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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5 07:04:30 조회 : 34         
20210913b 부산강의 : [시편]41(25:15)-소유성과 위기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96)
20210913b 부산강의 : [시편]41(25:15)-소유성과 위기
(강의:이근호 목사)


첫 번째 시간에 내가 말씀을 지키는 것 아니고 말씀이 나를 가지고 말씀이 터져 나오는 방출되는 것. 그러면 나는 이 과정에서 말씀을 못 지키는 사람이 되는 즐거움이 있어요. 내가 말씀을 지킬 수 없음을 아는 즐거움. 만약에 내가 말씀을 지켜버리면 말씀 지킨 나는 나의 우상이 돼버립니다. 대단한 존재가 돼버리죠. “사람들아, 나 말씀 지켰어. 칭찬 좀 해줘. 목사님 저 칭찬 좀 해주세요. 말씀 지켰어요.”

그게 바로 악마의 앙꼬가 들어간 거예요. 여전히 말씀 지켜서, 이걸 뭐라고 하느냐? 이걸 신격화라 해요. 악마가 마지막 노리는 것은 나를 신격화시키기 위해서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거예요. “네가 신이야. 다른 게 신이 아니야. 네가 신이야.” 이게 바로 철학이고 과학입니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한 사람이 니체란 사람이고요. 신은 죽었다.

다시 말해서 신은 죽었다. 누군 살아 있다? 니는 살아 있잖아. 니가 사는 힘이 진리야. 이렇게 이야기한다고요. 우리가 보기엔 니체가 그런 이야기했지만 니체 빼버리면 오늘날 초중고등대학교 모든 사회가 이 철학이에요. 힘을 가져야 사람대우 받는다는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고. 숫자 적고 헌금 적게 나오면 교회라고 인정 못 받는다는 거예요.

열댓 명 모여서 이게 무슨 교회냐. 가정도 마찬가지고 가족도 마찬가지고. 니 나이에 뭐했나? 얼마나 많이 들었습니까. 나이 육십이나 먹고 뭐했나? 안 놀았다. 안 논 꼬라지가 그거가. 보증 잘못 서서. 하여튼 지 인생 조져놓은 게 만날 보증 잘못 섰데. 사기 당했데. 사기는 그냥 당합니까? 동업이지.

악마는 아무것도 아닌데 자꾸 거기다 뭘 집어넣느냐? 의미를 집어넣어요.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아까 했잖아요. 성도는 모든 게 관광이라고요. 자기가 태어나서 살았던 그 고향, 그것도 관광이고. 스위스 알프스 가는 것도 관광이고요. 어디 가봐도 사람 사는 것 똑같습니다. 아침 일어나 밥 먹고 살고, 농사짓고 사람 농사짓고, 장사하는 사람 장사하고. 그 동네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나 우리 동네 옆에서 여기서 하는 짓거리나 똑같은 짓거리인데 그쪽 구경하나 이쪽 구경하나 별 차이 없지요.

인간은 뭔가 의미를 집어넣고 반대로 십자가는 그 집어넣은 의미를 지워버립니다. 한쪽은 의미 챙기고 한쪽은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지우개 지우는 것 보세요. 없는 거예요. 의미가 없다는 말은 뭔 뜻이냐 하면 위기도 없다는 거예요. 위기도 없는 거예요. 사람이 뭐 건전하고 고상해야 위기란 게 있지요. 애초부터 흙인데 흙으로 돌아가는 데 그게 정상이지 그게 뭐 위기입니까.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는 것이 폐차를 생산한다. 그럼 현대자동차 공정에서 뭔가 위기 있습니까? 고장 나는 그게 정상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합니다. 진짜 교회란 뭐로 보느냐? 교회란 블랙홀이다.

20년 전에 911 테러 일어났잖아요.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두 개가 다 날아갔습니다. 그 날아간 현장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라운드제로Ground Zero라 해요. 거기에 어떤 설계도로 설계됐느냐 하면 거기에 지하로 폭포가 떨어지도록 설계했어요. 모든 땅의 근원은 바로 비극적 사건이 근본이다. 모든 물은 여기서 삼켜버리는 거예요. 블랙홀은 모든 질량이 있는 것은 삼켜요.

소유를 갖고 있는 건 삼키는 게 블랙홀이거든요. 이 블랙홀이 뭐냐 하면 십자가입니다. 교회는 그냥 구멍이에요. 가진 자 다 와서 여기 빠져버려라. 빠져서 주와 함께 죽자. 이게 교회란 말이죠. 가진 것을 안 빠지고 그냥 유지해버리면 그것이 자기가 자진해서 뭘 초래하느냐 하면 자꾸 위기의식을 초래해요. 이것 빼앗기면 안 되는데. 이것 내 건데. 이것 사기 당하면 안 되는데. 우리 애 공부 잘하는데 공부 잘해야 되는데. 소유가 있으니까 가진 게 있으니까 계속 위기를 자초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설탕물이나 꿀통 마개를 열어놓고 벌 있는데 지나가보세요. 뭐가 날아옵니까? 벌들이 오지요. 왜 자꾸 나한테 사기성과 보증서라는 이야기 왜 자꾸 오느냐? 자꾸 밀어내는 이유가 뭘 지고 있어요? 날 파리가 들끓도록 조치를 한 거예요. 자기가.

