해요. 잠도 자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거예요.

그런데 버릴 카드인데, 우리는 버릴 카드에 자꾸 신경을 쓰는 거예요. 그러면 스가랴가 받은 계시는 뭐냐, 버릴 카드는 온 옷 전체가 시커먼 때 묻은 그 여호수아의 옷이 버릴 카드에요. 동일한 여호수아인데 여호수아가 중복성을 갖고 있어요. 더러운 옷도 있었고, 하나님이 악마가 보는 앞에서 새 옷을 입혀버립니다. 제가 지난 강의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악마의 특징은 새 옷이 없다 했지요. 복음 모르는 사람은 새 옷이 없어요. 철따라 옷은 해 입는데 백화점에 옷은 사 입는데 주님이 주신 새 옷이 없어요.

죄 씻음이 깨끗하게 천국가도 통하는 천국가도 패스가 되는 그 옷이 없어요. 그 옷 어디서 팝니까? 마트에서 팝니까? 있으면 사게요. 롯데백화점에서 팔아요? 안 팔아요. 주셔야 돼요. 질투심으로. 그 옷의 모양이 오늘 본문 나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그 옷이 어떤 옷이냐, 일곱 눈이 있는 옷이라 보면 돼요.

여호수아가 보기에는 한 돌이 있지만, 그 돌에 있다는 말은 곧 그가 입은 옷의 교체, 옷의 교체의 취지가 살아있는 돌. 옷이 교체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 돌의 일곱 눈이 있지요. 요 일곱 눈은 요게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 영이에요. 요한계시록5장6절, 3장1절에 나와 있는데,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일곱 영이에요.

그 일곱 영의 특징은 이사야11장1~2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여호와의 신까지 합하면 7가지 알 수 있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이건 뭐냐, 함축하게 되면 지혜, 총명, 모략, 재능, 지식, 합치면 뭐가 되겠어요? 진리의 영이에요. 진리의 영이 누구한테 오느냐, 요단강 예수님 세례 받을 때 주님에게 이게 통합해서 온 거예요. 따로 따로 온 게 아니에요.

그 순이라는 분. 통합해서 온 거예요. 그래서 이사야 11장에서는 뭐냐 하면 계속 힌트를 주는 겁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메시아가 온다. 또 메시아냐, 아니냐를 알아보려하거든 그 사람에게 진리의 신, 영이 임했거든 그 분이 바로 메시아다. 자, 흩어져서 보물찾기. 찾아봐라. 못 찾습니다. 왜? 주의 말씀은 혼합되어있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풀 수 없게 만들었어요. 왜 인간의 언어로 못 푸느냐 하면 인간의 모든 의미는 나 안 더럽다고 하는 악마의 사주를 받은 마음이거든요. 성령이 주의 마음이라면 하나님만 마음이 있는 게 아니에요. 인간의 마음도 있어요. 인간의 마음도 일곱 마음, 악마의 마음이 일곱 마음만 되겠습니까. 엄청나게 많지요. 마태복음9장에 귀신들린 청년 있지요. 귀신 들린 청년 해봤자 몸무게 많이 나가봐야 많이 되어봐야 60Kg 키는 1m60 그 한 몸에다가 귀신이 있다면 귀신은 몇 마리나 들어갈 수 있을까요? 산수시간. 무한대지요. 무한대다 이 말이에요.

그 귀신이 나오면서 예수님한테 눈꼴치고 나왔잖아요. “그새 못 참고 우리를 멸하러왔습니까?” 눈 팍 치켜뜨고. 니 청년 잡았다 싶었는데 당신 때문에 방해받았다는 거죠. 그리고 어디에 들어갔느냐 하면 “여기 청년에서 나와” 들어가라 하니까 갈 데 없습니다. 하거든요. 갈데없다고. 이 말은 뭐냐 하면 모든 인간은 누구나 바이러스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전부 다 귀신 들렸어요. 아담에 속한 모든 인간은 귀신들린 자에요.

그 당시에 귀신에 악마의 대장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서기관들이고요, 근접해서 노골적으로 한 거예요. 노골적으로. 그들의 유식과 배운 것이 그리스도를 노골적으로 직접 공격하는 거고 일반인들은 그 악마의 예수님을 공격하는 그들의 지식인의 지배를, 그 권세에 통치를 받으니까, 짐승의 나라에 통치를 받으니까 그것도 역시 귀신의 통제를 받으니까 귀신 들린 거고. 이리 보시면 돼요. 성령 없으면 무조건 귀신 들린 거예요. 간단한 문제입니다.

영적 세계에서 인간의 몸은 빈 몸으로 가만 두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뭐로 채워도 채워진다 말입니다. 뭐로 채워도. 불신자보고 인품 좋다고. 인품 좋을 수 있어요. 착하다, 이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귀신 안 들린 건 아니다 말이죠. 주님의 통제에 의해서 귀신이 덜 귀신답게 게거품 안 물어서 그렇지. 나중에 어떻게 되면 게거품 물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아이고, 우리 남편은 사람은 좋은데 술만 안 먹으면 참 좋은데.” 술 먹겠다는 그 자체가 이미 귀신들린 거예요. 술 먹는 마음을 그리워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지금. 술 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지금 찬스를 보고 있는 거예요. 찬스를. 틈만 나면 술 먹으려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혼자 맛이 없으니까 친구 전화해가지고 맨날 술 먹고. 지금 와서 초등학교 동창회 왜 모입니까. 술 먹으려고 모여요. 다른 거룩한 명분대지 마세요. 그게 술 먹으려고 다녀요. 왜 교회 안 나옵니까? 술 안 주니까 교회 안 나오지.

인간은 인간마음을 인간 마음대로 못합니다. 마귀가 부리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아휴, 열심히 일해요.”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여유롭게 술 먹으려고 열심히 일하는 거예요. 틈만 나면 술 먹으려고. 왜? 술은 나를 기쁨을 주기 때문에. 쾌락을 주기 때문에. 그걸 사람들은 선이라 하지요. 요번 교재 봤지요. 교재 초반에 그런 이야기 나오잖아요. 쾌락이 선이고, 불쾌한 게 악이고.

이 일곱 영이, 진리의 영이 된다는 말은 다시 말씀드립니다. 악마는 옷이 없어요. 이 말은 뭐가 없느냐, 진리의 영이 없다 말이죠. 진리의 영이 없으니까 이건 거짓이지요. 거짓. 그러면 진리는 뭐냐, 3x5=15이건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라 하는 것은 죄 사함 된 상태가 진리에요. 악마는 IQ가 250이다. 진리를 압니까? 수학 천재, 서울대 수석 합격 법대, 이거 진리 아는 사람이에요? 악마지요. 악마. 악마의 발악이다. 공부 잘한다고 진리 아는 게 아닙니다. 악마가 노골화된 거죠. 아니까. 포기하기가 더 힘든 거예요. 지 딴에 아니까.

다시 정리합시다. 여기서 정리하고 들어가야 돼요.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하나님의 옆자리가 비어있다고요. 이 빈 자리에 누가 들어가느냐, 주님이 들어가야 돼요. 예수님이 들어가야 돼요. 그래서 스가랴에서는 예수님의 자리에 뭐라고 들어가요? 순이라고 하고. 이 순은 그냥 하나님 안이라고 쓱 들어가는 게 아니고 이 인간의 역사, 죄의 역사에서 악을 악으로 들추어내고 정복을 하는 조건을 가져야 심판주로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심판하는 게 아니고 이 세상을 경험했던 그 아들로 말미암아 심판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숨겨진 영원한 비밀이에요. 창세전부터 숨겨온 비밀입니다. 시크릿. 비밀이에요. 왜 그러느냐 하면 악마가 하나님을 알아요? 몰라요? 악마가 하나님을 알지요. 그러니까 야고보서2장에 보면 유명한 말씀 나옵니다. 2장19절에 보면,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네가 하나님을 한 분인 줄을 믿느냐, 하나님이 최종적이고 절대적이고 유일한 분임을 믿느냐, 그거 귀신들도 믿고 귀신들도 두려워서 떠느니라. 뭘 모르느냐 하면, 진짜 신앙인이라면 주님이 우리에게 뭘 해주느냐가 보여야 돼요. 주님이.