교회에서 기도 좀 한다고 하니까 여기가 누가 달려드느냐 하면 기도깨나 한다는 집사나 권사들이 달려드는 거예요. 누가 오래 하는지 붙어볼까? 이게 교회. 교회 직분마다 봉사하니까 그것도 봉사냐, 그게. 이게 봉사라고 배틀 들어옵니다. 그럼 그걸 못 놓지요. 왜? 자존심 상하니까. 내가 니 콧대를 꺾고 놓고 난 뒤에 뭐 어떻게.... 어떤 경쟁자가 달라붙지요.

자본주의원리는 딱 하나입니다. 경쟁. 경쟁이 발전이 낳지요. 경쟁 없는 곳에는 발전이 없습니다. 시험 안 치면 아이들 공부 안 해요. 시험 없는데 공부 왜 합니까. 결국 나의 성공이 나를 망치게 만들어요. 그러면 나의 퇴보, 다시 말해서 나는 망하겠다. 이것도 복음을 가리는 거예요. 십일조 안 해도 됩니다, 교회 안 나와도 됩니다. 이게 복음을 가리는 거예요. 십일조 안 하고 예배 참석 안 하고 성경공부 참석 안 해서 뭘 얻겠다는 겁니까? 결국은 초월적 자아를 안 버리고 챙기겠다는 거잖아요. 이게 또 마귀잖아요.

그래서 이러한 두 가지의 극단을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다 보여줍니다. 역대하 11장 4절을 보겠습니다. 이제부터 역대하 11장부터 24장까지 계속 나갑니다.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짓인지를 역대하를 통해서 살펴봅시다. 두 시간 만에 성경 하나 다 뗀 것 있지요. 그것처럼 오늘 이 시간 한 45분 동안 역대하 훑어봅시다.

역대하 11장 4절에 이런 말씀 나옵니다. 누가 읽어볼까요.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저희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지 아니 하였더라” 아멘.

르호보암 왕이 북진통일을 하려한 거예요. 남쪽이 북진통일해서 한 민족이 통일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군사를 많이 모았습니다. 수십만 군사를 모아서 치러나갈 그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뭐라 합니까? 싸우지 마라. 이렇게 나라가 둘로 나눠진 것은 여기 유다 택한 민족이 십팔 만이고요.

십팔 만 모아서 전쟁하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 “아이고, 잘했구나. 네가 이스라엘이 솔로몬 때문에 갈라진 걸 르호보암 너라도 다시 회복해야 하나님에 영광이지.” 이렇게 가르친 게 아니고, “올라가지 마라. 싸움하지 마라.” 왜? 갈라지게 한 것이 누구 뜻이다? 이게 내 뜻이야. 나로 말미암은 일이에요. 벌써 인간의 자존심보다 뭐가 우선된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언제 나타난다? 내 자존심이 블랙홀 뭉개지는 그 순간에 등장하는 것이 뭐냐? 그게 말씀이에요. 내 자존심을 키워주는 게 말씀이 아니고 까불고 있어. 어디서 유사 주의 일을 한다고 주의 일 핑계대고 뭐 헌신하고 희생하겠습니다. 좀 나대지 마. 쫄랑대지 말고. 오지랖은 되게 떨고 있고. 가만있어, 가만있어. 세상 돌아가는 것이 다 내 뜻이야.

벌써 이스라엘을 위해서 르호보암 왕이 백성한테 인기 얻기 위해서 정치적인 술책 쓰는 것은 누가 인정 안 한다? 이스라엘 나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시 위기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위기는 없는 거예요. 위기는 누가 만드느냐? 위기는 본인이 만드는 거예요. 본인이 왜 만드는가, 위기를 왜 의식하는가? 안 망하려고.

그러나 망하고 안 망하고는 주님의 안중에 그런 게 없습니다. 니가 망하고 안 망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망할 때도 말씀 나오고 안 망해도 말씀 나오면 그게 오케이지요. 그게 땡큐지요. 고급영어로 Thank you.

그러면 위기는 누가 만드는가? 위기는 악마가 만들어서 내 마음속에 심어준다. 악마가 뭘 노리고? 나의 소유성, 나의 소유한 것을 겨냥해서 악마가 위기를 심어주는 거예요. 네가 말씀대로 안 사니까 이런 저주를 받잖아 인간아, 라고 악마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소유가 있어야 내가 성립되니까요. 그래서 소유를 원상 복귀하는 말은 이 길은 뭐냐 하면 그 잘난 나를 네가 중도에 포기하지 말아다오. 이게 악마가 하는 이야기에요.