주님이 뭘 해주느냐 하면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듯이 우리에게 대신 희생했다는 거. 대신 희생했다는 거예요. 기생 라합의 행동을 통해서 뭘 끄집어낼 줄 알아야 되느냐 하면, 기생 라합을 위해서 대신 희생하신 요소가 있어줘야 돼요. 그게 뭐냐, 정탐꾼이에요. 위험을 무릎 쓰고 여리고까지 왔던 정탐꾼을 기생 라합은 메시아로 본 거예요. 나를 구출할 수 있는, 구원할 수 있는 주님의 질투심의 파견자라고 본 거예요. 사랑의 파견자로 본 겁니다.

예수님은 안 보이잖아요. 하나님께서는 누굴 사용한다고요? 내일 죽어야 되는데 오늘까지 살고 있는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이 자기의 하시는 현재 지금 일하고 있음을 우리를 통해서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됩니까? 나를 밟아야지요. 시몬 너는 아느냐, 니 망가지는 소리를. 두 개의 나중에서 하나는 망가지는 즐거움이 있어야 돼요. 더 이상 나를 안 챙겨도 된다는 그 여유만만함. 자유함이 있어야 돼요.

누구한테 기죽을 필요 없잖아요. 마태복음 주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임마누엘이라 했지요. 하나님은 홀로 계시기를 싫어해요. 자기의 짝이 되는, 사랑의 대상이 있고 싶어 해요. 그 사랑의 대상에 바로 원조가 누구냐, 바로 순입니다. 그래서 이 순이라는 분은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나셔야 돼요.

자, 다윗의 혈통은 인간의 혈통입니다. 인간의 혈통은 뭐가 흐릅니까? 여기에 저주가 흐르지요. 그래서 주님은 저주를 맛보아야 되는 겁니다. 저주를 맛본다는 것은 정말 힘든 거죠. 벨기에 공주가 다음 차기 왕권을 인수 받을 그 공주가 벨기에 육군 사관학교에 입사해가지고 벅벅 기었다 했잖아요. 훈련을 다 받는 거예요. 흙 한 번 안 묻힐 그리고 험한 일을 일체 안해야 될 그 왕이 여왕이 일부러 왕은 자기 딸을 제일 밑바닥 제일 힘든 유격훈련까지 군대생활까지 다 거치게 한다 말이죠. 뭐 군대생활이겠습니까. 그냥 폼 낸 거죠.

요 원칙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시킨 겁니다. 스가랴1장16절을 보게 되면 여기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먹줄 나오지요. 여호와께서 건축하리니 예루살렘위에 뭐를 치리라? 먹줄. 먹줄 친다는 것은 디자인하겠다는 거예요. 디자인. 디자인하는데 그 디자인하면서 또 뭘 이야기하느냐 하면 19절에 보면, 내가 또 보니 뿔이 보이지요. 먹줄 알지요? 건축할 때 밑에 벽돌 같은데다가 미리 탁탁 쳐 놓으면 검은 줄 쳐놓고 거기에 맞추어서 그 기초위에 건물 올리잖아요. 그거 하면서도 같이 뭐하느냐 하면, 누가 이 성전을 박살 내났는가, 박살낸 4뿔이 나와요. 4뿔. 이게 짐승의 권세 제국들입니다.

그러니 짐승은 뭘 노렸다? 이스라엘의 건드리지 말아야 될 것을 건드린 거예요. 뭘 건드렸습니까? 하나님, 여호와 계신 집을 건드린 거예요. 벌집을 쑤셔 놓은 거죠. 그런데 주님께서는 성전이 없는 그러니까 임마누엘이 아닌 하나님이 함께 계심이 아닌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에요. 오직 하나님 자신이 설 집을 주님과 함께 있을 자격이 되는 사람만 함께 있겠다는 그 목표는 하나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자격자는 어떠냐, 누가 너를 망하게 했던가에 내력을 아는 자만이 당한 자만이 다시 예루살렘을 돌아올 수가 있어요. 그 절차를 예수님이 몸소 체험하신 거예요. 그냥 하늘에서 왕이 아니라 이 땅에 와서 모든 수모와 모든 더러운 대접은 다 받으셨기 때문에 심판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신 심판주로서 영원한 아버지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누가? 그리스도께서.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의 몸께서.