제가 어제 주일학교 설교를 했는데 회당장의 딸이 죽어갈 때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가서 죽어가는 내 딸을 살려달라고 하면서 뭘 했느냐 하면 예수님의 손을 우리 죽은 딸에 얹으면 효과 좀 나겠습니다, 라고 방법까지 이야기해줘요. 곧 죽어가고 있거든요. 그런데 주님께서 가자, 해놓고는 딴 데 들려버려요. 딴 데 들르니까 그 딸 죽어버렸어요.

회당장 혼자 급해요. 어딜 가느냐 하면 회당장과 정반대로 생각하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회당장은 예수님을 초청했잖아요. 그러나 그 여인은 12년 동안 하혈하는 병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감히 나 같은 인간이 어떻게 주님의 살을 맞댈 수 있느냐. 날리는 옷만 살짝 했어요. 옷만 살짝 했는데 주님께서 12년 동안 했던 그 병이 낫고 말았습니다.

그건 뭔 뜻이냐 하면 여인이 12년 동안 병을 앓았다는 말은 자기 딴에 자기 자아가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이게 소용없다는 걸 안 거예요. 그렇다면 나 같이 죽어 마땅한 것이 살아보겠다고 어디 감히 맨 살을 만지겠어요. 그냥 옷깃이라도 만지겠습니다. 이 자세 자체가 죽이면 죽이고 살리면 살리든지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이런 뜻이란 말이죠.

그 다음에 죽고 난 뒤에 그 딸을 보고 일어나라고 살려냅니다. 주님에 대해서 어떤 기적을 요청할 때 회당장은 무엇을 의식했느냐 하면 살아 있는 내 딸이 있을 때 내 소유의 딸이 있는데 멀쩡할 딸, 이것이 있어줘야 내가 아버지답다고 생각한 거죠. 그 여인은 12년 동안 이미 자기는 다 깎였어요. 얼마나 자존심 회복하려고 무슨 짓이든 다 했겠습니까. 12년 동안 계속 피는 흐르고 있으니까 다 깎였어요. 깎다, 깎다보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없어요.

신약에서는, 계시는 발전하잖아요. 더 발전하게 되면 뭐냐 하면, “너 그 자리에 그냥 있어라. 십자가의 블랙홀로 내가 찾아가줄게.” 찾아가주는 겁니다. 서비스가 택배서비스에요. 네 자신은 나의 블랙홀, 나의 그라운드제로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빠뜨리는 그 위력과 혜택을 내가 찾아가서 너에게 덮쳐줄게. 이게 바로 성령의 임함입니다. 우리가 남은 것은 껍데기 밖에 안 남아있지요.

그 다음에 11장 14절에서 17절에 보게 되면 르호보암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르호보암 시대에 제사장들 있지요. 레위지파들이 북쪽에서 제사를 다 철폐하니까 북쪽의 레위지파들이 남쪽 유다 땅으로 다 온 거예요. 남북이 갈라졌을 때. 그러니까 르호보암이 거기서 자부심을 가진 거예요. 우리는 여호와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전쟁하면 누굴 위해준다? 반드시 우리 편이 되 줄 거라. 그렇게 착각한 거예요.

그런데 14절에 뭐라고 돼있냐 하면, “레위 사람이 그 향리와 산업을 떠나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렀으니 이는 여로보암(여로보암은 북쪽 김정은입니다)과 그 아들들이 저희를 폐하여 여호와께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여기 어떤 번역에 보면 ‘폐하여’란 말 대신에 적절한 말 했어요. 해임시키는 거예요. 목사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이 말은 뭐냐? 레위지파가 하는 일은 뭐냐? 말씀을 가르치는 거예요. 그래서 북쪽에 있는 사람들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말씀 없이 살아도 나는 제대로 살고 있다, 라는 것을 인정하는 나라를 만든 거예요. 북쪽에서는. 레위지파 없어도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부자 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라는 분위기가 오늘날 교회뿐만 아니고 세상 전체에 확산됐습니다. 유럽에도 마찬가지고. 교회 안 갑니다. 잘 먹고 잘 사는데 왜 교회 가요. 젊은 사람들 보세요. 교회 안 가잖아요.
젊은 사람들 주례 안 듣습니다. 지 축하파티에 참석하라고 해요. 기성세대 잔소리 듣기 싫다고요. 그렇고 그런 주례 지긋지긋하다는 거예요. 뻔해야 자기들 위로하는 건데 그거는 셀프위로해도 그 정도해요. 그저 부모하고 복 받고 하나님 잘 섬기고. 그거는 한두 번 들은 게 아닙니다. 지겨워요, 그것도 이제. 그럴 바에야 우리가 알아서 축하파티가 낫겠다. 왜? 우리는 성인이니까, 나이 서른 넘어서 결혼하니까 이제는 우리가 섬기겠습니다. 잔소리할 생각 마세요. 우리는 내 식대로 삽니다. 왜? 나는 신격화됐으니까.