그 몸에 누가 달라붙어있지요? 바로 알곡들, 지체들, 성도들이 내 몸이 없고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겁니다. 이제는 우리 아담의 몸은 바이바이에요. 흙에 속한 몸은 이제 이별입니다. 주께서 승천하신 영광스런 그 몸을 입게 되는 겁니다. 천사와 같이 입게 돼요.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 겁니다. 부활의 영광스런 첫 번째 열매는 예수님이고, 그 다음에 우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라 해서 자신을 스스로 맏아들로 여기시고 우리를 양자 삼으셨잖아요.

그러한 계획이 뭐냐, 딱 하나에요. 뭐냐 하면 하나님이 같이 살고 싶은 사람만 산다. 그런데 하나님이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은 하나님의 질투심이 도달된 사람. 사랑이 도달된 사람. 다시 말해서 누가 너를 건드리더냐? 라고 묻는 거예요. 스가랴1장21절에서. 누가 건드리느냐? 그 건드린 자들이 뿔이지요. 뿔이 몇 개입니까? 4뿔이죠. 그 뿔들이 유다를 해쳤다 말이죠. 공장. 공장이란 말은 업자지요. 업자. 대장장이들. 4대장장이들이 와가지고 뿔들을 열국의 뿔들을 떨어지게 하지요.

그러니까 요 스가랴1장 16절, 21절만 봐도 주의 하는 일은 뭐냐 하면 “에이~~ 떨어져라!” 하는 일을 하시는 거예요. 지금도.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에이~~ 떨어져라! 뭘 떨어져라? 너의 옛날의 미련 갖던 것. 너를 너에서 떨쳐버리고 니가 미련 갖는 너와 동일하게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너희들 식구부터 해가지고 자식부터 남편, 아내, 전부 다 떨어져야 될 것과 동일한 사고방식은 다 떨어져라는 작업을 하는 겁니다. 관계를 다 끊어버리지요. 집안 식구가 니 원수니라, 하는 겁니다. 천하 자식이나 처나 나보다 합당치 않다. 전부 다 이게 뭐냐, 떨어질 걸 다 떨어지는 거예요.

그걸 이 말씀 들었다고 우리가 또 알아서 떨치면 안 됩니다. “가라, 이태야!” 이런 식으로 안 되고. 주께서 하게 해야지 내가 나서면 안돼요. 내가 나선다는 것은 내가 뭔가 노리고 있는 거예요. 내가 뭔가 노리고. 복음도 모르는 남편을 이혼하자. 이리 나서면 안 되고요. 뜻이 있어 붙여 줄때는 다 뭐 뜻이 있어서 붙여줄 거 아닙니까. 붙여주는 게 있다 말이죠.

주께서 떨쳐줘야 되지, 내가 떨친다는 것은 나의 목적이 되고 목표가 되고 이게 내 행동의 하나의 의미가 생겨버리면 안돼요. 떨어질 인간이 무슨 의미가 생겨요. 주님의 질투심이 내 질투심이고, 주님의 사랑을 내 사랑으로 일방적으로 하면 그건 육탄전이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요.

그리고 난 뒤에 2장5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불 이야기는 수요일에 말씀드렸기 때문에 더는 안하겠지만, 주께서 완전히 접근불가, 선별작업을 했다는 말은 알아서 못 오게 불로서 울타리를 바운더리를 불로서 쳐버린다 말이죠. 에덴동산과 그리고 이 지상과 분리하듯이 그런 식으로 분리를 하게 하는 그러한 성전이 세워지는 겁니다. 나중에 천국과 지옥도 마찬가지에요. 지옥에서 못 벗어나요. 우리는 천국에서 못 벗어나는 것처럼. 지옥에서 못 벗어나옵니다.

지옥에도 지정된 사람만 가요. 아무나 지옥을 못 갑니다. 지옥 가야될 사람만 지옥가게 되는 거예요. 주의 일은 배제될 사람만 배제되고 배제 안 될 사람은 지옥 가고 싶어도 주께서 질투심으로 강한 질투심과 죽음보다 강한 생명의 힘으로 결국 받아줘요. 그래서 우리가 누가 구원받고 안 받고 신경 쓰지 말고 주께서는 지금 나에게 무엇을 떨쳐버리게 하느냐 자기 떨쳐버릴 거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다음에 2장 말고 3장에 보면, 여호수아 나오지요. 여호수아를 뭐라고 했습니까? 대제사장이라고 했지요. 원래 대제사장 계열의 제일 원조가 누구냐 하면 모세가 아니고요, 모세의 형이에요. 아론입니다. 아론이 아들 4명을 낳았는데 나답과 아비후 어떻게 됐습니까? 술 먹고 소주 먹고 들어가 가지고 첫째 아들, 둘째 아들 다 날아갔어요. 그 다음에 세 번째가 엘르아살 4번째가 이다말인데 이게 다윗까지 경쟁해요. 나답과 아비후는 잘렸고, 엘르아살하고 그 다음에 이다말이 둘이 남았는데 여기에서 후손 중에 유명한 사람이 사독이 나오고 여기에 이다말 계통에서는 아비아달이 나와요. 아비아달 제사장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이다말 계통에 나온 중에서 사무엘상 초반에 유명한 제사장 나와요. 힌트를 준다면 뚱뚱하다, 목이 부러져 죽었다. 엘리제사장. 이건 철없는 소년 사무엘에게 당한 제사장이죠. 그래서 이 계열은 중간에 안돼요. 그리고 사독계열은 빛을 발하나, 여기 엘르아살 계열은 비느하스가 나와요. 비느하스 선지자는 민수기25장에 보면 창으로 그 우상 섬기던 남녀를 죽일 때에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다음에 뭡니까?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그러니까 하나님의 여백, 하나님의 빈자리를 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일로 충족되는 게 아니고 자기 옆에 둘 사람을 제대로 둘 사람을 찾는 그 작업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요. 사랑의 대상을 찾는 것. 사랑의 대상은 주님이시지요. 주님인데, 그 주님이 하나의 계열을 맞이한다. 주님인데 주님의 계열 또는 그리스도의 몸 같은 말입니다. 주님의 계열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사독에서 그 다음에 이제 오늘 본문 3장에 나오는 여호수아까지 어떤 계열이 있느냐, 그 중에 유명한 사람은 바로 여호야다라 해가지고 죽었는데요, 아달랴 반란을 일으키고 그 다음에 스가랴가 요아스 왕한테 죽었어요. 처형당했어요. 그 때 죽을 때 스가랴는 피를 흘렸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창세기4장에는 가인에게 죽은 아벨 피와 그리고 스가랴의 피와 이제 마지막 피. 예수님 자신의 피가 계열을 이룬다. 고 같은 계열에 속했다는 거예요. 어떤 계열? 세상이 이만큼 악하다는 것.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짝이 등장하는 것은 악마가 극구 반발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인으로서의 역할. 증인의 역할만 해야만 그 계열에 소속이 됩니다.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선지자가 제가 이리 이야기하면 여러분은 또 걱정이 되어가지고 ‘나는 그저 집에 저녁 해야 되는데. 선지자 노릇도 못하고. 애 학교 마치면 빨리 저녁 해줘야 되는데. 학원 갔다 오는데 어쩌지. 나는 그저 일반 주부로서 그렇게 거룩하게 못 사는데.’ 이런 걱정들을 하시겠지만, 아까 했잖아요. 선지자들이 일을 할 때, 그냥 해야 된다 해서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기쁨으로 해요. 기쁨으로. 고맙소! 또는 감사함.

이게 되게 되면 그 사람이 밥을 해주든 안 해주든 관계없이 주의 증인이고 선지자계열입니다. 뭘 하든지 간에. 밥 해주지 말고 시켜먹자. 이 말이 아니고 시켜 먹더라도 감사와 고마움이에요. 하나님께서 살려주셔서 여전히 이 일을 하게 하시는구나! 그러니까 내가 일한다가 아니라 내 안에서 누가 일하신다? 주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그렇게 보여주는 겁니다.