그렇게 나올 때 어릴 때 엄마 따라 교회 와서 찬송도 삐약삐약 병아리 하듯이 참새 하듯이 그렇게 찬송도 잘하고 피아노 잘 치고 노래 잘한다 했건만 그 다음부터는 교회 안 나가지요. 왜냐하면 사람은 진리대로 사는 게 아니고 재미로 살아요. 인간은 기분파에요. 기분대로 산다고요. 기분이 업 되는 교회는 계속 다닐 거고 자기의 재미를 충족 못하면 드럼 치고 기타 없으면 교회 안 가고 그렇지요. 청년회 모임해서 필리핀 여행가는 경비 안 대주면 교회 안 나오지요. 참 시대가 나만 생각하지 말고 시대 전체 분위기가 그리로 빠졌다는 걸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이 남쪽에 오니까 12장 1절에,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그 다음에 뭡니까? 무엇을 버렸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얼씨구나. 율법을 버리니. 목사가 복음을 버리니 온 교회는 얼씨구나 되는 거예요. 위대한 지도자부터 말씀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데 설교시간이 교양시간이에요. 여러분 이런 교양 가지면 사회 나가서 사람 대우받습니다. 교회에서 그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마귀 자식과 천국 자식을 떼놓는 이야기를 해야 돼요. 강제로 떼어놓아요. 주께선 그 일을 하시거든요. 저쪽에서는 가진 것으로 사람 대우받겠다. 이쪽에서는 내가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사용했다. 그 두 색깔의 사람들을 강제로 떼어놓는 겁니다. 떼어놓는다는 말은 지옥 갈 사람은 때려죽어도 천국에 못 오도록 지금도 주님께서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어요. 참 이게 이걸 가지고 기쁜 소식이라 해요.

미군부대 철조망에서 초콜릿 얻어먹고 껌이나 얻어먹는 건 인정하지만 미군부대에 근무할 수는 없어요. 여러분들의 고속도로에 들어가려하면 뭐가 있습니까? 톨게이트 있어요. 돈 내는 데 있지요. 톨게이트. 톨게이트 지나지 아니하면 고속도로에 진입을 못해요. 만약에 톨게이트 없으면 고속도로에 누가 다니느냐 하면 지게차 다니고요, 경운기 다닙니다. 덜커덩덜커덩 온 세상구경 다하고.

톨게이트에 이게 고속도로, 천국으로 통한다면 이 톨게이트에 모든 종교는 다 집결돼있습니다. 집결되어 있어서 이렇게 하시면 천국 보내드리겠습니다, 라고 여기에 광고들이 많아요. 대학신입생 할 때 옆에 원룸 광고들 많이 오잖아요. 우리 원룸은 옵션 잘 돼있다고 하잖아요. 그처럼 톨게이트 주변에 천국과 통하지 않는 많은 종교들이 다 옵니다.

그런데 십자가 길은 인간의 모든 지혜와 능력을 부정하거든요. 구원받는 자는 오직 십자가만이 뭐다? 하나님의 십자가, 블랙홀만이 능력이 되는 거예요. 십자가만이 모든 어떤 것도 십자가와 같이 죽자. 십자가만이 전하는 것만 와야 되기 때문에 톨게이트를 만들어서 주께서 여기서 성령으로 십자가 영으로 관여해버리면 여기는 그냥 평생을 톨게이트 근방에서 종교 생활하다가 지옥 가는 겁니다. 한 번도 십자가에 접어든 적이 없어요.

그 절차가 역대하에 쭉 나옵니다. 그 다음에 넘어갑시다. 율법을 버리게 되니까 12장 5절에, “때에 유다 방백들이 시삭을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였는지라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노라 하셨다 한지라”

너희들이 나를 버림으로써 너희들은 위기 찾아오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이 있을 때는 위기가 안 찾아오는데 말씀을 버릴 때는 위기가 왔다는 말은 위기를 잘 극복하면 이스라엘 된다는 말이 아니고 누가 위기를 초래했는가를 보라는 겁니다. 말씀중심으로 살지 않고 이스라엘, 이거는 내 나라다. 내 자존심이다. 내 의미고 가치다. 그걸 붙드니까 더욱 더 날 파리들이 들끓는 거예요. 소유성이 있어야 존재가 있다는 그 원칙을 유지하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7절에 보니까 선지자 말을 듣고 이제 말씀이, 보세요. 그러니까 레위지파가 많이 왔지요. 그들이 모든 율법을 이야기했지요. 그러나 아까 했잖아요. 계시+계시, 어떤 위기가 왔을 때 하나님께서 새로운 이벤트를 사건을 일으켰을 때는 기존의 말씀이 하등 소용이 없게 된 거예요. 50년 교회 다닌 게 하등 소용이 없게 된 거예요. 성경 백 독 한 것, 신학교 졸업한 것 아무 소용없게 됐어요.

지금 이 현장에서 주께서 새롭게 주시는 그 말씀이 뭐냐? “또 죽어라, 인간아. 그냥 세상은 관광용이다. 그게 얼마나 편한 생활이냐. 자꾸 네 것 지키지 말고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지 말고 새로 시작하자. 나와 더불어 오늘 치 기억을 나와 함께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내일 되면 오늘 기억 잊어버리고 내일 치의 기억을 또 만들자.”

그렇게 주님이 살아 있어야 돼요. 내가 살아 있는 게 아니고. 오늘 죽어도 그만이지만 주께서 살려주겠다는 데 다 뜻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살려주시면 겸비하게 살아가세요. 또 약 먹고 하지 말고. 살려주실 때는 나를 위해서 사는 게 아니구나, 생각하고 또 나름대로 하루 동안 관광에 나서세요.

그래서 르호보암이 겸손하니까 해준 게 뭐냐? 시삭의 종이 되는 거예요. 이방나라의 종이 된 겁니다. 그게 기껏 살려주신 거예요. 원상회복 끝났습니다. 안 됩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요. 여기 보면 12장 5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노라 하셨다 한지라”

붙였다는 말이 나오지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민족들은 항상 세퍼트 개에요. 물어, 하면 물어야 돼요. 그래서 만약에 자식이 다섯 명 있다면 다섯 명이 다 지 나름대로 행복하게 잘 살면 아이고, 하나님 나는 아무 걱정 없습니다, 할 때 윗집에서 비샙니다. 다섯 명을 해결했는데 위에서 비가 새는 거예요. 비새는 것 해결해도 또 위층에서 층간소음 나와요. 예상 못한 것을 자꾸 준비하여서 나로 즐거워 사는 것을 용납을 하지 않는 것, 내가 죽은 잔데 산 자 행세 못하게 하시는 것, 그게 바로 천국 가는 십자가만 살아 있는 천국 가는 통로입니다.

그 다음에 역대하 15장 13절에 보면, 아사 왕 때인데요. “무릇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 남녀를 무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면 남녀대소 죽어버리면 숫자가 어떻게 되겠어요? 줄잖아요. 교인 수도 준다는 것은 목사 입장에서는 자기 자존심을 대패로 깎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너, 교인 몇 명이고?” “다섯 명.” 이거는 차마 말을 못 꺼내요. “이게 무슨 주의 사자냐.” 이렇게 욕할 게 뻔하기 때문에.

그래서 15장 13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않는 것을 왜 죽이라 하느냐 하면 이스라엘은 말씀을 채워야지 사람 숫자로 채우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아사 왕 때도 전쟁이 일어나지만 역대하 18장 봅시다. 이건 여호사밧 왕 때에요. 18장 1절에,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고” 진짜 나라가 잘된 거예요. 잘되니까 그 다음부터 눈을 어디로 돌리느냐 하면, “아합으로 더불어 연혼하였더라” 아합과 사돈을 맺은 거예요. 아합 왕은 북쪽이죠.

북쪽은 뭐가 없지요? 레위지파가 없지요. 이건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거예요. 북쪽나라의 특징은 말씀 없이도 우리나라는 강할 수 있다. 그걸 시도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와 같이 강하니까 연합해서 싸우려고 나간 겁니다. 나갈 때에 여기 선지자를 봤는데 아까 이야기한 미가야 선지자가 등장했지요. 미가야가 선지자가, 아까 이야기한 것 후딱 넘어가겠습니다.

천상회의를 참석한 거예요. 그러면 거기서 미가야 선지자만 하나님 뜻을 알고 나머지는 아까 이야기한 거짓의 영을 그들에게 준 겁니다. 18장 20절에 거짓의 영이 와서 내가 사람들을 꾀이었다고 했거든요. 이걸 설명하면 인간은 자기의 마음을 악마에게 노출되게 돼있어요. 그러니까 내 마음 내가 알아서 한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악마가 집어넣어준 마음 따라 움직이는 것이 로봇이 된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에요. 악마는 이걸 알아요. 니 까불어도 네 마음속에 내 영을 집어넣으면 너는 네 마음대로 안 돼. 가룟 유다가 사탄이 들어가니까 가룟 유다 지 마음대로 못하고, 가인도 사탄이 들어가니까 못하잖아요. 제가 어제 낮 설교에서 인간은 뭐냐 하면 인간은 기계에요.