스가랴2장11절에서 13절 봅시다.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에 머물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줄 알리라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아까 했지요. 선별작업에 의해서 임마누엘이 가능한 그 사람들, 나는 그 가운데에 거하리라. 이게 전부 다 뭡니까? 질투심.

그래서 아까 생뚱맞게 이야기했지만, 영생은 곧 뭐다? 질투심. 누구의 질투심? 하나님의 맹렬한 질투심. 질투심이라고 제가 언급하는 이유는 질투심은 목표에 이르지 않는 한 멈춰지지 않습니다. 나하고 있어야 될 사람이, 살아야 될 사람이 니가 왜 거기에 가있느냐 말이죠. 질투 확 올라오지요. 니가 왜 거기서 나와. 확 올라오는 거예요. 니는 내 사람이지 저사람 아니잖아. 그러나 아담이 선악과 따먹고 전부다 절로 다 가버린 거예요. 그래서 질투심이 동한 창세전에 예정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 족집게로 뽑아내는데 그 뽑아내는 작업을 통해서 뽑힌 사람들은 중복성을 갖고 있지요. 버릴 나와 채택되는 나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버릴 나는 아담의 원칙 따라 아담의 기준 따라 살아가는 나는 버릴 나고, 여호수아 대제사장의 옷을 벗기듯이 주님께서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그 작업, 진리. 진리에 기쁨을 주면서 하는 그 작업은 영원히 주님 옆에 하나님 오른편에 있어야 될 그러한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에게 말씀하실 때에 니가 나와 함께 12나라를 통치할 것이다, 했잖아요. 통치한다고 하니까 예수님과 같은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어야 이게 통치가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리고 난 뒤에 이제 오늘 본문 순 이야기 들어가 봅시다. 순이 등장한다는 것. 아까 이사야11장에 보면 누굽니까? 이새의 아들이죠. 전에 제가 이 점을 언급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마는 이새의 아들이라는 것은 룻기 할 때도 이야기했고요, 룻기할 때, (자식자리) → (아버지자리),(엄마자리) 괄호 3개 해놨어요.

요번 새 책이 나오는데 <천국의 틈>이라는 책에 보게 되면 우리 최지영씨가 디자인을 잘해가지고 여기 괄호에 세 사람을 집어넣어놨어요. 요 자리가 뭐냐 하면 자식 자리고, 아버지, 엄마 자리에요. 그런데 보통 우리에게서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야 자식이 나오는 줄 아는데. 자식이 먼저 나와야 아버지, 엄마가 비로소 자식에게 종속된 상태로 자기 자리를 갖추게 되는 겁니다. 빈자리가.

이삭이 있어줘야 아브람에서 벗어나서 아브라함이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돼요. 그러니까 그것은 아버지는 어디에 종속된다? 자식에 종속되지요. 그러면 아브라함의 일대기가 있으면 여기에 뭔가 수직으로 여기에 침투가 되지요. 그러면 이건 혈육이 두 동강 나는 거예요. 혈육이 두 동강 나야 옛사람이 생기고 새사람이 발생되는 거예요. 약속이 와서 잘라버리는 거예요. 아브람 시대하고 아브라함 시대가 달라요. 아브람 시대는 혈육의 시대라면, 이스마엘이 용납되는 시대라면, 아브라함 시대부터는 약속의 시대기 때문에 약속의 시대는 계속해서 뭘 공격하느냐, 육을 공격합니다.