기계에다가 악마가 자유를 부여하니까 갑자기 자아가 자율성을 찾게 해서 수동이 뭐로 바뀌느냐 하면 자기가 능동으로 바뀐 행세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더 강한 능력, 강하고 우연적인 능력, 갑자기 이 교회에 동회에서 들어와서 마스크 했는지 조사할 때 이건 내가 요청한 게 아니잖아요.

나보다 더 센 힘을 가진 능력이 와서 나에게 주눅 들게 만들 때 그걸 저는 어제 생산이라고, 생산할 때 우리는 뭐로 가느냐? 갑자기 여기서 예예예, 하고 수동이 되면서 어디로 가느냐? 흙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거예요. 처음부터 흙이었어요. 흙으로 와서 어디로 간다? 흙으로 돌아가는데 그 과정 속에서 나라는 것을 반짝 등장한 겁니다.

아이들은 엄마 말 잘 듣잖아요. 어린아이처럼 돼야 된다는 데 이게 어린아이들은 수동이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컸다고 수동에서 뭐로 바뀌었습니까? 능동으로 바뀌었어요. 자기가 결정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회 나가서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월급 얼마 되나 사나이가 보여준다고 사업한다고 엄마, 아빠 집 잡혀서 돈 몇 억해서 나중에 사기꾼한테 털리고 난 뒤에,

“어무이 좀 도와주이소.” 갑자기 능동에서 뭐로 바뀌었습니까? 수동으로. 아버지는 말하기를,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엄마는, “괜히 그런다. 내가 다 도와줄게.” 뒤로 몰래 생활비 다 대주고. 니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거죠.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부모를 자식을 못 버립니다. 그런 약점이 있어요.

역대하 20장 봅시다. 20장에 보면 전쟁을 합니다. 여호사밧 때에.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지금 이스라엘은 발발 떨고 있습니다. 겁을 집어먹었어요. 둘째 시간 하면서 첫째 시간도 그런 이야기했지만 크게 쓰겠습니다.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위기 또는 위기의식.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아를, 자아가 있으면 자아는 자아중심이 되지요. 자아중심이 되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거든요.

자아중심이 아니라면 무슨 중심이다? 말씀중심이죠. 언약중심이고. 언약중심인데 자아중심이 돼있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하기 위해서 말씀중심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지요. 이 자아가 골치잖아요. 여기에 뭘 주느냐? 위기를 줘버리는 거예요. 여기에 하나님의 원수를 가동시킵니다. 원수를 가동시켜서 자아가 있기 때문에 뭘 느낀다? 위기감을 느끼는 거예요.

그래서 악마는 항상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사람들로 하여금 겁을 집어먹게 하는 거예요. 두렵고 떨리게 만드는 겁니다. 그럴 때 이 자아는 본능적으로 뭐냐 하면 “저리 가, 저리 가.” 자기가 자기 보고 저리 가라 해야 되는데 자기 보고 설정을 자기 자신이 뭔가 교만했고 자기 위주로 살아왔다는 그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해롭게 한 저것 보고 저리 가. 하나님이여 저 원수를 악마를 없애 달라고 하는 거예요.

주님께서 나를 없애는 것이 해결책인데 엉뚱하게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저 나쁜 이단을 없애 달라. 니가 이단이야. 니가 니중심이잖아. 위기 왔으니까 처리해달라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여기서 개입합니다. 개입하면 아까 역대하 20장 15절 말씀처럼 적어볼게요.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여기에서 두 가지를 생각하면 되지요. 일단은 전쟁은 늘 주어지게 마련이다. 전쟁이 있어야 위기가 찾아오고 위기가 주어져야 자아의 문제성이 밝혀지니까. 이 전쟁은 있고 그 다음에 뭡니까? 이 전쟁과 무엇과 결탁돼있다? 인간은 나 또는 우리들과 결탁돼있어요. 주님은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이 전쟁의 적은 바로 뭘 적으로 삼는가? 이 적이 하나님의 말씀 또는 말씀의 임무를 적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인간들은 주제넘게 끼어들어서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악마는 주님을 겨냥하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은 그 옆에 서있는 자기보고 공격하는 줄 알고 혼자 벌벌 떨고 있는 겁니다.

집에서 저녁 먹고 있는데 예를 들어서 경찰이 왔습니다. “이 저녁에 누구십니까?” “경찰서에서 나왔는데요.” “누군데?” “형사입니다.” 그때 과속 안 하는 건데, 아아. 갑자기 지난, 걸릴 줄 몰랐다. 졸아서 문 열고, “어쩐 일이십니까?” “옆집에 문을 두드려서 안 열리는데 혹시 옆집 전화번호 아십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와서 호작질하는 악마를 지금 겨냥하고 있는데 우리가 나서서 나보고 지적하는 줄 알고 우리가 졸았잖아. 졸수밖에 없는 게 마귀와 한 통속이니까. 내 소유를 지키려 하잖아요. 내 교회를 지키려하고. 그 경찰이 오기 전에 얼마나 우리 가정은 화목한 가정이에요. 화목한 가정이란 말은 말씀 없어도 우리끼리만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여기에 주께선 위기를 줘서 나이 들었는데도 경기 들게 만들어버려요.