아브라함의 318명 자기의 사병을 동원해가지고 전쟁해서 자기 조카 롯을 구원했지요. 거기에 등장했던 왕이 있어요. 살렘왕 멜기세덱. 멜기세덱은 히브리서7장에 보면 이건 뭐냐 하면 족보가 없어요. 족보가 없다는 것은 이 땅에 육의 혈통의 계열이 아니고 수직계열이에요. 영원한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겁니다. 그 제사장이 바로 여호수아3장에 보면 바로 여호수아고 그 여호수아 계열에 누가 난다? 순이 메시아가 등장해요. 그러면 이건 여호수아가 메시아를 난 게 아니고 순이 누구 자리를 확정해 준 거예요? 여호수아 자리. 제사장 자리를 메시아가 확정해 준 겁니다. 이걸 누가 이야기하느냐, 바로 선지자 스가랴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여기 제사장 있고, 여기 선지자 있으니까 빠진 것은 뭐밖에 없습니까? 왕 자리가 빠졌지요. 그 왕 자리가 마저 채워지는 거예요. 그래야 퍼즐이 그림이 맞으니까. 이게 왕입니다. 왕은 마지막에 오는 거고, 그 마지막이 사실은 처음이 되는 거예요. 새롭게 규정된 처음이에요. 스타트 지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나부터 살면 안 되고 우리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부터 다시 우리가 규정되어야 돼요. 십자가로부터. 십자가란 뭐냐, 우리는 이미 죽었고, 우리 안에 사셨던 분이 같이 사는 거거든요. 그걸 갈라디아서2장20절에서는 우리는 죽었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 믿음이 뭐냐, 아까 제가 이야기한 관계입니다. 관계. 질투가 통하고 사랑이 통하는 하나의 수도관, 파이프관, 관이 형성돼요. 관. 그럼 뭐가 의냐, 그 관이 의에요. 내가 안 중요하고요, 내가 안 중요하고 주님이 주신 관이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 한방에 가면 등짝이 아프다, 결린다 하면, 여기에 뭐 뜹니까? 부항 뜨지요. 부항 모습이 좀 흉직하게 생겼지요. 관 모습이지요. 흉직하다 해가지고 떼면 효과 없잖아요. 그것처럼 관이 거기에 달라붙어있는 거예요. 관이 꽉 달라붙어있는 거예요. 주님의 관이. 그게 성령의 관이라고 하는데. 일곱 영의 감시를 받고 있다. 좋은 의미의 감시입니다. 진리의 영이 우리를 주도하지요.
진리께서 우리를 인도한다는 말은 우리의 자리를 늘 확인시켜 주는 겁니다. 주눅 들지 마라. 기죽지 마라. 어차피 그건 버릴 카드야. 너는 나의 택한 카드잖아.

자, 그러면 이 여호수아 성전 세우는 이 스가랴는 결국은 성전을 세우면서 성전을 중건하라고 독촉을 하거든요. 계시를 통해서. 측량해서 성전 세워라. 성전을 세우면서 이 성전 말고 중복되어 있으니까. 눈에 보이는 성전 말고 또 다른 성전이 있지요. 땅에 세우는 성전은 이거는 제거될 성전이에요. 마치 우리의 몸은 성전이면서도 우리의 육신은 잘리고 우리의 성전은 영원한 것처럼. 성령의 전이 영원한 것처럼. 요걸 그대로 스가랴가 이야기해준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이 성전은 나중에 어디서 박살나느냐 하면 그 다음 제국, 메대파사, 그 다음에 헬라 마케토니아, 그 다음에 로마, 로마한테 성전은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AD70년경에 마사다 대전 있기 전에 이미 성전은 불타버립니다. 성전이 불타버리지요. 예수님은 스가랴 예언의 스케줄대로 그대로 차질 없이 가는 거예요. 헐어버려라. 46년 동안 지은 성전 헐어버려라. 헐어버리는 자체가 니가 구원받았다는 거예요. 니가 너를 챙기지 말고 니가 너를 무너뜨려버려라. 우리가 무너뜨리면 주께서 친히 세우시는 우리가 또 그 현장에 느껴지고 다가오는 겁니다. ‘아, 내 몸 좋아라고 한 것이 아니고 관계, 주님의 그 관계, 믿음, 그 믿음이 이렇게 실제적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계속 우리는 이 짐승의 제국, 이 세상 속에서 지금도 꾸준히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되는 겁니다.

여기에 10절에 봅시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되어있지요. 포도나무, 무화과나무라는 것은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젖과 꿀이 제대로 약속의 땅에 기능이 축복의 기능이 제대로 가동될 때 나타나는 소산물들입니다.