그것이 어디서 일어난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추가적인 계시를 주면서 점철되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십자가로 데려가는 거예요. 나중에 십자가는 경기 들지 않아요. 제자들로부터 해서 다 도망 가버려요. 경기 들 것도 없어요. 도망가지만 성령이 와서 뒷목을 딱 잡지요. 이것 너한테 해당되는 이야기다.

네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완전히 거덜 날 입장에서 네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에서 내가 해결 다했다는 이미 해결 다한 거예요. 우리 새로 시작하자. 병든 것 고치지 말고 가난한 것 부자 되지 말고 그것 말고 새로 시작하자. 소유 되찾지 말고 말씀부터 시작해서 말씀으로 끝났다는 이 사실을 네 안에 내용물로 집어넣어버립니다.

그래서 역대하 20장 전쟁을 했지요. 그들이 전쟁을 했거든요. 거기에 군대가 나타났는데 여기 21절, 22절에 보면 갑자기 무기가 등장하는 게 아니고 숫자가 나타나는 게 아니고 뭐가 나타났습니까? 노래와 찬양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그들이 24절에 보니까,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뿐이요”

야아 주님께 속한 전쟁은 뭐를 확인시키느냐 하면 이 세상에 움직이고 있는 모든 인간은 사실은 시체가 움직이는 것이고 흙덩어리가 움직이는 거예요. 동사무소에서 점검하러 찾아온 것은 사실은 흙이었습니다. 사람인 줄 알았지요. 흙이지요. 악마의 마음을 품은 그 소유성을 가진 그 흙이 찾아와서, “마스크 했어요?” 이렇게 오는 거예요. 흙이 조각품에 경기 든 거예요. 깜짝 놀란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내가 흙인 줄 몰랐기 때문에. 저쪽이 흙이면 나도 흙이거든요. 흙이 성령 받아서 구원받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은 반드시 흙이라고 규정하고 들어온 거예요. 이미 죽은 자로 규정하고. 살아도 내가 산 게 아니고 흙은 살지를 못합니다. 다만 살지 못한 흙이 살았다는 말은 내 안에 주께서 살아 있기 때문에 흙덩어리로서 살아가는 거예요. 이 세상 관광하라고, 죽음 이후의 세계는 이렇게 보여져야 된다고. 그게 바로 예수님의 증인인 겁니다.

그럴 때 여기 역대하 20장에서 그들은 뭘 했습니까? 찬양했지요. 그걸 여기 뭐냐 하면 26절에, “제 사일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이름을 브라가 골짜기라 했다. 이것은 마치 출애굽 할 때 홍해를 건너왔을 때 모세의 누나 미리암이 선창해서 불렀던 찬송 있잖아요.

그 찬송의 내용이 뭐냐 하면 우리는 한 게 없습니다. 우리는 한 게 없었고 주께서 애굽 사람들을, 우리는 애굽 사람들 손도 안 댔습니다. 주께서 손대서 다 죽게 했습니다. 죽은 시체를 확인하는 그 일이 주의 말씀의 해석이에요. 니 시체야, 라고 블랙홀로 집어넣는 그 블랙홀의 환경을 반복해서 확인시키는 것이 바로 복음이 전파되는 현장이지요. 그걸 돌파지요. 세상 권력에 대한 돌파, 국가 권력에 대한 돌파, 그게 교회입니다. 이게 바로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낌새가 계속 나타나고 있잖아요.

그 다음에 역대하 24장 보겠습니다. 요아스 시대에요. 역대하를 쭉 보게 되면 처음의 왕들은 자기 딴에 백성들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겠다고 뭐 말씀대로 살고 우상 철폐하고 이렇게 해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반드시 나라가 국력이 강해집니다. 이 말은 말씀 없이 소유성으로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요. 이만하면 그럴 듯하게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답게 힘 있는 이스라엘답다, 하는 그 순간 뭘 버리게 돼있어요? 말씀을 버리게 돼있습니다. 왜냐하면 소유가 있는 곳에 뭐가 있기 때문에? 자아가 생기기 때문에.

그래서 역대하 24장에서 요아스가 처음엔 잘했는데 그것도 여호사밧이란 제사장 있을 잘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했는가? 그 다음부터는 이상한 행세를 하고 있는 거예요. 18절에,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 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저에게 보내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저에게 경계하나” 그 다음에 뭡니까? “듣지 아니하니라”

왜? 여유만만 하니까요. 집에 재산 있겠다, 자식 잘 키웠겠다, 남들이 사람답게 산다고 칭찬하겠다, 아쉬운 게 뭐가 있어요. 아무 아쉬운 게 없어요. 그러니까 위기감이 없는 거예요. 전에는 위기감이 있을 때 왕이 누구 말을 들어요? 선지자 말을 들었지요. 그러나 계시가 계속해서 십자가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벌써 24장이잖아요. 아까 11장과 경우가 달라요.

계속해서 계시가 가면 갈수록 어디로 가깝다? 십자가로 가까워요. 십자가는 블랙홀로 가까이 가는 거예요. 그럴 때는 왕이 이제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를 않습니다. 한 번 봅시다. 처음에는 선지자의 말을 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한다. 세 번째는 선지자를 죽인다. 이게 바로 십자가 아닙니까. 십자가란 환경은 계속 죽어나는 사람이 있어줘야 돼요.

처음에 조그만 교회, 개척교회 할 때 한 댓 명 개척교회 했다. 그런데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 됐다. 그 다음부터 복음 들어옵니까, 안 들어옵니까? 왜냐하면 십자가는 그 교회 자체를 다 버려야 되기 때문에. 아까워서 못 버려요. 수만 명 교인들 아까워서 못 버려요. 수백 명 교인들 아까워서 못 버려요.

그래서 교인들이 어떤 목사를 원하느냐? 지금보다 더 키워주는 목사를 원하지요. 이미 교회가 우상이 돼버린 거예요. 설마 큰 교회니까 하나님이 몽땅 버릴 리는 없겠지. 큰 교회니까 버리는 거예요. 그게 톨게이트에요. 십자가를 가리는 것이, 교회가 십자가를 가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원수가 된 거예요.

넓은 길로 가게 된 거예요. 좁은 길로 가는 게 아니고. 넓은 길로 가지 말라. 이것 언제적 들은 말씀이에요. 그런 건 안 들려요. 교회를 섬겨라. 맨날 하는 소리에요. 큰 교회 더 키워라. 맨날 하는 소리입니다. 네 자신을 부정하라. 이거는 부정적 언사를 날려버리면 있는 교인도 나가기 때문에 목사가 스스로 조심해요. 혹시 실수해서 그런 말 나올까 싶어서. 안 나옵니다.

교양 갖추고 교회가 세상보다 유식하고 더 인간답게 삽니다. 그걸 이야기하고 그걸 가르쳐요. 자기 절제할 줄 알고 자기 관리할 수 있는 훌륭한 인격자 만들어냅니다. 교회가 그것으로 상품 걸고 그것으로 승부 걸어요. 스스로 자긍심을 갖도록 긍정적 마인드를 갖도록 그렇게 하는 겁니다.

18절, 19절 보면 안 듣지요. 계속 역대하 24장 20절 보게 되면, “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 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다시 말해서 스가랴 선지자에 성신이 임해서 외치는 것은 뭐냐 하면 지금 여기에 누가 계신다는 거예요? 여호와가 계신다는 거예요. 근데 너희들은 뭐냐? 내가 여기 있다고 거기에 정신이 다 팔려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 있음은 누구를 방해한다? 주님이 여기 계심을 훼방질하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따져봅시다. 주님의 계심은 그냥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돋보이는 그 현장이 주님이 계시는 곳이에요. 다만 주님은 여기서 피해자 입장에서 계시는 거예요. 내가 돋보이기 때문에 주님은 내 발 밑에 밟히고 있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씀은 나를 돋보이기 위해서 돋보이는 그 자체를 근원적으로 부정해버리죠.

그러면 나는 이미 돋보인 상태기 때문에 여유만만한 상태기 때문에 강력하게 말씀을 차버릴 때 그때는 뭐냐 하면 주님의 십자가가 십자가 피가 또 다시 나타나는 순간입니다. 내가 바로 주님을 죽인 인간이구나. 그래서 스가랴가 죽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이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5절에 보면,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스가랴입니다)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그래서 이곳에 살 권한은 예수인 나는 없다. 이 말이에요. 나는 너희들이 좋아하는 이곳에 있지 않겠다. 나는 떠나서 딴 데 가겠다. 그리고 자기 사람은 이 백성은 예수님을 죽였던 이 땅에서 너도 죽은 자로 여생을 보내라. 이게 바로 언약이 완성될 때의 모습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의미를 다 지워버려요. 모든 의미를 다 지운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이야기하고 없게 하는 그 사이에 존재와 의미와 가치가 자존심이 가득하거든 악마가 씨앗을 뿌렸다고 보시면 돼요. 그 사이를 그냥 갈대숲 사이를 어슬렁거리면서 인생 보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중심이어야 하는데 태생이 우리가 아담의 태생이라서 내가 가진 것 중심이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이 가지고 있는 이런 중심이 얼마나 십자가를 방해하는 원수의 모습인 것을 십자가의 안목을 가지고 말씀의 안목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파악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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