열왕기상4장24절에 보면, “솔로몬이 그 강 건너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그 강 건너편의 왕을 모두 다스리므로 그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으니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이리 되어있어요. 솔로몬은 뭐냐, 다윗언약의 위대성이 확인된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함께 임마누엘 했다, 이 말이죠.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좋은 관계를 이루어질 때는 그들에게 포도나무도 무성하고 무화과나무도 무성하게 된다, 하고 된 겁니다.

그럼 지금도 어떤 사람이 복음 알고 과수 농사 지으면 포도나무 잘 됩니까. 라고 한다면 이것은 이 세상에 있는 우리의 육신, 아까 락키산맥 이야기했지요. 눈에 보이는 이런 것은 다 불로 태워져야 돼요. 자기 집 포도농사 태풍불어 날아가도 괜찮아요. 허상이니까. 안개니까. 죽음이후 빈 무덤. 빈 무덤 가지고 모든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주 독특하게 일하시잖아요. “너희는 죽었잖아. 나는 살았어.” 그거 앞장 세워서 일하시는 거예요.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도 마찬가지에요. 니 지금 죽는다고 죽으라고 고생하고 원망스럽지. 나 봐! 살았잖아. 살아있는 내가 네 속에 박히면 되잖아. 부항 뜨듯이. 그게 니 사명이야. 스가랴의 선지자의 사명. 그러니까 이게 포도나무, 무화과라는 말은 이미 우리는 예수님이 등장해가지고 성령을 주시는 한 이건 무슨 일원이다? 이미 완료된 상태다, 이 말이에요. 개코도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 하여튼 간에 우리는 지금 풍성한 가운데 있어요.

그래서 어제 수요일날 바로 죽음의 세계가 더 풍성하고 더 깊어서 거기서 찬미와 찬양이 마음껏 나온다는 거예요. 영원히 끊임없이 감사할 거리가 계속 나와요. 거기서. 그러나 이 세상에 호수 따로 있는 이 현실세계에서는 영원히 나오는 게 있지요. 짜증 지대로다~. 어떤 걸 봐도 짜증나. 뭘 해도 짜증 나. 뚝 하면 차 막혀서 짜증나고. 어떤 걸 해도 테스형! 해가지고 짜증내가지고 세상이 왜 이래? 이런 식으로 뭘 해도 짜증나. 집구석 들어가도 짜증나고 나가도 짜증나. 자꾸 왜 짜증나나. 자기 일을 최종적 일로 간주해서 그래요.

자기가 선악과 따먹어가지고 자기가 신이 됐기 때문에 자기 홀로 최종 승자가 되고자 하는 겁니다. 그걸 승리자의 귀환이라고 되어있지요. 요번 수련회 교재에 보면 앞에 보면 있어요. 승리자의 귀환. 나만 최후에 승자가 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고요.

그러면 오늘 결론은 뭐냐, 오늘 제목이기도 한데. 성전의 합류에요. 성전의 합류. 성전의 합류라 하는 것은 신약에 오게 되면 이 성전이 누구라 했습니까? 예수님과 합류. 예수님 안에는 예수님이 인자가 되고, 인자 + 백성. 이게 포함돼 있지요. 인자+백성=성전. 예수님+백성.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만나면 됩니까? 못 만나요. 만날 수가 없어요. 왜냐, 하나님이 스가랴의 약속대로 순되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야 돼요. 진리의 영을 보내게 됩니다.

그럼 진리의 영은 누구한테 오는가, 약속된 자에게 오는 거예요. 약속된 자가 바로 이스라엘이지요. 이스라엘은 주님의 솜씨에, 결과물이기 때문에, 결과물을 원인자로 바꾸지 마세요. 우리는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솜씨이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해서 구원받았다고 남한테 전도하지 마시고, 주께서 보이지 않는 분에게 원인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요란스럽게 일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평온한지요. 여전히 우리가 옛사람에게 기대 걸지 않습니까. 우리의 기대와 목적과 희망이 다 좌절된다 할지라도 그게 주의 주신 복인 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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